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부흥 >
“크흐..”
즐겁다. 모든 형제가 숨죽이고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난 그락카르다!”
구워어어어어억!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형제들의 함성이 나를 고양시킨다.
“리자드맨 3,000과 싸우러 갈 거다! 함께 갈 수 있는 형제는 역시나 3,000!”
나다! 형제!
내가 갈 거야!
도마뱀의 머리를 부숴주겠다!
“3,000! 3,000이다! 같이 갈 형제는 따라와라!”
당당하게 부락 북쪽 문으로 향했다. 내 부락의 형제들은 이미 내 가까이 있었기에 바로 뒤에 붙어서 따라왔다. 내 부락의 대전사인 쿠드릭과 데리고트가 내 바로 뒤에 섰다.
“그으.. 리자드맨이라니. 처음이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너무 기대된다.”
쿠드릭과 데리고트의 생각은 나와 똑같았다. 리자드맨, 강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얼마나 강할까. 기대된다.
입구를 나서 거침없이 북쪽으로 향했다. 주술사 노르쓰에게 어디로 가야 리자드맨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들어둔 길잡이 형제가 내 옆에 붙어 있기에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정확히 3,000은 아니지만 거의 그쯤 부락을 나섰다고 생각했을 때, 입구에 서 있던 다섯 족장급 형제들이 다른 형제들을 막아섰다. 너무 많은 수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쿠훅! 막지 마라! 나도 갈 거다!
안 된다! 형제들이 카록의 눈에 띌 기회를 없애겠다는 거냐!
빌어먹을! 나도 싸우고 싶은데!
오크가 전투를 하는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땅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싫어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 카록의 눈에 띄기 위해서다. 카록께서는 치열한 전쟁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많은 수의 형제가 몰려가서 압도적으로 이겨버리면 당연히 카록께서 흥미를 잃고 보지 않으신다.
그런 전투는 의미가 없다.
아. 식량과 장비 조달도 목적에 일부 섞여 있기는 하다.
결국 내가 이끄는 무리에 참가하지 못해 반발하던 형제들도 물러났다. 참여하고 싶겠지만 전투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들보다 강한 캅카스가와 같은 족장급 형제들도 못 따라가지 않던가. 어쩔 수 없다. 내 뒤에 늦게 따라붙은 자신을 원망해야한다.
노르쓰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리자드맨을 만나는 것은 4일 뒤. 기대된다.
카록이시여. 지켜봐주소서.
***
카록은 이상한 신 같다. 남의 싸움 구경하는 게 아무리 재미있다곤 하지만 자기 권속을 저렇게 만들어놓다니. 오크 놈들도 이상하다. 광신도도 저런 광신도들이 없다. 인생의 목표가 카록을 즐겁게 하고 카록의 눈에 띈 후, 죽어서 카록의 곁으로 가는 거라니.
우리 비텔님은 그런 신이 아니겠지. 그래. 내가 원할 때마다 딱딱 도와주시고 신도가 힘들어하면 도와주시고 신도가 위험하면 사제로 만들어 힘까지 주시잖아.
카록은 우락부락하고 마초끼 가득한 남신일 거야. 비텔님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품 있는 여신님 일 거고. 목소리가 항상 ‘그녀’라고 부르잖아? 무조건 여신이지.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냥 중소기업 계약이야.”
“안합니다.”
그냥 카록과 비텔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없이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긴장한 듯 보였나보다.
오늘은 계약 중개인으로서 첫 일을 하는 날이다. 어제 비텔교 사제가 된 유나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봐야 하는데 이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김해역도 며칠 갇혀 있을 거라니 오늘은 별일 없겠지.
일 마무리 짓고 내일 찾아가 봐야겠다.
“알겠지만 오늘 건 이름을 알리기 위해 하는 거야. 중개료가 적어도 참아.”
“적지 않아요. 500만원이면 충분하죠.”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비하면 적지.”
오늘 중개료는 500만원이다. 자기 밑에 있는 고급 인력이 받는 돈이 최저 1,000만원이라고 하던 것 치곤 그 반 밖에 안 된다. 그것도 정청원이 처음 3개월간 수수료를 떼지 않고 모든 돈을 주겠다고 했기에 500만원이다. 원래 계약대로 7:3으로 나눴으면 350만원. 하지만 불만은 없다.
가서 ‘약속의 무게’ 한 번만 걸어주고 나오는데 500만원 받으면 많은 거지. 그리고 액수가 낮은 일만 자주 받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액수 작은 일에 사람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것들은 없을 테니까.
아. 정청원이 날 속여서 돈 떼어먹을 건 걱정하지 않는다. 그거에 관해서도 ‘약속의 무게’를 사용해둔 상태니까. 빠져나갈 구멍 없도록 오래 생각해서 제대로 ‘약속’ 해뒀으니 절대 떼먹지 못할 거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추며 운전석에 앉아있던 덩치가 말한다. 그리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 덩치가 잽싸게 내려 양쪽 뒷문을 열어준다. 익숙한 장면이다. 내가 많이 하던 건데 내가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될 줄이야.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협의중인가보다. 차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카페로 갈까.”
문이 열렸는데도 아직 내리지 않은 정청원이 말했다. 내가 차에 있자고 하면 덩치들이 차문 연 게 헛수고가 되겠지. 왠지 감정이입이 돼서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카페에 가죠.”
“그러지.”
말하며 먼저 내렸고 정청원도 다른 문으로 내렸다.
“저기 괜찮아 보이는데?”
“네. 거기로 가죠.”
어느 카페든 상관없다. 어차피 커피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가끔 쉴 곳이 필요할 때 들어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 게 전부다.
“여기 커피 맛있네.”
“그렇네요.”
정청원의 말에 대충 맞장구 쳐줬다. 나한테 가장 맛있는 커피는 믹스커피다. 카페의 커피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띠띠링.
이상한 벨소리. 머리 깔끔하고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스타일 좋은 양반이 폰 이상한 벨소리를 메시지 알림음으로 해놓으니까 좀 깨네.
“마무리 된 모양이다. 지금 갈까?”
아직 반이상 남아있는 내 커피를 보며 묻는다.
“가죠,”
내 돈 주고 산 거라면 돈 아까워서라도 다 마시겠지만 정청원이 사준거니 아깝지 않다.
목적지는 바로 우리가 있던 카페 바로 옆 건물이었다. 4층으로 올라가 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넓은 탁자에 6명의 남녀가 있었다. 둘은 앉아서 서로 마주보고 있고 넷은 그들 뒤에 서 있다. 누가 대장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구도네.
우리가 들어가자 그들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제가 분명 계약 당사자만 남아 계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 않나요?”
정청원이 얼굴일 찡그리며 말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소. 그 최면이란 게 정말이면 우리 둘만 남았을 때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거 아니오? 그러니 지켜보며 최면이 잘못되지 않게 지켜보는 사람도 있어야지.”
맞는 말이다. 내가 정말 최면을 사용하는 거고, 그게 계약을 강제 이행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거라면 그것을 악용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우리도 우리 사정이...”
“정사장님. 그냥 하죠.”
“괜찮아?”
“상관없습니다.”
정청원 나름 내 능력을 지켜주려 한 거 같지만 상관없다. 내가 하는 걸 본다고 누가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 직원이 괜찮다니 그냥 진행하죠. 두 분이 계약 책임자겠죠?”
“그렇소.”
“맞소.”
“그럼 시작해주게. 한상군.”
“두 분 계약서를 들고 가까이 와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가운데에 앉아있으면 동시에 작업할 수가 없군요.”
최면 대신 작업이란 단어를 썼다.
계약 책임자란 둘은 긴 탁자의 중간 양쪽에 앉아 있다. 저렇게 있으면 내가 동시에 어떻게 해. 그들을 불러 내가 서 있는 끝자리에 앉혔다. 그들의 수행원처럼 보였던 네 명의 남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째려보듯 날 관찰하고 있다.
헛짓거리를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건가. 가까이 왔다가 자기들도 최면이란 거에 걸릴게 무서운지 가까이 오지 않는다.
“시작하죠. 이 두 봉투에 들어 있는 게 계약서 맞겠죠?”
“맞네.”
“저는 지금부터 이 계약서의 내용을 두 분이 지키게 만들 겁니다. 계약서의 내용에 어긋난 행동을 하신다면 벌칙을 받으실 거고, 그건 중간에 멈출 수 없어요. 그러니 다시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 잘못된 조항이 있는지 없는지.”
“시간 끌지 말고 그냥 해주시오.”
“거. 뭐 대단 한다고...”
지들 좋으라고 경고해줬더니... 이젠 나도 모른다.
“정사장님이 미리 말씀들 드렸을 텐데, 생각해 오신 벌칙이 있으시겠죠?”
“정사장이 두통, 복통 이런 걸 말하더라고. 더 센 거 할 수 없소?”
“그래.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린다던지 하는 거. 아니면 자살도 상관없는데.”
장애인이란 단어를 부정적인 단어로 쓰지 마. 시꺄.
서로 노려보며 센 단어를 말하는 걸 보니 서로 사이가 정말 나쁜 모양이다.
“가능하지만...”
“안 돼. 하지 마. 두 분 제가 분명 사전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벌칙이 강해지면 우리 직원에게 나쁜 영향이 끼친다고. 하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고 말씀드렸는데 가장 싼 500만원 코스를 고른 건 두 분이잖습니까.”
그런 거였나. 코스도 만들다니. 뭔가 있어 보이긴 하다. 그런데 난 벌칙이 강해지면 포인트를 더 쓰게 된다고 말해준 적 없는데. 대충 지어서 말한 건가? 돈 더 받으려고 말이야.
“아. 거 어차피 자재 써가면서 최면 거는 것도 아니고 말 몇 마디 하면 되는 건데 무슨 돈을 그렇게 받아먹는 거요.”
“맞아. 복통, 두통 이런 단어를 마비, 불구, 자살 이런 단어로 바꾸면 되는 거잖소.”
오른쪽에 앉은 인간은 왼쪽에 앉은 사람한테 정말 원한이 깊은 가보다. 자꾸 자살 이야길 하는 걸 보면 말이야.
“됐다. 가자. 오늘 일 튼 거 같다.”
정청원이 내 팔을 잡고 몸을 돌렸다.
“잠깐 알았소. 알았어. 그냥 복통 그거로 합시다.”
“그냥 500 더 쓰고 자살로 하지?”
“돈 당신이 낼 거요?”
“못 낼 건 없지. 네놈이 계약 어겨주기만 하면 말이야. 500에 네놈 자살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왜 못 내겠어.”
“이 인간이 정말. 말이면 단 줄 알아?!”
“네놈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족해!”
싸운다. 개판이군. 정말.
“계속 이러시면 저희 정말 갑니다.”
정청원이 엄포를 놓고 나서야 싸움이 끝났다. 이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도대체. 난 막 기업 오너 같은 사람들 만나서 큰 사업이 걸린 계약을 중개하게 될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그런 게 아닌 거 같다.
사업 계약이 아니라 다른 계약 같은데. 계약서 내용을 보고 싶지만 계약서는 꼼꼼하게 밀봉되어 있다.
결국 ‘약속의 무게’를 쓰긴 했다. 둘이 죽일 것처럼 싸우더니 결국 벌칙은 두통으로 정했다. 구두쇠들 같으니. 돈 쓰기 싫다는 거지.
기한은 6개월, 계약 중개의 기본 기간을 6개월 단위로 하기로 했다. 6개월이 늘어날 때마다 중개료도 똑같이 뛰는 거로 했고 말이다.
“이거 확실히 되는 거겠지?”
“이거 안 먹히면 가만 안 있을 거요.”
둘은 끝까지 엄포를 놓으며 사라졌다. 진상들 같으니.
“미안하다. 첫 일부터 저런 인간들 붙여주다니. 저 인간들이랑 다시 일하면 내가 성을 간다.”
“괜찮습니다. 잠깐 짜증나고 돈 버는 건데요.”
“수고했고, 500만원은 이따 계좌로 쏴줄게.”
“선금 받았어요?”“아니. 넌 네 할 일을 했으니 일의 대가를 받아야지. 이제부터 돈 받아내는 건 내가 할 일이고 말이야. 못 받으면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건데 너한테 피해가게 할 수는 없지.”
좋은 마인드네.
정청원은 날 집까지 데려다 준 후 갔다. 집에 도착하고 5분 후, 계좌에 500만원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떴다. 칼이네. 포인트를 250정도 썼지만 500만원을 벌었으니 상당히 괜찮다. 앞으로도 이렇기만 풀리면 좋겠는데 말이야.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비텔’이란 단어를 검색했다. 요즘 습관적으로 ‘비텔’을 검색하는 게 일이다. 포털 사이트 몇 개를 돌아가며 검색했지만 검색 내용에 비텔교와 비텔님에 대한 건 없다.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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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247명
교단 기여 포인트 : 2,852
헌금 : 21,86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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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가 이렇게 빠르게 늘어나는 거지?
< 63 부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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