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스킬-비텔의귀
빌어먹을. 퍽치기다. 퍽치기라고 부르는 거 맞나? 아. 몰라. 맞겠지. 쇠몽둥이 든 놈 표정에 여유가 넘치는 것이 한두 번 해본 놈이 아닌 것 같다.
시바... 어떡하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3놈 말고 다른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은 개뿔. 1:1도 가망 없는데 3명이면 절망적인 수다. 자기 몸도 못 가누는 고 상무가 벌떡 일어나서 도와줄 리도 없고, 우릴 향해 다가오는 3놈 외의 다른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인적도 없다. 시장 옆에 있는 공장, 빌딩지대라 늦은 시간이 되니 비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범행 장소로 선택했겠지.
다행인건 잔뜩 긴장하고 있음에도 굳지 않고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간다는 거다. 꿈속에서 그락카르로 살면서 비교도 안 되는 긴장감을 겪었으니까. 수백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을, 그것도 잔혹하기 그지없는 오크 놈의 입장에서 겪었는데 이 정도에 얼어서 아무 것도 못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락카르 놈이 고맙다는 건 아니지.
도움을 청해야 한다. 소리 질러봐야 누가 들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여유롭게 걸어오는 놈들을 자극하기만 하겠지. 고 상무는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가야지. 그래. 가야지.’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난 쓰러져 있는 고 상무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돈 줄 테니까. 그냥 가요.”
“응. 돈 주면 그냥 가야지. 그런데 늙은 놈들은 거짓말을 하도 잘해서 말이야. 몇 대 쥐어박아야 이실직고를 하더라고.”
그래. 말 들을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했다.
고 상무를 부축하는 척 하면서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옷에 가려 앞에 놈한테는 안보이고 몸에 가려 뒤의 놈들한테 안보이게 했다. 그리고 빠르게 기판걸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 세 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권도 3단.. 아니 어릴 때 딴 거니깐 3품이지. 여하튼 3품이지만 그냥 체조 비슷하게 하는 것만으로 딴 거다. 실제로 싸워본 적은 내 평생에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내가 한 눈에 봐도 퍽치기가 익숙해 보이는 애들 3명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 그것도 쇠몽둥이를 든 녀석을 상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기판걸의 번호를 눌렀다.
“그냥 가. 이분 정말 높은 분이다. 입은 옷을 보면 알 거 아냐. 정장부터 구두, 손목시계 전부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것들이야. 이분 건들면 경찰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이 근처 싹 뒤집어놓을 걸. 혹시 잡히기라도 하면 선처는 기대도 하지 마라. 철창에서 죽어라 썩을 거다.”
“크큭. 이거 고맙네. 지갑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옷도 벗겨가야겠어. 중고로 팔면 꽤 나오겠지.”
단호하게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래. 시발... 그럴 줄 알았다. 딱 보니 미셩년자다. 요즘 문제가 많다는 가출 청소년인가? 한창 겁 없을 시기지. 나이 들어서 조폭이라도 되면 그나마 사리분별을 할 수 있기에 내 말을 듣고 정말인지 확인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면 그냥 갔겠지. 돈 몇 푼 뜯으려다가 감방 신세지긴 싫을 테니까.
하지만 어린놈들은 세상 물정도 모르니 무서운 것도 없다. 한창 자기는 특별해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할 때이기 때문에 완벽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세상에 완벽한 범죄란 없는 데도 말이다.
스마트폰에 통화가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떴다.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빠르게 말했다.
“여기 상무님이 자주 오는 순댓국집에서 주차장 가는 길입니다. 퍽치기가 나타났으니 빨리 경찰 보내고 조치해주세요.”
“이런 시발새끼가! 야! 빨리 작업해!”
112를 누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눈이 있고 인터넷 화제를 검색한다. 그 중 112 신고센터 직원이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다. 운이 좋아 일을 잘하는 직원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런 확률에 운을 시험하고 싶지 않았다.
기판걸은 지난 반 년 간 지켜온 바에 의하면 싸가지는 없지만 일은 정말 잘했다. 그라면 간단한 상황만 알려줘도 알아서 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그렇기에 고 상무의 스마트폰을 꺼낸 것이다. 내 이름이 뜨면 기판걸이 무시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으니까. 적어도 고 상무의 번호가 뜬다면 빠르게 받을 것이고 일의 경중도 빠르게 따질 수 있겠지.
수년 간 고 상무와 일한 기판걸이라면 고 상무의 단골 순댓국집을 알겠지. 설령 모른다 해도 스마트폰 위치정보도 켜놨으니 어떻게든 찾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도움이 찾아올 때까지 버티는 것.
내가 전화하는 걸 본 녀석들이 빠르게 달려왔고 앞에 있던 녀석이 가장 먼저 도달했다. 그 녀석은 망설임 없이 내 머리를 향해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미친 그락카르 같은 새끼. 내가 그거 맞고 죽기라도 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얼결에 왼손을 들어 막았다.
빡!
“큭.”
아프다. 시발. 정장위로 맞았는데도 아프다. 이 새끼가 내가 지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한테 이 지랄을 하는 거지? 순간 열이 뻗쳤다. 자연스럽게 오른 주먹이 날아가 그 놈의 얼굴에 박혔다.
퍽!
마치 돌림판 돌 듯 그 놈의 몸이 휙 돌더니 바닥에 쳐박혔다.
“어?”
놀랐다. 내 주먹이 이렇게 셌나? 다 큰 남자 몸을 한 방에 회전 시켜버릴만큼?
뻑!
뒷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고 그대로 다리의 힘이 풀려 쓰러졌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려 했다.
익숙한 느낌이다. 꿈에서 그락카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다. 다른 점은 그때는 그락카르를 지켜 줄 오크 형제들이 있었다는 거고 지금 나는 술 취해서 자기 몸도 못 가누는 고 상무밖에 없다는 거다.
“우아아아아!”
날아가려는 의식을 고함을 질러 겨우 붙잡았다. 몸을 돌리며 팔을 되는 데로 막 휘둘렀다. 운 좋게 한 놈의 옆구리를 쳤고 그 놈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빡!
“크억.”
남은 한 놈의 쇠몽둥이가 옆구리를 강타했다. 시발. 흥분하면 아드레날린이 나와서 하나도 아프지 않다던 놈들 전부 구라쟁이다. 이렇게 아픈데. 아프다. 너무 아프다. 비틀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물러나면서 그 놈을 째려봐주니 선 듯 덤벼오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래. 망설여. 두 놈이나 쓰러졌잖아. 나 한 방 있는 사람이야. 잘못 맞으면 너 다른 놈들처럼 골로 가는... 젠장. 옆구리 맞아 쓰러졌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망설이던 놈은 친구가 옆에 오니 기가 살았다.
“죽이자.”
옆구리를 맞았던 놈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다른 놈은 그 말에 잠깐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빌어먹을 어린 새끼들 사람 죽이는 걸 쉽게 이야기하다니.
아까완 다른 압박이 느껴졌다. 누가 심장을 쥐어짜고 전신의 근육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 그래. 이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긴장감이구나. 그락카르 놈은 이 느낌이 좋다고 웃던데 난 절대 그럴 수 없을 거 같다. 그 오크 놈은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고 난 죽기 싫어서 환장한 놈이니까.
놈들이 양 방향에서 천천히 좁혀왔다.
후회된다. 그냥 돈 주고 몇 대 맞을 걸. 왜 괜히 반항했을까. 그랬으면 이렇게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는 않을 텐데...
죽기 싫다. 그래. 정말 죽기 싫어. 그러니 죽기 전까지 반항이나 해보자.
여전히 온몸에 압박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가만있으면 죽을 거다. 죽기 싫으니 어떻게든 움직여야지. 겉옷을 벗어 왼팔에 감았다. 그리고....
“우아아아아아아아악!”
그락카르를 흉내 냈다. 난 둘이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항상 그락카르가 하던 것처럼 고함과 함께 돌격했다. 내가 찍은 놈의 표정에 당황이 묻어났다.
“이 미친 새끼가!”
다른 놈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
“허억.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별로 움직인 거 같지도 않은데 마치 마라톤이라도 뛴 것처럼 지쳤다.
이겼다. 난생 처음 하는 싸움에서 쇠몽둥이 든 3명을 이겼다. 어디 가서 말하면 구라 치지 말라고 할 만큼 대단한 업적이지만... 그딴 건 관심도 없다. 지금 관심있는 건 내 상태다.
뚝. 뚝.
피가 얼굴선을 따라 흘러 턱 끝에서 방울 져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손을 올려 머리를 만졌다. 흥건했다. 땀이길 빌었지만 손을 내려 보니 피다. 시발... 뭐 이렇게 많이 흘러나와. 왼팔에 감은 겉옷으로 머리를 꾹 눌렀다. 상처가 어디에 나있는지도 모른 채 누른 건데 피가 멈출 리 없다. 피는 여전히 땅을 종착지로 머리를 출발해 얼굴선을 달려 내려왔다.
이러다 과다출혈로 죽는 거 아냐?
“시발. 기판걸 뭐하냐...”
널 믿은 게 잘못된 선택이었냐? 시간 엄청 지난 건 같은데 왜 아무도 안와 이 개새꺄.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처음 겪어보는 상태지만 이게 정신을 잃는 거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쓰러진 퍽치기단을 살폈다. 혹시라도 지금 내가 의식을 잃고 저 중 하나라도 일어나면 끝이다.
내가 안전하려면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 돼. 절대 일어나지 못할, 일어나도 아무 것도 못할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전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몽둥이가 확대라도 된 듯 눈에 들어왔다.
집어 들었다.
터벅. 터벅.
발이 천근만근 잘 안 움직였지만 천천히 놈들을 향해 움직였다. 한 놈 앞에 도착했고 쇠몽둥이를 들어올렸다.
이제 이걸 머리에 내려치면 난 살아. 그래. 그거만 하면 난 살 수 있어. 난 살 수 있어...
위~오. 위~오.
머리로 쇠몽둥이를 내리치려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손에서 힘이 풀리며 쇠몽둥이가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다리의 힘도 함께 풀려 풀썩 쓰러졌다.
경찰 사이렌 소리에 긴장이 풀렸고 억지로 쥐어짜고 있던 힘이 풀린 것이다.
살았구나.
점점 희미해져가는 시야 끝에 번쩍번쩍 빛을 내며 골목길로 들어오는 경찰차가 보였다.
-비텔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비텔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운전기사에서 비텔의 사제로 전직합니다.
스킬 ‘비텔의 귀’를 얻었습니다.
뭐야. 이건...
뭔가 알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인간 여자의 허벅지가 먹고 싶다. 어디 있지?’
‘무기가 부서졌어. 쓸만한 무기를 갖고 싶다.’
‘인간을 못 죽였어. 인간의 머리를 깨부수고 싶다. 어디 살아남은 인간 없나?’
혼란스럽다. 갑자기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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