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오크미스테리
‘실수했군.’
테론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울프람의 단 한 명뿐인 부관. 울프람이 규격외 오크를 차단하러 떠날 때 부대의 운용을 믿고 맡길 정도로 날카로운 전장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조금씩 불씨를 키워가는 혼란이 자신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락카르가 덩치에 비해 힘이 강한 변종이기에 5부대장과 그의 대원들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힘은 딱 덩치만큼 가지고 있고 이상할 정도로 무기술이 좋았다. 그래서 양손검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전부 그의 포상약속 때문이다. 원래라면 신중하게 오크를 상대했을 병사들이 테론의 포상약속 때문에 무리해서 목만을 노리다보니 움직임이 단순해지고 기술 좋은 오크에게 쉽게 반격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가 끝나고 울프람 경께 벌을 청해야겠어.’
평생 처음 만나는 무기술이 뛰어난 오크라는 변수 때문에 일어난 실수지만 실수는 실수. 테론은 전투가 끝나는 대로 울프람에게 자신의 죄를 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 비틀린 상황은 바로 잡아놓을 생각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목을 쳐야 준다고 했던 포상을 오크를 죽이는데 가장 기여도가 높은 자에게 포상을 주겠다고 바꾸면 된다.
그 정도만 말해줘도 그가 직접 훈련시킨 정예병인 양손검병들은 지시 속에 숨겨진 ‘냉정하게 상대해라.’라는 메시지를 찾아낼 것이다.
“양손검병대에 전... 음?”
지시를 내리려던 테론이 뭔가를 발견했다. 그락카르의 몸에 난 수십 개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더욱 집중해 그락카르를 살폈다. 그리고 곧 확신했다.
‘덩치가 조금이지만 커졌어. 오크미스테리다.’
피가 멈추고 덩치가 커졌다. 오크미스테리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오크미스테리. 말 그대로 오크에게 일어나는 알 수 없는 현상이다.
오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투 중 덩치가 커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덩치가 커지는 만큼 힘도 세지며 상처가 아물고 체력을 회복한다. 그저 전투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처음에 인간들은 오크의 신인 카록이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카록의 축복치고는 그 효과가 너무 약했으니까. 정말 신의 축복이었다면 시작된 순간 성장과 회복이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오크미스테리는 진행 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진행된다. 그러니 신의 축복은 아니다.
연구는 지속되었다. 당연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 적 중 하나이니 반드시 그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결국 알아냈다.
전투 중 큰 활약을 하는 오크를 보며 다른 오크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원인이었다. 그저 ‘저 오크 강하구나.’라고 오크들이 단체로 생각하니 정말 그 오크가 강해지는 것이다. 정말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오크들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오크미스테리’라고 지어졌다. 원인을 밝히기는 했지만 인간으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원인이었으니까. 그래도 원인을 찾아냈으니 대책도 세울 수 있었다. 대책은 간단했다.
느린 회복으로 치유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혀 죽이는 것.
“오크미스테리다. 따라와라.”
“네!”
테론은 지금 울프람과 1~4부대장 전부가 임무 중이니 4.5급 오크의 오크미스테리 차단을 시행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나서면 저 오크를 확실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가 부대 운용능력만 뛰어나서 울프람 군의 2인자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자신도 양손검병 출신의 ‘트리세인’ 졸업자.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연이은 전투로 울프람처럼 몰란의 축복을 받아 성전사가 된 몸이다. 최근 있었던 왕국 무력측정에서 무려 4급을 인정받았을 정도. 무력등급은 인간이나 이종족이나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즉, 그 자신이 그락카르보다 높은 무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 혼자라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 직접 키운 5명의 친위대까지 따른다. 질수가 없다.
“변수는 차단한다.”
‘변수는 제거될 것이고 전투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테론은 확신했다.
***
강자다.
날 향해 파상공세를 퍼붓던 인간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고 여섯의 인간이 내 앞에 등장했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여섯의 인간 중 가장 앞서 있는 자는 강자다. 지금껏 내가 상대했던 그 누구보다도.
“크흐...”
기분 좋게 웃었다. 찾기 힘든 강자가 찾아오다니. 큰 뿔 누의 앞다리가 절로 입안에 들어온 격이군.
“오크의 웃음은 언제 봐도 더럽기 짝이 없군.”
‘전사의 호기로운 웃음을 보며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니 인간답구나.’라는 대답을 해줄까도 생각했지만... 목숨을 건 싸움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서 대화를 나눈 의미가 사라질 텐데.
“쿠와아!”
양손도끼를 힘껏 휘둘렀다.
카강.
“크흐?!”
놀랐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고 괜찮은 일격이었다. 카록께서 지켜봐주시는지 몸 상태가 꽤 좋아진 덕분이다. 이 공격은 오늘 내가 한 공격 중에서 상위권에 달할 정도로 괜찮은 공격이었다.
그런데 강자라 판단한 인간이 몸이 뒤로 밀리긴 했으나 홀로 막아냈다. 카록의 축복을 받은 후 상대한 인간 강자들은 방금 전처럼 강력한 일격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공격도 홀로 막아내는 이가 없었다. 아까 상대했던 11명의 강자도 둘 혹은 셋이 힘을 합쳐 내 공격을 막았었다.
그런데 눈앞의 강자는 홀로 막아냈다. 그것도 여유롭게.
“크흐흐흐흐흐흐.”
“더러운 웃음 흘리지 마라. 괴물새끼야. 기분 나빠진다.”
인간의 폭언에도 난 즐겁기 그지없었다. 분명하다. 이 인간은 내가 살면서 싸운 인간 중, 아니 오크를 포함하더라도 최고의 강자다.
“나는 명예로운 오크 전사 그락카르!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이름을 밝히고 묻는다는 것은 상대를 전사로 인정했다는 뜻. 이 인간은 최초로 내가 전사로 인정한 인간이다. 갑작스레 이름을 물으니 놀랐는지 인간이 잠시 당황하다가 이름을 밝히기로 결정했는지 곧 입을 열었다.
“위대한 신 몰란의 자식이자 존경하는 아버지 브리너의 아들이며 사마르랜드 우진장원 울프람 우란의 부관 테론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 아비의 이름을 밝히다니. 오크는 그러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전사로서의 나만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아비를 모르니 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가 없지. 대부분의 오크가 어미는 알아도 아비를 모른다. 짝짓기는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니까.
우드록 같은 족장정도는 되어야 다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고의 암컷을 독차지 할 수 있다. 덕분에 우드락이나 우드룩이 우드록의 자식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각자의 이름을 밝혀라. 큰소리로.”
테론 그 자가 뒤에 선 다섯의 인간에게도 이름을 밝히게 했다.
“크흐..”
역시 비열한 인간답다.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도 비열한 인간이란 점은 변하지 않나? 테론은 이 결투에 다른 인간도 참여시키기 위해 이름을 밝히게 한 것이다. 우리 오크들의 관습을 잘 알고 있군. 이미 내가 이름을 밝히고 물음으로서 결투가 성립되었다.
이 싸움엔 어떤 형제도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투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이가 끼어든다면 형제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나를 돕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명예로운 결투가 불명예로 물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저 테론은 급히 다른 인간의 이름을 밝히게 해 저들도 이 결투의 당사자임을 알린 것이다.
강자이면서도 이렇게 비겁하다니. 그래서 저들이 나약하고 비열한 인간인거고 우리가 위대하고 명예로운 오크인 거겠지. 테론을 제외한 다른 인간들의 이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들은 내가 인정한 전사가 아니니까.
“넌 곧 죽는다. 오크.”
“결투의 승패는 카록께서도 모른다.”
그렇기에 카록께서 우리 오크를 지켜보고 명예로운 승리를 거뒀을 때 치하해주시는 것이다.
“아니. 너희 신인 카록은 모를지라도 난 안다. 난 카록보다도 위대하니까.”
“감히!”
순간적으로 분노가 일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을 카록보다도 높다고 하다니.
“내 왕국 무력평가는 4급. 너도 강하기는 하지만 4.5급 비록 제법 무기술을 알고 있기는 하나 오크따위보다는 인간의 무기술이 훨씬 뛰어나다. 거기에 위대하며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신 몰란의 축복을 받은 나는 힘 또한 너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 친위대까지 함께한다. 너의 죽음은 정해졌다. 네놈의 신 카록이 온다하더라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분노가 일고, 일고 또 일었다.
최근, 아니 내 5년생 전부를 통틀어 이렇게 분노한 적이 있던가? 위대한 신인 카록을 모욕한 것도 내 분노의 일부분을 차지했지만 진정으로 내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감히 나약하고 비열한 인간 따위가 명예로운 오크 전사를 판단하는 점이다.
전사끼리의 결투는 끝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일지라도, 족장과 일반 전사의 싸움일지라도, 수컷과 암컷의 싸움일지라도 말이다. 그건 목숨을 걸고 결투에 임하는 상대를 무시하는 거다. 상대가 가진 전사로서의 명예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런데 감히... 감히 날 무시하고 판단해? 감히 명예로운 오크 전사인 나를?!
“나는 감히 너희들 따위가 판단할 자가 아니다!”
죽인다. 강한 분노와 함께 양손도끼를 휘둘렀다.
갑작스런 공격이었지만 테론은 반응했다. 그는 내 첫 공격을 막았던 것처럼 양손검을 들어 도끼의 진로를 막았다. 표정에 자신이 넘쳤다.
뿌드득.
“어?!”
하지만 그 자신감 넘치던 표정은 도끼와 양손검이 만나는 순간 사라졌다.
우드드드득.
“크헉!”
테론의 팔이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였다. 도끼가 검을 밀어 몸에 박혔다.
그리고 내 도끼는 양손검째로 밀고 들어가 부관의 몸을 양단, 아니 부숴버렸다.
-스킬 ‘불가사의한 힘’을 획득했습니다.
카록께서 보낸 전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크놈. 목숨 줄 정말 질기네.”
그락카르는 또 살아남았다. 중간까진 정말 죽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락카르는 테론과 그의 친위대를 죽이고 그 기세를 타고 다른 오크들과 함께 양손검병을 돌파했다. 양손검병을 돌파한 오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이상하게 허둥대는 석궁병과 검병을 공격했고 인간 병사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선두에는 당연하게도 그락카르 놈이 있었다. 전투 중 더 강해졌는지 아주 미친 듯이 날뛰었다.
결국 우드록을 상대하던 인간 측 대장이 후퇴를 지시하며 전투는 끝났다.
당연히 피에 미친 오크 놈들이 순순히 후퇴하게 놔두지 않았다. 반나절이나 진행된 전투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는지 미친 듯이 후퇴하는 인간을 추격하며 피해를 입혔다.
그래도 인간 쪽 대장이 상당했다. 제일 뒤에 남아 직접 오크를 막으며 후퇴를 진행한 덕에 완전 괴멸하는 것까진 막아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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