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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54화 (54/228)

< 54 그락카르의 부락 >

***

캅카스가가 충격 속에서도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힘이 강해지는 능력을 카록께 받았구나!”

“그렇다!”

쾅! 쾅! 퍽! 퍽!

친다. 그리고 맞는다.

전사의 결투에서 방어는 없다. 오로지 공격만 있으며 맞는 것은 버틴다. 버티지 못하면 진다.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우위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이다.

힘과 맷집.

도끼를 들어 상대를 죽일 것이 아니라면 이 두 개가 오크가 가진 힘의 척도다. 그 두 가지를 종합해 더 강한 전사가 이기는 것이다.

퍽!

캅카스가의 주먹이 내 안면에 박혔다. 충격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뒷걸음질 쳤다.

잔뜩 흥분한 상태이기에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머리가 크게 울린다. 캅카스가의 덩치는 나보다 꽤 크다. 우드록보다도 크고 캄스니보다는 조금 작은 상태.

그런 덩치다 보니 주먹이 거의 내 얼굴만 하다. 맞을 때마다 누군가 온힘을 담아 휘두른 쇠공을 맞는 느낌이다. 그걸 수십 방 맞았더니 이미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다. 하지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난 전사니까.

쾅!

내 주먹이 캅카스가의 얼굴에 작렬했다. 캅카스가의 머리가 뒤에서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휙 넘어갔다. 잠깐이지만 허우적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까전만해도 주먹을 한 번씩 나누면 내가 더 뒤로 밀렸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밀어붙이고 있다.

“크흐..”

즐겁다. 강자와 주먹을 나누는 이 상황 자체가 즐겁지만 이길 것 같아 더 즐겁다. 카록께 받은 능력 ‘불가사의한 힘’이 제대로 발동하자 나보다 더 큰 캅카스가를 오히려 힘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정말 너무나 즐겁다. 그런데 그때,

“크라라락!”

캅카스가가 고함치며 강하게 주먹을 내뻗었다. 그 주먹엔 붉은빛이 서려 있었다.

쾅!

“크웍!”

아프다. 흥분한 상태인데도 고통이 느껴졌다.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면서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은 느낌을 일시적으로 받으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나도 카록께 받은 힘이 있다!”

카록께 받은 능력을 사용했구나. 역시 카록의 힘은 대단하다. 순간적으로 충격이 2배는 강해진 것 같다. 캅카스가, 온 힘을 다해 결투에 임하기 시작했구나.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

보라색 빛이 일어나 양 주먹에 머물렀다.

“능력이 하나가 아니야?!”

캅카스가가 놀라든 말든 주먹을 휘둘렀다.

쾅!

보라색 빛을 사용하기 전과 위력에 별다른 차이는 없는지 캅카스가가 더 밀려나거나 하진 않고 아까와 비슷하게 밀려났다. 변화는 캅카스가가 아닌 내게 있었다. 시큰거리던 안면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잠깐 캅카스가와 나,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기다렸는데 캅카스가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있기에 나도 허리를 펴고 당당히 캅카스가를 바라보았다.

“형제. 강하다.”

“형제도 강하다.”

대족장과의 싸움을 방해했을 때 쌓였던 캅카스가에 대한 미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 형제는 진정한 전사다. 형제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강하고 명예로운 전사.

“사과한다. 형제는 자만심 가득한 어린 전사가 아니다. 그대를 진정한 전사라 인정한다.”

캅카스가가 내게 사과하고 전사로서 인정했다. 나도 뭔가 캅카스가에게 사과할 것이 있나 생각해봤지만 없다. 난 내 전사로서의 본능에 충실했으니까. 전사로서의 본능에 충실했다면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말없이 대치하던 우리는..

“크라라라락!”

“크워어어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고함치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쾅! 쾅! 쾅! 쾅!

다시 치고 다시 맞았다.

***

오르히 대부락에는 3개의 공터가 있다. 공터는 결투, 집합, 오락, 친목의 공간으로 쓰이는데 전체 구성원이 1만 5,000명에 달하는 오르히 대부락에서 그 역할을 전부 하려면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번 공터에서 캅카스가가 오늘 온 대전사급 형제와 결투를 한다!”

족장급의 결투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1번과 3번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오크의 3분의 1이 그들의 전투를 보러갔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신경 끄고 원래 있던 공터에 남아 하던 것을 했다.

“어차피 가기 전에 끝나 있을 텐데 뭐 하러 가나.”

“캅카스가와 대전사급 형제가 싸운다면 다섯 방이면 결투가 끝날 거다.”

“나는 세 방이라고 생각한다.”

보러가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차피 가기 전에 결투를 끝나 있을 거라는 것.

캅카스가는 오르히 대부락에 있는 오크 전사 중 오르히 바로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강자다. 대부락이 아닌 자신의 부락을 만든다고 해도 3~4,000명은 족히 데리고 있을 수 있는 강자.

그런 강자가 족장급도 아니고 대전사급의 전사와 싸운다. 어째서 그런 결투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끝날 것이 분명하다. 공터간의 거리는 제법 멀다. 아마 보러 가는 중간에 결투가 끝날 것이다.

구워어어어어억!

구오오오오오오!

우워어어어어억!

하지만 이상하게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결투가 벌어진 건가? 한 번 가봐야겠다.”

“딱히 할 일 없으니 나도 가겠다.”

호기심을 느낀 오크들이 하나둘 2번 공터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단체 결투라도 하는 건가?”

“내가 갔다 오겠다.”

“그래. 부탁한다. 나도 가보고 싶은데 갑옷 손질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걱정마라. 금방 다녀오겠다.”

하지만 금방 오겠다던 그 오크는 오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오오!

가아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함성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결국 갑옷손질을 하던 오크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2번 공터로 향했다.

“부락의 형제가 전부 모였나?”

갑옷손질 하던 오크가 2번 공터에 도착했을 때, 2번 공터 주변은 수천 명의 오크로 가득했다. 갑옷손질 하던 오크는 아직 덩치가 작아 다른 오크들 때문에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크들의 벽을 뚫고 들어가 공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보려고 했다.

“밀치지 마라!”

“왜 미나!”

퍽! 퍼퍽!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밀려서 짜증난 다른 오크에게 몇 대 맞고 쫓겨났다. 보통 때라면 이 정도에서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갔을 것이다. 그는 어리고 약해서 젊고 강한 저 오크들 사이를 뚫고 갈 자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쾅! 쾅! 쾅! 쾅!

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다른 오크들의 함성. 너무 보고 싶었다.

‘꼭 본다. 못 보면 전사도 아니다.’

“우오오오오!”

그는 적에게 돌진할 때처럼 강하게 외치며 형제들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파고들었다.

퍽! 퍼퍼퍼퍽! 퍼버버버버벅!

사방에서 주먹질과 발길질이 쏟아졌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나갔다. 많이 아팠지만 머리를 숙인 채 오기로 계속 밀고나가기를 한참, 앞에 가로막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고 더 이상의 주먹질과 발길질도 없었다.

‘드디어 다 통과했구나. 해냈다!’

기뻐하며 고개를 들어 공터를 봤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기라도 한 듯 멈춰버렸다.

쾅! 쾅! 쾅! 쾅! 쾅!

두 오크 전사가 엄청난 박력을 뿜어내며 주먹을 주고받고 있었다. 둘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얼굴에서 흐른 피로 전신이 젖어있었다.

‘어떻게...’

분명 한 쪽은 캅카스가다. 그리고 다른 쪽도 피부가 붉은 것이 특이하긴 하지만 덩치를 보면 족장급이 되기 직전의 대전사급 전사가 맞았다. 그 붉은 피부의 전사는 캅카스가에 비하면 한참 작았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거지?’

덩치는 작지만 족장급 전사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고 주먹을 주고받았다.

쾅! 쾅!

둘의 주먹 한 방, 한 방에서 강력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우오오오오오오옥!”

갑옷손질을 하다 온 이 오크도 둘의 박력에 감화되어 어느새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오크가 모여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락의 오크 대부분이 2번 공터에 몰렸다.

오크들이 몰려들었을 때 이미 한창 결투가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투는 한참 더 이어졌다. 그리고 하늘 높이 떠 있던 해가 기울어 어둠이 스물스물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털썩!

한 오크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2번 공터에 모인 모든 오크가 승자를 향해 거대한 축하의 함성을 질러주었다. 다른 오크들의 함성을 들으며 승자가 된 오크는 기분 좋게 웃었다.

“크흐..”

***

“강하다. 형제.”

“캅카스가를 이기다니. 대단하다.”

“캅카스가는 오르히 다음 가는 전사인데...”

캅카스카를 쓰러드리자 다른 족장급 전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표정엔 아까 조금이나마 담겨져 있던 적대감이 사라져있었다. 역시 전사는 강해야 한다. 강하면 다른 형제들에게 이렇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캅카스가도 대단했다. 정말 대단한 강자다.”

쓰러진 캅카스가를 칭찬했다. 진심이다. 보라색 빛이 내 체력을 채우는 만큼 그의 체력을 빼앗았을 텐데 해가 질 때까지 나와 싸웠다. 정말 대단한 형제다.

“다음에는 나와 싸우자. 형제.”

“아니다. 나다. 그락카르와 다음에 싸우는 것은 나다.”

“내가 싸울 거다.”

“형제들은 곧 오르히와 싸워야 하지 않나. 순번이 가장 뒤인 내가 그락카르와 싸우는 것이 맞다.”

족장급 전사 넷이 서로 나와 결투를 하겠다고 다툰다.

“크흐..”

기분이 좋다.

“난 지금이라도 좋다. 결투를 하고 싶으면 덤벼라.”

호기롭게 말했다. 얼굴이 터지고 찢어져 피가 많이 흐르긴 했지만 카록께서 주신 보라색 빛의 힘에 의해 체력은 꽤 남아 있다. 이 정도 체력이라면 얼마든지 결투를 더 할 수 있다.

내 말에 4명의 족장급 전사가 망설였다. 이해한다. 겉으론 이미 싸울 수 없는 상태로 보일 테니까. 하지만 난 겨우 이정도 다쳤다고 물러서는 약한 오크가 아니..

“크카카. 역시 그락카르다. 하지만 이제 그만 하고 다음에 싸워라. 최상의 상태에서 싸워야 상대도 좋아한다.”

“알았다.”

그래. 미로크의 말이 맞다. 나도 상대가 다친 상태에서 싸우자고 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거다. 결투는 최선을 다하는 상대를 이겨야 더욱 의미가 있는 거다. 역시 미로크다. 최고의 암컷답게 맞는 말만 한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형제가 내 부락에 왔구나. 그 덩치로 캅카스가를 이길 줄은 생각 못했는데 대단하다. 그락카르.”

다른 형제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 오르히가 다가왔다. 오르히도 내 결투를 보고 있었구나. 저런 강자가 내 결투를 봐줬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쁘다.

“강함은 덩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사로서의 마음가짐이 결정하는 거다.”

“크카카카카. 그래 맞다. 강함은 덩치가 결정하는 게 아니지. 상처는 어느 정도면 나을 것 같다.”

“내일이면 낫는다.”

정말 내일이면 나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제법 상처가 깊은 것 같지만 카록께서 주신 보라색 빛 덕분에 싸우며 어느 정도 치유했기에 그렇게 부상이 크지는 않다.

“그런가? 하지만 내일은 내가 시간이 안 되는군. 3일 뒤라면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어떤가. 형제. 나와 결투를 하는 것이.”

대족장 오르히와의 결투! 당연히!

“한다. 무조건 할 수 있다.”

“그러면 3일 뒤에 여기서 보지.”

대족장과의 결투. 그 강대했던 캄스니보다도 강한 기세를 뿌리는 강자와의 결투. 설렌다.

***

캅카스가와 그락카르의 결투가 있었던 날로부터 3일 뒤.

“크카아아아아아아아악!”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억!”

1번, 3번 공터에서 쉬던 오크들이 벌떡 일어났다.

“오르히의 고함이다! 그리고 조금 작은 다른 고함은 얼마 전 온 그락카르의 고함이다!”

“가자! 둘의 결투가 시작된다!”

그락카르는 부락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른 오크들이 그와 다른 오크의 고함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캅카스가와의 결투는 그 정도 충격이 있었다.

“기대된다! 오르히와 그락카르의 결투라니.”

“캅카스가를 이긴 그락카르니 오르히와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을 거다!”

오크들은 큰 기대감을 갖고 2번 공터로 향했다. 캅카스가와 그락카르의 싸움처럼 자신들을 흥분시키는 결투를 볼 수 있을 거라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쾅! 쾅! 쾅! 쾅!

“크웍! 크훅! 크워어억!”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르히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그락카르의 모습이었다. 그락카르가 주먹을 보라색으로 빛내며 어느 정도 반격을 하기는 했지만 오르히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견뎌내며 묵묵히 그락카르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곧 결투는 끝났다. 그락카르가 기절하는 것으로 말이다.

< 54 그락카르의 부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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