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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8화 (28/228)

28 축복

캄스니는 화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활성화 시간이 짧다는 것은 뼈에 새겨놨다. 진짜로 새겼다. 화기를 사용했던 드워프의 도끼가 뼈에 박힌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죽음을 각오했었는데 화기 활성화가 끝난 덕에 이길 수 있었다.

화기에 대해 그 정도로 알고 있다면 그 약점도 쉽게 알 수 있다. 활성화 시간이 짧으니 그 시간동안만 피해 다니면 된다. 캄스니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다. 화기로 인해 강해진 드워프라 할지라도 개개인의 신체능력은 캄스니에 못 미치니까. 넷이든 다섯이든 달고 도망 다니다가 화기가 끝났을 때 싸우면 된다. 그러면 필승이다.

하지만 캄스니는 오히려 달려들었다. 명예로운 오크 전사의 머리에 후퇴, 도망이란 단어는 없다. 강자가 보이면 무조건 싸운다. 강하면 강할수록 더 좋다. 적이 약할 때 죽이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이 강할 때 죽이는 것은? 카록께서 흥미를 가질 좋은 소재다.

그렇기에 기쁘게 달려들었다.

비온비르는 마주 달려와 주는 캄스니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도끼로 표현했다.

소닌 마을 최고 장인인 비온비르가 직접 만든 최고의 도끼와 캄스니 부락 최고의 장인이 2달간 재료를 압축해 만든 최고의 도끼. 두 최고의 무기가 양 진영 최강자의 손에 들려 맞부딪쳤다.

콰쾅!

도끼의 부딪힘이었음에도 큰 폭발음과 충격파가 발생했다.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은 강렬한 충격파에 저마다 귀를 막았다.

부딪힘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캄스니였다. 비온비르는 비록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힘에 밀려 5m정도 뒤로 튕겨나갔다.

스미딘 산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인 비온비르지만 드워프는 본직업이 대장장이고 부직업이 전사다. 그에 반해 오크는 일부를 제외하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직업이 전사 하나다. 전쟁만을 생각하고, 전쟁을 위해 먹고, 전쟁을 위해 산다. 그런 이들의 정점에 있는 족장이 강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이것보다 더한 상황이 나와야 했다. 인간이 만든 이종족 무력 등급을 기준으로 둘을 비교한다면 캄스니는 2~2.5등급 사이, 비온비르는 3.5~4등급 사이다. 원래대로라면 첫 공격에 비온비르의 목이 날아갔어야 정상이지만 화기 덕분에 어느 정도 겨룰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화기를 사용했음에도 캄스니와 비온비르의 무력차이는 컸다. 이대로 싸우면 몇 합 나누지 못하고 목을 내줘야 할 터.

몇 번 뒷걸음질 하며 착지한 비온비르의 곁에 같이 달려온 드워프 셋이 섰다. 부족한 걸 알고 왔다. 그리고 부족한 무력은 숫자로 메꾸면 된다.

“카르하! 내 이름은 캄스니! 드워프!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캄스니는 방금 나눈 일격으로 비온비르를 전사로 인정했다. 자신이 죽일 자라하더라도 전사의 이름은 기억해주는 것. 그게 오크 전사의 방식이다.

하지만 드워프의 방식은 아니었다. 비온비르는 캄스니의 말을 무시하고 동료들과 함께 캄스니에게 달려들었다. 괜히 대화를 나눠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 더 부족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카르.. 급하군. 드워프.”

비온비르가 어째서 자신의 말을 씹는지 알고 있는 캄스니는 웃으며 마주 달려갔다. 그리고 가공할 전투가 이어졌다. 화기를 쓰지 못하는 드워프는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도 벅차할 정도였다.

핏! 삭!

드워프들의 도끼가 캄스니의 몸을 스치며 가벼운 상처를 냈다. 아무리 화기를 썼다 해도 1:1로는 상대가 안 될 드워프들이지만 100살 이상의 드워프 넷의 합공은 캄스니를 몰아붙이기에 충분했다.

싸움은 드워프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격하게 주고받는 공방 속에서 캄스니만이 상처를 입었다.

촤악!

그리고 드디어 비온비르가 그의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내는데 성공했다.

누가 봐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양측의 표정은 그 상황의 반대였다. 캄스니는 즐겁게 웃고 있었고 비온비르와 3명의 드워프들은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대론 진다.’

비온비르는 캄스니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패배를 떠올렸다.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비온비르는 더욱 힘을 다해 캄스니를 공격했다.

비온비르를 따라 다른 드워프들도 공세를 강화했고 당연하게도 캄스니의 몸에 상처는 늘어갔다. 캄스니는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졌다.’

패배를 확신했다. 시간에 졌다. 타올랐던 화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사그라지기 전에 캄스니를 잡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 뒤엔 캄스니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것이다.

‘잠깐. 아주 잠깐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아주 약간의 시간만 더 있었어도 캄스니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동에 화기를 사용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화기를 온전히 전투에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100% 승리했을 텐데.’

비온비르가 급히 주변을 살폈다. 혹시 이쪽으로 오고 있는 80살 이상의 형제가 있나해서다.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다른 오크들을 상대하러 갔다. 그들이 비온비르를 믿었기 때문이다. 캄스니를 상대하러 온 4명의 드워프는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 말은 가장 강하다는 뜻, 드워프 정예 전사들은 그들 4명이라면 오크 족장을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변수가 없었다면 그 판단이 옳았을 테지만 화기를 이동에 써버린 것과 캄스니가 평범한 족장보다 더 강하다는 것, 이 두 가지 변수 때문에 다른 상황으로 흘러버렸다.

‘죽는 게 두렵진 않다.’

죽는 것보다 그들이 캄스니를 잡지 못하게 됐을 때 형제들이 그에게 학살당하고 뒤이어 마을의 여자와 아이들이 학살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둘 순 없다.’

결심을 한 비온비르가 갑자기 도끼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돌발 행동에 같이 싸우던 3명의 드워프 역시 싸움을 멈추고 물러났다. 캄스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난 이 자리에서 죽겠다.”

비온비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며 도끼를 내밀었다. 곁에 있던 드워프들은 비온비르의 말이 뭘 말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들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한 드워프가 비온비르의 도끼 위에 자신의 도끼를 포갰다.

“아들에게 알려줘야 할 기술이 아직 많은데... 어쩔 수 없군.”

그를 이어 남은 둘 모두 도끼를 포갰다.

“내 목숨을 여기에.”

“형제들을 위하여.”

비온비르가 그들과 눈을 맞췄다. 생각 같아선 길게 눈을 맞추며 그들의 행동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가 먼저 간다. 내가 가장 많이 버틸 수 있을 테니.”

비온비르가 도끼를 높게 들었다. 다른 드워프들의 도끼 역시 비온비르의 도끼따라 치켜 올려졌다. 도끼 사이로 앞으로 나가는 길이 생겼다. 비온비르는 그것을 통과해 캄스니를 향해 달렸다. 남은 드워프들도 나이 순으로 도끼 밑을 통과해 캄스니를 향해 달렸다.

“나도 어디 가서 나이로 꿀리진 않는데 여기선 막내구만.”

마지막 드워프까지 도끼를 거두고 캄스니에게 향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비온비르가 도끼를 휘둘렀고 캄스니 역시 마주쳐 휘둘렀다. 그리고...

콰쾅!

최초의 일격처럼 폭발음과 충격파가 발생했다.

“으음?”

이상했다. 분명 드워프들의 힘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는데 방금 나눈 일격의 묵직함은 처음 만났을 때의 그것과 같았다.

“아. 그거군.”

캄스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았다.

“카르.. 죽겠다는 말이 그거였군. 목숨을 태웠어.”

무슨 일인지 안 캄스니가 기분 좋게 웃었다. 드워프들은 캄스니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연이어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목숨을 태운다.’

다른 종족에게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의 격한 표현이겠지만 드워프에겐 정말 목숨을 태웠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화기를 키우고 유지하는 것. 그것을 ‘목숨을 태운다.’라고 표현했다.

비온비르는 방금 전까지 조금만 더 화기를 유지할 수 있다면 캄스니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조금을 위해 목숨을 태웠고...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카륵!”

비온비르의 도끼가 캄스니의 왼 무릎을 절단했다. 캄스니가 휘청이며 넘어졌고 드워프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끼를 캄스니의 몸에 박아 넣었다. 하나는 캄스니의 오른팔을 잘라냈고 둘은 급소에 박혀들었다. 전부 치명상이었다.

턱.

그럼에도 캄스니는 볼썽사납게 넘어지지 않았다. 왼팔로 땅을 짚어 넘어지는 것을 막았고 오른발을 꿇은 채 무릎으로, 왼발은 무릎의 절단된 단면으로 땅을 디디고 섰다.

“죽는군.”

캄스니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대족장이 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족장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목숨을 태운’ 드워프들에 의해 한순간에 대족장을 향한 여정에서 밀려나게 됐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캄스니는 환하게, 그의 인생에서 지었던 그 어떤 웃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이 정도의 삶을 살았고 이 정도의 전투를 치르다 죽었으면 카록께 가까이 갈 수 있겠지.”

만족스런 삶이었고 만족스런 죽음이다. 캄스니는 만족했다.

그의 앞으로 비온비르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캄스니의 앞에 섰다.

“아직도 이름을 알려줄 생각이 없는가?”

“... 비온비르다.”

“비온비르. 카르.. 고맙군. 카록과 형제들에게 누구에게 죽어 왔는지 말할 수 있게 됐어.”

캄스니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하지만 비온비르는 아니다. 비온비르에게 캄스니는 잘 사는 자신들을 갑자기 쳐들어온 침략자였으니까.

“그럼. 이제 죽어라. 괴물.”

캄스니는 비온비르가 머리 위로 도끼를 드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목숨을 태워가며 싸운 너희들. 진정한 전사의 모습이었다. 죽기 전에 좋은 걸 봤어.”

비온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도 목숨을 태우마.”

그 말을 한 캄스니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낀 비온비르가 급히 도끼를 내리쳤다. 그리고 그의 도끼가 캄스니의 머리를 쪼개는 순간.

드워프 진영에 뛰어들어 싸우던 300여명의 오크 중 그때까지 살아있던 100여명의 오크에게 캄스니의 ‘전사의 외침’이 들렸다.

***

캄스니가 자신의 목숨을 태워 발휘한 ‘전사의 외침’은 그락카르가 그랬던 것처럼 100여명의 오크 전사들에게 강대한 힘을 더해주었다.

그들은 날뛰었다. 그락카르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드워프 정예 전사 중 둘을 죽였고 남은 넷을 상대로 호각으로 싸웠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죽었어야 할 오크 전사들이 죽지 않고 날뛰었고 드워프 진영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13,000명의 오크가 들이닥쳤다.

난전이 이어졌다. 난전은 오크가 잘하는 것이었지만 드워프들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광 캘 때 쓰는 폭탄을 던지기도 하고 쇠구슬을 쏘기도 했다. 그런 무기들로 인해 오크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결국 전쟁의 승리는 오크들에게 돌아갔다. 오크는 8,000명이 살아남았고 드워프는 전멸했다.

이게 제대로 된 진영을 갖추지 못하고 오크를 상대한 결과였다.

이러한 결과를 가능하게 한 캄스니를 비롯한 300여명의 선발대는 단 26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 26명의 오크 전사 모두에게 ‘카록의 축복’이 내려졌다.

그 중에는 그락카르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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