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87화 (87/228)

< 87 수면위로 떠오르는 비텔교 >

폰으로 인터넷 반응을 살펴봤다.

“별 반응은 없네.”

“길거리에서 전단지 나눠주는 정도로 그렇게 광고효과가 좋을 순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길거리 전단지 광고는 매일 수천 곳에서 할 거다. 그런 거 좀 돌린다고 실검에 오르고 그럴 거면 광고업자들이 머리 싸매진 않겠지. 그래도 사은품을 상당한 걸 줘서 어느 정도는 이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하긴, 이런 게 효과를 보려면 온라인 광고도 같이 해야 하는데 온라인 광고는 내가 못하게 막아뒀으니까. 그래도 검색되는 게시물이 꽤 있긴 하다. 그 글들 대부분 보조 배터리가 주 내용이었다. 비텔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비텔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게시물을 쓰지 않았겠지. 인터넷에 비텔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금지사항 중 하나니까.

그래도 전단지가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한 것 같다. 신도가 어제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대로라면 이번 주 내로 2만 명이 될 거 같은데.

신도가 빠르게 늘어나니 좋기는 하지만 걱정도 된다. 이제까진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도되었기에 비텔님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설명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단지나 광고 같은 걸 통해 신도가 된 사람들은 비텔님에 대해 제대로 모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비텔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까?

나만해도 비텔님의 존재를 가장 확신하고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음에도 신앙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요즘 들어 조금 깊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기도를 하니 몸이 건강해지고, 헌금을 하니 돈이 사라지는 기적을 보게 될 테니 신이 있다는 걸 믿기야 하겠지만 비텔님을 두려워하고 믿기는커녕 이용하려 하지는 않을까?

뭔가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는데... ‘비텔의 목소리’로 정기적으로 교육을 할까? 포인트가 아깝긴 하지만 할 건 해야지.

백화점 순회를 마치고 짐 한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길다. 오늘 상당히 많은 일을 한 거 같은데 아직도 하루가 안 끝났다. 이제 TV보면서 쉬자.

-우리동네 예체능!

나름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손에 땀을 지게 하는 경기를 보여줄 때가 있어서 말이다.

-오늘은 2주 남은 올림픽 특집입니다!

올림픽 특집이네. 난 저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전문 연예인으로 꽉꽉 채워도 재미있을까말까 한 것이 방송 예능인데, 방송 안하던 사람들 데려다 하면 당연히 재미있을 리가 없지 않나.

올림픽이 2주 남았네. 올림픽 별로 안 좋아한다. 올림픽 기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예능이 대부분 방송을 안 하니까. 올림픽 기간 중에는 볼 게 없어서 심심하겠네.

-이번 올림픽 대표들은 신흥 강자들이 특히 많이 탄생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 보겠...

껐다. 토크쇼는 별로 관심 없다. 그냥 씻고 자야지.

내일은 집구해서 바로 이사해야지. 둘이서 원룸에 사니까 불편하다. 잘 때 답답해서 팬티만 입고 자야하는데 맹연이 같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네.

***

“몰란이시여...”

두 개의 촛불만이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천막 안. 전신 갑옷을 입은 40대 후반의 사내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당신의 적을 물리치겠나이다. 당신께 승리를 바치겠나이다.”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내는 포란 왕국의 왕자이자 페가수스 나이트의 단장인 페트로니오다.

포란 왕국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다.

이종족과의 국경 최전선에 위치한 3개의 나라 중 하나이며, 동쪽으로 이종족 중 가장 호전적인 오크, 리자드맨과, 북쪽으로 생명체의 가장 큰 적인 ‘죽지 않는 자’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셋 모두 인류를 말살하려는 최악의 적으로서 쉬지 않고 침략해온다.

당연히 포란 왕국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기에 후방의 많은 국가에게서 병력지원을 받고 있으며 가장 많은 병력을 지원하고 있는 나라는 그먼 제국과 프람 제국이다.

포란 왕국은 각국의 지원을 받으며 굳건하게 국경을 지켰고, 그들은 100년간 그들 뒤로 어떠한 이종족도 통과시키지 않았고 사람들은 포란 왕국은 ‘몰란의 방패’라고 불렀다.

그런 포란 왕국의 수많은 전장 중 가장 치열한 전장을 뽑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북부 전장을 뽑을 것이다.

‘죽지 않는 자’와 맞서는 전장. 그 중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페트로니오가 있는 이곳 브알리스트다.

“당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보살펴주소서. 신을 거부한 자들을 벌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 말을 끝으로 기도가 끝났다. 페트로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섰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강렬한 햇빛과 특수 제작된 천막으로 완벽히 차단되어 있던 소음이 그를 맞이했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사방을 울리는 거대 괴물들의 울음소리. 후방에서는 저 중 하나만 들려와도 불안과 공포에 떨겠지만 브알리스트에서는 24시간 쉬지 않고 울리는 익숙한 소리다.

“히히히히히힝!”

그가 나오자 그의 페가수스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 번 갈기를 쓰다듬어주곤 그 위에 올랐다.

“가자.”

페가수스가 날개를 넓게 펼쳤다.

“몰란이시여...”

페트로니오가 몰란을 부르자 페가수스의 몸에서 파란 빛이 일었다. 그리고 페가수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페가수스가 날개를 퍼덕이자 더 빠르게 상승했다.

원래 페가수스는 날지 못하지만 주인이 몰란의 축복을 받을 때 함께 축복을 받는다. 그 때 다섯 가지 능력 중 하나를 부여받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비행’이다.

모든 페가수스 나이트가 강력한 집단 전법인 ‘공중 돌격’을 위해 자신의 페가수스가 ‘비행’능력을 얻기를 원한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 페가수스 나이트는 네 번째까지 ‘비행’능력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페트로니오가 그런 경우였다. 물론 얼마 전 받은 축복까지 포함해 총 일곱 번의 축복을 받았기에 과거의 재미있는 추억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하늘 높이 오르자 그를 따르는 10만 군세가 한 눈에 보였다. 그들은 이미 전쟁 준비를 마치고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페트로니오가 시선을 더 멀리 던졌다.

저 멀리 그가 시선을 던진 곳. 그곳에선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약 2만.

5,000 이상 뭉치는 경우가 없었던 ‘죽지 않는 자’의 군세 2만이 뭉쳐서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것이 사흘 전이었다.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이렇게 거대한 무리를 이뤄 움직이는 것은 그들과 100년간 싸워온 포란 왕국으로서도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다. 반드시 원인 규명을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도 막아낸 이후에나 할 수 있는 거다.

페트로니오는 즉시 주변의 병력을 전부 끌어 모았고 그 결과 10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단순한 수로 따지면 포란 왕국 쪽이 5배나 많지만 ‘죽지 않는 자’의 군세엔 거대 괴물 수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홀로 수백의 병력을 상대할 수 있는 거대 괴물. 그런 거대 괴물을 앞세운 ‘죽지 않는 자’의 군세 앞에서 병력 수의 차이는 아무 의미 없다.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어느 정도 접근해왔을 때, 페트로니오가 할버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페가수스 나이트가 날아올라 페트로니오의 뒤에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공중에 떠오른 페가수스 나이트의 수만 3,000. ‘비행’ 능력이 없어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페가수스 나이트까지 합치면 총 5,000이다. 포란 왕국 페가수스 나이트의 절반이 이 전장에 와 있는 것이다.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가까워지자 페트로니오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대 괴물들이 뿜어낸 기세가 그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압박을 받을 정도인데 병사들은 어떠할까.

심적으로 위축되면 원래 실력의 반도 발휘하기 힘들어지고 체력이 급격히 소모된다. 마음도 다치는 법, 시간을 끌면 병사들이 심리적인 부상을 입을 것이다. 더 이상 피해를 입기 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페트로니오가 할버드를 높게 들었다.

“몰란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그가 강하게 외치자 할버드 끝에서 강렬한 파란 빛이 터져 나왔다. 할버드 끝에서 시작된 빛이 10만 병력 전체에게 퍼져나갔다. 파란 빛에 닿은 병사들에게서 공포와 긴장이 사라졌다.

“몰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용감한 너희들에게 몰란의 축복이 내릴 것이다!”

“이 전쟁의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으로 결정되었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페트로니오 저하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다!”

때를 맞춰 곳곳에 퍼진 장교들이 병사들을 격려했다. 공포와 긴장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루어진 격려에 병사들이 용기백배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갔고, 그만큼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가까워졌다.

“돌격 준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페트로니오가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명령이 떨어지자 장교들에 의해 모든 병사들에게 전파되었고 그들 모두가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몰란!!!!”

페트로니오가 몰란을 외치며 돌격했다.

그 뒤를 페가수스 나이트와 10만 병력이 따랐다. 30년 내 포란 왕국이 치른 그 어떤 전투보다도 규모가 큰 전투가 막 시작되었다.

3일 뒤, 후방도시 에우크에 한 기의 페가수스 나이트가 나타났다.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한쪽 팔과 양 다리가 뜯겨져 있었고 한 팔로 겨우 페가수스의 목을 잡아 버티고 있었다.

“브알리스트가 뚫렸다. ‘죽지 않는 자’가 나타났다.”

페가수스 나이트는 이 두 마디 말을 남기곤 숨이 끊어졌다.

***

갑작스런 ‘죽지 않는 자’ 군세의 진격에 피해를 입은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끼락. 북쪽에서 거대 괴물들이 날뛰고 있다. 이미 수천의 동포가 피해를 입었어.”

리자드맨 역시 ‘죽지 않는 자’의 군세에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공처럼 둥근 거대한 몸을 가진 리자드맨 로드들이 의견을 나눴다. 리자드맨은 축복을 받아 고위의 존재가 될수록 살이 찌고 정신능력이 강력해진다. 팔다리가 퇴화된 것처럼 짧고, 공처럼 둥글고 큰 몸은 고위의 존재라는 증거다.

“그 동안 잠잠했던 ‘죽지 않는 자’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각 마을의 로드를 불러 회의를 주재한 최연장자 리자드맨 로드가 말했다.

“‘죽지 않는 자’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가?”

“끼라락. 거대 괴물 200마리가 무리를 이룬 것을 보았다. 그건 150년 전 ‘죽지 않는 자’가 활동하던 시기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다. ‘죽지 않는 자’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리자드맨의 수명은 길다. 고위의 존재가 될수록 그 수명은 더욱 길어진다. 불리한 싸움은 절대하지 않고, 뒤에서 지시를 하며, 정신 능력으로만 싸우는 리자드맨 로드의 특성상 오래 살아남는 자들이 많다. 이 자리엔 200살이 넘는 로드도 있었다.

그렇기에 ‘죽지 않는 자’의 군세가 뭉치는 이유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인간과 달리 리자드맨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죽지 않는 자’가 활동을 시작한 거다.

인간들도 북쪽의 군세가 ‘죽지 않는 자’라는 어떤 초월적 존재 개인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군세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150년 전 활동을 멈춘 ‘죽지 않는 자’이기에 그가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자드맨 로드 중에는 ‘죽지 않는 자’를 직접 본 자도 있었다.

“어떻게 할 거지. 맞서 싸울 것인가. 피할 것인가.”

“까르륵. 역시 젊군. 맞서 싸운다는 말을 하다니. ‘죽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연히 피해야 한다.”

130살밖에 되지 않아 ‘죽지 않는 자’에 대해 몰랐던 리자드맨 로드를 누군가가 비웃었다. ‘죽지 않는 자’를 경험한 적 있는 모든 리자드맨 로드가 동의했다.

“피하는 것으로 결정났군. 그럼 어느 쪽으로 가는가를 결정하자. 동쪽의 드워프와 엘프, 남쪽의 오크. 어느 쪽인가.”

“까락. 동쪽이다. 남쪽으로 갔다간 전투에 미친 오크놈들과 평생 싸워야 할 거다.”

“남쪽이 좋다. 드워프와 엘프가 싸우기는 편하겠지만 남쪽으로 가야 ‘죽지 않는 자’와 확실히 멀어질 수 있다.”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토론이 장기화 되었다.

“장시간 결정이 나지 않는군. 율법에 따라 가장 연장자인 내가 결정내리겠다. 동의하나?”

팔다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동그라미 육체를 보유한 리자드맨 로드가 말했다. 모두가 동의하며 그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끼라락. 남쪽으로 간다. ‘죽지 않는 자’를 만날 확률이 높은 동쪽은 가고 싶지 않군.”

최연장자인 그도 ‘죽지 않는 자’를 직접 겪었다. 그는 ‘죽지 않는 자’와 만나는 것보다는 오크와의 끝없는 전투가 낫다고 결정 내렸다.

< 87 수면위로 떠오르는 비텔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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