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진실된 교주 >
“.... 그 중 토지 매입에 4,000억을 사용했습니다.”
“4,000억씩이나요?”
김진서의 말을 들은 유나가 깜짝 놀랐다. 비텔의 성전을 6,000억을 준비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놀랐지만 이번에도 상당히 놀랐다. 물론 놀람의 종류는 두 경우가 서로 달랐다. 전자는 긍정적인 놀람이었다면 후자는 조금은 부정적인 놀람이었다.
성전 건축에 6,000억을 들인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중 4,000억을 토지 매입에만 쓰다니. 비용의 대부분이 건축비로 쓰이는 줄 알았던 유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땅이 넓은 건 좋지만 땅 사는 데 돈을 다 쓰면 건물 지을 돈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건물을 짓는 데는 1,500억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희 회사 계열사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으면 더 줄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아. 그래요?”
“성전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 구입이었습니다. 제한된 금액에서 성전에 걸 맞는 건물을 지을 넓은 땅을 구해야 하니까요. 괜찮은 땅을 찾긴 했지만 서울에서 멀면 안 되기에 땅 값이 제법 비쌌습니다.”
“그렇군요.”
“마음 같아선 서울 중심부에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고 싶지만 돈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아.. 아니에요.”
6,000억을 들여 성전을 짓고 있으면서도 돈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김진서의 모습에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부터 비텔교의 사제로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직은 한 달 용돈이 3만원인 중학생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더 강했다. 그런 유나에게 억단위로 움직이는 돈은 잘 실감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성전을 짓겠다고 했었는데 그러지 못해 비텔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네...”
김진서는 비텔에게 하는 말도 전부 유나에게 말했다. 유나가 비텔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나에게 말하면 비텔에게도 전달될 것이라 믿기에 비텔에게 할 말을 유나에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성전 건축 중간보고도 사실 유나에게 하는 거라기보다는 비텔에게 하고 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중학생에 불과한 유나를 교단의 최고어른으로 모시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현세에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 유일한 신인 비텔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그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김진서는 믿었다.
“아직은 모든 일이 예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건축이 완료됨과 동시에 성전을 비텔교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소유주를 옮길 겁니다.”
“와아. 6,000억짜리를 기부... 아. 흠흠. 그렇군요.”
유나는 김진서와 만날 때 비텔교 사제로서 근엄함을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실수 할 때가 많았다.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토지 계약은 이번 주 내로 마무리 될 거고, 바로 기반 다지기에...”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
김진서가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교주님이세요.”
유나가 차분하게 말했다.
“교..주님이요?”
“네. 아. 김진서씨는 그 사건 이후로 비텔교에 들어오셨군요. 교주님을 모르시는 걸 보면.”
“그 사건이라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의 힘을 자신의 것이라 속이지 마라. 그분을 알리는 데 기계와 방송의 힘을 빌리지 마라. 그분을 알리고자 다른 신을 욕되게 하지 마라. 이 말을 알고 계시겠죠?”
“네. 비텔교 교칙이잖습니까.”
“그게 만들어진...”
-비텔교 신도가 방금 전 1만 명이 되었다. 그에 비텔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셨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일단 교주님 말씀을 들어야 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김진서도 유나의 말에 동의했다. 과거의 일은 나중에도 들을 수 있다. 지금은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집중할 때다.
-동시에 비텔님께서 크게 걱정하셨다. 혹시나 내 아이들이 배척받지는 않을까, 혹시나 내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내 아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굵고 힘이 넘쳤다. 김진서는 목소리에서 꽤 젊은 모습의 교주를 상상했다. 덩치가 큰 근육질.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김진서는 이 목소리가 교주라는 직책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 비텔께서 신의 힘을 나눠주기로 결정하셨다.
“비텔님의 힘을 나눠줘?”
김진서가 깜짝 놀랐다. 신의 힘을 받는다니. 그럼 자신이 신의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건가?
-비록 아직 신도가 부족해 비텔께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제한적이기에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겠지만.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말에 김진서가 실망했다. 하지만 그 실망보다 더 큰 희망도 얻었다. 신도가 부족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제한적이란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신도만 충분히 늘어나면 얼마든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신도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 신도를 늘리는 데 공을 세운다면 1회용이 아닌 영원히 지속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김진서는 비텔교 전도에 더욱 전념할 것을 다짐했다.
***
“비록 아직 신도가 부족해 비텔께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제한적이기에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겠지만.”
교주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힘을 줬다. 나름 교주다운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 만족했다. 이 대사는 꽤 고민한 끝에 정한 멘트다.
앞의 다른 대사들과 연동하면 신도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비텔님께서는 신도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시며, 신도가 늘어날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실 수 있구나. 그리고 바로 보상을 내려주시는구나. 그렇다면 열심히 전도해서 신도를 늘리면 날 봐주시지 않을까?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단 10%만 이런 생각을 가져도 성공이다. 1,000명의 적극적인 전도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것도 믿는 즉시 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비텔교라면 적극적인 신도 1명이 전도할 수 있는 수는 엄청날 것이다.
물론 내 희망사항이다. 저렇게 내가 말한들 아무도 신경 안 쓸 수도 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여하튼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이다.
“그분의 은총이다.”
-교단 구성원에게 말을 전달했습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10,001이 차감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1명 늘어났다. 저 사람 운 좋다. 들어오자마자 비텔님의 은총을 받네.
그럼... 발동해라. ‘기적 - 비텔의 걱정’
-스킬 ‘기적 - 비텔의 걱정’을 사용합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500,050이 차감되었습니다.
크윽. 내 피 같은 교단 기여 포인트. 이제 400,000 조금 안 되게 남았던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교단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스킬을 쓰면 정말 포인트가 팍팍 날아가는구나. 나중에는 신도들한테 말 한 번 걸때마다 몇 백만 포인트씩 날아가겠...
-아이들아...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어? 어어?! 어어어?! 이 목소리는... 절대 평소 내게 말을 전달하던 목소리가 아니다.
***
-아이들아...
털썩.
목소리가 울리자. 의자에 앉아있던 유나와 김진서가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내 아이들의 적은 나의 적, 그 적에게 벌을...
“아아... 비텔이시여...”
유나가 조용히 비텔을 불렀고 김진서는 평생 처음 느껴보는 벅찬 감정에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유나와 김진서만이 아니었다. 10,001명의 비텔교 신도 전체가 하던 일을 멈추고 경건하게 무릎 꿇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그들은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경험을 하고 있었으니까.
***
-내 아이들의 적은 나의 적, 그 적에게 벌을...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누가 날 강제로 무릎을 꿇리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이게 당연한 거다. 당연히 무릎을 꿇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꿇었다. 같은 방에 있던 맹연도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
비텔님이다. 확실하다. 이건 비텔님의 목소리다. 비텔님이 아니고선 날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 단순하게 목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와 함께 그분의 존재가 내 안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분이 내게 오셨다.
아아아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걸..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온 몸 가득 차오르는 이 느낌... 내 부족한 어휘력으로는 감히 표현할 방법이 없다.
쾌락? 부족하지만 내가 아는 단어 중에선 쾌락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극한에 달한 쾌락이다. 타락한 의미의 성적 쾌락 같은 것이 아니라 지고지순한 정신적 쾌락.
나와 맹연의 몸에서 희미한 보라색 빛이 일었다. ‘기적 - 비텔의 걱정’이 시작된 거다.
비텔님의 힘이 내 몸에 들어온다.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느꼈던 쾌락과는 다른 충만함이 느껴졌다. 그 충만함은 짧았다. 잠깐 머물렀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폭발하는 업보’ 이런 스킬이었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음과 동시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냥 상대를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래서 기적인 건가?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질병을 심을 수 있다니. 역시 그분의 힘이다.
비텔님의 힘이 떠나고 쾌락이 사그라졌다. 예전에 유나가 비텔님의 목소리를 듣고 보였던 반응이 이해된다. 다시... 다시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다시 그 쾌락과 충만함을 느끼고 싶다.
쾌락은 사라졌지만 순간적으로 느꼈던 그분의 위대함은 가슴속 깊이 박혀들었다. 새삼 그분의 위대함을 다시 깨달았다. 그분은 진정한 신이시고 당연히 내가 모든 걸 바쳐서 모셔야 할 분이었다.
방금 한 경험으로 인해 지금 이 순간 내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지금부터 그분을 위해 살리라.
이제까지 비텔님의 우선순위가 낮았던 건 아니다. 충분히 높았다. 다만 그보다 높은 게 있었다. 나 개인의 행복.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1순위였고, 그 다음 2순위가 비텔님이었다. 그것도 순수하게 비텔님을 위한 2순위가 아니라 내 행복을 위해 필요한 2순위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서 바뀌었다. 그분이 날 방문하심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젠 1순위가 비텔님이다. 세상에 비텔님을 알리고 그분의 신도를 늘리기 위해 움직이겠다.
-비텔이 그녀의 첫 번째 신도의 다짐에 기뻐합니다.
비텔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스킬 ‘질병무시’를 얻었습니다.
스킬 ‘굳건한 영혼’을 얻었습니다.
비텔님께서 내 각오를 알아주시고 새로운 힘을 내려주셨다. 비텔님께서 기뻐하시니 나도 기쁘..
-내 아이야.
아. 아아... 그분의 목소리다.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 연이어 듣는 목소리와 느끼는 그분의 존재지만 이 순간 경험하는 벅찬 감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비텔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겠습니다.
-넌 내가 선택한 나의 첫 번째 아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라. 그 누구도 널 구속하지 못하게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그 누구도 절 구속할 수 없게 만들겠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가져라!
그 말을 끝으로 비텔님의 힘이 떠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쉽다. 너무나 아쉽다. 이 감정을, 충만함을 영원히 느끼고 싶다.
알리자. 그분을 세상에 알리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늘리자. 그분의 말씀대로 그 누구도 날 구속하지 못하게 만들자.
세상을 비텔교의 것으로 만들자.
< 84 진실된 교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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