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오크 vs 리자드맨 >
“크흐.. 완전 멍청한 녀석은 아니구나.”
“음? 누가 왔나?”
일어나면서 한 혼잣말에 암컷이 깼다.
“아니다. 아무도 안 왔다. 더 자라.”
“알았다. 난 더 잔다.”
암컷이 피곤한지 다시 누웠다. 그리고 곧 ‘드르렁.’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좋은 암컷이다. 꿈속의 인간 옆에 붙어 있는 암컷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 인간은 왜 그런 암컷과 함께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린 오크가 툭 쳐도 부러질 것 같은 몸을 한 암컷이라니. 최악이다.
“멍청..”
또 혼잣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암컷은 아직 잘 자고 있다. 암컷을 또 깨울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난 암컷을 배려하는 좋은 수컷이니까.
밖으로 나오며 인간을 생각했다. 멍청한 녀석이었다가 나름 괜찮은 녀석이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멍청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가끔 전사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꽤 괜찮았다. 신에게 한 번 잡아먹힌 후 빠져나오다니. 잡아먹힌 후 빠져나온 자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인간을 다시 봤다. 명예로운 오크 전사도 힘든 일을 해내다니 말이다. 저번에도 계속 멍청한 짓을 하다가 마지막에 전사다운 잔혹함을 보여주더니, 할 땐 하는 인간이다. 평소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켜보는 게 더 즐거울 텐데 말이다.
그런데 신의 이름이 비텔이라니.
...
.....
.......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는 신이다. 우리 오크의 신 카록, 인간의 신 몰란, 드워프의 신 피언, 엘프의 신 에렌, 리자드맨의 신 바틱, 그 외에 세상에 있는 종족 수만큼 잡다한 신이 있지만 비텔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 없다.
저주받은 이름 없는 신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 신은 이름이 없으니까. 비텔이 아니다. 아무래도 비텔은 꿈속의 인간이 사는 세계의 신인 모양이다.
여하튼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던 능력들이 전부 이세계의 인간이 얻은 것을 나도 얻었다는 걸 알았다. 그 보라색 빛도 인간이 비텔이란 신에게 받은 능력이었다. 그 외에 알 수 없는 것들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것 덕분에 내가 한층 더 강해졌지만 내가 카록께 받은 능력도 인간이 쓸 수 있는 모양이니 빚진 건 없다.
아. 그 눈에 보이던 알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의 용도를 알았다. 내가 가진 능력의 이름과 용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글이었다니. 글... 오크한테 글이 있나? 물어보자.
공터로 갔다. 역시나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일찍부터 나와 있다. 나이가 들면 일찍 일어나는 것 같다. 저번에 듣기론 캅카스가가 40 넘었고, 미흐로크가 30 넘었다고 했었다. 그 정도 살았으면 글이 있는지 없는지 알겠지.
“형제들. 우리 오크에게도 글이 있나?”
내게 반갑게 인사하는 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둘이 동시에 ‘글?’이라 말하더니 서로 얼굴을 본 후 고개를 저었다.
“오크에게 글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그건 멍청한 다른 종족이 기억 못하는 걸 기록하려고 만든 것 아닌가?”
“나 역시 들어본 적 없다. 형제.”
“역시 그런가?”
이 둘이 모른다면 역시 글은 없...
“오크에게도 글은 있다. 형제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셋이 동시에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누구지?”
모르는 얼굴이다. 내가 기억을 못하자 그 형제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르히 부락에서 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날 잊었나.”
오르히? 오르히면... 그래. 미로크의 아버지인 대족장의 이름이다. 오르히의 부락에서 본 자라면...
“주술사?”
“... 난 주술사가 아니라 노르쓰 우르드다. 그락카르.”
그렇군. 노르쓰 우르드. 이제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몸집이 작으면서도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 얼굴과 이름은 잊어도 강자의 기세는 잊을 수 없지.
얼마 전 하루를 반복하며 수십 년을 보냈다. 매일 본 얼굴이 아니면 이름을 기억하는 게 무리일 수밖에 없다. 특히 노르쓰 우르드는 이름이 너무 길어서 예전에도 잘 외우지 못했으니 기억하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오랜만이다. 노르쓰 우르드. 다시 만나 반갑군.”
예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 그에 대한 감정이 희석된 상태에서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두 달이 오래 된 건가? 하긴 어린 오크에게는 오랜 시간일 수도 있겠군.”
“이젠 안 어리다!”
억울하다. 이젠 난 정말 안 어리다. 그런데 말 할 수가 없다. 하루를 반복해서 수십 년을 살았기에 다른 형제들은 알 수 없으니까.
“알았다. 미안하다. 형제는 안 어리다.”
“왜 왔나. 형제는 오르히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전히 날 어리다고 생각하며 달래듯 말해서 화가 나려 했지만 참았다. 여기서 화내면 어리다는 걸 티내는 것이다. 난 나이 많은 성숙한 전사이니 화내면 안 된다.
“오르히도 올라왔다.”
“오르히가?”
“대족장 형제가?”
캅카스가와 미흐로크가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나도 살폈다.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데?”
오르히가 내 부락에 왔다면 모를 수가 없다. 그 큰 덩치와 기세는 숨길 수 없는 거니까.
“여기 없다. 오해했군. 내가 오르히도 올라왔다고 말한 건 부락을 떠나 혼자 온 게 아니라 부락을 이 근처로 옮겼다는 말이었다.”
“그렇군.”
하긴 오르히가 부락을 떠나서 혼자 올리 없다. 위대한 대족장이라면 자신의 부락을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오르히가 왜 여기로 왔지? 오르히의 부락이 빠지면 다른 형제들이 인간에게 밀릴 텐데?”
캅카스가가 물었다. 그의 말대로다. 오르히의 부락에서 날 따라온 형제들이 꽤 많아서 전사의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전사의 수가 거의 1만에 달하는 대부락이다.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미로크와 전사들이 왔던 것이나, 매일 오르히의 천막에서 족장급 전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던 것도 전부 주변의 형제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즉, 그 지역에서의 인간과의 전투는 오르히와 그의 부락이 여러 가지를 신경써준 덕분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런 전력이 빠진다면 인간과의 세력 균형이 깨져 형제들이 많이 다칠 거다.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지역에 더 이상 인간은 없다.”
“인간이 없다고?”
“큰 싸움이 있었다. 인간들이 갑자기 큰 무리를 이뤄 우리 땅으로 쳐들어왔고 그들에 맞서 몇 개 부락이 힘을 합쳐 싸웠다. 오크 전사만 17,000이 참여한 엄청난 전투였다.”
... 충격이다. 내가 없을 때 그런 전투가 일어나다니. 무조건 참여했어야 할 전투인데.
“언제였지?”
“약 1달 전이다. 형제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
억울하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다. 왜 내가 있을 때 쳐들어오지 않고 내가 떠난 뒤에 온 거지? 참여한 오크 전사만 17,000이라니. 예전에 캄스니와 함께 드워프와 싸웠을 때보다 더 큰 규모다.
그 거대한 전투의 선두에서 적에게 돌진했다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어떻게 됐나.”
“당연히 이겼다. 이겼으니 내가 여기 있겠지.”
멍청한 질문이었군. 졌으면 오르히도, 노르쓰 우르드도 죽었겠지.
“그리고 기세를 몰아 인간들의 땅으로 가 거대한 성까지 갔다.”
“거대한 성까지? 그곳은 위험한데...”
“거대한 성이 뭐지? 캅카스가.”
“거대한 성은 인간들의 대부락 같은 곳이다. 견고하고 전사가 많기에 그곳을 공격한 형제들은 항상 졌다.”
형제들이 항상 졌다고? 한 번 가보고 싶군.
“이젠 아니다. 우리가 갔을 때 인간이 없었다.”
“인간이 없었다고?”
“그렇다. 아무도 없었다. 흩어져서 그 주변을 전부 살폈지만 모든 인간의 부락이 비어있었다. 며칠 그곳에 있다가 살기 척박한 곳이라서 다시 우리의 땅으로 돌아왔다.”
“전사가 싸움에서 지니 도망간 거군. 나약한 인간들답게 말이다.”
인간들은 특이하다. 전사는 용감한데 인간은 나약하고, 겁이 많다. 인간 전사들은 죽음 직전까지 맞서 싸우는데, 전사가 아닌 인간들은 우리를 보면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도망갈 생각만 한다.
“수십 년간 큰 규모의 전투를 걸어온 적 없는 인간들이 갑자기 덤벼온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여하튼 더 이상 그곳에 우리와 싸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 지역의 형제들이 부락을 북쪽으로 옮기고 있다. 오르히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렇군. 형제는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들린 건가?”
“아니. 오르히 부락을 완전히 떠났다.”
“형제가 오르히 부락을 떠났다고? 형제는 오르히와 20년 이상 함께 싸워오지 않았나?”
미흐로크가 놀라서 물었다.
“30년이다. 오르히가 대전사일 때부터 함께 싸워왔지.”
나이가 많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왜 내 부락으로 왔지?”
“내가 꿈에서 미래를 보기 시작한 후, 그 미래가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형제의 죽음은 틀렸다. 난 분명 형제의 죽음을 봤는데 형제는 죽기는커녕 큰 승리를 일궈냈지. 그래서 형제를 보고 싶어졌다.”
나를 보고 싶다니. 뭔가 좋은 느낌은 아니다.
“캅카스가와 미흐로크, 그리고 수천의 형제들이 떠날 때 나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갑자기 많은 수의 형제가 떠나서 나까지 떠나면 오르히가 힘들어 할 것 같아 남아서 도움을 주고 있었던 거다. 이제 해결됐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온 거다.”
“그렇군.”
오크 전... 아. 전사는 아니군. 성인 오크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데 더 이상 뭐라 할 순 없지.
“그런데 아까 왜 글에 관심을 가진 것인가. 형제. 더 이상 오크들은 글을 쓰지 않는데.”
“아. 글을 알고 있나. 노르쓰 우르드?”
“알고 있다.”
“그럼 이게 글자가 맞나?”
그 이상한 모양을 다시 띄워서 보이는 그대로 땅에 그렸다.
“모양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글이 맞는 것 같은데. 군..주,,,의 위엄. 군주의 위엄이다. 그런데 형제가 글을 어떻게 알았지? 주술사가 아니면 글을 알 수가 없는데? 혹시 카록께서 변덕을 일으켜서 전사에게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건가?”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얼마든지.”
노르쓰 우르드를 데리고 근처 천막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인지라 자고 있는 형제들이 몇 있었지만 전부 깨워서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사정 설명을 했다.
“그렇군. 언제부턴가 눈에 뭔가 보이는 데 그게 뭔지 몰랐다는 거군.”
“그렇다. 알려줄 수 있겠나?”
“적어라. 읽어주겠다.”
좀 길지만 열심히 공들여 적어나갔다. 노르쓰 우르드는 그것 모두를 읽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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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카록의 시야(1단계)
비텔의 귀(1단계로 제한)
불가사의한 힘
착취하는 손
군주의 위엄
스킬 목록 열람
흩어지는 영혼
성난 자의 외침
세력스킬
세력 현황판
비텔의 목소리(1단계)
약속의 무게
질병무시
굳건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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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록의 시야(1단계) : 영혼을 볼 수 있다. 현재 1단계.
-비텔의 귀(1단계) : 생각을 들을 수 있다. 현재 1단계.
-불가사의한 힘 : 감정의 크기에 따라 10~50% 힘을 증가 시켜 준다.
-착취하는 손 : 생물의 생기를 빨아들여 체력과 부상을 회복한다.
-스킬 목록 열람 : 가진 스킬의 종류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세력 현황판 : 가진 세력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약속의 무게 : 사용자는 전투 기여 포인트 100을 사용해 대상과 ‘약속’을 한다. 사용자는 약속의 ‘기한’과 어길시 받을 ‘벌칙’을 정할 수 있으며 ‘기한’의 길이와 ‘벌칙’의 종류에 따라 추가로 전투 기여 포인트를 사용한다. ‘약속’은 구두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기한’과 ‘벌칙’에 대해선 말할 필요 없다
-비텔의 목소리(1단계) : 세력 구성원에게 원하는 말을 전달한다. 구성원 1명당 전투 기여 포인트 1을 사용한다. 한 번에 전달 가능한 말의 길이는 5초 이내.
-흩어지는 영혼 : 대상의 저주 방어를 흩트려 저주 스킬의 효율을 늘려준다.
-군주의 위엄 : 세력 형성 시 세력의 크기에 따라 군주와 구성원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준다.
현재 11% 향상 적용 중.
-질병무시 : 어떤 질병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굳건한 영혼 : 정신력을 강화한다. 저주 스킬에 대한 방어력을 올려준다.
-성난 자의 외침 : 무리에 속한 모두의 힘을 1시간동안 100% 증가 시켜 주고 부상을 회복시켜준다. 분노가 극한에 달해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분노(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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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락카르의 무리
우두머리 : 그락카르
무리 구성원 : 7,435명
전투 기여 포인트 : 16,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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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빛의 이름이 ‘착취하는 손’이었군.
“오. 고맙다. 이제야 뭔지 알았다.”
“비텔?”
“아는 이름인가?”
“크음... 기억이 안 나는군. 분명 들어본 것 같은데. 그건 제쳐두고 형제 능력이 이렇게 많았나? 다른 형제들은 축복을 받아도 몇 개 받고 말텐데 이렇게 많은 능력이라니. 역시 내가 본 미래를 피해갈 정도의 형제... 음?!”
노르쓰 우르드가 말하다 말고 놀란 표정으로 북쪽을 봤다.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보다가 곧 나도 뭔가를 느끼고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꿈에서 이걸 보고 온 건가. 형제.”
“아니다. 꿈이라고 해서 모든 걸 보는 건 아니다.”
북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강하고 큰 기세가 느껴졌다.
< 88 오크 vs 리자드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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