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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62화 (62/228)

< 62 비텔교 사제 >

김해역의 위치를 확인하고 김해역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곳으로 움직였다. 살짝 비스듬한 앞.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정면이 아니라 약간 대각선 앞인지라 난 김해역의 얼굴을 볼 수 있지만 김해역은 날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하는 위치였다. 딱 좋다.

그리고... 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예전에 고은형을 옭아맬 때 썼던 방법이다. 간단하지만 아주 효과적이지. 잘 찍은 동영상 하나로 재벌가의 자식과의 싸움에서 이겼으니까. 이미 카페를 나오며 경찰에 신고는 해놓았다.

요즘 기술 정말 좋아졌다. 카메라가 아닌 폰으로 찍는데도 이렇게 멀리서 얼굴이 나오게 찍을 수 있다니.

김해역이 손들고 포기할 때까지 계속 경찰에 신고할 거다. 계속 잡혀가다보면 지금 달아올라 있는 머리도 식을 테고 그러면 포기하겠지. 지금 이렇게 나온 건 동영상으로 김해역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물증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게 최선이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최근 신이 준 능력을 갖게 되었고 오크의 삶이라는 이색경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범죄 이력 하나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다.

그런 내가 김해역이 좀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해서 죽이거나 불구로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해역이 저지른 일이 큰 범죄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생긴 능력 잠깐 욕심이 생겨 자신을 위해 썼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죄는 이미 파문으로 처벌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더 벌할 수 있을까.

김해역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있으면 또 모른다. 그런데 혹시 그럴지도 몰라라는 의심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든다고?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지.

음. 그런데 자꾸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만졌다 말았다 하는 것이... 이상한데? 김해역은 불안했는지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살짝 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 눈으로 확인한다.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다.

미친... 저거 칼 아냐? 저 새끼 가만 놔뒀다간 일 저지를 거 같다.

“저기요!”

폰을 상의 앞주머니에 넣고 김해역에게 달려갔다. 이것 역시 고은형을 상대로 썼던 방법이다. 렌즈가 주머니 위로 툭 튀어나오기에 계속 영상을 찍을 수 있는데 저번에 고은형을 찍었던 것이 의외로 제대로 찍혔었다. 역시 요즘 폰 정말 좋아.

내가 갑자기 부르며 달려오자 김해역이 화들짝 놀란다.

“왜.. 왜요?”

“어제 발레 학원 들어갔다가 경찰에 끌려가신 분 맞죠?”

“아.. 아닌데요. 잘못 보셨어요.”

김해역이 급히 고개 숙이며 떠나려 했다. 보내면 안 된다. 경찰에 잡혀가게 해야 한다. 몇 번이고 잡혀가게 해서 김해역이 질려서 못 오게 만들거나 경찰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잡아두게 만들어야 한다.

“뭘 잘못 봐요. 맞구만. 어제랑 똑같은 옷도 입고 있는데. 오늘 또 발레 학원 들어가려고 했어요? 변태, 뭐 그런 거예요?”

“아니에요! 난.. 난 그저 다시 비텔님께서 날 봐주셨으면 해서, 그래서 유나란 아이한테 어떻게 해야 다시 비텔님과 연결 될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거예요. 정말 그거뿐이에요. 유나란 아이랑 이야기만 하게 해주시면 되요.”

유나도 그건 몰라. 그리고 나도 몰라. 이미 파문당한 사람이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비텔님만이 아는 거야. 그걸 왜 유나한테 물어보려고 그래.

“비텔님? 비텔이란 사람이 여기 살아요?”

“비텔님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에요. 위대한 신이세요. 신도들에게 힘도 주세요. 잠깐 오해로 저를 파문시키셨지만 제가 잘 설명하고 오해를 풀면 다시 저를 받아주실 거예요. 그래서 유나란 아이를 만나야 해요. 수연이 동생이 유나란 아이가 가장 처음에 비텔님에 대해 말했다고 했거든요.”

수연이 동생 이 입 싼 것... 이상한 남자가 그런 걸 물어보면 모른 척 해야지 왜 그리 솔직했던 거니.

“비키세요. 비켜요.”

도망갈 생각이 사라졌는지 다시 발레 학원으로 가려고 했다. 당연히 가로막았다. 칼까지 가지고 있는데 학원 안에 들어가게 놔둘 수 없다. 그건 유나와 다른 아이들도 위험해지지만 김해역의 인생도 망치는 거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든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엄한 생각하지 말고 버텨요. 어떤 아픔도 버티고 버티면 과거가 될 거고 더 버티면 추억이 되어 있을 테니까.”

이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 당장 사라진 능력 때문에 느끼는 상실감에 무슨 짓을 해서든 되찾고 싶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실감은 메꿔질 것이다. 물론 메꿔져도 힘들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사고 칠 것 같은 상태보단 나아지겠지.

“끙.”

김해역이 힘으로 날 밀어 내려고 했지만 그게 될 리가 없다. 유도 국가대표 5명쯤 와서 밀지 않는 이상 내가 밀릴 리 없지.

“비켜요. 안 비키면 다쳐요. 사람 다치게 하기 싫어요.”

김해역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사람 다치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겁니다. 선은 넘지 마요. 나중에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후회할 겁니다.”

계속 설득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김해역은 칼을 꺼내들었다.

“비켜요..”

“못 비킵니다.”

김해역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칼을 찔러 왔다. 운동을 했는지 꽤 빠르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에 비해서다. 내가 보기엔 느려도 너무 느렸다.

턱.

팔목을 잡았다.

“윽. 윽윽.”

김해역이 팔을 빼려고 발버둥 쳤지만 내가 놔주지 않는 이상 뺄 수 없을 것이다. 조금 힘을 빼놓을까? 김해역을 잡아당겨 배 밑에 손을 댔다. 그리고 ‘착취하는 손’을 사용했다. 김해역의 몸에 가려 다른 사람들은 보라색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 어어어...”

순식간에 힘이 빠진 김해역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깜짝 놀라 ‘착취하는 손’을 거둬들였다. 이정도로 효과가 좋나? 예전이었다면 2~30초는 지속적으로 힘을 가해야 이 정도 효과가 나왔을 텐데 이번엔 한 5초 걸렸나?

그락카르가 사용할 때는 2배 정도의 효율을 보이는 것 같았는데 방금 그 모습은 2배가 아니라 3~4배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사용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배수로 강화해주는 것이 아니라 절대치로 일정량을 고정적으로 강화해주는 스킬인 걸까. 음... 나중에 실험해봐야겠어.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고 김해역을 수갑 채워 경찰차 뒷좌석에 태웠다.

“참고인으로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네. 뭐 그러..”

“아저씨!”

가겠다고 하는데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이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전화번호 드리고 나중에 찾아가도 될까요?”

“얼마나 걸릴까요?”

“금방 찾아가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경찰에게 전화번호를 주고 유나에게 갔다. 발레 학원 선생과 아이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경찰 사이렌이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해서 나온 모양이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내가 경찰에게서 멀어지자 유나가 잽싸게 달려와 인사했다.

“저 비텔님이 고쳐주신 덕분에 학원 대표로 콩쿨에 나가게 됐어요.”

“잘됐네.”

“그런데 아저씨 여기 무슨 일이세요? 혹시 또 저한테 할 말 있어서 오셨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비텔이 첫 번째 신도의 안전을 걱정합니다.

어?

-비텔이 첫 번째 신도에게 축복을 내리길 원합니다.

첫 번째 신도의 머리에 손을 올리세요.

어어? 내 손이 보라색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착취하는 손’과는 다른 느낌의 보라색 빛이다. 뭔가 경건한 느낌이랄까? 이건 스킬이 아니라 비텔님의 힘이다.

잠깐 망설였다. 왜 하필 이런 시내 한복판에서...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난 교주, 신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지. 얼굴 팔려서 좀 앞으로 난감해질 수 있겠지만 해야겠지.

“아. 왜 오셨든 상관없어요. 이번엔 폰 번호 주고 가... 어? 손이 빛나시네요?”

유나도 내 빛나는 손을 발견했다. 분위기 잡자. 신의 행동을 대신해서 하는 건데 평소처럼 촐랑거리며 할 수는 없다.

“그분의 첫 번째 신도 정유나, 그분을 대신해 네게 축복을 내리겠다.”

“어.. 아. 네.”

잠깐 당황하던 유나가 금세 상황 파악을 끝내고 정색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참 똑똑한 아이다.

“머리를 내밀어라.”

유나가 내 앞에 와 무릎 꿇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아서 무릎 꿇을 것까진 없는데 말이야. 그냥 하자.

유나의 머리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손을 얹었다. 내 손의 빛이 유나에게 옮겨가 유나의 전신을 뒤덮었다.

-비텔이 첫 번째 신도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발레리나(예비)에서 비텔의 사제로 전직합니다.

비텔의 힘이 두 번째 사도에게 전해집니다.

유나는 눈을 감은 채 비텔님의 축복을 받아들였다.

비텔의 사제.. 내가 처음 비텔님의 축복을 받았을 때 얻었던 직업이다. 그걸 유나에게 내리는 거구나. 힘이 전해진다는 건 유나에게 스킬을 준다는 이야기겠지? 그때 난 ‘비텔의 귀’를 얻었었는데 유나는 뭘 얻었을까.

곧 빛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이제 손을 떼도 되겠지. 내가 손을 뗌과 동시에 유나도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저... 저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흥분했는지 볼이 잔뜩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전언을 비텔님의 목소리라고 착각한 건가?

“그건 비텔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분의 의견을 대신 말해주는...”

“자유로워져라!”

“음?”

“분명 비텔님께서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힘이 담긴 목소리였어요. 제가 상상했던 그대로에요!”

... 이거 뭔가 다르다. 정말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인데? 내가 듣는 목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그런 거 없다. 그냥 고저 없이 딱딱하기만 하다. 그리고 ‘자유로워져라.’라니. 그 목소리가 저런 말을 할리 없다.

정말 비텔님의 목소리를 들은 건가? 교주인 나도 들어본 적 없는 건데?

아니 비텔님! 치사하게 이럴 수 있습니까?! 내가 명색이 첫 번째 사제에 비텔교 교주이기까지 한데 나한테 먼저 목소리 들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녀차별인가. 비텔님도 여자라고 여자만 예뻐하는 건가.

“방금 뭐야? 마술이야?”

“와. 완전 개신기해. 어떻게 한 거지?”

“마술산가봐. 방송 찍나 보다. 카메라는 어디 있지?”

김해역과의 해프닝, 경찰의 등장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방금 비텔님의 축복이 내려지는 것을 전부 보았다. 몇몇은 정말 마술사나 방송인 줄 아는 건지 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까지 했다. 이러다가 전국구로 얼굴 팔리겠다.

“유나야. 번호 교환하자.”

“네!”

이젠 내가 유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생겼다. 번호를 교환해서 언제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어.

“지금은 상황이 안 좋으니까. 나중에 보자.”

“네. 알겠어요. 어서 가보세요. 메시지 보내면 답장 주시고요.”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에게 얼굴이 안 찍히게 조심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찰이 와달라고 했으니까 거기 들렸다가 집에 가야겠다.

가는 중 문자가 도착했다!

-비텔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고마워여!!

유나의 문자다.

-그런데 이름이 뭐에여?

-이제까지 왜 번호 안 알려줬어여?

-아저씨는 비텔님 어떻게 알게 되셨어여?

-나이가 몇이에여?

-깨톡 찾아봐도 없는데 혹시 깨톡 안 해여?

... 계속 날아온다. 당분간 피곤하게 생겼다.

< 62 비텔교 사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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