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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3화 (3/228)

3 능력전이

화창한 날씨. 쨍쨍한 햇빛.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다. 아까 지나가다가 발견한 공원으로 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아. 달다.”

공기 중으로 퍼지는 담배연기. 군대에서 사과맛이 난다는 선임병의 말에 속아 피기 시작한 담배는 6년 만에 정말 사과맛이 난다고 느낄 정도로 익숙해졌다. 특히 오전 내내 한가치도 태우지 못하다가 겨우 시간이 나서 피는 담배맛은 진짜 사과보다도 더 맛있다.

“저기. 아저씨.”

“네?”

“아이들이 노는 공원인데 담배는 좀... 다른 곳에서 피우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황급히 담배를 밟아 껐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주머니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불을 끈 담배꽁초를 집어 들자 그제야 아주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 담배필 수 있는 공간 없나. 요즘은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라 말이지. 여기 공원도 딱히 흡연구역이 보이지 않는다. 젠장. 조선시대 노비보다 천대받는 흡연자 같으니.

“엄마. 근데 저 아저씨는 회사 안가? 아빠는 회사 갔는데.”

5~6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내가 정말 백수였다면 상처받았을 말을 쉽게 한다. 너 나이 들면 남자 여럿 울리겠구나. 그런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당당한 직장인. 그 정도 말에 상처는 받지 않는다.

“쉿. 그런 말 하면 안 돼.”

아주머니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조용히 속삭인다. 마치 나한테 들리면 큰일 날것처럼.

“그런 말은 당사자 앞에서 하면 상처가 되요. 아마 직장을 구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잘 안 되시나봐.”

자기 딴에는 조용히 안 들리게 말한다고 하는데 다 들린다. 이 아줌마야. 나 백수 아니거든! 이 아줌마 말하는 걸 보니 날 백수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왜? 왜 상처가 돼?”

돼 이 어린것아! 요망한 것 같으니. 그 뒤에 아이의 엄마가 또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좀 멀어져서 대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에이. 하긴... 내가 있는 곳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 낮의 공원.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내 또래의 남자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이 노인 분들이나 아이를 동반한 아줌마들. 그것도 아니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인솔해 나온 유치원 교사들뿐이다.

공원 주변을 천천히 돌고 계시는 노인분 중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곤 혀를 차시는 분도 더러 있었다. 아따. 내가 놀든 말든 내 사정인데. 왜들 그리 신경 쓰는 건지.

하긴... 검은 양복 정장을 입고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담배피우고 있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취직 면접 나갔다가 잘 안 되서 마음을 달래고 있는 불쌍한 녀석으로 보이겠지.

에이. 한 모금밖에 못 피웠는데 내가 끄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남 때문에 끄게 된지라 더 흡연생각이 간절해진다. 어디 흡연공간이 없나 싶어서 공원 여기저기를 기웃 거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흡연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망할 정부 같으니. 흡연자는 공원도 오지 말라는 건가. 왜 흡연공간이 없는 거야. 젠장. 진짜 서러워서 담배를 끊든가 해야지.

담배를 못 피니. 입이 심심하다. 밥이라도 먹을까? 그래. 나 버리고 식당 간 그 인간들 밥 먹고 있을 텐데 나도 밥 먹어야지. 밥이나 먹자.

공원 입구 쪽으로 가니 간단한 분식집과 카페, 칼국수 가게가 있다. 저쪽에 도로가 있던데 그쪽으로 나가면 더 다양한 음식점이 있겠지만 거기까지 나가는 게 귀찮다. 곧 돌아가야 할 텐데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그 도로 반대방향에 있거든.

잠깐 고민하다가 분식점에서 김밥 두 줄 사서 다시 공원으로 들어갔다. 카페나 칼국수 가게에서 먹으면 좀 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만 옷에 냄새 밸까 걱정 된다.

김밥을 사와 공원에 있는 식탁처럼 이용할 수 있는 긴 테이블이 있는 곳에 가 앉았다. 그리고 김밥을 꺼내 먹으려고 하니 갑자기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다.

만약 지나가다가 나 같은 사람을 내가 본다 해도 불쌍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처량한 모습이다. 정장을 쫙 빼입고 공원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다니.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 않나. 그것도 불쌍한 쪽으로 말이다.

‘젠장. 그냥 분식집 앞에 서서 먹고 올걸.’

혹시나 떡볶이 냄새 같은 것이 옷에 밸까봐 걱정 되서 사온 건데 그 결정이 후회가 됐다. 그렇다고 사온 걸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냥 한 번에 두 개, 세 개씩 집어먹었다. 급하게 먹었더니 목이 멘다. 분식집에 가 물 한잔 부탁해서 먹었더니 그제야 목에 걸린 김밥들이 내려간다. 너무 급하게 먹었더니 맛도 모르겠다.

“아우씨. 아직도 30분이나 남았어.”

김밥을 다 먹었음에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 정말 더럽게 안 가네. 사람 구경이나 하며 시간 때워야겠다.

연한 파랑, 연한 빨강, 하양, 하양, 하양... 오. 저 꼬마는 조금 붉긴 하지만 완전 밝네. 그래. 아이는 저래야지.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하겠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거다.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보고 있는 것이 평범한 관찰과는 다른 점이지만.

그렇다. 난 영혼이 보인다. 착각이 아니다. 정말 보인다. 영혼은 마치 오오라처럼 사람을 감싸고 빛나고 있다. 영혼이 완벽하게 보이는 건 아니다. 그저 색과 밝기가 보일 뿐. 그래도 그것들만 봐도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색은 성격을 나타낸다, 파랄수록 냉정하고 붉을수록 열정적인 성격이다. 하얀색은 당연히 중간이지. 밝기는 업보? 카르마? 뭐라 지칭하기는 힘들지만 여하튼 착할수록 밝고 나쁠수록 어둡다는 건 확실하다.

이 능력은 오늘 아침 갑자기 생겼다. 절로 생긴 건 아니고 꿈에서 받았달까? 꿈속에서 난 오크가 되는데 그 오크가 신에게서 어떤 스킬을 받았다. ‘카록의 시야’라는 걸 말이다. 그 스킬의 효과가 바로 영혼의 색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그걸 나도 쓸 수 있었다. 꿈속의 오크가 얻은 능력을 말이다.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덕분에 출근길에 얼마나 놀랐는지. 갑자기 사람들 영혼의 색이 보이는데 처음엔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으니까. 곧 꿈속의 오크가 받은 스킬이란 걸 알게 됐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효용을 갖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 그냥 알게 됐다. 별다른 걸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도 이 능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별다른 효용을 느끼진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들 성격이나 쌓아놓은 업보를 보는 건 재미있다. 남들은 못보고 나만 볼 수 있는 거니까.

어우. 저 사람은 엄청 붉네. 건드리면 바로 주먹 날아오는 거 아냐? 급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 마주치지 말자. 괜히 시비일면 나만 손해다.

지나가는 사람들 영혼의 색을 보면서 겨우겨우 30분을 때웠다. 정말 이 일은 다 좋은데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공원을 나가 현대적인 건물 사이에 홀로 고고하게 지어져 있는 한옥 옆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 한옥이 내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들어간 음식점이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에서 겨우 한 층짜리 넓은 한옥을 음식점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비싼 고급음식점이라는 증거다. 나 같은 서민은 김 한 장 먹는 것도 부담이 될 정도로 비싼 곳. 주차장은 또 얼마나 큰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주차하는 일은 전혀 걱정 없을 것이다.

검은색 세단을 향해 걸어갔다. 엄청 비싼 차다. 세단, 세단하면 그냥 비싼 차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웬만한 지붕 있는 차는 전부 세단이다. 비싸든 싸든 말이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이 세단은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 정말 비싼 차다. 애초에 차량도 비싼 차량인데 옵션도 풀옵션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풀옵션 말이다. 저게 내 차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차였으면 바로 중고로 팔아버리고 가게하나 차렸을 텐데 말이야. 아마 편의점 2개정도는 차릴 정도의 돈이 생기지 않을까.

차 트렁크를 열어 먼지떨이를 꺼내 차 구석구석을 닦았다. 내 차라면 귀찮아서 안 닦을 텐데 남의 차라 열심히 닦아야 한다. 그러라고 돈 받는 거니까. 아. 이 광나는 거 봐. 역시 난 일 정말 열심히 한다. 이시대 사회인의 제대로 된 본보기라고 할 수 있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살면 아마 세상은 10배는 더 좋은 세상이지 않을까?

차문을 열어 조금이나마 탁해졌을 차안을 환기해주고 과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나는 방향제의 뚜껑을 열었다. 뒷좌석에 있는 생수 뚜껑이 따졌는지 확인했다. 새거다. 생수는 갈아놓을 필요 없겠다. 트렁크에서 미니 청소기를 꺼내 차안을 청소했다.

완벽하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운전석에 앉아 이 차의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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