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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36화 (36/228)

36 작지만 큰 전투

인간 마을을 발견했고 공격했다. 그리고...

“없다.”

없었다.

“없어.”

이곳엔 전사가 없다. 왜 없지? 왜 전사가 없지? 난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반항할 생각도 못하는 인간을 학살하기 위해 엠그엔 부락을 떠나 이곳에 온 게 아니란 말이다. 화난다. 잠깐이라도 나와 맞설 수 있는 전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화나지 않았을 것이다.

“쿠워어어어어억!”

내 분노의 고함에, 마을에 흩어져 인간을 죽이고 있던 인간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던 모든 형제들이 날 주시했다.

“형제들! 인간 사냥을 멈춰라! 식사를 멈춰라!”

저기 우리를 피해 도망가는 인간들을 봐라. 감히 우리에게 덤벼들 생각도 못하고 도망만 치다가 형제들에게 하나 둘 잡혀 죽고 있었다.

“우리는 이딴 것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이건... 지금 나와 형제들이 하고 있는 건 전투가 아니다. 사냥이었다. 사냥해서 배를 채울 것이었으면 며칠간 굶어가며 인간들의 땅까지 올 필요 없이 우리 땅 대초원에서 짐승을 사냥하면 되었을 것이다.

“전투감각을 유지해라! 뜨겁게 달아오른 피를 식히지 마라! 우리는 아직 전투를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형제들이 하나둘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전투는 언제 하는 건가. 형제.”

형제들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저들이 우리를 전장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인간을 가리켰다,

***

“거의 천에 가까운 오크가 나타났다? 드디어군.”

오크와의 대규모 전투를 치룬지 한 달 가량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대규모 오크무리가 영지에 나타나 마을을 약탈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울프람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보다 느리다고 생각했다. 오크란 족속이 원래 그렇다. 할 줄 아는 것이 전투, 번식, 사냥밖에 없는 놈들이다. 그 놈들에게 우란 장원은 전투와 사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터. 완전히 박멸하지 않으면 계속 나타나 싸움을 건다.

천 근처의 병력이라면 얼마 전 싸웠던 오크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 살아간 무리가 거의 그쯤 됐었으니까. 그놈들은 일단 한 번 맛을 들인 이상 박멸할 때까지 계속해서 찾아 올 것이다.

“어디냐.”

“트레빈입니다. 방금 전 오크들에게서 도망친 마을사람이 성에 들어왔습니다.”

“음?”

울프람은 병사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트레빈이 공격당했는데 트레빈에 사는 자가 살아서 이곳까지 왔다고? 수비 병력이 없을 텐데?”

“네. 한둘이 아닙니다. 수십이 함께 왔습니다.”

“수십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일단 한 번 눈에 띄면 끝까지 쫓아가 죽이는 오크의 특성 상, 울프람이 수십 년간 오크를 상대로 싸워왔지만 오크에게 약탈당한 마을의 생존자를 본 것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그것도 전부 수비 병력이 있던 마을의 생존자다. 병사들이 싸우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피신했고 그 중 운 좋은 자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각 마을을 지키던 수비 병력을 전부 성으로 불러들인 상태다. 마을에 병사라고 할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을 텐데 오크의 침략에서 살아남았다고? 그것도 수십 명이? 있을 수 없다.

“대표를 데려오게.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하지만 울프람은 트레빈 마을 생존자를 만날 수 없었다.

뿌우우우우우우!

침략자를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 이래서였군. 생존자를 길잡이로 쓴 거였어.”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마을을 지키는 전사가 없었기에 전멸시키지 않고 살려둔 것이다. 수비 병력이 있었으면 전멸 당했을 텐데 수비 병력이 없었기에 수십의 생존자가 생겼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울프람은 한쪽에 거치해뒀던 양손검을 집어 들었다. 다른 양손검병들이 쓰는 것보다 크고 무거운 울프람만을 위한 양손검. 그가 몰란의 축복을 받지 않았다면 사용하지 못했을 무기다.

이 양손검이 먹은 오크의 피가 얼마던가. 족히 수천 마리 분은 될 것이다.

“잘 부탁한다.”

양손검을 든 울프람이 바쁨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적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오크입니까? 울프람 경.”

우란 장원에서 가장 높은 울프람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자가 있었다.

“브라가트 경.”

저번의 패배 이후 울프람은 사마르 백작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오크가 근시일 내에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 예상했고 그가 예상한 기간 동안은 원래 전력을 회복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때 200의 양손검병과 함께 브라가트가 함께 왔다. 한 때 페가수스 나이트였으나 페가수스를 잃은 후 일반 기사가 되어 사마르 백작의 가신이 된 자. 비록 페가수스가 죽어 페가수스 나이트로서의 자격은 잃었지만 페가수스 나이트로서의 실력은 잃지 않았다.

“확인해봐야겠지만 맞을 것이오. 출전하시겠소?”

사마르 백작이 지원군으로서 쓰라고 보내준 브라가트고 울프람이 이곳의 지휘관으로서 그의 상관이 되었지만 그를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그것이 전 페가수스 나이트에 대한 포란 왕국 군인으로서의 예우다.

“당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온 것인데요.”

“그럼 함께 가도록 합시다.”

울프람과 브라가트는 발걸음을 빨리 해 성벽 위로 올라갔다. 브라가트는 비록 포란 왕국 최고의 기병기사인 페가수스 나이트였지만 그의 페가수스가 죽은 후 어떤 말도 타지 않겠다고 맹세했기에 지금은 말을 타지 않는 보병기사였다.

그렇기에 그가 기병이 없는 우진 장원으로 파견 된 것이기도 했다.

“700에서 750사이군요.”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오.”

브라가트는 성벽에 오르자마다 오크를 스윽 훑더니 진실에 근접한 오크무리의 수를 파악했다.

“오크는 덩치가 클수록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 빨간 오크가 가장 강하겠군요. 빨간색이라. 오크는 녹색이라 들었는데 빨간색도 있군요.”

“빨간색은... 나도 처음 보오.”

“오. 수십 년간 오크만을 상대한 선배님께서 처음 보는 개체라니. 희귀종이군요?”

브라가트가 눈을 빛냈다.

“제가 죽이는 첫 오크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빨간 피부의 오크, 그락카르를 이미 죽인 것처럼 말하는 브라가트. 울프람은 그 모습이 심히 걱정되었다. 그가 강하다는 건 안다. 왕국 최강 기사단 페가수스 나이트는 강하지 않으면 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오크는 강하다. 오크를 얕봐선 안 된다. 울프람은 이제 30에 접어든 이 젊은 기사가 걱정되었다.

“브라가트 경..”

“압니다. 오크는 강하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거겠죠?”

이미 울프람이 몇 번 했던 말이다. 오크를 너무 쉽게 보지 말라고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 전 어떤 적 앞에서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울프람과 브라가트 둘 다 트리세인 출신이다. 그렇기에 브라가트는 울프람을 선배라고 부르며 어느 정도 대우 해주는 척 하고 있었다. ‘척’만 말이다. 겉으로는 예의바르지만 실은 페가수스 나이트였다는 자부심, 아니 자만심이 누구의 조언도 그의 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걱정되는군.’

“하하. 그 눈빛 압니다. 걱정 안하셔도 된다니까요. 저 북부에서 죽음에서 일어난 괴물들을 상대했습니다. 그 지옥에서도 살아났어요. 그런데 겨우 오크에게 당할 것 같습니까? 그런 일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울프람은 진심으로 브라가트가 걱정되었다. 너무 젊고 오만하다. 하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동량이다.

‘그때는 당신의 페가수스도 있었고 동료 페가수스 나이트들도 있었지 않소. 하지만 지금은 혼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려.’

울프람은 브라가트의 말에 대한 반박이 떠올렸다. 하지만 그 생각을 말로 하지는 않았다. 브라가트는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위험한 행동을 할 테니까.

‘몰란이시여. 그를 지켜주소서.’

울프람은 신께 빌었다. 미래에 포란 왕국의 기둥 중 하나가 되어주어야 할 젊은 기사가 부디 작은 자만으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

“크흐..”

인간들이 사는 부락이다. 크고 단단해 보이는 벽을 세워둔 걸 보면 제법 많은 전사들이 있을 것 같다. 역시 인간들을 풀어두면 가장 안전한 곳, 즉 가장 강한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거라 한 생각이 맞았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부락이겠지. 저기에 예전에 봤던 그 대장도 있지 않을까?

“쿠워어어어어어!”

구워어어어어억!

우워어어어어억!

그아아아아아아!

가아아아아아악!

형제들과 함께 함성을 질러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인간들이 쓰는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흐.. 전사들이 있다.”

뿔나팔은 인간 전사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즉, 저곳에 인간 전사들이 있다는 뜻. 드디어 전투를 할 수 있다.

“형제들! 곧 전투가 시작된다!”

형제들이 기쁨이 가득 담긴 함성을 질렀다. 도대체 얼마만의 전투던가. 지금은 저곳에 약한 전사만 있다고 하더라도 기쁘게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난 전투에 굶주렸다. 형제들도 마찬가지겠지.

벽 위에 인간 전사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많다. 크흐... 많아. 기쁘다. 정말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를 봤다. 우드록의 팔을 잘랐던 인간 대장. 그가 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워어어어억!”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달렸다. 강자가 눈앞에 있다. 그와의 싸움을 위해 내가 이 먼 길을 달려온 거다. 그리고 그를 봤다. 그런데 어찌 망설일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먼저 달리고 곧바로 형제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형제들은 나보다 느렸고 단연 내가 툭 튀어나와 돌격해 들어갔다.

오늘은 내 앞에 우드록도, 캄스니도 없다. 내 앞에 누구도 없다. 내가 최선두다. 형제들 중 내가 가장 강하다.

내가 가장 강하니 가장 강한 적도 내 차지다!

더 이상 가장 강한 적과 싸우지 못하고 적당히 강한 적과 싸울 필요가 없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보다 강한 형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지난 전투라면 지금 내 앞에는 아무 것도 없다. 형제들이 예전에 내가 우드록과 캄스니의 등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인간 부락의 돌 벽에 거의 도달했다. 화살과 볼트가 간간히 날아오긴 하지만 내겐 소용이 없다. 인간 대장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다리에 잔뜩 힘을 줘 땅을 박차고 인간 대장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찰나.

“안되오! 브라가트!”

인간 대장이 소리치고 그의 옆에 있던 인간이 날 향해 뛰어내렸다. 그 인간은 뛰어 내리며 긴 창에 작은 도끼날을 든 무기를 날 향해 찍어 내렸다.

강하다. 공격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이 느껴졌다. 크흐.. 그래. 강자구나.

반갑다!

“쿠워어억!”

양손도끼를 위로 올려쳐 그 인간의 작은 창도끼에 맞부딪쳤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소리가 천지를 울렸고 전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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