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실연과 분노 >
그먼 제국에서 만들어 배포한 대(對)몬스터 지침서에 리자드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쫓아가지 마라.
***
“까락! 까락! 까락! 까락!”
푸확!
땅을 강하게 박차고 달렸다.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상태인지라 ‘불가사의한 힘’은 최대치로 발휘되는 상태다. 나는 마치 나는 새처럼 빠르게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찾았다. 저 멀리 도망치는 10놈의 리자드맨 뒤꽁무니를 시야에 담았다. 땅을 박차고 가끔은 나무위에 올라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리자드맨을 뒤쫓았다. 강한 다리 힘에 부러지는 나무까지 나왔다.
“까락! 까락! 까락!”
다시 리자드맨이 거슬리는 소리를 냈고 도망가던 놈들이 뒤돌아 무기를 꺼내들었다. 곡선형의 두껍고 날이 한쪽에만 달린 이상한 검. 검답지 않게 두껍기까지 하다. 하지만...
“크워어어어억!”
부훙! 쿠가가가가각!
“끄락!”
분노한 지금의 내 도끼를 막을 순 없다. 단번에 한 놈의 검을 부수고 몸을 반으로 갈랐다. 피부가 제법 질기긴 하지만 내가 온힘을 다해 휘두른 도끼를 막을 정도는 아니다.
연이어 근처에 있는 놈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카캉!
몇 놈이 합세해 막아낸다. 빌어먹을 정도로 비열한 놈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놈들이다. 실력이 있는 놈들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이야! 더 화가 난다.
손에서 보라색 빛이 일어 순식간에 양손도끼를 뒤덮었다. 내 분노를 대변하듯 불처럼 보라색 빛이 일렁였다.
“끄러럭! 끄럭!”
“이 비열한 놈들이! 괴상한 소리만 내지 말고 말을 하란 말이다!”
분노 가득한 고함을 지르며 강하게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가각!
내 주변에서 있는 녀석들의 검이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난 도끼를 휘두른 힘 그대로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부우아아악!
“끄라라라락!”
“끄락!”
“끄라락!”
3놈의 배와 가슴을 갈랐다. 그에 멈추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아직 내 분노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크리야아악!”
“그어어어어!”
다시 돌격할 때 뒤따라온 형제, 자매가 도착해 나와 함께 리자드맨을 덮쳤다. 리자드맨들은 순식간에 도륙 당했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크워! 크워! 크워어억!”
리자드맨의 시체가 잘게 부서져 핏덩이로 바뀔 때까지 도끼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아무도 날 말리지 않았다. 말리기보다는 나처럼 리자드맨의 시체에 도끼를 휘두르는 형제들이 꽤 있었다.
벌써 이틀째다. 이틀째 유인만 하고 있다. 처음엔 좋았다. 유인을 한다는 것은 함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더욱 치열한 싸움을 겪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하루가 넘어가고 다시 반나절이 흐르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희가 원하는 장소에서 싸울 테니 이제 그만 전장으로 안내하라고 소리도 쳐봤다. 그리고 반나절이 더 흘러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리자드맨의 ‘까락. 까락.’하는 소리만 쫓아다녀야 했다. 이런 짓은 나약한 인간도 하지 않는다. 리자드맨은 정말 비열한 놈들이다. 절대 전사가 아니다. 전사가 아닌 것들이 전사를 가지고 놀고 있다.
화가 났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내 분노의 고함이 하늘을 울렸다.
***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까륵. 열매가 익었구나.”
그락카르의 분노에 찬 고함을 들은 한 리자드맨이 말했다. 그는 리자드맨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비대한 몸뚱이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짧고 얇은 팔다리.
날렵한 근육질인 다른 리자드맨들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리자드맨은 그를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한 오크는 극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지. 그리고 치열한 전쟁 직후 쉬지 못하고 이틀 동안 끌려 다녔으니 꽤 지쳤을 터. 이제 그들에게 이곳으로의 초대장을 보내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리자드맨이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까락! 까락! 까락! 까락! 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리자드맨들이 단체로 소리를 내고 잠시 후,
“크워어어어어어어억!”
분노한 그락카르가 나타났다. 그의 눈에 얕은 물가에 자리 잡고 있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이 잡혔다.
그락카르는 그들이 얕은 물가에 있단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누가 가장 강한지 알아봤다. 3,000 리자드맨의 가장 뒤에 있는 비대한 몸뚱이를 가진 리자드맨.
분명 싸울 수 있는 전사의 몸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강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촤아. 촤아아.
그락카르는 물을 가르며 그를 향해 달렸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얕은 물로는 그락카르의 움직임을 조금도 느리게 하지 못했다. 당연히 다른 리자드맨들이 그락카르를 막아섰다. 그락카르와 리자드맨들이 충돌했다.
쾅!
굉음이 일어나며 여섯 리자드맨이 튕겨나갔지만 죽는 인원은 없었다. 역시 강했다. 하나하나가 오크에 비견 될 정도로 강했다. 리자드맨 대부분이 인간 양손검병과 동수거나 더 강하기에 제대로 준비한 상태에서 합심하여 그락카르의 공격을 막으니 피해가 없었다.
그락카르는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정도 힘을 가진 자들이 어째서 마음은 그렇게 비열한가. 비열한자가 전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났다.
곧 이어 대전사들이 들이닥쳤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오크들이 도착했다.
첨벙. 첨벙.
그들은 그락카르에게는 무릎 아래, 대전사들에게는 무릎에 겨우 닿는 물이지만 그들에게는 무릎 이상 올라왔다. 그런 물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돌격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자 오히려 리자드맨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물에 잠수했다. 그리고 빠르게 헤엄쳐 오크들 앞까지 가 튀어나오며, 혹은 그대로 헤엄쳐 지나가며 공격했다.
오크들은 처음 당하는 공격에 당황했다.
불리한 중에도 용감히 싸웠지만 애초에 수에서도 1,000가까이 뒤져있었고 장소까지 리자드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 거기에 오크들이 아무리 강철체력을 갖고 있다곤 하지만 목숨을 건 전투 후에 하루하고도 한나절을 쉬지 못하고 꾸준히 달렸다.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크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법 반격은 하고 있었다. 만약 그락카르의 ‘군주의 위엄’이 없었다면 일방적으로 밀렸을 것이다.
밀리고 있는 것은 대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십의 리자드맨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고 있었다. 사이사이 리자드맨 강자도 끼어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상처가 늘어갔다.
그리고 그락카르도...
“크워어어어억!”
카가가가가강!
고함을 지르며 리자드맨들을 몰아붙이곤 있지만 그의 몸에도 대전사들처럼 리자드맨의 대도가 훑고 지나간 부상이 가득했다. 그 중에는 ‘흡수하는 손’으로 치유 불가능한 깊은 상처도 꽤 있었다.
***
“크후... 크후...”
이렇게 지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부상이 늘어 피를 흘리면서 체력 소모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보라색 빛으로도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나, 둘, 셋, 넷. 나를 공격해오는 리자드맨 사이에 대전사 급 강자만 네 명. 강하다. 진심이다. 리자드맨은 강하다. 그런데도 그런 비열한 짓을 하다니. 정말 전사로서의 긍지가 없는 불명예만 가득한 놈들이다.
캉! 카카카캉!
부욱! 푸푹!
공방을 겨룰 때마다 상처가 늘어간다.
난 죽겠지. 이미 함께 온 형제 중 절반이 카록의 곁으로 갔다. 남은 형제들도 대부분 지치고 부상을 입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카록께 갈 것이다.
나쁘지 않다. 다만... 명예로운 강자와 싸우다 죽고 싶었다. 이런 비열하고 불명예스런 자들이 아니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죽기 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카록께 가는 것이다. 이미 카록의 곁으로 간 형제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도...
“크리야아아아악!”
익숙한 외침이 내 상념을 뚫고 들어와 박혔다. 고개를 돌렸다.
푹! 츄아악!
한눈 판 사이 몇 개의 공격이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난 거기에 한술 더 떠 움직임을 아예 멈췄다.
촤악! 촤악! 촤아악!
새롭게 치명상 몇 개가 추가 됐다. 그럼에도 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시야를 가득 메운 어느 한 장면 때문이었다.
리자드맨이 잘린 미로크의 목을 들고 높이 치켜 올리고 있었다.
그래. 죽었구나. 미로크도 전사답게 싸우다가 카록의 곁으로 갔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픈 거냐.
“크흐..”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무릎을 꿇었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다. 심장이 부서지는 것 같다. 그 어떤 무기로 입은 상처보다도 아프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떤 고통이든 영광의 증거이기에 기쁘게만 여겼던 나이건만... 이 아픔은 견딜 수가 없다.
부욱! 촤악!
다시 리자드맨의 무기가 몸을 베고 지나갔다. 약하다. 고통이 느껴지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 이 가슴 안쪽은 그 무엇에도 다치지 않았는데 왜 이리 아픈 거지? 왜?
그래. 이유를 알았다. 비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내 가슴 속 한 부분이 비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 것이다. 채우자. 무엇이든 집어넣어서 채우자.
다시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 후에야 채울 수 있었다. 채우고도 남은 그것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스킬 ‘성난 자의 외침’을 얻었습니다.
비어버린 가슴을 채우고 또 입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내 분노였다.
***
아프다. 그락카르로서 느꼈던 상실감이 꿈에서 깨어난 지금도 나를 괴롭혔다. 예전에 ‘오늘’을 반복할 때 느꼈던 심장이 부서지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이었다.
그락카르는 그 아픔의 원인을 몰랐지만 난 안다.
실연, 실연의 상처였다. 그락카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실연. 그 실연이 죽음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준비되지 않았던 어린 그락카르에게 찾아왔다.
그락카르는 원인도 모르면서 오크 전사답게 그 상실감을 분노로 바꾸면서 극복했다. 뿐만 아니라 극적으로 스킬을 개화함으로써 죽음의 위기까지 벗어났다.
그 ‘성난 자의 외침’이란 것이 발휘된 후 그락카르의 힘이 평소보다 두 배는 늘었고, 지금까지 입었던 상처도 회복되었다. 정말 무서운 점은 그것이 그락카르에게만 적용 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싸우고 있던 오크 모두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성난 자의 외침 : 무리에 속한 모두의 힘을 1시간동안 100% 증가 시켜 주고 부상을 회복시켜준다. 분노가 극한에 달해야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분노(0%)
이런 사기 스킬이니 그렇게 갑자기 리자드맨을 몰아붙일 수 있었지.
‘성난 자의 외침’이 있고 그락카르와 그의 무리는 리자드맨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불리한 장소에서 적은 수로 싸웠지만 압도적인 힘은 그런 약점을 전부 상쇄하고도 남았다. 결국 리자드맨들이 후퇴하면서 전투는 끝났다.
그렇게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그락카르는 승리의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미로크의 시체와 무기를 챙겼을 뿐이었다.
“후...”
그락카르가 순간적으로 느꼈던 거대한 상실감 때문에 심란하다. 아직도 그 감정의 편린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나도 그락카르가 분노와 함께 리자드맨을 죽여서 배출했듯이 나도 이걸 배출해야겠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할 수는 없으니... 공원에 가서 전속력으로 미친 듯이 달려야겠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이 개새끼 이제야 나왔구나!”
고은형이 있었다.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다음날 바로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오다니. 저놈도 이상한 놈이구나.
“일단 좀 패고 시작하자. 야. 뒷일 내가 책임질 테니까 손 좀 봐줘.”
“네.”
“알겠습니다. 형님.”
고은형 뒤에 있던 덩치 둘이 나섰다. 정청원의 덩치처럼 몸집만 키운 게 아니라 근육이 알알이 박혀 있는 것이 운동도 제법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이다.
“컥.”
“커헉.”
그대로 두 덩치의 목을 잡았다. 제법 힘을 줬더니 숨이 막히는지 발버둥치며 내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어림없다.
너희들도 참 재수가 없구나. 기분이 더러워도 너무 더러울 때 날 만났어.
그대로 위로 들어올렸다.
“커.. 커컥.”
“끄어억.”
죽을 것 같네. 죽일 순 없지. 놔줬다. 둘 다 다리가 풀려서 풀썩 쓰러지더니 켁켁대며 괴로워했다. 그대로 둘의 등에 손을 올려 ‘흡수하는 손’을 사용했다. 10초만에 힘이 빠졌는지 그대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확실히 그락카르보다 내가 쓰는 것이 효율이 좋다. 내가 이 스킬의 원래 주인이라서 그런 걸까.
“이... 이게 무슨...”
고은형이 당황했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나한테 일이 생기면 네가 무사할 줄 알아!”
퍽!
“악!”
무시하고 때렸다.
퍼퍼퍼퍼퍼퍼퍽!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평소라면 뒷일을 생각해서 재벌 2세인 그를 건드리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내가 좀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라서 말이야.
그래도 조금은 이성이 남아있어서 때리는 손에 힘을 뺐다. 힘을 그대로 줬다간 한두 대 때리고 더 이상 못 때릴 테니까.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저번에 때렸던 우사장과 기우형만큼 때렸다. 즉, 고은형은 둘이서 맞았던 걸 혼자 맞았다.
“후...”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진 게 남아있다. 더 때리고 싶지만 더 때렸다간 죽을 거 같아 참았다.
“사.. 살려주세요...”
고은형이 내 발을 잡고 빌었다.
“살려줄 테니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하.. 할게요.”
고은형이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우사장과 기우형에게 걸었던 ‘약속의 무게’와 똑같은 걸 걸었다. 이제 나에 대해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공원에 가서 1시간 정도 달리고 올 거야. 그 때도 네가 여기 있으면 방금 한 건 우습게 보일 정도의 짓을 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공원으로 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사람들이 놀랐지만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이 가슴에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해야 했으니까.
1시간 정도 달리니 어느 정도 개운해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고은형이 흘린 핏자국만 남아 있고 고은형과 덩치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감정을 풀어내는데 고은형이 조금은 도움된 것 같다. 미워하는 인간을 마음껏 때린다는 게 의외로 기분 푸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71 실연과 분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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