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 리 4-Chapter. 1 (17/21)

로터스 리 4

4

파인애플덤플링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외전 조슈아 카스티요 1

Chapter. 5 외전 조슈아 카스티요 2

Chapter. 1

“이번엔 비싼 거 사주려고 했더니.”

킹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샌드위치에서 빠져나온 채소를 입으로 크게 베어 물었다.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살 거 같았다. 가장 빨리 나오는 건 호텔 근처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였다. 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입구에서 뛰듯이 가면 금방 도착하는 곳이었으니까.

엄마랑 종종 왔었다. 엄마는 절임 채소를 모두 빼 버렸기에 나 또한 모든 절임 채소를 빼, 생채소만이 샌드위치 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거창한 거 기다릴 기운이 없어.”

“먹은 게 왜 없어. 가득 먹여줬는데.”

킹의 발끝이 내 종아리를 교묘하게 스쳤다.

“나 배고파.”

허튼소리 그만하고 닥치란 뜻이었다. 하지만 킹은 너무나 제멋대로여서 내 말 역시 원하는 대로 해석했다.

“응, 이따 더 먹여줄까?”

“배고프다고.”

양발로 킹의 발을 꾹 눌러 고정했다. 그리고 다시 샌드위치를 한입 물었다. 킹 역시 허기가 지긴 했는지 샌드위치의 포장을 까 한입 베어 물었다. 샌드위치 반쪽이 킹의 입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는 동안 만큼은 조용할 수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어 치우고 또 다른 것을 까 다시 입에 물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허기가 졌다.

킹과 나 모두 정장을 입은 채로 좁은 샌드위치 가게의 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나 먹는 것이 걸맞은 일은 아니었지만 허기는 모든 것을 잊게 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칠리의 맛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이니까. 킹은 세 입만에 샌드위치를 먹어 치우고는 또 하나를 집어 올렸다. 킹 역시 배고플 게 분명했다. 한참 뒹굴었으니 말이다. 으, 소파. 찝찝해서 거기에 또 어떻게 앉지? 아 저번에도 뒹굴었구나. 상관없겠다.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니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퐁퐁 떠올랐다. 먹는 속도가 점차 느려져, 샌드위치를 다 먹은 킹이 팔꿈치를 탁자에 올리고 손에 턱을 괴어 날 바라보았다.

“여보는 뭐든 잘 먹네?”

대꾸하지 않았다. 입에 음식물이 있기도 했지만 왠지 킹이 개소리를 할 것 같아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킹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지껄였다.

“이 구멍으로도 잘 먹지만 역시 다른 구멍으로는 더 잘 먹는 거 같아.”

킹이 내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핥아 주면 닥친다고 했잖아.”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낮게 말하자, 킹은 냅킨으로 내 입가를 닦으며 또 입을 열었다.

“계속 핥아줘야 입을 다물지.”

그리고 킹이 혀를 내밀었다. 붉고 축축했다. 잇자국은 사라져 있었다. 엄지로 꾹 눌러 잡았다.

“이제 좀 조용히 해.”

다시 샌드위치를 씹었다. 킹은 혀가 붙들린 채로 가만히 있더니, 혀를 입 안으로 당겼다. 그 탓에 혀를 잡고 있던 내 손가락 역시 킹의 입 안으로 들어가 온통 축축해졌다.

킹은 내 엄지와 검지를 모두 입 안에 담고 빨았다. 킹의 치아에 손가락이 스쳤고 혀가 지문을 문질렀다. 그리고 어금니로 내 손가락을 씹기 시작했다. 거슬리긴 했지만 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빼낼까 싶었지만 식사를 하고 싶었기에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려주듯,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킹에게 손가락을 물려줬다. 그리고 마지막 한입을 먹은 후에야 손을 빼냈다. 엄지와 검지는 침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냅킨으로 닦아 내니, 황토색 냅킨이 갈색으로 짙게 물들었다.

“맛있네.”

정작 막 식사를 끝낸 건 나인데, 킹이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에 생긴 흰 잇자국을 바라보다 반대 손으로 비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냥 그랬어.”

다 먹어 치워 놓고 불만을 던졌지만 타박하는 이는 없었다. 매장을 나서니 벌써 5시를 앞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샌드위치 가게의 근처엔 마침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면 우리 집까지 돌아 돌아 도착했다. 좀 오래 걸릴 게 분명했으나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 앉을 자리는 있을 게 분명했다. 버스정류장으로 하나둘 도착하는 버스를 가리켰다.

“오늘은 버스 타고 갈게.”

“데려다줄게.”

킹이 은근슬쩍 손을 붙잡아 왔다. 킹의 손가락에서 손을 슬그머니 빼내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어제처럼 외딴곳 데려가서 개수작 벌이게?”

웬 이상한 곳까지 데려가서 씻고 나오니 12시를 목전에 둔 시간이었다. 오늘은 일찍 가서 쉬고 싶었다.

“곧바로 여보 집으로 모셔다 줄게, 응?”

킹은 다시금 내 손을 붙잡고 손등에 뺨을 대고는 아양을 떨 듯 말했다. 연약해 보이는 말투였지만 그 손아귀 힘은 대단해서 도무지 빠지질 않았다.

“아, 버스 타면 된다니까.”

내친김에 손등에 입까지 맞추는 꼴을 보자니 손을 제발 빼내고 싶었다. 킹은 드디어 손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킹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치만 여보, 지갑이랑 휴대폰 다 놓고 왔잖아.”

버스비를 낼 모든 수단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만 겨우 걸쳐 입고 온 것이다. 킹 때문이었다. 짜증 나 대강 노려봤지만 킹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킹은 문신을 가린 시계를 풀어 끌어내리며 그 안쪽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바래다줄게.”

거절하고 싶었지만 휴대폰도 지갑도 없는 내가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걸어 몇 시간 뒤에 도착하든가, 킹의 차를 타는 것이었다. 물론 후자가 더 빨랐으니 그쪽을 선택했다. 킹은 나를 이끌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저번에 탔던 그 차인가? 그러고 보니 이곳에 킹의 차가 두 대나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서 살아?”

차가 더 될 수도 있지만 서민적 사고방식을 가진 나로서는 차를 주차하는 곳은 집이어야 했다. 킹이 힐끗 날 돌아보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긴 하지만 그건 본래의 입 모양 탓이었다. 킹의 기본 표정은 저런 무표정이 맞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킹은 다시금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왜, 우리 집으로 갈까?”

또 수작질이었다.

“여기 사냐고.”

킹의 말을 못 들은 척 재차 물었다. 킹은 다정한 척 내 뺨을 문질렀다.

“신혼집 구하면 이사 가야지.”

킹이 지껄였다.

“그래, 신혼집은 해외로 구해. 부인분인지 남편분께 꼭 안부 전하지 말고.”

이죽대며 말했다. 그러나 킹에겐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질투하는 거야? 나는 여보 뿐인걸.”

이번엔 대꾸하지 않았다. 킹은 호텔에 사는 모양이었다. 직장과 집이 일치하는 삶이란 꽤나 고단하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일치한다기엔 이 건물은 너무나 컸고 사람도 많았다. 호텔에서 살았으면 매일 호텔에서 우리 집까지 와서 호텔까지 돌아간 거였네.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지만 내가 고생하는 건 아니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

킹은 이곳에 왔을 때 타고 왔던 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 날 집어넣더니 운전석으로 가 앉았다. 킹이 개수작을 벌이기 전에 얼른 안전벨트를 맸다. 딸깍! 하고 가볍게 울리는 버클 소리가 경쾌했다. 나보다 늦게 차에 올라탄 킹은 안전벨트를 매고 얌전히 앉아 있는 날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가볍게 벨트를 풀어냈다. 벨트는 금방 말려 돌아가다, 내 가슴 쪽에서 걸려 멈췄다.

“뭐 하는 짓거리야?”

얼굴을 찌푸리고 따져 물었지만 킹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내게로 숙여 벨트를 본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벨트를 맨 적 없었던 것처럼 내게 몸을 가까이 붙여 벨트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내게 얼굴을 가까이 맞붙이고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우리 애기, 안전해야지.”

코앞에 멈춰선 킹이 지껄였다. 내 코끝을 톡 건들기까지 했다.

“짜증 나네.”

참지 못하고 불쑥 터트리자 킹은 자신의 죄 따위는 모른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내 입가를 톡 건들며 지껄였다.

“우리 애기, 아무리 답답해도 벨트는 매야 해요.”

진짜 어린아이를 어르는 투였다.

“아저씨, 출발하시라고요.”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킹의 가슴을 밀며 말했지만 도무지 밀리지 않았다.

“전에는 귀엽게 말했으면서, 아, 슬프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이런 마음일까?”

킹이 과장된 목소리로 말하면서 알아서 몸을 물렸다. 정말로 짜증 났다.

“아저씨, 출발하세요.”

킹의 뺨을 손등으로 쳤다. 툭, 소리가 날 만큼 약한 힘은 아니었다. 하지만 킹은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킹이 봐준다는 걸 이미 충분히 알았다. 봐줄 때 해 둬야지. 한 번 더 치자 킹이 드디어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아직 퇴근 시간이 시작되지 않은 도로는 기대보다 한산했고 덕분에 예상보다 더 빨리 집 앞에 도착했다.

“돌아갈걸.”

킹이 제 수작을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중얼댔다. 혼잣말도 아니었다. 나 들으라는 거였다.

“아저씨, 문 여세요.”

역시나 이번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소리 나게 문손잡이를 철컥철컥 대자 킹이 웃는 낯으로 대꾸했다.

“뽀뽀해주면.”

한숨을 킹 들으라고 티 나게 내쉬었다. 하지만 킹은 별 상관하지 않았다. 킹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입술을 가볍게 맞대고 떼어 냈다.

“됐지?”

“아니.”

멱살을 잡은 손을 슬슬 놓자 킹이 내 손을 제 것으로 덮어 꽉 쥐었다. 손톱들이 손바닥을 찔러 올 만큼 강한 힘이었다. 하지만 아픔을 호소하지 못했다. 입술이 틀어 막혔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아파 벌린 입을 통해 킹의 혀가 들어왔다. 몸이 점점 밀려 힘을 줘 버텨냈다. 킹의 혀가 입천장을 핥아 올리더니, 내밀어진 내 혀에 제 것을 문질렀다. 내 의지에 반해 벌려진 턱에서 침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킹은 내 손을 덮던 힘을 풀고 내 양 뺨을 붙잡아 고개를 비틀었다. 나는 입만 벌린 채, 폭력적으로 입 안을 헤집는 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쑥, 화가 나 킹의 머리를 붙잡고 혀를 움직였다. 킹이 입꼬리를 올리는 게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육의 움직임을 알아챌 만큼 맞닿아 있었기에. 혀로 킹의 볼 안쪽을 찌르고 넓게 문질렀다. 킹은 내 맘대로 하라는 듯 어느새 멈춰 있었다. 그 수작을 뒤늦게 서야 알아채고 입을 떼어 내자 킹의 입술이 뒤따라 와 내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 입가를 흥건히 적신 침을 엄지로 훔쳐냈다.

“우리 애기, 턱받이 해야겠다.”

“문. 열어.”

달칵,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안전벨트를 풀어내고 창밖으로 발을 뻗었다. 그러나 다시금 날 붙들어 오는 손에 벗어날 수 없었다.

“너와 늘 함께 있고 싶어. 예전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쭉.”

킹이 손등에 입을 맞춰왔다. 웃겼다. 누가 들으면 예전에 죽고 못 살던 부부인 줄 알겠다. 우린 그냥 같은 재소자였을 뿐이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긴. 그랬으면 내 손가락이 잘렸을 리 없잖아?”

손바닥을 움찔거리며 움직였지만, 킹은 내 손바닥에 제 얼굴을 묻고 비볐다. 참 애처로웠다. 쓸데없게도.

“그래, 그럼 이제부터 내가 잘 지켜줄 테니까 내 옆에 있어. 내 곁이 가장 안전하다는 건 너도 알잖아.”

새끼손가락 마디를 핥아오는 혀가 느껴졌다. 상처는 이미 다 나았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안전하지 못한 건 너 때문이겠지.”

긴장했음에도 새끼손가락은 예민하게 떨지 못했다. 킹의 엄지가 과거에 떨어져 나갔던 흔적을 없애듯 문질렀다.

“나 때문이었지. 맞아.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한 걸 아는 새끼가 그래?”

화가 났다. 손을 빼내려 했지만 도무지 빠지지 않았다. 씨발. 킹은 내 손을 뒤집어 손등뼈에 입술을 묻었다.

“미안한 마음보다 널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걸.”

피부 위에 올려진 입술이 살짝살짝, 숨과 함께 내 손을 간지럽혔다. 손에서부터 미약한 찌릿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사랑이 그따위인지 모르겠네.”

세상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이타적이고 순수한 것이라고 그랬다. 하지만 킹의 감정은 그렇지 못했다. 까맣고 끈적거렸다. 타르처럼.

“여보는 사랑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 본래 사랑이란 이기적이고 못난 거야.”

“넌 원래 이기적이고 못났어.”

어이없었다. 날 사랑하게 됐다며 지껄일 때부터 본인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지껄이는 듯했다.

“못나지는 않았잖아. 내 얼굴도 몸도 그리고 좆도 다 좋아하면서.”

킹이 내 손바닥에 얼굴을 올려놓고 미소 지었다. 어린아이들이 제 얼굴을 뽐낼 때처럼 말이다. 과시할 만한 외모이기는 했다.

“잘생긴 얼굴이 필요하면 거울 보면 되는걸.”

하지만 나도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킹이 재밌다는 듯 웃는 그 틈을 타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킹의 손아귀에 있었다.

“여보는 자기 객관화가 잘돼. 그렇지만 거울 보고 뒷구멍 쑤시는 건 무리잖아. 그건 그거대로 보고 싶지만.”

또다시 상스러운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 킹은 드디어 손을 잡은 힘을 점차 풀어주었다.

“배웅해줘.”

그러나 다시금 강하게 잡은 힘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해줘. 말로, 응?”

“알았어, 배웅할 테니까 손 좀 놔.”

애처럼 보채는 주제에 손을 잡을 힘은 무척이나 센 탓에 결국 똑바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손이 자유로워졌다. 손자국이 났을 거라 생각했지만 손은 멀쩡했다. 뒷걸음질 쳐 킹의 차가 떠나는 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킹의 차는 흰 매연을 남기며 부드럽게 떠나갔다. 킹의 차가 사라지고 나서까지 대문 앞에 지켜서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간 후 핸드폰을 켜 문자창을 열었다.

[<반품 처리 접수> http://PdEcpress.co.kr/account/returns/?adfjsdfglsdf=1sdfjklsjdlf ]

반품 사유를 적는 칸에 또박또박 입력했다.

[린 오캄포, 하이투 대학교 특강 예정. 강연비 1만 완.]

1완은 1달러와 비슷했고 1만 완은 약 1만 달러(한화로 약 천이백만 원)였다. 현직 공무원이,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에 있는 대학에서 받기엔 과한 금액이었다. ‘접수’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작은 팝업 창이 떴다.

[반품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 * *

어제 일찍 풀려난 덕에, 저녁 일찍부터 잠들어 오늘은 새벽에 눈을 떴다. 아직 밖은 캄캄했다. 불을 밝혀도 마치 밤 같았다. 머리를 대강 쓸어 넘기며 털레털레 주방으로 향했다. 배가 고팠다. 제대로 말리고 자지 않은 머리는 잔뜩 뻗쳐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꽤나 볼품없었다. 특별히 장을 봐 둔 기억은 없으나 주방에 있던 시리얼을 까 그릇에 가득 부었고 유통기한이 겨우 이틀 남아 있는 우유 역시 쏟아 넣었다.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잔뜩 뻗친 머리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시리얼을 입에 넣고 턱을 천천히 움직였다. 소파가 왠지 전 보다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럴 만했지. 건장한 남자 두 사람분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냈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파를 잘 닦았던가. 얼른 몸을 일으켜 한 숟갈을 더 입에 넣고 소파를 바라보았다. 뭔가 흰 액체가 묻어 있었는데 아직 축축하고 점도가 낮은 거 보니 우유였다.

그러고 보니 이 소파, 어디서 난 거였지? 아주 어릴 적에는 이게 아니었을뿐더러 소파는 오랫동안 우리 집에 있었다고 하기엔 깔끔했다. 언제부터 있었더라. 어릴 적엔 촌스러운 꽃무늬가 박힌 천 소파가 있던 거 같은데……. 아, 엄마가 홈쇼핑 카탈로그에서 보고 한참 고민하다 할부로 샀던 것이었다. 갑자기 웬 소파냐고 물었지만 조명을 잘 받았는지 사진 속 소파는 그 가구를 들여놓기만 해도 집 안이 빛이 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다들 알 듯, 잘 만들어진 거짓이었지. 선명한 노란빛 인공가죽으로 덮인 소파는 집에 딱히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꽤나 애지중지했다. 아, 소파를 아낀 것보다는 다달이 빠져나가는 카드 값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하여튼, 그래도 엄마는 꽤나 소중하게 소파를 사용했다. 한쪽만 내려앉으면 안 된다고 반대쪽도 번갈아 앉을 만큼. 엄마는 이 소파에서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 아들이란 놈은 여기서 두 번이나 정액을 싸질러버렸네. 그래도 가죽 소파여서 다행이었지, 천 소파였으면 큰일이었다.

엄마의 방을 바라보며 다시 시리얼을 한 숟갈 퍼먹었다. 방문이 마치 엄마처럼 느껴졌다. 우유만 남은 시리얼 그릇을 내려다 두고 엄마의 방을 열었다. 사람이 사는 냄새보다 먼지의 냄새가 강했다. 탁, 버튼을 눌러 불을 밝히니 화장대에 있던 엄마의 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 미안.”

사진 속 엄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히 웃는 것뿐이었지만, 괜히 찔려 사과했다. 가늘게 떠진 눈이 날 질책하며 내게 따져 묻는 듯했다.

“뭐가 미안한 거냐고는 묻지 마.”

아무리 그래도 엄마 얼굴 보면서, 엄마가 생전 아끼던 소파 위에서 남자랑 떡 쳐서 미안하다고는 어떻게 말해. 사진의 엄마는 지금의 나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얼굴도 비슷했다. 내가 키가 작고 머리가 길고, 뼈대가 아담했더라면 엄마와 자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엄마의 방에 있는 엄마 자신의 사진은 딱 이거 하나였다. 손바닥만 한 액자에 담겨 있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사진 말이다.

20대의 엄마를 찍어주던, 카메라를 든 사람은 누구일까. 엄마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알 것 같았다. 죽은 아빠겠지. 저맘때쯤 만나 나를 가졌을까? 사진 속 엄마는 너무 어려 보였다. 역시 그 아빠란 새끼는 양아치였다. 엄마의 침대로 몸을 눕혔다. 환한 전등이 무척이나 밝아 눈이 시렸다. 엄마가 죽은 지 꽤나 됐는데 새삼 부재가 느껴졌다.

엄마가 갓 세상을 떠났을 땐, 졸업도 못 한 주제에 혼자 살아갈 걱정에 그럴 틈이 없었고 교도소에 있을 땐 살 궁리에 바빴고 지난 몇 년간은 도망 다니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엄마 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엄마의 존재를 다시 깨쳤네. 지금도 바쁘긴 했다. 킹과 검사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버텨야 했고, 킹은 끊임없이 내게 추근댔고…….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새벽이 가져오는 감성적인 시간을 누려보려 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화가 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쿵! 쿵! 바닥을 울려가며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여니 꺼진 공간에서 휴대폰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왜!”

[일어나 있구나, 여보가 보고 싶어서.]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기에 다짜고짜 소리를 쳤지만 상대방은 외려 침착한 말투로 돌아왔다.

“카메라든 도청기든 설치하지 말랬지, 어떻게 알았어?”

[뭐가?]

킹이 아무 죄 없다는 듯 무해한 척 대꾸해왔다. 어이가 없었다.

“나 깨어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여보네 이웃이 새벽부터 불이 켜졌다고 하더라고. 밤새 걱정이 많았나 했지.]

“뻔뻔하네, 내가 했던 말들은 그냥 우습게 흘려넘긴 모양이지?”

사람이 이렇게 몰염치할 수 없다. 이웃은 개뿔, 옆집은 낮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폐쇄적인 노인네였고 킹이랑 그렇게나 절친하게 연락할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 것 갖고 연락한다는 것부터 이상했지만. 사람을 붙인 게 분명했다. 언제부터? 분명 내가 이 집에 있던 때부터겠지. 루크 림이 다녀갔던 것이 생각났다. 허술하긴 했으나 그래도 나름 택배 배달원의 옷을 입고 택배 상자를 들고 있었다. 도청기든 카메라든, 사람이든 아직까지 킹이 얌전히 구는 것을 보면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최대한 아무런 내색하지 않으면 된다.

[왜 벌써부터 일어났어?]

킹은 내 질책을 무시하고는 멋대로 되물어 왔다. 대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돌아오는 건 키득대는 작은 웃음소리였다.

“일찍 잤으니까.”

[내가 어제 너무 고생시켰구나.]

킹이 은근한 목소리로 속살댔다.

“넌 날 늘 피곤하게 만들어.”

지금도 피곤해. 날 그만 내버려 둬. 하지만 킹은 그럴 인간이 아니었다.

[맞아, 구멍 쑤셔지면서 소리 내지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닐 테지.]

“병가 낼게.”

티 나게 한숨을 내 쉬었지만 킹은 꿋꿋하게 제 할 말만 늘어놓았다.

[배 안 고파? 아침 먹자.]

“식사했어.”

[다시 배고프게 해 줄게. 아, 배부른 게 맞나?]

은근슬쩍 희롱을 해오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지저분했다. 옹알이 대신 그딴 말을 지껄였을 것 같이 말이다.

“됐어. 안 먹어.”

다시금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킹에게는 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치만 이미 왔는걸.]

전자음으로 만들어진 ‘즐거운 나의 집’이 흘러나왔다. 밖에서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돌아가.”

경쾌한 킹의 웃음소리와 함께, 건전지를 끼운 지 얼마 안 되어 우렁찬 도어 록의 기계음이 들렸다.

[응, 조금만 기다려.]

여덟 자리 숫자를 머뭇거리지 않고 누른 킹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더니 이내 현관문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베이지색 셔츠와 짙은 갈색의 바지를 입은 킹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아침, 여보.”

고동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처음 그 순간은, 섬뜩함을 느꼈다. 날 바라보는 시선이 왠지 모르게 음험했다. 하지만 이어진 웃음에 긴장은 금세 풀렸다. 킹은 싸구려 주광 빛 조명을 온몸에 내리쬐는 주제에, 꽤나 고결해 보였다. 싸구려 언행 따위 킹에게 존재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킹은 곧바로 내게 다가와, 아직 전화가 끊기지 않은 휴대폰을 앗아가 통화를 종료했다.

“뭐 먹을래?”

킹이 뺨을 만져왔다. 건조했다. 우유가 묻었을 입이 신경 쓰여 손등으로 대충 닦아 내며 한걸음 물러났다. 킹의 손에서 휴대폰을 다시 가져와 방 안쪽 침대로 던졌다. 툭, 떨어지는 뭉툭한 소리가 들렸다.

“뭐든 네가 싫어하는 거.”

욕실로 들어가며 대강 대꾸했다. 욕실문의 잠금이 고장 나 걸어 잠그지 못했지만 이를 오랫동안 닦고, 벽에 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을 때까지도 킹은 침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을 때쯤, 벌컥 문이 열렸다. 뜨거운 물이 데워 놓은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갔고 비교적 차고 건조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와 몸을 시리게 만들었다. 샤워 커튼 따위 갑작스러운 침범을 막아내기엔 연약했다. 큰 손은 금세 커튼을 걷어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쏟아지는 물줄기와 공간을 가득 채운 김이 시야를 방해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뚫고 크고 기다란 손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물의 온기가 아닌 낯선 것의 뜨거움이 닿아왔다. 얼굴을 적신 따뜻한 물들이, 귀부터 턱뼈를 따라 훑어 내려가는 손가락이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지날 수 있게 도왔다. 턱 바로 밑에서 멈춰선 손가락은 내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턱에서부터 목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이내 기다란 다섯 손가락 모두 목줄기를 틀어잡았다.

“흑…!”

놀라 숨을 들이켜자 진정하라는 듯, 내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숨 쉬어.”

낮은 목소리는 축축한 증기와 만나 더욱 강력하게 변했다. 목을 잡은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과 모순되게, 숨을 쉴 틈 없이 꽉 붙들어오고 있었다.

“흐, 윽……. ㄴ, 놔!”

킹의 팔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베이지색 셔츠는 물에 푹 젖어 짙은 갈색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손가락에 젖은 천들이 축축하고 끈적하게 달라붙어 왔다.

“숨 쉬라니까?”

내 밭은 호흡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킹이 지껄였다. 그 목소리는 예전에 보아왔던, 장난기와 조소가 담겨 있었다. 손을 겨우 뻗어 킹의 머리를 붙잡아 당겼다. 솨아아아.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로 피식, 새어 나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가 잡고 있었구나. 여보, 진작 말을 하지. 몰랐네.”

목을 잡던 힘이 점차 약해졌다. 하지만 습한 공간에서 양껏 숨을 들이켜기엔 부족했다.

“흐으, 윽. 하아, 하아. 갑, 자기 왜 이래?”

“귀엽기는. 뒤돌아볼래?”

목을 붙들고 거칠게 물었지만 킹은 내가 원하는 답 대신, 다정한 말투로 거칠게 내 몸을 뒤집었다. 무척이나 기만적이었다. 그리고 킹의 손은 곧바로 내 엉덩이를 벌리더니 그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왔다.

“배고파져서.”

킹이 내 몸에 제 몸을 딱 붙이고는 내 귀에 숨을 불어넣듯 속삭였다. 물이 밴 천이 내 등에 닿아 오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공기와 쏟아져 내리는 물, 축축한 숨 때문에 호흡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물에 젖어 있다고는 하나, 다물려 있는 구멍에 손가락이 쉬이 들어갈 리 없었다. 킹은 손가락을 빼내더니, 몸에 남아있던 거품기를 훔쳐내고 다시금 문질러 왔다. 미끄러운 거품은 침입을 부드럽게 도왔다.

“윽, 놔…!”

몸을 돌리려 애쓰며 꽤나 강하게 버둥대자 큰 손으로 내 양 손목을 붙잡아 왔다. 결코 가느다랗지 않았기에 킹의 손 안에 모두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잡아오는 힘이 너무 강했다.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킹이 이를 세워 문 듯했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를 맞은 채 킹에게 가만히 등을 내보이는 것은 꽤나 괴롭고 답답했다.

킹의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구멍 안으로 들어오더니 축축한 구멍을 제 맘대로 헤집어 왔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밑에서 올라온 증기에 숨이 막혔고 뒤로 젖히니 물이 쏟아졌다.

“물, 잠그라고…!”

“애기도 아니고 그 정도 일은 혼자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내 손을 제 손안에 가둔 주제에 킹이 한심하다는 듯 끌끌 혀를 찼다. 뒤로 다리를 뻗어 찼지만 허공뿐이었다.

“왜 또 지랄인데? 사랑, 사랑 지껄이더니 이제 지겨웠나 봐? 강간하는 게 사랑인 줄은 몰랐지.”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하자, 그런 말 말라는 듯 킹의 손가락이 내벽을 푹 찔러 왔다.

“아무리 내가 여보를 깜찍하게 여기면서 모든 걸 인내하려고 해도 가끔 힘들 때가 있더라고. 문득 문득 화가 나는데, 또 널 생각하면 귀여워서 참고 넘어가게 된단 말이지? 근데 그렇게 살다가 화병이라도 오면 어떻게 해? 우리 여보 옆에 오래오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렇지?”

“뭔, 개소리야!”

어느새 두 개로 늘어난 손가락이 내벽을 이리저리 쑤셔오자 허리를 마구 비틀 수밖에 없었다. 괴로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통 때문은 아니었다. 화가 나는데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고개를 치켜드는 좆 때문이었다.

“나는 여보 생각에 잠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데, 여보한테는 이게 다 장난이고 술수이고 강간이고 그렇구나…….”

킹이 말꼬리를 늘여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살대며 가장 예민한 부분을 찌르고 문질러 왔다. 씨발, 좆같게도 짜릿했다. 무의식적으로 구멍을 조이자 귓가를 간질이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 그렇구나. 이게 다아 강압적인 거네. 여보가 구멍을 이렇게 조여대는 것도 내가 다 억지로 해서 그런 거였네. 나는 여보를 사랑하니까 그런 건 못하겠어. 그만둬야겠다.”

안을 폭력적으로 쑤셔 대던 손가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허전함에 구멍을 움찔댔다. 간지러웠다. 손목을 잡던 힘이 점차 약해지더니 이내 손을 완전히 놓았다. 그리고 등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멀어졌다.

“잘 씻고 나와.”

부푼 바지춤 따위는 허상이라는 듯, 옷을 홀딱 적셔 놓은 킹이 담백하게 말했다. 짜증 났다. 이따위로 수작을 부리는 게. 빤히 보였고 어이가 없었지만 넘어가는 내가 싫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자극에 약한 인간이었다. 젖은 손으로 킹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목에 적힌 킹의 이름이 물에 젖어갔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되려, 물에 씻겨 선명히 보였다.

“벗어.”

“난 널 무척이나 사랑해서 강간 같은 짓거리는 못 하겠는걸, 로터스.”

과장되게 겸연한 낯이 짜증스러웠다.

“떡 치자는데 왜 그렇게 말이 많아?”

잡아당기니 순순히 끌려오는 주제에 거절하는 꼴이 우스웠다. 오래 그따위로 굴 건 아닌 모양인지 킹의 손이 다시금 허리를 붙잡아 왔다. 그리고 드디어, 쏟아지던 물줄기가 끊겼다. 푹 젖은 얼굴로 킹이 날 내려다보며 귀에 입을 가까이 붙였다.

“여보는 참, 왜 이럴 때만 쉬울까? 평소에도 이러면 참 좋을 텐데.”

킹의 젖은 머리에서 뚝뚝 물이 떨어져 내 얼굴을 적셔왔다. 하지만 이미 내 피부는 흥건해서 쏟아지는 물 따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또 닥치라고 말해야 해?”

거칠게 내뱉었지만 킹은 작게 웃기만 할 뿐, 제 코끝으로 내 코를 비벼왔다. 무거워 아래로 축 처진 머리칼이 속눈썹을 간지럽혀 눈을 감았다. 아주 작은 숨을 터트리듯, 입 근처에서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런 때라도 솔직해서 참 사랑스럽지.”

먼저 입술을 갖다 댔다. 이제 그만 닥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킹은 이제야 기꺼이 말을 멈췄다. 꽤나 오랫동안 내 혀를 붙들고 있을 줄 알았건만, 킹은 금방 입술을 떼어 냈다. 그리고 내 몸을 돌려 벽으로 붙이더니, 다시금 엉덩이로 손을 내려 구멍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 구멍은 살짝 다물려 있었지만 아직 미끄럽고 축축했다. 킹의 손가락 하나 정도는 부드럽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킹의 다른 손이 내 날갯죽지를 꾹 눌러 문질렀다. 완만하게 돋아난 뼈가, 손바닥에 눌려 가라앉을 듯 강한 힘이었다. 손을 뒤로 돌려, 킹의 손을 허리 근처로 옮겼다. 뼈가 눌리는 감각이 퍽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킹의 손가락이 등의 깊은 골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갔다. 안으로 휜 허리와 양 날갯죽지의 대칭축처럼 팬 골, 그리고 목덜미의 톡 튀어나온 뼈까지 하나하나 꾹꾹 누르며 부단히 만져 올라갔다. 그리고 목덜미를 손바닥 전체로 감싸더니 좆을 박아오듯 손가락을 강하고 거칠게 쑤시기 시작했다.

“흐! 읏, 아…!”

무언가를 두 손에 꽉 붙잡으며 감각을 참아 내고 싶었으나 벽은 튀어나온 곳 없이 평평했다. 손가락이 내벽 안쪽 튀어나온 부분을 가벼이 건들자 벽을 밀어내다 발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고인 물이 찰박대며 킹의 다리와 내 하반신을 적셔왔다. 어느새 물은 식어 내 체온보다 차가웠다. 예민한 몸은 그 허술한 자극에도 불똥이 튄 것처럼 질겁하며 근육을 굳혔다. 킹의 팔이 내 몸을 단단히 붙들었기에 아침부터 욕실에서 넘어지는 불상사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내 발이 미끄러진 연유로 내 엉덩이가 킹에게 더욱 가까이 맞붙었고 그의 손가락이 예상치 못한 곳을 찔러왔을 뿐이었다.

“흐, 응…! 아, 파…….”

새된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여린 내벽 피부를 긁어 내려가는 손톱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끔했다. 킹이 몸을 숙여 목덜미부터 입을 맞추며 굳은 어깨 근육을 핥아왔다. 물에 젖어 서늘히 식어 있던 피부는 그의 혀가 품은 체온으로 인해 다시금 더워졌다. 몸 전체는 아니었다. 혀가 닿아 오는 좁은 부위만이 무덥게 느껴졌다.

좁은 틈을 헤집고 들어와, 구멍 안에 자리한 두 개의 손가락을 데워가는 건 내 체온이었다. 본인이 낸 상처를 보듬겠다는 듯 킹의 손가락은 내벽을 꽤나 다정히 문질러 왔다. 단단한 손톱 대신, 여린 손가락 피부가 안을 약하게 누르고 쓰다듬듯 둥글게 움직였다. 그리고 가위처럼 손가락을 벌려 구멍을 넓히더니, 이내 팔을 움직여 못을 박듯 안을 쿵쿵 박아 대고 있었다. 꽤나 부드러운 움직임이었으나 감질나게 하며 부족함을 깨우치게 할 뿐이었다.

“이, 이제 넣어…!”

엉덩이를 움직이며 애원하듯 말했으나 킹은 못 들은 척 내 배를 문질러왔다. 배에 맺혀 있던, 차게 식은 물방울들이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은 이런 희미한 감각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 로터스, 너에게 내 좆을 쑤셔 넣어 마구 처박는 그딴 파렴치한 짓을 하겠어. 안 그래?”

이죽대는 말투가 무척이나 짜증 났다. 하지만 좆에 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쪽은 나였다.

“넣, 으라고…!”

손을 뒤로 뻗어 구멍을 쑤셔 박고 있는 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위하듯, 킹의 손목을 안으로 처박고 빼내자 작게 뇌까려지는 욕설이 들렸다.

“씨발……. 네가 유일하게 다가오라고 할 때가 좆질뿐이라는 걸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킹의 손이 내 목덜미를 강하게 붙잡아 왔다. 그리고 젖은 옷가지를 벗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씹, 흐, 윽! 그 좆질, 하아, 다 너한테서 배웠잖아.”

엉덩이를 강하게 쥐어 오는 것과 동시에 축축이 젖은 귀두가 구멍에 맞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네가 이렇게 귀엽게 구는 것도 딱 내 취향이라 이런 거겠다. 아, 내 취향이라 귀여워 보이는 건가?”

“하, 읏…!”

구멍을 파고들며 굵은 성기가 진입하기 시작했다. 좁은 구멍은 탄력 있게 킹의 성기를 감싸며 서서히 늘어났다. 입을 크게 벌리며 침을 흘린 채, 붙잡을 것이 없어 주먹만 꽉 쥐며 견뎌냈다. 목덜미를 붙잡아 오는 손아귀의 힘이 점차 강해져 목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 킹 역시 쏟아지는 감각을 인내하는 듯, 낮고 거친 숨을 흘리며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아아, 어떡해? 너무 좋아, 자기야. 막 꿈틀대면서 내 걸 막 조여오는데, 역시 나한테서 배워서 이렇게 잘하나?”

“제발, 허튼소리 좀 하지 마…!”

고개를 돌려 킹을 노려봤다. 젖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던 킹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잘못도 한 적 없다는 듯 상쾌하게 웃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박기나 해.”

입술을 작게 벌리며 말하자 킹이 축 젖어 무거워진 셔츠를 다 벗어 욕조 밖으로 던져내며 느물댔다.

“박기나 하라니, 섭섭하게……. 예전처럼 귀엽게 말해줘, 응?”

“내가 원하면 남창 처, 윽! 럼 군다며!”

목이 아파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물이 맺힌 벽이 무사히 내 말을 반사해 주길 바라며 말의 첫머리는 발음이 분명했으나, 얕게 쳐올리는 감각에 말꼬리는 발음이 온통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수를 주지 않으시잖아요.”

킹이 양 엉덩이를 꽉 쥐고는 엄지로 물기를 문질러 펴내며 소곤댔다. 날 놀리는 게 분명한 그 말이 무척이나 분했지만 분노는 내 몸을 더욱 달굴 뿐이었다.

“…자기, 해줘, 응?”

결국 킹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했던 그때처럼 아양을 떠는 투를 내뱉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킹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 허니. 어떻게 해줄까?”

“자기 자지로 안을 푹푹 쑤셔 박으라고!”

예전과 다른 꽤나 불손한 말투였지만 킹은 그것만으로 만족했던 모양이다. 킹은 크게 웃었다. 배를 움찔대며 웃는 탓에 구멍 안에 꽂힌 좆 또한 잘게 진동하며 움직였다. 그래서 더욱 감질나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킹은 터질 듯 쥐어 올렸던 엉덩이를 놓았다.

“알았어, 여보. 난 말을 잘 듣는 남편이니까.”

세상 그 누구보다 말을 안 들어 처먹는 킹이 지껄였다. 그러나 질책하지 않았다. 마침내 다시 쑤셔 박아 오는 좆이 꽤나 기꺼웠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대로 구멍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 킹의 좆 전부가 아니었다.

“흐윽! 윽!”

손가락 따위와는 전혀 달랐다. 손가락으로는 닿지 못했던 곳까지 킹은 좆으로 쑤셔 박아 문지르더니 금세 떠나 날 감질나게 했다. 붙잡을 듯 구멍을 움찔대며 킹의 것을 강하게 조이자, 킹은 작게 욕을 뇌까리며 제 좆을 귀두까지 뽑아내고는 다시 강하고 빠르게 박아 넣었다

“흐읏, 윽…!”

손톱이 손바닥에 짙은 자국을 낼 만큼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가 예민한 몸에 더해오는 감각이 과해 손바닥을 펴 벽에 붙였다. 하지만 뒤에서 박아오는 감각은 강한 반면, 물이 맺힌 욕실 벽은 미끄러워 도무지 힘을 줘 버틸 수 없었다. 입을 벌리자 불분명한 발음과 호흡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침으로 턱이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흐아, 읏…! 윽!”

“왜, 애기처럼 침을 흘리고 있어, 응?”

킹의 손이 턱을 거칠게 문질러 닦더니 입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습관처럼 킹의 엄지에 혀를 감았고 킹은 내 구멍 안 가장 깊은 곳에 좆을 박아 넣었다. 입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은 키스하는 것처럼 내 입천장을 문지르고 혀를 누르며 비벼왔다. 그러나 손가락은 혀보다 뻣뻣했고 손톱은 단단했다. 손톱이 여린 입 내벽을 긁으며 찌르는 것은 꽤나 따끔했다. 피 맛이 느껴졌다.

“응, 빼…! 아파…….”

손가락을 이야기한 것이었으나 킹은 모른 척 제 좆을 슬금슬금 빼냈다. 사정하지 못한 채로 끝난 섹스는 둘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운 일이지만, 킹은 마치 나만이 아쉬운 것처럼 굴었다.

“아파? 뺄까?”

구멍을 조이며 반대의 뜻을 내비쳤지만 킹의 것은 귀두만이 걸린 채 대부분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아직 내 얼굴 근처에 머물던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앞니로 살살 긁으며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안 돼, 다시, 다시…. 흐윽!”

“귀엽네.”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다시금 강하게, 킹이 좆을 안으로 쑤셔 왔다. 성에 찰 정도로 안을 박아오는 느낌에 앓는 듯한 신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퍽, 소리가 날 만큼 킹의 귀두가 깊은 안쪽을 쑤시자 뒤를 조일 수밖에 없었다. 킹에게 그것이 꽤나 자극적이었는지, 킹은 혼잣말처럼 욕을 중얼대며 몸을 바짝 숙여 내 허리를 강하게 붙잡았다. 상스러운 욕이 더욱 성감을 더해오는 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미 반쯤 이성을 잃어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땀이 맺힌 손바닥이, 물이 흥건한 욕실 벽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안정했다. 이대로 넘어질까 두려워 손을 겨우 옆으로 뻗어 세면대를 붙들었다. 자세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잡을 것이 생기니 조금은 나았다. 뒤에서 박아오는 힘에 더욱 강하게 당겨 잡자 벽에서 살짝 떨어져 나온 세면대가 쿵! 쿵! 벽에 몸이 박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자기야, 제대로 좀 조여봐. 자기가 말했던 대로 푹푹 박아주고 싶어도, 이렇게 헐렁해서야 그럴 맘이 들겠어. 응?”

“씹, 그 사이에, 흣, 니 좆이 쪼그라들었나 보지.”

킹의 말이 허튼소리라는 건 뻔했다. 구멍 내벽이, 킹의 좆에 틈 없이 달라붙어 움직이기도 편치 않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킹은 그따위로 지껄였고 나 역시 참지 않았다. 구멍 안을 쑤셔오는 것이 너무 커 견디기 힘들면서도 말이다.

“흐윽!”

빠듯한 구멍을 잠시 빠져나간 좆이 강하게 푹 박아왔다. 팔의 힘이 풀려 욕실 벽에 머리를 박고 뺨을 갖다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더운 얼굴에서 벽으로 온기가 옮겨갔다. 킹의 양손이 배를 덮더니 천천히 위로 훑어 올라갔다. 그리고 가슴을 둥글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여기 좋아하잖아.”

젖꼭지를 긁어 내려가는 손톱이 따끔했다. 젖꼭지를 만지는 것에 꽤나 느끼긴 했으나 이런 상처 입는 행위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싫, 아! 싫, 어…!”

몸을 뒤로 물리며 잠시 도리질을 치자, 킹이 내 뒤통수를 눌러 벽에 얼굴이 붙게 고정했다. 꽤나 거친 손짓이었다.

“내가 싫다고 하지 마. 뭐든.”

숨이 섞인 낮은 목소리와 목을 감싸오는 손이 등 근육을 딱딱하게 굳힐 만큼 섬뜩했다. 그 손은 숨을 틀어막듯, 목을 조였다. 안을 깊게 박아오는 감각에 숨을 터트리고 싶어도 목 가운데에 턱 걸려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흑, 윽…!”

내 등에 딱 붙어오는 킹의 온기가 무척이나 뭉툭하고 둔하게 느껴졌다. 숨이 막혀 모든 감각이 예민하지 못했다. 나를 밀어내는 몸 때문에 무릎뼈에 딱딱한 욕조 턱이 부딪혔다. 꽤나 아팠다. 하는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어 올려, 욕조 턱에 무릎을 겨우 올리고 킹의 무게를 받아냈다. 답답했고 죽을 것 같았다.

“숨, 악허…….”

겨우 말을 내뱉었으나 헐떡거림에 다 뭉개진 발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컥컥대며, 내 목을 조른 킹의 손목을 강하게 붙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은 모른 척,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귀를 핥고 물었다. 눈앞이 흐려지며 자연스레 눈물이 맺혔고, 다시금 깊게 박아 올리는 감각에 그 눈물은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 윽!”

부족한 공기와 눈가를 적신 눈물은 시야를 어지럽혔다. 욕실을 채우던 증기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도 공간이 뿌옇게 보였다. 목을 잡은 손 탓에 목 피부가 땅겼지만 겨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엄지가 더욱 깊숙이 목을 찔러오며 숨 길을 막았다. 킹의 코끝에 내 코가 닿았고, 킹의 얼굴 앞에서 밭은 숨을 두 번 쏟아냈다. 초점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흐린 시야와 흐트러진 초점 때문에 킹은 그저 어두운 연기 같았다.

“숨, 막히다, 고…!”

겨우 입술을 움직여 불분명한 발음으로 소리 내자, 목을 잡아 오는 힘은 점차 약해졌다. 하지만 킹이 입을 맞춰와 숨을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읍, 흡…….”

젖은 소리가 아래에서도, 입에서도 쉴 새 없이 울렸다. 구멍에서 정체 모를 액체가 아래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입에선 킹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침이 떨어져 내렸다. 젖은 구멍은 부드럽게 삽입을 도왔고 다시금 푹 처박아 올리는 행위를 방해할 것은 없었다. 내벽을 찔러오는 감각에 입을 크게 벌려 맘껏 숨을 터트리고 싶어도, 킹의 입에 막혀 새나갈 수 없었다. 앞니로 강하게 킹의 입술을 깨물자 겨우 킹의 입이 떨어져 나가 그제야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입으로 들어오는 숨이 달았다. 킹의 입술에 핏방울이 맺혀 있다는 것쯤은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허니, 나 아파.”

킹이 내 손등에 입 맞추며 어리광을 부렸다. 손등에 옅고 작은 핏자국이 묻어났다. 킹의 입술 대신, 손등에 묻은 핏자국을 핥아 올리자 축축한 혀에 자국은 금세 사라졌다. 희미한 쇠 맛이 났다. 그러나 킹의 입술엔 여전히 피가 묻어 있었다.

“내 입술도 빨아줘, 응?”

킹이 귀 아래에 입술을 붙여오며 애처럼 굴었다. 티 나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킹은 그따위로 기가 죽을 인간이 아니었다. 결국 입술을 살짝 벌렸고 킹의 입술이 맞붙었다. 그러나 빨지는 않았다.

“잘 박고 나면.”

입에서 흘러나온 작은 숨들이 킹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목이 조금 상했는지, 음성에 희미한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침이 지나는 목 안쪽 또한 살짝 따끔했다. 킹의 얼굴이 점차 멀어졌다. 그리고 초점이 맞춰질 거리에서 바라본 킹은, 반성과 미안함 한 자락 찾아볼 수 없는 몰염치한 낯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마치 조소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 배를 감쌌다. 그리고 그 얼굴은 내 머리 뒤로 사라져, 그가 뒤통수를 붙잡아 왔다. 당겨진 머리가 아파 작은 신음을 흘리며 항의했으나 그것은 킹을 막기에 지나치게 연약했다. 그리고 다시금 안을 깊이 처박아오는 감각에, 그런 희미한 고통 따위 쉽사리 잊을 수밖에 없었다.

“하…윽!”

귀두가 예민한 부분을 강하게 찌르며 문질렀고 킹의 혀가 목덜미를 축축이 빨아왔다. 피부를 살살 긁는 킹의 치아가 무척이나 간지러웠다.

“뒷구멍으로 잘 빠는 거 보니, 입은 어떨지 기대돼.”

킹이 귀를 씹으며 귓가에 대고 지껄였으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이미 지나치게 자극적인 감각이 날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벽 깊은 곳을 쑤셔 박던 좆은 조금 빠져나가더니, 이내 다른 쪽을 처박았다. 벽에 이마가 박혀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이마가 얼얼했다. 다친 피부를 보듬는 듯 킹이 손바닥을 벌려 내 이마를 덮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더 강하게 박아올 것이란 예고에 불과했다.

“하, 으…! 잠, 윽!”

벽 대신 킹의 손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구멍을 쑤셔오는 감각을 버텨내야만 했다. 킹의 손바닥은 무척이나 뜨거워 열 오른 아이의 것처럼 내 이마 또한 그렇게 데워오는 듯했다. 킹의 귀두가 폭력적으로 내벽을 쳐올렸다.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기에 내 좆 끄트머리에서도 물이 질질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 번도 만져지지 못한 성기는 알아서 몸을 세우며 움찔대고 있었다. 이런 것 따위 이제 수치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저 성기에서 정액이 모두 분출될 수 있게, 강하고 분명하게 박아오는 것을 기대할 뿐이었다.

“흐, 악!”

마치 총에 맞은 사람처럼, 입을 크게 벌려 비명을 질렀다. 내벽 안쪽을 찔러오는 자극은 여전했지만, 내 좆 끄트머리를 막아오는 뜨거운 손 때문이었다.

킹은 엄지로 내 요도구 끝을 슬며시 눌러 막더니, 다른 손가락으론 좆 기둥을 가볍게 문지르고 스쳤다. 빠져나가지 못한 자극을 몸 안에서 소화해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몸을 비틀며 반항했으나 오히려 킹의 손에 갇혀 있는 성기가 이리저리 스쳐 자극을 더할 뿐이었다.

“놔, 줘……. 흐, 윽.”

아이처럼 서러워져 울음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귀두에 닿은 엄지가 살짝 떨어지는 듯해, 벅차오르는 환희에 떨며 구멍을 조였지만 이내 다시 꾹 눌러오는 감각에 등을 굳히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말하면 싸게 해줄게.”

간악한 목소리로 킹이 속삭여왔다. 나는 미친 사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응, 응…. 제발, 아……. 흑!”

“사랑한다고 해. 날 너무 사랑해서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말해.”

새끼손가락으로 성기의 기둥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부드럽게 훑어 올리며 킹이 사악하게 속닥댔다. 그쯤은 무척이나 쉬웠다. 내가 킹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었다.

“킹, 킹……. 사랑, 해…. 너무 사랑해서 죽을 것, 윽! 같아. 응, 죽을 수 있어…!”

머뭇거림 없이 입에서 거짓된 고백이 흘러나왔다. 사랑한다는 말을 생전 처음 내뱉어 보았으나 킹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씨발, 너무 쉽네? 너무 쉽다고, 로터스.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외운 듯 지껄이면, 믿어주려 해도 믿어줄 수가 없잖아, 여보.”

킹은 엄지 끝을 세워, 귀두 끝의 옴폭한 선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요도구에서 떨어져 나오진 않았다. 그리고 다시금 뒤에서 쿵, 소리가 날 듯 좆을 쳐 올렸다.

“사, 랑한다고 했, 잖아……. 아…!”

“진심으로, 거짓말 없이 하라고 그래도 넌 또 웃는 낯으로 가짜인 말을 지껄일 테지. 너한테 나도, 이딴 거짓말도 아무것도 아닌 걸 알고 있는데 깨닫는 순간마다 화가 나.”

어이없었다. 말하래서 했더니 이제는 말했다고 불만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어린아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널,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흐윽.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랑 따위의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걸 말하게 한 게 본인이면서, 킹은 악하고 이기적이었다. 늘 그랬듯이.

“왜 안 돼? 내가 널 사랑하게 됐는데. 로터스, 넌 날 사랑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킹은 사랑에 빠진 아둔한 사람들이라면 늘 갖고 있는 멍청한 기대를 품고 있는지, 자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어찌나 지나친 자신감이 담겨 있는지, 하마터면 내가 진짜로 킹을 사랑한다고 착각할 뻔했다. 킹은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는 적은 살을 끌어 모아 혀로 씹어내며 귀두 끝을 막은 손을 드디어 떼어냈다. 내 좆은 드디어 정액을 흘리며 남아있는 쾌감을 모두 쏟아내려 애썼다. 미뤄왔던 사정이 드디어 찾아오자 탈력감에 다리에 힘을 풀고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 담겨있는 성기는 여전했다.

“…빨리 싸.”

힘없이 중얼대자 목덜미를 깨문 힘이 더 강해졌다. 잇자국이 생겼을 게 분명했다.

“아까는 그렇게 박아 달라면서, 이제는 매몰차게 구는 거야? 여보는 정말 개새끼구나.”

진짜 개새끼인 킹이 내게 말했다. 킹은 내 구멍에 여전히 좆을 처박고 개새끼처럼 내 몸을 물어 댔다. 내 목 전체를 제 잇자국으로 덮을 생각인지, 킹의 입이 옆으로 옮겨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살을 그러모아 빨아올리고 씹어 댔다.

“윽, 아파…….”

송곳니로 찔러오는 감각이 꽤나 강해, 고개를 젓자 킹은 가만히 있으라는 듯 내 뒤통수를 누르며 이번엔 어깨를 씹었다. 딱딱하게 뭉친 어깨 근육을 모두 풀어버릴 듯, 킹은 입을 크게 벌려 어깨를 물고 씹었다. 그리고 킹이 여전히 좆을 구멍 안에서 움직여 대 예민한 부분을 계속해서 건드는 감각에 참지 못하고 다시 발기해버릴까 무서워 구멍을 강하게 조였다. 그러자 킹이 내 어깨를 뱉어내곤, 침으로 젖은 피부에 뜨거운 숨을 흘렸다.

“꼭꼭 잘 씹어 먹네, 우리 여보.”

킹이 피식 웃고는 괘씸하다는 듯 예민한 부위를 강하게 쳐 올렸다. 등을 굳히며 다시금 뒤를 조이자, 킹이 낮고 밭은 숨을 흘리며 내벽 안쪽을 제 정액으로 축축하게 적셔왔다. 킹이 몸을 잘게 떨며 내 등에 자신의 몸을 붙여오는 통에. 킹의 정액을 구멍 안쪽에 받으며 그가 사정하는 것을 모두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킹이 말랑해진 성기로 내벽 안쪽 모든 곳에 정액을 묻히듯 움직였다.

“다시 씻어야겠다. 씻겨줄까?”

킹이 땀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는 머리끝을 가만가만 만지며 은근하게 속살댔다. 고개를 젓자 얼굴에 닿은 손이 꽤나 산뜻하게 떨어져 나갔다. 안쪽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정액이 구멍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킹의 좆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흐윽…….”

그 기묘한 감각에 몸을 떠니, 제 잇자국이 나 있을 목덜미에 킹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가장 두꺼운 귀두가 빠져나가 다리를 따라 정액이 구멍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머리는 땀에 푹 젖고 배는 내 정액으로, 그리고 다리는 킹의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 꼼꼼히 씻은 보람이 사라졌다. 킹이 내 몸을 잡고 돌린 탓에 그 볼품없는 꼴을 그에게 여과 없이 내보일 수밖에 없었으나 킹은 그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제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훑으며 말했다.

“잘 박았으니까 빨아줘야지.”

킹의 얼굴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힘이 빠진 손으로 킹의 양 뺨을 붙잡은 채 그의 입술에 난 상처를 한참 빠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피가 멎은 입술은, 피보다 킹의 침으로 더 흥건했다. 킹은 나보다 내 입술을 꽤나 오랫동안 빨더니 드디어 입을 떼어 냈다. 그리고 딱,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하는 거리만큼 벌어지고는, 땀에 젖어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 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깨끗하게 씻고 나와. 아침으로 뭐 먹을지 생각해두면 좋고.”

꽤나 담백한 음성이었다. 그리고 킹은 수건 하나를 머리에 덮은 채 욕실 밖으로 나갔다. 욕실에 난 작은 창이 밝았다. 해가 뜬 것이다. 이미 아까 씻었던 부위들을 다시금 꼼꼼히 씻으며 욕조에 고인 액체들을 흘려보냈다. 거품이 섞인 것인지, 아니면 정액인지 모를 수상한 흰 물들이 배수구로 흘러가 사라졌다. 뜨거운 물이 만들어 낸, 구름 같은 증기가 다시 욕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킹이 물었던 피부들이 따끔거려 아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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