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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7화 (7/228)

7 이어지는꿈

-아침 해가 떳습니~

턱.

눈을 감은 채 자명종을 바로 껐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내 방이다. 빌어먹게도 고맙다.

“미친 오크 새끼.”

욕이 튀어나왔다. 생긴 게 무섭고 위생관념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까진 이해했다. 그런데 사람 머리통을 부수는 것도 모자라 씹어 먹기까지 해? 그리고 그 느낌을 생생하게 내가 느끼게 해? 이 쌍판을 맷돌에 갈아버릴 새끼 같으니.

끔찍한 건 인간 고기가 맛이 좋게 느껴졌다는 거다. 오크놈의 감각을 그대로 느끼기에 그런 거란 걸 알고 있지만... 젠장. 그리고 더 끔찍한 건... 내가 꿈속의 오크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오크 그 자체가 되어 행동한다는 것이다. 분명 그 오크는 나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각은 전혀 없고 오크로서 오크답게 행동한다.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기억까지도 있다.

자의로 인간의 시체를 먹다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여하튼 이걸로 꿈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군.”

꿈은 정확히 어제 끝났던 부분에서 이어졌다. 영혼의 색을 보는 능력이 생기는 걸 보고 보통 꿈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계속 이어질지 아닐지는 긴가민가했었는데. 아니길 빌었는데 말이야.

아냐.. 덕분에 이상한 능력도 하나 생겼는데 오크 놈 계속 지켜보다 보면 영화에 나오는 초능력자가 될지도...는 개뿔. 또 사람 머리통 부수고 씹어 먹어야 할 텐데 좋기도 하겠다.

정말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다. 좋다고 사람 머리통 부수고 먹고 하다니. 그 감각이 얼마나 생생한지 꿈에서 깨도 마치 방금 전에 겪었던 것처럼 손과 입안에서 감각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덜 끔찍하기 하지만 오크 놈의 위생관념은 정말... 벌레 수십 마리가 기어 다니는 천막 안에서 그 벌레보다 더 더러워 보이는 오크들 옆에서 자고 생활한다.

다시 말하지만 오크가 됐을 땐 모른다. 하지만 꿈에서 깬 지금 그걸 떠올리면... 윽. 괜히 떠올렸다. 토할 거 같네. 어우. 사라져라. 사라져!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초능력을 얻을 기횐데 그까짓 거 못 참냐고? 내가 앞으로 얻을지 모를지도 모를 능력을 위해서 그런 끔찍한 체험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벌써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해서 뭔가 이뤘겠지.

지금도 내가 마음대로 멈출 수 있다면 당장 멈췄다. 근데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

“우잇차!”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고민을 멈추고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출근하자. 출근. 꿈은 꿈이고 출근은 출근이지.

***

7시 50분에 도착해 2시간 정도 지난 10시. 고영찬이 드디어 집에서 나왔다. 출퇴근이 자기 마음인 건 높은 분의 특권이지.

“좋은 아침입니다. 상무님.”

적당히 힘을 줘 인사했다. 인사할 땐 각도도 좋지만 목소리도 중요하다. 클 필요는 없지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야 한다. 높은 사람들은 아랫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힘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저 사람 목소리에 힘이 좀 없더라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나봐.’라고 목소리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아무리 편견을 가진 상사라고 해도 매번 목소리만으로 판단 짓진 않겠지만 100번 만나서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면 직장생활이 고달파진다. 그러니 미리미리 조심하는 게 좋지. 나처럼 고용과 해고의 모든 것이 고영찬 상무 한 명에게 달려 있는 경우엔 더욱 조심해야 하고 말이야.

고 상무가 입도 벌리지 않고 ‘음.’이란 소리 하나만 내곤 내가 열어둔 문으로 들어가 앉는다. 그래 저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동종업계 다른 아저씨들 이야기 들어보면 ‘음.’소리는커녕 볼 때마다 욕하는 인간들도 있다고 하니까.

“회사로 모실까요?”

고 상무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사로 모시겠습니다.”

룸미러로 그를 주시하고 있던 나는 그 끄덕임을 바로 캐치하고 대답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차가 멈춰 설 곳엔 내가 미리 보낸 문자를 받은 기판걸이 비서 한 명을 동행하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차를 멈추고 빠르게 내려 뒷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상무님.”

“음. 그래. 회의 준비는 어떻게 됐지?”

“네.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관련 자료를 책상에 올려뒀습니다. 그리고...”

고 상무가 회사 안으로 사라졌고 난 그제야 허리를 폈다. 이제 기다림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아무도 내게 고 상무의 다음 스케줄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있다가. ‘상무님 나가십니다.’라는 차가운 목소리의 여자 전화를 받게 되고 목적지도 고 상무가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전화 받고 5분 안에 정문에 차를 정차시킨 채 기다려야 하기에 멀리 가지도 못한다. 좀 2~30분전에 전화 주면 어디 덧나나. 똥 좀 마음 놓고 싸자.

***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몸이 뻐근해서 주차장 여기저기 걸어 다니던 중 여자의 뾰족한 소리를 들었다. 가깝다. 심심한데 뭔 일인지 가서 구경이나 하자.

아. 젠장... 현장을 보자마자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전형적인 오피스룩을 입은 20대 초중반의 여자와 작은 봉고 옆에 서 있는 50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 슬쩍 보니 봉고차엔 작은 상자 20개 정도가 실려 있었다.

“난 바로 왔어요.”

“아. 몰라요. 빨리 물건이나 날라요.”

“아. 거 참...”

개인기사가 되기 전 오전일 끝나고 뛰었던 퀵서비스에서 자주 겪었던 일이다. 난 분명 물건을 받고 바로 출발했는데도 늦었다고 욕먹곤 했다. 보통 퀵서비스 기사를 상대하는 사람들은 그 사무실의 막내. 저 젊은 여자도 사무실의 막내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린아이 혼내듯 퀵서비스 기사한테 화를 낸다. 그들에게 퀵서비스 기사는 아랫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자가 ‘빨리 안 옮기고 뭐해요. 급하단 말이에요.’라고 재촉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상자를 두 개씩 들어 승강기 앞으로 옮겼다.

퀵서비스는 차량을 이용해 물건을 배달해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원칙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만 물건을 가져다주면 되지만 대부분, 아니 모든 사람이 퀵서비스 기사를 아랫사람처럼 부려서 건물 안까지 물건을 옮기게 한다.

아저씨가 다리를 절뚝이며 물건을 옮겼다. 다리를 다친 분인가 보다. 여직원도 한 개 정도는 들어 옮길 수 있을 텐데도 감독관 역할을 하는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만 있다.

봉고차로 가 상자 옮기는 것을 도왔다. 겉옷을 차에 벗고 오길 잘했다. 일을 돕다가 더러운 게 묻어도 겉옷으로 가리면 되니까.

봉고차에 휴대용 끌차가 있다. 끌차가 있는데도 다리가 편찮은 아저씨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저 여직원이나 여기의 누군가가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일 거다. 사용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사용한다. 이렇게 힘들게 옮길 필요 없이 끌차에 올려서 끌고 가면 되는데 왜 일부러 힘들게 일하겠는가.

간혹 그런 곳이 있다. 끌차 바퀴가 승강기와 복도를 더럽힌다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곳 말이다.

“아이. 다른 사람도 있으면 빨리 와서 돕지 뭐한 거야. 급하다니까. 정말.”

그렇게 급하면 너도 도우면 되잖냐. 상자를 들고 승강기로 향하는 중 아저씨와 만났다. 아저씨는 잠깐 날 보더니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 없이 지나쳐 봉고로 향했다.

“좀 빨리 빨리 좀 해줘요. 급하다니까요. 다음부턴 다른 퀵을 쓰든가 해야지 정말.”

여직원이 채찍질을 하듯 얄미운 말로 재촉한다. 아저씨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지만 절뚝이는 다리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나도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힘이 넘친다. 상자 네 개를 2x2형태로 들고 옮겼다. 평소엔 이 정도면 힘에 부쳤을 텐데 아직 힘이 남는다. 3x2도 가능하겠는데? 아냐. 괜히 무리하지 말자. 남의 물건 혹시라도 떨어뜨리면 어떡해.

물건을 다 옮기고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승강기가 열리고 전형적인 사무실이 보였다.

“저기로 옮겨 주세요. 승강기는 계속 써야 하니까. 일단 물건 옆으로 다 빼주시고요.”

사무실엔 커피를 마시며 쉬는 직원들도 더러 보였지만 누구도 상자 옮기는 걸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들로선 이게 당연하겠지.

“다음부턴 제 시간에 오세요.”

“아. 거. 난 바로 왔다니...”

일이 끝나자 톡 쏘듯 말을 내뱉은 여직원은 아저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

아저씨가 이를 악물었다. 아저씨가 순해서 참고 당하는 것이 아니다. 아저씨의 영혼 색은 약간 붉은색이었다. 절대 순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란 거다. 그럼에도 저렇게 참는 것은 화를 내봐야 자신만 손해 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곳의 일을 잃는 것은 물론 중개소에 찍혀 다른 일을 받기도 힘들어지겠지.

방금 여직원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혼의 밝기가 밝지도 탁하지도 않은 중간정도였다. 딱히 나쁘다기보단 여기 와서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에 그걸 그대로 했겠지.

좋은 걸 배웠군. 영혼의 색은 그 사람의 행동에 100% 관여하지 않는다. 기비서도 붉은 색을 띄고 있지만 냉철한 척 하고 있지 않은가. 하긴 사람은 누구나 본심을 숨기고 사니까.

“후...”

주차장으로 돌아온 아저씨가 봉고차 옆문 열린 곳에 걸터앉았다. 잠깐 쉬었다 가려는 모양이다. 그 상자 꽤 무거웠으니까. 힘들었겠지. 고 상무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 트렁크를 열어 생수 두 개를 꺼냈다.

“드세요.”

“어... 고마워요.”

잠깐 당황하다가 생수를 받아드는 아저씨. 잠깐 생수를 보다가 뚜꺼을 따 한 모금 마시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직원 아니죠?”

“네.”

“하긴 여기 싹바가지 놈들이 날 도와줄리 없지. 근데 왜 절 도와줬어요?”

“저도 운전일 하거든요. 지금 비는 시간이고 힘도 남아돌아서 그냥 했어요.”

“아. 운전해요? 퀵? 화물?”

“예전엔 오전에 화물하고 오후에 퀵 했는데 얼마 전에 개인기사로 취직했어요.”

“어이구. 개인기사 힘들다던데. 욕하고 때리는 놈도 있다면서요.”

공통 주제가 생기는 아저씨 입의 봉인이 풀렸다.

“그럼. 한동생. 다음에 또 보자고.”

“네. 들어가세요.”

아저씨는 어차피 아침 일 끝났다면서 1시간 넘게 수다를 떨다가 갔다. 덕분에 오랜만에 업계 이야기도 듣고 시간 잘 때웠네.

이날 고 상무는 회사에서 할 일이 많았는지 점심시간에 식당에 데려다 준 것을 제외하곤 종일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퇴근 시켜준 후 나도 집으로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6시 20분이었다.

“5시간 정도 겜 할 수 있겠네.”

저녁은 점심에도 먹었던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다. 요즘은 편의점 도시락이 잘 나와서 정말 좋다. 편의점마다 종류도 다 달라서 골라먹는 재미까지 있다니까.

“오늘은 제발 점수 좀 올리자.”

39점이 뭐야. 39점이. 일생일대의 치욕이다. 어느 게임을 해도 상위 20% 안에 들었던 내가 하위 20%에 끼게 되다니. 자존심상 절대 인정 못하지.

아자! 가자!

5시간 후.

“훗. 후후후훗. 그럼 그렇지.”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나보다. 아침에 짐 나를 때도 힘 남아돌더니 게임도 잘 돼서 10연승을 하며 46점까지 올릴 수 있었다.

한껏 업 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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