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스킬-비텔의귀
백만스물하나...는 아니고 그냥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와. 대단하시네요.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라니. 운동 열심히 하셨나 봐요.”
“하하. 네. 조금요.”
간병인이 한 손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아뇨. 한 번도 안했어요. 퇴근하고 나면 게임할 시간도 부족했는데 운동은 무슨 운동. 지금하는 것도 운동이라기보다는 확인작업 같은 거다.
요 근래 내 몸이 너무 이상했다. 전에 회사 주차장에서 퀵 아저씨 도와줄 때 물건을 세 개씩 막 옮기고, 아침에 일어날 때 상쾌한 느낌도 들고, 기어 변경이나 핸들링이 부드럽게 잘 되기도 했고 말이야. 그냥 요즘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퍽치기단 애들이랑 싸우면서 그냥 컨디션이 좋은 정도가 아니란 걸 알았다.
평소 운동도 안하고 평생 싸움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내 주먹에 한 방에 뻗거나 이리저리 휙휙 날아다녔다. 그제야 내 몸에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알았다.
지금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 하는 걸 봐라. 스물여덟, 스물아홉... 양손으로 해도 힘들 걸 한 손으로 하고 있는데도 전혀 지치지를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손 팔굽혀펴기 30개도 겨우 하던 난데...
이렇게 된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락카르.
그락카르의 힘이 내게 전해진 것이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꿈속에서 난 완벽하게 그락카르 본인이 된다. 그렇기에 그락카르가 가진 힘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아침부터 여러 방식으로 운동을 하며 느낀 내 힘은 그락카르가 가진 본신의 힘의 10분의 1정도일까?
힘을 전달받고 있는 과정인걸까? 아니면 이 정도에서 끝나는 걸까.
힘이 더 세지면 좋기야 하겠지만... 여기서 멈춰도 불만 없다. 이미 갖게 된 힘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거 같거든. 그걸 어떻게 아냐고? 막 한 손 팔굽혀펴기를 40개 넘겼는데 인간이라면 지쳐야 하는 것 아냐? 지금 난 전혀 안 지쳤다. 팔이 살짝 뻐근한 것 말곤 전혀 지장이 없다. 이대로 100개, 아니 500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샤.”
몸을 일으켰다. 그냥 지금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 작업을 한 것뿐이다. 대충 확인한 것 같으니 멈춰야지.
“후우...”
그락카르의 신체능력까지 얻게 되다니. 단순하게 카록인가 뭔가 하는 신에가 받은 ‘카록의 시야’라는 스킬의 힘만 얻을 수 있는 건줄 알았는데.
“대단하시네요. 그러니까 퍽치기단도 잡으시지. 기사 보니까 흉기 든 세 명을 제압하셨다면서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운전하시지 말고 격투기 하셔도 될 거 같은데.”
“아.. 하하하.”
간병인이 들고 있던 신문을 내게 보라며 내민다. 어제 기판걸이 돌아가고 1시간 정도 있다가 기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결국 신문에 실린 모양이다.
“여기보세요. 신문 보다가 한상씨 나오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간병인이 들고 있던 신문을 내밀며 내 기사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제법 크게 나있다. 탑 기사는 아니지만 1면에 5분의 1정도 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병인이 신문을 넘기더니 이번 일이 중점적으로 실린 페이지도 보여줬다. 간병인이 어떻게 나랑 이 사건을 연결했나했더니 내 사진이 실려 있다.
기사가 전부 나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주제는 ‘심해지는 가출 청소년 범죄’였고 그 중 내 인터뷰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TV에도 나오시는 거 아녜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간병인은 신문과 인터뷰에 대해 말하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딱히 숨길일도 아니기에 웬만하면 대답해줬다. 고 상무가 술 취해서 인사불성이었다는 건 빼고, 그 부분에 대해선 대답 안하거나 대충 넘겼다.
10시 경 몇 가지 검사를 받았고 점심 후 의사와 상담했다. 큰 부상도 없고 회복 경과도 좋다는 이야길 들었다. 퇴원이 언제쯤 가능한지 물으니 머리를 다쳤으니 며칠 더 경과를 보고 결정하자는 이야길 들었다.
쳇. 너무 심심해서 집에 가고 싶은데. 어제랑 오늘 병실에 박혀있는 게 아니라 집에서 고급시계를 죽어라 했으면 5점 정도는 올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고급시계 점수가 오른 것도 꿈에서 그락카르를 보게 된 이후의 일인데... 설마 반시신경이 좋아져서 게임도 잘하게 된 건가?
“오늘까지 일하시는 건가요?”
“네. 오늘까지 경과를 보고 좋지 않으면 연장할 예정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이 좋다고 하시니 전 이제 빠져야죠.”
‘아쉽다. 페이가 세고 편해서 더 하고 싶은데.’
간병인의 마음이 들려왔다. 편했겠지. 어제 오늘 한 거라곤 병실에서 같이 밥먹어준 거랑 검사 받으러 갈 때 길 안내해준 거 밖에 없었으니까.
“아쉽네요.”
“저도요. 시민영웅을 간병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시민영웅은 무슨.. 하하. 며칠간 고생하셨는데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쉬세요.”
“에이. 그럴 수야 있나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제 시간에 가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요. 아저씨. 저녁 먹고 가려고 그러는 거죠? 맨날 비싼 거 시켜먹던데? 그래도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는지 거듭 권유하니 결국 집에 갔다.
이제 완전히 혼자구나. 간병인처럼 낯선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단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한 것 같다.
***
‘춤추고 싶어.’
음? 갑자기 누군가의 마음이 들려왔다. 분명 여긴 나 혼잔데? 혹시나 해서 병실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춤추고 싶어. 아카데미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싶어.’
더욱 명확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지. 옆방 사람의 마음인가? 그럴 리가. 이제까진 근처에 있어야 마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난 그저 춤이 추고 싶을 뿐인데. 춤... 춤이 추고 싶어.’
크고 강렬했다. 이제껏 들었던 그 어떤 마음의 소리보다도 강했다.
처음 느낀 강렬한 마음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했던 나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병실을 나섰다.
거리를 무시하고 들려오는 강렬한 마음의 소리. 근원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의 소리는 마치 실제 육성으로 지르는 소리처럼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으니까.
종착지는 암병동이었고 강렬한 마음의 근원은 이제 15살이 된 소녀였다.
어째서 저런 어린 아이가 이런 강렬한 마음의 소리를 내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휴게실에 앉아 심심해서 사온 책을 읽으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며칠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병원 휴게실은 많은 중요한 정보가 오간다. 환자의 보호자와 문병 온 사람이 환자가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저녁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보호자와 손님이 휴게실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아이의 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알게 된 사실은 간단하지만 잔혹했다. 그 아이에 대해 간단하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무릎에 암이 생겨 입원했고 결국 발을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발레를 하던 여자아이.’
불쌍하다.
암은 기본적으론 인간에게 속한 세포다. 그렇기에 늙고 허약할수록 오래 견딜 수 있고 젊고 건강할수록 빠르게 악화되는 이상한 병이다.
아이의 무릎에 있는 암은 발견되었을 때 이미 수술로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 있었고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온몸으로 전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더 전이되기 전에 허벅지 아래를 잘라내기로 결정한 것이고 말이다.
의사가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결정하기까지 암이 발견되고 한 달 만이었다고 하니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강렬한 것이 당연하겠지. 아이의 영혼색이 밝아서 더 안타까웠다. 영혼이 밝다는 것은 그만큼 착하게 살았다는 뜻이니까.
다시 병실 앞을 지나가며 열린 문틈으로 슬쩍 아이를 봤다. 15살이라곤 하지만 꼬꼬마란 말이 더 잘 어울릴 듯한 아이. 저런 아이가 벌써 꿈이 꺾여 절망에 빠지다니... 세상이 불공평하긴 하다. 빌어먹을.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타깝다. 할 수만 있다면 암을 치료해주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못하지.
영혼을 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있고,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지만 저 아이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런 능력 다 필요 없고 치유 능력이나 하나 주지. 나 사제라며. 사제면 치유능력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치유능력이 있으면 돈 많이 벌 텐데 말이야. 부자 한둘만 고쳐줘도 몇 억은 받지 않을까.
뭐. 쓸데없는 희망이긴 하다. 로또 당첨되면 좋을 텐데 하는 거랑 뭐가 달라. 밤도 깊었으니 병실로 돌아가야겠다. 의사한테 말해서 빨리 퇴원해야겠어. 마치 저 아이를 외면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이의 강렬한 마음을 들을 때마다 슬프다.
-당신을 지켜보던 비텔이 손을 들었습니다.
임시스킬 ‘착취하는 손’, ‘내면을 보는 눈’을 얻었습니다.
음?! 이건 뭐야?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병실로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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