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세계로 가는 비텔교 >
“부르셨습니까. 사제님.”
“어서오세요.”
김진서는 유나를 ‘사제’라 불렀다. 원래는 성녀나 신녀로 추대하려 했는데 유나가 비텔이 자신을 사제로 임명했다며 사제로 불러달라고 했다.
유나의 부름에 김진서가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유나에게 달려왔다. 그 동안 먼저 부르는 일이 없던 유나가 불렀기에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김진서를 부른 이곳은 김진서가 구매해 기부한 곳으로 임시로 비텔교 전당으로 쓰고 있는 곳이었다. 서울 내부엔 괜찮은 곳을 얻을 수 없어 교외에 얻었는데 제법 넓은 정원이 있고 예배당으로 쓸 건물과 유나가 지낼 집도 있다.
유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있었다. 더 이상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텔교를 전도한 후에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저번에 비텔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 유나를 상전 모시듯 하기 시작했고, 유나를 찾아오는 신도들로 인해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나는 이곳에서 머물며 그녀를 찾아오는 신도를 만나주고, 개인교사를 두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진서가 발레교사도 고용해준 덕분에 발레 연습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비텔님께 어떤 전언이라도?”
김진서는 이제껏 한 번도 먼저 부른 적 없는 그녀가 자신을 부른 것은 어쩌면 비텔의 전언을 듣고 그걸 전해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했다. 정말 비텔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거라면 비텔이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니까.
신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건 정말 떨리는 일이다.
“비텔님은 아니지만 그분의 첫 번째 종께서 시키신 일이 있습니다.”
“교주님께서요?”
본 적은 없지만 매주 한 번 이상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해 설교를 진행하기에 그의 존재를 모르는 비텔교 신도는 없었다.
“그분께서 고아원을 지으란 말을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진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수십억의 돈이 들겠지만 성전 건축 예비비가 있으니 그 정도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유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께 바친 돈을 사용해서요.”
“...네?”
김진서는 순간 유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께 바친 돈이라니. 따로 교주님에게 돈을 준 적이 있던가? 아니, 그분이란 비텔님을 말하는 걸 텐데. 우리가 비텔님께 바친 거라면...’
“혹시 헌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 헌금을 바치는 걸 중단하고 모아서 고아원을 지으라는 말씀이신가요?”
김진서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비텔에게 바친 돈은 신께 갔을 거다. 그걸 돌려받는 건 말도 안 되니 지금부터 낼 헌금을 모아서 고아원을 지키라고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아뇨. 그분께 우리가 바쳤던 그걸 사용해서 짓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사용합니까.”
“절 따라오세요.”
유나가 앞장서서 유나 전용으로 사용하는 건물을 나섰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유나를 따랐다. 유나는 창고를 개조해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오. 사제님.”
예배당 근처에 있던 신도들이 유나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유나가 미소를 지으며 그들 모두에게 친절하게 답인사를 했다. 유나는 매일 자신이 사제로서 해야 할 행동을 생각하고 연습한다. 처음엔 어설펐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자연스럽고 분위기 있었다.
신도들이 유나의 뒤를 따랐다. 유나가 예배당에 가서 함께 기도하거나 설교를 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향한 곳은 예배당 뒤쪽이었다.
김진서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비텔의 사제인 그녀가 하는 일은 신이 시킨 일이다. 그러니 의문을 가질 필요 없다.’
여기까지 찾아온 신도라면 대부분 초기 1만 명의 신도다. 비텔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열렬한 신도가 된 자들로서 ‘첫 번째 딸’이라 불리는 유나를 비텔의 분신처럼 여기며 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유나의 행동의 의문을 가질리 없었다.
유나는 5분 정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엔 작은 침대정도 크기의 무언가가 두꺼운 방수포에 덮여있었다.
“어? 저게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이곳에서 유나를 보살피고 유나의 집과 예배당을 관리하는 직원 중 하나가 의문을 표했다. 아직 사유지이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물건이 그의 손을 거치는데 그는 저걸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걸 풀어주세요.”
“네.”
유나가 말했고, 직원과 김진서 등 남자 몇 명이 나서서 천을 고정하고 있는 끈을 풀었다.
“헙!”
“세상에.”
방수포을 치우자 나타난 물건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돈이었다.
방수포 밑에는 엄청난 양의 돈이 쌓여있었다. 대부분이 만원짜리였지만 5만원권과 5천원권, 천원권도 골고루 섞여 있었다.
“우리가 그분께 바쳤던 헌금입니다. 세상을 위해 쓰라고 돌려주신 거죠.”
“그럼 비텔님께서 직접?”
“아뇨. 교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비텔님의 첫 번째 종이자 아들이시니까요. 비텔님의 의중을 가장 먼저 전해 받고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김진서는 순간이동을 하고 손에서 돈을 뽑아내고 몸이 투명으로 변하고 하는 기인을 상상했다.
“교주님을 뵐 수 있을까요?”
김진서가 물었다. 김진서 한 명이 말했지만 그 말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심경을 대신해서 말해준 것과 같았다. 그들 역시 교주가 보고 싶었다.
“때가 되면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모두 수긍했다. 신의 뜻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드는 존재가 때가 아니라 한 것은, 신이 말한 것과 같다.
“일단 돈을 옮기겠습니다. 돈이 이거저거 섞여 있어서 잘 가늠되진 않지만 30억 정도 될 것 같군요.”
“정확히 40억입니다.”
“그렇군요.”
사람들이 나서서 돈을 유나가 지내는 건물로 옮겼다. 그들 중 누구도 돈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이 보고 있는데 어찌 감히 신이 직접 준 돈을 훔칠 수 있을까.
***
“잘 전달됐네.”
유나가 사람들을 데려와서 돈을 가져갔다. 새벽에 몰래 가서 40억을 인출해서 방수포로 덮어놨다. 인출 수수료가 무려 8억이었다. 그 뒤에 혹시 누가 훔쳐갈까 무서워 지금까지 계속 지켜봤다.
돈을 인출하며 본 돈의 종류와 상태를 보면 사람들이 헌금했던 돈 그대로 인출하는 것 같다. 그러면 외국인이 외국 돈으로 헌금하면 어떻게 될까. 헌금에 외국돈 집계가 따로 생기는 걸까?
진짜 그런 거면 나중에 세계에 비텔교가 전파되고 그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돈으로 헌금하면 헌금 집계가 엄청 지저분할 거 같다.
그래도 정말 그렇게 되면 돈 종류별로 집계되니까 어디에서 얼마나 헌금 하는지 집계하기 편할 거 같기는 하다. 지금처럼 사회를 위해 헌금을 쓸 때는 그 돈이 쓰이는 나라에 가서 하면 되니까. 그것도 편할 것 같고.
잘해주겠지?
원래는 내가 직접 하려고 했던 건데 알아보니 혼자 진행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서 저쪽에 떠넘겼다. 저쪽엔 사람이 많으니까.
“음...”
비텔님께서 시킨 거라고 말해뒀으니 열심히 하겠지.
집에 가자.
***
“스읍. 후... 스읍. 후...”
어두운 천막 안,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천막 안에는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솔렘니스.
포란 왕국의 왕이자 얼마 전 북방에서 전사한 페트로니오의 아버지다. 왕이 어째서 거대한 왕궁이 아닌 천막에 있는 것일까.
“폐하!”
천막 밖에서 솔렘니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해라.”
솔렘니스의 목소리는 작아서 천막 밖으로 전해지지 않을 듯싶었지만 밖에 있는 자는 용케 들었는지 말을 이었다.
“남부 프세미우의 프세미우 백작이 병력 3만을 이끌고 도착했습니다!”
“알았다.”
다시 천막 안은 조용해졌고 솔렘니스는 기도를 이어갔다. 곧 다시 어디의 누군가가 왔다는 보고가 왔고 계속해서 그런 보고가 이어졌다.
천막 밖에서 보고하는 사람은 각 지역을 골고루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포란 왕국 전역에서 이곳에 병력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포란 왕국의 모든 병력이 이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북방이 무너졌다. 포란왕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북방 전선이 무너졌다함은 적인 포란 왕국 내로 발을 들이밀었으며, 왕국 전력의 3분의 1이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왕국에 거대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솔렘니스는 아들의 장례를 치를 새도 없이 바로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사람들을 모아 과거의 자료를 뒤지며 북방에서 일어난 일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 자신도 직접 자료를 뒤졌다. 하지만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원인을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던 중 한 역사가가 한 가지 추정을 했다.
‘죽지 않는 자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역사책의 의하면 과거 포란왕국 지역과 그먼 제국의 반, 오크 영역, 리자드맨 영역 전부가 ‘죽지 않는 자’의 영역이었다고 말하며 그가 돌아와서 자기 영역을 찾으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몇몇은 ‘죽지 않는 자’는 이야기속의 인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솔렘니스는 국왕으로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왔다.
‘준비는 과하면 과할수록 좋다.’
이것이 솔렘니스의 생각이었고 그 생각을 그대로 실천했다.
즉시 ‘총력 집합’ 명령이 내려졌다.
전국의 모든 병력을 수도로 집결 시키는 ‘총력 집합’. 100여년전에 만들어진 왕령이지만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명령이기도 했다.
모든 귀족이 그 명에 따랐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영지를 비운 채 수도로 올라왔다. 모든 귀족이 솔렘니스를 믿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솔렘니스는 북방의 거대괴물과 동쪽의 리자드맨, 오크를 밀어내고 포란 왕국의 영역을 1.5배 더 넓게 만든 영웅.
그와 함께 전장을 전전하던 자들이 지금 각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들은 솔렘니스를 믿었고, 영지를 버리고 모든 병력을 이끌고 올라오라는 무리한 명령을 내렸음에도 믿고 따랐다.
솔렘니스는 ‘총력 집합’ 명령을 내리고 마냥 그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았다.
직접 왕궁을 나와 북쪽에 왕국 병력을 수용할 진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몰란에게 금식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금식기도 15일 째,
“왕국의 모든 병력이 이곳에 집결했습니다!”
포란 왕국의 모든 전력이 집결했고, 그는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란 빛이 그의 몸에서 시작되어 천막 안을 뒤덮었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운 파란 빛은,
파확!
작은 폭발을 일으켜 천막을 날려버렸고 온 사방에 그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인 수십 만 병력이 파란 빛을 봤다.
솔렘니스가 팔을 위로 뻗었다.
“몰란이시여! 제게 마지막 힘을!”
사방에 퍼지던 파란 빛이 다시 솔렘니스에게 모여들었다가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었다. 그 빛은 구름을 뚫고도 한참 위로 뻗어나갔다.
잠시 후, 구름을 뚫고 올라갔던 빛을 타고 무언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거대 페가수스였다.
“오오. 몰란의 사자!”
“몰란의 사자다!”
몰란의 사자라 불리는 거대 페가수스가 빠르게 내려와 솔렘니스의 옆에 섰다. 거대 페가수스가 솔렘니스의 옆에 섰을 때, 솔렘니스의 몸도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점점 몸이 커지기 시작했고, 온 몸의 털과 이가 빠지고 다시 새로 나왔다.
솔렘니스는 거대해졌고 젊음까지 되찾았다.
몰란! 몰란! 몰란! 몰란! 몰란!
솔렘니스! 솔렘니스! 솔렘니스! 솔렘니스! 솔렘니스!
병사들이 몰란과 솔렘니스의 이름을 연호했다.
솔렘니스가 거대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진군한다! 우리의 땅을 되찾자!”
수십만 대군이 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중개 이용권 디자인을 업체에 맡겼고 오늘 시안 몇 개가 나왔다. 솔직히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어제 끝난 올림픽 열풍을 이용하자며 올림픽 관련 디자인도 있었다. 그건 바로 뺐다. 잠깐 쓰고 말게 아닌데 곧 사라질 올림픽 열풍을 이용할 순 없지.
“이게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 그러면 이거로 하자.”
내 눈엔 그게 그거다. 뭐가 나은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맹연이 괜찮다고 하는 걸 그냥 선택했다.
“직접 선택하셔야죠.”
“예전에 내 옷 다 버린 거 벌써 잊었어? 난 센스가 아예 없어.”
맹연은 센스가 있으니까. 맹연이 좋다고 하는 게 좋은 거겠지. 그때 이질적인 기도가 들려왔다.
-Are you real God?
-교단 기여 포인트 1점 얻었습니다.
제공자 : Bensen
기여부분 : 기도
< 93 세계로 가는 비텔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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