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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33화 (33/228)

33 헌금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불러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 놈 전문가네. 차는 방음에, 인적 없는 곳에서의 범행이라.

잠깐 동영상 끊고 경찰에 신고했다. 요즘 신고하기 참 편하다. 전봇대에 적힌 번호만 불러주면 알아서 찾아오니까. 그 번호 불러주니 경찰이 금방 오겠다고 한다.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조금씩 차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앞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가까이 오면 알아서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려서 얼굴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열중했네. 이 새끼. 좀 여기 봐라. 새끼야.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선아연을 찍어 누르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 고은형. 영화에 나오는 3류 악당과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어. 주먹까지 휘두르네. 고은형이 선아연의 어깨와 옆구리 등을 주먹으로 몇 번 가격했다. 미친 새끼. 기다릴 수가 없네.

툭툭.

고은형이 고개 돌릴 때까지 기다렸다간 선아연의 옷이 다 찢어지고 부상도 입을 것 같아 별 수 없이 창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고은형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날 봤다. 좋아. 얼굴 제대로 찍었다. 그대로 차 뒤로 가 차번호까지 찍고 다시 차문 옆으로 돌아왔다.

고은형이 당황했는지 가만히 있다가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핏기가 당황스러움만 가득했던 얼굴에 자신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라뭐라 하는데 잘 안 들린다. 빌어먹을 놈이 방음 처리는 정말 잘해놨네. 몇몇 단어는 입모양으로 알아봤다. ‘개새끼’, ‘죽인다’, ‘꺼져’, ‘폰 꺼’ 등. 물론 끄란다고 끌 생각은 없다.

폰을 정장 안에 입은 셔츠 가슴께에 있는 주머니에 넣었다. 평소에 폰이 너무 크다고 욕했는데 지금은 큰 게 도움 된다. 주머니에 3분의 2 정도밖에 안 들어간 덕분에 위쪽으로 카메라 렌즈가 툭 튀어나왔다. 액션캠 완성이다. 고프x 뭐 하러 사는 거야. 이렇게 하면 되는데.

“나와.”

이 인간은 강간하다가 걸렸으면 빨리 나와서 수습해야지 안에서 들리지도 않는 욕을 뭐 저리 하는 거야. 아. 옷 입고 있구나. 팬티까지 내렸었네. 아 못 볼 걸 봤다. 빨리 좀 입어라. 그런데 옷을 다 입었는데도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상해서 살펴보니 선아연이 못 일어나게 무릎과 오른팔로 누르고 있다. 꽤 세게 누르고 있는지 선아연이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미친놈이네 정말. 설마 아직도 강간 포기 못한 건 아닐 거고, 일단 선아연 도망 못 가게 한 상태에서 수습할 방법 생각하려는 건가? 이 그락카르만도 못한 새.. 아니다. 이놈이랑 그락카르를 비교하면 그락카르한테 미안해진다. 그냥 이 고은형 같은 새끼.

정장 상의를 벗어 팔에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선아연한테 피해 안 갈 앞문 창문으로 휘둘렀다.

꽈창!

가볍게 부서졌다.

“아악! 이 미친 새끼야!”

이제야 저 새끼 말이 제대로 들리네. 그런데 미친 새끼가 누구보고 미친 새끼래.

“나와요.”

“이 빌어먹을 운전기사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알아요. 강간하려는 개새끼란 거. 그러니까 일단 빨리 나와요.”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안 둬! 일 다했다고 생각해라. 다시는 이 업계에 발 못 붙이게 해줄 테니까!”

아. 말 진짜 안 듣네.

“지금이라도 동영상 찍은 거 내놓고 그냥 가라. 그럼 봐줄 테니까.”

“으. 으으윽.”

이런 상황에서도 체중을 실어 선아연을 누르고 있다. 선아연이 고통으로 신음을 흘렸다.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모양이다. 온 힘을 다해 무릎으로 배를 누르고 있으니 안 아플 수가 있나.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큭.”

그대로 멱살을 잡고 깨진 창문 사이로 끄집어냈다. 가볍다. 인형 뽑듯 가볍게 빼내 바닥에 내던졌다.

“악. 아프잖아! 이 새끼야!”

네놈 아픈 건 알고 다른 사람 아픈 건 모르냐? 이거 완전 사이코패스 아냐. 고은형은 무시하고 창문에 베일까봐 오른손에 감았던 정장상의를 풀어 아직 차 안에 있는 선아연에게 던져줬다. 알아서 입고 나오겠지.

“너 정말 잘리고 싶어?! 폰 빨리 내놔라.”

어느 새 일어난 고은형이 셔츠 주머니에 있는 폰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내 목숨줄인데 너 같으면 주겠냐?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노려봤다. 그리고 그락카르 몸속에 있을 때의 경험을 되살려 그락카르가 적을 보는 눈빛을 최대한 따라했다.

“그거 내놓으라.. 아. 시바. 눈깔 치워. 이 새끼야.”

욕하면서 은근 눈을 피한다. 효과 있구나. 계속 노려봐주자. 이대로 경찰차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신체능력이 강해진 걸 깨달은 이후 계속 운동해왔기에 이젠 제대로 몸을 쓸 자신 있다. 저딴 놈이야 한 방이면 잠재울 자신 있지만 괜히 때렸다간 덮어 쓸 수 있으니까.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범죄를 막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말 할 순 있겠지만, 말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단 때리면 정당방위가 없다. 그리고 저 놈은 돈 많고 난 돈 없다. 누가 피 볼지는 명확하지. 괜히 때렸다간 범죄자 딱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밑바닥 개돼지 놈이 내 말 씹냐?!”

노려보는 것만으론 안 되는 모양이다. 그락카르가 사는 세상이라면 이런 눈빛보이는 사람한테 갔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여긴 그럴 일 없으니까. 여전히 나랑 눈을 못 마주치지만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깐 채 나한테 다가온다. 그리곤 손을 뻗어 셔츠 주머니의 폰을 빼가려고 했다.

느려. 가볍게 피했다.

내가 피하자 고은형은 욕을 퍼부으며 돌진해왔다. 아무리 봐도 핸드폰만 뺏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말하는 거나 행동에 거침이 없는 거로 봐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천벌을 내려줄까?

이젠 폰을 뺏으려는 게 아니라 날 때리려는 듯 마구잡이로 주먹을 뻗는 고은형.

“정말 잘리고 싶냐? 빨리 내놔. 이 새끼야!”

자르던가. 사실 이미 네놈 막으러 갈 때 잘리는 거 각오했다. 누가 봐도 이놈이 나쁜 놈이고 내가 착한 사람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이놈은 오너일가, 난 피라미드 최하층에 있는 고용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내가 정의로운 놈이라서 나선 건 아니다. 그저... 내 눈에만 안 보였으면 된다. 내가 직접 본 것만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뉴스만 봐도 불합리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들을 때 화내긴 하지만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것도 비슷했을 거다. 나중에 알게 됐다면... 그랬다면 욕하고 화내고 그러긴 했겠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나갔을 거다.

하지만 내 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지나치나.

인터넷으로 강간당하는 여자 구해줬더니 오히려 폭행죄로 고소당하거나 강간범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봤다. 구해줬던 여자가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말도 봤다. 그리고 분노했다. 저런 것들 구해줄 필요 없다고 화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여자가 강간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까.

턱.

가볍게 그 놈의 팔을 잡았다.

“놔! 놓으라고! 안 놔! 아. 성질 뻗쳐!”

그래. 너도 성질 뻗치는구나. 나도 성질 뻗친다. 웬만하면 그냥 끝내고 싶었는데 적반하장으로 폭력까지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이놈을 그냥 놔뒀다간 나중에 내가 화병 걸리게 생겼다.

물론 절대 때리진 않는다.

고은형도 못 보고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을 각도에서 ‘착취하는 손’을 발동시켰다.

“윽. 뭐. 뭐야?”

그래. ‘착취하는 손’은 처음이지? 신기한 느낌일 거다. 네놈 평생 처음 경험하는 느낌일 테니까. 갑자기 오한이 들면서 조금씩 힘이 빠지지. 그리고 나중엔 아파.

“놔. 놔. 이 새끼야! 피 안 통해!”

... 할 말이 겨우 그거냐.

그대로 힘을 줘 놈의 몸을 돌렸다. 고은형의 등짝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대로 바지 허리띠를 잡았다. 누가 봐도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만 한 모습이다. 잠깐 몸을 숙여 카메라에 허리띠를 잡고 있는 왼손을 잡았다가 다시 몸을 폈다. 그리고 왼손에 ‘착취하는 손’을 발동했다.

‘착취하는 손’의 빛은 내가 잡고 있는 물건을 통해 발휘할 수도 있다. 그대로 바지를 지나 팬티로 빛이 영향력을 넓혀갔다.

“으.. 으으...”

오한이 드는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래도 아직은 힘이 넘쳐나는 지 여전히 욕을 퍼부으며 몸부림을 친다. 팔을 잡고 있는 오른손의 ‘착취하는 손’을 거뒀다. 그 쪽은 내가 손으로 잡은 곳이기에 ‘착취하는 손’ 때문에 피부가 괴사하기라도 하면 나중에 폭행죄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손댄 적 없는 거시기라면?

영상 속에서 난 분명 허리띠만 잡고 있었어. 빛이 드디어 그곳에 닿았다. 빛이 그곳 전부를 뒤덮고 힘을 발하기 시작했다.

“으.. 으으. 뭐야. 이거. 시발. 이 이상한 느낌 뭐야. 야! 놔! 놓으라고! 이거 이상해! 시발. 장난 아니라. 진짜 이상하다고!”

그래. 알아. 이상한 거. 내가 하고 있는데 모를 리 있냐? 절대 놔주지 않고 계속 잡고 있었다. 그리고 3분 정도 후...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차에서 내린 경찰이 다가왔을 때 그제야 난 빛을 거두며 손을 놔주었다.

***

1주일이 지났다.

결과부터 말하면 난 잘렸다. 하지만 꽤 기분 좋게 잘렸다.

그 뒤에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말하자면 고은형과 난 둘 다 경찰서에 끌려갔다. 선아연은 내 정장 윗도리와 함께 사라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고은형의 변호사가 찾아오고 날 폭행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다음날 상해죄가 추가되었다. 내가 가한 폭행의 결과로 고은형의 생리적 기능이 장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리적 기능의 장애가 일어난 부분은 당연히 거시기였다.

잘못되라고 사용한 ‘착취하는 손’이 정말 뭔가를 고장 낸 모양이다. ‘내가 고자라니!’라는 말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걸 듣진 못했다. 그저 죽일 듯 날 노려보는 고은형의 눈빛과 살짝 맺힌 눈물만 볼 수 있었을 뿐. 뭐. 그것도 기분 괜찮았다.

난 당연하게도 폰으로 찍은 동영상으로 반박했다. 동영상은 의외로 화질 좋게 잘 찍혔다. 세상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구나. 비싼 폰 속여서 팔았다고 욕했던 폰팔이, 욕해서 미안해.

그리고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선아연이 고은서와 함께 경찰서에 나타났다.

그게 결정적이었다. 강간 피해자가 없어 지지부진했던 사건이 피해자가 나타남으로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행히도 선아연과 고은서는 내 편을 들어주었다. 고은형과 꽤 친해보였던 고은서는 벌레를 보는 느낌으로 고은형을 바라봤다. 재벌 집안 감싸주기 같은 건 없으려나.

하지만 결국 고은형이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선아연과 합의, 그리고 나와도 합의했으니까. 사실 나와는 별 게 없다. 내가 범죄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제 3자니까. 선아연과 합의 본 것만으로 그놈은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되었다. 변호사와 고은형, 고은서, 선아연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예 강간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버렸으니 뭐... 역시 돈과 힘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은 없지.

나와 합의 한 것은 이 사건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의였다. 합의금은 퇴직금 포함해 5,000만원. 아무리 내가 잘못한 일이 없다곤 해도 오너 일가와 관련된 사건의 핵심인물 중 하나니까. 그대로 고용할 순 없겠지. 내가 뭔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냥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운전기사일 뿐이니까.

일자리를 잃었어도 2년은 모아야 할 돈을 한 번에 받았으니 꽤 남는 장사이려나?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선아연의 모습을 뒤로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방금 모든 일이 끝났다.

잘렸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특히 고은형 그 놈 거시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흐흐. 그 고통 남자라면 다 알지. 영원히 안 고쳐졌으면 좋겠네.

고은서가 자기네 회사에서 다시 일하는 건 무리지만 다른 회사에 자리를 알아봐줄 수 있다곤 했지만 거절했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은 그냥 쉬고 싶은 느낌이랄까.

이제 백수네. 20살 이후로 백수가 된 건 처음이다.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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