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작지만 큰 전투
재능이 충만한 젊은 병사가 지휘관의 추천을 받아 들어가는 군사교육집단 ‘트리세인’,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트리세인에 입학한 자들 사이에도 재능의 격차는 분명 존재한다.
최고의 재능과 20살 이전의 나이. 페가수스 나이트 후보생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트리세인에는 페가수스 나이트가 될 재목을 선별하는 은퇴한 페가수스 나이트가 있다. 그들에게 제안 받고 그걸 받아들이면 페가수스 나이트 후보생이 될 수 있다.
후보생이 되면 1년간 훈련을 받는다. 그 훈련은 얼마나 지독한지 이미 전장을 경험했고 재능을 인정받은 후보생들이지만 그 중 반이 중도포기를 하거나 병신이 되어 나갈 정도라 한다.
이 훈련을 이겨낸 자들은 정식으로 페가수스 나이트 훈련생이 된다. 훈련생이 되면 모두 그 해에 태어난 페가수스 새끼를 한 마리씩 받는다. 그때부터 훈련생과 페가수스는 평생 떨어지지 않는다.
훈련생은 3년간 훈련을 받으며 페가수스 새끼의 식사, 목욕, 발굽 정리 등의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게 된다. 그렇게 페가수스 새끼가 성체가 될 때까지의 3년간 친밀감을 쌓게 되면 누구도 따르지 않고 태우지 않는 페가수스가 훈련생 한 명 만큼은 태우고 따르게 된다.
후보생으로 1년, 훈련생으로 3년 훈련을 받고 페가수스를 질병 혹은 사고로 잃지 않고 성체로 키워내면 왕국 최고의 엘리트이자 최강의 기사인 페가수스 나이트가 된다.
그들이 포란 왕국 최강의 기사라 불리는 이유는 몬스터로 분류될 정도로 사납고 강한 페가수스를 타는 기사여서기도 하지만 보통은 4년간의 지독한 훈련과정에서 대부분 몰란의 축복을 한 번씩은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다.
그들은 대부분 가장 치열한 전장에 투입되어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항상 왕국 최강의 적을 상대하기에 치열한 전투를 하며 몰란의 축복을 연이어 받는 자들도 생긴다. 그렇기에 항상 왕국 최강의 영웅은 페가수스 나이트에서 나오고 그렇기에 모든 병사와 장교들에게 페가수스 나이트는 존경의 대상이다.
페가수스는 새끼 때부터 키우지 않으면 탈 수 없다. 그렇기에 페가수스를 잃은 페가수스 나이트는 ‘30살 이전의 실적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면 일반 기사로 격하된다.
브라가트가 그런 상황이었다. 1년 전 자신의 페가수스를 잃었고 평범한 페가수스 나이트이자 30이 넘은 나이였기에 페가수스 나이트라는 신분을 잃고 일반 기사가 되었다.
물론 최강의 기사단 소속이었기에 많은 귀족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그 많은 귀족 중 선택된 자가 사마르 백작이었다.
비록 그가 자신의 페가수스를 잃어 일반 기사로 격하되는 치욕을 당하기는 했으나 그 자부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북부를 제외한 최대 격전지 동부 세 곳의 영지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사마르랜드의 주인 사마르 백작을 선택한 것이다.
사마르 백작보다 높은 권세를 가진 귀족들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그의 기사로서의 높은 자부심이 전장이 아닌 곳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브라가트는 울프람의 옆얼굴을 봤다.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전방의 오크를 주시하고 있었다.
‘큭.’
비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겨우 700이 넘는 적이다. 그것도 죽음에서 되살아난 자나 거대 괴물이 아니고 한낱 오크다. 저런 적을 앞에 두고 긴장하다니.
‘역시 촌구석이군.’
비록 사마르랜드 4곳의 전장에서 가장 떨어지는 곳이라곤 하나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
‘하긴 어쩔 수 없나.’
이들이 떨어지는 건 아닐 거다. 분명 저 오크들도 꽤 강하겠지. 이들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다만 자신이 있던 전장이 너무 뛰어날 뿐이다. 그곳엔 10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괴물과 먼지로 만들지 않는 이상 죽지않는 괴물 등,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들이 있었으니까.
‘평범한 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괴물은 저 정도가 한계겠지.’
물론 오크도 충분히 괴물이다. 키는 인간보다 조금 더 클 뿐이지만 근육이 무식하게 많기에 덩치는 2~3배 차이난다. 그리고 강해질수록 덩치도 함께 커지는 놈들인지라 무리에서 가장 강한 오크쯤 되면 키만 해도 인간의 2배는 된다. 하지만 그래도 브라가트 그가 보기에는...
‘약해.’
슬쩍 훔쳐보기만 해도 몸이 굳을 정도의 위압감도 없고, 근처에 가면 무조건 죽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보생을 제안 받을 정도의 재능이었다고 들었는데... 역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훈련을 받지 않은 자와 훈련 받은 자는 차이가 크군.’
“저 붉은 오크가 올라오면 함께 척살합시다. 일반오크도 강하긴 하지만 상정 내에 있소. 하지만 저런 규격외의 오크는 상상을 뛰어넘는 무력을 발휘하여 변수를 만들 가능성이 높으니까. 브라가트 경 같은 강자가 나서서 차단 해주는 것이 좋소.”
브라가트 자신을 가르치듯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울프람.
‘큭. 웃기는군. 이런 촌구석에서 썩는 주제에 감히 날 가르치려 하다니.’
“알겠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속으론 비웃었지만 겉으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철저한 예절 교육의 성과다. 언제나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페가수스 나이트는 강도 높은 예절교육을 받는다.
오크들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군율이라고는 전혀 없는 막무가내의 돌격. 큰 덩치와 함성은 제법 위압적이긴 했으나 브라가트가 보기에 오크들은 한없이 약해보였다. 다시 울프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브라가트에게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던 울프람은 급히 눈빛을 감추고 고개를 돌렸다.
“오크는 덩치를 보면 무력 등급을 알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 붉은 오크 정도면 얼마나 되는 겁니까.”
“3급? 3급은 조금 안 되겠구려. 다만 붉은색 피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조심...”
브라가트는 울프람의 뒷말을 듣지 않았다.
‘3급도 안 되는 것을 상대로 합공을 하자고? 도대체 페가수스 나이트를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브라가트는 살짝 화가 났다. 자신이 있던 전장에서는 한 번의 전투마다 3급 이상의 적 수십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우 3급 하나가 가장 강한 전장에서 자신을 걱정하고 합공까지 하자고 말하다니.
‘이자는 페가수스 나이트에 대해 모르는군.’
페가수스 나이트의 최소 무력등급이 3급이다. 훈련을 마치고 막 페가수스 나이트가 된 자가 그렇다. 그런데 자신은 10년 이상 페가수스 나이트로서 지냈다. 마지막에 했던 무력 측정에서 2.5급을 받았을 정도.
‘나를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준 차이를 보여줘야겠군.’
브라가트는 감히 자신을 걱정하는 울프람에게 ‘넌 그럴 주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붉은 오크가 성벽 근처에 다가왔을 때 성벽 난간에 다리를 올렸다.
“안되오! 브라가트!”
브라가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 챈 울프람이 말렸으나 브라가트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성벽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애병 할버드를 붉은 오크, 그락카르를 향해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앙!
“호오?!”
브라가트는 놀랐다. 오크의 무기가 부서지지 않았다는 것에 말이다.
그의 할버드는 페가수스 나이트 지급품이다. 모든 페가수스 나이트가 쓰는 무기지만 거대괴물과 죽음에서 살아난 괴물들과 싸우는 이들이 쓰는 무기다. 포란 왕국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상품이다. 그런데 야만스러운 오크 따위가 들고 있는 무기가 부서지지 않고 막았다.
단번에 오크의 무기를 부수고 목을 따버리려 했던 브라가트로서는 의외의 상황이었다.
‘1년 사이 실력이 무뎌진 모양이군. 한낱 오크의 무기도 부수지 못하다니.’
그락카르의 무기가 좋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긴 것이 투박하기 그지없는 것이 도끼 제조술이 조악할 거란 생각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저 1년간 사마르 백작의 곁에만 있느라 제대로 된 전투를 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했다.
‘백작님께 이야기해서 세 번째 길로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세 번째 길은 사마르랜드에 있는 4개의 전장 중 가장 치열한 곳으로 이름 높다. 그 주변 오크 땅의 환경이 좋아 수많은 오크 부락이 몰려있고 리자드맨도 가끔 나타난다.
“크흐. 나는 명예로운 오크 전사 그락카르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브라가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을 말해라. 인간 전사.”
‘오크 따위가 내 이름을 들으려하다니. 오늘 벌써 두 번이나 무시를 당하는군. 빨리 이 오크의 목을 따서 울프람에게 내가 차원이 다름을 알려줘야겠어.’
그락카르에게 이름 대신 들려온 것은 그를 무시하는 브라가트의 속마음이었다.
“크흐..”
그락카르는 웃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 웃는 것이 아닌 짜증이 나서 웃는 것이었다.
“너희 인간들은 모든 종족 중 가장 나약하면서 어찌도 하나같이 이렇게 오만한 것이냐. 이해할 수가 없군.”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오크 따위가. 우리 인간은... 아니지. 곧 죽을 오크따위에게 말해봐야 입만 아프겠군. 그냥 죽어라.”
쉬익.
브라가트가 할버드를 휘둘렀다.
까아앙.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기에 당연히 막혔다. 막히는 건 브라가트도 예상했다.
“몰란이시여. 믿는 자에게 힘을.”
브라가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몸 전체에 희미하게 파란 빛이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브라가트가 연이어 공격을 했다.
까앙. 깡. 깡. 깡. 깡.
공격이 점점 빨라졌다. 브라가트가 신께 받은 능력 ‘점점 빨라지는 몸’이란 스킬이었다. 끊지 않고 공격을 가하면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능력. 이 능력 덕분에 그는 기사단원과 병사들에게 ‘몰아치는 브라가트’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그의 공격이 여전히 그락카르에게 계속 막히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공격은 이미 꽤 빨라졌다. 브라가트는 눈앞의 오크가 너무나 빠른 공격에 감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기만 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공격에 밀려 결국 죽임 당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적은 항상 그랬으니까. 하지만...
까아앙!
“큭.”
브라가트의 공격이 크게 튕겨나갔다. 강하게 튕겨나가는 할버드를 놓치지 않게 꽉 잡은 브라가트가 균형을 잃을 정도로 그의 할버드를 튕겨낸 그락카르의 힘이 강했다.
“크흐..”
분노가 담긴 웃음. 자신을 무시하는 브라가트의 태도에 극한까지 화난 것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위대한 오크 전사를 무시하다니.’
둘 다 서로의 종족을 무시하는 것은 같았다. 다만 그락카르는 강자를 인정했지만 브라가트는 오크 전체를 무시했다는 게 다르달까.
그락카르는 종족의 한계를 넘어선 명예로운 강자로 인정하려 했는데 무시당하자 더욱 화가 났다. 그러자 감정에 따라 10~50%의 힘이 더해지는 ‘불가사의한 힘’이 거의 극한까지 발휘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강했던 그락카르의 힘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번에 블러드 오크 전사가 되면서 눈에 띄게 강해진 그락카르의 힘이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50%, ‘군주의 위엄’에 의해 9% 더 강해졌다. 순간적으로 힘만으로는 우드록을 뛰어넘어 캄스니에까지 근접한 그락카르.
까앙! 까앙!
브라가트가 급히 무너진 균형을 수습하며 공격을 가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락카르의 강대한 힘에 밀려 더더욱 균형이 무너지며 한없이 밀리기만 했다. 그리고...
철퍼덕.
땅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괴물....’
쓰러져 당황한 나머지 얼이 빠져 멍해지기까지 한 그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락카르가 그의 앞에 선 것이다. 그락카르를 보는 브라가트의 눈에는 두려움이 담겼다. 오크따위라고 무시했던 존재가 이젠 북방에서 만났던 항거불능의 괴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죽어라. 이름 없는 인간.”
꾸국.
그락카르가 양손도끼를 강하게 잡아 내려쳤다.
까아아아아아아앙!
브라가트를 세로로 이등분 할 듯 강하게 내려쳐진 그락카르의 양손도끼.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뭔가에 가로막혀야 했다.
“정신차리시오. 브라가트 경.”
울프람이 나선 것이다.
“몰란의 팔!”
울프람의 오른팔에 파란빛이 머물렀다. 그리고 그 빛이 양손검에까지 번졌고 동시에 휘둘러졌다. 그락카르는 그 모습에서 ‘흡수하는 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똑같은 스킬은 아니겠지만 순간적으로 뭔가 강해지는 것은 확실해보였고 위험해보였다. 그락카르는 결국 받아내지 않고 뒤로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울...프람 경?”
멍하니 초점이 사라졌던 브라가트의 눈이 울프람을 보며 조금이나마 초점이 돌아왔다. 그락카르를 밀어낸 울프람이 브라가트에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오른팔엔 파란 빛을 띄우고 있었기에 그락카르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당신의 페가수스는 죽었소. 당신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페가수스 나이트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하오.”
“울프람 경. 팔이...”
급하게 성벽에서 뛰어내려 그락카르의 양손도끼를 막은 울프람. 원래는 절대로 흘려서 막았을 것이다. 울프람은 오크의 힘을 잘 아니까. 하지만 너무 급하다보니 정면으로 막았다.
당연하게도 상상을 뛰어넘는 그락카르의 힘에 그의 양손검이 밀렸다. 그대로 가만있으면 양손도끼에 밀린 자신의 무기에 머리가 갈라질 순간, 억지로 검을 틀었다.
양손도끼는 틀어진 양손검을 타고 흘러 땅에 박혀들었다. 잘 막아냈지만 울프람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억지로 양손검을 틀고 그곳에 가해진 힘을 흘리지 못했기에 그의 왼팔이 괴상한 각도로 완전히 꺾인 것이다.
극한의 고통이 찾아왔을 터인데 울프람은 인상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은 내가 당신의 페가수스를 대신해주겠소. 함께 싸웁시다.”
“울프람 경....”
그런 울프람의 모습에 브라가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울프람 경.”
“해봅시다. 브라가트 경.”
둘은 거대한 존재감을 뿌리고 있는 그락카르에 대항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