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91화 (91/228)

< 91 올림픽 열풍 >

-아. 유한결!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의 건아!

=세상에 우사인 볼트를 이기다니요! 누가 우사인 볼트가 질 거라고 상상했겠습니까! 그것도 우리 한국에게 말입니다! 기적입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단합니다. 유한결 선수. 대한민국 육상이 금메달을 따려면 10년은 더 육성해야 가능할 거란 말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것도 국가가 나서서 돈을 들여 현재 유소년 선수들을 집중 육성할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기에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힘들 거라고 봤거든요. 정말 기적입니다! 대단합니다. 유한결 선수!

-요즘은 기적이라는 말하는 것도 지겹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이 전 종목에서 대활약중이거든요.

=네. 금메달 38개에 은메달 13개입니다. 2위인 미국이 금메달 22개니까 16개 차이거든요. 이 정도면 거의 1위 확정입니다. 대한민국 사상 유례가 없는 올림픽 1위가 눈앞에 있거든요.

-이게 다가 아니죠? 앞으로도 금메달이 유력한 종목이 꽤 남아있거든요.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흥분한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난리다. 난리. 요즘 대한민국이 저렇다. 달리기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 선수가 출전한 대부분의 종목에서 선전하다보니 올림픽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 선수가 나오는 올림픽 경기 중계가 있는 시간이면 모든 사람이 경기 보려고 TV앞에 모이기에 거리에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올림픽 경기 시청률이 사상 최대라던가?

그런데 저 유한결이란 달리기 선수 100% 비텔교 신도겠지. 비텔교 신도가 올림픽 나가도 되는 거야? 이거 사기 아닌가? 순수한 자기의 힘이 아니라 ‘군주의 위엄’으로 신체능력 향상을 받은 거잖아. 그것도 12%나 말이야.

-위원회에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약물 검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죠?

그래. 당연히 약물검사하겠지. 갑자기 저렇게 잘하는데 약물검사를 안 하고 배기겠어?

=제가 들은 바론 이미 검사를 마친 선수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 그런가요? 결과가 어떻다고 하던가요.

=당연히 전부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가 하나같이 자신하더군요. 약물 검사 같은 건 걱정 말라고 말이죠. 약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자신했습니다.

걸릴 리가 없지. 스킬로 인한 신체능력 향상인데 약물 검사가 어떻게 잡아내. 당연히 걱정 안하겠지.

-역시 그렇군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불법적인 일을 했을 리가 없죠. 걱정하고 계신 국민 여러분도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불법...까진 아니어도 자랑스럽진 않을 거 같은데. 엄연히 페어플레이는 아니잖아? 나중에 비텔교에 대해서 알려지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까. 일종의 사기잖아?

하긴 내가 운동선수라고 해도 저랬을 거 같긴 하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메달을 딸 기회인데, 인생을 바쳐서 올림픽을 준비해왔을 텐데 영혼을 팔아서라도 메달을 따고 싶지 않겠어? 비텔교는 영혼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현 올림픽 규정에 의하면 불법도 아니고 말이다. 세상 어디에 신에게 능력을 받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겠어. 그냥 자기 양심만 잠깐 속이면 되는 거지.

-아. 유한결 선수 인터뷰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보시겠습니다.

현장 트랙 위에서 실시간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특별할 거 없는 인터뷰였다. 금메달 축하를 받고 금메달 딴 소감을 말하고, 얼마나 고생하며 준비했는지, 특별한 준비를 한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대답은 평이했다. 어느 인터뷰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 질문과 대답이 내 관심을 끌었다.

-이 기쁨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습니까.

=당연히 그분께 알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분께서는 이미 알고계시겠지만요. 그분이 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금메달에 대한 모든 영광을 그분께 바치겠습니다.

-그분이 누구죠? 혹시 다른 선수들이 이야기한 그분과 같은 사람인가요?

그 질문에 유한결은 웃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분은 비텔님을 말하는 거겠지. 방송에서 그분을 말하는 걸 금지했으니 말 못하는 걸 테고 말이야. 그럴 거면 아예 감사도 표하지 말지.

방송에서 비텔님에 대해 말하는 걸 허용해주면 어떻게 될까.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하는 말인데다가 여러 선수가 말할 테니 파급력이 꽤 클 테지. 그럼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텔님을 믿는 신도가 생겨날 거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신도가 늘어날 거다.

나쁘진 않지만 문제도 많겠네. 이미 지금도 신도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사건 사고도 꽤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저번의 사은품으로 보조 배터리를 준 전단지를 이어서 길거리 현수막, 대자보, 신문광고, 거기에 방문 전도까지.

인터넷 상에서 비텔님의 이름이 언급되는 빈도도 상당히 늘어났다. 저번엔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붙잡고 비텔님께 기도드리라고 강요했다는 인터넷 글을 봤다. 다행히 경찰이 찾아오자 그만두고 갔다고 한다.

바로 ‘비텔의 목소리’로 강제 전도는 하지 말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이제 사고가 터지는 건 시간문제다. 점점 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여러 방법을 사용해서 전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일하기 전이나 후에 기도로 비텔님께 보고하는 걸 듣기에 알 수 있다.

때문에 요즘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신도들의 기도에 집중하고, 인터넷도 수시로 살피고 있다. 지금까진 조용하지만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니까.

지금 신도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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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47,832명

교단 기여 포인트 : 1,052,582

헌금 : 5,183,58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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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5만 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골치 아파 죽겠다. 교단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서 매일 2,000~3,000명 정도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적으로 전도가 일어나고 하루에 수만 명씩 신도가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어우...

교칙 같은 걸 빨리 만들어야겠어. 기독교의 ‘십계’ 같은 걸 정해두면 되지 않을까. 그런 게 좋겠다. 내가 한 명, 한 명 전부 신경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큰 줄기를 만들어놓고 알아서 지키길 바라야지. 내가 무슨 수로 신도를 하나하나 단속하고 다니겠어.

빨리 제대로 된 교칙을 만들어야겠어. 나 혼자 머리 싸매서 좋은 게 나올 리가 없다. 조만간 유나에게 가서 의논해야겠어.

김진서가 유나와 접촉한 이후로 직접 찾아간 적은 없지만 전화는 꾸준히 하고 있다. 혹시 몰라 그날 이후로 대포폰을 구해서 연락하고 있는데 이게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대포폰을 쓰면 나라는 걸 모를까? 이렇게 매일 들고 다니는데?

여하튼 듣기론 유나 곁에 꽤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의 두뇌까지 빌리면 뭔가 괜찮은 교칙이 나오지 않을까?

음... 그냥 신경 끌까?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알아서 하게 놔두고 말이야.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교단에 신경 쓰겠다고 비텔님이랑 약속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신경을 꺼. 그럴 순 없지.

그리고 무리한 바람인건 알지만... 비텔교는 무결점이었으면 좋겠다. 비텔님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때 느꼈던 그 성스러움, 그 성스러움이 누군가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불가능한 걸 안다. 그래도 최대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다.

***

“야. 목사. 그만 하고 와서 이거나 먹어라.”

김호원이 방 한 구석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는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에게 말했다. 벌써 4시간째 저러고 있다. 무릎을 꿇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몇 번 따라했다가 포기한 김호원이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목사는 처음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부터 저랬다. 당연히 같은 방을 쓰는 죄수들이 막내 녀석이 청소도 안하고 저러고 있는 걸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정말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목사는 사회에 있을 때 운동 좀 했는지 몸이 좋았지만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맞기만 했다. 일주일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구타가 이어졌다. 그때 방장이었고 지금도 방장인 김호원이 구타를 멈추게 했다.

일주일동안 두들겨 맞으면서 반항도 하지 않고,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런 놈들은 김호원이 아는 한도에선 한 종류밖에 없다.

‘정신이 이상한 놈이군. 저런 놈은 건들지 않는 게 좋지.’

그렇게 결정 내렸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은 사고를 쳤을 때 정도를 모른다. 어느 정도에서 멈춰야하는데 멈추질 않는 놈들인데다가 맞는다고 해서 행동양식이 고쳐지는 놈들도 아니기에 건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거다.

물론 정신병자는 아니란 걸 곧 알게 되었지만.

“오늘 교주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거 말해줄 테니까 와서 이것 좀 먹어라. 감방에서 치킨 먹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 너 먹으라고 박태규한테 사정사정해서 겨우 가져온 거야.”

박태규는 교도관이다. 예전이라면 어림없겠지만 요즘은 공통분모가 하나 생겨서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목사가 눈을 떴다.

“교주님께서 뭐라 말씀하셨죠?”

치킨은 관심도 없고 교주의 말에 먼저 관심을 가진다. 김호원이 피식 웃었다.

“여기 와서 앉아. 이놈들 봐라. 침 잔뜩 흘리고 있는데 너 안 와서 치킨 못 먹고 있잖아.”

치킨 3마리를 놓고 남자 다섯이 둘러 앉아 있지만 그들 모두가 목사만 보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막내를 기다린다고 먹을 걸 안 먹는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그러고 있다.

목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위해 비어져 있던 자리에 와 앉았다.

“이제 먹자.”

김호원이 닭다리 하나를 들었다. 다른 죄수들이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김호원이 한입 베어 물자 그제야 치킨을 하나씩 집어 들어 먹기 시작했다.

“빨리 먹어. 오늘 안 먹으면 너 나갈 때까지 구경 못한다.”

“괜찮습니다. 1년이면 나갈 텐데요. 교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거나 말씀해주십시오.”

저렇다. 목사의 관심사는 오로지 비텔교에 관한 것 밖에 없었다.

처음엔 목사라는 별명 앞에 ‘미친 사이비’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하루 종일 기도만 하는데다가 하는 일이라곤 죄수들 전도하는 일밖에 없었으니까. 거기에 전도하는 종교는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비텔’이라는 신을 모시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도만 해도 신께서 축복을 내려줄 거란 말을 하는데 ‘미친 사이비’라는 말이 안 붙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친 사이비’에서 사이비라는 단어가 빠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몇 놈이 장난삼아 비텔에게 기도를 했는데 정말 신의 축복을 받아 신체능력이 강해진 것이다. 그걸 본 죄수 중 몇이 속는 셈치고 기도를 했고 그들도 바로 신의 축복을 받았다. 그걸 본 교도관도 기도를 한 후 신의 축복을 받고...

비텔교가 교도소 전체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때부터 ‘미친 사이비 목사’에서 ‘사이비’가 빠지고 ‘미친 목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신이 직접 신도들에게 말을 건 그날, 그날 이후로 교도소 내에 분쟁은 없어졌다. 죄수간의 파벌은 사라졌고, 교도관과 죄수의 신경전도 사라졌다. 교도소 내에 남은 것은 오로지 하나, 비텔교 뿐이었다. 그날 ‘미친 목사’에서 ‘미친’도 사라지고 ‘목사’라는 별명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종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였다.”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군요.”

얼마 길지 않은 교주의 말이었지만 목사는 감동한 듯 눈을 감고 방금 들은 교주의 말을 반복해서 읊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외우려는 듯 했다.

“목사. 아니. 해역아. 정말 나 같은 놈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그분의 힘이 형님께 머물러 있잖습니까. 매주 교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저번엔 비텔님의 목소리까지 직접 들으셨지 않습니까. 그게 증거입니다. 비텔님께선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 너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엄청난 경험. 그걸 누구보다도 신실한 목사가 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운 김호원이었다.

“그분의 이름을 더럽혀 파문당한 저 같은 놈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을 리 없죠.”

자신을 깎아내리면서도 덤덤한 표정에 덤덤한 목소리다. 자신이 받은 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벌을 받았음에도 그 벌을 내린 비텔의 판단에 한 점 의심을 하지 않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그게 더욱 안타까운 김호원이다.

“내가 매일 해역이 너 다시 받아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나도. 나도.”

“나도 하고 있다.”

“난 두 번씩 기도하고 있어.”

열심히 치킨을 먹던 다른 죄수들이 저마다 말했다. 처음엔 앞장서서 목사를 구타하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김해역을 믿고 따랐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김해역이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한상씨. 와줘서 고맙습니다.”

김진서를 만나러 왔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 정사장님께 연락드렸더니 더 이상 일을 안 하신다고 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드려야할지 고민했습니다만...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한상씨의 능력이 꼭 필요한 일이라서요. 승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진서를 만나러 온 이유는 계약 중개를 위해서였다. 이런 식의 중개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지만 김진서가 무슨 일 때문에 내게 계약 중개를 부탁했는지 알기에 그걸 도와주러 왔다.

“이미 설명 드린 대로 제가 이번에 건축 관련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책임자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건물을 지어줬으면 좋겠어서요. 그에 대한 중개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을 안 한다고 들어서인지 뭣 때문에 내 도움을 요청하는지 설명까지 들었다. 건축 관련 일은 성전을 짓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도와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수고비는 2명이니까 인당 5,000씩 해서 큰 거 한 장 드리면 되겠습니까?”

“수고비 말인데 제가 본부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제게요?”

김진서에게 할 부탁도 있다.

< 91 올림픽 열풍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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