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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50화 (50/228)

< 50 지나가는 길 >

‘기한’과 ‘벌칙’ 이건 좀 고민된다. ‘벌칙’은 그냥 복통이나 두통 중 하나 고르면 된다. 두 개가 싫으면 치통도 괜찮지. 그런데 ‘기한’은 좀 고민된다. 너무 길게 잡으면 포인트가 많이 소모되고 너무 짧게 잡으면 약속 지키기 전에 ‘벌칙’이 끝날 수도 있다.

스킬을 여러 방법으로 써보긴 해야 한다. 스킬의 정확한 사용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 내가 예전부터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기한’은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다.

상당히 애매한 ‘기한’이다. ‘벌칙’이 무한정 가해질 수도 있고 몇 초 만에 끝날 수도 있다. 그리고 약속이 지켜져서 아예 발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인트는 선불로 지불해야하는 게 문제다.

몇 포인트 쓰게 될 것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묻지도 않는다. 알아서 계산하고 바로 인출해간다. 그게 문제다. 몇 포인트 나갈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음... 그래. 결정했어. 언젠가 한 번은 해보긴 해야 하는 거니까. 아직 큰 ‘벌칙’을 걸지 않았을 때 ‘기한’쪽을 시험해보는 게 낫겠지.

‘기한’은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벌칙’은 강한 복통으로 한다.

‘벌칙’은 같은 거로 선택했다. 그래야 확실히 어떻게 포인트가 사용되는지 비교할 수 있으니까.

-스킬 ‘약속의 무게’ 제한 조건으로 ‘기한’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벌칙’ 강한 복통을 지정합니다.

추가로 교단 기여 포인트 12가 차감됩니다.

추후 ‘벌칙’이 가해진 기간에 따라 추가 차감이 이루어집니다.

허. 선금으로 12포인트나 받고 후불로 더 받겠다고? 기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받겠다는 거군. 그래도 다행이다. 한 번에 100이상의 포인트가 날아가는 것도 각오했었다. 저 아저씨가 고통을 참아낸다면 기한이 무한대가 될 지도 모르는 거니까.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여하튼 이정도면 할 만하다. 앞으로도 기한은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로 해야겠어.

“그럼. 이제 사정을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최면 거는 데 그런 것도 필요하오?”

음... 그냥 1억이나 떼여서 못 받는 상황이란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어서 물은 거였는데 왠지 말하기 거북해 보인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물을 필요는 없지.

“알면 좋긴 하지만 몰라도 그다지 상관은 없습니다.”

“그럼. 그냥 합시다.”

“그러죠. 그런데 그 건물주에게 최면은 걸 수 있는 건가요? 그 사람이 싫어하면 걸 수 없잖아요. 최면 건다고 하면 상당히 싫어할 거 같은데.”

내 말에 기우형이 피식 웃는다.

“세상에 최면 믿는 인간이 어디 있소. 지금 나도 하나 안하나 본전이란 생각으로 하는 건데. 그냥 요식행위로 한다고 말하면 되오.”

“야야. 이놈이 말을 해도... 좀 순화해서 말해라.”

그렇긴 하네. 소장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었으니까. 그 건물주도 최면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겠지.

“그럼 가서 계약서 쓰고 최면 걸고 하면 끝나겠네요.”

간단하네. 이 간단한 일로 5,000만원을 번다니. 크... 돈 벌기 참 쉽다.

“그런데.. 저 놈한테 듣기론 계약서 같지도 않은 계약서를 썼다고 하던데 각서 같은 거면 안 되는 거요?”

“각서요?”

각서라.. 당연히 상관없지. 사실 아예 아무 것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최면인 척 하려면 여러 가지 장치를 하는 게 낫지. 난 이런 장치가 없으면 최면을 걸지 못합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 장치 없이 최면이랍시고 마구잡이로 ‘약속의 무게’를 걸고 다니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괴물이라고 무서워 할 지도...

“각서도 상관없습니다. 각서는 써준대요?”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으니까. 같이 일한 다른 사장들이 이미 각서 받았다고 들었소. 나도 달라고 하면 각서쯤은 얼마든지 써줄 거 같은데. 그때 가서 최면을 걸면 될 것 같은데...”

“그러죠 뭐. 그런데 최면 못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괜히 갔다가 안 받는다고 하면 헛걸음하는 거잖습니까.”

“거 세상에 최면 믿는 사람이 어디 있..”

“야 이시꺄. 그 입 닥쳐라. 좀.”

우형은 또 최면 믿는 사람 없다는 말 하려다가 명구 아저씨의 제지에 입을 다물었다. 우형의 저런 인식이 기분 나쁘진 않다. 사실 나도 세상에 최면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최면이라니. 그게 말이 돼?

“흠흠.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 거요. 웬만하면 받을 거요. 안한다고 하면 고소든 뭐든 하겠다고 말하면 되니까.”

“고소요? 고소 할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고소하시죠?”

믿지도 않는 최면을 하려고 하면서 고소는 왜 안 하는 거야?

“이 바닥일 그만둘 생각 아니면 못하오. 일하고 싶은 놈 넘쳐나는데 건물주 고소한 놈한테 일 맡기는 인간이 어디 있겠소.”

그렇군. 역시 아직은 법보다 가까운 게 많이 있어.

“가서 바로 할 수 있겠소? 사전에 뭐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오? 그 인간 인적사항이라든가 성격이라든가 하는 건 필요 없소?”

“필요 없습니다. 최면은 인적사항과 성격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그 무슨 똑똑할수록 잘 걸리고 어벙할수록 안 걸린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이 인간 돈은 많지만 그리 머리가 좋은 건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제 최면은 사람 안 가려요.”

정확히는 스킬이 사람 안 가리지. 대충 들어야 할 건 다 들은 거 같다. 이제 남은 건 언제 실행 하느냐인데 그건 우형 저 인간이 건물주한테 전화해서 최면에 대해 허락받고 약속을 잡아야 하는 거니까.

“더 해줄 말 없으면 이제 헤어지죠.”

“최면은 언제 할 거요?”

“그거야 그쪽 분께서 건물주한테 전화해서 결정하셔야죠. 전 언제든 가능합니다.”

“그럼. 잠깐만. 지금 당장 정합시다. 나중에 다시 만나기도 힘들 테니까.”

지금 당장? 행동력은 좋네. 이 인간. 바로 폰을 꺼내더니 누군가한테 전화를 건다.

“아. 우사장님? 나 기우형입니다.”

제법 긴 통화가 이어졌다. 통화내용과 말투만 보면 돈 때문에 골치 썩고 있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완전 돈독한 사이 같다.

“하하. 세상에 진짜 최면이 어디 있습니까. 말도 안 되죠. 그냥 마누라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거 새끼. 말 정말 더럽게 하네. 미안하다. 한상아.”

“괜찮아요.”

한참을 통화하던 기우형이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

“3일 뒤에 갑시다.”

이미 통화 내용을 다 들어서 최면 받기로 했다는 것과 그때 가기로 한 거 둘 다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속이려는 사람이랑 쓸데없이 같이 있고 싶지 않다.

“아. 한상아. 같이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아뇨. 괜찮아요.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해요.”

“됐어. 내 부탁 들어준다고 와서 고생하는데 당연히 내가 데려다 줘야지.”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데려다줬으면 했다. 몇 년 동안 차타고 다니다가 요즘 대중교통 타고 다니려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차나 한 대 뽑을까? 좋은 건 무리라도 중고차 정도는...

집으로 돌아와 씻고 컴퓨터 좀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

3일 뒤, 우사장의 사무실로 왔다.

“우리 사이에 최면은 무슨 최면.”

“하하. 우사장님. 저야 우리 사이에 각서나 최면 같은 게 필요 없다는 건 저야 알죠. 근데 마누라가 안심을 하지 못해서 그래요. 맨날 얼마나 바가지 긁는지..”

“기사장 여편네도 문제구만. 우리 여편네도 엄청 문젠데. 그럼 빨리 끝내자고.”

둘 정말 친해 보인다. 돈 때문에 싸우는 사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네. 그럼 각서부터 쓰시죠.”

우사장이란 사람이 펜을 꺼내 각서를 적기 시작했다. 뭐 적어달라고 말도 안했는데 알아서 척척 적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거 같다.

“됐지?”

“전 된 거 같은데 마누라가 꼭 넣으란 내용이 있어서요.”

“그래? 뭔데?”

“대금을 지불할 돈이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기우형의 대금을 바로 지급한다라고 적어주시면 됩니다.”

이 내용은 기우형과 내가 상의해서 집어넣은 내용이다. 기우형은 우사장이 분명 돈이 있는데 안 주는 거라고 했고 그렇다면 저 내용을 집어넣으면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거면 돼? 알았어. 기사장은 알지? 내가 돈이 있으면 왜 공사비를 안주겠어. 돈이 없으니까 못 주는 거지.”

“알죠. 저야 알죠. 그런데 마누라가 몰라서 그래요.”

“알았어.”

우사장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 내용을 각서에 적었다. 어차피 법적 효력이 없는 각서이니 뭘 적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내일 오전 10시 이후에 각서가 효력을 발휘한다라고 적어주시죠.”

“왜 내일이야? 그냥 지금부터 한다고 하면 되지.”

“하하. 우사장님이랑 각서 같은 게 없는 상태에서 저녁을 먹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우사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잖아요. 마누라가 써오라고 해서 쓰긴 하는데... 각서가 효력을 발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밥이 안 넘어갈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면 뭐...”

이 내용은 내가 넣어달라고 한 거다. 아무래도 바로 효과가 나타나면 나한테 최면 없애달라고 강짜부릴 게 분명하니까. 내가 있는 상태에서 ‘약속의 무게’가 발동하면 나도 이 일에 깊게 말려들게 된다. 괜히 그런 걸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 없을 때 발동해서 나 없는 상황에서 깔끔하게 끝나는 게 좋다. 그리고 아침 10시로 한 이유는 은행은 열려 있어야 돈 주기 편하니까.

“그럼. 이제 최면만 받으면 돼?”

“네.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시죠.”

“좋지. 빨리 최면 거쇼. 배고프니까.”

“네. 알겠습니다. 여기 보세요.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최면이 시작됩니다.”

딱!

우사장의 눈이 손가락으로 향하는 순간 바로 튕겼다.

“각서에 있는 사항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하지.”

“약속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래야 최면에 걸립니다.”

“약속한다.”

-스킬 ‘약속의 무게’를 사용합니다.

교단 기여 포인트 100이 차감되었습니다.

‘기한’과 ‘벌칙’을 결정해주세요.

“각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으시면 지킬 때까지 복통을 느끼실 겁니다. 아시겠죠?”

“알았소.”

‘기한’은 약속을 지킬 때까지, ‘벌칙’은 강한 복통.

-스킬 ‘약속의 무게’ 제한 조건으로 ‘기한’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벌칙’ 강한 복통을 지정합니다.

추가로 교단 기여 포인트 12가 차감됩니다.

추후 ‘벌칙’이 가해진 기간에 따라 추가 차감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손가락을 튕기면 최면이 마무리됩니다. 여기 보세요.”

딱.

“끝난 거요?”

“네. 끝났습니다.”

“허. 참.. 기사장. 이거 걸린 척이라도 해야 하나?”

“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마누라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온 건데요. 그냥 나중에 마누라가 전화하면 했다고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잠깐만. 으으으으. 머리가 아파. 복통이 올 거 같아~~~. 흐흐. 어때. 걸린 거 같아?”

“하하. 완벽합니다.”

우사장이 날 놀리듯 몸을 떠는 연기를 했다. 그래. 지금 많이 놀려라. 소장 아파하는 걸 보면 그 정도 연기론 안 될 걸? 아파서 바닥을 뒹굴겠지.

“이제 가서 소주 한 잔 꺾죠. 제가 쏘겠습니다.”

기우형 저거 일 끝났다고 난 신경 쓰지도 않고 우사장과 밖으로 나간다. 여기 올 때 저 인간 차타고 왔는데 버스 타고 돌아가야겠네.

그리고 다음 날 화물청사에 출근해 열심히 일하던 중,

-스킬 ‘약속의 무게’가 완료 되었습니다.

추가로 교단 기여 포인트 1이 차감됩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지? 시간을 확인하니 10시 31분이다. 30분만이 일이 끝났네. 복통을 30분 버틴 건가? 많이 버틴 건지 조금 버틴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5분 뒤. 내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받았다.

-으윽. 이 새끼야! 나한테도 최면 걸었냐!

기우형이었다.

< 50 지나가는 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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