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법보다 가까운 것 >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녹음이 가능한 세상이니까.
혹시 기우형이 찾아와서 난리치면 녹음하려고 녹음 앱 버튼을 폰 메인화면으로 옮겨두고 보지 않고도 누를 수 있도록 연습해뒀다. 일단 한 번 누르면 화면이 꺼져도 중지버튼을 누르기 전까진 계속 녹음 되는 것도 확인했다.
난 그락카르 같은 야만인이 아니라 문명인이니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야지. 바로 켰다.
“그런데 이 새끼가 내 말 씹냐? 사람이 말하는데 집중을 해야지. 새끼야.”
한 덩치가 손바닥을 휘둘렀다. 따귀를 때리려는 모양이다.
쫙!
맞아줬다.
“악!”
소리도 질러줬다.
“허허. 이 새끼. 엄살 장난 아닌데? 그게 아프냐? 이렇게 살살 때리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큭큭. 웃긴 새끼. 뭐가 죄송하냐?”
쫙! 쫙!
덩치가 한 손으로 연이어 따귀를 때렸다.
“윽. 악.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냐. 어? 뭘 잘못했어.”
쫙!
“윽.”
“뭘 잘못했냐고. 이 새끼야. 어? 뭐냐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쫙!
“그러니까.”
쫙!
“대답을 해보라고.”
쫙!
“뭘 잘못했냐고 새끼야.”
물어볼 때마다 한 대씩 때린다. 아프다. 따귀지만 충분히 아프도록 힘을 실어서 때리고 있다. 그락카르의 힘은 받았지만 맷집까지 받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락카르가 동급의 다른 오크에 비해 맷집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화살도 튕겨낼 정도의 강철 피부를 가지고 있다.
내가 그것도 물려받았다면 이 정도 따귀는 아프긴 커녕 간지러웠을 것이다. 오히려 때리는 덩치가 아파했겠지.
“야. 이 새끼 존나 찰진데? 때리는 맛이 있어.”
“그러냐? 나도 좀 때려보자.”
쫙! 쫙! 쫙! 쫙!
짜증난다. 장난하듯 돌아가면서 한 대씩 친다. 순간 열이 올라서 주먹이 나갈 뻔 했다. 내 엄청나게 뛰어난 인내심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맞았던 거 그르칠 뻔 했다.
그렇게 연속으로 30대쯤 맞았을 때,
“아우들. 그쯤 해. 상처 남으면 일 복잡해져.”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우사장이 말렸다.
“이 새끼도 이 정도면 말귀 알아들었겠지. 야. 왜 맞는지 알겠냐?”
“.....”
“이 새끼가 아직도 대답이 없네.”
퍽!
덩치가 주먹을 휘둘러 볼을 쳤다. 그 순간 입안에서 짭짤한 액체가 느껴졌다. 피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피다. 빌어먹게도 안 나오던 피다.
아까 맷집은 못 받은 거 같다고 했던 거 취소하겠다. 맷집도 전달 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몇 대 맞았을 때 입안이 터져 피가 나와야 했을 거다.
맷집은 정말 어설프게 전달받은 거 같다. 아프긴 더럽게 아픈데 다치질 않아. 원래는 처음 몇 대만 맞아주려고 했는데 피가 안 나서 도대체 몇 대를 맞은 건지...
이제 이정도면 충분하다. 폰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녹음 중지 버튼을 눌렀다.
“야. 너 맞는 거 좋아하냐? 대답 안하면 계속 맞을 거 알면서 왜 대답을 안 하니? 대답하라니까?”
덩치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턱.
잡았다.
“어쭈. 잡아? 더 쳐 맞아 봐야... 어.. 어어? 왜 안 빠져 이거.”
덩치가 내게 잡힌 손을 빼내려했지만 당연히 안 빠졌다. 저 손은 이제 내가 허락해주지 않는 이상 안 빠진다.
“잠깐만. 잠깐만 그대로 있어봐.”
입안에 침을 만들어 살짝 입가로 흘렸다. 손가락으로 찍어보니 빨갛다. 좋아. 바로 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켰다. 그리고 덩치들 옆에 서서 셀카를 찍었다.
“자. 김치.”
찰칵.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혔다.
아주 잘나왔다. 입가에 흐르는 피는 침으로 양을 부풀려서 꽤 많이 흘리는 것처럼 나왔고 연이어 따귀를 맞은 뺨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좋아. 완벽해.
“이 좆만한 새끼가 미쳐가지고.”
옆에 있던 덩치가 주먹을 휘둘렀다. 느리다. 가볍게 고개만 젖혀 피했다.
“이 새끼가 정말! 이건 다 니가 자초한 거다. 우린 말로 해결하려고 했어.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니 탓이니까 우리 탓 하지 마라.”
본격적으로 덩치들이 덤벼왔다.
턱. 터턱. 휙. 휙.
막고, 막고, 피하고, 피하고, 쉽다.
“이 새끼 뭐 이리 잘 피해.”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는 덩치들.
정말 우습다. 날 때려보겠다고 주먹을 휘두르는 이 녀석들이 말이다. 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매일 목숨을 건 전투를 그락카르의 의식에 동화 되어 직접적으로 겪는다. 그락카르가 되어 맞닥뜨리는 적의 움직임은 이 녀석들처럼 느리지 않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쏘아진 총알처럼 빠르고 위력적이다.
그런 적과의 싸움을 당사자가 되어 그대로 경험한 나다. 그런데 몸집만 키운 덩치들이 느리기 짝이 없는 주먹으로 날 맞춰보겠다고? 정말 웃기는 일이다.
피하고, 피하고, 막고, 막고, 그리고 밀고, 밀고, 밀고, 밀고.
우당탕탕.
덩치들 넷이 길거리에 나자빠졌다. 슬쩍 밀었을 뿐인데 세게도 넘어진다. 두 놈은 넘어질 때 잘못 넘어졌는지 팔이랑 다리를 잡고 나뒹굴고 있다.
“쯧쯧.”
한심하다. 저런 놈들이 그락카르의 세계에 있었으면 전쟁터에서 바로 칼 맞고 죽었을 텐데.
“그만 덤벼라. 그러다 쳐 맞는다.”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나한테 맞을 테니까. 그냥 누워 있어라. 그럼 맞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당연히 내 말을 듣는 놈은 없었다. 한 놈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오씨! 이 새끼가! 야! 니들 오늘 나 말리지 마라. 나 정말 이 새끼 죽인다.”
아무도 말린 적 없다. 계속 같이 주먹 휘둘렀으면서 새삼스럽게 저런 말을 하다니. 나 같으면 쪽팔려서 못할 텐데.
죽이겠다고 달려오는 놈이나 아직 누워있는 세 놈이나 영혼색이 어두운 빨간색이다. 즉, 성질 급한 놈들이 죄도 제법 지었다는 뜻이지.
양심의 가책 없이 때릴 수 있겠네.
그락카르가 부락에서 쉴 때 가장 많이 하는 게 뭔지 아는가? 바로 결투다. 그것도 일대다의 결투. 그락카르는 수십, 수백 명의 오크와 주먹질을 하며 싸운다. 아무리 힘세고 빠른 그락카르라도 다수와 싸우면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최근엔 족장급, 대족장급하고의 결투까지 경험했다.
수백, 수천 대를 얻어맞았지. 그러다보니 어디를 어떻게 맞으면 고통스러운지 안다. 가령...
퍽.
이렇게 왼쪽 옆구리 아래쪽을 밑에서 위로 올려치면 순간적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그락카르는 그 고통도 즐겼지만... 사람은 그게 안 되지.
“어... 어억...”
얻어맞은 덩치가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 덩치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다른 덩치들이 놀라서 달려온다. 한 놈은 쩔뚝이고 있는 것이 넘어질 때 다리를 다친 모양이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덩치가 커서 넘어질 때 더 충격을 받는 건가?
“뭐야. 너 왜 그래.”
그리고 다음은 명치. 여기는 살짝 끊어 치면 효과가 좋다.
퍽.
“끄.. 끄으..”
맞으면 저렇게 숨을 못 쉰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워서 대련시간에 명치 많이 맞아봤지. 다음은 목젖을... 치려다가 거기 주먹반개정도 밑 부분을 주먹의 뾰족한 부분으로 찍었다. 목젖은 쳤다가 잘못하면 죽을 거 같아서...
“아악!”
다 큰 놈이 비명은... 맞은 덩치가 그 부분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저 부분은 몸이 마비된다거나 그런 건 없다. 그냥 아프다. 정말 아프다. 그락카르가 순간 움찔 할 정도로 말이다.
“어... 어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눈치 채고 머뭇거리고 있는 다리 다친 덩치는 친히 마중나갔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이 새끼야!”
당연히 무시하고 다가가서,
쩍!
주먹을 날리는 척하면서 덩치가 막으려고 움찍 할 때 기습적으로 허벅지 안쪽을 그대로 걷어찼다.
“크억!”
역시나 그대로 쓰러진다. 다리 다친 놈은 다리를 더 때려줘야지.
순식간에 네 놈이 쓰러져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미 싸움은 끝난 거 같지만... 내가 이미 수십 대를 맞았는데 한 대로 끝낼 순 없지.
악! 어억! 크학! 어허헝!
돌아가면서 2~3대씩 더 때려줬다. 역시나 아픈 부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우사장과 기우형을 봤다. 당황하던 둘은 내가 보자 순간 움찔했다.
“가.. 가자고.”
우사장이 기우형을 재촉했고 둘은 차에 오르려고 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땅을 박차 몸을 날렸다.
쉬쉭!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빠르게 달렸고,
퍽! 퍽!
“아아아악!”
“끄어어억!”
특별히 덩치들보다 더 세게 한 대씩 때려줬다.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는 우사장과 기우형을 보며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저기 기우형이가 하자고 한 거야! 난 그냥 따라오기만 했어!”
‘도망가야 해. 기우형이한테 떠넘기면 난 보내줄 거야. 일단 벗어난 다음에 박사장한테 싸움 잘하는 애들 빌려달라고 해서 다시 오면 돼.’
“뭐요! 당신이 돈 뺏자고 했잖소! 나야말로 그냥 따라온 거야!”
‘시발. 내가 왜 맞아야해! 억울해! 내 돈 도둑질해간 새끼한테 맞기까지 해야 한다니! 나중에 총이라도 구해서 반드시 죽인다. 이 새끼!’
바로 고민을 끝냈다. 그냥 패자.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벅.
급소는 때리지 않았다. 특별히 급소가 아니고 옷 입으면 가릴 수 있는 부위로 골고루 때렸다. 우사장과 기우형 둘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피하려고 멀찍이 구르기도 했는데 잡아서 끌고 와 다시 때렸다.
때리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른 누가 보거나 사진, 동영상 등을 찍히면 처음에 한 짓이 헛짓이 된다.
아무도 없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비명이 지르면 모텔 쪽 사람이 나와 볼만도 한데 그 사람들도 안 나온다. 정말 살인나기 딱 좋은 곳인 거 같다.
아니지. 나와 보진 않았지만 소리 듣고 신고했을 순 있잖아? 때리는 걸 멈췄다.
“미..미안하네. 내가.. 잘못 했...네..”
“죄송하오..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
둘 다 거의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잘못을 빌고 있었다. 아직 더 때리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더 때리다간 정말 죽을 것 같다. 괜히 이런 인간들 죽여서 살인죄로 잡혀가고 싶지 않다.
“더 맞을래요? 아니면 저랑 약속하나 하실래요.”
“약..속. 약속 하겠네.”
“약속 하겠...소.”
둘에게 약속의 무게를 썼다. 약속은 ‘앞으로 한상에 관련된 어떤 일도 언급하지 않는 것.’ ‘기한’은 2개월, ‘벌칙’은 10분간 전신마비로 했다. 대부분 타박상이니 2개월이면 내가 폭행했다는 어떤 증거도 남지 않을 것이다.
10분간 전신마비가 벌칙이지만 겁을 주기 위해서 나에 대해 말할 경우 영원히 전신마비에 빠지게 되도록 최면을 걸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나에 대해 말했다가 1번 전신마비 당하고 나면 영원히 전신마비 당할까봐 무서워서 언급 못하겠지.
‘기한’이 2개월인데다가 전신마비는 강한 복통에 비해 강한 벌칙인지 교단 기여 포인트가 34씩 추가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려다가 네 덩치를 보며 고민했다. 저 인간들에게도 ‘약속의 무게’를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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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교
교주 : 한상
신도 : 58명
교단 기여 포인트 : 1,274
헌금 : 1,58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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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에 쓴 후 시간이 지나 다시 복구 되었다가 지금 또 써서 1,274점이 됐다. 네 덩치에게도 ‘약속의 무게’를 쓰면 방금 차감된 점수로 봐선 450~460점정도 차감 될 거다.
저 덩치들에게 과연 그런 점수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으음... 그래. 그냥 하자. 괜히 점수 아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으면 귀찮아진다.
다만 덩치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약속의 무게’를 썼다. 다른 건 똑같은데 ‘벌칙’에 10분간 전신마비에 10분간 강한 복통을 추가했다. 이 덩치들은 ‘약속의 무게’에 처음 당하는 거니 겁을 먹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고통을 주면 더 빠르게 겁먹고 조심하겠지.
‘벌칙’을 두 가지를 해서 그런지 각각 46점이 추가로 차감 되었다. 남은 교단 기여 포인트는 690점. 정말 아깝다. 괜히 점수만 엄청 썼다.
퍽! 퍼퍼퍼퍽!
악! 아아악! 으어억! 커헉! 우욱! 우엇!
한 대씩 급소를 때려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
“한상군.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다음 날, 일 끝내고 사무실에서 쉬고 있는데 어제 찾아왔던 덩치들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후.. 알았습니다. 나가시죠.”
그 정도 ‘벌칙’으론 충분하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불쌍해서 이때까지 너무 심한 ‘벌칙’은 피해왔는데 이 인간들에겐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혹한 ‘벌칙’으로 해야겠어. 교단 기여 포인트가 모자라면 돈을 헌금해서 포인트를 만들어서라도 말이야.
이 사람들 처리한 후 감독님한테 일 그만둔다고 해야겠다. 제대로 된 일을 구할 때까지만 임시로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귀찮은 일이 계속 생기면 할 수가 없지.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에 대화하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안내했다. 먼저 들어가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하고 덩치들과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딸칵.
문을 닫고 잠갔다.
“음? 잠글 필요까진 없을...”
퍽! 퍼퍼퍽!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우선 덩치들을 쳐서 쓰러뜨렸다. 이제 이 남자도 쓰러뜨린 후 ‘약속의 무게’를...
“자.. 잠깐! 난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사업 제안을 하러 온 거네!”
퍽!
“어억!”
음? 사업? 때리고 나서 남자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사업 제안을 하러 왔다고? 그 말을 한 남자를 봤다.
“아아악.”
급소를 제대로 맞아서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화장실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난감하다.
< 56 법보다 가까운 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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