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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9화 (2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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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광속으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쉽다. 윗몸일으키기가 이렇게 쉬운 거다. 남자라면 1분에 100개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운동 정말 쉽게 하네. 힘 좋다. 몸도 좋겠지? 섹스도 힘 있게 하려나? 알아보고 싶은데 말 안 거려나?’

“으샤.”

자연스럽게 윗몸일으키기를 멈추고 일어나 다른 운동기구로 가는 척 하면서 마음의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달리기나 해볼까.”

그리고 운동기구를 그대로 지나쳤다. 여길 벗어나야겠어.

‘에이. 말 걸러 오는 줄 알았네. 옷이 별론가? 내일 옷을 좀 야하게 입고 와야지.’

아냐. 그거 아냐. 그러지마. 그냥 넌 음... 그러니까... 그래. 그냥 내 스타일이 아냐. 다른 사람 스타일도 아닐 거 같지만. 여하튼 난 아냐.

달리자. 작은 호수를 따라 만들어져 있는 산책로를 빠르게 달렸다. 달리는 중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빠르게 달릴 때 느껴지는 바람의 느낌도 좋고 말이야.

1명, 2명, 3명... 11명, 12명..

이렇게 추월하는 사람들 수를 세면서 뛰면 심심하지도 않다. 오늘 몸 상태가 좋다. 어제보다 달리는 속도도 더 빨라졌고 어제보다 더 힘이 넘쳐난다. 아마 그락카르가 카록의 축복을 받으면서 덩치가 더 커진 덕이겠지. 그 녀석 힘이 세졌을 테니 나도 더 힘이 세진 거겠지.

스킬도 하나 더 받았다. 분명 ‘군주의 위엄’이라는 이름이었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발동시키는 스킬이 아니라 자동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인 듯한데 아마도 무리를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스킬이겠지. 그러니까 스킬 이름에 ‘군주’가 들어가는 것 아니겠어?

나랑 전혀 상관없겠지. 나 같은 놈한테 무리는... 아니, 아니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달리자. 달리기에 집중하다.

47명, 48명, 49명...

다시 추월하는 사람의 수를 세며 달리기에 집중했다. 달리기에 집중하니 잡생각이 일지 않아 좋다.

그렇게 30분 정도 달렸다. 그 쯤 달리면 몸이 달아오르고 땀도 적당히 나서 느낌이 좋다. ‘나 운동 열심히 했다!’라는 성취감이 든 달까? 운동이 소용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샤워했다. 똥배는 여전하네. 왜 힘만 주고 근육은 안주는 거야? 나도 몸매 드러나는 나시티 입고 운동하고 싶단 말이다. 배부른 소리이려나. 하긴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니고 거저 얻은 주제에 말만 잘하고 있네.

남들 노력할 때 인생 대충 산 주제에 말...

“후...”

또 잡생각 했네. 요즘 자주 이런다. 그래서 달리는 시간이 더 좋다. 달리는 중에는 이런 생각이 안 드니까.

전부 그락카르 때문... 아니, 전부 나 때문이다.

그락카르를 보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됐나? 아마 아직 한 달은 안됐겠지만 비슷하긴 할 거다. 여하튼 그 시간동안 지켜본 그락카르는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2살에 독립해서 3년 만에 대전사 직위에 올라간 엘리트 중의 엘리트 아닌가.

일(전투)을 즐길 줄 알고, 항상 솔선수범(먼저 돌격) 하며, 잡일(전투준비)도 즐겁게 하고, 자기발전(싸움 실력 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지 않는가. 다섯 살짜리가 자기 종족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암컷)한테 인기도 많고...

마지막이 가장 부러운 거긴 하지만 그 앞의 것들도 정말 부러웠다. 난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저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던가?

남자라면 운전면허는 있어야지라는 말에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면허를 땄다. 그리고 군대에 가 운전병으로 있다가 나와서 택배회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퀵 아저씨와 친해져 그 아저씨를 따라 퀵서비스를 하게 됐다. 그 뒤에 작은 운송업체에 고용되어 냉동탑차를 몰았고 몇 달 전 운 좋게 날 좋게 본 거래처 소장님을 통해 고 상무의 운전기사가 된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성실하고, 무난한 성격으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기는 했지만 미래를 보고 행동한 적은 없었다.

10년 뒤에 난 뭘 하고 있을까.

잘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고 상무 운전기사를 하고 있을 거다. 지금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그리고 고 상무가 은퇴해 운전기사가 필요 없어지게 되면... 끝이지.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한다.

물론 그락카르를 보기 전에도 이런 운명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 살만하니까.

무시당하는 처지긴 하지만 월급은 웬만한 직장인 못지않다. 결혼 할 생각도 없고 비싼 취미도 없다. 지금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고 있는데 달에 100만원을 쓰지 못한다. 나머지는 전부 저금하다보니 통장에 돈도 제법 쌓여있다. 아파트 하나 사려고 돈 모으는 중이라 통장에 돈 쌓이는 걸 보는 재미가 있긴 한데...

10년 뒤에 퀵서비스를 하게 돼도, 다시 냉동탑차를 몰게 돼도 지금보다 벌이는 줄어들겠지만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 없을 거다. 그래서 별 신경 안 썼었는데 이젠...은 그만 생각하자. 어느새 또 잡생각에 빠져있었네.

아. 짜증난다. 빌게이츠 같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짜증나진 않았을 텐데. 왜 하필 무식한 오크 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네.

에이. 털어버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자. 고민 없이 사는 거야.

.... 뭔가 익숙한 장면인데... 그락카르가 이랬던 것 같은데.

...

.....

......

진퇴양난이군. 그락카르를 보며 향상심을 얻는 건 싫고 그락카르 놈처럼 행동하는 것도 싫고. 젠장.

***

“고 상무님. 아니. 전무님 조카분이요?”

-그래.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짧았다. 기 비서 이시끼. 아무리 통보하는 거라곤 하지만 설명 좀 길게 해주면 안 되냐. 하긴 그래도 이정도면 예전보단 낫네. 예전엔 기 비서가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여비서에게 전화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고 전무님 기사에서 잘리고 조카분 차량 운전하게 됐다는 거죠?”

-이거 큰일 내겠네. 잘리긴 뭘 잘려. 보직 이동이지. 안되겠다.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듣고 다른데 가서 엄한소리 하지마라. 특히 기자한테.

“아. 네...”

무슨 엄청난 일을 해주는 것처럼 말한다. 당연히 해줬어야 할 설명은 해주는 것 뿐이면서.

-전무님 조카분, 그러니까 회장님 영애께서 이번에 임원직으로 승진하신다. 그래서 전무님이 전무가 되시고 조카분이 상무가 되실 거야.

그렇군. 전무가 상무보다 높은 거였구나. 몰랐다. 그나저나 영애라니... 지금 내가 현대에 살고 있는 거 맞나. 영애란 단어를 듣다니. 그거 중세시대에나 쓰는 단어 아니었어?

-전무님이 싫다고 그냥 상무할 거라고 하셨는데 회장님께서 이번에 마음 단단하게 드셨는지 전무 안할 거면 회사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전무로 올라가셨다.

“그렇군요.”

승진을 억지로 당하다니. 그런 억지라면 나도 얼마든지 당해보고 싶다. 억지로 월급 올려주고, 억지로 차사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그래서 임원이 되신 조카분께도 회사에서 차량과 비서가 지원되는데 그 차량의 기사로 전무님께서 널 추천하신 거다. 네가 운전도 제법 하는데다가 힘이 세니까. 전무님은 조카분께서 어리고 예쁘셔서 혹시나 나쁜 일 당하실까 걱정하셨거든. 좋은 차타고 다니면 덮어놓고 욕하는 이상한 놈들 있잖아. 그놈들이 여자라고 얕보고 덤빌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더라고.

그렇긴 하다. 내가 타고 다니는 고 상무, 아니 고 전무의 차는 정말 엄청난 고급이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비싼차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그러다보니 돈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욕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군요. 그럼 고 전무님 차는...”

-그건 이번에 구한 기사가 계속 할 거다. 전무님 마음에 든 모양이야.

도대체 모르겠네. 날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조카한테 선물하듯 추천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운전기사가 너무 잘해서 싫어하는 조카한테 밀어낸 건지 말이야.

-감사한 마음으로 해라. 전무님덕분에 특별히 월급도 오르니까.

오오. 월급!

“얼마나...”

살짝 비굴한 목소리가 나왔다. 어쩔 수 없다. 돈 앞에 어떻게 비굴해지지 않을 수가 있어.

-10%니까.. 너 월급 얼마지? 400쯤 되냐?

“300...쯤 됩니다.”

-그거 받고 생활이 돼? 집세만 150쯤 나갈 거 아냐. 150으로 한 달 사는 거야?

집세 35거든! 넌 궁궐에서 살기라도 하냐. 월세 150이나 내게. 지도 죽어라 공부해서 비서로 취직한 거면서 왜 저래. 무슨 재벌 2세가 말하는 거 같네. 비서 월급 한 천 만원 쯤 되냐? 혹시 이놈도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 아냐? 막 나중에 나도 회장님 아들이었다! 하면서 상무 되고 그럴 수도...는 헛생각을 하고 있네. 내가.

-하긴 니가 어떻게 살든 내가 뭔 상관이야. 300이면 30만원 늘겠네. 얼마 안 되긴 하지만 그거로 만족해. 직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월급만 올리는 거라서 그거 이상은 힘들어.

“네. 알겠습니다.”

30만원이면 엄청 난 상승이다. 무려 월세에서 5만원 부족한 정도네. 월세를 5만원만 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슈퍼하다. 그래. 까짓 거 누구 차를 몰든 뭔 상관이야. 내가 고 전무랑 무슨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잘리지만 않으면 되지.

“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 휴가는 일주일 정도 잘릴 거다.

상관없다. 휴가를 한 달이나 받아버렸는데 할 일이 없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니까.

-전화번호 찍어줄 테니까. 바로 전화해서 인사해라.

“저 고 전무님 조카분 성함은 어떻게 되는지...”

-고은서님이시다. 네가 부를 일은 없어. 그냥 고 상무님이라고만 부르면 된다.

“아. 네..”

말하는 싸가지하곤... 같은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얼마나 좋아. 이 인간은 말 한마디로 천냥빚 질 인간이다. 하긴 고 전무도 이름 한 번 불러 본적 없으니 이 인간 말이 맞긴 하다.

-이거 끊자마자 전화 드려라. 확인해서 전화 안했으면 가만 안 있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말 참 더럽게 한다. 지가 가만 안 있을 거면 어쩔 건데.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됐어도 이런 말 들으면 바로 들이박았을 텐데 말이야. 한상 너 참 성질 많이 죽었다. 사람 됐네. 사람 됐어.

“010 345....”

바로 전화 걸었다.

“흠흠.”

목을 좀 가다듬고...

-여보세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20대 초중반정도로 들리는데... 고 전무 조카가 이렇게 젊나? 이 나이에 상무가 되다니. 역시 재벌 2세다. 난 언제나 그렇듯 힘이 담겼지만 크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고 상무님의 차를 운전하게 된 한상이라고 합니다.”

-아. 그 전무님께서 추천해주신...

숙부라고 안 부르고 전무라고 부르네? 공사 구분이 철저한 건가?

“네! 맞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

-됐고 문자로 주소 보낼 테니까 지금 오세요. 시간 되죠?

이 싹바가지... 고 전무도 말은 안 끊었는데. 앞으로 좀 힘들어지겠구만. 그리고 시간 되는지는 오라고 하기 전에 물었어야지. 이 썩을 것아.

“네. 당장 가겠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욕을 하든 말든 나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어찌 상사의 첫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엄청 찍힐 텐데 말이야.

사실... 첫 명령이 아니라 300번째 명령이라도 거부 못하겠지만 말이야.

***

바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왔다.

“여기 맞겠지?”

문자에 찍힌 주소와 대문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니 이곳이 맞았다. 바로 전화 걸었다.

-오셨나요?

“네. 지금 집 앞입니다.”

-들어오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는다. .... 담이라도 넘으라는 건가? 문을 열어줘야 들어가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니..

찌잉.

불만을 쏟는 중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는 집 5개쯤 들어갈 거 같은 정원이 보였다. 아우씨. 부담된다. 혹시 회장님도 같이 살고 있는 거 아냐?

컹! 컹! 컹! 컹!

정원에 묶인 개가 미친놈처럼 짖어댔지만 무시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으로 가 노크를 하니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익숙한 목소리다. 그 여자다. 나와 통화한 여자. 내가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실제모습도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어우. 근데 정말 예쁘다. 집안 유전자가 좋나? 아닌데. 고 전무는 못 생겼는데? 하긴 재벌인데 예쁜 여자랑 결혼했겠지. 어머니 쪽 유전자 몰빵 받은 걸 거다. 분명 그럴 거야.

“누가 왔니?”

나이든 여자가 나왔다. 느릿느릿 기품 있어 보이려는 걸음걸이와 비싼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저 아줌마가 회장님 사모님이다. 역시나 예쁘다. 50은 아득히 넘어 보이는데도 미모가 살아있다. 저러니 이렇게 예쁜 딸을 낳...

“네. 사모님.”

사모님? .... 재벌가는 딸이 엄마한테 사모님이라고 하나?

“다음 주부터 상무님 차를 운전해줄 기사분이세요.”

“그래? 우리 은서 잘 부탁해요.”

“아. 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상무님이라고? 뭐야. 이 여자가 고은서 아니었어? 그때 2층 계단에서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왔어?”

“네. 상무님. 다음 주부터 상무님 차를 운전해줄 기사분이 오셨어요.”

“아. 그래?”

상무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저 사람이 고은서겠지. 난 바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다. 그곳엔... 그냥 30대 초반의 평범하게 생긴 통통한 여자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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