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죽음을 끊다 >
“하.. 할게! 할게!”
‘약속의 무게’를 사용했다. 아까 심문했던 녀석과 똑같이 약속으로 ‘내 질문에 진실만을 말하고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를 벌칙으로 ‘전신극통’을 지정했다.
“저를 납치하고 죽이려고 하는 걸 여기 없는 사람에게 말한 적 있나요?”
“... 무.. 물론이지! 날 죽이면 전부 너를 의심.. 끄아아아아아아악!”
말하다말고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구른다. 거짓말이군. 그런데 전신극통이 도대체 어느 정도 고통이지? 아까 그 인간도 정말 힘들어하던데. 조금 아픈 정도론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없다.
“없어! 없어! 나만 알고 있어! 허억. 허억.”
고통이 멈췄다. 진실이구나. 하긴... 사람 납치, 살해한다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닐 수는 없겠지.
“잘 생각해보세요. 혹시 그쪽이 여기서 죽었을 때 내가 죽인 거라고 의심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살려줘. 나 죽으면 아버지가 조사할 거야. 그러면 네가 관련 되어 있다는 걸.. 크어어어어억!”
또 거짓말이다. 차분히 기다렸다.
“어.. 없어! 아무도 모를 거야! 크헉. 크허헉.”
고통이 멈췄는지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른다. 없다는 거군. 잘 됐다. 그거면 됐다. 더 이상 고은형에게 용건이 없다. 손바닥을 고은형의 심장에 올렸다.
“사.. 살려... 줘.....”
고은형은 살려달라는 말을 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김설중만 남았나. 그 녀석에게만 나에 대해 아는 녀석이 있는지 알아보고 없다면 모든 게 끝난다.
깡! 깡! 깡!
음? 공장에서 소리가 들려서 가 열었다. 여자가 쇠파이프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쇠파이프로 문을 두들긴 모양이다. 남자들이 쓰러져 있던 쪽을 보니... 처참하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살아있는 녀석은 없다. 더 이상 놈들의 영혼 색을 볼 수 없었으니까. 시체에게선 영혼의 색이 사라진다. 무색, 아니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렇기에 난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착취하는 손’을 써서 죽일 때도 영혼의 색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용했었다.
문을 열어주고 다시 돌아와 김설중의 컨테이너로 돌아갔다. 질리지도 않는지 밖에서 고은형을 상대하는 동안 또 입구 쪽으로 기어와 있었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는지 아까보다 더 많이 기어와 있었다. 이 정도면 말할 기운은 충분하겠지.
다시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가 의자에 앉혔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알죠. 날 죽이려고 한 사람.”
“... 여기 있는 게 전부가 아냐. 내일부터 당장 수백 명이 널 쫓기 시작할거다.”
“됐고, 저랑 약속 하나 하죠.”
“약속? ... 너구나. 요즘 약속의 형태로 최면을 거는 최면술사가 있다더니.”
유명해졌구나. 나.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네.
“그래서 고은형이 널 죽이려 한 거군. 빌어먹을. 손해 보는 짓을 했어. 더 비싸게 불렀어야 했는데.”
“내 질문에 진실만을 말하고 반드시 대답해주겠다고 약속해주시겠어요?”
“안 하면 나한테 고통을 주겠지?”
고은형의 비명소리를 들은 걸까? 잘 아네. 진도가 빠르...
“그리고 약속하면 하고 싶은 걸 하고나서 날 죽이겠지. 무슨 고통이든 가해봐라. 절대 약속은 하지 않는다.”
진 않겠네. 오른팔을 두 손으로 잡고 비틀었다.
빠각.
크흡! 으..으으읍.”
뼈만 부러진 게 아니라 힘줄도 몇 개 끊어졌을 거다. 상당히 아플 텐데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을 앙다물고 있다. 연이어 왼팔도 비틀었다. 역시나 참아낸다. 오래 걸릴 거 같다. 손가락 하나하나 부러뜨려나가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를 부러뜨려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조금 전 들어오는 인기척을 느꼈지만 입구 쪽에 가만히 서 있기에 그냥 놔뒀었다.
“김설중은 밑바닥에서 독기 하나로 지금의 자리로 올라온 인간이에요. 뼈를 부러뜨리는 정도로는 절대 말하지 않아요.”
“크크크. 초..초란이 네년이 자..잘 알고 있구나.”
김설중이 고통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초란이라. 저 여자 이름이 초란인가?
“지랄 마. 김설중. 내 이름은 초란이 아니라 연이야. 맹연.”
맹씨도 있었나?
“희망이 없게 만들어야 해요.”
김설중에게 한 번 쏘아붙인 여자가 다시 나에게 말했다.
“희망이요?”
“네. 뼈는 부러져도 다시 붙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렇게 버티는 거예요. 그러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줘야 해요.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살하고 싶게 만들어야 해요.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죽자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해요.”
“이.. 이 썅년이 안 닥쳐!”
김설중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맹연이 약점을 제대로 짚은 모양이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발가락을 하나씩 잘라요. 그 다음엔 발목...”
“씨발. 개 같은 년아! 저년 말 듣지 마! 그냥 이상한 소리 하는 거니까!”
김설중이 악을 질렀지만 맹연은 천천히 할 말을 다 했다.
“이쪽 세계는 팔 병신은 현역으로 활동해도 다리 병신은 은퇴해야 해요.”
그런 게 있군.
“다리 다음에는 혀, 그 다음은 눈.”
“손은?”
“손은 건들 필요 없어요. 그리고 혀가 없어지면 손으로 적기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그렇군.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갔다. 아까 공장에서 톱이 있는 걸 봤다. 톱을 가져오며 망치도 가져왔다. 톱으로 썰어서 잘라내는 것보단 망치로 으깨버리는 게 더 빠를 테니까.
“허. 씨발... 나도 이제 끝났군.”
내가 들고 오는 톱과 망치를 본 김설중이 체념하듯 말했다.
“하지. 약속인가 뭔가. 그거 하겠어. 대신 고통 없이 죽여줘.”
“약속하지.”
김설중에게 ‘약속의 무게’를 걸었다. 고은형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여기 있는 녀석들 말고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나?”
“널 데려오던 3명은 죽였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없다.”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진실이군.
“네 죽음을 나와 연관 지을 사람이 있을까?”
“일을 하다가 그게 잘못 돼서 죽은 건 알겠지만 너와 연관 지을 녀석은 없을 거다. 네 얼굴을 알고 있는 녀석들은 전부 이곳에 와 있으니까.”
내가 부러뜨린 곳의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긴 하지만 앞서 두 명이 보였던 격통에 대한 반응은 없다. 하지만 뼈 부러뜨리는 것도 참아낸 녀석이다. 격통도 버틴 것 아닐까?
기다렸다. 5분이 지나도 별다른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전신 격통을 5분동안 태연히 버틸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
“약속 하나만 더 하죠.”
“마음대로 해라.”
같은 내용을 약속하고 벌칙으로 ‘전신마비’를 추가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질문했고 같은 대답을 들었다. 김설중은 잘 움직였다. 진실이군.
“됐다.”
이제 죽여야 겠...
“잠시만요.”
다는 생각을 한 순간 맹연이 말을 했다.
“뭘 하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 김설중이 진실을 말했다고 믿으시는 거죠?”
“네. 저와 약속한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질문 내용을 보면 이번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더 물어볼 게 있어요.”
더 있다고?
“뭐죠?”
“몰래카메라나 녹음기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는지 물어보세요.”
“너 이 개 썅년이!”
김설중의 반응을 보면 뭔가 숨겨진 게 있다. 바로 물어봤다.
“없다. 끄... 끄어어어어어억!”
격통이 시작됐군. 거짓말이다. 버텨보려고 한 김설중이었지만 조금 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 독종이 저런 반응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거야?
김설중도 격통엔 버틸 수 없었는지 곧 카메라와 녹음기의 위치를 댔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카메라 4개와 녹음기 3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많이도 설치해놨군.
“비밀계좌도 물어보세요.”
“장부 위치를 물어보세요.”
“자료 모아두는 컴퓨터와 백업 장치에 대해서 물어보세요.”
맹연이 물어볼 질문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김설중이 욕을 했고, 거짓말을 했다가 격통 끝에 진실을 토해냈다.
반 정도는 김설중 패거리가 쓰는 빌딩 최상층에 있었지만 나머지 반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여기 컨테이너에도 몇 개 있었다.
통장 2개와 외장하드 1개를 찾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부숴 하드를 꺼냈다. 여기에 장부의 일부와 의뢰인들이 의뢰를 할 때의 영상과 음성이 녹음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통장은... 이거 얼마야. 0이 9개다. 각각 40억과 60억이 들어가 있었다. 합쳐서 100억이다. 비밀번호까지 건네받았다.
워... 100억이라니. 이 돈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자. 혹시나 누군가가 추적해올 수도 있는 돈이니까.
현금도 꽤 있었다. 5만원권으로 가득 찬 가방 하나도 발견했다. 가방 하나에 15억이 들어있었다. 다른 건 전부 숫자만 보여서 실감이 안 나는데 이건 지폐로 직접 보니까 실감난다. 엄청나구나. 정말...
돈 가방에 하드와 외장 하드도 전부 집어넣었다.
“이젠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죽여.”
죽여야지. 다가가서 ‘착취하는 손’을 쓰려고 했다.
“제가... 제가 죽이게 해주세요.”
맹연이 말했다.
“제발...”
“씨발! 고통 없이 죽여준다고 했잖아! 그냥 죽여!”
약속하긴 했지만... 난 그락카르가 아니라 인간 한상이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맹연이 쇠파이프를 들고 김설중에게 다가갔고 곧 쇠파이프 휘두르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이어졌다.
김설중을 맹연에게 맡기고 난 다시 공장으로 갔다. 아까 기름통으로 보이는 것을 몇 개 봤었다. 가서 확인하니 확실히 기름이다. 그걸 공장 내부에 골고루 뿌리고 밖으로 나와 각 컨테이너에 뿌렸다.
기름의 양이 꽤 많아서 전부 충분히 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기름통 하나를 들고 김설중과 맹연이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퍽. 퍽.
여전히 맹연이 김설중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김설중의 영혼 색이 보이지 않는다. 다가가서 맹연의 팔을 잡았다.
“죽었어요.”
“... 그런가요.”
그녀는 태연히 말했지만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태연한 척 하긴 했지만 받은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공장에서 챙겨온 옷을 다시 맹연에게 줬다.
맹연을 밖으로 내보내고 컨테이너 구석구석을 기름으로 적셨다. 고은형과 덩치 둘의 시체도 가져와 김설중과 같은 컨테이너에 집어넣었다.
차량에도 기름을 뿌렸고 남는 기름을 길바닥에도 뿌리고 숲속에 숨겨뒀던 마취총을 챙겼다.
“이리 오세요.”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맹연을 안아 들었다. 맹연이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차를 끌고 나갔다간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마취총에, 돈가방에, 맹연까지, 적어도 100kg 이상을 들었지만 내 움직임은 가벼웠다.
미리 챙겨둔 라이터를 켜 기름에 불을 붙였다. 불이 천천히 옮겨 붙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서 컨테이너와 공장 전부에 불이 옮겨 붙는 걸 확인한 후 산길을 통해 움직였다.
언제 집까지 걸어가나...
***
아침이다. 눈을 떴다.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암컷이 누워있다.
드르릉. 퓨후.. 드르릉. 퓨후..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곤히 잘 자고 있다. 어제 꿈에서 본 인간을 떠올렸다.
자기에게 맡겨달라기에 어떻게 하려는 건지 지켜봤지만 결국 싸우는 거였다. 그렇게 감질나게 싸우느니 차라리 내 방식대로 적 근거지에 쳐들어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할 무렵, 어째서 인간이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을 제압했음에도 바로 죽이지 않고 생기를 빼앗아 천천히 괴롭게 죽이고 적의 우두머리에게는 특별히 시간을 들여 고문하기까지 했다.
멍청한 척 하더니 잔혹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잔혹함 또한 전사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중에 하나.
“크흐...”
조금은 마음에 들었다.
< 81 죽음을 끊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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