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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45화 (45/228)

45 뜻밖의 시작

“오늘은 돈 준다고 했잖소.”

“아. 깜빡했다. 이따 줄게. 이따.”

“그렇게 시간 미룬 게 며칠 짼지 아쇼?”

상하차를 하다가 쉬기 위해서 들어온 사무실. 어제 봤던 싸움을 똑같이 그대로 보고 있다. 퀵서비스 소장님과 퀵아저씨의 싸움. 쉬어야 하는 데 둘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다.

화물청사에 있는 작은 사무실, 원래는 택배회사 직원만 쓰는 사무실 겸 휴게실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에서 회사이름을 걸고 퀵서비스도 하겠다며 사무실을 반으로 쪼개 퀵서비스 업체에 내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택배회사에 퀵서비스를 요청하는 일은 없었고 본사는 곧 사업을 접고 퀵서비스 업체와 계약도 종료했다. 그런데 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퀵서비스 업체는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했다.

본사에 허락을 받고 그러는 건진 모르겠다. 저기 아저씨한테 줘야할 돈을 안주고 강짜부리는 소장이 워낙에 얼굴에 철판 깐 인간이라서 말이다. 저 인간이라면 나가라는 데도 나가지 않고 버티기를 하고 있는 걸지도...

“아. 빨리 주소. 지금이라도 은행에 가서 찾아오면 되잖소.”

“지금 바쁘잖아. 일하는 거 안 보여?”

“카드라도 주소. 내가 찾아올 테니까.”

“없어. 돈. 오늘 일해서 돈 들어와야 줄 수 있어.”

“아.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소!”

저 둘은 내가 화물청사에 온 이래 똑같은 내용으로 매일 싸우고 있다. 아. 짜증난다. 싸우는 내용이라도 다르면 모르겠는데 어제 들었던 말을 오늘 똑같이 들어야 한다니.

싸우는 모습을 보며 대충 파악한 상황만 봐도 소장이 저 아저씨를 괴롭히고 있는 거다. 매일 10건 이상 일을 진행하는 저 소장이 30만원도 안 되는 돈이 없을 리 없으니까. 수수료도 떼고 좋은 일거리는 자기가 직접 가기까지 하는데 30만원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소장과 저 아저씨 둘 다, 내가 6~7년 전 여기에 일할 때도 있었던 사람이다. 여기 그만두고 택배기사가 되었을 때도 지나가며 꽤 봤고 나중에 택배기사 그만두고 퀵을 할 때는 여러 번 일을 같이하기도 했었다.

그 때도 둘의 사이가 좋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서로 주고받으며 싸우는 관계였는데 요 며칠 일하면서 보니 주도권이 소장 쪽으로 완전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랑 무슨 상관일까. 그냥 신경 끄고 사무실을 나왔다. 차라리 밖에서 쉬는 게 낫다. 어제는 ‘곧 끝나겠지...’하는 마음에 사무실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오늘은 그 싸움이 끝나지 않을 걸 아니까.

“설마 내일 또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점점 숲의 기운이 강해진다. 좋은 곳이다. 형제.”

“이 정돈 아직 약하다. 위로 더 가면 더 좋은 숲 있다. 그락카르.”

시바... 또 그락카르가 꿈에 나와서 똑같은 대사를 친다. 그리고...

“그래도 이정도면... 크흐.. 카록께 부끄럽지 않은 싸움이었다.”

똑같은 대사를 치며 죽었다. 아. 내 심장. 심장만 아픈 게 아니다. 몸에 검에 베이고 찔린 상처만 수십 개다. 그게 다 아픈데 심장 쪽이 특히나 더 아파서 그걸 말하는 거다. 실은 온몸이 다 아팠다.

빌어먹을 고통. 3번째 겪는 건데 똑같이 아프다.

“아으... 빌어먹을.”

심장을 부여잡으며 잠에서 깼다. 죽임당한지 3일째다. 그 말은 3번이나 죽었다는 말이다. 나보다 더 죽음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보통은 1번 죽고 마니까.

“으음...”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폰을 노려봤다.

“제발...”

천천히 집어 들어 화면을 켜고 날짜를 확인했다.

“젠장...”

또 어제다. 아니. 그제인가? 여하튼 또 그 날이다. 혹시나 했는데 이젠 확실해졌다. 그락카르가 죽은 날이 반복되고 그락카르가 죽은 그 날의 내 하루도 반복된다.

왜지? 그락카르가 죽어서? 그게 맞을 거다. 그락카르가 죽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뭔가 특별한 일이라고 할 만 한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

한숨만 나온다. 그 놈이 죽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매일 죽으며 느끼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내일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날 상당히 괴롭게 한다.

내일이 없다.

보통은 희망이 없다는 말인데 난 정말 내일이 없다.

출근해서 물건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며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하. 힘드시죠?”

“아뇨.”

“아. 네....”

무표정으로 퉁명하게 단답으로 대답해 대화를 차단했다. 미안한데 형이 지금 너랑 대화하고 있을 정신이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다시 생각하자.

그락카르가 죽으니 하루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락카르를 살리면 반복이 끊어지지 않을까?

그래. 그거야. 그런데 이 단순무식한 놈을 어떻게 살리지?

“음...”

잠깐. 원래 그락카르의 세상으로 가면 의식이 없는데 그락카르가 죽은 후엔 의식도 있었잖아? 어쩌면 그락카르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시도해보자.

***

“크흐?”

“왜 그러나. 형제.”

그락카르가 인간의 매복을 느꼈다. 지금이다.

‘야!!!! 저기 적이 있어!!!! 지금 너희를 공격하기 직전이야!!!!’

소리쳤다. 아니. 지금 딱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니 소리쳤다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네. 강하게 생각했다. 그걸 인간이 저기 있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반복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 가자. 빨리 안내해라.”

빌어먹을. 달라진 게 없다. 이 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걸까? 그락카르의 성격을 생각하면 내 말이 들리는데도 무시하는 거일 가능성이 높다. ‘비텔의 귀’로 듣는 다른 오크의 생각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쉬익. 퍽.

“그워!”

잠깐 생각하는 사이 다시 인간의 기습이 시작되었고...

“그래도 이정도면... 크흐.. 카록께 부끄럽지 않은 싸움이었다.”

또 죽었다. 부끄럽지 않긴 개뿔... 아으. 심장아파.

***

“하하. 힘드시죠?”

“말 걸지 마요.”

“네?”

“지금 누구랑 말할 정신없으니까. 말 걸지 말라고요.”

형이 지금 너랑 대화하고 그럴 여유가 없다. 말 걸었던 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다른 직원에게 갔다. 내 욕을 하겠지. 평소엔 상당히 신경 쓰이겠지만 지금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말 내 말이 그락카르에게 안 들린 걸까? 음... 그래. 이번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말을 해보자.

***

“크흐?”

“왜 그러나. 형제.”

지금이다. 발동! 오늘 하루 종일 생각했던 비장의 무기!

‘그락카르여. 난 카록이다. 너에게 계시를 내려주겠다. 지금 네가 본 곳에 인간이 매복하고 있다. 그들과 싸워 날 즐겁게 하거라. 지켜보겠다.’

그락카르놈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떡밥을 던졌다. 카록 눈에 한 번 들어보겠다고 목숨 내던지고 싸우는 놈들인데 카록이 직접 말 걸어준 이 상황을 무시할 순 없겠지.

“아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 가자. 빨리 안내해라.”

그리고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확실하다. 이놈은 내 생각을 못 듣는다. 카록의 이름이 나왔으니 무시하더라도 잠깐 움찔은 해야 했다. 그런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어제와 똑같은 상황을 반복한 걸 보면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은 거다.

그리고...

“그래도 이정도면... 크흐.. 카록께 부끄럽지 않은 싸움이었다.”

나한테는 안 부끄럽냐! 아으. 내 심장...

***

“하하. 힘드시죠?”

“닥치고 꺼져라.”

“네?”

내게 말 걸었던 직원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래. 잘못 들은 건지 궁금하겠지. 고개를 돌려 눈에 힘줘 노려봤다. 직원이 순간적으로 눈을 내리 깔았다.

“꺼지라고.”

“아. 네...”

미안하다. 그락카르 때문에 내 눈깔이 좀 무서워진 건 알지만 지금 형이 상당히 예민해서 말이야. 어제 말 걸지 말라고 했는데도 니가 나중에 또 ‘힘드시겠네요.’라면서 말 걸더라고. 니 성격이 너무 좋은 게 문제야. 지금 내가 다른 누구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거든. 그냥 오늘 하루 종일 말 걸지 말아봐.

그락카르에게 내 말이 안 들린다. 이건 확실하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락카르가 죽지 않게 할 수 있지?

도대체...

‘아. 시발. 존나 싸가지 없네. 열 받는데 확 칠까? 뒤지게 패면 기분 좀 나아질 거 같은데.’

나한테 욕먹은 직원의 생각이 들려왔다. 그리고 순간 번뜩하며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이거다.

휙하고 고개를 돌려 그 직원을 바라봤다.

“어? 어...”

그 직원이 겁먹었는지 당황하며 물러났다.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비텔의 귀’

답은 이거다. 그래. 스킬을 왜 줬겠어. 이런 상황을 이겨내라고 준 거 아니겠어? 이런 멍청이 같으니. 답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걸 깨닫지도 못하다니.

감사합니다. 비텔님. 비텔님께선 이 상황을 모면할 모든 것을 이미 주셨는데 제가 깨닫지 못했었군요. 비텔님이 주신 이 스킬로 그락카르 그 멍청한 놈 살려보겠습니다.

***

‘그락카르를 살리고 싶다. 그렇게 해서 하루가 반복되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언덕에 인간이 매복해있다는 걸 그락카르가 알면 그게 가능할 텐데.’

확실하게 내 욕망을 담아 생각했다. ‘비텔의 귀’는 욕구나 욕망을 담은 생각만 들을 수 있는 스킬이니까. 혹시나 못 들었을까봐.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 가자. 빨리 안내해라.”

또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아... 이게 실패하다니. 정신적으로 충격이 크다. 분명 정답이라고 확신했던 것이 오답이었다니. 정말 무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크워어어어억! 선두는 나다!”

멍청한 새끼... ‘내가 먼저 죽겠다!’하면서 달려가는 것 보게. 3시간 동안 싸우는 걸 지켜봤다. 진짜 몇 번을 봤는데도 지금 내 상황을 잊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싸운다. 그락카르만 잘 싸우는 게 아니라 인간들도 잘 싸운다.

까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그락카르와 공방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정말 엄청나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강하다. 저러니 괴물 같은 그락카르가 지지. 두세 명이 힘을 합쳐 그락카르의 공격을 막는 장면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다. 얼마나 힘들게 훈련을 했을까.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둘은 전에 싸웠던 울프람에 미치진 못하지만 거의 그에 근접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즉,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저런 인간들 하나만 우리 세계로 넘어오면 스포츠계는 그냥 평정당하겠네.

저런 엄청난 실력자 22명을 상대로 반수 이상을 죽이는 그락카르도 정말 대단한 놈이긴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3시간의 싸움이 끝나고, 역시나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꿈은 마무리됐다.

***

그렇게 비장의 수였던 ‘비텔의 귀’가 실패하고 또 몇 가지 시도를 하며 며칠이 지났다.

“하하. 힘드시죠?”

“.....”

“저기..”

“......”

물론 다 실패했다.

후... 내일 부터는 여기 나오지 말아야겠다. 요 며칠은 내일이 찾아올 거란 희망에 출근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분간은 오늘 하루의 반복이 계속될 거 같다.

“그러니까 일 끝나고 준다니까?”

“어제도 그랬잖소. 그래놓고 끝나면 바로 집에 가려고?”

대충 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여전히 싸우고 있다.

슬슬 인내심이란 게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제까진 저 싸움을 피해 사무실 밖으로 나갔지만 오늘은 ‘내가 왜 나가야 하는가.’란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왜 나가야해? 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면 되잖아? 일 그만두기 전에 저 보기 싫은 소장 한 방 먹이고 나가야겠다.

“저기. 소장님?”

“응? 왜?”

“정말 돈을 주실 거라면 그냥 간단하게 계약서 작성해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아저씨도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물러나실 거 같은데.”

잠깐 생각하던 소장이 아저씨를 보며 ‘그럴 거야?’라고 물었다.

“계약서를 내가 어떻게 믿어? 분명 이 인간 무시할 텐데.”

당연히 아저씨는 못 믿는다.

“걱정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지키게 해드릴 수 있거든요.”

오늘만큼은 사무실에서 편안히 있고 싶다. 그러니 대출혈서비스를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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