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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44화 (44/228)

44 뜻밖의 시작

잔발이!!

감독님 말이 들려왔다. 그 말에 맞춰 나와 다른 직원 둘은 작은 물건을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렸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천천히 엑스레이로 들어가는 물건들. 비행기에 실을 물건이기에 엑스레이에 한 번 걸러진다.

그만!!

물건 올리는 것을 멈췄다. 비행기용 컨테이너박스가 전부 찬 모양이다. 컨베이어벨트를 멈추고 위에 있는 물건도 빼서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렸다.

다음 작업 시작은 새로운 컨테이너박스가 온 후다.

“후...”

“하하. 힘드시죠?”

“조금 그러네요. 하도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서...”

컨베이어벨트 위의 물건을 다 치우니 두 명의 직원 중 하나가 말을 걸었다. 꽤 활발한 사람이다. 이틀 전에 온 나를 몇 달은 본 것처럼 친근하게 대해준다.

“예전에 하셨었다고 했죠?”

“네. 6.. 아니 7년 전인가? 그때 한 반년 정도 했었죠.”

6년인지 7년인지 모르겠네. 여하튼 지금 난 공항화물청사에 있는 택배 지점에서 상하차를 하고 있다. 군대 전역 후 처음부터 택배 차량을 운전했던 것은 아니다. 먼저 택배상하차를 하다가 택배기사가 되었었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을까.

집에서 쉬긴 싫고 운전일은 다시 하기 싫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시 친했던 택배 화물청사 지점 주임님, 우리끼리는 감독님이라 부르는 분한테 전화했다. 여전히 화물청사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아르바이트 하나를 더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때까지 임시로 일하기로 했다.

택배상하차는 항상 사람이 모자랐던 것이 기억나 연락했는데 운 좋게도 정말 자리가 비어있었다.

힘들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힘들진 않다. 오히려 너무 안 힘들어서 문제다. 예전엔 힘들어서 일하는 동안 시간이 정말 빨리 갔는데 그락카르의 힘을 얻은 지금은 일이 너무 쉽다보니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집에서 놀 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여기 나온 건데 똑같이 시간이 안 간다. 그래도 돈 벌면서 시간이 안가니까 여기가 낫긴 하다.

“그때도 지금이랑 비슷했나요?”

“똑같죠. 뭐. 달라진 건 일하는 사람 정도?”

정말 놀랐다. 6~7년이 지났는데 일하는 환경은 그대로라니. 그때 일할 땐 3~4년만 지나면 상당히 자동화가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 꽤 직장을 잃을 거라 생각했고 나도 기계한테 밀려서 일자리 잃기 싫어서 택배기사가 된 거였는데 말이야.

6~7년이 지났는데도 기계는 없고 여전히 사람이 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도 반 정도는 바뀌었는데 반 정도는 그때 그 사람들이다.

여기는 물건을 집어넣기 전에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야 하기에 같은 컨베이어 벨트를 사이에 두고 다른 회사의 직원들과 같이 일할 때가 있다. 그래서 다른 회사의 직원과도 친했었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현장 풍경도 일하는 사람도 예전 그대로다. 정말 놀랍다.

“하긴 여기가 변할 리 있나. 매일 똑같은 짓만 반복하...”

큰 거!!

감독님 외침이 들려왔고 우리는 바로 대화를 멈추고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물건을 올리기 시작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세요.”

오후 5시 30분. 야간 근무가 있는 사람을 남겨두고 퇴근했다. 예전엔 퇴근할 때쯤 되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집에 가면 대충 씻고 쉬다가 쓰러져서 잠들었었다. 그땐 정말 하루가 빨리 갔었지.

그러고 보니 그때는 마치 내가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다가 보람이란 게 별로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은 아닐까하고 자조적인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나저나 그락카르... 이제 못 보는 건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문득 그락카르 생각이 떠올랐다. 하긴 그락카르를 본 후 나한테 일어난 변화가 보통 극적인 게 아니었으니까.

이제 그락카르가 죽었으니 모든 게 끝나는 걸까?

-교단 기여 포인트 1점 얻었습니다.

제공자 : 민정

기여부분 : 기도

는 아니겠지. 아까부터 저렇게 열성적으로 비텔님한테 기도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말이야.

더 이상 그락카르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이미 얻은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새로운 능력을 얻지 못 할뿐이지.

사실 그건 별 상관없다. 계속 그락카르와 연결되어 있었어도 얻을 건 전투 스킬 밖에 없지 않겠어? 힘은 이미 충분하다. 예전엔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적응 된 지금은 퍽치기 3인조 정도는 가볍게 이길 자신이 있다.

여기서 더 강해져봐야 뭐하겠어. 쓸데도 없는데 말이야.

사실 다시 운전 일을 하고 싶진 않아서 여러 가지 다른 직업을 생각하다가 여러 운동 종목이나 격투기 같은 걸 생각한 적 있다. 지금 가진 신체능력이라면 어디를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TV를 통해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게 준비하는 지 안다. 그런데 별 노력없이 힘을 갖게 된 내가 그 사람들이 가졌어야 할 영광을 뺏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에 돈은 풍족해져도 마음이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만 말이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마음이 힘든 것쯤이야.

여하튼 이제 그락카르는 죽었으니 더 이상 보지 않게 되겠지. 딱히 아쉽진 않다. 처음 연결되었을 때처럼 그락카르가 미친 듯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저 그런 상태였달까?

그락카르와 연결되고 나서 많은 능력을 얻긴 했지만... 사람을 죽이고 뜯어먹고 하는 일이 쉽게 용납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그락카르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다.

뭐. 더 이상 그락카르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젠 쓸모없어질 발전이지만 말이야.

앞으로 내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젠 모든 게 끝나서 평범한 꿈을 꾸게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계의 존재와 연결되는 걸까.

집에 돌아왔다. 예전엔 오자마자 씻고 누워서 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었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전혀 피곤하지 않다.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좀 하다가 12시 넘을 때쯤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몸이 강해졌어도 잠을 안자면 피곤한 건 똑같아서 말이야.

***

“점점 숲의 기운이 강해진다. 좋은 곳이다. 형제.”

“이 정돈 아직 약하다. 위로 더 가면 더 좋은 숲 있다. 그락카르.”

꿈이군. 이건 그락카르와 연결된 게 아니다. 그냥 꿈인 것이 확실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보통 그락카르와 연결되면 난 완전히 그락카르가 된다. 그락카르가 되어 그의 감정, 생각 등 모든 것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관조하는 느낌이 아니라 말이야.

좀 멍하네. 의식이 완전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분명 그락카르의 시야로 보는 모든 것이 뚜렷한데 머릿속에는 안개가 끼어있는 느낌이다. 역시 꿈이라 그런가 보다. 제대로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네.

꿈은 그날과 똑같이 진행되었다. 그락카르가 죽었던 그 날 말이다.

.... 뭔가 기분이 더럽다. 꿈은 무의식의 표출이라는데 내가 그락카르를 그리워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락카르가 죽던 날의 내용을 그대로 꿈꾸다니.

꿈은 정말 그 날 그대로 진행되었다. 내가 의식이 있다는 것 외엔 전부 그대로였다.

여전히 그락카르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내 꿈인데도 그락카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니. 살짝 짜증난다.

그리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당시 그락카르의 감정과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그대로 느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걸 느끼니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락카르와 내가 같은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너무 상반되니까 충돌이 일어난다.

이런 쓸데없는 꿈은 꾸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런데 이제 다른 이와의 연결 같은 건 없나보다. 그락카르가 처음이자 마지막 연결이었던 거군. 그걸 알게 되니 이제는 조금 아쉽긴 하다. 이세계의 생활을 엿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먹는 것 때문에 그게 싹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야.

“크흐?”

“왜 그러나. 형제.”

그락카르가 언덕 위를 바로 보며 의문에 찬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장면이 있었네. 그락카르는 분명 인간의 매복을 눈치 챘다. 완벽하게 ‘인간의 매복이다!’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 가자. 빨리 안내해라.”

하지만 그락카르는 경험이 적어서인지 그 느낌을 무시했지. 어쩌면 빨리 전쟁이 가득하다는 땅으로 가고 싶어서 그 느낌을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느낌을 무시하지 않고 대비했다면 그락카르가 죽지 않고 이길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인간 쪽 전력이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쉬익. 퍽.

“그워!”

전투를 알리는 오크의 소리가 들려왔다.

쉬쉬쉬쉬쉬쉬쉬쉬쉬이익!

화살이 쏟아졌다. 당시 그락카르가 되어 느꼈을 땐 상당히 많이 날아오는 것 같았는데 의식을 가진 채 객관적인 눈으로 보니까 그리 많지 않다. 침착하게 방어하며 뒤로 물러나 진영을 재정비한 후 싸움을 시작했으면 결과가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물론 오크 놈들이 진영 재정비 같은 걸 할 리가 없지.

“크워어어어억! 선두는 나다!”

멍청한 그락카르놈이 좋다고 돌격하고 그 뒤를 이어 다른 오크들이 달린다. 정말 개판이다. 중구난방으로 대충 달려오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저러고도 그렇게 잘 싸웠다니.

그락카르가 스무 명의 적과 싸우는 중에도 그의 시야에 간간히 다른 오크들의 싸움이 잡혔다. 저쪽도 그락카르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네. 4배의 수차이가 있는데도 잘 싸운다.

하지만 잘 싸우면 뭐하나. 이미 졌는데 말이야.

“이름 알려줄 수 있겠나. 인간 전사여.”

결국 죽는다. 슬쩍 보이는 시야 속의 다른 오크들도 수백의 인간들에게 마무리 당하고 있었다. 두 전장 모두 진 것이다. 그락카르가 이 싸움을 이겼어도 저쪽의 수백에게 죽었겠군. 결국 그락카르의 죽음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크흐.. 그런가. 그거 아쉽군. 카록께 가서 형제들에게 날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좀 닥치고 죽어!”

인간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심장에 박은 검을 비튼다. 큭. 아프다. 꿈인데도 당시 느꼈던 고통 못지않다. 진짜 너무 아프다. 이 꿈은 다시는 꾸지 않았으면 좋겠네.

“그래도 이정도면... 크흐.. 카록께 부끄럽지 않은 싸움이었다.”

기뻐하고 있다. 당시엔 죽음으로 느꼈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락카르의 감정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는데 다시 느끼니 확실해졌다. 이놈은 죽으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정말 미친놈이다.

***

“아으...”

그락카르가 죽는 장면 다음 바로 잠에서 깼다. 다시 심장 쪽을 부여잡았다. 아직도 고통이 느껴진다. 빌어먹게도 현실적인 꿈이다.

시간을 보니 알람이 울리기 15분 전이다. 거지같은 꿈을 꿔서 일찍 일어났군.

평소라면 15분 더 누워있겠지만 간밤의 꿈에 잠이 확 달아나서 그냥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 씻었다. 그리고 화물청사로 출근했다.

화물청사에 도착하니 사무실 불이 꺼져있다.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모양이다. 15분 일찍 준비했더니 15분 일찍 도착했다. 대충 준비하고 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어. 일찍 오셨네요.”

“나왔냐?”

다른 직원과 감독님이 차례차례 왔다. 그리고 일을 시작했다.

“음... 이상한데?”

일을 하는데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왜 그러세요?”

“물건이 어제랑 너무 비슷하지 않아요?”

“그래요? 전 전혀 다른 거 같은데?”

이 사람도 참 둔하군. 어제 작업했던 물건들이랑 거의 똑같은데 전혀 다르다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일했다. 우연이겠지.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 아니겠어?

잔발이!!

음... 정말 이상해...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내고 일하려하는데 떨쳐낼 수가 없다. 일을 하면 할수록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물건을 올리고 있다.

그만!!

그리고 똑같은 타이밍에 일을 그만둔다. 이게 데자뷰란 건가? 그거 똑같은 일을 다시 겪는 거처럼 느껴지는 거라던데 말이야. 지금 내가 그런 상태 같다.

다른 직원이 다가온다. 다시 물어봐야겠다. 아직도 어제랑 다른 거처럼 느껴지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 직원이 먼저 입을 연다.

“하하. 힘드시죠?”

어? 어제랑 질문이 똑같다. 똑같은 대답을 해봤다.

“조금 그러네요. 하도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서...”

“예전에 하셨었다고 했죠?”

“네. 6.. 아니 7년 전인가? 그때 한 반년 정도 했었죠.”

“그때도 지금이랑 비슷했나요?”

“똑같죠. 뭐. 달라진 건 일하는 사람 정도?”

... 똑같은 대화가 진행되었다. 도대체... 도대체 뭐지?

황급히 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어...제잖아?”

폰에 찍힌 날짜는 분명 어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분명 하루가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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