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여기 성함과 주소를 적어주세요.”
“주소요? 주소도 적어야 하나요?”
“아. 안 적으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주소가 있어야 저희가 물품 지원을 해드릴 수 있거든요..”
“물품지원이면... 생필품?”
“생필품도 있지만 적성에 따라 필요 물품을 지원해드립니다. 미술 공부를 하시면 미술용품, 공부를 하고 계시다면 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것들. 그리고 따로 필요 물품을 신청하시면 그것도 해드려요.”
“이걸 신도라고 하면 그냥 전부 해주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데니스는 조금 놀랐다. 상당한 지원이다. 적어도 1인당 몇 백 달러는 들어갈 거다. 그런 걸 그냥 신도라고만 하면 지원해준다고?
“거짓으로 신청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모르겠어요. 사제님께서 교주님께 지시받아 어제 처음 시작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비텔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데 비텔교도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정말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텔교도가 신에게 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거짓으로 신청할 수는 없을 거다.
“물론 비텔님의 아이임을 증명해야 해요.”
“어떻게...”
신도임을 어떻게 증명한다는 걸까. 바로 물었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바로 첩보활동이다.
“비텔교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비텔교도가 아니면 못하는 것을 하면 되죠.”
그러면서 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손 위에 올렸다.
‘아. 헌금. 헌금이군.’
데니스의 생각대로 헌금이었다. 신도의 손 위에서 돈이 사라졌다.
“자. 형제님도 한 번만 해주세요.”
‘완벽한 보안체계군.’
신도가 만원을 데니스에게 건넸다. 이건 속일 수가 없다. 무조건 비텔교도만 가능한 일이니까. 정말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보안체계였다.
‘그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정말 비텔님께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가장 열성적인 신도가 될 테니 벌만 내리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비텔교 정탐하러 왔다고 비텔에게 벌 받을까 무서운 데니스가 열심히 기도로 변명하며 헌금했다. 데니스의 손에서도 곧 돈이 사라졌다.
“환영합니다. 형제님.”
신도가 환하게 웃었다.
데니스가 비텔교 신도임을 확인한 접수받던 신도는 접수를 마치고 다른 신도를 불러 데니스를 안내해주라고 했다.
“여기가 예배당이에요. 딱히 정해진 예배시간은 없고, 편한 시간에 와서 기도드리면 됩니다.”
“굉...장히 잘 되어 있네요.”
임시 전당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의자 몇 개 놓인 강당의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처음에 왔을 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걸 저희가 하나하나 꾸몄죠.”
신도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자랑스러워 할만 했다. 예배당은 정말 잘 꾸며져 있었으니까. 여느 교회의 예배당 못지않았다.
“전문 업체에서 한 것이 아닙니까?”
“비텔교는 저희밖에 없으니까요. 전문업체가 어디 있겠어요. 있으면 저희가 전문업체죠. 비텔교는 세계에서 유일하니까요. 다른 곳과는 다르게 해야죠.”
다른 곳과 다르게 했다고 하는 거 치고는 많이 비슷한 거 같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괜히 말해서 나쁜 인상 심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저기가 숙소, 지낼 곳이 없으시다면 저기서 지내셔도 됩니다. 임시 숙소라 불편하겠지만 저쪽에 숙소를 건설 중이니까요. 2달만 참으면 됩니다.”
신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상당히 큰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의아했다. 데니스가 알기로 성전은 서울에 크게 짓고 있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임시로 쓸 곳에 건물을 올린다니.
“여기 임시 전당 아니었습니까?”
“성전은 2~3년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들어갈 수 있으니 그 전까지 신도분들 편하라고 짓는 겁니다. 그리고 성전이 지어진 후 이주완료하면 이곳은 고아원으로 쓰일 겁니다. 부모님을 잃고 비텔님의 품으로 들어올 아이들이 쓸 곳인데 잘 지어야죠.
‘성전 2~3년 후 이주, 임시 전당은 고아원으로 바뀔 예정.’
신도가 말하는 것을 다시 되뇌며 외웠다. 이따 전부 보고해야한다. 증거가 남을 수 있기에 적을 순 없다. 전부 기억해뒀다가 육성으로 보고해야하기에 잊는 것 없도록 얻은 정보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런데 저기는...”
데니스가 아까부터 신경쓰이던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엔 전당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2층짜리 전원주택이 한 채 있었다. 울타리도 있고 작은 정원과 텃밭도 있었다. 정말 평범한 전원주택이었다. 그곳을 데니스가 특별히 신경 쓴 이유는 전원 주택 주변에 검은 정장을 입은 보안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중요한 게 있으니까 지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 저기는 사제님께서 생활하시는 곳이에요.”
“유나 사제님?”
사제라는 말에 데니스는 유나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교주가 전당에 찾아가라는 말을 할 때 유나 사제가 도울 거라 하지 않았었나.
“네. 맞아요.”
“몇 분의 사제님이 저곳에서 생활하시는 건가요.”
“비텔교에 사제님은 단 한 분밖에 없답니다. 비텔님의 첫 번째 딸이신 유나님이죠.”
‘첫 번째 딸!’
굉장히 중요한 정보다. 첫 번째 딸이자 유일한 사제, 상당한 고위층이란 뜻 아닌가. 어쩌면 비텔교에서 교주 다음가는 권력자일지도 모른다.
“역시 중요한 분이라서 경호원을 붙였군요. 어느 보안업체인가요? 제가 보안 쪽에서 일해서 그쪽에 대해 잘 아는데. 괜찮은 사람들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호호. 괜찮아요. 저분들은 보안업체 사람들이 아니에요. 비텔교 신도님이시랍니다.”
“신도라고요?”
‘이런 편견을 가졌군. 조심하자.’
데니스가 반성했다. 인상이 너무 험악해서 신도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딱 봐도 이쪽업계 현장 요원으로 20년은 굴러먹은 인상이어서 오해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기 저 분.”
신도가 데니스가 현장 요원이라 착각했던 사람을 정확히 짚었다.
“처음 온 분들이 무서워하시더라고요. 인상이 조금 개성 있으시잖아요.”
‘조금이 아닐 텐데.’
NSA에서 서류 업무를 하며 수많은 인상 험악한 범죄자를 본 데니스지만 저 정도 얼굴이면 그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하지만 정말 신실하시고, 착하세요. 그리고 선택받은 1만의 신도 중 한 분이시랍니다. 원래 사제님께선 경호원 없이 혼자 다니셨거든요. 그런데 저분께서 오신 후로 몇 분을...”
‘선택받은 1만의 신도?’
상당히 중요한 단어라는 느낌이 왔다.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신도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신도분들은 많은데 선택받은 1만의 신도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아직 정식 명칭이 없어요. 명칭 공모 중이니까 나중에 형제님께서도 참여해보세요. 상품도 꽤 괜찮고 내가 만든 명칭이 비텔교 첫 하부 단체의 명칭이 된다는 영광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선택받은 1만의 신도라는 건...”
“아. 그건 비텔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들을 말해요.”
“비텔님의 목소리를요?”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자들이라니.
“네. 정말 운 좋은 사람들이죠. 그분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영광을 누렸으니까요. 그건 정말...”
신도가 과거를 떠올리며 황홀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매님께서도 선택받은 1만의 신도 중 한 분이시군요.”
“네. 운이 정말 좋았죠. 제가 비텔교에 들어오고 3일 뒤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그 경험은 정말... 이건 직접 겪어봐야 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분의 목소리를 듣고도 그분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제님의 경호단에 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고요.”
‘일종의 간부가 되기 위한 조건 같은 거군.’
종교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자와 못 들어본 자의 위치는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종교의 특성상,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함은 신에게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뜻이니까.
신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할 터.
‘교주나 사제를 만나기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겠어.’
데니스는 종교 단체의 유형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를 하고 왔다. 비텔교는 보통의 인가받지 않은 종교단체의 경우와 비슷한 듯 했다. 신도에게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뿐이고, 실제론 일부 간부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폐쇄적인 종교.
‘교주와 사제는 각각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몇 개씩 가진 상태로 일반 신도와의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며 신비감을 유지하겠지. 만나기 힘들겠어. 하지만 난 NSA 요원. 반드시 해낼 거야. 일단 사제부터 만나...’
“아. 저기 사제님께서 나오시네요. 가서 인사드리죠.”
“네... 네?”
어떤 고생을 해서든 사제를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던 중 갑자기 사제가 나왔으니 보러 가자는 말에 당황하는 데니스.
그런 데니스를 보며 그를 안내하던 사제가 이런 생각을 했다.
‘불쌍한 사람...’
접객하던 신도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 한글도 제대로 못 쓰더라고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약간 병이 있거나 교육을 받기 힘들 정도로 어렵게 산 분 같으니 이상한 모습이 보여도 잘 해주세요.’
접객 신도가 말한 대로 말이 약간 어눌했다. 그리고 행동도 뭔가 굼뜬 것 같았다.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다. 실은 데니스가 그녀가 하는 말을 외우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보기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친절하게 대했다.
“자. 어서 가요.”
말을 한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유나에게 다가갔다. 빨리 가서 유나와 다른 신도들에게 데니스의 문제에 대해 말해주고 잘 대해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
지금 한국에선 한국만 모르는 각국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아니. 이 빌어먹을 NSA는 왜 한국에 들어온 거야!”
“CIA도 들어왔어! CIA를 파봐! 거기는 그래도 구멍이 있잖아!”
“CIA도 모르고 있어. NSA 이 새끼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NSA 한국 지부장도 아무 것도 모릅니다. 벤센이 자기 사람들만 모아놓고 뭔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국의 정보부는 NSA가 한국에 들어온 직후 따라와 그들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내려 했지만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각국의 정보부는 초조해졌고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잡아!”
벤센의 요원들 납치를 계획했다. 하지만 전부 실패했다.
“잡기 힘들면 죽여서 시체라도 가져와! 뭐라도 단서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벤센의 요원들을 죽이러 갔던 이들이 오히려 당했다.
벤센과 요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밖으로 돌아다니며 각국 정보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데니스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그들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해냈다.
“마치 초인이라도 된 느낌이군.”
방금 러시아 정보부의 공격을 가볍게 반격한 벤센의 요원 중 하나가 말했다. 비텔을 믿음으로서 얻게 된 신체능력은 그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더 빨라졌고, 더 높게 뛸 수 있고, 넘지 못하던 벽을 넘었고, 잠긴 문을 가볍게 부쉈으며, 적 요원을 한손으로 제압했다.
하지만 벤센과 요원들이 활약할수록 각국 정보부는 포기하기는커녕 더 큰 전력을 투입해 NSA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분명 NSA 최고의 요원들이다. 저들이 투입되었다면 한국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빨리 알아내라. 이건 국운이 달린 일이다!”
각국 정보부가 가진 모든 힘을 한국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약 1주일 정도 흘렀을 때,
“비텔?”
“비텔이라고?”
“벤센이 조사하고 있는 것이 겨우 사이비 종교?”
벤센과 요원들이 최대한 각국 정보부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들은 비텔에 대해 알게 되었다.
< 102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끝
ⓒ 냉장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