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간침공
놓치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달린다는 행위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점점 멀어진다. 빌어먹을 우드록의 등이...
다시 한 번 내 위치를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그의 옆에서 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거다.
퓽. 퓨퓽.
석궁에서 발사된 볼트가 날아왔다. 화살이라면 무서울 것 없지만 볼트는 급소에 박히면 아무리 오크라도 위험하다. 도끼를 들어 얼굴을 가리고 팔로 심장을 가렸다. 다른 곳은 맞아도...
퍽.
“크후.”
말 끝나기 무섭게 팔에 볼트가 박혔다. 제법 충격이 느껴진다. 보니 볼트가 3분의 1정도 팔에 박혀 있었다. 화살이었다면 촉 정도만 박히고 말았을 텐데 확실히 석궁은 위협적이야.
“케흐흐흐흐! 간지럽다!!!!”
볼트는 대부분 최선두에서 달리는 우드록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볼트는 대부분 그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가끔 박히는 볼트도 나오긴 했지만 촉 끝만 겨우 박혀든 것 뿐이었다.
정말 엄청나군. 저기에 내 도끼를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궁금해졌지만 당분간은 확인할 방법이 없겠지.
팅. 퓽.
볼트 두 발이 날아와 하나는 도끼에 부딪쳐 튕겨나가고 하나는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볼트가 꽤 많이 날아오는데... 병사의 수가 많은 건가?
적 병사들이 몰려있는 목책을 주시했다. 제법 떨어져있지만 뚜렷하게 보인다. 병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많게 쳐줘도 100명이 안되어 보이는데... 석궁수는 더 적었다. 10명. 다른 병사들이 옆에서 열심히 장전을 도와주고 있었고 석궁병은 쏘기만 하고 있었다.
저러니 날아오는 볼트의 수가 많았지. 장전을 도와주는 덕에 연사가 빨랐다. 그리고 모든 볼트가 최전방에서 달리는 우리 4명에게 집중되니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가장 강한 우리 네 명이 도착하기 전에 피해를 주겠다는 생각인 것 같지만 잘못 생각했다. 대전사급의 전사가 석궁 따위에 당할 거란 생각을 하다니.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지만 현명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이기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자가 바로 족장인 우드록이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저것 때문이다.
“케아아아아아아!”
우드록이 4m는 되어 보이는 목책위로 한 번에 뛰어 올랐다. 그는 착지하며 인간 하나를 밟아 죽였고 그대로 폭풍처럼 쌍도끼를 휘둘러 순식간에 3명의 인간을 쓰러뜨렸다.
저 말도 안 되는 신체능력. 인간의 목책은 성가시다. 목책을 오르는 동안은 무방비로 공격을 당해야 하니까.
“전부 내 먹이다!!!!”
우드록이 소리쳤다. 이대로 놔두면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나조차도 저번 축복이후로 얻은 힘이라면 적어도 50명 이상의 인간 병사를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우드록에게 100명쯤이야.
하지만 그렇게 둘 수 없다.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하더라도 홀로 카록께 주시 받도록 할 순 없다. 나도 그분의 시선을 받고 싶다.
넘자. 난 할 수 있다.
“쿠아아아아아아!”
고함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고 뛰었다. 젠장. 모자라다. 내가 닿은 곳은 목책의 4분의 3정도였다. 목책에 강하게 부딪혔다.
“쿠훅.”
온힘을 다해 뛰었던 터라 제법 충격이 있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순 없지.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면 그대로 떨어질 터. 양손도끼를 든 손을 쭉 뻗어 목책 위로 올렸다. 그래도 꽤 높게 뛰었고 팔과 양손도끼 둘 다 길었기에 여유 있게 목책에 걸쳤다.
그런 나를 병사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퍽. 퍼퍽.
검이 닿는 거리가 아니기에 돌을 집어던졌다. 돌덩이가 무더기로 날아왔다. 아프지만 다른 평범한 형제면 몰라도 날 떨어뜨리기엔 부족하다. 인간 몇이 달려들어 내 도끼를 빼내려고 했지만 목책에 꽤 깊게 박혀있는데다가 무거운 내가 매달려 있기까지 한데 빼낼 수 있을 리 없지.
내 바로 위 목책에서 내가 조금만 더 올라와도 검으로 찌르려 대기하는 인간들이 보였다.
“쿠후.”
목책을 발로 차며 팔로 몸을 끌어 올려 강하게 반동을 만들어 단번에 위로 몸을 날렸다. 목책위로 떠올랐다. 검 세 자루가 날 찔러왔다. 두 자루를 무시하고 한 자루를 손으로 잡았다.
푸푹.
두 자루의 검이 몸을 파고들었고 검날을 잡은 손아귀가 베였지만 깊지 않다.
“크흐.”
웃음이 흘러 나왔다. 부상은 내가 목숨을 건 전투를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다. 손으로 잡은 검을 잡아 당겼다.
“어어?!”
손아귀가 더 깊게 베이며 인간이 딸려왔다. 당황한 채 내 품으로 날아오는 인간. 환영한다. 그대로 머리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우둑.
머리는 인간의 가장 단단한 부위 중 하나. 그 강함을 부숴 씹어 먹는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었다. 머리뼈가 부서지며 인간의 피와 살이 한 움큼 입안으로 들어왔다.
맛있다. 굶주림 끝에 베어 문 인간은 큰 뿔 누의 앞다리보다도 맛있었다.
사흘간의 이동과 굶주림이 끝났고 전투가 찾아왔다.
들고 있던 인간을 다른 인간들에게 집어던지고 목책에 박힌 양손도끼를 빼냈다. 그 사이에 잠깐의 빈틈이 있었는데도 인간들은 나를 둘러싼 채 질린 표정만 짓고 있다. 나약한 인간놈들. 형제들이라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왔을 텐데.
“케흐하!”
“구어어!”
우드록의 목소리와 빼닮은 우드락과 이름을 모르는 대전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들도 기다림 끝에 맞이한 전투에 기뻐하고 있었다. 나도 빨리 움직여야겠군. 이대론 저들에게 카륵의 시선을 빼앗기고 말겠어.
“쿠아아아!”
인간들을 향해 양손도끼를 강하게 휘둘렀다.
***
-아침 해가 떴..
턱.
“아우. 씨발. 미친 새끼.”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나 욕부터 쏟아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입안을 헹궜다. 입안엔 침밖에 없지만 더러운 느낌이 잔뜩 붙어 있다. 바로 칫솔을 집어 들었고 분노의 칫솔질 5번을 했다.
“더러운 기분이 사라지질 않네.”
빌어먹을 오크놈. 며칠은 걷기만 하면서 좀 잔잔했는데 또 이 지랄이다.
시작부터 병사의 머리를 씹어 먹더니 자기가 죽이는 사람 전부 한 입씩 베어 먹었다. 목책에 있던 병사 100명은 우드록과 그락카르를 비롯한 오크 네 놈에 의해 전부 죽었고 그 뒤에 들이닥친 천이 넘는 수의 오크에 의해 마을의 사람들 전부가 학살당했다.
그락카르 역시 그 학살극에 참여했다. 그 미친놈은 병사 몇 죽였다고 마을사람 학살에 빠질 놈이 아니지.
최악이다. 이젠 안다. 분명 그락카르가 있는 세계는 실제로 있는 세계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생생할 리 없으며 그락카르가 얻은 능력을 나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락카르와 내가 이어진 거겠지.
무슨 힘일까...는 내가 고민한다고 알겠냐. 그냥 알 수 없는 힘이겠지. 괜히 고민한다고 힘 빼지 말아야지.
보아하니 그락카르는 나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본다하더라도 신경 안 쓰는 걸 수도 있고. 그렇네. 그 오크 놈은 꿈속에서 날 본다고 해도 조금도 신경 안 쓸 놈이지.
왜 하필 그딴 오크 놈이랑 연결돼서... 오크 놈들 잡아 죽이는 인간이랑 연결시켜주지 말이야. 아니면 드워프랑. 그락카르의 마음속에 인간은 호구로 느끼고 있는데 반해 드워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꺼리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드워프가 강하기 때문이겠지.
그락카르 놈. 빨리 왕 센 드워프 만나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
“그래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그냥 아잣! 하고 발로 그냥 와닷!하니까 그놈들이 그냥 후두두두두!”
“아. 그렇군요.”
괴롭다. 내가 왜 ‘그냥’과 의성어로만 이루어진 대화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어? 내 술잔이 비었잖나. 자네 운전은 잘하는데 센스가 없군. 센스가. 윗사람 술잔이 비면 딱딱 그냥 따라야 이쁨받는 거야. 자네가 그냥 아직 젊어서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사회경험이 없어서...”
는 개뿔. 아저씨 술 그만 먹이려고 하는 거다. 여긴 한 시장에 있는 낡은 순댓국집, 내 앞에서 무한대로 소주를 흡수하며 나를 괴롭히는 아저씨. 바로 고영찬 상무다. 평소엔 과묵하게 무게 잡고 다니더니 술 들어가니깐 그냥 동네 아저씨다.
“참... 자네를 보면 나 젊을 때가 생각나. 내가 자네 나이 때 말이야. 형님이랑 그냥 우다다닷하고 뛰어다녔거든.”
또 시작이다. 내 그래서 와다닷하고 물건도 팔고 우라차차하면서 계약도 하고 후다다다다하면서 회사도 세우고 해서 지금까지 오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막 형님이 자기보고 와닷하고 회사 하나 맡으라고 했는데 거절하고 상무로 남아있는 거고요.
네. 다 압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다섯 번 들었으니까요. 이 아저씨야! 그만 좀 괴롭혀!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와닷!하고...”
“네. 네. 그렇군요. 아 그러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괴롭다...
원래는 퇴근길에 사모님이 갑자기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해서 요즘은 잘 안가지만 예전에 자주 갔었다는 순댓국집에 그걸 사러 온 것뿐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순댓국을 보니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고 해서 딱 한 병만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자리엔 빈 병 10개가 2열종대로 모여 있었다.
고 상무는 평등주의자라도 되는지 자기가 한 잔 마시면 나도 한 잔 마시게 했다. 고로 나와 고 상무는 5병씩 마신 상태. 그런데 의외로 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려운 상사와 함께 있어서 그런가?
“그런 걸 요즘 그냥 애들이 아냐고! 애들은 그냥 몰라! 내가 얼마나 그냥 고생해서 지금 위치까지 왔는지. 어떻게 그냥 자기들을 키웠는지. 모른다고!”
“아, 그렇군요. 힘드시겠습니다.”
애들 이야기는 2번째다. 그 나마 이게 낫다. 의성어가 적어서 해석하기가 편하니까.
“그래. 자네는 참 잘 컸어. 부모님이 좋아하시겠군.”
“네. 감사합니다.”
“자네를 보니까 말이야.”
이 패턴은 설마...
“그냥 나 젊을 때가 생각나는군.”
빌어먹을... 울고 싶다.
“내가 자네 나이 땐 말이야. 그냥 와다다닷하고...”
***
“잠깐 업히시겠습니까?”
“업혀? 내가 왜 업히나. 나 아직 쌩쌩해! 아직 안 늙었어!”
쌩쌩해서 네 다리로 걸으려 하시나요. 그래도 다행인건 조금씩은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 시장에 차를 댈 데가 없어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해 놨다. 10분 정도면 차 있는 데까지 갈 수 있겠지. 원래 30초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말이야.
음? 갑자기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는 골목이었는데 잠깐 고 상무에게 한눈 판 사이 나타나 나와 고 상무에게서 5m쯤 떨어진 것에 서서 우릴 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보고 있는 거야? 이상한데...
이상한 느낌에 슬쩍 뒤를 보니 두 놈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빌어먹을. 느낌이 쌔한데...
그리고 그 느낌은 맞았다. 앞에 놈이 품에서 쇠몽둥이를 꺼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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