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크미스테리
“그르륵..”
목에 도끼가 박힌 인간이 피거품을 문채 축 늘어졌다. 이 인간이 11명의 강자 중 마지막이었다.
지치긴 지친 모양이다. 아무리 철로 만든 목보호대를 하고 있다고 해도 도끼가 목에 박히다니. 평소라면 단번에 몸에서 머리를 떼어놓았을 텐데.
퍽.
도끼에 박혀있는 인간의 시체를 발로 차 떼어내고 주변을 살폈다.
“크흐...”
최고다. 어딜 봐도 목숨과 목숨이 오가는 치열한 전투가 펼쳐져 있다. 죽어 카록께 가면 지낸다는 천상세계가 이런 곳일까?
족장이 이끄는 천이 겨우 넘는 무리에서 이런 전투를 경험했다. 만약 만이 넘는 무리를 이끄는 대족장과 함께 싸운다면? 부르르 몸이 떨렸다.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인다.
갑자기 죽기 싫어졌다. 오래오래 살면서 이런 전장을 더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다.
시선을 우드록에게 던졌다. 우드록과 인간 셋의 싸움. 이 아름답기까지 한 수천의 싸움에서 백미는 단연 저곳이다.
최강자들의 싸움.
수천의 인간, 수천의 오크 중 가장 강력한 자들이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다해 싸우고 있다. 여전히 힘이 넘치는지, 아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란 걸 알기에 없는 힘까지 짜내서 싸우고 있는지 한 수 한 수가 치명적이었다.
얼마나 치열한지 멀리서 지켜보는 나도 살이 떨릴 지경이다.
우드록은 왼팔이 잘려 오른팔 하나로만 싸우고 있음에도 ‘케흐흐하!’라고 크게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저런 싸움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부상을 입든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해한다. 방금 전까지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싸움은 저들의 싸움과 비교할 수 없다. 햇빛과 달빛을 비교하는 정도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 저들 사이에 끼고 싶다.
몸이 우드록이 있는 곳을 향해 기울었다. 다리가 들썩였다. 하지만 움직이진 않았다. 인내심을 발휘해 겨우 참아냈다. 끼어들어선 안 된다. 내가 끼어들면 영광으로 가득한 저 전투는 불명예로 점철될 것이다.
그래서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고,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당당하게 최고의 전투를 하고 싶다.
얼마 전 장인에게 했던 대족장이 되겠다했던 선언. 사실 별 생각 없이 그저 더욱 강해질 거란 포부를 말하는 것 정도였다. 대족장은 오크 중 가장 강한 자니까. 끝없이 강해지겠다는 모호한 목표.
그 목표가 이제 진정한 내 목표가 되었다. 언젠간 나도 족장이 되어 우드록처럼 이런 규모의 전투에서 가장 명예로운 싸움을 할 것이고, 더욱 강해져 우드록보다 더 많은 수의 형제를 이끄는 대족장이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싸움을 할 것이다.
그래서 죽기 싫어진 것이다. 그런 전투를 하기 위해선 살아남아야하니까.
살아남으려면 이 전투부터 이겨야하겠지. 오크는 후퇴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투를 패배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크흐.”
이기는 방법을 생각하다니. 방금 싸우다가 머리를 맞았나?
명예로운 전사답지 않게 고민이라니. 우드락과 며칠 같이 다녔더니 쓸데없는 것을 배웠군. 전사답지 않고 나답지 않다. 그저 싸우는 거다. 강한 곳에 몸을 던져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그것이 오크니까.
가장 강한 자들이 있는 곳은 우드록, 우드락, 우드룩 3부자가 싸우는 곳이다. 우드록은 3인의 강자와 싸우고 있고 우드락과 우드룩은 나처럼 1명의 강자가 이끄는 10명의 양손검병과 싸우고 있다.
끼어들어 싸우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그럴 수 없다. 말했다시피 그건 불명예스런 일이니까. 그 다음으로 강자가 있는 곳은...
정면.
달렸다. 형제들이 양손검병들과 싸우고 있는 곳으로.
***
‘멍청한 놈들.’
울프람의 부관 테론이 양손검병에 막히고 검병, 석궁병에 둘러싸인 오크들을 보며 이죽거렸다.
오크와 1:1이 가능한 양손검병을 중앙에 배치해 오크의 움직임을 막고 둘로 나뉜 검병, 석궁병 부대가 양익에서 오크를 포위해 섬멸한다. 방패나 갑옷을 잘 쓰지 않는 오크들은 석궁사격에 무방비로 당한다. 당연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오크도 바보는 아닌지라 양손검병을 버리고 석궁병을 공격하러 움직인다. 그때 검병이 막는다. 원래는 일반검병이 오크를 막아서기는 힘들다. 평범한 검병이라면 오크의 돌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몇 군데 뚫릴 것이다. 검병을 뚫어낸 오크는 얼마 안 될 테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오크에 의해 석궁병이 학살당할 것이다.
그래서 울프람은 오크의 강격을 막을 수 있도록 검병의 방패를 포란 왕국 기준 규격보다 30%정도 더 키웠다. 겨우 30%지만 무게는 거의 두 배가 된다. 당연히 검병 같은 최하급 병종이 다루기 힘든 무기다. 하지만 울프람은 그것을 공격을 거의 포기하고 방어에만 집중하는 변태적인 육성방법으로 해냈다. 물론 혹독한 훈련도 곁들였다.
덕분에 생겨난 것이 방어특화 검병이다. 울프람과 그의 부하들은 방패병이라 부른다. 완성된 방패병은 오크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공격 특화의 석궁병과 방어 특화의 방패병. 이들은 둘이면서 하나다. 둘의 조화는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고 울프람의 ‘대(對)오크전략’은 완성되었다.
그 뒤로는 항상 같다. 오크들은 항상 같은 전략에 걸려들었고 그대로 격멸 당했다. 그리고 오늘도 같을 것이다.
문제는 정면에서 오크를 막는 양손검병의 피해가 크다는 거지만 이 전략 쓰기 전에 입었던 피해를 생각하면 그건 피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크 하나를 죽이기 위해선 인간 셋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변수가 하나있기는 하지.’
테론은 이 전략의 약점까지는 아닌 말 그대로 변수하나를 떠올렸다. 지금의 전략이 완성되기 전 초기 상태의 전략에서 몇 번 그 변수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규격외의 오크.’
그먼제국에서 제작한 ‘인간에게 위협적인 이종족 무력등급’에서 3급 이상으로 평가받는 족장 같은 말도 안 되는 무력을 가진 오크들.
3급이 넘어가면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무력이 아니다. 그런 규격외의 존재가 덤빈다면 방어 특화한 방패병이든, 정예병인 양손검병이든 전부 똑같이 ‘어른 앞의 아이’가 되어버린다.
이로 인해 전략초기에 실패를 두 번 겪었다. 첫 번째는 족장에 의해 방패병의 진영이 무너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오크에 의해 석궁병이 학살당했었고 두 번째엔 족장과 대전사들의 돌파에 의해 포위하기도 전에 양손검병이 뚫려버렸었다.
그때도 결국 섬멸하기는 했으나 피해가 컸었다.
울프람은 수를 냈고 규격외의 오크가 변수가 되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보완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오크는 항상 강한 자가 선두에 서니 이쪽에서 그 존재들을 막을 수 있는 전력으로 싸움을 거는 것이다. 오크는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싸움 중간에 끼어들지도 않기에 편하게, 아니 편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략할 수 있다.
몇 번 그러다보니 강한 오크와의 전투시 행동강령 같은 것도 만들어졌다. 아직 보완해나가는 중이긴 하지만 덕분에 상대하기 편해졌고 피해도 줄어든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오늘 상대하는 규격외의 오크들은 유난히 더 강하군.’
오크의 강함은 신체의 크기로 확인할 수 있다. 개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크면 강하고 작으면 약하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전투에서 규격외라 지정하고 차단을 시행한 오크들은 다른 때의 오크무리의 그것들에 비해 더 강했다. 1,000마리 규모라면 족장 하나에 대전사 한둘이 보통이다. 그런데 오늘은 대전사가 셋이고 족장은 3급인 다른 족장보다 더 큰 2.5급이다.
그래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력으로 차단을 시행했는데 가장 약할 것이라 생각한 4.5급의 대전사가 5부대장과 그의 부하들을 이겨버렸다. 상당히 드문 ‘크기에 비해 더 강력한 오크’인 것이다.
‘다른 쪽은 어떻게 됐지?’
테론이 눈을 돌려 전장을 살폈다. 다른 규격외 오크도 더 크기를 뛰어넘는 무력을 갖고 있다면 오늘 전투는 힘들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오크는 크기에 맞는 무력이군.’
울프람과 1, 2부대장은 2.5급의 족장을 맞아 한 팔을 잘라내는 쾌거를 이룬 상태였고 4급의 대전사 둘을 각각 상대하는 3, 4부대장 쪽은 부대원의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저 4.5급의 대전사 하나만 처리하면 이 전투에서 더 이상의 변수는 없다는 뜻이군. 어려울 것 없지. 5부대장을 상대하며 지쳤을 것이고 부상도 입었을 테니까.’
“양손검병대에 전해라. 분대장, 분대원 가리지 않고 저 오크의 목을 쳐 가져오는 자는 트리세인에 보내주겠다고.”
“네!”
병사들이 테론의 지시를 그대로 똑같이 소리쳤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양손검병의 귀에 들어갔고 그는 똑같은 내용을 소리쳤다. 순식간에 테론의 지시사항을 양손검병 모두가 알게 되었다.
‘괜찮은 유인을 하나 만들어주면 병사들은 평소보다 더 큰 힘을 내는 법이지.’
테론은 자신의 포상 약속으로 인해 저 4.5급의 대전사가 금방 정리 될 거라 자신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실수가 되었다.
***
‘이 오크의 목을 친다. 목을 쳐서 나도 트리세인에 들어갈 것이다.’
‘다 죽어가는 오크의 목만 치면 나도 출세길에 오를 수 있어.’
‘목을 치는 것은 나야. 내가 쳐서 트리세인에 갈 거야.’
‘다 죽어가는 군. 이제 마지막 일격만 먹이면 돼. 그리고 그건 내거다.’
알 수가 없군. 갑자기 인간들의 마음이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들리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흠... 뭐 상관없다. 들리면 나에게 좋은 거니까. 굳이 이유를 알 필요 없지.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인간들의 마음이 잘 들리기 시작한 후부터 인간들의 나에 대한 공세가 사나워졌다. 사나워졌으니 그만큼 위험해져야 정상이지만... 오히려 싸우는데 여유가 생겼다.
그들 전부가 크게 마음의 소리를 내며 내 목을 노려온 덕분이다.
방금 전 11명의 강자들과 펼쳤던 목숨을 건 전투에서 그랬던 것과 똑같다. 아무리 날카롭고 강한 공격이라도 어디를 공격해올지 안다면 위협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내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후웅!
강렬한 기세를 담은 공격이 날아왔지만 가볍게 피하고 반격해 두 다리를 잘라냈다.
목 그리고 목. 날 향해 덤벼오는 대부분의 인간이 마음속으로 목을 외치며 공격해왔다.
“크흐..”
정말 웃기는 상황이군.
***
‘어떻게 된 거지? 오크가 무술이라도 익힌 건가?’
테론이 보는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이 약속한 포상으로 인해 사기가 오른 병사들에 의해 금방 목이 잘릴 것이라 믿었던 4.5급의 오크가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한발자국 물러나 높은 곳에서 전장을 살피는 테론의 눈엔 명확하게 보였다. 4.5급 오크를 중심으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양손검병대의 진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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