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비텔교의 부상 >
소매를 어깨까지 걷은 남자가 투명한 탁자위에 오른손을 손바닥을 위로한 채 올렸다.
-혹시 모르니 수갑을 채우고 탁자 고리에 고정시키겠습니다.
mc의 설명과 함께 사람들이 다가와 설명대로 했다. 초능력자라는 남자는 오른손만 탁자에 묶인 것이 아니라 왼손과 몸도 의자에 꽁꽁 묶였다.
-이제 김해역씨는 몸 전체가 묶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바닥밖에 없게 됐습니다. 혹시 손바닥 밑에 숨길 수도 있기에 카메라 10대를 동원해 사각이 없도록 동시 촬영을 하고 있으며 저를 비롯한 다섯 명의 전문가 게스트가 속임수가 있는지 철저히 관찰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와도 우리를 속일 순 없을 겁니다.
전문가 게스트의 대표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김해역이라고?”
귀에 익은 이름이다. 분명 기도하고 헌금 하던 이 중 하나다. 특히 더 기억하는 이유는 어제 연달아 헌금을 했기 때문이다. 1만원, 1만원, 5만원, 5만원, 나중엔 10만원까지. 꽤 초기부터 기도하고 헌금했기에 유나 친구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가서 돈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22살짜리 남자 녀석이다. 어쩐지, 발레 하는 여자아이 이름치곤 이상했어. 네놈 돈은 내가 아주 잘 써주마. 포인트 아까워서 인출은 못하겠지만 언젠간 포인트가 남아도는 날이 오겠지.
-이제 손 위에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올리겠습니다.
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빼더니 탁자에 올린 김해역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냥 스텝이 건네줘도 될 텐데 이상한 연출을 하네.
-이제 김해역씨는 손바닥을 쫙 펼친 상태로 움직여선 안 됩니다. 지금부터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바로 실험은 중지된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겁니다.
기왕 저렇게 연출한 거 손가락도 가죽끈이나 미니 수갑 같은 거로 탁자에 고정시켰으면 되잖아.
-김해역씨의 주장에 의하면 김해역씨가 마음먹는 순간, 이 돈은 사라질 겁니다. 태우는 것도, 찢는 것도 아닌 아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 사라지겠지. 그리고 잠시 후, 정말 사라졌다. mc와 전문가 게스트들이 놀라는 장면이 잡히고 일반인이 나와서 해도 될만한 말을 전문가 게스트를 통해 들은 후 실험을 몇 번 반복했다.
영상을 껐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 두말할 것 없다. 몇 번을 봐도 ‘헌금’이 맞다.
이 또라이가 ‘헌금’을 초능력이라고 속이고 TV에까지 나오다니. 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 그 힘을 사용할 경우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무섭지 않은 건가? 혹시라도 신이 노해서 신벌을 내리면 어쩌려고.
그런데 ‘헌금’이 시작 된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벌써 TV에 나왔지? 보통 그런 프로그램은 준비하고 방송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나? 한 달 안 된 거 같은데...
인터넷 검색은 매일 습관처럼 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기미를 못 느꼈다. 알았으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말려봤을 텐데.
아. 생방송. 생방송이었네. 영상이 뭔가 어설픈 게 있다했더니 생방송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원래 예정되었던 프로그램을 뒤로 미루고 특별편성하기까지 했다.
프로그램 기획자가 김해역을 진짜 초능력자라고 확신하고 다른 데 빼앗기기 전에 급하게 방송한 건가? 원래는 기획도 잡고 방송일정 잡고 광고도 했어야 했을 텐데 말이야. 하긴 ‘헌금’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면 그럴만도 하지. 이건 ‘진짜’니까.
진짜를 세계 최초로 방송할 수 있는 기회인데 다른 방송처럼 느긋하게 진행하긴 힘들었겠지.
아. 짜증난다. 머리 아프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많은데 비텔교 일까지 터지다니. 비텔교 일이 이제까지 안 터져서 그렇지 터지기만 하면 가장 무서운 거였는데 말이야. 결국 터졌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게 종교일이다.
비텔교가 커지는 건 좋다. ‘군주의 위엄’의 효과가 커져서 신체능력 향상 효과도 증가하니까. 얼마 전 신도가 50명이 넘으면서 효율이 1% 올라갔다. 그락카르의 신체능력을 일부 받은 덕분에 1%만 강해졌는데도 얼마나 효율이 좋던지.
그리고 비텔교 얼마나 훌륭한가. 비텔님만 믿으면 몸이 건강해진다. 헌금을 직접 받아가는 기적도 보인다. 어떤 종교도 대지 못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유일하게 대는 유일한 종교 아니던가.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신도를 늘릴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기적 몇 번 보여주면 되니까. 인간을 초월한 힘도 있고, ‘착취하는 손’도 있고,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헌금’으로 돈도 사라지게 할 수 있지. 이렇게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어.
거기에 믿기만 하면 신체능력이 향상된다. 지금은 7%고, 나중에 구성원이 늘어나면 더 높아질 거다. 믿으면 건강해지는 종교라니. 얼마나 유익한가. 신도가 늘어나면 나만 좋은 게 아니라 신도가 되는 사람도 좋은 거다.
그리고 신도가 늘어나면 딱히 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약속의 무게’를 이용해 일을 하지 않아도 신도만 모아서 헌금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신도를 늘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유렵, 중동, 아프리카를 봐라. 종교 때문에 자살폭탄 테러, 살인, 고문하는 인간들이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따져도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이다. 비텔교가 퍼진다면 그들 중에 비텔교를 표적으로 하는 이들이 등장하겠지.
‘우린 믿기만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그리고 신께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헌금도 직접 받아 가신다. 너넨 안 그러잖아. 너희 신이 너희한테 뭘 해준 적 있어? 없지? 우리 신은 있는데 너희 신은 없다. 이게 진실이야.’
그들은 비텔교가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다.
그렇게 되면 평생 모든 걸 바쳐 믿어온 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겠지. 인생이 부정당한 인간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들 중에는 나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말했듯이 정면에서 폭력으로 덤벼온다면 안 무섭다. 그런데 뒤에서 독, 총 등으로 덤빌 수 있으니까. 특히 자살폭탄테러는... 우연히 영상을 차량폭탄테러 영상을 본적 있는데 사방 몇십미터가 범위였다. 그런 거엔 그락카르도 위험할 텐데 나 같은 놈은...
그렇다고 신도가 늘어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수도 없었다.
비텔님은 신이다. 언제나 날 보고 계시겠지. 혹시라도 유나의 전도 활동을 막는 날 보고 화가 나서 신벌을 내리시거나 능력을 거둬 간다면... 테러범들이 날 죽이러 오는 것보다 큰일이다.
처음부터 갖지 못했다면 모를까. 지금 갖고 있는 능력들을 잃는다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아오오오.”
빌어먹을 김해역놈. 저 놈만 가만있었어도 이런 고민을 안 했을 텐데.
저놈을 어쩌지? 확 찾아가서 고자로 만들어버려? 아니면 죽이...는 건 아직 무리다. ‘착취하는 손’을 사용하면 증거 안 남게 죽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아직 살인을 하기엔 내가 덜 준비됐어.
그래. 차라리 이왕 시작한 거 확실하게 초능력자 행세해라. 그게 낫겠다. 그러려면... 유나한테 가서 비텔교 믿는 애들한테 쟤 가만 놔두라고 이야기하라고 해야겠다. 비텔교도들만 가만있으면 비텔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김해역 저 인간 진짜 초능력자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비텔교와 연관 짓는 사람도 없을 거고 비텔교는 더 안 커지고, 그러면 다른 종교 사람들도 모를 거고. 훗. 해피엔~~~
...딩은 무슨. 엎친데 덮쳤다.
-KBC 방송국 특별 프로그램 편성. 김해역과 MBS 방송국은 사기꾼. 그건 초능력이 아니라 위대한 신의 능력이다. 그걸 오늘 생방송에서 그걸 증명하겠다고 밝혀.
라는 뉴스가 김해역 관련 기사로 올라와 있었다.
아.. 나한테 왜이래.
이럴 때 비텔님께서 뭔가 힘을 발휘해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야. 음... 하긴. 그렇게 나 편한 대로만 일이 진행되진 않겠...
-비텔이 허락받지 않은 자가 신의 힘을 자신의 것이라 기만하는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비텔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임시스킬 ‘교주의 명령 - 파문’을 얻었습니다.
임시스킬 ‘비텔의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비텔님.
***
“아... 외삼촌. 정말 이래도 될까요?”
김해역은 외삼촌이자 MBS 방송국의 PD인 감우대에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이래도 될까요.’야? 이미 다 이야기한 거잖아.”
“그래도 비텔님의 힘인데 내 힘인 거처럼 떠들었다가 천벌이라도 받으면...”
“됐어. 신경 쓰지 마.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비텔님도 이해해줄 거야. 돈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면 돼.”
감우대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지만 김해역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까 인터넷 보니까 다른 애들이 방송에 나와서 전부 공개할 거라고 하던데...”
“그거 국장님이 막아본다고 하셨어. 그리고 못 막아도 방송 컨셉을 살짝 바꾸면 돼. ‘신의 사도로서 신을 알리려 했던 거다.’ 처음부터 신의 힘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일단 초능력자로 먼저 알려서 거부감을 없앤 거라
고 하면 돼. 뭐가 됐든 네가 첫 번째야. 첫 번째 초능력자, 첫 번째 비텔님의 사도. 두 번째, 세 번째는 결국 묻히게 되어 있어.”
감우대가 좋은 말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김해역의 표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육상을 하고 있는 김해역은 한 달 전 친한 후배를 통해 비텔에 대해 알게 됐다. 그 후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조건을 먼저 달았다. 김해역은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대답했고 그 후배에게서 비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당연하다. 갑자기 신을 믿으라니. 그 후배가 자신을 사이비 종교에 전도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이어진 ‘헌금’의 시범, 그리고 그 후배가 종전에 세웠던 각종 기록을 우습게 돌파하는 모습을 보며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김해역은 비텔을 받아들였다.
대학 육상 선수로서 김해역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보다 잘난 동기들의 뒤를 따라야 했다. 그런 그가 비텔을 믿자마자 다른 동기들을 추월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김해역은 평생 느낄 수 없었던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감독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이렇게만 하면 이번 대회 대표로 나갈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둡고 불투명하기만 했던 미래가 안개가 사라진 밝은 아침처럼 밝아졌다.
그가 비텔을 믿게 된지 겨우 한 달이 지났지만 비텔은 그의 인생에 깊게 파고들었다. 그에게 비텔을 믿음으로써 받는 신체능력 향상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런 비텔의 힘을 자신의 것처럼 사칭하다니. 무서웠다.
‘차라리 가족한테 알려주지 말 것을...’
후배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김해역은 그걸 지키지 않았다. 평소 불효만 저질렀던 자기가 드디어 효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알린 것이다. 역시나 김해역이 그랬던 것처럼 부모님도 믿지 않았지만 김해역의 ‘헌금’ 시범에 비텔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몸이 아프다고 힘들어했던 둘이 몸이 건강해져 활발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김해역은 흐뭇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 감우대가 찾아왔다. 감우대는 이미 김해역의 어머니에게서 비텔에 대해 듣고 비텔을 믿고 있었다.
김해역이 어머니에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지 말라고 했지만 김해역 자신이 지키지 않았던 걸 그와 닮은 그의 어머니가 지킬 리 없었다.
감우대는 김해역을 설득했다. ‘헌금’을 이용하면 세계 최초의 진짜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좋은 점을 나열했다. 세계 최초의 진짜 초능력자에게 걸린 상금과 그로인해 찾아올 엄청난 부.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말에 김해역은 결국 넘어갔다.
“정말 헌금을 많이 하면 괜찮을까요?”
“그래. 당연하지. 비텔님이 왜 헌금을 직접 받으시겠어. 돈을 좋아하셔서 그래. 네가 돈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면 용서해주실 거야.”
“그..렇겠죠?”
그럴 듯 했다. 돈을 좋아하니까 직접 받아가는 거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오늘 받은 출연료 전부 헌금해야지. 그러면 비텔님이 좋아하실 거야.’
하지만 그것은 둘의 헛된 희망이었다.
-신을 기만한 자, 신에게 버림받으리라!
김해역의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해역이 놀라서 감우대를 쳐다봤다. 감우대도 눈을 잔뜩 치켜뜬 채 김해역을 보고 있었다.
< 59 비텔교의 부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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