< 108 대족장2 >
“많군. 3만이라니.”
정신을 확장한 마넨이 단번에 오크의 수를 확인했다. 3만이라면 그의 예상보다 많았다. 많아봐야 2만 7~8,000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오크를 유인해오는 동안 동포가 합류해 이쪽은 4만이다. 결국 애초에 생각했던 1만 정도의 차이는 유지하고 있다.
마넨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감각을 더욱 확장했다.
‘없다.’
자신이 찾는 자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겼다.’
이겼다고 확신했다.
수가 많다고 방심하는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따지고, 따지고 또 따져도 자신이 질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예전에 자킨이 붉은 오크는 완전 회복시키고 힘도 두 배는 더 강해지게 만드는 스킬을 쓴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2배의 전력을 끌고 갔지만 졌다. 지금 마넨이 가진 전력은 2배가 안 된다. 겨우 25% 더 많다.
그럼에도 마넨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많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꼽자면 우선,
‘붉은 오크의 능력은 제한이 있다.’
자킨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거의 이겼는데 갑자기 붉은 오크가 고함을 지르더니 오크들의 상처가 회복되고 강해졌다.’라고 말이다. 만약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면 처음부터 사용했을 것이다.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능력은 쓸모없다. 그리고 당시 자킨이 병력을 더 얻기 위해 과장을 했을 터. 힘이 두 배로 강해지는 정도까진 아닐 것이다. 잘해야 50%? 그 이상은 말도 안 된다.
‘나 또한 동포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 그것도 제한이 없는 것으로.’
거기에 그 또한 다른 동포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완전 회복과 2배의 힘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이끄는 형제 전부가 10%의 속도 향상을 받는다.
그리고 상성 상 우위에 있는 로드의 수에서 이쪽이 앞서고 있다. 로드들은 족장급 오크를 압도할 것이고, 수적 우위를 이용해 족장급 오크를 빠르게 제압하고 일반 오크들을 공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넨 자신이 있다.
마넨 그는 오크들처럼 딱히 직책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다른 로드와 같은 직책을 갖고 있지만 신 바틱의 시험을 통과해 ‘이끄는 자’의 자격을 얻었다. ‘이끄는 자’와 아닌 자의 차이는 크다.
일단 모든 능력을 제하고 기본 능력만 놓고 봤을 때도 그 혼자 로드 둘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 즉, 대족장이 없는 이 전장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오크는 없다고 봐도 된다. 붉은 오크가 강하다고 하기는 하지만 아직 ‘이끄는 자’가 되지 못한 상태다. 대족장이 와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 겨우 대족장이 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자다.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끄는 자’가 되면 그가 간절히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마넨은 동포들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을 염원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기생충 감염’이었다.
그는 몸속에 기생하는 기생충을 동포의 몸에 집어넣을 수 있다. 15%가량 전체적인 신체능력이 향상 된다.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기생충의 수는 100개. 이미 가장 강한 전사들에게 집어넣었다. 마넨의 기생충을 받은 전사 중 10정도는 오크 족장급에 근접할 정도로 강해졌다. 비록 마넨이 원할 때 신체의 주도권을 마넨이 가질 수 있게 되지만 말이다.
1만이나 앞서는 전력, 로드와 기생충을 받은 전사들로 인한 압도적인 상위권 전력차이, 우두머리의 능력차이, 그리고 그 모든 전력을 강화해줄 수 있는 10% 속도 향상 능력까지.
무엇하나 뒤지는 것이 없었다.
‘붉은 오크가 능력을 발동하기 전에 적의 전력을 최대한 깎는다.’
그의 전략은 압도적인 상위권 전력차이를 이용해 족장급 오크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붉은 오크도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죽일 생각이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붉은 오크가 고함을 질렀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들 리자드맨의 승리가 약속된 전투가 말이다.
***
“이겼다.”
리자드맨의 전력을 확인한 노르쓰 우르드가 확신했다.
상대가 1만 정도 더 많기는 하지만... 이쪽엔 그락카르가 있다. 카록께 선택받은 그락카르가.
상대를 얕보는 것은 아니다. 리자드맨 쪽에 있는 로드급의 숫자가 족장급 오크의 숫자보다 많다는 것을 확인했고, 몸이 완전히 동그란 구 모양을 하고 있는 대족장급의 로드가 있는 것도 확인했다.
대족장급은 그 이전의 족장급과는 확연히 다른 능력을 가진다. 저 대족장급 로드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대족장급이 이끄는 4만 리자드맨의 전력은 일반적인 로드가 이끄는 6만 리자드맨의 전력에 맞먹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하체에 철판을 두르는 것으로 대비를 하기는 했지만 여기는 리자드맨의 전장, 오크들이 불리한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열하겠지만... 이겼어.’
노르쓰 우르드는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락카르는 수에 관계없이 이끄는 오크의 신체능력을 12% 향상시켜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신체능력을 12% 강화해준다고 해서 12%만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노르쓰 우르드는 평생을 살면서 휘하 병력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능력을 보긴 했지만 12%나 더 향상시켜주는 능력은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럼에도 리자드맨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리자드맨의 12%와 오크의 12%는 차원이 다르니까.
오크는 기술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지해 강인한 몸만을 믿고 싸운다. 덕분에 모든 종족 중 가장 강력한 신체를 갖고 있다. 오크에 가장 근접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리자드맨도 오크의 신체능력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그런 오크가 속도, 힘, 내구력 등 모든 부분에서 향상되는 것이다. 이건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켜 개인차는 있지만 적어도 50%, 많게는 두 배까지도 강해진다.
특히 강한 오크일수록 이 신체능력 12% 향상은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덕분에 원래는 족장급이 로드급과 싸울 때 상성 상 밀리지만 그락카르와 함께 싸우는 형제들은 오히려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한다.
이미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로드급을 잡아냄으로서 증명했다. 그러니 그락카르 휘하에 있는 족장급들은 저마다 하나 이상의 로드를 잡아낼 것이다.
그래도 남는 로드는 자신이 상대하면 된다. 노르쓰 우르드는 로드급과의 전투 경험을 통해 자신이 상성 상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둘, 무리하면 셋. 노르쓰 우르드는 로드급을 셋이나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락카르에게는 ‘성난 자의 외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이 있다.
부상을 완전히 회복시켜주고 힘을 두 배로 향상시켜주는 말도 안 되는 능력. 비록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노르쓰 우르드는 오늘을 위해서 그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락카르를 화나게 만들었다. 딱 그락카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정도로만 매일 건드렸고, 그 결과 ‘현재 분노(96%)’를 달성할 수 있었다.
전투가 불리하게 진행되면 알아서 분노가 100%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 그 전까지 얼마나 밀리고 있었든 상관없다. 오크가 자기 힘의 두 배를 갖게 되는 거다. 전력이 3~4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은 절대 질 수가 없다.
혹시라도 그락카르가 분노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가서 골려줄 생각도 하고 있는 노르쓰 우르드다. 그동안 그락카르를 열 받게 하는 노하우가 쌓여서 4%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락카르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함께 싸우든가, 미로크를 떠오르게 하든가, 약해서 선봉에 설 자격이 없다고 놀리든가. 방법은 많다.
그리고 우두머리 간의 싸움. 이건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락카르가 아직 대족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자신에게 어울리는 능력을 여러 가지 갖고 있다.
50%까지 더 강한 힘을 내게 해주는 ‘불가사의한 힘’이라든가, 적을 공격함으로서 체력을 회복하고 상대의 생기를 빼앗는 ‘착취하는 손’, 그리고 그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신체능력을 12% 향상시켜주는 ‘군주의 위엄’
물론 여기까지라면 대족장급 로드를 이기는 것은 무리다. 대족장급과 족장급의 차이는 그 정도로 크니까. 하지만 여기에 ‘성난 자의 외침’이 더해진다면? 아무리 상대가 대족장급이라고 해도 필승이다.
그래서 노르쓰 우르드는 반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가 끼어들어서 승률을 100%로 올릴 것이다. 그락카르가 질 것 같을 때 끼어들어서 함께 대족장급 로드를 공격하면 그락카르가 화를 낼 것이고, 그러면 겨우 4% 남은 ‘성난 자의 외침’이 발동 될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질 요소가 없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락카르가 고함을 지르며 리자드맨을 향해 돌격했다.
***
‘이긴다!’
그락카르는 생각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항상 전투를 시작할 때 갖는 그락카르의 마음가짐이다.
아무리 전력이 밀려도 진다는 생각을 갖고 전투를 시작한 적이 없다. 이 마음가짐은 상대의 전력이 이쪽의 10배라고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전력 차가 있더라도 이긴다는 마음을 가지고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선봉은 나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고함을 지르며 가장 먼저 적을 향해 돌격했다.
그락카르가 리자드맨 진영에 도달하자 리자드맨들은 그락카르에 맞서싸우려 하지 않고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순간 그락카르는 의아해했다. 왜 싸우지 않고 피하는 거지? 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홍해처럼 갈라진 리자드맨의 병력 저 뒤에 있는 마넨을 봤다.
초대받은 것이다. 약한 자와 싸우지 말고 강자는 강자끼리 싸우자고 말이다. 이 초대를 받아들이면 적 한복판에서 최강의 적과 싸우게 되겠지만...
“크흐..”
그락카르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리자드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그대로 달려 마넨을 향해 돌격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빠르게 리자드맨들이 채웠다. 그락카르 말고 다른 오크는 통과시키지 않기 위해 말이다.
마넨은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락카르는 강자와 싸우고 싶었기에 둘의 싸움은 쉽게 성사되었다.
그락카르가 마넨에게 도달해 서로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을 때, 오크들이 리자드맨들에게 돌격해 들어왔다.
콰과과과광!
오크의 돌격은 말을 탄 기사의 차징 못지않았다. 순간적으로 리자드맨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리자드맨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크를 그들의 터전인 물로 끌어들였다. 후방에 있던 리자드맨들이 물속에 들어가 빠르게 헤엄쳐 오크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공격했다.
깡! 까강! 까가가가가강!
대비책이 빛을 발했다. 리자드맨의 습격을 그대로 막아준 것이다. 리자드맨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하체 방어가 튼튼한 것을 알고는 물속에서 그대로 상체로 무기를 휘둘렀다.
물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공격. 물론 보지도 못하고 당하는 물속의 공격보다는 나았지만 이것도 충분히 오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크와 리자드맨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족장급과 로드급, 대전사급과 마넨의 기생충을 받아들인 전사들. 그리고 4만의 리자드맨 전사와 3만의 오크 전사.
치열했다. 전투의 승패는 미궁 속에 빠지는가 싶었다. 로드 둘을 상대하던 노르쓰 우르드는 이대로 가다간 형제들의 피해가 너무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성난 자의 외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고 그락카르를 자극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그때,
마넨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그락카르는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락카르는 참지 않고 터뜨렸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락카르가 크게 입을 벌리긴 했지만 그의 입에서 육성으로 터져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정신적인 비명. 그 비명은 오크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그의 적인 리자드맨에게만 들렸다.
-‘비통의 비명’이 사용 됩니다.
시전자를 제외한 비명을 들은 모든 생명체의 능력이 10% 하락합니다.
***
-아침 해가..
턱.
언제나처럼 알람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능력을 얻으면 언제나 그락카르가 먼저 쓰는군.”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현실에서는 능력을 쓰는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한상이 얻은 능력임에도 그락카르가 먼저 사용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비통의 비명’을 그락카르가 먼저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족장이 된 걸 축하한다. 그락카르.”
그락카르는 대족장이 되었다.
< 108 대족장2 > 끝
ⓒ 냉장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