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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4화 (24/228)

24 전쟁의 시작

스미딘산맥은 많은 수의 드워프가 살고 있다. 여러 질 좋고 양도 많은 광맥이 어지러이 얽혀 있는 덕분이다. 드워프들은 광맥이 발견되는 곳마다 마을을 지었고 각 드워프 마을은 저마다 캐낸 광물을 다른 마을과 물물교환 했다.

스미딘산맥 남서쪽에는 소닌 평야가 있다. 산맥과 평야 사이에 평야의 이름을 딴 소닌 마을이 위치해 있고 이 마을은 광물을 직접 캐기보다는 농사를 지어 얻은 농작물을 다른 마을에 공급해주고 광물을 얻었다.

광물 채광량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마을이지만 스미딘산맥에서 소모되는 식량의 50%를 공급하는 마을로서 그 중요도가 높았다.

그렇기에 캄스니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대부분의 드워프 마을은 산맥 깊은 곳에 위치해있다. 심한 경우엔 땅을 파고 들어가 산맥 안에 만들어져 있는 경우까지도 있다. 그런 곳은 오크가 공격하기 어렵고 드워프가 방어하기 쉬운 곳이다. 그에 반해 소닌 마을은 산맥 밑 평야 시작지대에 위치해 있기에 공격하기가 용이했다.

그리고 드워프들에게 중요한 마을이기에 캄스니의 목표인 1만명이상의 적이 모일 가능성이 높았다.

소닌마을 자체는 인구 3,000명이 겨우 넘는다. 작지 않지만 캄스니의 목표인 1만명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소닌마을엔 전사만 9,300에 달하는 수가 모여 있었다. 소닌 마을을 잃게 되면 스미딘산맥의 드워프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기에 지원을 나온 것이다.

***

부우우우우우.

산양뿔나팔 소리가 소닌마을에 울렸다.

“새로운 형제들이 왔군.”

소닌마을의 대장장이이자 촌장 비온비르가 산양뿔나팔 소리를 듣고 망치질을 멈추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업을 중간에 멈추면 작업물이 시원찮게 나오기에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 비온비르지만 마을을 돕기 위해 찾아오는 형제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망치를 내려놓았다.

‘쿠든마을 형제들이군.’

장비의 형태가 비슷하기는 하나 각 마을마다 약간의 개성을 추가한다. 그렇기에 멀리서 봐도 어느 마을에서 온 형제인지 알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600명 정도 되겠어. 마을 전사의 3분의 2를 보냈군. 정말 고마운 형제들이야. 이제 9,900명인가? 오늘이 끝나기 전에 1만을 넘기겠군.’

비온비르가 평야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보름 전 한 오크 부락이 천막을 쳤다. 수가 2천이하라면 소닌마을 자체적으로 공격을 시도했겠지만 오크의 수는 4,000에 달했다.

비온비르는 곧바로 가까운 마을에 지원을 요청했다. 3일 후 1,500명의 전사가 지원 왔다. 소닌마을의 전사와 합하면 3,000에 가까운 수. 그 정도라면 공격은 몰라도 방어에 집중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비온비르는 방어를 준비했다. 목책을 수리하고 전쟁물자 제작에 마을의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오크들은 공격해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비온비르는 직접 정찰을 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사이에 거의 두 배는 늘어난 오크 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급히 귀환하여 스미딘산맥 모든 마을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젠 됐다. 걱정할 게 없어.’

오크의 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젠 상관없다. 드워프가 이만큼 모였으면 오크의 수가 몇이든 상관없다. 어찌나 많은 형제들이 왔는지 마을에 전부 수용하지 못해 반 이상이 마을 밖에 머물고 있을 정도다. 드워프는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수가 1만이 된 이상 오크는 절대 두렵지 않다.

차라리 인간이나 엘프가 더 무섭다. 그들은 원거리 무기를 쓰니까. 하지만 원거리 무기를 거의 쓰지 않는 오크는 돌격해오다가 핸드캐논에 무방비하게 당할 것이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근접 전사들의 공격력은 한정된다. 하지만 핸드캐논은 공격할 때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공격력이 올라간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이쪽은 모일수록 공격력이 올라가고 저쪽은 일정 수 이상에서는 공격력이 늘지 않는다.

원거리무기가 전무하다시피한 오크들은 후방에 위치한 핸드캐논을 든 전사들을 견제하지 못할 것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것이다.

비온비르가 오크 부락이 있는 곳을 향해 강하게 시선을 던졌다.

“언제든 와라. 우리는 준비되었다.”

다짐하듯 한 번 내뱉은 그는 쿠든마을의 전사들을 앞에 나서 반갑게 맞이했다.

***

꾸이익!

뀌이이이이!

꾸익! 꾸익! 꾸익!

우리 안에 수백의 큰 어금니 멧돼지가 갇혀 있다. 정확한 수는 모르겠다. 워낙 덩치가 커서 셀 수가 없다. 그냥 수백이란 것만 알겠다. 수백의 멧돼지가 갇혀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짐승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줄이야. 보통은 바로 잡아먹으니 5마리 이상 모여 있는 것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일주일동안 정말 열심히 포획했다. 매일 4~5마리를 잡아왔으니까. 물론 저 많은 수의 멧돼지를 우리끼리 잡아온 것은 아니다. 수백 마리의 멧돼지를 포획한 것은 부락 형제 대부분이 멧돼지 포획을 나선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많은 수를 포획했지. 멧돼지의 돌격을 정면에서 막을 수 있는 전사는 나밖에 없으니까. 포획속도에서 상대가 안 된다. 캄스니가 나서면 가능할까? 하지만 집결의 외침으로 형제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 그가 멧돼지 포획을 다닐 순 없는 법이지.

우리 문을 열고 방금 잡아온 멧돼지를 밀어 넣었다.

“수고했다. 형제.”

“엠그엔. 이제 정말 이 근처엔 없다. 숲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한 마리밖에 못 잡았다.”

내 생각인데 근처 왕복 하루거리 안에 서식하는 큰 어금니 멧돼지는 대부분 저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도 한 마리 겨우 잡아온 것이 전부였을 정도니까.

“들었다. 다른 형제들은 한 마리도 못 잡아온 경우도 많았다.”

당연하지. 이 내가 한 마리밖에 못 잡아왔는데.

“내일부터는 이틀을 생각하고 나가겠다.”

“아니. 괜찮다. 이제 멧돼지를 잡아오지 않아도 된다.”

“그럼. 다른 걸 하나?”

“아니다. 족장이 오늘 아침에 말했다. 준비는 끝났다고.”

“그 말은...”

“내일 공격한다.”

“크흐..”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

카르라라라라라라라라락!

이른 아침. 캄스니의 고함소리가 부락 전체를 울렸다. 크흐.. 가슴을 울리는 외침이다. 집결의 외침도 대단했지만 역시 진정한 외침은 육성으로 내는 소리다. 나를 비롯해 부락 곳곳에 흩어져 있던 형제 모두가 고함이 들린 곳으로 움직였다.

캄스니는 부락 중앙에 있었다. 어느 정도 형제들이 모여들자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유난히 목이 타서 드워프의 피로 목을 축이려고 하는데 같이 갈 형제 있는가!”

일순간 모든 형제가 대답대신 함성을 질렀다. 잠시 사방을 울리는 함성이 이어졌고 꽤 시간이 흘러 함성이 잦아들었을 때 다시 캄스니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와 함께 목을 축이러 가자! 카르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캄스니가 먼저 고함을 지르며 부락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모든 형제가 함성을 지르며 뒤따랐다.

***

난 대전사로서 당연히 최선두에 있는 족장의 바로 뒤에서 걸었다. 그런 내 곁에서 30의 형제가 같이 걸었다. 모두가 대전사급이다. 몇몇 익숙한 얼굴도 있지만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다. 이렇게 많은 대전사가 모여 있었나? 그 동안 다들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전사만 30명. 그럼 다른 형제의 수는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뒤에선 약 13,000명의 형제가 따라오고 있었다. 우드록이 움직였던 수의 거의 10배다.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밑겨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수의 형제가 한 자리에 모이다니.

우리와 싸워야 할 드워프가 불쌍할 뿐이다.

드워프 부락을 향한 이동은 빠르지 않았다. 아니, 느렸다. 전부 멧돼지 때문이었다.

뀌익. 뀌익.

꾸이이익!

꾸익! 꾸익!

멧돼지를 옮기는 것은 어려웠다. 수십의 형제가 우리 안에 들어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멧돼지를 몰아야 했고 멧돼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수백의 형제가 우리 전체를 들고 움직여야 했으니까.

이런 잡스런 일을 타고난 전사인 우리 오크는 잘 못한다. 나약해서 잡다한 지식이 많은 인간이라면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우린 인간이 아니고 오크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 얼마 전 전장에서 멧돼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 엠그엔에게 들을 수 있었다.

잡아온 멧돼지에게 형제들이 며칠 동안 매타작을 하면 그 형제를 멧돼지들이 무서워하며 피하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직선으로 달리는 멧돼지들의 습성을 이용하면 전장에서 훌륭한 전력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몽둥이를 든 형제들이 멧돼지를 몰아 적을 향해 돌진하게 하는 것이다. 멧돼지의 돌파력은 꽤 뛰어나니까. 상대의 전열을 쉽게 망가뜨린다. 그리고 망가진 전열로 우리가 뛰어드는 것이다. 우리 오크의 난전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하지만 그건 다른 종족을 상대로 할 때나 쓸모가 있다고 한다. 드워프에겐 멧돼지를 보내도 전열이 잘 망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드워프의 뚝심은 모든 종족 통틀어 최고니까. 거기에 모두가 타고난 장인이기에 장비 또한 훌륭하다.

드워프의 뚝심과 뛰어난 장비가 만나 최고의 단단함을 자랑하는 전사들이 뭉친 전열이다. 그런 전열을 짐승 따위가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런데도 멧돼지를 모은 것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

3일을 이동했다. 그리고 전장에 도달했다. 저 멀리 드워프가 보였다. 마을 밖으로 나와 평야에 늘어서 있었다. 평야 가득 메우고 있는 땅딸보들. 언 듯 우습게 보인다. 가장 큰 놈이 내 허벅지에 머리가 겨우 닿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저 작은 몸으로 우리 오크 못지않은 힘을 내는 무서운 전사들이니까.

“우리를 앞으로 옮겨라!”

“우리를 앞으로!”

뒤에 있던 멧돼지 우리가 최선두에 섰다. 그 우리 앞에 캄스니와 나를 비롯한 30의 대전사, 그리고 대전사는 아니지만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형제 수백이 모여들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형제들! 적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멧돼지에 받혀 부상을 입으면 카록을 뵐 면목이 있겠나!”

“크흐. 크흐. 크흐.”

재밌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족장이군. 모든 형제가 캄스니의 농담에 크게 웃었다.

“목을 축일 준비가 됐나! 형제들이여!”

캄스니의 말에 형제들이 전의로 가득 찬 함성으로 대답했다. 그 함성을 들은 캄스니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그럼 가자! 카르라라라라라라라라!”

우리 앞부분이 열렸다. 동시에 몽둥이를 든 형제들이 멧돼지를 몰았다. 멧돼지가 순식간에 우리 밖으로 쏟아져 나와 그 앞에 있던 나와 수백의 형제들을 덮쳐왔다. 우리는 피하지 않고 기다렸다. 멧돼지들은 빠르게 달려왔고 우리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갔다. 그리고...

“쿠워!”

가장 앞에 있었던 캄스니가 높이 뛰었고 뒤이어 멧돼지와 가까운 순서대로 나와 다른 형제들도 뛰었다. 그리고 멧돼지에 올라탔다.

멧돼지의 등 위는 흔들림이 심했다. 멧돼지가 달리며 몸을 흔들어대기까지 하니 처음 타보는 나로서는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털과 가죽을 꽉 잡은 날 떨어뜨릴 순 없었다.

“크흐!”

신난다. 뭔가에 타서 달리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드워프 진영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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