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103화 (103/228)

< 103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야. 미국에서 국정원이랑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부분 CIA나 FBI를 댈 것이다. CIA는 비슷하고 FBI는 틀렸다. NSA라고 말하는 사람은 10명에 1명 있을까?

NSA의 시작은 CIA의 하부조직이었다.

CIA 소속 정보수집 비밀기구였던 NSA는 정보수집의 중요성이 커지자 1952년경 독립해 덩치를 키웠다.

NSA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임무는 적국의 암호감청 및 해독이었다. 그리고 독립 후의 임무는 모든 종류의 정보수집 후 각 기관 지원이었다. 독립시켜 정보수집 능력을 극대화 한 것이다.

다른 기관의 지원 임무가 주였던 NSA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였다. 조직은 완벽한 틀을 갖추었고,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NSA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이 늘어나면서 NSA의 힘도 함께 늘어났다.

강력한 정보수집 능력과 적당한 무력을 갖춘 비밀기관. NSA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욱 강력했다. NSA는 더욱 강한 힘을 원했고, 강력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무력을 갖는 계획을 실행해 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자적인 무력을 갖추기 위한 NSA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NSA최고의 강점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서 그 힘이 약화된 것이다.

NSA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영화 때문이었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헤매던 영화계에게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수집기구는 영화의 악역으로 제격이었다.

영화에서 NSA는 모든 통신기구, 영상장치 등을 마음대로 움직여 도청하고, 사람을 감시하는 비밀집단으로 표현되었다.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도 영화에 나온 것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고 비슷한 일을 해오고 있었다.

영화는 크게 성공했고, 그 후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NSA가 등장했다. NSA는 더 이상 숨겨진 비밀기구가 아니었고, 도청과 감시가 주 업무란 것을 알게 된 미국 시민의 날선 눈길 때문에 행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독자적인 무력을 갖추기 위한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NSA는 다시 정보력만 강한 기구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9 11 테러.

9 11 테러이후 미국은 모든 정보수집 기능을 강화했다. 그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NSA가 있었다. NSA는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NSA 직속 현장 요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현장에서 나오는데 그런 정보를 다른 기구의 요원을 거쳐 듣게 되면 한 번 걸러지면서 오염되어 가치와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주장이었다. 미국 시민은 감시기관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외국만 감시할 거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9 11 테러가 가능하게 했다.

테러방지.

테러방지라는 주장은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다. NSA는 자체 요원을 뽑아 현장에 파견해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고, 2년 뒤 이라크 대량 살상무기라는 대어를 낚게 된다.

확인 작업이 되지 않은 정보였지만, 9 11 테러 이후 성과가 필요했던 정부와 실체가 있는 무력을 원했던 NSA의 마음이 맞았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이라크 침공이 결정됐다. NSA는 대량살상무기의 수색을 명목으로 현장 요원의 수를 늘렸다. 이번엔 정보 수집을 목표로 하는 요원이 아니라 무력 사용을 목표로 하는 요원이었다.

그들이 이라크 전역에 퍼져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니며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다. 누구나 알듯이 대량살상무기는 없었고, 당연히 못 찾았다.

이미 언론과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억지 전쟁을 일으켰다고 맹비난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전쟁을 일으킨 NSA에 피의 숙청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벽한 무시였다. 미 정부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순간 자신들의 실패를 대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하게 될 것이다.

일이 일인 만큼 상당한 고위층이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미 정부는 모르쇠 전략을 사용했다. 그리고 NSA에 더욱 큰 힘을 줬다.

너희도 잘못했으니 그 잘못을 엎어 쓰고 싶지 않으면 그걸 상쇄할만한 뭔가를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NSA는 더욱 강력해졌다.

그 뒤의 일은 다들 알 것이다. NSA는 세계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를 도청하는 등,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제한이 없는 감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보가 쌓여갈수록 NSA는 더욱 강력해졌다.

9 11테러 이후 15년이 지났다. 지금의 NSA는 무력 면에서 CIA에 필적할 정도로 발전했고 정보력 측면에선 CIA를 앞선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었다.

“너 그런 걸 외우고 다니냐? 덕후나 뭐 그런 거야?”

“무슨 덕후야. 국정원 직원이니까. 외국 정보부에 대해 숙지해둔 거지.”

“뭔 소리야. 국정원이랑 외국 정보부랑 뭔 상관이야. 우린 딱 두 가지만 알면 되잖아. 북한이랑 한국.”

그렇긴 하다. 정인호가 국정원에 들어온 지 4년, 동기가 북한을 말하긴 했지만 그가 한 일은 북한까지도 안 갔다. 전부 국내에 관련된 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 한국에서 NSA가 주도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지. 여기저기서 NSA와 벤센의 이야기가 들려온단 말이야.”

똥개도 자기 집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국정원은 나름 괜찮은 똥개가 모여 있다.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양질의 정보를 계속해서 보내오고 있었다. NSA나 CIA의 동태라든지, 각국 정보부의 활동이라든지.

파편처럼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이런 식으로 흩어져서 들어오는 정보지만 정인호는 그것들 전부를 짜 맞췄다.

“너 저번에 그렇게 깨지고도 또 그 소리냐? 이번에 국정감사 때문에 난리난 거 몰라?”

안다. 그래서 자신이 조합한 정보를 듣는 첫 번째 사람이 상급자가 아니라 동기인 것이다.

“역시... 안 되겠지?”

“농땡이 피웠다고 욕 무진장 먹을 걸?”

정보원들이 보낸 정보를 살펴본 것이 ‘농땡이’로 둔갑했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은 정말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했다. 국정원에서 자신이 보낸 정보를 가치 있게 잘 써줄 것이라 믿는 것처럼 말이다.

정인호는 누군가는 그들의 노력을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수많은 정보를 전부 살펴본다. 업무시간엔 상부에서 시킨 일을 해야 하기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퇴근 후의 시간까지 전부 투자해서 말이다. 덕분에 정인호가 한국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리우에 있던 각국 정보부 요원들이 한국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그걸 분석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면 뭐하나. 그걸 들어줄 윗사람이 없다.

“내가 너니까 말해주는 건데. 이번 국정감사에서 야당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사람은 무조건 특진 당첨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집중해서 찾아봐.”

“그래. 그래야겠지.”

참 씁쓸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승진이 빠른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윗사람에게 절대 충성하는 사람이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윗사람이 시킨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승진할 수 있다. 성과 여부에 관계없이 말이다.

실제로 저번 대선 때 댓글 달았던 선배들이 언론과 국민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잘리지 않고 대부분 승진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잘리면 노숙자 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금의 국정원에서 해고당한다는 것은 윗사람에게 찍혔다는 말과도 같다. 어차피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는 게 없기에 성과를 논할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찍혀서 퇴출당하면 모든 회사에서 거부당할 것이다. 직원 한 명 채용하고 정부와 반목하고 싶어 하는 회사는 없을 테니까.

한국에 인재가 없는 게 아니다. 인재를 활용할 윗사람이 없을 뿐이다.

“아. 맞다. 야. 네가 특별히 너한테 완전 좋은 거 하나 추천해줄게.”

“뭔데?”

정인호는 약간의 탈력감에 젖은 상태인지라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말을 참고 들어준 동기의 말이었기에 예의상 물어봤다.

“비텔교라고 아냐? 카톡방 검열하다가 우연히 봤거든. 믿기만 해도 건강해지고 힘이 세진다나? 그래서 신종 사이비 종교인가 싶었거든. 그런데 여기저기서 말이 많이 나오더라고. 기도만 해보면 된다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해봤거든. 그런데 정말 좋더라. 너도 한 번 해봐.”

***

벤센은 NSA 한국 지부의 요원들에게 비텔에 대해 숨겼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놀리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각국 정보부의 동태 파악을 맡겼다. 그리고 오늘,

“일본 CIRO에서 비텔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군.”

“결국 알려졌군요.”

벤센과 함께 사무실에 남아있던 브랜든이 대답했다. 그는 벤센이 불러들인 요원 중 유일하게 비텔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사무실에 남았다. 다른 이들은 신체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에 적의 공격에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지만 브랜든의 신체능력은 예전 그대로이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정되어 있던 거지. 그래도 나름 국가를 대표하는 정보부다.”

“그럼 작전 시작합니까?”

“그래. 데니스에게 알려라.”

“네.”

한 나라가 알게 되었으니 곧 모든 나라가 알게 될 것이다. 벤센은 이럴 때를 대비해 다음 단계의 작전도 준비해뒀다. 바로 NSA가 가장 잘하는 것, 도청이다.

도청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언제 어느 때 좋은 정보가 나올지 모르기에 24시간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채널당 적어도 2명, 원활하게 돌리려면 3명은 필요하다.

거기에 이번에 벤센이 실시하려는 도청 방법은 전 방향 도청. 통신장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나누는 대화까지 전부 수집하는 방법이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임시 전당 정도의 넓이라면 적어도 20명. 당연히 벤센과 그의 요원들만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기에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들킨 이상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지부 요원을 투입해 비텔교 임시 전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수집할 것이다.

벤센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슬쩍 보니 CIA쪽 책임자다. 그도 비텔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분명하다. 아마 NSA 한국 지부 직원 중 하나가 그에게 흘렸을 것이다.

‘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냐고 따지겠지.’

상부에서 정보를 공유하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저자도 벤센에게 숨기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비텔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고 화나지는 않았을 터, 아마 화를 내는 척하며 벤센을 자극해 정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대충 몇 가지 던져주고 보내야겠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아깝다. 자신은 할 일이 많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문이 벌컥 열리며 CIA 책임자가 들어왔다. 벤센의 생각대로 잔뜩 화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벤센은 그게 연기란 것을 알고 있다.

“일단 거기 앉으시오. 전부 이야기해줄 테니.”

***

“코리아옥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홈페이지에 경매 물품 업데이트를 했다고 하네요.”

“그래?”

바로 폰을 꺼내 코리아옥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한상님의 계약 중개권리증’이라는 물품이 올라와 있었다. 추정가가 2,000~3,000만원이고, 시작가가 1,000만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상이 누군데 계약 중개를 받는데 2,000~3,000만원을 내냐고 뭐라고 하겠네.

어쩌면 저걸 발견한 누군가가 인터넷 유머 게시판 같은 곳에 퍼갈지도. 뭐. 바라던 바다. 유명해지려고 양지에 나온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았으면 양지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말 신이신가요? 벤센 디렉터가 극비로 진행하던 조사이니 그럴 듯해서 이렇게 기도하는데... 제가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신이시라 믿고 기도할게요. 자료를 보면 당신을 믿으면 건강해진다고 해요. 저도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교단 기여 포인트 1점 얻었습니다.

제공자 : 디아나

기여부분 : 기도

또 영어 기도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이다. 요 며칠 잠잠하다했는데 새로운 외국인이 신도가 됐다. 외국인은 드물기에 이름 전부 기억하고 있기에 확실하다. 전부 남자 이름이었다. 디아나는 여자 이름이겠지. 여성 외국인은 처음이네.

“빨리 영어를 익혀야겠네.”

가방에 집어넣었던 영단어장을 꺼내며 말했다.

“또 영어 기도가 들려온 겁니까?”

“그래. 영어 문화권에 비텔교가 퍼지고 있는 모양이야.”

요즘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문법보단 단어 외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당장 문법을 익히고 하는 것은 무리일 테니까. 적당히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듣고 싶어서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단어만 알아도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는 추측 가능하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몰라 기도합니다. 난 NSA 한국 지부 요원인 데브라고 합니다. 저는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고...]

또 영어 기도가 들려온다. 얘는 엄청 길게 기도한다. 기도는 짧게 용건만 했으면 좋겠다. 듣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지. 짧게 해도 어차피 영어라 못 알아듣겠지만.

[비텔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또... 갑자기 영어 기도가 막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체 전도라도 한 건가? 빨리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때,

-$#%^*#%@#$%^*

일본어가 들려왔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일본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일본에까지 전파된 건가?

-*&^($%^#$^*([email protected]#^@&@#^#%*$%^(

어? 이번엔 중국어.

-^%*#[email protected]^^$(*$^(!$

가관이다. 이번엔 프랑스어다.

-&(%^$*%#@#%$#*%^$#@$^

러시아어까지...

-(%&^$#@@#(@#%$

이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연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각국의 언어가 들려왔다.

“아이씨. 안 해.”

들고 있던 영단어장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 103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끝

ⓒ 냉장고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