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96화 (96/228)

< 96 세계로 가는 비텔교 >

“상부에 보고는...”

“... 보류한다.”

데니스의 질문에 고심하던 벤센이 보고 보류를 결정했다.

“괜찮겠습니까?”

데니스가 한껏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정보부에서 보고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정보란 굉장히 민감하다. 어떤 정보가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정보가 나중에 큰 사건에 연루되기라도 하면 그 후폭풍은 감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후폭풍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보고다.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순간 내가 판단할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책임이 상급자에게 넘어가니까.

그러니 보고를 안 하겠다는 벤센의 말에 데니스가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데니스가 보기에 지금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중요도는 세계에서 가장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건 ‘혹시 모르니 보고하자.’가 아니다. 무조건 나중에 큰 사건을 일으켜 책임 소재를 가리게 될 정보였다.

“14년 전, 현장 요원으로서 중동에 파견 나가 있던 나는 엄청난 첩보를 하나 얻었었지.”

데니스의 질문에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벤센이었지만 데니스는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아직 조사가 필요한 미확인 정보였지만 말단 현장 요원이었던 나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정보였어. 그래서 일단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보고 후에 진위확인에 나설 생각이었지. 그리고 4달 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아직 진위확인을 못했음에도 당시 정부가 사실인 것처럼 발표하며 전쟁을 일으킨 거야.”

“2003년 이라크 전쟁.”

데니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큰 공이 있으니 차차기 NSA국장으로 불리고 있으리란 생각은 했지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가져온 요원이었다니.

“전쟁 중에만 수천 명이 죽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피해는 이어졌지. 이라크가 부서지고, 그 여파가 주변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어. 난 정말 미친 듯이 대량살상무기를 찾았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못 찾았지. 애초에 정보가 잘못 된 거였던 거야. 그럼에도 정부는 그 실수를 감추기 위해 날 영웅처럼 대접했지. 내가 잘못 가져온 실수로 한 나라를 붕괴시키고 수만, 수십만 명을 몰락시켰는데도 말이야.”

이라크 전쟁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끝난 게 아니었다. 이라크는 몰락했고, 그 영향으로 이슬람 급진단체가 힘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동에서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 IS도 이라크 전쟁의 후유증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정보가 그 정도 파급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말했다시피 난 중동 파견 요원이었다. 내가 중동에서 실제로 느낀 바에 의하면... 이 정보가 잘못 전파될 경우에 일어날 사건은, 이라크 전쟁은 비교도 안 될 거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만 불러 모은 거다.”

벤센이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시선을 던졌다. 벤센의 시선을 받은 이들은 막중한 책임감이 가슴 깊이 박히는 것을 느꼈다. 이라크 전쟁의 이야기를 들은 후라 더욱 그랬다.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의 수는 6명. 1명은 이 정보를 알아낸 데니스고, 남은 5명은 벤센이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한 사람들이다.

“지금 이 정보는 이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모른다.”

데니스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전설’이란 수식어를 달아도 될 정도의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벤센이 리우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면서 불러 모은 그의 수족들.

“우리의 목표는 이 힘이 정말로 신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찾는 거다.”

“다른 원인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벤센이 불러온 이들 중 하나가 물었다.

“초능력자, 고대유적, 신기술, 블랙홀 등 뭐든 생각해.”

“그것들은 좀...”

“가장 유력한 원인이 신이다. 그런데 초능력자, 고대유적 정도가 뭔 대수라고. 지금부터는 소설 속에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조사해야 할 1순위 원인이다.”

“.....”

다들 말없이 수긍했다. 이미 모든 정보를 들었다. 그 정보에서 가장 유력한 원인이 바로 신이었다. 신이 등장했는데 다른 판타지적 상상의 존재들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이 정보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기에 타국가에서 언제든 알아낼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이다. 그러니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절 아시잖습니까.”

“맡겨 주십시오.”

벤센이 차례대로 대답하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NSA 최고의 요원들이다. 그들이 할 수 없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시작해라.”

벤센의 말에 그와 데니스, 그리고 한 명의 요원을 제외한 넷이 손을 부여잡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누구든, 난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기다리십시오.”

“정말 신이라면 제게 확신을 주십시오.”

“난 신 따위는 안 믿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곧 내가 찾아간다.”

“신이시여. 이번 임무도 아무 문제없이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각자 개성 있는 내용으로 기도했다. 그 순간,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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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씨. 뭐라고 하는 거야?”

며칠 잠잠했다가 한 번에 들려오는 영어 기도에 한상이 당황했다. 적어뒀다가 해석하려고 해도 무슨 단어를 말하는지 알아들어야 가능한 거다. 원어민의 발음이 외계어처럼 들리는 한상에게는 다른 누구에게 해석을 물어본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영어 공부해야 하나. 에이. 학교 다닐 때도 안 했던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니. 난 사회는 재밌어서 잘했는데 영어는 영 흥미가 안 붙어서...”

한상은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그냥 재미없어서 자신이 안 한 거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그는 NSA가 비텔교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안 해서 못하신 거라면 지금이라도 공부하시면 되겠군요.”

한상의 혼잣말을 들은 맹연이 말했다.

“... 그냥 한국어로 기도하라고 하면 안 될까?”

“세계 인구 70억이 넘습니다. 그 중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약 8,000만 명.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까지 합친다고 해도 한국어로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2억쯤 될까요?”

“오. 많네.”

“남은 68억을 포기할 생각이십니까?”

“....”

한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다시 벤센과 6명의 NSA 요원이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말도 안 돼. 이런 힘이라니.”

“맙소사.”

“신이시여.”

요원들은 기도를 마침과 동시에 온 몸에 들끓어 오르는 힘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비텔교 신도는 얼마 전 5만 명을 넘겼다. ‘군주의 위엄’은 10, 50, 100, 500, 1,000, 5,000, 10,000 단위로 1%씩 효율이 올라가기에 지금의 효율은 13%.

단번에 신체능력이 13% 강해진다. 순간적으로 강해지는 것이니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쾌감, 충만함, 자신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크게.

사람들은 그걸 신의 힘이 자신의 몸에 깃드는 것으로 착각하곤 했다.

“느꼈나?”

“네. 무언가가 제 몸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느껴지는 이 힘... 정말 원인으로 신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밖에 없군요.”

“뭐야. 뭐가 일어난 거야?”

홀로 비텔에게 기도하지 않은 한 명이 궁금해서 물었다. 방금 비텔에게 기도한 요원들이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거 나도 하고 싶은데. 벤센. 저도 하면 안 됩니까?”

“안 돼. 넌 안전장치다. 우리가 조사해야 할 대상은 신,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진 존재나 기술이다. 이미 그 힘을 받아들인 이상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아. 너는 우리를 지켜보다가 잘못된 것을 느끼면 상부에 보고해서 해결해야 한다.”

“에이. 알겠습니다.”

“이제 다들 뭘 해야 할지 알겠지? 그 힘의 원인을 찾는 거다.”

“정말 신이라면 어떡합니까.”

한 요원이 물었다. 지금까지 듣기만 하던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

비텔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벤센의 말이니까 그냥 해야지 하는 정도였지만 비텔을 받아들인 후에는 정말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벤센이 그들이 비텔을 받아들이게 시킨 것이기도 하다.

“뭘 어떡하겠어. 신이잖나.”

벤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믿고 따라야지.”

***

“여기가... 비텔님의 전당이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오셨죠?”

전당 직원 중 하나가 경계하며 물었다. 평소엔 누가 오든 환영했을 테지만 물어온 상대의 모습이 너무 험악했다. 키는 거의 2m는 되는 듯 했고 인상은 누가 봐도 폭력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저 좀... 저 좀 도와주십시오.”

그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직원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죠?”

산책 중 그 모습을 본 유나가 다가왔다.

“엇. 사제님. 위험합니다. 들어가 계시면 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전 그분의 사제. 그분께서 제 몸 하나 지킬 힘은 주셨답니다.”

“사제님?”

덩치 큰 사내가 사제라 불리는 유나를 보곤 일어나서 유나를 향해 달려갔다.

“어엇. 막아!”

직원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유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나서서 유나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사내는 유나 근처에 오기 전 무릎을 꿇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사제님.”

“왜 그러시는지 말씀 좀 해보세요.”

유나의 물음에 사내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에는 조직폭력배였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살기 싫으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를 고용해주지 않습니다. 이러다간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저 혼자라면 괜찮은데 제 어머님과 마누라, 그리고 자식들은...”

남자의 이름은 이가한. 교도소에서 김해역에 의해 비텔교를 알게 되었다. 교도소에서 비텔을 믿은 자들은 전부 1만 명이 되기 전에 비텔을 믿은 자들이다. 당연히 비텔의 목소리를 들었고, 진심으로 비텔을 믿고 따르게 됐다.

원래는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조직으로 돌아가 행동대장의 직책을 받기로 되어 있던 이가한이지만, 비텔을 믿게 되는 순간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조직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직하게 일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전과자인데다가 험악하게 생긴 이가한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혼자라면 노숙자 배식을 받으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그에겐 가족이 있었다. 가족까지 굶기며 살게 할 순 없었다. 특히 아이들은 더욱 더.

그래서 매일 조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유혹을 수십 번도 더 겪던 중,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우연히 들었던 비텔교의 전당을 물어물어 찾아왔다.

“아저씨. 잡일할 분이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필요하긴 하지만...”

“그럼. 됐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가한씨.”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가한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던 사람이 이가한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 그 또한 교도소를 나온 후 손 씻고 정당하게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곤란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유나는 그 또한 받아들였다.

“저분 또한 비텔님의 아이입니다. 제가 어찌 그분의 아이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럼 제가 저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을 알아보겠습니다.”

김진서가 말했다. 지금은 두 명이니 임시 전당에서 잡일을 시키면 되지만 앞으로 계속 찾아오면 그러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받아들일 거면 그들이 일할 자리도 찾아놔야 했다. 없으면 만들어도 된다. 성전 건축 예비비에서 조금만 빼면 저들이 할 만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교주님께서 나서시겠다고 했습니다.”

“교주님께서요?”

한상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유나에게서 들었다. 유나가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은 그녀 혼자 내린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 범죄자를 받아들일 때 한상과 의견을 나눴던 것이다.

그리고 한상은 자신이 해결할 테니 얼마든지 받아들이라고 했다.

< 96 세계로 가는 비텔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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