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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0화 (20/228)

20 비텔

다행히도 일이 잘 풀린 것 같다. 눈 크게 뜨고 조금씩 시들어가는 화초를 보는 유나의 얼굴엔 놀람이 가득했다. 저렇게 놀랐다는 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나중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엔 나를 조금이나마 믿을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힘을 거뒀다. 계속 생기를 빨아들였다간 화초가 죽어버릴 거다.

“이제 믿겠니? 내게 신이 주신 힘이 있다는 걸.”

말투가 좀 오그라들지만 신의 사제니까 좀 점잖은 말투로 해야 믿겠지.

손을 거뒀음에도 화초만 바라보던 유나가 내 질문에 살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잠깐 아무 말 없이 나와 화초를 번갈아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약속을 지켜줘야 한다.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 네...”

이번엔 고개만 끄덕이는 게 아니라 대답도 들었다.

물론 이 아이의 약속을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저 세상을 믿을 뿐이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도 아이 한 명의 말을 세상이 쉽게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 세상엔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욱 팽배하니까.

“난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단다. 그런데 내가 모시는 신께서 네 목소리를 들으시고 널 고쳐주라고 능력을 보내주셨단다.”

“제 목소리요?”

“그래. 춤을 추고 싶다는 네 목소리.”

“어?! 어떻게 아세요?”

놀라서 묻는 유나를 보며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말했잖니. 그분께서 들으셨다고. 내가 아는 게 아니란다.”

실은 내가 들었지만 나보단 신이 들었다고 하는 게 끗발 먹히지 않겠어?

“하느님이...”

“아니. 그 신이 아니란다. 내가 모시는 신은 다른 분이셔. 우리를 걱정해주시는 진실 된 신이시지.”

진짜 진실 된 신일까? 음... 에이. 몰라. 그냥 좀 믿음직한 이야기를 쭉 늘어놓자.

“춤추고 싶어. 아카데미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싶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난 그저 춤이 추고 싶을 뿐인데. 춤... 춤이 추고 싶어.”

“어떻게?!”

“신께서 듣고 내게 알려주셨단다.”

“진짜... 진짜 신이에요? 진짜 신이 있는 거예요?”

“그럼. 계시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네 생각을 알고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겠니.”

“그러면 왜 제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거예요? 다른 애들은 암 안 걸리고 학교도 나가고 하고 싶은 것도 하는데 전 왜 암에 걸려서 아파야 하는 거예요? 제가 죄를 지은 거예요? 무슨 죄를 지은 거예요?”

“......”

유나가 살짝 고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모른다.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은 없다고 생각했던 무신론자였으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대충 지어내서 말하기엔 유나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지금 물어본 것들에 대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덩달아 나도 심각해지는 것 같다.

“네가 암에 걸린 게 신께서 벌을 줘서 그런 것 같니?”

“그렇지 않으면 제가 왜 암에 걸려야 해요? 왜 하필 제가요?”

예전에 나도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었다. 어째서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다른 사람은 부자 집에서 태어났을까. 태어날 때부터 부를 가진 녀석들은 얼마나 좋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태어났고 난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아무 것도 없는 집에 태어났을까.

하지만 결국 알 수 없었다.

“사실 아저씨도 모르겠단다. 난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까. 신께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벌을 주셨는지, 상을 주셨는지.. 그 어떤 것도 모른단다.”

“.....”

“난 그저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널 찾아왔단다. 내가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지.”

“그런가요? 아저씨도 모르는 건가요?”

살짝 격앙된 목소리지만... 무시하자. 시간이 없다. 빨리 끝내야 해.

“넌 그저 내게 한 마디 말만 해주면 된다. ‘치료를 받겠어요.’와 ‘치료를 거부하겠어요.’ 그분께선 강요하지 않으신단다. 널 고쳐주고 싶어 날 통해 능력을 발현하셨지만 네가 거부한다면 난 그냥 갈 거란다.”

“강요...”

“시간이 없구나.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전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제 난 저기 보이는 계단으로 가서 1분 동안 기다릴 거야. 1분이 지나면 난 갈 거야. 그러니 하겠다면 1분 안에 저기로 오렴.”

일어나 휴게실을 나가 계단으로 향했다.

생각 같아선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지만 안 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생각이 생기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루나 이틀 뒤에 만나기로 하면 그땐 어머니나 다른 사람이 같이 나올 지도 모르지. 어쩌면 다른 사람이 숨어서 날 지켜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치료까지 모든 걸 끝내야 한다.

계단으로 들어오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유나가 찾아왔다.

“... 할게요. 애초에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에요. 지금 아저씨가 제게 무슨 짓을 해도 다리 하나 없어지는 것만 못할 테니까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전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굳게 다짐하듯 말하는 유나. 아냐. 나 그런 놈 아냐. 어린 애 추행하고 하는 그런 개새끼 아니야.

하긴... 딱 오해하기 좋은 내용이다. 계단은 구석진 곳이니 범죄를 저지를 거라면 딱 좋은 곳이지. 유나는 그런 가능성도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찾아온 걸 보면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겠다.

딱히 변명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품에 숨기고 있던 침을 꺼냈다. 1회용침. 어제 멀리 나가서 현금을 주고 사온 침이다. 가장 가는 침으로 달라고 했다. 최대한 유나가 아프지 않도록, 그리고 암세포에 정확히 침을 꽂아야 하니까. 침을 암세포에 꽂아 직접 생기를 빼앗을 거다.

내가 계단으로 가고 유나가 따라 오는 장면이 cctv에 찍혔을 것이다. 괜히 나중에 내게 불리하게 쓰이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5분. 나 스스로에게 5분이란 제한시간을 줬다. 이 제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수백 번이나 연습을 했다.

“이걸 네 암세포에 찔러서 힘을 전달할거야. 그리고 아까 봤던 그 힘으로 암세포를 죽일 거야.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하겠지만 조금 아플 수 있어. 괜찮겠니?”

“... 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이틀 뒤에 잘라버릴 다린데요.”

이틀이라... 고민을 조금만 더 오래했어도 시도도 못해봤겠네.

‘내면을 보는 눈’을 사용했다. 유나 다리의 내면이 보였다. 암세포, 암세포를 보여 다오. 스킬은 내 마음을 읽고 바로 유나 다리에 있는 암세포를 보여줬다. 큰 것 두 개와 작은 것 세 개. 단 다섯 개였다. 몸 전체를 살폈지만 아직 다른 곳에 퍼지지 않은 모양인지 다리에만 있었다. 겨우 이런 작은 것들 때문에 15살 소녀의 다리가 잘릴 뻔 했다니.

의사를 이해할 순 있다. 그들은 나처럼 스킬이 없으니 암세포의 위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을 것이고 이 작은 다리에서 이미 몇 군데 퍼져있는 암세포를 봤다면, 그리고 수술로 완벽하게 제거할 자신이 없다면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을 것이다. 두 개의 큰 암세포는 발견했겠지만 이 작은 세 개의 암세포는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 정말 작았다. 스킬이 알아서 찾아준 것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다섯 개야. 큰 것 두 개와 작은 것 세 개.”

“의사 선생님은 두 개라고 했는데...”

“사람들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하니 바로 진행할게.”

“... 네.”

유나가 뭐라 말했지만 무시하고 빠르게 진행했다. 다른 사람이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신고 당할지 모른다. 그리고 시간을 끌어도 마찬가지. 최대한 빨리 끝내자.

침은 완전 소독되어 봉인되어 있었다. 봉인을 뜯고 꺼내 손에 쥐었다.

“후...”

심장이 두쿵두쿵 뛴다. 진정하자. 내가 긴장하면 유나는 더 긴장할 거야. 그러니 긴장을 풀어. 이미 수천 명의 적에게 둘러싸여 목숨을 건 싸움도 했던 몸이잖냐. 내가 아니라 그락카르가 싸우긴 했지만.

핏줄을 보여다오. 암세포의 위치를 확인하고 포커스를 핏줄로 바꿨다. 침으로 핏줄을 찌르면 안 되니까.

푹.

“윽.”

조금 아픈가? 아파한다고 이제 와서 뺄 순 없다. 망설이지 않고 암세포가 있는 곳까지 찔러 넣었다. 침 끝에 암세포가 닿았다. 찔러 넣었다. 성공이다. 제대로 암세포를 찔렀다. 바로 다음 침을 꺼내 들었다.

푹. 푹. 푹. 푹.

빠르게 찔러 넣었다. 작은 암세포를 찌를 때 좀 헤매긴 했지만 순식간에 전부 찌를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신의 힘을 쓴다. 오한이 들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 거야. 참아야 한다.”

이미 내 몸에 ‘착취하는 손’을 써봤다. 그 증상은 유나에게 말해준 그대로였다. 최대한 침 끝에 스킬을 집중해 암세포를 공격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유나의 몸에 영향이 가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미리 경고했다. 중간에 놀라 도망치면 애초에 시작 안 하니만 못했던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유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됐구나. 시작하자. 양손을 펼쳐 침 끝에 올렸다. 그리고 ‘착취하는 손’을 사용했다.

“웃.”

“참아야 해. 금방 끝날 거야.”

‘착취하는 손’의 느낌에 유나가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를 안심시키며 계속 힘을 가했다. 눈은 암세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암세포가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것 세 개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함은 그것들이 더 이상 암세포가 아니란 거다. 완전히 죽었다는 뜻이다.

사라진 암세포를 찌르고 있던 침을 뺐다.

“세 개는 제거했다.”

“벌써요? 그게 그렇게 쉽게..”

유나의 말을 무시하고 치료를 계속 진행했다. 남은 두 개의 침을 양 손으로 하나씩 잡고 바로 스킬을 썼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끝났다.”

완전히 제거했다. 시간을 확인했다. 5분 거의 다 됐다. 나는 급히 침을 회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없어요...”

“곧 괜찮아 질 거다.”

그녀를 부축해서 데려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제 난 사라질 시간이다.

“돌아가면 다시 검사해달라고 해라. 암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나에 대한 것은 절대 말하지 말고 너도 날 잊어야 한다. 알겠지?”

“네. 그런데 저 정말 치료된 건가요?”

유나가 모호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시 ‘내면을 보는 눈’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싹 훑었다. 암세포가 보이지 않았다. 나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 저기요. 아저씨.”

유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 뒤의 일은 아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 말을 믿고 다시 검사를 받든지, 못 믿고 그대로 수술을 받든지...

***

유나를 치료하고 이틀이 지났다. 혹시 몰라서 의사에게 말해 퇴원을 서둘렀고 오늘이 퇴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누군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 넌...”

유나가 병실 문을 열고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젠장. 왜 찾아왔지? 급히 유나의 뒤를 살폈다. 문 밖에 딱히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유나를 안으로 들여온 후 문을 닫았다.

“왜 찾아왔어. 난 잊으라니..”

“저 암세포 사라졌대요.”

유나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사라졌다라...

“엄마 졸라서 다시 검사했는데 방금 의사선생님한테 검사 결과 듣고 왔어요. 깨끗하데요. 의사선생님이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 그래. 다행이구나.”

스킬을 통해 사라졌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확답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이젠 내일이 아니라고 잊으려고 했는데 제법 기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여하튼 날 잊고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난 어떻게 찾은 거야?”

“팔에 깁스했으면 이 병동에 입원했다는 뜻이니까요. 계속 이 병동 돌아다니며 찾았어요. 아까 잠깐 나오셨을 때 봤고요.”

우연히 찾았다는 거군. 젠장. 날 담당했던 간호사한테 인사하러 갔을 때 찾은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사하지 말고 그냥 갈 걸.

“엄마가 의사선생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수십 번은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진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하지만 아저씨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 안하고 저만 왔어요. 저라도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런 거 필요 없...”

내 말도 듣지 않고 유나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고마워요. 아저씨. 정말....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래. 알았다.”

숙이고 있는 유나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것뿐이었다.

“우와아아앙!”

유나는 곧 오열하며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 가만히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줬다.

***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안돼요?”

“안 돼.”

“그럼 나중에 어떻게 연락해요.”

“하지 마. 앞으로 난 잊고 좋아하는 발레 하면서 살아.”

한참 울고 난 유나가 내 인적사항을 물어봤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그녀와 내가 엮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 그럼 그 신님의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신님?”

“네. 신님이 제 마음을 듣고 절 고쳐주라고 아저씨한테 힘을 보내줬다면서요. 그러니 신님한테도 감사해야죠. 그러려면 이름은 알아야죠. 이름도 모르고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 할 순 없잖아요.”

잠깐 고민했다. 알려줘야 하나? 음... 그래.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비텔님이시다.”

“비텔님...”

“그럼. 이제 정말 가봐라.”

나가지 않으려는 유나를 병실 밖으로 밀어냈다.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비텔님한테 고마워해. 난 그분의 말을 따른 것뿐이니까.”

“네. 비텔님은 정말 고마운 신이신거 같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나는 떠났다. 음. 금방 다시 찾아오진 않겠지만 빨리 퇴원해야겠다.

그리고 잠시 후..

-이계에 비텔의 신도 한 명이 생겨났습니다.

비텔이 기뻐합니다.

비텔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비텔의 사제에서 비텔교 교주로 전직했습니다.

임시스킬 ‘착취하는 손’, ‘내면을 보는 눈’이 사라졌습니다.

스킬 ‘착취하는 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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