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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5화 (5/228)

5 이어지는꿈

붉은 안개가 전부 내게 흡수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 전신에 가득함 힘이 느껴졌다.

강해졌다. 그분의 시선을 받는데 성공한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축복을 받는 것까지 성공했다.

“크흐. 크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즐겁다. 너무 즐겁다. 암컷과 교미할 때보다도 더한 쾌감이 번개처럼 전신에 몰아쳤다. 내 5년 인생 중 이보다 더 한 충만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덩치도 상당히 커졌다. 눈에 보이는 팔다리몸통이 붉은 안개에 휩싸이기 전보다 훨씬 두꺼웠다. 바닥도 제법 멀고... 거의 2~30%는 커진 건가.

“그락카르.”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살아남은 형제들이 주변에 모여 있었다. 꽤 가깝다. 평상시라면 이 정도로 가까워지기 훨씬 전에 알아차렸을 텐데 카록의 축복을 받았다는 희열에 너무 빠져 있었다.

“왜 그러나.”

“명령을 내려다오. 형제.”

아. 그렇군. 우리 오크는 나약한 인간과 계급 체계가 다르다. 오크의 계급 체계는 오로지 강함. 자부심 강한 오크 전사가 자기보다 약한 오크의 말을 들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모인 오크 전사 중 가장 크고 강한 오크가 지휘를 맡는다. 여기 모인 형제들 중엔 내가 가장 크고 강했기에 형제들을 이끌고 있었다.

카록의 축복을 받은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형제들의 머리가 내 겨드랑이 근처밖에 오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여기 대장은 나다.

형제들을 살폈다. 몸이 성한 자가 거의 없다. 곧 죽을 것 같은 형제도 몇 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 봐야 얼마 수행하지 못하고 카록의 곁으로 가겠지만 그들을 빼놓을 순 없다. 그건 형제들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오크 전사는 죽기 직전까지 전투를 위해 움직인다. 오크 전사가 전투 관련 일에 참여하지 않을 때는 죽었을 때밖에 없다.

“살아있는 인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살아있다면 죽여라. 그리고 인간의 장비를 벗겨 가질 수 있을 만큼 가져라. 형제들이여.”

“알았다. 형제.”

인간의 장비는 유용하다. 인간이 사용하던 그대로 오크가 사용할 수는 없지만 본진에 가져가면 장인들이 오크가 쓸 수 있는 장비로 변형시켜준다. 아니면 장인에게 건네주고 원하는 장비를 집어올 수도 있다.

나도 인간의 장비를 챙겼다. 새로운 장비를 구하려면 장인에게 가져다 줄 것이 필요하니까. 도끼를 바꾸고 싶다. 이전에 쓰던 도끼는 이번에 덩치가 커지면서 너무 작아졌다. 원래 양손도끼로 쓰던 것이 한손도끼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가능하면 방어구도 구하고 싶지만 급하진 않다. 덩치가 커지면서 가죽도 더 두꺼워졌을 테니 웬만한 인간의 검은 내 몸에 상처를 남기기 힘들 것이다. 작은 주제에 힘세고 좋은 무기를 들고 있는 드워프라면 몰라도 말이야. 우리가 향하고 있는 우드록의 부락 근처엔 드워프가 없으니 당분간은 신경 쓸 필요 없겠지.

다짜고짜 인간의 목을 도끼로 내려쳐 잘라냈다. 숨이 붙어있는지 확인하는 것보단 그냥 목을 자르는 것이 편하다. 목이 잘리고도 살아남는 인간은 없으니까. 인간의 갑옷을 벗기고 안에 입고 있는 옷을 벗겨 길게 찢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쭉한 천에 검과 갑옷을 엮었다. 나름 전투를 겪으면서 얻은 노하우다. 이렇게 줄줄이 엮으면 한 번에 많은 장비를 들고 움직일 수 있다.

풀썩.

인간의 장비를 회수하던 형제 하나가 쓰러졌다.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형제 중 하나다. 다가가 확인해보니 숨이 끊어져 있었다.

“잘 가라. 형제여.”

도끼를 들어 그의 몸에 상처를 하나 만들어줬다. 다른 형제들도 하나 둘 다가와 자신의 무기로 그의 몸에 상처를 만들었다. 전투외의 상황에서 죽은 오크 전사는 카록의 눈에 띄기 힘들기에 카록께 조금이라도 눈에 들라는 의미에서 상처를 만들어준다.

죽은 형제가 모으던 인간의 장비는 내가 챙겼다. 뭐라 하는 형제는 없다. 난 형제들 중 가장 강하기에 이게 당연한 일이다. 형제 한 명이 더 죽고 나서야 인간의 장비를 챙기는 일을 끝냈다. 나까지 합쳐 남은 오크 전사의 수는 일곱. 일곱이 최대한 챙겼지만 300명의 인간 중 100명분의 장비도 챙기지 못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오크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더 짊어질 수 있지만 인간의 장비는 부피도 꽤 크다.

“가자. 형제들. 우드록의 부락으로.”

***

“그걸 혼자 끌고 온 건가. 형제?”

“그렇다. 형제여.”

“덩치만큼 대단하군.”

우드록 족장의 부락에 오자마자 들린 장인의 천막에 들렸다. 내가 가져온 인간장비의 양을 보고 장인 형제가 놀랐다. 놀랄 만도 하다. 우드록의 부락으로 오는 중 한 명의 형제가 더 쓰러졌고 그가 짊어지고 있던 인간의 장비까지 내가 들고 왔으니까. 짊어지기엔 부피가 너무 커 땅에 질질 끌고 와야 했을 정도다.

“쓸만한 도끼가 필요하다.”

“들고 있는 것을 보면 한손 도끼가 필요한 건가?”

“음...”

잠시 고민하다가 들고 있던 도끼를 인간의 장비가 모여 있는 곳에 던졌다. 3년 전 태어난 부락을 나올 때 받아 지금까지 쓴 도끼다. 오랜 세월 사용했기에 제법 정이 들었지만 지금의 내가 쓰기엔 너무 작다. 처음에 들었을 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도끼였는데 말이야. 3년 동안 덩치가 조금씩 커져 이번 전투 전까지는 제법 쓸만했는데 이번 전투에서 내가 너무 커져버렸다.

“양손도끼가 필요하다.”

“그렇군. 흠... 그래. 저게 있었군. 저건 어떤가.”

장인이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날은 내가 쓰던 것보다 조금 크지만 자루는 2배 이상으로 긴 도끼가 하나 있었다.

“나약한 인간들이 쓰는 창에 도끼를 올려놓은 것 같은 무기군. 저러면 내 힘과 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지 않겠는가.”

좀 못미덥다. 인간의 창은 전에 쓰던 도끼도 막지 못하고 뚝뚝 부러지던 불량품 아니던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3달 동안 염원을 담아 두들긴 놈이니까. 저 안에 압축되어 들어간 재료만 해도 형제가 가져온 것의 반은 될 거다. 원래는 족장에게 주려고 만든 무기였는데 족장이 다른 놈이 만든 무기를 선택해서 말이야.”

장인이 3달이나 두들겨 만들었고 내가 가져온 거의 반이나 되는 양의 재료를 썼어? 거기에 족장에게 줄 무기였다니. 오크 장인이 어떻게 무기를 만드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간과 재료를 많이 들일수록 좋은 무기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탐난다. 족장이라면 이 부락에서 가장 강한 전사다. 그런 전사가 쓸 예정이었던 무기라니. 갖고 싶다.

“족장 다음가는 형제에게 주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미래가 기대되는 어린 형제라면 장차 더 강한 전사가 되어 내 무기를 잘 써줄 수 있겠지.”

“난 어리지 않다. 난 전사다.”

“그래. 네가 전사란 건 안다. 형제. 하지만 아직 10살이 안 된 것 같은데.”

“.....”

“10살이 안 된 전사가 그 정도 덩치라면 미래가 기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어떻게 알았지. 내가 어린 게 티가 나나? 다른 나이든 전사에 비해 몸에 난 상처의 크기와 개수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10살이면 실제보단 더 잘 봐줬다. 난 5살이니까.

“써주겠는가. 강한 그리고 강해질 형제여.”

‘써주겠는가.’라니. 쓰게 해달라고 빌고 싶을 정도다.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저 무기는 형제의 것이네. 가져가게.”

다가가 집어 들었다. 묵직하다. 전에 쓰던 도끼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데도 무게가 적어도 4~5배는 더 나가는 것 같다. 날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 두껍고 질긴 내 가죽도 살짝 대는 것만으로 갈라질 것 같다. 이런 무기를 온힘을 담아 휘두르면 인간 검병따위는 방패와 함께 두 동강 날 것이다.

자루를 두 손으로 잡아보고 한 손으로 잡아보고 위도 아래도 잡아보는 등 여러 방법으로 잡아봤다. 단단하다. 툭치면 부러질 것 같다는 생각은 내 편견이었다. 이런 자루라면 전에 쓰던 도끼를 들어 수십 번 내려쳐도 끄떡없을 것이다.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단연코 내 5년 인생에서 본 적 없는 최고의 무기다.

“대단한 무기다. 고맙다. 형제.”

고맙다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전사는 쉽게 고마움을 표해선 안 된다. 고마움을 표한다는 건 은혜를 받았다는 뜻이고 전사는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하니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갚아야 될지 알 수 없는 빚을 남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이런 무기를 받고 갚지 않는다면 전사가 아니다.

“쿠후. 미래의 대전사에게 빚을 지우다니. 오늘 큰 이득을 봤군.”

“대전사가 아니다.”

“음?”

“난 대족장이 될 것이다.”

“대족장? 쿠훅! 쿠후후후후후훅! 그래. 노릴 것이라면 대족장을 노려야지. 미안하군. 형제. 내가 형제를 너무 낮게 봤어.”

전사 위의 대전사, 대전사 위의 족장, 족장 위의 대족장... 모든 오크 위에 군림하는 대족장. 즉, 오크 중 가장 강한, 아니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전사. 난 그렇게 될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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