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크 더 오크-55화 (55/228)

< 55 법보다 가까운 것 >

-아침해가...

턱.

“아. 상쾌하다.”

정말 좋은 아침이다. 이제는 그락카르의 삶을 보는 것에 그다지 거부감도 안 들게 됐고 이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잘나가서 얄미운 그락카르가 얻어터지는 장면을 봐서 기분이 좋다.

“.....”

갑자기 비참해지네. 28살이 돼서 5살짜리를 질투하고 있다니.

아. 몰라. 그 놈이 어딜 봐서 5살이야. 사진 찍어서 지나가는 사람 100명한테 물어보면 98명이 40살이라고 할 거다.

그런데 오크도 지역마다 생활상이 다르구나.

그락카르도 처음 보는 주술사라는 직업도 그렇고, 그락카르가 살던 지역은 방어구를 잘 안 입고 다녔는데 이번에 도착한 오르히의 부락은 대부분 방어구를 무기 못지않게 신경 쓰고 있다. 일반 오크들뿐만 아니라 대족장인 오르히까지도 말이다.

대족장 쯤 되면 피부가 강철 못지않을 텐데 말이야. 강철 갑옷을 입는다고 소용이 있을까?

잠깐... 오크들 갑옷입고 말고를 내가 왜 신경 쓰고 있는 거지? 쓸데없이 말이야. 나하고 전혀 상관없...지는 않구나. 혹시 그락카르가 또 죽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살려야 할 테니까. 음... 에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그만 생각 하고 씻기나 하자. 출근해야지.

***

“뭐? 한상이 출근했는지 안 했는지를 니가 왜 물어봐?”

사무실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내 이름에 그쪽을 바라봤다. 명구 아저씨다.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물어본 모양이다. 기우형이겠지. 명구 아저씨와 저런 톤으로 통화하는 사람 중 나에 대해 물어볼 사람은 기우형 밖에 없다.

어제 돈을 붙인 후 잠잠하더니 오늘은 뭔 소리를 하려고 전화를 건 거지?

“한상이랑 통화해서 돈 돌려달라고 할 생각이면 우선 나랑 절교부터 한 후에 해라.”

명구 아저씨가 단호하게 말한다. 참... 며칠 전까지는 이름도 몰랐던 아저씬데 나한테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해준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거겠지. 저런 분이 잘 돼야하는데 사업 실패하고 저런 소장 밑에서 퀵을 하고 계시다니.

퀵을 하는 것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저런 소장 밑에 있다는 게 안타까운 거다. 퀵도 괜찮은 사무소에서 하면 제법 많은 돈을 번다. 예전에 내가 있단 사무소의 오토바이 에이스는 한 달에 500만원도 벌었었다.

기름 값 적게 들고 속도가 빠른 오토바이는 차량운전에 비해 많은 돈을 벌었다. 내가 차를 버리고 오토바이로 전직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같은 사무소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해서 안 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런 말 할 생각이 없는데 왜 한상이를 찾아? 뭐? 웃기지마. 니가 이번에 한 짓이 있는데 한상이가 또 해줄 거 같아?”

어... 나한테 또 뭔 일을 시키려는 건가?

“웃기지마. 돈을 얼마를 주든 안할 거다.”

어. 어어... 돈 주면 하는데요. 저기. 아저씨. 돈은...

“헛소리하지 마. 너 한상이한테 전화하거나 만나려고 하면 정말 나랑 끝이다. 그런 줄 알고 이제 끊어. 그리고 나도 당분간은 너랑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연락하지마라.”

명구 아저씨가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바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들었냐?”

“네.”

“전화 오면 받지 말고, 찾아오면 쌩 까. 할 일 있다는 거 다 거짓말이다. 이놈 그렇게 발 넓은 놈 아냐. 오죽하면 돈 못 받았다고 밑바닥으로 떨어진 나한테 방법 없냐고 물어본 놈이다. 그런 놈이 일 받아오긴 개뿔. 너한테 수작부리는 거야.”

“아... 네.”

그런 거였나. 돈 준다고 해서 순간 혹했는데 날 낚으려는 거였다니.

그런데 명구 아저씨라면 인맥이 있어도 상담할 거 같긴 하다. 저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니. 사업할 때도 정직하게 잘 하셨을 거 같은데 왜 무당에 휩쓸리셔서... 이번에 내 ‘최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것도 바로 믿는 걸 보면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게 문제인 듯하다.

화물청사 택배지사는 아침만 바쁘다. 오후에는 아침에 작업해놓은 화물을 비행기에 싣기 위해 항공사 사무실에 승인 받으러 다녀오고 중간에 들어오는 급한 택배 물품을 일반 화물로 싣는 정도가 다다.

그 일들을 마치고 5시정도가 되면,

“오늘 야근 근무자만 남고 이제 퇴근해라.”

라고 감독님이 말한다. 가끔 감독님이 기분 좋을 때는 3~4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난 잠깐 일하기로 한지라 야근을 안 한다. 그러니까 이제 난 퇴근이란 거지.

“이제 가냐?”

“네.”

퇴근하기 위해서 라커를 열고 옷을 갈아입는데 명구 아저씨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마침 잘 됐다. 나 오늘 일 끝났으니까. 내 차 타고 가자.”

“어.. 저 때문에 일부러 돌아오신 거예요?”

보통 퀵 아저씨들은 3~4시쯤에 일 나가면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간다. 저녁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5신데 사무실에 온 걸 보면 나 때문에 일부러 온 모양이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계속 그럴 건 아냐. 며칠만 태워줄게. 며칠이면 돼. 기본이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며칠만 지나면 자기가 잘못한 거 깨달을 거야.”

“그런가요?”

안 그런 거 같은데... 내 폰에 기우형의 부재중 전화가 30통 찍혀있다. 그 외에 욕설문자도 20개쯤 왔나? 문자가 적은 이유는 너무 많이 보내서 수신 거부를 했기 때문이다. 수신 거부 안했으면 지금쯤 욕설문자 500개쯤 보냈을지도.

“차 좋네요. 좌석도 푹신푹신 한 것이, 완전 편한데요?”

“집보다 더 오래 있는 게 차안이잖아. 그래서 돈 좀 들였지.”

옵션에 돈 좀 썼을 거 같다. 요즘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옵션 정말 비싸던데.

“너도 나중에 차사면 나한테 말해라. 저기 성남 가는 길에 괜찮은 곳 있으니까. 3분의 1 가격이면 정식 옵션하고 똑같이 맞춰줘.”

“오. 싸네요.”

개조한 거였군. 역시 퀵 아저씨가 그 비싼 옵션을 할리가 없지. 퀵 아저씨들은 차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싸고 좋은 것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하니까. 덕분에 나도 좋은 정보 많이 알았지.

“미안하다.”

“에이. 그만하세요. 아저씨 탓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 엄청 돈 벌었는데 죄송해하면 어떡해요. 오히려 중개료 챙겨드리지 못해서 제가 죄송하죠.”

한창 가는 중 명구 아저씨가 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어제랑 오늘 만날 때마다 저러신다.

“그래도 일이 뒤끝이 없어야 하는데 말이다. 우형이 그 놈이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이번에 눈이 훼까닥 돈 거 같다.”

5,135만원이면 눈이 돌만도... 나도 돌지 않을까?

“근데 많이 거친 분인가 봐요. 아저씨가 걱정 되서 직접 집에 데려다주실 정도면.”

“공사판에서 20년 놀면 안 거칠어질 수가 없어. 그리고 평소엔 착한데 술 마시면...”

뒷말을 안 하셨지만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안 들어도 알 수 있다. 몇몇은 술 마시면 짐승으로 변신하지. 기우형이 그런 인간 중 하나인 모양이군.

“그런데 경찰을 부르거나 고소를 해서 돈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계약서를 안 써서 불안한데.”

“그러진 않을 거야. 내 얼굴 다시 안 볼 생각이 아닌 이상.”

... 지금도 충분히 안 볼 거처럼 행동하고 있는데요. 절연할 거 아니면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청 전화하고 문자 보냈잖아요.

“그리고 이쪽 판이 워낙 더러워서. 우형이가 청구한 1억도 정상적인 건 아닐 거다. 경찰이나 고소 들어가면 걔도 털려.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역시 기우형 그 인간은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었어. 납품하고 공사하면서 누군가를 등쳐먹고 사기치고 그랬을 거야. 지금 나한테 하는 짓 보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아. 여기서 내려주시면 되요.”

“집 앞까지 가자.”

“여기 길이 복잡해서 저 집에서 내려주시면 돌아갈 때 힘들어요. 그리고 그 아저씨가 여기까지 쫓아왔겠어요? 집 바로 앞이에요. 여기서 2분이면 가요.”

“그렇긴 하지. 알았다.”

명구 아저씨는 골목 들어가는 길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도 데려다줄 테니까 혼자 화물청사 밖으로 나오지 마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그래.”

참 좋은 분이다.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며 명구 아저씨에 대해 생각했다. 6~7년 된 인연인데 딱히 깊은 인연은 아니었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다. 이번에 개인기사 그만두고 임시로 화물청사에 일하러 온 게 아니었으면 평생 만나지 않았을 그런 인연 말이다. 며칠 전만해도 딱 그 정도였다.

그냥 성격 좋은 딱딱한 아저씨라는 생각이 명구 아저씨한테 가진 인상의 전부였는데 이렇게 진국인 사람일 줄이야. 역시 사람은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다.

부우웅. 끼익.

“뭐야?”

갑자기 차가 돌진해 와서 옆으로 비켜줬는데 내 옆에 딱 선다. 봉고차다. 봉고차 옆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나한테 다가왔다. 그 중 두 명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우사장과 기우형.

저 둘이 같이 올 줄이야. 힘을 합친 건가? 그런데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 설마... 명구 아저씨 차를 미행한 건가?

“시발. 명구 그 새끼 성격은 내가 잘 알지. 오지랖 넓게 직접 태워다 줄 줄 알았다.”

기우형이 말했다. 정말 명구 아저씨 차를 미행해 온 모양이다.

넷. 우사장과 기우형을 제외한 사람의 수다. 전부 젊고 덩치가 크다. 생긴 것도 험악하고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이 조직 폭력배라도 되나? 그 네 명이 반원을 그리며 나를 에워쌌다.

우사장과 기우형은 차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혹시나 최면에 걸릴 게 무서운 걸까? 아니면 이 덩치들한테 모든 일을 맡긴 걸까.

저 둘이 덩치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뻔하다. 자기들도 고소하거나 경찰을 부를 입장이 안 되니 폭력으로 돈을 돌려받아보겠다는 거겠지.

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모텔촌인지라 이 시간엔 지나가는 행인이 없다.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듣고 달려와 주는 사람도 당연히 없을 거다.

“이 조그만 새끼가 감히 우사장님 돈을 빼간 놈입니까?”

네 덩치가 가까이 부텅 압박하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무시하고 계속 주변을 살폈다. 역시 모텔촌이라 그런지 cctv도 안 보인다. 당연하겠지. cctv가 있으면 누가 모텔촌에 찾아오겠어.

“크크. 이 새끼 겁먹고 두리번거리는 거봐.”

한 덩치가 비웃자 다른 덩치들이 따라 웃었다.

“아가야 겁먹지 마. 니가 오늘 우리말만 잘 들으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물론 말 안 들으면 조금 아프겠지만 말이야.”

“이놈 구라쟁이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프겠지. 크크.”

다시 웃는 덩치들. 역시나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주변을 살폈다.

방금 명구 아저씨가 내려준 도로도 제법 멀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가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는 편의점도 제법 멀다.

미행해서 온 거니 오늘 처음 온 거라 여기 지리를 아는 것도 아닐 텐데 절묘한 타이밍에 잘 덮쳤다.

“햄스터냐? 그만 좀 둘러보고 우리 봐라. 우리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니에요.”

“맞아. 우린 그냥 대화를 중개하러 온 거야. 네가 우사장님이랑 할 대화가 있다고 해서 말이야.”

살피는 걸 마쳤다.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힘든 위치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범죄가 일어나기 좋은 곳이 있다니. 이러니 우리나라 강력범죄가 늘어나는 거야. 하지만...

잘됐네.

< 55 법보다 가까운 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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