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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더 오크-2화 (2/228)

2 링크

달리며 가볍게 전장을 살폈다. 대충 보아도 인간의 숫자는 우리 오크의 3배. 많다. 인간은 우리 오크와 달리 승산이 없다 싶은 전투는 하지 않는 비겁한 종족이다. 우릴 선제공격한 것은 이길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잘하면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겠군.

후퇴할까?

음?!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후퇴는 겁쟁이들이나 하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속으로 생각한 것뿐이지만 자랑스러운 오크 전사로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쿠워어어어어어!”

부끄러움과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용납할 수 없다. 분명 머리를 다쳐서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고선 내가 그런 생각을 할리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무리 다쳤어도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다니.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게 분명하다. 큰 부상에 순간적으로 착란을 일으킨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강하게 소리쳤다.

“난 오크족 전사 그락카르! 형제들! 내가 전장에 합류한다!!”

잠깐 추태를 보였지만 난 이 부대의 최고 덩치를 가지고 있다. 즉, 가장 강한 전사로서 이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전장에 합류함을 알면 형제들이 더 힘을 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인간을 목표로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 도끼 손잡이를 잡고 온힘을 다해 휘둘렀다. 내 목표가 된 인간 검병이 이를 악물고 방패를 들어올렸다.

“쿠워어!”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감히 내 도끼를 인간 따위가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콰직!

“크윽!”

도끼가 그대로 방패를 강타했다. 방패가 반쯤 부서졌고 인간은 도끼에 실린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넘어진 인간 앞에 서 도끼를 들어올렸다. 인간은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연하다. 감히 내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으니 인간의 나약한 몸이 고장 났겠지. 팔이 부러졌을 거나 그에 준하는 부상을 입었을 터.

그대로 무방비한 인간의 머리통을 쪼갰다. 도끼가 머리를 가르는 느낌이 손을 통해 머리까지 전해졌다. 흥분된다. 전투다. 곧바로 다른 인간을 향해 내달렸다.

하나... 방패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그대로 허벅지와 얼굴을 쿵쿵 세게 밟고 앞으로 뛴다. 일반 오크도 인간보다 2배는 무겁다. 오크 중에서도 큰 덩치를 자랑하는 나라면 3배는 되겠지. 그런 내가 세게 밟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나약한 인간은 치명상을 입는다.

둘... 앞에 있던 자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 상상을 못했는지 방패만 들고 멍청히 서 있는 인간을 어깨로 들이 박았다. 인간은 급히 방패를 들어 막긴 했지만 나약하고 가벼운 인간이 자세도 잡지 못한 채로 내 차징을 견뎌낼리 만무하다.

인간은 방패를 내민 채 그대로 허공에 붕 떠 뒤로 날아갔다. 충격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머리를 전의 녀석과 마찬가지로 밟고 지나갔다. 방금 전보다 더 힘을 주어 밟았더니 콰직하고 머리뼈가 부서졌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머리를 부수는 감촉이 날 더 흥분시켰다.

셋... 이번엔 앞서 죽인 세 명의 멍청한 인간과 다르게 방패로 막으려 하지 않고 검을 내밀어 내 목을 향해 찔러왔다.

그래 앞선 인간들보다는 현명하다. 힘에서 크게 차이나는 인간주제에 오크를, 그것도 일반 오크보다 강한 내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려면 적어도 5~6명은 합심해야 할 거다. 그러니 혼자 있는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거 공격을 해서 내 몸에 생채기라도 내려 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공격이 꽤 날카롭다. 다른 형제였으면 위험했을 것이다. 다른 형제였다면 말이다. 나에겐 소용없지. 오른팔을 안에서 바깥쪽으로 휘둘러 검을 튕겨냈다. 팔이 검에 베였지만 상관없다. 두껍고 질긴 가죽 덕에 상처는 깊지 않다.

내가 검을 강하게 튕겨낸 바람에 인간은 균형을 잃었고 그의 오른 반신이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다. 그대로 도끼를 든 왼손을 휘둘러 목을 쳐냈다.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하늘로 튀어 올랐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떨어진 인간의 목을 주워들었다. 앞서 죽인 인간들보다 색채가 화려한 장비를 걸치고 있는 걸 보면 제법 높은 직급의 인간이다. 머리를 그대로 인간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기겁하며 물러나는 인간들의 모습이 우습다.

“그워어어어어어어!”

양팔을 벌려 고함을 질렀다. 여기저기서 답하는 형제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방금 베인 오른팔의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손바닥에 묻혀 얼굴에 문질렀다.

그래. 이거다. 따뜻한 피를 얼굴 가득 바르니 더더욱 고양된다. 온몸이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 고양감. 투신 카록께서 날 지켜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카록께 내 용맹함을 증명하겠다!”

다시 달렸다. 진형이 붕괴되어 한둘 씩 흩어져 있는 인간들은 그냥 지나쳤다. 홀로 떨어진 인간은 나약하다. 저런 나약한자들을 죽여 봐야 카록께 나를 증명할 수 없다. 내 목표는 그들의 뒤에서 여전히 진형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의 무리다.

인간은 뭉칠수록 강해진다. 다닥다닥 붙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방패를 내밀고 있으면 아무리 오크라고 해도 막힌다. 그리고 사방에서 찔러오는 수십 개의 검은 아무리 질기고 단단한 오크의 가죽이라고 해도 뚫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몸을 던져 강한 적에게 부딪친다. 오크의 수는 수십만이다. 그 많은 오크 중에서 카록의 눈에 띄는 오크가 되려면 평범한 전투만으론 안 된다.

점점 인간무리가 가까워진다. 수십의 방패와 검이 모여 있다. 가까워질수록 강렬한 기세가 날 압박했다. 온몸이 조이는 이 느낌,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크워어어어어!”

내 도끼가 하나의 방패처럼 뭉쳐있는 수십의 방패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방패의 벽은 잠깐 움찔하며 흔들렸지만 곧 다시 오미조밀 뭉치며 견고해졌다. 그리고 방패의 벽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검들. 내 몸을 찌르고 스쳤다. 순식간에 대여섯 개의 상처가 몸에 아로새겨졌다.

“크흐...”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위험하고 아프지만 흥분된다. 즐겁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지만 강렬한 죽음이 있는 곳에 그분의 시선이 있다. 카록이시여. 날 보십시오. 당신의 피조물, 당신의 아들, 당신의 전사가 당신께 강렬한 전투를 바치겠나이다.

“그아아아아아아아!”

다시 도끼를 휘둘러 방패의 벽에 부딪혀갔다. 여전히 단단하다. 나 혼자서 저 견고한 벽을 부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주변 가까운 곳에서 형제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나를 보고 불이 붙은 것이다. 그들도 카록의 시선을 받기 위해 사는 전사들. 죽음이 두려워 그분의 시선을 받는 것을 피하는 형제는 없다.

쾅! 쾅! 쿵! 쾅!

방패의 벽에 부딪히는 형제들의 도끼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방패의 벽이 크게 출렁였다.

***

“크후... 크후... 크후...”

숨 가쁘다. 몸에 박혀있는 검만 4개에 곳곳에 난 상처는 거의 백에 달했다. 흘린 피가 웅덩이를 이뤘고 도끼를 든 팔이 덜덜 떨렸다.

죽겠지.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오크, 그 중에서도 강인한 몸을 가지고 있는 나라고 해도 이정도 상처에 이정도 피를 흘렸는데 살아남는다는 건 힘들다. 하지만...

“크흐..”

웃음이 나왔다. 즐겁다. 오늘의 나는 용맹했다. 형제들도 용맹했지만 난 그보다 배 이상은 용맹했다. 가장 앞에서 인간의 검을 받아냈고 가장 앞에서 인간의 방패를 두들겼으며 가장 많은 인간을 죽였다. 그리고 이겼다.

300명이 넘는 인간이 시체가 되어 초원에 누워 있었다. 비록 나약한 인간들이지만 그들은 용맹하고 강했다. 남은 형제들의 수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남은 형제의 수는 열이 안됐다. 처음에 100명 정도 있었으니 이번 전투로 90명 이상의 형제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남은 형제들 중의 반 이상이 죽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쁘다. 강력한 적을 맞이해 물러남 없이 돌격해 승리했다.

“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폐부 깊은 곳에서 올라온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얼마 남지 않은 형제들이 답해왔다.

먼저 간 형제들은 분명 카록의 곁으로 갔을 것이다. 그들은 용맹했으니까. 그리고 몇몇 형제도 곧 카록의 곁으로 가겠지. 나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난 카록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겠지. 그래서 즐겁다. 살아서 전투를 하는 것도 즐겁겠지만 죽어 카록의 곁으로 가는 것 또한 즐겁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절대 무릎 꿇지 않았다. 곧 카록께 갈테니 당당한 모습으로 그분을 뵙고 싶다. 무릎을 꿇는 것은 그 후다.

“그락카르! 그락카르!”

“그락카르! 그락카르!”

형제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왜 그러지? 내 용맹함을 보아서 그런건가?

“카록의 선택을 받은 그락카르!”

카록의 선택을 받아? 카록의 선택이라면... 급히 고개를 내려 몸을 살폈다. 붉은 안개 같은 것이 조금씩 피어나 내 몸을 감싸하고 있었다.

“크흐.”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카록께선 아직 내가 지상에 남아 그분을 즐겁게 할 전투를 하길 바라시는 모양이다. 붉은 안개는 점점 짙어져갔고 곧 내 몸을 완전히 감싸 밖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카록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오크 전사에서 빅 오크 전사로 승급했습니다.

스킬 ‘카록의 시야’를 얻었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록의 전언이다. 카록의 축복이 내려질 때 전령이 그분을 대신해 말을 전해주는 것이다. 죽어 그분께 간 오크 중 그분께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 맡는 영광스런 역할이다. 나도 나중에 이 역할을 맡겠지.

느껴진다. 붉은 안개가 조금씩 내게 흡수되기 시작했고 몸에 박혀 있는 검이 밀려나 바닥에 떨어졌다. 상처들이 아물어갔으며 조금씩 몸이 커졌다. 큰 신체는 강함의 척도. 난 강해지고 있다.

“그아아아아! 나 오크 전사 그락카르! 카록의 축복을 받았다!”

흥분으로 점철된 기쁨의 고함을 터뜨렸다. 형제들이 축하의 함성을 질러주었다.

***

-아침 해가 떳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명종소리와 함께 한상이 눈을 떴다.

“빌어먹을.”

거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지랄 맞은 꿈을 연달아 꾼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끝났던 부분에서 바로 이어서 말이다.

“뭐 이딴 꿈이 다 있지?”

오크로서 느꼈던 희열이 잠에서 깬 지금도 느껴졌다. 마치 꿈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평생 이런 꿈은 또 처음이네.”

한상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왔다. 여유가 있다면 꿈의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좀 쉬겠지만 그런 시간이 없다. 한상은 출근 준비를 하며 조금씩 여운을 떨쳐냈다.

여느 남자나 그렇듯 5분만에 씻는 걸 완료한 한상은 대충 옷을 집어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아우씨. 깜짝이야.”

사람들 몸에 둘러져 있는 파랗고, 빨갛고, 하얀 빛을 보곤 깜짝 놀랐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헛것까지 보는 건가...”

한상이 눈을 비비고 다시 사람들을 살폈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빛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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