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죽음을 끊다 >
마지막 남자까지 죽이고 차안을 뒤졌다. 쇠파이프와 장갑을 찾았다. 쇠파이프가 좀 짧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장갑을 끼고 혹시 몰라 차 안과 시체를 한 번 싹 닦았다. 내 지문 같은 거 나오면 큰일이니까.
시체 중 나보다 몸집이 큰 녀석 옷을 벗겨 내 옷 위에 입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이 녀석들과 달리 내 옷은 너무 캐쥬얼해서 쉽게 눈에 뛸 거다.
마지막으로 운전해서 경사가 가파른 도로 옆으로 움직여 도로 밖으로 굴렸다.
너무 외진 곳이라 쉽게 발견되지 않을 거다. 발견돼도 나랑 연관 지을 수 없겠지.
산길을 통해 들어둔 공장 위치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공장으로 보이는 큰 건물 하나와 컨테이너 건물 네 개가 보였다. 저게 공장인가. 상당히 낡았다. 청부업자들이 쓰는 곳인데 정상 영업되고 있을 리가 없지.
정면은 훤해서 빙 돌아 접근했다. 보초를 서는 놈은 없었다. 하긴 이런데 누가 쳐들어온다고 보초를 서겠어. 최대한 몸을 숙이고 천천히 움직여 창문을 통해 컨테이너 건물을 전부 확인했다.
하나는 식당이었고 하나는 2층 침대가 잔뜩 있는 침실, 하나는 휴식공간인지 TV와 여러 가지 오락기구가 있었다. 침실은 불이 꺼져 있어서 몇 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휴식 공간엔 2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아까 그놈이 이곳에 대충 20~30명 쯤 있을 거라고 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20명 조금 넘는 수. 이게 끝일 수도 있지만 공장 안에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 난 그락카르처럼 맷집이 강하지 않다. 몇 명이 남아서 뒤통수를 치면 당할 수도 있다.
남은 마지막 컨테이너에는 한 명만 있었다. 제법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는 곳에 혼자 있는 걸 보면 저 놈이 두목이겠지. 아까 그 놈이 ‘총은 큰형님이 갖고 계셔.’라고 말했었다. 마취총도 무섭지만 총이 가장 무섭다. 우선 총 든 녀석부터 제압해야한다.
잔뜩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컨테이너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도록 살짝 숙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야?”
이제 다가가서 총 꺼내기 직전에 제압하면 된다.
“너... 누구냐?”
그리곤 급하게 움직여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땅을 박차고 날아 단번에 두목에게 날아갔다.
뻑!
발로 머리를 차니 의자에서 넘어져 나뒹굴었다. 꽤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팔을 움직여 품에서 뭔가를 찾는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왼손으로 품에 넣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전력으로 ‘착취하는 손’을 사용했다.
“으읍! 읍! 으....”
두목이 격렬하게 반항했지만 10초 정도 생기를 빨아들이니 축 늘어졌다.
이대로 죽일까? 아마도 이 녀석이 최종적으로 날 죽인 녀석일 거다. 지금의 내가 총이 아닌 것에 당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락카르가 말을 걸기까지 적어도 수십 번을...
이놈이 날 수십 번 죽였다고 생각하니 ‘착취하는 손’을 멈추기 싫었다. 하지만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이놈이 살아있는 게 필요하다. ‘착취하는 손’을 멈췄다.
손을 뗐다. 두목은 조금 과하게 생기를 빨려서인지 축 늘어졌다.
총과 폰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내부를 뒤졌다. 분명 마취총도 두목이 관리한다고 들었다. 한 쪽에 긴 철제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그걸 여니 마취총 3개가 들어 있었다. 이게 전부인가? 아까 그놈도 총은 하나가 확실하지만 마취총은 몇 개인지 모른다고 했다.
일단 마취총도 챙겼다. 혹시 몰라 컨테이너 내부를 싹 뒤졌다. 마취총이나 총은 더 이상 없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숲속에 가 마취총을 숨겼다. 총은 챙겼다.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음으로 침실로 쓰이는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하나 입과 심장부위를 덮어 ‘착취하는 손’을 사용했다.
“으으으읍.”
여섯이 자고 있었고 단 하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잠들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겠지.
그리고 20여명이 모여 있는 컨테이너로 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음에도 신경 쓰는 사람이 몇 명 없다. 대부분 TV를 보거나 당구, 게임 등을 하고 있다. 날 쳐다본 사람은 끼어서 놀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문 옆에 서 있던 녀석들이다.
“누구...”
그 중 하나가 날 보며 물었다. 바로 반말을 못하는 걸 보면 아랫놈인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혹시나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일단 말끝을 흐리는 거다.
대답하지 않고 컨테이너 안을 살폈다. 혹시 아까 두목의 컨테이너에서 봤던 마취총 담는 상자가 있지는 않은지, 꺼내져 있는 마취총이 있지는 않은지...
“누구신지...”
재차 물었지만 역시나 무시하고 살폈다.
“누구야? 저건. 시발 VIP 벌써 온 거 아냐?”
TV를 보던 사람 중 하나가 날 발견하곤 말했다. 그 말에 몇 명이 식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살폈다.
“아닙니다. 새로 들어온 차 없습니다. 아직 목표물 실은 응선 형님 차도 안 왔습니다.”
“그래? 시발. 깜짝 놀랐네. 야. 밖에 몇 명 세워둬라. 우리 모르게 VIP라도 오면 큰형님한테 작살난다.”
“네. 알겠습니다. 밖에 애들 세워두겠습니다.”
없다.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보이는 곳엔 없다.
“근데 저 새끼는 뭐하는...”
퍽! 빠각!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남자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머리뼈를 부쉈다.
“이 개새끼가! 뭐하는 짓이야!”
“뭐야! 뭐!”
“뭐하는 새끼야! 김천파냐!”
일제히 일어나 덤벼온다, 새까맣다. 좁은 컨테이너에 영혼색이 하나같이 검붉은 놈들만 모여있다 보니 불이 꺼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저런 놈들이라면...
빡! 뿌드득.
여전히 거부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많이 줄어들었다.
“시발 죽여!”
모두 잡히는 거 아무거나 들고 내게 덤벼든다.
퍽! 퍼퍽! 뻑! 뻐버버버벅!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이 쓰러졌다.
“아아악!”
“어어어억.”
“끄으으으으.”
5분. 단 5분만에 22명의 남자를, 그것도 싸움을 주업으로 삼는 청부업을 하는 폭력배들을 쓰러뜨렸다. 정말 약하다. 개인적으로 지금 내 무력이라면 양손검병 하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일방적이라니.
그락카르가 이 세계에 나타나서 날뛰기라도 하면 미사일이라도 쏴야겠는데.
쇠파이프에 ‘착취하는 손’을 둘렀다. 그리고 하나하나 심장에 가져다 대어 확실하게 죽였다. 때려 죽이는 게 편하고 빠르겠지만 아직 머리를 터뜨리고 하는 건 힘들다. ‘착취하는 손’을 사용하면 죽이는 건 똑같지만 험한 꼴은 안 봐도 되니까...
쓰러뜨리는 데 5분, ‘착취하는 손’으로 죽이는 데 10분해서 전부 정리하는 데 15분이 걸렸다.
그 컨테이너에서 나와 공장으로 향했다.
덜컹. 그르르륵.
“헉! 헉! 헉!”
“아. 시발 빨리 좀 해. 형님들 오면 나 또 못한단 말이야.”
세 명의 남자가 꽤 큰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고 여자를 범하고 있었다. 3대1 플레이라니. 여자가 저런 걸 자진해서 할 리는 없을 거 같고... 발에 묶인 밧줄이 기둥과 연결되어 있는 걸 보면 저 여자도 이 녀석들에게 납치를 당했든 뭘 당했든 피해자인 모양이다.
“십새끼가 씹냐? 빨리 하라고. 이년 내일 통나무로 쓴다고 했단 말이야. 오늘 아니면 꽁씹 못한다고.”
통나무... 통나무가 뭐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일 저 여자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알겠다.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빡! 빠박!
“으으으으.”
일단 때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쇠파이프에 ‘착취하는 손’을 둘러 심장의 생기를 뺏어 죽이... 순간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 파죠?”
몸 상태로 봐서는 지독하게 윤간당한 것 같은데 목소리가 맑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강한 여자다.
“아무 파도 아닙니다. 그냥 혼자죠.”
“혼자요? 혼잔데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요. 절 죽이실 건가요? 아니면 풀어주실 건가요.”
“그건...”
나중에 아무런 후환도 없으려면 죽여야 하..는 건 알겠는데 못하겠다. 딱 봐도 지독한 짓을 당한 여자다. 그런 여자를 ‘나중에 후환이 될 지도 몰라.’라는 생각만으로 죽인다고? 난 그런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감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운전 하실 줄 알죠? 밖에 나가면 차 여러 대 있어요. 아무거나 잡아타고 가세요.”
“밖에 김설중 패거리가 30명 정도 더 있어요.”
“괜찮아요. 전부 죽었습니다. 아무도 막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가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거의 알몸이다. 찢어진 옷의 잔해인 듯한 천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옷으로서의 역할은 조금도 못하고 있다. 쓰러져 있는 녀석 중 몸집이 가장 작은 놈의 옷을 벗겨서 줬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놈들의 마무리를 하러 다가갔다.
“잠시만요. 제가... 제가 죽이면 안 될까요?”
직접 죽이겠다고? 살짝 놀라며 여자를 봤다. 던져준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알몸으로 비틀 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당했는지 몸을 일으킬 힘도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독기가 가득했다.
복수하고 싶을 거다. 여자의 몸으로 이곳에서 얼마나 심하게 당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당한만큼 돌려주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다.
우득. 우드드득.
“아악! 아아아악!”
세 놈의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렸다. 이정도면 반항할 수 없겠지. 쇠파이프를 여자에게 쥐어줬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퍽, 퍽.
뒤에서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작다. 저래서야 죽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일 다 끝나고 와서 도와주던가 해야지.
“혹시 모르니까 문 닫아 놓겠습니다.”
그르르륵. 덜컹.
혹시 몰라 주변을 돌아다니며 놓친 녀석이 있나 찾아본 다음 두목의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목이 거의 입구 근처까지 기어와 있었다. 좀 과하게 생기를 빨아들여서 죽을 둥 살 둥 했는데 기어 다닐 힘은 있는 모양이네.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어 원래 자리로 옮겼다. 두목이 앉았던 책상에 앉아 두목의 폰을 꺼내들었다.
-부재중 전화 7통.
몇 번 울리더니 7통이나 왔었나. 문자도 꽤 와 있었다.
-전화 받아요.
-왜 전화를 안 받나요.
-지금 나랑 장난해?
-다 왔다. 가서 봅시다.
이름은 안 적혀 있지만 고은형이겠지. 그 동안 두목에게 ‘약속의 무게’를 사용해서 심문하고 싶은데 아직 그러기엔 좀 힘들어 보인다. 일단 고은형부터 잡고 그 뒤에 해야겠어.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멀리서 들어오는 세단 한 대가 보였다. 조용히 기다렸다.
컨테이너 바로 앞에 주차한 차에서 고은형과 덩치 둘이 내렸다. 덩치 둘은 저번에 날 손봐주겠다고 데려왔던 그 녀석들이다. 차 시동이 꺼지는 걸 확인하고,
쾅!
문을 박차고 나가 달려들었다.
퍽! 퍼퍽!
주먹과 발을 휘둘러 쓰러뜨렸다. 덩치 둘은 ‘착취하는 손’을 써 바로 죽였다. 그리고 고은형 옆으로 가 그를 내려 봤다.
“네.. 네가 어떻게? 분명 김설중이 잡았다고 했는데?”
그 여자나, 고은형이나 김설중이란 이름을 언급하는 걸 보면 저 컨테이너 안에 누워있는 두목이 김설중인 모양이군.
“저랑 약속 하나 하죠.”
“시..싫어! 내가 또 최면에 당할 줄 알아!”
빡. 우득.
“끄아아아악!”
오른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저랑 약속 하나 해요.”
다시 물었다. 하지만 고은형에게서 대답은 없었고 비명만 지르며 땅을 구르고 있었다. 발을 들어 그의 왼쪽 정강이를 밟았다.
빠가각.
수수깡 부러지듯 가볍게 부러졌다. 고은형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다시 물었다.
“저랑 약속 하나 하자니까요.”
< 80 죽음을 끊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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