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대족장 >
구웅.
온다. 수직으로 높게 뛰었다.
퍼펑!
방금 전에 내가 있던 자리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저 정도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맞으면 상당한 충격을 입을 거다. 확실히 지금껏 싸웠던 두 로드보다 강하다.
앞서 싸웠던 두 로드를 상대할 때처럼 공격을 버티면서 밀고 들어가려 했는데 첫 공격을 맞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은 후 그 생각을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건 공격이 강력해서인지 공격 기미를 느낄 수 없었던 앞의 두 로드와 달리 공격이 시작될 때 작은 벌레 날개소리 같은 게 나기에 공격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어디로 날아올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가 들리면 공격을 했다는 뜻이기에 사방으로 몸을 날려 피하고 있다.
그것도 없었다면 피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구웅.
또 온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퍼펑.
“크흑.”
제대로 맞았다. 움직임을 읽힌 모양이다. 강력한 충격에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젠장. 겨우 거리를 좁혔었는데 또 뒤로 밀렸다.
“힘들면 나한테 맡겨도 된다. 형제.”
“전사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라. 형제. 형제가 전사였으면 내 도끼가 날아갔을 거다.”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온 노르쓰 우르드가 하던 싸움을 멈추고 자신에게 맡기라고 이야기했다. 전사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다. 전사라면 한 번 시작한 싸움은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리자드맨 로드와 오크 전사는 상성이 좋지 않다. 전사는 접근해야만 공격할 수 있는데 로드는 접근 자체를 차단할 수 있다. 난 다르다. 로드가 공격할 수 있는 거리보다 더 멀리서 공격할 수 있기에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좀 닥쳐라. 노르쓰 우르드. 평소라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카록께서 지켜보시는 결투 중이다. 더 이상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다고 카록께서 좋아하시지는...”
“크워억!”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미로크를 휘둘렀다.
쿵.
빈 땅을 찍었다. 어느새 노르쓰 우르드는 멀리 도망쳤다. 도망친다고 괜찮을 것 같으냐. 쫓아가서 머리통을...
구웅. 퍼펑
“크웍!”
잠깐 노르쓰 우르드에게 한눈 판 사이 리자드맨 로드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 공격에 제대로 맞아 날아갔다.
“크후. 퉤.”
핏물을 뱉었다. 이번 건 정통으로 맞아서 제법 충격이 컸다. 빌어먹을. 짜증난다. 화난다. 이젠 모르겠다. 다 부숴버릴 테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리자드맨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
빠각.
리자드맨의 머리에 미로크를 박아 넣었다.
“크훅. 크훅. 크훅.”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지쳤다. 미친 듯이 미로크를 휘두르는 동안 거의 무방비로 로드의 공격을 허용했다. 그때 입은 충격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겉으론 거의 상처가 없지만 내장 쪽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피가래가 계속 나왔다.
“그륵. 퉷! 크흐..”
피가래를 뱉으며 웃었다. 기분 좋다. 이런 싸움을 얼마 만에 하는 건지. 리자드맨과의 싸움은 싱거워서 이런 치열한 싸움을 하지 못했었다.
“왜 성난 자의 외침을 쓰지 않은 거냐.”
노르쓰 우르드가 다가와서 물었다. 일단 질문을 무시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형제. 방금 싸움으로 내 기분이 좋아졌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내 도끼가 형제의 목으로 향했을 거다.”
“알았다. 미안하다.”
노르쓰 우르드는 오크답지 않게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나중에 물어봐라.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형제들을 도우러 가야한다.”
“그럴 필요 없다. 전세는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형제의 능력 덕분에 개개인의 전투력도 우리가 높은데다가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있다. 네가 가는 건 형제들이 카록의 눈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는 것일 뿐이다.”
“...”
형제들이 카록의 눈에 띄는 것을 막는다니. 그렇게 말하니 전투에 끼어들 수가 없군. 아쉽다.
“앞으론 조심해라. 다음에 또 결투 중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 그땐 정말 형제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는다.”
“알았다. 오늘 이후론 하지 않도록 하지.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라.”
“성난 자의 외침을 왜 쓰지 않았냐는 것 말이냐. 애초에 난 그걸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그걸 쓰겠다고 생각하고 쓴 적이 없다. 그냥 화나서 소리 질렀을 뿐이었지.”
“그렇군. 그럼 ‘성난 자의 외침’의 숫자 부분을 밑에 적어봐라.”
“알았다.”
‘스킬 목록 열람’을 사용해 ‘성난 자의 외침’을 살폈다. 노르쓰 우르드에게 배워서 내 능력의 이름은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글자와 숫자를 구분할 수는 있게 되었다. 아직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12%. 낮군.”
저 숫자가 12란 뜻이군.
“순간적으로 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지 않았었나?”
“했다.”
“그런데도 12%밖에 되지 않다니. 아니, 이 전에 5%차있었으니 내 목숨 값이 7%라는 말이군. 그런데 미로크와 관련된 일에선 단번에 ‘성난 자의 외침’을 사용했었지. 두 번이나. 네가 미로크를 얼마나 크게 생각했었는지 이제 알겠다.
미로크가 죽었을 때 했던 발언 사과하겠다.”
“괜찮다.”
노르쓰 우르드가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성난 자의 외침을 수시로 쓴다면 좀 더 수월하게 전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없다고 생각하고 싸우는 것이 더 낫겠다.”
“더 질문할 것 있나? 없으면...”
-카록이 당신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칭찬합니다.
오오. 오랜만에 그분의 축복을 받는 건가? 더 강해지겠군.
-카록이 당신에게 종족을 ‘이끄는 자’가 될 자격을 부여합니다.
축복이 아니다. 설마 이건...
-1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비슷한 전력의 적과 싸워 이겨내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이끄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스킬 ‘집결의 외침’을 얻었습니다.
확실하다. 이건 그거다.
과거 리자드맨 로드 셋이 1만이 넘는 리자드맨을 이끌고 공격해온 것을 이겨냈을 때, 노르쓰 우르드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예전에 캄스니는 대족장이 되기 위해 1만이 넘는 적과의 전투를 했다고 했다. 난 지금 1만이 넘는 적을 이겨냈다. 그런데 왜 난 대족장이 된 거 같지 않지?
그에 대해 노르쓰 우르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1만이 넘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은 확실히 대족장이 되기 위한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1만이 넘는 적과 싸워 이겼다고 모든 이가 대족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대족장이 될 자격을 얻어야한다.
-대족장이 될 자격? 그걸 어떻게 얻나.
=싸우다 보면 얻는다.
-그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나도 그에 대해 오르히에게 물어본 적이 있지. 오르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알게 된다.’
지금 나도 내가 대족장이 될 자격을 얻었음을 알게 된 거 같다.
***
“축하한다. 형제.”
“대단하다. 그락카르. 그 나이에 대족장의 자격을 얻다니.”
나이 이야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형제는 이때까지 축복을 몇 번 받았지?”
“나 말인가?”
“그렇다.”
축복이라... 두 번이었던가? 세 번 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두세 번인 거 같은데.”
“겨우?”
질문은 노르쓰 우르드가 했는데 대답을 하니 캅카스가가 놀란다. 캅카스가만 놀란 건 아니군. 미흐로크와 노르쓰 우르드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번져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5번의 축복을 받았다.”
“난 4번이다.”
캅카스가가 5번, 미흐로크가 4번 축복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부럽군. 카록의 눈에 그만큼 여러 번 들어갔다는 말이니까. 그걸 그대로 표현했다.
“부럽군.”
“아니. 내가 더 부럽다. 겨우 2~3번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 아닌가. 신의 도움 없이 형제 스스로 강해졌다는 뜻이다. 카록께서 형제에게 특별히 붉은 피부를 줄 만하다. 대단하다. 형제.”
캅카스가가 오히려 더 부럽다며 말했다. 그런 건가.
“그렇다면 축복 없이 능력을 얻은 경우도 있겠군.”
노르쓰 우르드가 물었다.
“있다. 2번이던가? 그럴 거다.”
‘불가사의한 힘’과 ‘성난 자의 외침’을 얻었었지.
“겨우 그건가? 난 능력의 수가 많기에 더 여러 번 일줄 알았는데.”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인간이 얻은 능력이지.
“오르히가 여섯 번의 축복을 받은 후 대족장이 될 자격을 얻었었다. 그리고 대족장이 되면서 한 번 더 축복을 받았고, 스스로 능력을 깨우친 적도 한 번 있지. 그렇게 해서 오르히가 얻은 능력은 여섯 개.”
“대단하군. 오르히. 스스로 깨우친 것을 빼면 일곱 번의 축복에서 다섯 개의 능력을 받았다는 것 아닌가. 대족장답다. 난 다섯 번의 축복에서 두 개의 능력을 받았다. 스스로 능력을 깨우친 적은 없지.”
“난 네 번에서 두 개의 능력을 받았다.”
축복을 받았음에도 능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군. 몰랐다. 난 이제까지 축복을 받을 때마다 하나 이상의 능력을 반드시 받았건만.
그런데 다들 저렇게 많은 축복을 받았었군. 방금 생각났는데 난 두 번의 축복을 받았다. 오르히가 여섯 번의 축복을 받은 후 얻은 자격을 난 두 번 만에 얻은 거군. 역시 난 특별하다.
두 번의 축복으로 이 정도 강함을 얻은 것엔 이세계의 인간, 한상의 도움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알 수 없는 능력을 얻은 후 조금이지만 덩치도 커지고 신체능력도 강해지고 했었다. 그때는 그냥 카록께서 준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른 세계에서 한상이 능력을 얻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도 강해졌고 말이다.
물론 역시 나약한 인간이, 이상한 신에게 축복을 받아서인지 덩치는 아주 조금 커졌고, 신체능력 향상도 아주 적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스킬은 확실히 내가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됐었지.
“넌 위대한 대족장이 될 거다. 그락카르.”
노르쓰 우르드가 말했다. 노르쓰 우르드가 저런 말을 해주니 특별히 기분이 좋다.
“어떡할 거냐. 바로 대족장이 되는 전투에 도전할 건가?”
노르쓰 우르드가 물었다. 난 곧바로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크 전사는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
***
리자드맨과의 전투 후, 3일 만에 부락에 돌아왔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할 일은 형제들을 모으는 것이다.
바로 대족장이 되기 위한 전투를 치르겠다는 내 말에 노르쓰 우르드가 한 말이다. 의아했다. 일단 싸울만한 적을 찾은 다음에 그에 맞춰 형제를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적은 네가 가진 힘만큼 강해진다. 우리는 이미 리자드맨의 영역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이곳에서 우리가 뭉친다면 적 또한 그에 대응하기 위해 뭉칠 것이다.
노르쓰 우르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캄스니가 전투를 준비할 때도 그랬다. 일단 드워프의 영역 앞에 자리를 잡은 후 형제를 모았다. 그러자 적 또한 뭉쳐서 우리에게 밀리지 않는 전력을 형성했었다.
부락에 돌아옴과 동시에 공터 중앙에 섰다.
‘집결의 외침’을 써 형제들을 모을 것이다. 내가 가진 힘만큼 적이 강해질 거라고? 그렇다면 부를 수 있는 형제 모두를 불러야겠다. 그만큼 적이 강해지라고 말이다.
형제들이여. 이곳으로 와라. 이곳에 형제들이 원하는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강렬한 그락카르의 고함은 리자드맨 영역에 들어와 있던, 그리고 전투를 찾아 리자드맨 영역으로 오고 있던 모든 오크들의 머릿속에 울렸다.
-집결의 외침이다!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간다! 내가 가기 전에 싸우지 마라!
수많은 오크들이 그락카르의 부락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97 대족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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