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대교주 >
“교주가 실존인물인 것 같습니다.”
지부 요원 중 하나가 홀로 벤센을 찾아와 보고했다. 상당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벤센 역시 순간적으로 심장이 뛰었다. 가상인물이라고 생각한 교주가 실존인물이라니. 조금 흥분되었다.
“증거는?”
벤센이 흥분을 감추고 물었다.
-지금 교주님과 통화하고 왔어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도가 있다고 하네요. 가서 도와줘야겠어요.
요원은 대답대신 가지고 온 노트북을 두드려 임시전당을 도청해 얻은 유나의 목소리를 재생했다.
“통화?”
“맞습니다.”
벤센은 이상한 점을 바로 짚어냈다.
“저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상의 인물이라면 저런 세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바로 정유나 앞으로 계약된 휴대폰과 살고 있는 집의 전화기 등의 통화목록을 살폈지만 그 도청이 이루어지기 전 5시간 이상 통화목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에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적어도 NSA 직원이라면 저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임시전당 주변에서 이뤄진 모든 전화를 살폈습니다.”
유선 전화 감청은 쉽다. 전화선 하나만 감시하면 되니까. 하지만 휴대폰 감청은 주변 중계기 전체의 내역을 뒤져야하기에 상당히 양이 많다. 혼자 할 수 있는 양이 아니지만...
“그걸 혼자 다했나?”
“물론입니다.”
‘그 대단한 걸 제가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다른 요원에게 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홀로 찾아본 것일 터다.
‘딱 지부 요원으로 끝날 자로군.’
무능하다. 적어도 정보의 획득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는 것을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유능한 요원이라면 자기가 얻은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공동으로 찾은 것으로 하겠다며 다른 동료들에게 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어야 한다.
상급자는 보고를 받은 후, 누구와 함께 작업했습니다라고 보고자가 말해도 ‘누구’는 기억하지 않는다. 보고자만 기억할 뿐이다. 어차피 전부 자신의 공이 될 텐데 그것을 모르든가, 그것도 나누기 싫든가. 둘 다 벤센은 좋지 않게 본다.
“그래도 외곽지역인지라 통화내역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시간 만에 전부 살펴볼 수 있었고.”
1시간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다른 요원과 함께 했으면 10분이면 끝났을 작업이다. 벤센은 순간 주먹으로 저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작업 끝에 의심되는 통화내역을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겁니다.”
요원이 벤센에게 전화번호와 통화시간 등이 적힌 서류를 건넸다.
“둘 다 대포폰이라서 명의 추적이 불가능하지만 교주라 짐작되는 자의 주 활동지역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요원이 통화가 이루어진 지역을 그려놓은 지도도 함께 건넸다. 꽤 자세했다. 확실히 능력은 있는 자다. 하지만 NSA에서 이정도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한다.
“수고했네. 자네 이름을 기억하지.”
이 자는 못 올라갈 거다. 요원은 벤센이 자기 명찰을 보고 이름을 기억했을 거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나갔지만 벤센은 명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벤센은 지금은 당연하고 앞으로도 저 요원의 이름을 기억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브랜든, 레이먼.”
“네.”
“네.”
벤센의 사무실엔 그가 불러들인 5명의 요원 중 둘도 함께 있었다. 비텔을 받아들인 레이먼과 비텔을 받아들인 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의 브랜든.
“이 자료 복사해서 가져가고, 교주를 찾아라.”
“네.”
“알겠습니다.”
아직 모호한 자료다. 교주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의 증거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벤센은 믿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1주일 후,
“찾았습니다.”
브랜든이 최선의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
[신이 맞습니까?]
러시아어가 들려왔다. 이건 뭔 뜻인지 안다. 신이 맞냐고 하는 거겠지. 대부분의 첫 기도는 정말 신이 맞냐고 묻는다. 외국인도 마찬가지인지 외국어 기도가 들려오기 시작한지 겨우 일주일정도 지났을 뿐인데 7개 국어로 신이 맞냐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돈은 10종류쯤 갖게 됐다.
신도가 늘어나는 속도도 더 빨라지고, 외국어 기도가 들려오는 빈도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외국에서 빠르게 전도가 되고 있는 모양인데... 정말 글로벌한 종교가 됐구나. 비텔교.
“경매 시작 10분전입니다.”
“그럼 들어가자.”
오늘은 드디어 ‘한상님의 계약 중개권리증’ 경매가 있는 날이다. 다음부턴 저 ‘한상님’을 꼭 빼달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첫 경매일이기에 어떻게 경매가 이루어지는지 보려고 직접 경매장에 찾아왔다.
아무도 입찰 안하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어? 한상씨!”
“본부장님?”
경매장 들어가는 길에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예던의 김진서 본부장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지만 반갑다. 유나한테 김진서가 비텔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들은 터라 가족 같은 느낌이다. 임시 전당일 하랴, 성전 건축 관리하랴 바쁠 텐데 여긴 왜 왔지?
“오랜만입니다. 신수가 훤해지셨군요.”
“감사합니다. 본부장님도 많이 좋아 보입니다.”
“저야 그분께서 보살펴 주시는데 좋지 않을 수가 없죠.”
그분은 비텔님 말하는 거겠지. 나도 누가 보살펴줬다. 비텔님은 아니고 맹연이.
“본부장님도 경매장에 볼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당연합니다. 계약 중개권리증이 나오는 날 아닙니까.”
“아. 그거 사러 오신 겁니까?”
“네.”
“저한테 말씀하시죠. 이번에 신세진 것도 있고 한두 번은 해드렸을 텐데요.”
“몸에 무리가 간다는데 그럴 수 없죠. 어차피 권리증 제가 살 거니까 괜찮습니다. 두 개 올리셨더군요. 잘 됐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자신감이 넘친다. 두 개 다 이미 산 것처럼 말한다. 하긴 권리증에 대해서 아직 잘 안 알려졌을 테니 낙찰 받는 게 어렵지 않겠지. 나하고 직접 계약하는 것보다 더 싸게 살 수 있을지도.
“6,000만원 나왔습니다. 6,100, 6,200, 6,300. 6,300 나왔습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치열하다. 김진서 외에도 아는 얼굴이 몇 있다. 인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내가 아는 얼굴이라면 내 계약 중개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란 거지. 해보니깐 괜찮았나?
내 중개권 경매에 참여한 사람은 총 7명 정도, 그 중 4명이 떨어져나가고 3명이 경쟁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김진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진서가 손을 들었다.
“8,000. 8,000나왔습니다.”
저 손짓이 8,000이라는 뜻이었나?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경매사가 텔레파시 능력자인 거 같다. 전부 가만있는데 생각을 읽어내면서 경매를 진행하는 건 아닐까.
“그럼. 한상님의 계약 중개권리증은 8,000만원에 저 신사 분께 낙찰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친다. 저게 축하받을 일인가.
“이어서 한상님의 계약 중개권리증 2차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매가 시작됐다. 방금 하나 팔렸으니까 이번 건 좀 싸게 팔리겠지.
-비텔교 신도가 10만 명에 도달 했습니다
전언이 들려왔다. 아침에 확인했을 때 96,644명이어서 오늘 10만 명에 도달하겠다 싶었는데 지금 됐구나. 그런데 이렇게 전언이 오는 걸 보면 또 비텔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려는 모양이다. 10만 명이 되면서 뭔가를 받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확인을 받으니 기분 좋다. 또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텔이 당신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칭찬합니다.
비텔이 당신에게 교단을 이끄는 자가 될 자격을 부여합니다.
10개 이상의 다른 나라에 비텔교를 전파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이끄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스킬 ‘교주의 명령 - 파문’을 얻었습니다.
익숙한 내용이다. 분명 카록이 대족장이 될 자격을 얻었을 때 들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인데? 내가 그런 위치에 오른 건가? 내가 대족장일리는 없으니까 대교주?
***
일주일 전, 브랜든은 병원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정유나가 비텔교에 발을 들이민 것이 병원인 것은 거의 확실했다. 정유나는 알려진 최초의 비텔교도다. 교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가 정유나를 비텔교로 끌어들인 사람일 터. 분명 병원에 찾아왔을 것이다.
조사 범위가 너무 넓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일단 가정을 몇 가지 해서 좁은 범위 내에서 조사를 진행한 후, 아니다 싶을 때 범위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조사 대상을 늘려야 한다.
1. 남자
2.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3. 정유나가 재검사를 해달라고 하기 전 이틀
브랜든의 가정은 이 두 가지였다. 나이는 그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믿는 동료들에게 물어본 결과다.
환자, 의사, 방문자 등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추리는데 하루 걸렸다. 총 17명. 그들에 대해 심층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4일째에 유력 용의자를 하나 찾아냈다. 20대 후반의 남자이며, 정유나가 비텔교에 들어온 시기에 입원해 있었고, 정유나와 통화하는 자가 자주 통화했던 지역에 산다. 거기에 그가 교주일 가능성을 엄청나게 높여주는 증거도 있었다.
“최면을 이용한 계약 중개?”
“네. 유명하더군요. 백발백중이라고 합니다. 계약을 어기면 복통이나 전신마비 등에 걸린답니다. 그래서 그가 중개한 계약은 안전하다고 수문이 파다하더군요.”
“100% 최면이라니. 있을 수 없어.”
정보를 취급하며 초능력자니, 최면술사니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조사해봤다. 대부분이 사기꾼이고 가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초능력자는 카드 뒷면을 맞추는 정도, 최면술사는 5번 중 1~2번 최면을 성공하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강한 암시는 전부 실패. 대상에게 피해가 없는 작은 암시만 성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비텔에게서 어떤 능력을 받은 게 아닐까요?”
벤센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벤센이 자기 손에 들린 작은 봉투를 봤다.
“여기 안에 든 자가 그런 자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아는 사람은?”
“저 말고는 없습니다. 서류 작성도 필기로 했습니다.”
아직 벤센도 누군지 확인 못했다. 고민했다. 아직 이자가 교주라는 확정을 내린 건 아니다. 유력한 용의자일 뿐이지.
다른 사건 같으면 더 조사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무게가 다르다. 혹시라도 시간을 끌다가 그가 진짜 교주고 타국의 정보부에 신변이 넘어가기라도 하면...
벤센은 결정했다.
“일단 잡아...”
잡아오라고 말하려던 벤센이 중간에 말을 멈췄다. 브랜든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잡아 옵니까?”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벤센은 생각에 잠긴 듯 행동을 멈추고 가만있었다.
***
그런데 10개국에 비텔교를 전파하라고? 이미 하지 않았나? 헌금에 들어온 화폐의 종류만 10개가 훨씬 넘는데?
-당신은 비텔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전언이 들려왔다.
... 미안하다. 그락카르. 넌 시험 통과하려고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는데 난 이렇게 쉽게 통과해서.
시험을 너무 쉽게 통과해서 그락카르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비텔이 그녀의 첫 번째 신도의 업적에 크게 기뻐합니다.
비텔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스킬 ‘비통의 비명’을 얻었습니다.
1회용 스킬 ‘기적 – 바벨탑 이전의 세계’가 내일 이 시간까지 활성화됩니다.
기적! 기적을 쓸 수 있다. 다른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겐 기적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기적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건...
비텔님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거다.
< 105 대교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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