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비텔교 교주로서 내가 할 일은 참 많다. 일단 기도.
-비텔이시여. 한 번만 더 제게 힘을 주십시오. 세상엔 징벌해야 할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그 짐을 짊어지겠습니다. 절 징벌자로 만들어주소서.
-안녕하세요. 비텔님. 전 이동하라고 해요. 전 오늘 학교에서 착한 일을 했어요. 친구가 지우개가 없어서 제가 빌려줬어요. 아주 뿌듯했어요. 내일도 착한 일을 해서 비텔님께 칭찬받고 싶어요.
-정말 계시는 거죠? 그럼 절 이 시궁창에서 구해주세요. 왜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거죠? 혹시 천국이란 게 정말 있나요? 그럼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별의별 기도가 다 들려온다. 신도가 수만 명이다.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이런 기도들이 머릿속에 직접 박힌다.
신기한 건 동시에 몇 개의 기도가 들리든 모두 다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거다. 마치 머리가 몇 개 더 있는 거처럼 말이다. 물론 들을 때만이다. 기억력이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기도가 동시에 몇 개가 들려와도 전부 인식할 수 있다는 것밖에 없다.
기도에는 도와달라는 내용이 참 많다. 신도들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 있으면 모두 기도로 말한다. 그 중에는 정말 안타까운 내용이 많다. 아직 신도가 10만 명도 안 됐는데도 ‘세상에 이런 슬픈 사연이 있나?’ 싶은 것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들려온다.
대부분 돈에 관련된 일이다.
그리고 난 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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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75,633명
교단 기여 포인트 : 752,582
헌금 : 2,265,385,000원,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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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을 유나한테 주고, 8억을 인출 수수료로 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헌금이 벌써 22억이 됐다. 신도가 이제 겨우 75,633명인데...
여하튼 이렇게 돈이 많다. 그리고 이 모든 돈은 비텔교 신자들이 낸 돈이니 그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쓸 생각도 있다.
문제는 도와달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거다. 기도는 그냥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말만 들려온다. 물론 이름은 알 수 있다.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누가 교단에 기여했는지 알려주니까. 하지만 성도 없고 이름만 있는 거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군포 금정동 화영진달래아파트.”
“네.”
가끔 이렇게 기도 내용 중 자신의 위치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입으로 내뱉는다. 그러면 맹연이 바로 메모한다. 혹시라도 도와줘야 하는 일이면 도와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음... 아니다. 됐다. 그냥 지워. 쓸데없는 일이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밝히는 기도는 대부분 땅값, 집값 올려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층간소음이나 이웃문제로 벌을 내려달라는 기도거나 말이다.
정말 자기가 힘든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 사는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지?”
“네. 맞습니다.”
확신에 찬 대답이다. 아까 갑자기 사라져서 돌아다니더니 수영이가 여기 사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온 거구만. 맹연은 일을 참 잘한다. 다재다능한데 열심히 하기까지 한다. 그녀가 내 일을 도와주기 시작한 이후 상당히 많이 편해졌다.
“그럼... 돈 놓고 사라지자.”
수영이는 드물게 자신이 어디 사는지 말한 도움이 필요한 경우다.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의 여자아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한 건 아니다. 어머니는 수영이가 다섯 살 됐을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도 3년 전 돈벌어오겠다며 나가서 연락이 없다고 한다.
그 후로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된 수영이지만 기도 내용이 항상 밝았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요 며칠 계속 슬픈 기도만 했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비텔님을 믿게 된 후 할머니가 건강해졌다며 좋아한 아이였는데 아마도 할머니의 병이 ‘군주의 위엄’으로 강해지는 신체능력으로도 수습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래도 수영이는 자기가 사는 지역을 말했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할머니와 손녀 둘이 살고 수영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아이가 그 지역에 많지는 않을 테니까 찾아보자고 왔다. 그리고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봉사단체에서 나왔다고 하니 대부분 쉽게 알려줬다. 불쌍한 아이니 많이 좀 도와달라며 말이다.
유명한가보다. 할머니가 주변에 폐지 주우러 다니는데 수영이도 학교마치고 오면 할머니를 도와서 함께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고 한다.
우편함에 100만원이 든 봉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나에게 전화해 수영이의 집 주소를 알려줬다.
“그럼. 부탁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같은 비텔교 신도를 돕는 일이라면 다른 신도분들도 좋아 하시니까요.”
내가 전면에 나설 수 없기에 줄 수 있는 도움은 이게 다다.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할머니와 수영이가 제대로 그 돈을 쓸 수 있을지... 사기꾼이라도 안 꼬이면 다행이다. 그래서 일단 급한 불을 끄라고 100만원만 줬다. 봉투에 비텔이라고 크게 적었으니 알아서 잘 쓰겠지.
돈도 돈이지만 그 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주는 도움이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와서 돈을 써서 돕는 거면 더 좋다. 그리고 그렇게 할 거다. 사람은 유나가 임시 전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봉사를 부탁하면 된다.
그러면 다들 서로 나서려고 난리다.
돈도 줄 거다. 저번에 유나에게 준 돈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하니까. 거기서 빼 쓰면 된다. 모자라면 내가 또 가져다주면 되지.
“장학재단 같은 것도 만들어야겠어. 수영이 같은 고아원에 들어오지 못하지만 고아원에 들어간 아이들보다 더 힘든 아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 아이들을 돕는 장학재단 말이야.”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든 신도를 찾아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완전히 편해진 건 아니다. 아직 도움을 주지 못한 신도가 더 많다.
이가한이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이가한에 대해서는 유나가 말해주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김해역에 의해 비텔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들 모두가 비텔님의 실제 목소리를 들은 1만 명에 들어가고, 각자 사연이 특이해서 기억에 잘 남았다.
그 중에서도 이가한은 가장 절실하게 비텔님을 찾던 사람이었다.
교도소에 가기 전, 이가한은 제법 규모가 있는 조직의 행동대장이었다. 행동대장이란 직책은 별거 없다. 싸울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싸우는 자리다. 그러다가 교도소에 들어간 것이고 말이다.
이가한이 교도소에서 비텔님을 받아들였을 때만해도 나오는 대로 원래 조직으로 돌아가 다시 행동대장이 될 예정이었다.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 날 이후로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기도는 ‘더 이상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겠습니다.’로 바뀌었다. 그렇게 된 이유엔 내가 가끔 하는 설교도 포함되어 있어 더 뿌듯한 경우였다. 자유롭게 살아가되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었으니까.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나오니 현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교도소에 있던 7년간, 그의 아이 둘이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가 전에 모아뒀던 얼마 되지 않는 돈은 진작 바닥났고, 그의 아내와 어머니가 일하면서 생활비를 대고 있었다.
이가한도 바로 일자리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덩치, 인상, 범죄이력 등이 발목을 잡아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력사무소에 나가도 1주일에 1번 일을 할까 말까.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렇게라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아이들은 매일 뭔가를 사달라고 했고, 그런 아이들에게 아내는 안 된다고 했다. 당연히 화내고 혼나고 그랬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평범한 일상인 것 같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사달라고 했던 것이 공책, 도화지, 물감, 신발, 가방 같은 거였다는 거다. 오래되거나 더 이상 쓰기 힘들거나 낡아서 창피하니 사달라는 거였다.
그걸 해주지 못하니 이가한은 너무 힘들어했다.
이가한이 어디 사는지만 말해줬어도 바로 가서 도와줬을 거다. 돈만 주면 되는 일이니까. 1,000만 원 정도면 이가한이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가한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도와주지 못했고, 이가한은 내 ‘안타까운 신도들’ 목록에 올라갔다.
그래서 유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 기뻤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가한은 정말 한계에 몰려있었고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으니까.
유나에게 그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전당에서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서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교도소의 죄수가 찾아왔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비텔교를 위해 행동하는 조직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전에 사람들을 모으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사람들을 모으고,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봐서 그 사람들이 가진 능력에 맞춰 비텔교만을 위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지치고 힘든, 도움이 필요한 신도는 전당으로 찾아가라. 가서 유나 사제를 찾아라. 그녀는 비텔님의 첫 번째 딸, 그녀가 같은 비텔님의 아이인 너희를 도울 것이다.
미리 유나에게 이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정말 좋아했다. 비텔교 신도는 그분의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나 유나 또한 그분의 아이. 비텔교 신도가 힘들어하면 가족이 힘들어하는 거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도우는 게 당연한 거다.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비텔의 목소리’로 저렇게 말한 후 유나에게 말했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그들을 도와. 시킬 일이 없으면 비텔님의 이름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게 해. 아직 비텔교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누구든 언제든지 그분의 품안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신체능력이 강한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 등. 신도들이 잘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도와줘.’
그 말을 한 후 유나에게 너무 큰 짐을 맡기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유나는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괜찮다고는 하지만 힘들 것이다. 아직 유나도 어린 아이니까.
신도가 100만이 된 이후에나 나서려고 했는데... 그걸 좀 앞당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
***
-지치고 힘든, 도움이 필요한 신도는 전당으로 찾아가라. 가서 유나 사제를 찾아라. 그녀는 비텔님의 첫 번째 딸, 그녀가 같은 비텔님의 아이인 너희를 도울 것이다.
“뭐라고 하는 거지?”
벤센이 물었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했다. 데니스가 한상이 한 말을 그대로 통역해줬다.
“전당... 전당이 있었군. 아직 성전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구심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비텔교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긴 하지만 비텔교 전당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예던에서 사내유보금을 털어 비텔교의 성전을 짓고 있다는 정보는 입수했지만 전당이 있다는 것까진 아직 조사하지 못했다.
“좋은 기회다. 전당이라는 곳에 가면 아직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비텔교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최우선적으로 비텔교 전당의 위치를 찾아라.”
“찾았습니다.”
“벌써?”
벤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원 중 하나가 말했다. 그 요원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벤센 쪽으로 향하게 해 내밀었다.
“‘비텔교 전당’이라고 검색하니 나오네요. 이번에 만든 것 같습니다.”
사이트의 이름도 ‘비텔교 전당’이었다. 사이트의 내용은 단 하나. ‘찾아오는 길’이라는 약도였다.
“... 잘 됐군. 바로 침투한다.”
“우린 외국인에 한국말을 못해서 눈에 띌 텐데요.”
요원이 말했다.
“눈에 띄지 않고 한국말도 잘하는 사람이 한 명 있지.”
벤센이 데니스를 바라봤다.
“... 전 잠입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
한 남자가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비텔교 전당을 향해 걸어왔다. 신도 중 하나가 그를 발견했다.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다. 힘들어서 전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저런 모습이다. 남의 도움을 받아본 적 없어 어색해하는 사람들.
“저기... 여기가 비텔교 전당이 맞나요?”
“맞습니다. 비텔교 신도시죠?”
신도가 웃으며 남자를 맞이했다. 남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데니.. 아니, 오덕형입니다.”
NSA요원 데니스 오. 평생 공부만 하고, NSA에 들어가서도 책상에만 앉아있었던, 총이라곤 훈련소에서 쏴본 것이 전부인 그가 적의 소굴일지도 모를 비텔교 전당에 찾아왔다.
< 101 세계로 가는 비텔교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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