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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104화 (104/228)

< 104 대교주 >

“무슨 문제라도...”

내가 갑자기 단어장을 집어던지니 맹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방금 7~8개 국어가 한 번에 들려왔어.”

“.....”

“생각을 잘못했던 거 같아. 내가 지금부터 매일 24시간 공부한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지구상 모든 국가의 언어를 익힐 수 있을까?”

“그런 거...”

“없을 거야.”

맹연이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막았다. 맹연이 말을 하게 두면 다시 설득당할 거 같다.

내가 왜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했는지 요 며칠 영어공부를 하면서 다시 깨달았다. 정말 정말 정말 미친 듯이 재미없다. 교주됐다고 갑자기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그러진 않는다. 교주로서의 사명감도 한 이틀 간 거 같다.

“내가 아무리 공부해봐야 2~3개 익히는 게 전부일거야.”

그래도 내가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서 한 덕분인지 학창시절보다는 공부가 잘되는 거 같긴 했다. 하루에 단어도 100개씩 외우고 그랬으니까. 학창시절엔 하루에 10개도 못 외운 거 같은데.

“그럼 형평성에 어긋나잖아. 어느 언어는 익히고 어느 언어는 안 익혀? 내가 언어를 모르는 나라의 신도들이 얼마나 박탈감을 느끼겠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서 결심했어.”

다시 맹연의 말을 가로 막았다. 말할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이미 며칠 전부터 공부 때려 치고 싶었는데 맹연의 말에 설득당해서 그러지 못했다. 지금 공부를 그만둘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또 설득당하면 앞으론 그만두기 더 힘들어질 거다.

“지금부터 비텔교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야.”

“네?”

“방금 깨달았어. 내가 전 세계 언어를 다 익힌다고 해도 그 사람들 언어로 전부 한 번씩 설교하려면 포인트가 얼마나 많이 들겠어. 그리고 설교가 얼마나 길어지겠어.”

어... 대충 나오는 대로 내뱉은 건데 이건 그럴 듯하다. ‘비텔의 목소리’는 신도 1명당 1포인트를 소모하니까. 100만 명이면 100만 포인트가 소모되는데 그걸 30개 국어쯤으로 말한다면 3,000만 포인트가 소모되는 거잖나. 정말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일뿐 아니라 포인트가 부족할 가능성도 높다.

“그건... 그렇긴 하네요. 그러면 영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공부하고 익히는 언어니까요.”

“아냐. 난 한국인이잖아. 지금부터 영어를 익혀도 영어로 설교한다는 것은 무리일 거야. 내 모국어가 아니기에 가끔 잘못 표현하는 경우도 있겠지. 신도들은 내 말을 잘 따른단 말이야. 그들이 혹시라도 내 뜻을 잘못 전달받아서 일어날 사고를 생각해봐.”

이것도 정말 그럴 듯한데? 내가 말하고 내가 설득당하고 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말실수로 고생하는데 다른 나라 말로 하면 얼마나 많이 실수하겠어. 그러니 난 익숙한 언어로 말하고 신도들이 한국어 익히게 하는 게 나아.”

“한상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드디어 맹연을 설득해냈다. 집어던진 단어장을 줍지 않고 지나가...려다가 주웠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지.

***

-실버울프 작전을 시행해라.

“알겠습니다.”

데니스가 한껏 긴장하며 대답했다. 실버울프 작전을 시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은 비텔교가 타국 정보부에 노출되었다는 뜻이다. 곧 각국 정보부가 경쟁적으로 비텔교에 대해 조사할 터, 어쩌면 데니스 자신도 타국의 요원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심장이 격하게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데니스가 오른손으로 왼쪽 옆구리 부분을 매만졌다.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총이다. 비상용으로 지급받은 작은 단발용 총이었다. 조금은 안심되...

‘한국에서 총기 사용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총은 최후의 최후에만 사용해라. 가령 자살한다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 쓸 거면 목격자도 없애.’

긴 개뿔. 총을 주면서 벤센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 더 긴장됐다. NSA에 들어오긴 했지만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평생 누굴 때려본 적도 없는 데니스다. 자살은 당연히 하기 싫고, 목격자 사살은 미친놈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게 현장 요원이구나.’

책상에 앉아 현장 요원이 보내오는 정보를 분석할 때, 그들이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그의 상상 속에서 현장요원은 전부 제임스 본드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현장 요원을 동경했다. 책상에 앉아 지루하게 정보 분석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어다니며 악당과도 싸우고, 잠입도 하고, 예쁜 여자도 만나고...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인물이 되긴 했네. 주인공한테 당하는 역할이겠지만.’

격투술이나 총기술은 기본훈련 때 배운 것이 전부인 데니스로선 타국 현장 요원을 만나자마자 제압당할 것이 분명하다.

심장이 미친 소처럼 뛰었다. 무서웠다.

‘비텔님. 제가 영화 속 엑스트라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데니스는 비텔에게 기도하며 허리띠 안쪽에 숨겨져 있던 도청장치를 꺼내 비텔교 전당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설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살짝 비틀면 장치가 활성화된다. 한쪽 면에 접착제가 발라져있기에 비닐 코팅을 벗겨 보이지 않는 곳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발견해도 전문가가 아니면 도청장치라고 생각하지 못할 모습으로 만들어져있다.

데니스는 미친 듯이 긴장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식은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고, 그의 긴장이 겉으로 표 나기 시작했다.

‘불쌍한 사람...’

불쌍해보였다. 이미 데니스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비텔교 전체에 퍼졌다. 뒷 담화를 한 것은 아니고, 힘든 사람이니 더 잘 대해주라는 식으로 퍼졌다.

비텔교 전당은 좁다. 이미 데니스 빼고는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런 인식이 퍼진 상태인데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불안해하고, 식은땀 흘리고 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모성애, 부성애를 자극했다.

“덕형씨. 이쪽으로 오세요.”

신도 중 하나가 데리고 다니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데니스를 불렀지만 데니스는 자기를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도청장치 설치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신도가 몇 번 불렀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신도는 인내심을 갖고 데니스의 바로 옆으로 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불렀다.

“덕형씨.”

“아! 네! 제가 덕형입니다!”

“.....”

데니스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누가 봐도 엄청 모자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비텔교 신도들은 데니스에게 더욱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데니스가 얼빠진 행동을 보이기는 했지만 도청장치는 제대로 비텔교 전당 곳곳에 심어졌다. 도청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NSA 한국 지부원들이 달라붙어 그 정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도청 정보만이 아니다. 한국 지부의 요원들이 그 동안 쌓아둔 한국의 정보원들에게서 비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자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유나가 최초의 비텔교 신자라고 합니다. 비텔에 대해 말하고 비텔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 정유나라고 합니다. 최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의 형태로 교주란 자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출처는 정유나가 다녔던 발레 학원의 원생입니다.”

“예전에 비텔이 직접 신도들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비텔의 위대함을 느껴 비텔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4명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로보아 비텔의 목소리는 세뇌 능력의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출처는 도청입니다.”

“비텔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을 때 비텔님께서 신도들에게 1회성 능력을 줬다고 합니다. 그 능력은...”

“1회성 능력?”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벤센이 드디어 관심을 보였다. 그 보고를 하던 요원이 신나서 더욱 힘줘서 말했다. 벤센은 차차기 국장으로 유력한 자. 그에게 잘 보이면 출세할 수 있다.

“네! 악한 자에게 질병을 심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합니다.”

악한 자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걸 수 있는 능력이었지만 조금씩 와전되더니 이제는 비텔님께서 악한 자를 벌하는 능력을 신도들에게 내린 적 있다는 말이 정설이 되어 신도들 사이에 떠돌았다.

“사용 방법은 대상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대상이 살면서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무겁거나 가벼운 질병에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정보 중에는 자신이 김정은에게 벌을 내렸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정은. 벤센이 몇 달 전부터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정은을 떠올렸다. 아직 확실한 확인이 안 된 정보긴 하지만 김정은이 위독하다는 정보가 떠돌고 있었다.

“제가 비텔께서 그 능력을 내렸다는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니 확실히 유명인 중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거나 병이 걸린 자들이 많았습니다. 갑자기 국회의원 수십 명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각종 질병으로 활동중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기업 오너 중에도 병원에 입원한 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연예인은 항상 노출되는 직업이기에 확인 작업이 쉬웠지만 기업 오너의 경우엔 평소 잘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가 병에 걸렸다는 것이 알려지면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에 잘 알리지 않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비텔께서 신도들에게 자신이 진정한 신임을 알려주려고 그런 능력을 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벤센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지금 보고하는 요원은 이미 비텔이 신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비텔에 대해 말할 때 항상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편견이 개입되어 오염된 정보다.

실제로 그 요원은 비텔에게 기도한 후 순간적으로 신체능력이 강해질 때 단순히 신체능력이 향상되는 과정이었지만 신의 힘이 자신의 몸에 머물렀다고 느꼈고 비텔을 진짜 신이라 믿었다.

“알았다. 다음 정보.”

벤센은 이건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요원 중 하나에게 다시 조사를 하라고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염된 정보지만 중요도는 높은 정보다. 신도 전원에게 누군가를 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다니. 세계 최강의 암살능력 아닌가.

만약 자신에게 그런 힘을 쓸 10번의 기회를 준다면 세상의 판도를 바꿀 자신이 있을 정도다. 더욱 자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고가 이어졌다.

“사제인 정유나는 암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처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술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때 비텔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는 병원 자료입니다.”

단순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도 많았지만 벤센은 참을성 있게 그것들 모두를 들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정보는 없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정보가 최고의 정보로 둔갑하는 경우를 수십 번도 더 본 벤센이다.

“더 보고할 자 없나?”

대답이 없다. 폭풍 같았던 보고 시간이 끝났다.

“보고서는 내 책상에 두고 나가라. 그리고 다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보고를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보고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더욱 조사에 박차를 가해라. 최우선 과제는 사제 정유나.”

벤센은 최우선 과제로 유나를 꼽았다. 교주란 자도 있지만 모든 정보를 듣고 판단한 결과 비텔교의 시초는 사제인 유나였다. 교주는 비텔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나 등장했다. 그것도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소리로만.

목소리를 위조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 그리고 정보를 조합해보면 교주란 존재를 본 사람은 사제인 유나 단 한 명이다. 그녀만 교주를 봤고, 그녀만 교주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유나는 교주의 명령이라며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했다.

벤센은 사제인 유나가 어리기에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교주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내 나이가 있는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차선 과제는 교주.”

그럼에도 벤센은 차선으로 교주를 꼽았다. 진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자이지만 그가 가지는 교단에서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유나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인 것은 분명했다. 만약 그의 존재가 명확했으면 무조건 최우선 과제였을 것이다.

“다른 정보기관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NSA는 세계 최고다. 난 당연히 여러분이 모든 분야에서 타기관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할 수 있겠지?”

네!

요원들이 크게 대답했다.

“다음 보고는 5시간 후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자기 자리로 향했다. 이건 기회였다. NSA는 정보기관이다. 좋은 정보 하나만 물어올 수 있다면 승진이 보장되는 정보기관. 이번 일은 한국 지부가 열린 이래로 가장 큰 기회, 요원들은 반드시 이 기회를 잡고 싶었다.

‘정유나가 비텔을 만난 방법, 혹은 사건을 알아낸다. 그리고 교주의 정체를 밝힌다.’

모든 요원이 같은 생각을 했다. 둘 중 하나를 해낸다면 누구보다도 출셋길에 가까워질 것이다.

< 104 대교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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