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대교주 >
안달난다. 저 바벨인지 뭔지 하는 기적을 쓰면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빨리 쓰고 싶다. 잠깐. 혹시... 이번엔 비텔님의 목소리 없이 그냥 기적만 사용되진 않을까?
아냐.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그럴 리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무조건, 무조건 비텔님께서 말씀하실 거다.
지금 당장이라도 기적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분의 목소리를 경건한 자세로 듣고 싶은데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는 좀 무리지. 기적을 사용할 때 보라색 빛이 나와 신도들의 몸에서 일어나니까. 신도들에게 준비할 시간도 줘야 한다.
“4,000 나왔습니다. 지금부터는 호가를 200으로 올리겠습니다. 네. 4,200, 4,400.”
당장 나가서 준비하고 싶지만...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금 나가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진서가 날 이상하게 볼 것이다. 내 물건이 경매중인데 갑자기 사라진다? 거기에 바로 교주의 말이 들려오고 기적이 일어난다면? 날 조금은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 조금의 의심도 받고 싶지 않다.
다행인 건 이번 축복엔 내 몸에서 보라색 빛이 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번 축복을 받아봤지만 보라색 빛이 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아마도 비텔님께서 내 입장을 생각해서 괜찮다 싶을 때만 빛을 발하시는 게 아닐까?
그럴 거다. 내가 비텔교 교주임을 밝히는 것을 내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거다. 역시 비텔님은... 정말 자비롭고 고마운 분이시다.
“8,000. 8,000 나왔습니다. 아직도 세 분의 신사분께서 경쟁중이신데요. 세 분 모두 쉽게 포기하지 않으실 것 같으니 지금부터 단위를 500으로 올리겠습니다. 네. 바로 8,500이 나왔습니다. 다음, 다음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낙찰을... 9,000 나왔습니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중개 권리증의 경매가는 첫 번째 걸 넘어섰다. 아까 8,000에서 포기했던 두 사람도 이번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했고, 김진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다른 둘이 김진서를 노려봤다. 둘이 이를 악물고 한 번씩 더 경매에 참여했지만 김진서가 망설이지 않고 다시 참여했다.
“1억 500. 1억 500만원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안 계십니까? 카운트 하겠습니다. 3, 2, 1. 낙찰. ‘한상님의 계약 중개권리증’은 저 신사분께 낙찰 되었습니다.”
1억 500만원. 생각보다 비싸게 낙찰됐다. 김진서 덕분이다. 김진서가 참여하지 않았으면 다른 남자 둘이 5,000정도에 하나씩 가져갔을 것이다.
여하튼 경매가 끝났으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김진서도 더 이상 경매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지 밖으로 나왔다.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닙니까. 너무 비싸게 사신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
“무리는요. 오히려 싸게 샀습니다. 이제 곧 한상님의 계약 중개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은 저 같은 허접한 자들이 찾아왔지만 다음부턴 더 큰 곳에서 찾아오겠죠. 더욱 소문이 퍼지면 해외에서도 올 것이고요. 그들의 자금력은 저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설마 그러려고요.”
“그럴 겁니다. 재벌들은 경매장에 관심이 많거든요. 오늘 1억에 낙찰 되는 걸 봤으니 조사에 들어갈 겁니다. 한상님의 최면 중개에 대한 것도 알게 되겠지요. 다음 경매에도 참여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마 이번이 제가 낙찰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김진서가 뭔가 과하게 말하는 거 같지만... 김진서의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 애초에 내가 중개권리증을 경매에 내놓은 목적이 그거였으니까. 세계 상류층과의 인맥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비텔교를 전도하는 것, 그게 내 목적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일반 신도 1,000명에게 전도하는 것보다 재벌 1명에게 전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까. 그 대표적인 예가 김진서다. 그와 예던이 비텔교를 위해 하는 일은 정말 엄청나다.
그런 예던이 재벌가 순위 30위에 불과하다. 1위와는 자금력이 수십, 아니 수백 배 차이나지. 세계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나라 자금력 1위인 곳보다도 더 대단한 곳이 많다. 그들을 비텔교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아. 지금 잡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김진서와의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가장 안전하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곳은 집이다. 달리듯 걸어서 주차장에 갔다. 그리고 차에 들어갔다.
“운전은 제가...”
“비텔교 교도가 10만 명에 도달했다.”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했다. 내가 운전석에 앉는 걸 보고 맹연이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곧바로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날 보고 입을 다물었다.
기적을 사용하기 전에 교도들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지금 차를 타고 집에 가면... 한 30분 정도 걸리겠군.
“그분께서 기뻐하셨다. 약 30분 후 그분의 기적이 행해질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라.”
맹연이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조용히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주차장을 나가는데 멀리서 뛰어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김진서의 모습이 보였다.
***
“벤센. 갑자기 왜 그럽니까?”
“잠깐 조용해라. 브랜든. 지금 교주가 말하고 있다.”
함께 있던 레이먼이 브랜든을 제지했다. 레이먼의 말대로 벤센은 한상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번 건 새로운 단어가 많군. 비텔이 기뻐했다는 건 알겠는데 왜 기뻐했는지 모르겠어. 뭔가 평소와 다른 패턴의 설교였다.”
한국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된 벤센이지만 한상이 설교에서 하는 말은 짧고 대부분 반복되기에 그것만 집중적으로 익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한 말에선 그동안 익힌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교주의 설교에 변화가 일어났다. 벤센은 뭔가 비텔교에 뭔가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다.
“비텔을 받아들인 요원 중 한국어가 가능한 자를 빨리 데려와라.”
“네.”
30초도 걸리지 않아 레이먼이 요원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가 방금 한 상이 한 말을 해석해주었다.
“10만... 1만에 도달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빠르군. 그리고 기적이 행해질 거라고? ... 난리 났군.”
기적. 분명 저번에 행해졌던 기적은 아무에게나 질병이 걸 수 있는 능력을 줬다고 했다. 만약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10만 명이 된다면?
“브랜든. 30분 안에 이 자를 잡을 수 있나?”
벤센이 서류 봉투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브랜든이 고개를 저었다.
“멉니다. 대기 중인 요원도 없고... 지금 당장 가서 잡는다고 해도 1시간은 걸립니다.”
“빌어먹을.”
냉철하던 벤센이 욕을 내뱉었다.
“저번엔 한국인 1만 명이었지만 이번엔 각국 정보부도 있을 텐데.”
그게 문제다.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1만 명이라면 미국에 미치는 영향은 극도로 적을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인만 10만 명이라면...
한국은 혼란스러워질 테지만 그건 벤센이 알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들이 그런 것처럼 각국 정보부도 비텔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각국 정보부 요원들이 질병을 걸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면?
미국의 핵심 인물들이 그 능력의 인질이 될 수 있다.
“별 수 없다. 무기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때는 우리가 가장 많은 무기를 확보하는 수밖에. 지부 요원들 전원에게 비텔을 받아들이라고 지시해라.”
“네.”
레이먼이 벤센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에 남은 브랜든이 자신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넌... 여전히 감시인으로 남아줘야겠다.”
“에이. 이번에야말로 나도 힘 좀 세지나 싶었는데.”
브랜든은 비텔을 믿어 신체능력이 강해진 동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곧 초능력자처럼 능력을 하나씩 얻을 거란 사실을 알게 됐으니 자신도 그걸 얻고 싶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감시인은 남겨둬야 했다. 그래서 NSA 한국 지부 요원들만 비텔을 받아들이게 시키는 거였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면 세계에 퍼진 NSA 전체에 알렸을 것이다.
***
집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기적에 대해선 미리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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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 : 고위 교단 스킬. 모든 신도가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도 1인당 50의 교단 기여 포인트가 소모된다.
교단이 존재하는 한 효과가 지속되며, 새로운 신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신도 1인당 50의 추가 교단 기여 포인트가 소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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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신도가 늘어나서 언어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더 이상 언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텔님께서 이번에도 내 걱정을 덜어주시는구나.
그런데 이런 기적이라면... 어쩌면 그락카르의 세상에 이 기적이 적용되어 있는 것 아닐까? 종족이 다른데도 언어가 전부 통한다는 것이 이상했었는데 말이야. 솔직히 모든 종족이 같은 언어를 쓰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인간도 사는 지역마다 언어가 다른데, 종족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지.
그쪽 세계는 모든 종족이 저마다 신을 하나씩은 믿고 있으니까. 10만 명은 당연히 넘었을 거고, 이 기적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집에 도착했으니 더 이상 뜸들일 필요 없다. 바로 사용하자.
발동해라. ‘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
“모두 느껴라. 그분의 자비를.”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려준다는 것은 나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 노력하니까. 그 노력을 줄여준다는 거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신의 자비인가.
-스킬 ‘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를 사용합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5,034,450이 차감되었습니다.
30분 전에 10만 명에 도달했는데 벌써 700명 정도가 추가로 들어왔다. 빠르구나.
-아이들아...
아아... 느껴진다. 비텔님이 느껴진다.
-너희 사이를 막고 있는 장벽은 더 이상 없을지니...
***
“시간이 됐군. 모두 준비됐나?”
“네. 외부에 나간 요원들에게까지 전파 완료했습니다. 전부 비텔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이 자는 어떡합니까. 잡아들입니까?”
브랜든이 다시 물었다. 한상의 이름을 직접 말하진 않았다. 벤센이 아직 확인하지 않았기에 여기에서 한상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브랜든 밖에 없었다.
“그래야겠지. 잠시만 기다려라. 기적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한 후에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벤센은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들아...
덜컥.
벤센이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곧 무릎을 꿇었다. 벤센이 비텔의 목소리를 들은 후 심리적인 저항을 잠깐 해봤지만 단 1초도 견디지 못했다.
“벤센?”
브랜든이 불렀지만 벤센은 대답하지 않았다. 브랜든은 당황했다. 벤센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레이먼도 무릎 꿇었고, 바깥에 보이는 지부 요원들도 전부 무릎 꿇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너희 사이를 막고 있는 장벽은 더 이상 없을지니...
벤센과 레이먼, 그리고 모든 지부 요원의 몸에서 옅은 보라색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짧게 빛나고 사라졌다. 하지만 벤센을 비롯한 모두는 10분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자신들의 몸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거룩한 위대함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벤센!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브랜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고, 그제야 벤센이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기적이 일어났다. 비텔님은 정말 신이셨던 거야.”
“...”
브랜든은 뭔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교주는 어떻게 합니까. 바로 출발합니까?”
“그보다 브랜든. 자네도 비텔님을 믿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좋은 것을 못하게 한 것이 미안하군.”
“... 그러죠.”
브랜든이 잠깐 망설였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브랜든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안타깝군.”
벤센이 사무실 창문 밖으로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 브랜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눈치 챘다. 브랜든의 망설임을.
“어쩔까요.”
레이먼도 브랜든의 망설임을 느꼈기에 물었다.
“어쩔 수 없지. 최고의 요원이지만... 그분의 앞길을 막을 순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저대로 놔두면 이곳을 빠져나가 NSA 국장에게 보고 할 것이다. 벤센과 한국 지부의 모든 요원이 세뇌되었다고 말이다. 그 후엔 자신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움직이겠지. 자신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그럼. 처리하겠습니다.”
레이먼이 사무실에서 나와 역시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벤센이 브랜든이 가져온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에 비텔교 교주의 신상이 들어있다.
열어서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서류에 불을 붙여 쓰레기통에 던졌다. 한상의 신상이 적혀 있던 서류는 곧 재로 변했다.
< 106 대교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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