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수면위로 떠오르는 비텔교 >
“멍청한 인간 놈. 신에게 잡아먹혔다.”
신은 위대하다. 피조물과는 그 격이 다르기에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를 몸 안에 받아들여 느끼는 것은 피조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까지 느끼게 한다.
‘신에게 잡아먹혔다.’는 말은 그 감정의 한계를 경험한 후 그것에 중독되고, 사로잡혀 자신을 잊고 맹목적으로 신을 따르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아이에서 어엿한 전사가 되는 기간에 오크는 어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 어미들이 가장 강조해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넌 너다.’라는 것이다.
내 목표는 명예로운 전사 그락카르로서 카록께 가는 것이지 카록의 광신도로서 그분의 곁에 가는 것이 아니다. 오크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신의 목소리를 듣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경험이기에 아무리 명예로운 오크라고해도 그것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있다.
“맹목적으로 신을 따르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신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맹목적인 광신도는 신도 바라지 않는다. 광신도는 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 그들은 신의 말씀을 왜곡해서 실천한다.
그들은 사냥, 식사, 암컷과 아이의 보호, 형제들과의 협력 등 명예로운 전사로서 해야 할 모든 것을 저버리고 맹목적으로 전투만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형제 없이 홀로 적을 찾아 떠돌다가 죽는 경우도 있고, 싸울 적이 없으면 형제들에게 덤비기까지 한다.
보통 카록의 음성을 직접 들을 정도면 위대한 전사다. 나도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을 정도니까. 여하튼 그렇게 잡아먹힌 자들은 형제들을 이끌고 사지로 뛰어들든, 적이 없어 형제들에게 덤벼들든, 여러 형태로 형제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죽어간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형제를 공격하는 순간 명예를 잃고, 명예를 잃은 전사는 카록께 갈 수 없거늘.
지금 꿈속의 인간이 딱 그런 상황이다. 안 그래도 나약하고 멍청한 인간인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를 받아들이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신에게 잡아먹힌 거다.
현명한 나라면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멍청한 인간. 나를 반만이라도 쫓아왔으면 괜찮았을 것을... 그러지 못해 맹목적인 광신도가 되었구나.
***
“... 광신도 놈에게 광신도 소리를 듣다니.”
돌아이 그락카르에게 정상적인 내용으로 혼나다니.
그래도 이틀 연속으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그락카르에게 미쳤다고 혼났더니 약간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다. 예전에 껌도 숨겨놓고 혼자 씹고 다니던 스크루지보다 더 짠 구두쇠 놈이 나 월급 받았다는 소리 듣고 밥 쏘라고 했었다. 싫다고 했더니 ‘구두쇠. 그렇게 살면 안 돼.’라는 소리 들었었지. 그때 진심으로 엄청나게 짜증났었는데 지금은 더 짜증난다. 미친놈한테 미쳤다는 소리를 듣다니.
짜증나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 고맙다. 그락카르.
그락카르가 아니었다면 이 상태를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아니. 영원히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벗어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상태였을 수도 있고 말이다.
잔뜩 고양되었던 감정이 이제야 겨우 아주 조금 가라앉은 것 같다.
당시엔 정말 비텔님께서 ‘당장 목숨을 내놔라!’라고 하면 자살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는데 말이야. 물론 비텔님께서 그런 말을 할리 없지만. 여하튼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마치 마약에 잔뜩 취했다가 깨어난 기분이랄까? 지금도 아직 어느 정도는 취해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겨우 약간은 정신을 차리긴 한 거 같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 정도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전에 내가 ‘그분을 알리는 데 기계와 방송의 힘을 빌리지 마라.’라고 했던 것도 무시하고 직접 방송에 나가 ‘착취하는 손’이나 헌금, 내 괴력 등 모든 것을 보여줘 비텔님을 알리려고 했었다.
오늘 방송국에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그걸 진짜 실행했으면...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인이 내가 비텔교의 교주란 걸 알게 되겠지. 나중에 결국 내가 교주임을 드러내긴 할 거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방송에 나와서 비텔교 교주니 뭐니 하면서 능력을 보이고 하면 오히려 비텔교 발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세력 확장은 빨라지겠지만 단번에 전 세계 종교를 적으로 돌리게 될 테니까. 테러집단 수백 명이 날 죽이겠다고 한국으로 몰려왔을지도...
어우. 생각만 해도 무섭다.
이래서 그락카르가 광신도는 신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고 잔소리 한 모양이다. 그 놈 말에 수긍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비텔님의 목소리는 다시 들어봤으면 좋겠네.
몇 마디 듣고 정신이 나가버렸지만, 그걸 반대로 생각하면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약이 이럴까? 아니다.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마약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마약으로 그런 쾌락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면? 전 세계인이 마약을 하고 있을 거고, 마약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절대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내가 느낀 건 그 정도였다.
그 정도로 강력한 중독을 그락카르의 잔소리만으로 벗어난 것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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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무시 : 어떤 질병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굳건한 영혼 : 정신력을 강화한다. 저주 스킬에 대한 방어력을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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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영혼’이라는 스킬이 ‘신에게 잡아먹힌’ 그 상황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운 걸 거다.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력이니까. 중독과 관련 있겠지. 조금은 의지가 강해진 느낌도 있다.
저 스킬을 준 걸 보면 비텔님께서도 어느 정도 내가 중독될 것을 예견하셨던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서 저 스킬을 준 것이고 말이다. 어쩌면 저 스킬을 주면 중독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그런거라면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비텔님의 기대에 못 미친 거니까. 다른 신도들은 몰라도 교주인 나는 중심을 딱 잡고 있어야 했는데.
이번 경험으로 신의 위대함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잠깐 영접한 것만으로도 그 정도 영향을 받다니. 지금도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니다. 아니. 완전히 빠져나온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 경험을 하고서? 모르겠다.
그 날의 후폭풍은 이것만이 아니다.
=장관 둘, 국회의원 스물일곱이 입원하다. 국정원, 북한의 화학테러일 가능성 높다고 발표.
=살인마 구달팔 중태.
=가수 권선, 급성 신부전증으로 입원.
사회는 ‘폭발하는 업보’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혼란의 극치다. 기업 오너가 입원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저들 대부분이 우리 신도가 ‘폭발하는 업보’를 걸어 질병에 걸리게 만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비텔님 감사합니다. 제가 드디어 그 빌어먹을 놈에게 복수했어요. 오늘 만났는데 안색이 창백하더라고요. 밥을 잘 먹지도 못하고. 뭔가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어요. 저번에 절 괴롭힌 대가를 치르게 해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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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자 : 시솔
기여부분 : 기도
-그저께 비텔님의 힘을 받자마자 국회의원 김갑오에게 썼습니다. 오늘 그 간악한 놈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것 같습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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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자 : 우본
기여부분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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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자 : 우본
기여부분 : 헌금
이렇게 기도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신도들은 자기가 어떤 인간에게 ‘폭발하는 업보’를 썼는지 상세하게 비텔님에게 보고했다. 개중에는 자기가 어떤 악인에게 벌을 내렸다고 엄마 칭찬을 바라는 어린 아이처럼 자랑하는 사람도 많았다.
문제다. 1만 명의 심판자가 생긴 거다. 의외로 스킬의 위력이 강해서 더 문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력이 더 강하다. 몇몇 유명인들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픽픽 쓰러지는 동영상도 인터넷에 몇 개 올라왔다.
스킬의 위력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그들이 쌓은 업보가 그렇게 심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 대부분 악명 놓은 사람들이었으니까.
어제 아직 제정신이 아닐 때, 그런 기사와 영상을 보고 곧바로 ‘비텔의 목소리’를 사용해 신도들에게 경고했다.
‘비텔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시라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선한 이에게는 능력의 사용을 자제해라. 혹시라도 능력을 잘못 사용해서 비텔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제정신이 아닐 때 혹시라도 비텔님께 피해가 갈까봐 해둔 으름장이지만 지금 제정신일 때 생각해도 잘한 거 같다. 저렇게 경고해두면 능력을 쓰기 전에 잘못 쓰는 건 아닌지 한 번은 생각해보겠지. 제정신이 아닌 광신도 상태일 때도 괜찮은 사람이라니. 역시 난... 크으.
‘폭발하는 업보’ 문제를 제외해도 그 날의 여파로 생겨난 문제는 여전히 문제는 더 있다. 바로 ‘신에게 잡아먹혔을’ 사람들이다.
나도 비텔님께 잡아먹혔을 정도다. 그 경험을 하고서 잡아먹히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그래도 그락카르의 도움과 비텔님께서 주신 스킬 덕분에 이틀 만에 빠져나오긴 했는데 다른 신도들은 그러지 못할 거란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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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12,047명
교단 기여 포인트 : 635,398
헌금 : 3,462,97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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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틀만에 신도가 2,000명이 늘었다. 거기에 헌금도 미친 듯이 쏟아지더니 20억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역시 신도가 1만 명이 넘으니까 헌금의 스케일도 급격히 올라간다. 거기에 그런 기적을 겪고 난 뒤니까 더욱 많은 헌금을 하려고 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아까 인터넷에 비텔님을 검색해봤다. 몇 개가 검색됐다. 그 날 전에는 단 하나도 검색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비텔이란 신에 대해 알아요? 오늘 누가 나한테 비텔을 믿으라고 하던데. 하나님 믿는다고 하니까 그냥 보내주더라.
-오늘 사이비종교한테 붙잡힘. 무슨 비텔인가 뭔가 하는 신을 모신다고 하던데. 그냥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고, 기도만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다.
-우리 동네에 이상한 현수막 달림. 아무 것도 없고 ‘비텔님을 믿어라!’라는 글만 쓰여 있던데. 근데 비텔이 누구냐. 외국 가수임?
-신 이름이 비텔이 뭐냐. 차라리 모텔이라고 해라.
저 마지막 글은 순간적으로 내 분노를 끌어올렸지만 겨우 참았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어제 걸렸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널 찾아내서 바로 척살했어. 곱게 죽이지도 않았을 거야. ‘약속의 무게’로 격통을 걸어서 엄청 괴롭히다가 죽였을 걸.
그래도 내가 하지 말라고 한 걸 지키기는 하는 모양이다. 비텔교 신도가 직접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경우는 없고,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하면 그냥 보내준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여하튼 이렇다. 예전에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에게만 조심스럽게 전도하니까 인터넷에 비텔님의 이름이 절대 오르내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틀 전 그 날 이후로 신도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도하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 단 이틀 만에 2,000명이란 엄청난 수가 새 신도가 된 거겠지.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전도를 시작하면 교세가 급속도로 확장되겠지만 적도 빠르게 늘어날 거다. 아까 제정신을 차린 후 다른 신도들을 설득하기 위해,
‘신께서는 그분의 아이가 신께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좋아하신다. 너무 교단에 얽매이지 마라.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그분의 기쁨이니...’
라는 말을 ‘비텔의 목소리’로 하긴 했지만 그게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다. 나도 어제였으면 그런 말은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바로 오른쪽 귀로 나갔을 테니까.
좀 자제합시다. 신도들이여.
< 85 수면위로 떠오르는 비텔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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