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11/21)

Chapter. 5

공연은 물론 무산됐고 대머리들은 당장 병원으로 실려 갔다. 청산가리는 해독이 가능한 독이었지만 대머리들은 코로 직접 흡입했고 대처가 늦었기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교도소는 폐쇄됐다. 듣기론, 화장실 구멍을 통해 6명이 탈옥했고 2명은 얼마 되지 않아 잡혔으며 4명은 지금 추적 중이라고 했다. 교정국 사람들은 교도소 밖으로 나갔지만, 얼마 되지 않는 교도관들은 모두 비상이 걸려 당직인 교도관도 불려 나왔다.

교정국 사람들까지 불러다가 크리스마스 행사를 벌이는데, 공연하기로 한 재소자들이 청산가리를 흡입해 죽고 6명이 탈옥했다는 소식은 흥미진진한 뉴스거리였다. 그래서 많은 기자들이 교도소를 귀찮게 했고 교도소는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교도소는, 교도소의 통제를 벗어나 밀수되어 들어온 마약의 품질 이상으로 대머리들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실과 아니면 그저 재소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자살 사건을 벌인 것이라는 등 여러 거짓 중에 어떤 것을 이야기해야 타격이 적을지 저울질하는 듯했다.

탈옥은 이미 드러난 사건으로만 봐도 할 말이 없었다. 교정국에서는 본인들의 수치가 될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아직 고민하고 있거나, 아니면 공휴일에는 쉬는 공무원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교도소와 교정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뉴스는 퍼져 나간 후였다. 많은 방송국이 교도소 입구에 기자를 세워놓고 그림을 뽑아냈고 인터넷은 물론 다양한 언론들이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해야 하는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악몽에 모두들 끔찍해하면서도 지극히 흥미로워했다. 이미 소셜 미디어에는 탈옥한 재소자들을 발견했다는 가짜 소식이 퍼져 나가고 있었고 이때다 싶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퍼져 나왔다. 그리고 교도소의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와 교도소 내 인력과 재정 부족이 근본적 문제라는 논평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크리스마스는 교도소 안에서도 다들 행복에 들떠 설레어야 하는 날이었지만, 지옥의 날이었다. 사람이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고 몇이 탈옥했다. 그리고 교도소 전체는 폐쇄돼 긴장이 흘렀다. 교도소는 폐쇄되어 운동장도 갈 수 없었고 시시때때로 교도관들이 방을 들쑤시고 다녔다. 쉬는 날 없이 근무하는 교도관들은 눈에 핏발이 서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교도소장은 교정국 인사들에게 깨졌고, 교도관들은 교도소장에게 깨졌으며, 재소자들은 교도관에게 깨졌다.

교도소장은 알고 보니 영부인의 사촌 동생의 남편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장은 실력보다 연줄로 소장 자리를 꿰찼는데 소장 자리를 해내는 것이 그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보기 좋게 망쳐버렸고 언론까지 그 사실이 알려져, 현 정부를 비판하는 꼬투리로도 작용했다. 탈옥과 재소자가 죽는 건 별일이 아니었지만, 영부인의 사촌 동생의 남편이 소장으로 있는 교도소에서 그런 건 큰일이었다.

교정국 측에서는 자신들의 탓이 크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내루 교도소의 잘못으로 모든 걸 돌렸다. 그러나 교정시설의 인력과 재정 확충 등 나은 환경에 힘쓰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탈옥수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붙잡혔다. 그리고 붙잡힌 다섯은 독방에 갇혔고 추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결국 그 한 명은 죽었지만 총에 맞은 게 아닌, 실족사였다.

크리스마스 날 일이 터진 터라, 공휴일에 수리공을 구할 수 없어 화장실은 하루 동안 폐쇄되었다. 그 하루를 못 견디고 재소자들은 이리저리 똥오줌을 싸질렀고 교도관이 쓰는 화장실을 이용하다 붙잡혀 독방으로 끌려간 자들도 몇 있었다. 교정국 사람들이 온다고 나름 때 빼고 광을 냈던 교도소는 엉망이 되었고, 오물 냄새 때문에 내가 변기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변기는 그다음 날 당장 고쳐졌다. 아니, 고쳐지다 못해 더 두껍게 시멘트를 바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외에 물이 흐르는 곳, 금이 갔던 곳을 샅샅이 뒤져 보수했다. 똥 냄새를 참으니 이젠 시멘트 등 화학 냄새를 견뎌야 했다.

그리고 청산가리를 흡입한 대머리 중 한 명은 기관지를 심하게 다쳤고 한 명은 의식 불명이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청산가리는 해독 가능한 독이었으므로 나름의 아량을 베푼 것이었다. 그러나 그 멍청이들은 코로 직접 청산가리를 흡입했고, 교도소가 폐쇄되었던 탓에 늦게 호송되었다. 다른 두 명이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그러나 교도소 측은 그 둘이 살아 있는 것이 불행이었다.

왜냐하면 교도소 측에선 대머리들이 자살을 기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도소는 여러 가지를 저울질하다가, 교도소 안에서 마약 사업이 벌어졌다는 사실보다는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관리 소홀 쪽이 나았나 보다. 한 명은 말을 못 했고 한 명은 의식이 없었으니 어찌어찌 사건이 덮어질지도 몰랐다.

인권 단체는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일에 큰 항의를 했다. 그것은 영부인의 사촌 동생의 남편인 소장의 실책이자 현 정부 산하에 있는 교정국의 잘못이고 또 동시에 현 정부에게도 탓이 있다고. 재소자가 자살 기도를 한 것으로 모자라 탈옥이 일어났는데, 탈옥수를 검거하던 도중에 사망까지 했으니 인권 단체가 항의하는 그들의 탓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청산가리를 건네고 재소자를 떠밀어 죽인 건 아니지만 모든 죽음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으니까.

하여튼, 그래서 휴 사토는 조사받지 않았고 징계도 받지 않았다. 애초에 휴 사토가 걸릴 꼬리를 안 남겨 뒀을 것 같지만. 휴 사토가 조사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휴 사토의 마약 사업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누가 청산가리가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마약을 사겠는가. 아무리 대가리가 돌았어도 그건 아니었다. 킹은 마이클 미치 때보다 더 강력하고 음험한 방법으로 휴 사토의 사업을 조졌다. 휴 사토에게 가장 많은 돈과 힘을 벌어다 주는 건 역시 약이었고 휴 사토의 세력은 주춤해졌다.

그래서 킹의 기분은 무척 좋았다. 휴 사토는 직감적으로 청산가리가 킹의 짓인 걸 알았고 킹도 딱히 휴 사토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휴 사토는 킹에게 으르렁댔지만, 킹에게는 그저 쥐가 찍찍대는 것뿐이었다. 휴 사토는 더욱 분해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올해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온갖 사건이 벌어졌지만 오늘 교도소는 평소처럼 굴러갔다. 평소처럼 나는 킹과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킹과 함께 정보 처리실에 일을 하러 왔다.

킹은 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킹은 크리스마스 전에도 바빴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금도 바빴다. 청산가리뿐만 아니라 꾸미고 있는 다른 일이 또 있나 보다. 하지만 킹은 내게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게 자신과 관련한 더 깊은 얘기(가령 친엄마와 관련된 얘기)는 알려주면서 일에 대한 건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그 일에 개입되는 게 싫은지 아니면 그저 내가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모른 척했다. 그렇다고 킹이 뭘 하고 있는지 관찰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킹이 벌이는 일은 직간접적으로 내게 영향을 미쳤으니까.

나는 킹이 숫자가 가득한 창으로 일을 하는 걸 지켜보다가, 판타지 소설의 6권을 펼쳐 들었다. 도서관 대머리는 죽었지만 그 덕분에 쉽게 그 대머리의 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방에서 찾아온 책이었다.

6권도 역시나 엉망진창이었다. 1권에서 모두 죽었다가 5권에서 벌목꾼으로 환생한 블랙 드래곤과 나무로 환생한 그린 드래곤이 싸움을 벌였는데 6권에서는 갑자기 블랙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무와 벌목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른 사랑이라나, 뭐라나. 책을 어떻게 낸 거지? 자체 출판인 것 같았다.

엉망일 걸 알았지만 막상 진짜 엉망이니 좀 화가 났다. 내가 이딴 걸 읽으려고 피아노를 친 건가? 아, 무대에는 안 올랐지. 책을 더 읽을 맛이 나지 않아 킹이 하는 걸 구경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킹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어 눈높이와 거리가 차이 났다.

나는 가만히 앉아 킹을 불렀다.

“킹.”

킹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불렀다.

“킹!”

그러나 이번에도 킹은 답하지 않았다. 크고 넓은 킹의 등이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킹을 불렀다.

“자기!”

“응, 허니. 왜?”

그제야 킹은 날 돌아보며 웃었다. 하여튼, 피곤했다.

“나 화장실 다녀온다고.”

“음, 바빠서 같이 못 가주겠네. 미안해. 혼자 다녀올 수 있지?”

뭔. 애 취급을 하다 하다 이제는.

“내가 애야?”

“나한테는 아기 같은걸.”

킹은 잘생긴 얼굴로 산뜻하게 웃었다. 그러나 음흉해 보였다. 나는 책을 소파에 두고 일어나며 마주 웃어줬다.

“네, 아저씨.”

그러자 킹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한술 떠 더 능청스럽게 굴었다.

“우리 아가, 아저씨한테 뽀뽀하고 가야지.”

킹이 제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고 나는 그 볼을 손바닥으로 살짝 누른 후 말했다.

“아저씨, 일하셔야죠.”

그리고 나가려는데 킹이 덥석 허리를 잡았다.

“그러고 그냥 나간다고? 매정해.”

애꿎은 사람을 죽인 게 며칠 전이면서 나보고 매정하단다. 참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남자였다.

“나 화장실 간다니까.”

“아가라서 잘 모르잖아. 이참에 배변 훈련도 시켜줄게.”

미쳤나 봐.

“아저씨, 이러지 말고 놔주세요.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래요.”

그렇지만 킹과 지내다 보니 나도 익숙해졌는지, 킹에게 장단 맞춰 거절했다.

“내가 허니한테 모르는 사람이야?”

“바쁘다면서. 자기, 오늘따라 왜 이러지?”

킹은 지금 지나치고 집요하게 내게 달라붙고 있었다. 요새 내게 집착하는 게 커지긴 했지만, 이렇게 어린애처럼 떼를 부리는 건 심했다.

“허니가 확신을 안 줘서 그렇지. 그니까 여기다 내 이름 새기면 안 그럴게. 응?”

킹이 내 손목 안쪽을 지그시 눌렀다. 나는 왼손잡이였고 킹이 누르는 곳도 왼쪽 손목이었다. 문신이 무슨 마법적 효력이 있어서 사람을 묶어 두는 것도 아니고 문신 좀 했다고 확신을 주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킹과 확신을 주고받을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 나랑 연애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 관계는 동등하지 않았고 그래서 연인 따위가 될 수 없다. 그걸 킹도 모르지 않을 텐데, 우리가 맺은 암묵적 계약에 비해 과하게 굴고 있었다. 나는 킹의 몸을 밀었고 킹은 그제야 순순히 밀려났다.

그리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문으로 걸어가 열었다. 정보 처리실 안에 딸린 방이라 내가 나가자 그 안에 있는 다른 재소자들과 교도관이 날 잠시 쳐다보았지만 평소처럼 무시했다.

화장실로 걸어가는데 복도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킹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킹은 내게 늘 주도권을 갖고 싶어 했고 그랬지만 섹스를 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그걸 조금은 내려놓는 태도를 보였다. 그저 날 귀여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서 날 좋아하는 건가? 킹이? 나를?

킹이 나랑 이따위 연극을 지속하는 대신에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그렇지만 불가능하다. 다시금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동등하지 못했다. 동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연애는 성립할 수 없다. 연애를 해본 적은 없으나 늘 엄마가 강조하는 말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고.

나는 킹이 요구하는 섹스를 거부할 수 없고 킹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으며 일방적으로 킹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했다. 킹이 요구하지만 내가 하기 싫은 타투를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불평등했다.

그리고 난 킹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 감정으로 상대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즉, 나는 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킹의 얼굴을 좋아하고 킹과의 섹스가 나쁘지 않다는 것과는 다르다. 얼굴이 잘생기고 섹스가 나쁘지 않다고 해서 연애를 할 수는 없다.

내가 킹에게 얻고자 하는 것은 그저 내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만 해당하는 보호 정도였지만 킹은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무리였고 안 될 일이었다. 곧 새해였고 내년에 나는 출소한다. 나는 출소 후 내 인생에서 킹을 지울 방도를 강구해야 했다.

한참 말없이 생각하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볼일을 보는데 뭔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나 혼자였다. 세면대로 가 허리를 숙여 손을 씻는데, 무언가 강한 힘이 날 내리쳤다.

퍽!

쓸데없이 익숙했다. 아니, 그때보다 더 강했다. 코뼈가 세면대 수도꼭지로 떨어져 그대로 박혔다. 피가 밑으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코는 분명 깨졌을 것이다. 나는 다시 눈을 뜨려 했지만 다시 머리에 가해진 충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앞이 까맣게 암전됐다.

* * *

철썩!

뺨에 가해지는 고통에 정신을 차렸다. 겨우 눈을 떠보니 나는 바닥에 앉혀져 묶인 상태였다. 그리고 머리와 얼굴은 물에 젖어 잔뜩 축축했다. 눈앞에 연보라색 점프 슈트의 다리 부분이 보였고 위를 올려다보자 보인 것은 휴 사토의 얼굴이었다. 내 뺨을 때린 사람은 내 어깨를 붙들고 있는 휴 사토의 똘마니 중 하나였고.

내가 눈을 뜨자 휴 사토가 무릎을 꿇고 내 눈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내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겨 올렸다. 두피가 당겨 아팠다. 그리고 휴 사토가 손을 휘둘렀다.

철썩!

물에 젖은 뺨이 큰소리를 냈다. 같은 부위를 맞아 고통이 상당했다. 입술이 뜨끈한 게 피가 흐른 것 같았다. 내 고개가 돌아갔지만 휴 사토는 내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씨발, 건방진 새끼가. 미나콤을 등에 업었다고 주제도 모르고, 어?”

며칠 전, 내가 샴푸로 본인을 조롱한 걸 얘기하는 듯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피 섞인 침이 입에서 흘러, 바닥에 뱉었다. 침은 휴 사토의 다리 사이 바닥에 떨어지자 휴 사토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나는 턱을 옆으로 격하게 움직여 휴 사토의 손에서 턱을 빼낸 뒤 입을 열었다. 입술이 따끔해 아팠다.

“씨발. 야. 나 때문에 빡친 게 아니라 킹 때문에 빡친 거잖아. 킹한테는 지랄 못 하면서 나한테 지금 지랄하고. 존나 초라하다, 야. 니가 왜 킹한테 밀리는지 알겠어. 아, 외모만 봐도 답이 나오기는 하는데, 머리가 외모 따라가는 건 아니잖아. 근데 넌 킹보다 못생긴 주제에 멍청하기까지 해.”

빡쳐서 현 상황의 심각성도 잊고 멋대로 지껄였다. 내가 휴 사토 무리에게 잡힌 위험한 상황인 걸 알면서도. 킹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짜 킹을 등에 업고 오만해졌나 보다. 나는 뺨을 한 번 더 맞고서야 내 실수를 뒤늦게 깨달았다. 휴 사토는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어깨를 써서 같은 부위를 강하게 때렸다.

퍽!

손바닥으로 뺨을 맞은 것이었지만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귀가 터졌는지 귀가 아프고 먹먹했고 이명이 들렸다. 그리고 아픈 턱에서부터 찌릿한 감각이 뇌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휴 사토가 씨익 대면서 내 손을 발로 밟으며 외쳤다.

“아, 씨발. 내가 살다 살다, 뒷구멍 팔아 사는 남창 새끼한테도 무시를 당하고. 하. 참 나. 씨발!”

손가락이 으깨지듯 아팠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손을 피했지만 옆에 있던 놈이 강하게 내 손을 고정했고 그래서 휴 사토는 제대로 내 손을 조졌다. 눈물이 펑펑 흘러 바닥에 고였다. 나는 코를 한번 훌쩍이고 크게 외쳤다.

“킹! 킹 미나콤! 야! 킹! 이, 씨발, 지켜주기로 할 때는 언제고, 킹! 야!”

아픈 와중에도 배에 힘을 주며 강하게 외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오히려 킹의 이름을 들은 휴 사토가 짜증이 난다며 내 배를 발로 강하게 찼다. 나는 기침과 함께 침을 쏟아내며 바닥을 기었다. 씨발. 필요 없을 때는 불쑥불쑥 나타나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안 나타났다. 씨발 새끼.

배가 아파 바닥을 기듯 누워 있는 내 머리 위로 휴 사토의 말이 쏟아졌다. 귀가 아파 불분명하게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야. 킹 그 새끼는 니가 지금 이러고 있든 말든 관심 없어. 걔는 그냥 너 갖고 노는 거고. 어?”

그걸 누가 몰라, 씨발. 오히려 딱 그 정도였음 좋겠는데 더 과해서 문제지.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고 나는 그냥 기침만 콜록댔다. 휴 사토는 발을 들어 이번엔 내 등을 마구 밟았다. 나는 너무 아파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아픈 건 너무 싫었다. 그래서 킹을 찾아간 것이었는데 쓸모가 없었다. 나는 샌드백처럼 휴 사토의 화풀이를 받아줘야 했다. 휴 사토는 한참 때리다가 힘들었는지 헉헉대며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쪼그리고 앉아, 눕다시피 한 내 머리채를 잡아 제 얼굴 쪽으로 올렸다.

“반반한 얼굴 믿고 세상 너무 쉽게 살았지? 응? 좋은 부모 만나 좋은 부모 밑에서. 어?”

“금수저는, 큭, 너잖아. 씨발.”

“그 새끼가 좋은 부모라고? 씨발. 빡돌게 하네.”

휴 사토가 어떤 부모 아래에서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는 관심 없다. 그저 누구보다 강하고 높은 권력을 가졌음에도 자기연민에 똘똘 뭉쳐 저 지랄을 하고 있는 게 짜증 났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성형을 하든가 내가 잘생겼다고 열등감에 휩싸여 화를 내는 것도 어이없었다. 내가 어이없어 아픈 와중에도 웃자, 휴 사토가 욕을 지껄이며 다시 뺨을 때렸다. 3번이나 맞은 곳이었다. 슬슬 화가 나서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씨바아아아아아알! 아프다고!”

갑작스러운 외침에 휴 사토와 그 똘마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더욱 화가 났는지 휴 사토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야. 칼 가져와.”

씨발. 입 다물걸. 평소엔 성질 잘 죽이고 살았는데 너무 아프게 맞으니까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니까 때리지 말든가.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지금은 늦어버렸다. 똘마니가 어디서 구했는지 잘 벼려진, 쇠로 된 칼을 가져왔다.

“꿇으라면 꿇을게. 여기까지 하자.”

난 아픈 게 더럽게 싫다. 맞는 것도 싫은데 저런 칼로 상처를 입는 건 더 싫었다. 그러나 휴 사토와 똘마니는 내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휴 사토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래도 정이 있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사람에게 아량은 좀 베풀어 줘야지 않겠어?”

그냥 겁주려고 가져온 거지? 그치? 나는 웃으며 휴 사토에게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휴 사토는 그저 칼을 손에서 갖고 놀며 똘마니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리고 똘마니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휴 사토에게 내밀었는데 그건 가루였다. 대머리들이 들이마셨던 약인지 청산가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거, 뭔데. 나 죽이려고? 그럴 거면 칼은 왜 가져왔어, 고르라고?”

나는 맘이 급해서 빠르게 말을 내뱉으며 물었지만 휴 사토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지퍼 백을 열어 손톱에 흰 가루를 조금 옮기더니 제 코로 들이마셨다. 휴 사토가 날 잔뜩 괴롭히고 내 앞에서 자살하는 미친 계획을 한 게 아니라면 저건 분명 약이었다.

휴 사토는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낄낄대며 웃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다시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옆으로 손을 내밀었고 똘마니가 물인지 투명한 액체가 남긴 컵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휴 사토는 남아 있는 약을 몽땅 그 안에 부어 넣더니 컵을 흔들었다. 하얀 가루는 투명한 액체에 섞여 이내 제 색을 잃었고, 컵에는 다시 투명한 액체만이 남았다.

“삼켜.”

약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약의 양은 과했다. 저걸 약을 처음 하는 내가 하면 큰 타격이 올 게 분명했다. 그러자 휴 사토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약이 섞인 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나는 니 손가락이든 귀든 어디든 잘라낼 거야. 맨정신으로 받고 싶으면 말고. 나름 비싼 거야, 이거. 그래도 킹을 오래 보긴 했으니, 그간의 정으로 너그럽게. 응?”

너그러우면 보내 줘야지. 개소리야. 나는 아픈 게 더럽게 싫었다. 저걸 잔뜩 마시면 정신을 잃을 수 있지 않을까. 몸 어디가 잘리는 건 정말 싫었지만, 저놈은 그냥 보내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잠깐 머뭇대다가 휴 사토의 컵에 입을 갖다 댔다. 그리고 휴 사토가 컵을 기울여 줬고 액체가 곧바로 내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뜨겁고 쓴 술이 목 안으로 들어오자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다. 기관지가 아팠고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간신히 참고 모든 걸 내 안으로 집어넣었고 나는 그제야 기침을 터트렸다.

“콜록, 큭! 이거, 으윽. 약 맞아?”

“내가 그런 걸로 구라를 칠까.”

뭔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들끓었다. 배가 뜨겁다가도 온몸이 차가웠고 화가 잔뜩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술도 담배도 가까이한 적 없는 내게, 이런 화학적 자극은 너무 낯설었다. 나는 몸을 비틀었다.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그리고 온몸이 예민하다가 또 둔감해졌다. 내 손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내 다리와 팔이 뒤바뀌어 달린 것 같았다.

묶여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내 새끼손가락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야 내 손가락이 잘렸다는 걸 깨달았다.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그러자 아픔이 물밀 듯 쏟아졌다. 나는 엉엉 울면서 그저 한 단어만 외쳤다.

“킹, 킹! 킹 미나콤! 킹, 킹…….”

그리고 나는 칼이 네 번째 손가락에 닿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 * *

삐삐삐삐삐삐-.

일정한 리듬의 기계음이 들렸다. 무거운 눈을 겨우 떴다. 하얀 천장이 보여 그제야 내가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가 코를 스쳤다. 병원 냄새였다. 귀가 답답해 오른손을 겨우 움직여 만지자 붕대가 붙어 있었다. 휴 사토에게 맞아 고막이 찢어진 듯했다. 얼굴로 손을 옮기자 코에는 지지대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눈앞으로 들어 보자, 그곳은 멀쩡했다. 생채기가 나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꿈이었나? 그러나 왼손을 들자 꿈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손에 붕대가 칭칭 감아져 있었고 새끼손가락 쪽엔 딱딱한 고정대가 있었다. 씨발. 몽롱한 정신 속에서 드디어 예리한 고통을 잡아냈다. 약지도 잘렸나? 그건 아직 모르겠다. 거긴 멀쩡하길 겨우 빌 뿐이었다.

그리고 손목이 따가웠다. 심하게 아픈 건 아니지만 고통은 분명히 느껴졌다. 그곳에 뭔가 까맣게 묻어 있었다. 때라고 하기엔, 더러운 상태에서 붕대를 감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마이클 미치 짓인가? 눈썹을 찡그리며 오른손을 겨우 들었다. 그리고 왼손 손목에 감긴 붕대를 살짝 들어 올렸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지만 검은 글씨가 있었다.

‘King’

“이, 씨ㅂ…….”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목이 칼칼하고 아파 끝을 맺을 수 없었다. 씨발 새끼.

킹에게 갈 때, 나는 킹에게 딱 두 가지만 부탁했다. 첫 번째는 내가 판의 눈을 찌른 일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날 지켜 달라는 것이었다. 딱 두 개였다. 딱 두 개.

그런데 그놈은 그중 하나를 완전히 실패해버렸다. 휴 사토가 내게도 빡치긴 했다. 그러나 결국 내 손까지 잘라낼 만큼 휴 사토를 화나게 한 것은 킹이었고, 나는 킹 때문에 손가락이 잘렸다. 킹이 휴 사토를 조지겠다고 그 망할 청산가리를 풀어 대머리들을 죽이고 내 손가락마저 잘리게 만든 것이다. 그런 주제에 킹은 내 손목에 지 이름까지 박아 넣었다. 씨발, 욕심 많은 새끼.

킹이 내게 이딴 걸 박아 넣을 자격을 얻고 싶으면 내가 지금 손가락이 잘린 채 병원에 있어서는 안 됐다. 킹이 날 지켜주기만 한다면 킹에게 아양 정도야 떨 수 있고 교도소 안에 있을 때 사랑을 속삭이며 연애하는 척 굴 수는 있다. 그러나 킹 옆에 있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나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고 킹의 옆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화나서 오른손으로 침대를 쿵쿵 쳤고 마구 침대에서 몸을 마구 비틀었다. 그러다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씨바아알! 으악! 존나 아파!”

씨발. 온몸이 다 아팠다. 어디 어디를 다친 거지. 씨발. 너무 아파. 엄마. 나 아파.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진짜 눈물이 났다. 내 비명을 듣고 놀란 의사가 내 병실로 달려왔다가 거친 숨을 쏟아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날 보고 한숨 쉬었다.

“하아. 저기요. 환자분. 화난 건 알겠는데요. 아픈 건 그쪽이에요. 좀 진정하세요.”

의사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날 진정시켰다. 그리고 내 몸에 붙어있는 줄들과 연결된 기계들을 살펴보았다. 심각한 표정인지 무표정한 표정인지 모르겠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왜요? 저 뭐 문제 있어요?”

내가 심각하게 묻자 의사는 무심하게 답했다.

“아뇨. 성질부려서 좀 맥박 빨라지기는 했는데 정상이네요. 건강하네.”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의사는 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다.

“성질부리는 거 보니까 멀쩡한 거 같네요. 그럼 이만 가 봅니다.”

그리고 의사는 곧바로 등을 돌려 나가려고 했고 나는 그를 잡으려고 급하게 소리쳤다. 가뜩이나 목이 건조한데 소리까지 지르니 목 안이 찢어질 것 같아 기침을 섞은 말을 내뱉어야 그를 잡을 수 있었다.

“저, 큭, 저기요!”

의사는 내 부름에 한숨을 쉬었다. 참 일하기 싫나 보다. 그리고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내려간 안경을 올려 쓰고 말했다.

“아, 그리고 소리도 지르지 마요. 목 안이 건조해서 다쳐요. 근데 왜요?”

의사는 제발 일 좀 늘리지 말라는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살짝 패인 의사의 미간에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물었다.

“저 정확히 어딜 다친 거죠? 정신을 잃어서…….”

“흠, 정확한 건 차트 가져와서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의사는 다시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목을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자 병실은 1인실은 아니었지만 병실에는 나 혼자였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자 가슴이 아팠다. 설마 늑골도 부러졌나 싶어 불안해하고 있는데 의사가 차트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차트를 보며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일단 오른쪽 귀에 천공, 그러니까 구멍이 생겼는데 이거는 심하지 않아서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고요. 그렇지만 갑자기 귀에 큰 소리나 자극이 가해지면 안 돼요. 큰일 납니다. 그리고 배에 멍이 아주 크게 들었는데 멍은 배 말고도 뭐 이곳저곳 또 있고. 그리고 또 왼손 새끼손가락이 완전히 절단 났어요. 세 번째 마디까지. 다행히 깔끔하게 잘려서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 주름 부분이 잘려서 흉터가 생겨도 크게 티 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떨어진 걸 억지로 이어 놓은 거니까 조심하시구요. 네 번째 손가락은 조금 잘리긴 했는데 뼈는 멀쩡하니까 꿰매기만 했어요. 이건 괜찮아요. 아, 그리고 다량의 마약이 검출됐어요.

그래서 위세척해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하여튼 약 때문에 오랫동안 정신을 잃으셨는데, 이틀 정도 누워 계셔서 이제 슬슬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도 위세척 때문에 속은 아직 쓰릴 거구요.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시고요. 아직 머리 어지러운데 걷다가 넘어지면 겨우 이어 놓은 손가락 끊어질 수 있어요. 웬만하면 누워 있어요. 그리고 이곳저곳 상처 좀 있는데 꿰맬 정도는 아니고 그냥 소독 잘하고 약 바르면 낫는 정도라 다른 곳에 비하면 심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디 어디 있는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아, 그리고 배고프시죠? 오늘부터 유동식 정도는 먹을 수 있구요. 물도 마셔도 되는데 급하게 마시지 말고 천천히 마시고요. 아시겠어요?”

의사가 늘어놓은 상처들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중 네 번째 손가락은 잘리지 않았다는 말이 다행이었다.

“가슴이 아픈데 그건 왜 그런 거예요?”

“아, 거기도 멍. 많이 아파요? 엑스레이 한 번 더 찍어 봐야 하나. 피부가 아픈 게 아니라 안이 아픈 거 같으면 얘기해요. 다시 찍게.”

심각하게 아픈 것은 아닌 듯해 고개를 젓자 의사는 도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렸다.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았기에 급하게 그를 다시금 불렀다.

“저기! 선생님! 근데 오늘 며칠이죠?”

그러자 의사가 가운에 담긴 핸드폰을 꺼내 보더니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12월 30일이네요. 내년까지 입원하셔야겠어요.”

되지도 않는 농담을 던지고서 본인도 웃지 않은 채 의사는 휙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12월 30일이라. 내가 24살이 되는 날이었다. 생일 축하해, 로터스. 생일에 참 꼴이 좋다.

* * *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고 머리가 핑핑 돌고 몸이 아파서 내내 잠만 잤다. 그런데 내 이마를 더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섬세하고 부드러워 엄마인가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투정을 부렸다. 건조한 목을 타고 거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아파……. 온몸이 아파. 나 죽을 거 같아…….”

그러자 그 손이 날 달래듯 이마를 덮고 위로 쓸었다. 나는 그 손에 뺨을 대고 싶었지만, 뺨에는 큰 거즈가 붙어있었다. 나는 아프고 서러워서 눈을 감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그 손은 눈물을 훔쳐 갔고 나는 더 서러워서 크게 울었다.

“나는, 진짜 아픈 게 싫어. 근데 너무 아파. 흐윽.”

“그랬어? 내가 미안해. 울지 마, 응?”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은 남성의 음성이었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죽었고 여기는 교도소지. 그러한 자각과 함께 눈을 뜨자 눈앞에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킹이었다. 나는 킹을 보자마자 화가 났다. 그래서 손을 들려고 했지만 그 손은 손가락이 잘린 손이었고 킹이 내 손목을 잡아 말렸다.

“허니, 내가 미안해. 응? 때려도 되는데 이 손은 쓰지 마. 그러면 허니만 더 아파.”

킹이 내 손목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킹을 때리다 더 아프고 싶지 않았다. 나는 거친 숨을 가라앉히려 애썼고 킹은 내 팔꿈치 안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여리고 예민한 부위가 만져지자 찌릿한 감각이 예민하게 올라왔다. 짜증 났다.

아파서 잔뜩 약해진 나는, 작은 짜증에도 서러워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였다. 그러자 킹이 티슈를 뽑아 내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더니 내 코에도 휴지를 갖다 댔다.

“고막 다쳤으니까 세게 풀지 마. 그러면 고막에 난 구멍이 더 커진다더라.”

내가 닦으려고 했지만 킹이 휴지를 놓지 않아 킹의 손에 코를 풀어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막이 더 찢어지기는 싫어서 킹이 말한 대로 힘겹고 약하게 코를 풀어냈다. 대강 다 나오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킹이 휴지를 치워 버렸다. 그리고 킹은 엄지손가락으로 킹이 내 눈에 남아 있는 눈물을 완전히 훔쳐냈다. 시야가 또렷해졌다. 킹의 이목구비가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나는 검은 킹의 홍채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이제 왔어?”

화가 난 거였는데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자 킹은 눈썹을 살짝 찡그려 밑으로 내리고 거즈가 붙어 있지 않은 내 뺨을 엄지로 쓸었다.

“늦어서 미안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내 손가락은 이미 잘린 지 오래고 그래서 나는 생일을 손가락이 잘린 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맺은 계약을 거스른 것이었다. 킹의 과실로 우리의 계약은 깨진 것이었지만, 그래도 부려먹을 사람이 생겨 킹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목이 너무 말랐기 때문에.

“나 목말라. 물 좀 줘.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로.”

그러자 킹이 몸을 일으켰고 잠시 병실 밖에 나갔다가 오더니 컵을 하나 들고 왔다. 컵을 보자 갑자기 목이 너무 말라 극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킹은 내 침대를 올렸고 나는 킹이 얼른 컵을 입에 대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었지만 킹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천천히 마셔. 급하게 마시다 체할라. 물로 체하면 약도 없어.”

킹은 컵을 약간만 기울였고 적은 양의 물이 내 입 안으로 쏟아졌다. 그래도 사막 같던 목에 물이 들어오자 살 것 같았다. 나는 느린 속도로 큰 컵에 들어 있던 물을 모두 비웠다.

“나 물 한 잔만 더.”

조금 촉촉해진 목으로 아까보다 수월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킹은 내 입에 묻은 물을 엄지로 닦아 내고 다시 물을 떠 왔다. 그리고 아까처럼 킹이 약간만 기울여 준 컵으로 물을 한 잔 더 비워냈다. 젖은 입술을 닦아 내려 했는데, 킹이 엄지로 입술을 쓸어 닦았다. 그리고 말없이 내 얼굴을 보고 있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혀를 섞지 않은 스침 정도인 키스였다.

그래도 내가 병자라고, 킹은 욕심내지 않고 산뜻하게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왼쪽 손목 안쪽을 천천히 문질렀다. 바로 킹의 이름이 새겨진 그곳 말이다. 나는 새삼 열이 나서 킹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거 대체 뭐야? 나 정신 잃을 때 한 거야?”

킹은 손을 옮겨 멍이 든 내 팔을 안쓰럽다는 듯 스치듯 쓰다듬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허니는 아픈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마취했을 때 부탁했어. 덜 아프라고. 그리고 그걸 박아 넣어야 씹스러운 새끼들이 좆도 모르고 허니를 안 건들 거 같아서. 이거 많이 아파? 그래도 손보다는 안 아프지?”

미친놈. 손가락이 잘렸는데 바늘 좀 찔러 놓은 곳이 더 아플 리가. 상대가 안 되는 비교였다. 그리고 저 새끼는 타투가 무슨 마법이나 주술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타투 하나 새겨 넣는다고 내 몸을 지킬 수 있을 리 없었다. 타투에서 방패라도 나오면 몰라. 어이가 없어 킹의 정수리를 노려 보았지만 킹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내 표정을 보지 못했다. 킹은 말없이 내 팔만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머리숱이 빼곡하게 솟아난 그 정수리에 대고 물었다.

“휴 사토는 죽었어?”

“죽여 놓고 싶긴 했는데, 아직 멀쩡히 살아있지. 안타깝게도.”

킹이 팔꿈치 안쪽을 건드려와, 울렁거리는 물컹한 머리로 예리하고 날카로운 찌릿함이 박혀 들었다. 그러나 그건 잠시일 뿐, 끈적한 울렁거림에 다 먹혀 금세 사라졌다.

“죽일 거야?”

“흠, 그 새끼를 당장 찢어 죽이고 싶긴 한데, 그 새끼 목숨은 더럽고 쓸모가 없거든. 그리고 그 새끼 시체는 그냥 쓰레기잖아. 지구에 미안한 일이지. 다른 식으로 잘 처리해 보려고.”

킹은 말없이, 상처가 적어 거즈가 없이 드러난 내 팔만 문질렀다. 그리고 킹은 불쑥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새끼손가락 양쪽은 다 조져 놨어. 교도관 새끼들이 와서 잘라내지는 못했는데 확실히 부러뜨려 놨으니 나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그렇게 말한 킹은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날 향해 웃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주 웃어주지 않았다. 킹은 내게 웃음을 바라지 않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다시 팔을 문질렀다. 나는 그런 킹을 내버려 두며 예전에 읽었던 법전의 내용을 떠올렸다. 특히 사면법에 해당하는 내용을.

* * *

킹이 떠난 후 나는 다시 날 살펴보러 온 의사에게 말했다.

“교도소장 좀 불러 줄래요?”

의사는 차트에 고개를 박고 있다가 내 말에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차트로 고개를 박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은 왜요? 그리고 오라고 한다고 올까요?”

“오지 않으면 인권 단체에 증언을 하겠다고 전해줘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의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 한번 말은 해 볼게요.”

* * *

12월 31일이었다. 내가 입원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자 올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내가 24살로서 보내는 두 번째 날이었다. 생일은 물론 시시하게 지나갔다. 맛없는 유동식을 케이크 대신 먹었고 와인 따위 애초에 먹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미적지근한 물 말고 마실 수 있는 게 없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고 나도 나 자신에게 불러 주지 않았다.

병실엔 TV가 없었지만, 의사는 자길 불러 대는 내가 귀찮았는지 구형 라디오 하나를 내 병실에 두었다. 채널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항상 뉴스만 나오는 채널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CM송이 때늦은 내 생일 축하곡이었다. 물론 내 생일을 축하하는 게 아닌 자신들의 상품을 사달라며 신나게 빌어 대는 노래였지만. 관심 없는 뉴스들을 흘려들으면서 기다리는데, 그중 익숙한 이름 하나가 들렸다.

[다음 소식입니다. 골든 디거의 회장, 휴 사토의 비자금이 공익 제보자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자금은 약 1억 완 정도로, 검찰이 수사 중에 있습니다. 현재 휴 사토 회장은 탈세로 구속되어 내루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1억 완? 역시 돈 많은 놈은 규모도 남달랐다. 1억 완이라니. 1억 완……. 누구는 생일 선물로 1완 한 장 못 받았는데 누구는 1억 완을 갖고 있다가 걸렸단다. 근데 한순간에 1억 완이 사라지면 속이 꼬여도 엄청 꼬이겠다. 통쾌했다. 그 미친놈의 얼굴을 못 보는 게 아쉬웠다. 분명 소리를 질러 대며 길길이 날뛸 텐데. 그리고 혹시 킹 관련 뉴스는 안 나오나 싶어 계속 라디오를 듣는데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요 며칠 새 익숙해진 의사의 발걸음은 아니었다. 낯선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의 주인은 벌컥! 문을 열더니 거친 숨을 쏟아 냈다.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입소한 지 꽤 됐는데 대화는 처음 해 보네요. 소장님.”

내루 교도소의 소장 조셉 블랙이었다. 급하게 왔는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셔츠의 겨드랑이 쪽이 짙게 젖어 불쾌했다. 블랙은 티슈를 잔뜩 뽑아내 얼굴에 흘린 담을 닦아 냈다. 나는 그 얼굴에 휴지가 붙었다는 건 굳이 지적해주지 않았고, 티슈가 붙은 얼굴로 블랙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근엄한 목소리를 냈다.

“감히, 소장인 날 협박하는 건가. 리 재소자!”

소장이 강하게 말을 하자 턱에 붙어있는 티슈가 펄럭거렸다. 너무 웃겼는데 웃으면 가슴이 아파서 겨우 웃음을 참았다. 나는 소장과 달리 조용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게 통하니까 여기 직접 오신 거잖아요.”

“…….”

소장이 말없이 내 얼굴만 노려보며 서 있었는데, 그래서 강한 콧바람이 나와 티슈가 펄럭거렸다. 저 꼴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내 턱을 톡톡 쳤다. 그러자 소장이 무슨 뜻이냐고 더욱 고개를 찌푸렸고 나는 소장의 얼굴을 가리킨 다음에 다시 내 턱을 톡톡 쳤다.

“거기, 티슈 붙었다고요.”

그러자 소장은 휴대폰을 꺼내 제 얼굴을 비춰 보더니 급하게 휴지를 떼어냈다. 그리고 민망한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큼, 큼!”

나는 소장의 헛기침이 끝나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새해네요. 그쵸?”

“그렇지.”

소장은 무슨 꿍꿍이냐는 경계 서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소장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고개를 반대로 돌려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었다.

“근데 전 연말이랑 새해를 병원, 그것도 교도소 병원에서 보내니 참 마음이 좋지 않아요. 소장님은 재소자로 있어 보신 적이 없어 모르시겠지만……. 상당히 외롭고 서러워요.”

“그래서!”

계속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자 소장이 답답해 화가 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붕대가 감긴 귀를 감싸 소장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소장님. 저 귀에 구멍 났어요. 큰 소리 들으면 고막에 난 구멍이 더 커진다고요. 미치셨나 봐요?”

무엄한 단어에도 소장은 고막 구멍이 커진다는 말에 놀랐는지 얼굴만 찌푸린 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신년이니, 그러면 신년 특별 사면이 있을 테죠?”

내가 자신을 부른 목적을 그제야 깨달은 소장이 골이 팬 미간을 평평하게 펴며 모른 척했다.

“글쎄, 그게 매년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소장 권한이 아니라 대통령 권한이라 내가 함부로 말해줄 수 없네.”

웃겼다. 연기를 나름 하는데 엄청 못했다.

“이번에 이 교도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정부에 꽤 타격이 큰 걸로 알아요. 인력과 재정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만천하에 알려졌고 인권 단체도 정부를 꽤 압박하고 있다죠? 이번에 청산가리 빨아먹은 대머리 한 명이 더 죽었다면서요? 안타까워라. 그래도 함께 노래 연습하며 꽤 정을 쌓았는데 말이죠.”

아까 라디오에서 지나가듯 그놈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죽은 놈의 이름도 모르지만 나는 슬픈 척 눈과 눈썹을 내렸다. 그러자 소장이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 다른 쪽을 바라보며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나는 멀쩡한 오른팔로 소장의 손을 끌어 잡았다. 그러자 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 표정을 못 본 척하며 소장을 위로하듯 손등을 쓸어 주었다.

“물론 소장님도 힘드신 거 알죠. 한정된 예산에서 어떻게 하면 교도소 살림을 잘 꾸려 나갈지 항상 고민하시느라 교도소도 잘 못 오시는 거잖아요. 소장님이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몰라주고, 다들 너무해요. 근데 인권 단체들을 그나마 조용히 시키고, 한정된 돈에서 더 나은 살림을 꾸릴 방법이 재소자를 줄이는 거라는 거, 소장님도 알고 똑똑한 대통령 각하께서도 아시잖아요. 그래서 특별 사면을 이미 한다는 얘기, 다 전해 받으셨잖아요.”

소장이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지었다. 되지도 않는 연기에 속아 넘어갈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나는.

“…….”

“듣기론 조건에만 들어맞으면 누가 사면될지는 교도소 측에서 정한다던데. 전 강력 범죄자도 아니고 이미 형기 3분의 1을 여기서 보냈고, 징계도 없이 기록이 깨끗해요. 그 정도면 가석방 대상도 되잖아요? 그리고. 소장님도 제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마는, 제가 교도소에 온 게 억울한 구석이 좀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 절 그 목록에 넣어주세요.”

교도소 안에서 사고를 친 게 있기는 했지만 기록상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기록상 모범수였고 가석방을 신청해도 서류 심사를 통과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소장은 내게 지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내 손에서 강하게 제 손을 빼낸 다음에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센 척은. 허세가 웃겼지만 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저곳 맞고 며칠 씻지 못하긴 했지만, 내 얼굴은 그래도 쓸 만했다. 그리고 소장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전해 받으신 대로 증언을 하는 수밖에 없죠……. 아시겠지만, 특별 사면이 아녀도 몇 달만 더 버티면 전 출소를 해요.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적어지겠지만 대통령 인사인 소장님의 치부는 대통령께도 큰 영향을 미치겠죠? 그리고 더욱이…….”

소장은 내 가련한 표정에 속아 얼굴을 잠시 풀었다가 내가 내뱉는 말에 표정을 팍 구겼다. 구겨진 신문지 같았다.

“더욱이?”

“킹의 부탁입니다. 킹에게 뒷돈 거하게 받아먹으시면서 돈값은 해야죠.”

나는 무표정하게 소장을 바라봤다. 킹의 이름이 나오자 소장이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돈을 어지간히 많이 받아 처먹었나 보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킹 미나콤이?”

대강 속아 넘어가는 것 같다. 나는 내 다친 손을 들어 소장에게 보여주며 남의 말을 전하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여기 안에 있으니까 이렇게, 범죄자 새끼들이 날 조져 놓으니까 차라리 얼른 바깥에 나가라던데요. 아, 근데 킹이 요즘 휴 사토 때문에 바쁘니까 그런 하찮은 일에 오라 가라 하지 말라고 제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래요.”

“…….”

됐다. 소장은 이미 신년 특별 사면 목록에 내 이름을 넣었다. 그렇지만 잠시 생각하는 척 굴며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수가 빤히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애절한 표정을 지었고 소장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정말 너무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이건 진심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나와의 대화에서 패배한 소장은 자존심이 상해, 나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등을 돌렸다. 나는 그 등에다 대고 급하게 소장에게 물었다.

“아. 특별 사면 시에도 가석방처럼 보호 감찰 기간이 있나요?”

“가석방과 달리 특별 사면에는 보호 감찰이 없는 걸로 알고 있네.”

소장은 등을 내게 돌리지는 않았지만 걸음을 멈춰 서서 내게 답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에게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럼 다음 달 중으로 나가나요? 출소하는 자들의 목록은 모두에게 공개되나요?”

“개인 정보이고 갈등을 빚을 수 있어서 알려주지는 않네만…….”

내 계획대로 일이 풀려가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기뻐서 얼굴로만 짓는 웃음이 아닌, 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터트렸다가 가슴이 아파 윽! 하는 신음 소리를 흘렸고 그 소리에 소장이 등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나는 아프지만 소장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바깥을 가리키고 말했다.

“그럼, 알겠으니 나가 주시겠어요? 아 나가기 전에 저 물 한 잔만……. 교도소 관리가 엉망이라 제가 손가락도 잘리고 온몸 구석구석이 너무 아파서 물도 떠 마시질 못하네요.”

소장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주제에 내게 물을 한 컵 떠다 줬다. 내가 너무 차갑다고 반려하자 뜨거운 물을 떠 왔고 그건 너무 뜨거워서 못 마신다고 하자 그 두 갤 섞어 적당한 수온을 만들어 준 후에야 떠났다. 소장에게 컵까지 들어 달라고 했다가는 얼굴에 물을 쏟을 것 같아서 멀쩡한 오른손으로 컵을 들어 마셨다. 물맛이 아주 달았다.

* * *

나는 요 며칠 10시만 되면 잠들었지만 오늘은 그 시간이 지나도 깨어 있었다. 뉴스에서는 각 지역에서 펼쳐지는 신년 맞이 행사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올해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구속당했고 조사를 받았으며 교도소로 왔다. 그리고 킹 미나콤이라는 거물과 엮이게 되었고 사람을 해쳤고 또 사람이 죽고 실려 가는 걸 꽤 많이 봤다. 그러나 내년은 다를 것이다, 내년을 며칠만 버텨내면 나는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과 같은 생활은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이 엿 같은 공간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띠, 띠, 띠, 띠, 띠!

1초마다 울리는 카운트다운 기계음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무리 음과 함께 아나운서의 벅차고 신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Happy New Year, Lotus.

* * *

나는 병상에서 새해의 첫 주를 보냈다. 그동안 킹이 몇 번 들락거렸고 소장도 한 번 찾아왔다. 소장은 1월 1일에 날 찾아와서 대뜸 말했다.

“1월 15일이야.”

“뭐가요?”

“출소일.”

“아하.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지만 소장은 얼굴을 구기며 급하게 병실 밖으로 나갔다. 1월 15일이라. 2주 정도는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킹은 내가 입원한 동안 자주 병실을 드나들었지만 내게 별다른 짓은 하지 않았다. 날 애 취급하며 아동용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자장가를 불러 주거나 내 팔을 닦아줬다. 좀 신난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있지는 못했다. 바쁜지 길어야 한 30분 정도 있다가 내 이마에 뽀뽀를 하며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가끔 참지 못하고 키스를 할 때도 있었는데 혀를 집어넣지는 않았고 그저 입술과 입술이 맞대거나 내 입술을 핥는 정도였다. 깊은 키스를 하면 귀에 무리가 가서 안 된다는 의사의 엄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수월하게 몸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젊었고 건강했으며 그래서 내 몸의 회복 능력은 빨랐다. 손가락은 나으려면 한참 멀었지만 몸에 난 멍들은 점차 옅어졌고 귀도 점차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목에 박힌 킹의 이름도 딱지가 졌다가 떨어지며 점차 제 자리를 잡아갔다.

‘King’

타투를 박은 이가 꽤나 솜씨가 좋은지, 글씨 자체는 깔끔하고 이뻤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킹도 제 몸에 타투를 박았을까? 그러나 드러난 킹의 몸에는 타투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박았나 싶었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 * *

신년이라 다들 신났는지, 침대가 부족해진 탓에 나는 1월 10일에 퇴원했다. 상처는 많이 나았고 출소가 5일도 남지 않았던 터라 나는 꽤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드디어 몸을 똑바로 씻은 날이었다. 젖은 머리로 내가 방에 들어가자(킹은 씻는 걸 도와주겠다고 날 한참 귀찮게 했는데, 겨우 떨어트려 놓아 혼자 씻을 수 있었다.) 킹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목에 부드럽게 손을 감은 뒤 내 입술에 제 것을 박았다.

내 고막은 재생되어 구멍이 사라진 상태였는데, 킹은 그때만을 기다려 온 것 같았다. 나는 거부하지 않고 킹의 어깨에 팔을 올려 키스를 받았다. 킹은 내 입술을 살짝 핥더니 곧바로 내 턱을 잡아 내 입을 벌리게 하곤, 제 혀를 내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킹의 두툼한 혀가 오랜만에 내 입 안에 머물렀으며, 킹의 몸에서 나는 페퍼민트 향이 오랜만에 강하게 느껴졌다.

킹은 손을 내려 내 허리를 잡았고 나는 왼팔은 펴서 킹의 어깨에 그대로 걸쳐 둔 채, 오른팔로만 킹의 목을 감쌌다. 킹이 살짝 웃어 입술을 움직이는 게, 내 입술에서 느껴졌다.

“오랜만이야. 허니.”

킹이 입술을 살짝 떼어내고 내 입술에 숨을 불어넣듯 말했다.

“어제도 봤잖아.”

나는 코끝을 킹의 코끝에 천천히 비비며 말했다. 그러자 킹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게 본 거야? 나는 허니가 너무 그리웠는데. 허니 침대를 봐도 허니가 없고, 허니 칫솔은 있는데 허니가 없고. 난 진짜 허니가 너무 간절했단 말야.”

“아아.”

진짜 연애하듯이 굴고 있었다. 그렇지만 5일 정도는 장단 맞춰 줄 수 있었다.

“나도 자기가 너무 짧게 있다 가서 섭섭했어. 나 다치니까 못생겨졌어? 그래서 별로였어?”

“아니. 그래도 이쁘고 귀여웠는데 너무 바빴지. 그리고 허니 아픈데 그대로 덮쳐 버릴까 봐.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길 내심 바랐어?”

킹이 내 엉덩이를 강하게 쥐었다.

“나 완전히 나은 거 아니야. 아직 아파. 섹스하다 손가락 또 떨어지면 어떡해. 나 아픈 거 싫단 말야.”

“알아, 알아. 그니까 만지기만 할게.”

킹은 옷 위로 내 엉덩이를 문질렀다. 큰 손이 오랜만에 내 엉덩이에 닿아 온기를 전하고 있었다. 맞닿은 킹의 허리 아래가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안다면서 거기는 왜 세워?”

“오랜만에 끌어안고 있는데 어떻게 안 세워?”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려고?”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면서 킹은 아직 날 끌어안고서 좆을 더 세우고 있었다. 하. 나는 킹의 좆을 덥석 쥐었고 킹은 큰 등을 움찔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하아…….”

“빨아 줄 테니까, 문 닫고 옷 벗어.”

그간의 정이 있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킹이 들뜬 얼굴로 문을 쾅! 닫더니 옷을 내렸다. 점프 슈트라 빨아 주려고만 해도 상체가 벗은 몸이 된다는 게 퍽 야했다.

킹은 상체와 좆을 드러낸 채 침대에 앉았고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왼손이 멀쩡하지 않아 오른손만 이용해 킹의 좆을 잡았다. 기대감에 부풀었는지 혈관이 울룩불룩 움직이며 좆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일단 손으로 킹의 걸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자 킹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길게 신음 소리를 냈다. 낮고 그르렁거리는 소리였다. 큰 개 같았다.

“크윽, 하아…….”

그리고 킹의 축축하고 부드러운 귀두를 엄지로 슬슬 쓸었다. 킹은 내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언제 넣어? 허니 구멍에. 허니 손도 좋은데, 허니 윗구멍에 넣어준다며.”

하여튼, 말본새하고는. 나는 입을 열어 귀두부터 머금었다. 혀로 귀두 가운데 갈라진 틈을 쓸었고, 혓바닥으로 귀두를 전체적으로 핥아 올렸다. 위에서 킹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귀두 아래 옴폭한 부분을 혀로 문질렀고 귀두 전체를 입 안에 물어 천천히 좆 기둥을 입에 머금었다. 그러나 귀두만으로 입 안은 거의 꽉 차 좆 기둥을 검지 두 마디 정도만 물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입 안에 있는 부분을 최대한 물고 핥으면서 아래를 손으로 훑었다. 양손이면 더 편했겠지만, 오른손만으로 최대한 나는 애쓰고 있었다.

“하아……. 그동안 병원이 아니라 좆 빠는 거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도 다녔어? 응?”

그런 학원이 어디 있어. 나는 어차피 좆이 물려 말을 못 했지만 킹의 말을 일부러 무시하고 머리를 움직였다. 입술을 둥글게 모아 끝까지 뽑아낸 다음 다시 머금어 깊게 삼켰다. 킹은 내 머리를 잡고 잡아당겼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피가 예민해졌다.

“씨발, 하아. 씹. 윗구멍도 잘 조이네? 우리 허니는 구멍 쓰는 데 타고 났나 봐. 응?”

킹이 흥분했는지, 내 머리를 잡고 눌렀다.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나는 킹이 이끄는 대로 머리를 움직였다. 큰 킹의 좆을 한참 물고 있자 다물지 못한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고 킹은 엄지로 내 침을 닦아 내더니 제 엄지를 빨아 내 침을 핥았다.

“하, 씨발. 언제 다 낫는대?”

“읍, 하아. 그 뼈가 잘린 거라 최소 6개월에서 1년.”

나는 킹의 좆을 입에서 빼내어 귀두를 한번 핥아 올린 후 답했다. 그러자 킹이 답답하다는 듯 욕을 낮게 뱉었다.

“씨발, 휴 사토, 씨발 새끼. 다 분질러 놔야 했어. 씨발.”

크고 굵은 킹의 좆을 왕창 머금고 빨다 보니 턱이 아파 나는 혀만 내밀어 킹의 좆을 전체적으로 핥아 올렸다. 뿌리부터 혈관을 따라 핥아 올리니 킹의 낮은 신음이 정수리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귀두부터 뿌리까지 다시 핥아 내려가 킹의 불알을 머금었다.

세밀한 주름이 진 부위는 좆 기둥보다 말랑했다. 그러나 턱이 아파 전체를 물진 못하고 일부만 입술로 머금고 입 안에서 혀로 핥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킹의 기둥을 훑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침으로 푹 젖은 좆은, 건조한 손에서 수월하게 문질러졌다.

“하아, 씹. 그동안 아이스크림이라도 빨면서 연습했어? 응?”

“아픈데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먹어.”

나는 킹의 주름진 불알에 입술을 갖다 댄 채 입술을 움직였다. 킹의 예민한 부위에 미약한 진동이 생겼고 미지근한 바람이 거기에 닿아 내 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럼 허니가 퇴원하고 첨 먹는 게 내 좆인 거네? 그러면 내가 힘내야겠다. 그치?”

이미 잔뜩 좆이 성나 있으면서 뭘 어떻게 힘을 더 내겠다는 건지. 턱이 어느 정도 다시 괜찮아지자 나는 다시 킹의 좆을 귀두부터 머금었고 멀쩡한 오른손은 뻗어 킹의 배를 훑었다. 킹의 배는 단단하고 마구 갈라져 건조했다. 킹은 제 배를 문지르는 내 손에 자기 손을 얹더니 내 손을 들어 올려 혀로 핥았다. 손이 위로 딸려가 조금 자세가 올라갔다. 그리고 킹의 좆을 머금은 머리도 움직여 좆이 훑어졌다.

킹은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두껍고 습한 혀로 마구 훑었다. 내가 킹의 좆을 빨 듯이 킹은 내 손을 빠는 것 같았다. 킹은 손을 뒤집어 내 손바닥 안을 핥고 여린 살을 깨물었다. 나는 킹을 따라 킹의 여린 귀두 피부를 단단한 치아로 살짝 물었다. 그러자 킹이 움찔대더니 내 손을 놓고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 머리를 깊게 처박았다.

“읍!”

킹의 좆이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깊은 목구멍을 처박았다. 너무 커서 숨이 막히고 아팠다.

“씨발, 하아. 존나 귀엽다니까. 어?”

귀엽다면서 킹은 봐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내 목젖을 제 좆으로 쳐 올렸다. 토악질을 할 것 같았다. 멈춰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좆에 막혀 있었다. 대신 나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잡은 킹의 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킹의 손에 깍지를 꼈다. 한 손으로만 머리를 잡자, 머리를 누르는 힘이 약해졌다. 그러나 킹은 내 뒤통수로 손을 옮겨 다시 거칠게 내 머리를 처박았다.

“읍! 우욱!”

“하아. 그거 알아? 존나 사랑스러워. 씨발. 어디서 이런 게 왔지? 응?”

나는 깍지 낀 킹의 손에 손톱을 박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깍지 못한 손톱은 킹의 살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킹은 변태여서 더욱 흥분해, 깍지 낀 내 손등에 내가 했던 것처럼 이를 박았다.

나는 그 손을 움직여, 킹에게 손이 얽혀 잡힌 채 킹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벽을 치는 것처럼 딱딱했다.

“알았어. 앙탈은.”

그제야 킹은 내 머리를 누르던 손을 떼어냈고 나는 킹의 좆을 얼른 입에서 빼어낸 뒤 엎드려 기침만 뱉어냈다.

“크윽, 큭! 하아. 하아.”

바닥으로 침이 흥건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아직 손이 킹에게 붙들려 있었고, 킹은 손을 끌어당겨 날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킹이 이끄는 대로 일어나자 킹은 제 허벅지에 날 앉혔다.

킹은 날 강하게 끌어안은 채, 내 엉덩이에 제 좆을 비볐다. 거친 옷 재질만 스칠 텐데도 킹은 잔뜩 흥분해서 내 어깨에 머리를 박고 거친 숨을 흘렸다.

“하아, 하아.”

나는 멀쩡한 오른손을 킹의 등 뒤로 돌려 킹의 등을 더듬었다. 단단하게 근육이 자리 잡은 킹 가운데는 깊은 골이 있었고 나는 그쪽을 검지로 천천히 훑어 올렸다. 킹은 제 좆을 잡고 내 엉덩이에 비비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 내 입술로 다시 입을 갖다 댔다. 그러나 키스는 부드러웠고 연약했다.

입과 좆이 반대되는 모순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하던 킹은, 결국 내 엉덩이에 정액을 쏟아냈다. 오랜만에 입은 연보라색 점프 슈트 죄수복이 킹의 끈적하고 짙은 정액으로 젖어들어 갔다.

킹은 내 뺨에 입을 맞추고는 광대를 길게 혀로 핥아 올렸다.

“씨발. 다시는 아프지 마. 로터스, 너 없으면 이제 죽겠으니까. 어?”

죽일 생각은 없지만. 미안, 어쩔 수 없네. 나는 킹의 견갑골을 천천히 둥글게 문지르며 킹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나 키스 또 해줘. 아까처럼 천천히. 부드럽게.”

킹은 물론 거절하지 않고 다시 내게 키스해주었다. 내 요청대로 부드럽고, 천천히.

* * *

오늘은 출소가 4일 남은 날이었다. 나는 왼손잡이고 왼손이 다쳤기 때문에 그동안 킹이 밥을 먹여 줬고 씻겨줬으며 킹의 손을 타야만 했다. 나는 오른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킹은 고집을 피웠고 나는 고집을 들어줬다. 이제 볼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식당에서 킹이 떠주는 밥을 먹으며 퇴원 후 처음으로 휴 사토를 보았는데 양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얼굴이 엉망이었다. 휴 사토의 똘마니는 더 흉했다. 저런 꼬라지로 더욱이 1억 완을 잃었으니 얼마나 속이 아플까. 나는 휴 사토를 바라보다가 휴 사토와 눈이 마주쳤고 휴 사토의 흉한 얼굴을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그러자 휴 사토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쟤가 내 배도 찼는데 엄청 아팠어.”

나는 휴 사토를 가리키며 킹에게 말했고 킹은 휴 사토를 노려보고는 숟가락을 내 입으로 넣었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돌려줄게.”

그리고 킹은 휴 사토를 불렀다. 큰 소리였지만 휴 사토는 모른 척했고 킹은 다시 크게 휴 사토를 불렀다.

“야! 비자금으로 1억 완 꿍쳐 놓고 다 털린 휴 사토!”

유치했다. 그렇지만 휴 사토에게는 뼈아픈 말이었는지 휴 사토는 고개를 돌려 킹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킹은 낄낄댔다. 어린애 같았다. 2, 30대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1억 완은 너무 어른의 돈이었지만.)

* * *

나는 손이 다쳐 일을 하지 못했지만 킹을 따라 정보 처리실로 향했다. 어차피 손이 멀쩡할 때도 일은 안 했으니까.

6권을 다 읽어 나는 마지막 권인 7권을 챙겨갔다. 대체 어떤 개판으로 이야기가 끝날지 궁금했다. 평소처럼 킹은 책상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 봤고 나는 손 때문에 불편하긴 하지만 나름 용케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킹의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킹이 보고 있는 건 평소와 다른 창이었다. 평소엔 숫자가 가득한 창을 봤는데. 나는 무심한 목소리로 킹에게 물었다.

“자기, 취미 그만뒀어?”

내 물음에 킹이 노트북에서 손을 떼어내고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아아. 좀 재미없더라고, 이제.”

그렇게 답한 킹은 내게 싱긋 웃어주더니 다시 등을 돌려 일을 했다. 아아. 등 돌린 킹에게 보일 리 없지만, 나는 책으로 내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가렸다.

***

내일이 출소일이었다. 나는 슬슬 출소 준비를 해야 했다. 딱히 짐을 챙길 것도, 회포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대신 나는 휴 사토를 찾아갔다. 휴 사토는 어느 창고에 본인 똘마니와 단둘이 있었다. 내 손가락을 자른 그곳이었다. 씨발.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지만 그 날의 술 냄새와 약 냄새, 피 냄새가 내 코에 스치는 것 같았다. 토기가 올라왔으나 간신히 참고 미소 지었고, 내가 들어가자 휴 사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손가락 또 잘리고 싶어?”

“니 손가락으로 내 거 자를 수나 있긴 해?”

나는 깁스에 감긴 휴 사토의 양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사토의 똘마니가 휴 사토 앞으로 섰는데, 휴 사토가 손을 들어 막았다. 깁스 때문에 손 자세가 웃겼다.

“가만히 있어 봐. 그래서, 왜 왔는데?”

손가락이 꺾이니 기도 꺾였는지 휴 사토가 들어나 보겠다는 태도로 팔짱을 꼈다. 그래도 꺾인 손가락을 굽힐 수 없어 양손 새끼손가락을 꼿꼿하게 편 상태였다. 우스꽝스러웠다.

“너 비자금 털어먹은 공익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거 같아서.”

내 말이 끝나자 휴 사토가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쥐려고 했지만 손가락 깁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가볍게 휴 사토를 피해낸 다음 말했다.

“진정 안 하면 얘기 안 해.”

휴 사토가 잔뜩 거친 숨을 내쉬며 씨익 댔다. 휴 사토는 숨을 고르더니 다시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가 앉았다.

“그래서 어떤 새끼인데.”

“너도 아는 새끼야.”

“그러니까 어떤 새끼!”

휴 사토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고 나는 다 나았지만 부러, 고막이 터졌던 귀를 막았다.

“너 때문에 나 고막 터진 거 몰라? 목소리 낮춰.”

그러자 휴 사토는 입을 다물었다. 코 사이로 거친 김이 나오는 것 정돈 봐줄 수 있었다.

“니 비자금 돈세탁 맡겼지? 암호 화폐로 주고받아 추적하기 힘든 거로.”

내 말에 휴 사토가 놀라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나라고 생각하는 건가.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공익 제보자를 아니까 알지.”

“그래서, 씨발 그 씹새끼가 누군데.”

“킹.”

내 말에 휴 사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킹 미나콤이라고. 멍청한 새끼야. 킹 미나콤이 돈세탁하는 새끼고 니가 킹한테 돈을 갖다 바쳤다고, 이 똘추야.”

“킹, 그 새끼가?”

두 번이나 말했는데 왜 못 알아 처먹냐고. 화나게.

“그거 알 만한 놈들은 다 아는 킹 취미인데 몰랐어? 돈을 맡기려면 나눠 맡기든가.”

알 만한 사람이 몇인지는 몰라도 나는 알 만한 놈이니까 알았다.

“…….”

휴 사토가 말을 잃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대강 내 얘기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겠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무사히 교도소를 빠져나가야 하고 킹은 분명 내 계획에 방해가 될 것이다.

“아, 그거 알아? 로버트라고, 플라스틱 조각을 녹여 붙여서 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애가 있거든. 걔가 제일 처음 만든 역작은 마이클 미치라는 새끼 죽이는 데 썼고 최근에 또 하나를 만들었는데, 분명 그때 그거보다 성능이 좋을 거래. 근데 직접 시험을 못 하니까 되게 아쉬워하더라고. 걔 칼은 사람 찌르는 데 써야 하는 거라. 걔한테 칼 시험 해주겠다고 말하면 기꺼이 빌려줄 거야.”

“무슨 꿍꿍이지?”

“아무것도.”

나는 방긋 웃었다. 그리고 휴 사토의 이어질 말을 듣지 않고 등을 돌려 창고 밖으로 나갔다. 이 창고는 너무 싫었다.

* * *

출소 날이기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너무 설렜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아 킹이 먹여주는 밥도 군말 없이 깨끗하게 먹었다. 그리고 킹과 방으로 향했다. 오늘 출소는 이른 오후였고 점심을 먹고 나서 출소할 수도, 아니면 그 전에 출소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휴 사토가 일을 벌이려면 지금이 적기였는데 휴 사토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조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고 킹이 내 볼을 톡 치는 게 느껴졌다.

“왜 기분이 그렇게 좋아?”

“음, 밥이 맛있어서. 입원할 때는 멀건 죽만 먹었거든.”

킹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씨발. 어떻게 하지. 화장실 간다고 그러고 나갈까. 근데 저번에 화장실 간다고 그랬다가 다쳐서 순순히 보내줄 리 없었다. 킹은 이제 날 혼자 놔두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킹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나콤.”

낯선 얼굴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킹을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고 킹은 그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아, 잠깐만…….”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던 놈은 갑자기 칼을 꺼내 킹과 내가 서 있는 쪽으로 휘둘렀다. 2층 난간에 기대어 웃고 있는 휴 사토가 언뜻 보였다. 아아, 역시. 칼도 휴 사토가 줬나 보다. 로버트가 만든 플라스틱 칼 따위랑 비교도 안 되게 길고 튼튼하고 예리해 보였다.

휴 사토가 보냈다면 킹을 노리는 것일 텐데 놈은 실력이 안 좋은지, 아니면 원래 의도가 그랬는지 내 쪽으로 칼을 향했다. 나는 뒤로 얼른 몸을 물려 괜찮았지만, 괜히 킹은 날 막아섰고 그래서 배에 칼이 깊게 박혀 들어갔다.

“크윽!”

킹이 짧고 강한 신음 소리를 냈다. 놈은 재빠르게 킹의 배에서 칼을 다시 뽑더니 다시 킹의 배로 칼을 찔러 넣었다. 칼을 꽂아 넣는 해적 룰렛 같았다. 그렇지만 배 좀 찔렀다고 킹의 머리가 날아가진 않겠지, 재미없게도. 킹은 신음과 함께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킹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킹의 검고 분명한 홍채와 내 눈이 맞닿았지만, 날 부르는 목소리에 금방 연결은 끊어졌다.

“로터스 리. 출소해야지.”

교도관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고 움직이려 했지만 킹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문신이 있는 손목을 말이다.

“하! 씨발, 출소?”

킹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아아. 더 이상 숨길 수 없네. 나는 살짝 킹에게 웃어주었다.

“응, 맞아. 출소.”

나는 가볍게 킹의 손목을 놓았다. 칼에 찔린 킹은 원래 가진 힘의 반의반도 쓰지 못했다. 고통과 상처가 킹 같은 이를 무디게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킹은 고통에 둔감한 편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킹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다시는 보지 말자. 킹 미나콤.”

미약한 음성이었으나 분명 킹의 귀로 박혀 들었다. 킹이 내 말이 끝나자 낮게 욕을 뇌까렸으니까. 킹은 이번에 내 발목을 붙들었다. 내 발목은 킹의 큰 손 하나로 전체가 잡혔다.

“씨발, 하아. 이대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고?”

도망? 어이없었다. 아니야, 킹. 도망이라니.

“도망이 아니야. 킹. 출소야. 출소. 합법적인 출소.”

나 로터스 리는 1월 15일 오늘 자로 출소하는 거야. 도망은 크리스마스 때 멍청한 것들이 벌인 탈옥에나 쓰는 말이지. 그렇지만, 굳이 킹에게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 다른 교도관들이 달려왔다. 그제야 킹이 찔린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 탓에 킹은 내 발을 잡은 손을 놓쳤다.

아무것도 걸릴 게 없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도관을 따라갔다. 그런데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익숙했다. 등을 돌려보니 킹이었다. 킹이 날 보면서 웃고 있었다. 배를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정말 크고 광포하게.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아프지도 않은지 배 근육을 심하게 움직이며 웃었다. 좆된 것 같다. 아니, 좆됐다. 그렇지만 이미 킹에게 들켰고 나는 출소이고,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출소의 행복이 너무 커 미래에 찾아올 공포를 지워주었다. 나는 킹에게서 눈을 떼어내고 남색 셔츠를 입은 교도관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곳을 나갔다.

* * *

교도관이 박스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내가 입소할 때 입고 있던 옷들과 소지품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박스에 담겨 있던 것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입소할 때보다 살이 빠졌는지 옷이 헐렁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까만 화면인 휴대폰 전원을 눌렀지만 역시나 켜지지 않았다. 대신 입구에 서 있는 교도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러자 교도관이 잔뜩 경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 저 카드 정지됐는지 확인하고 택시 좀 부르게요.”

나는 검정 반지갑을 들어 교도관에게 보여줬고 그러자 교도관은 머뭇대더니 결국 휴대폰을 내밀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해.”

“네.”

나는 카드에 적혀 있는 카드사 번호에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쓰는 휴대폰이었다. 상담이 많지 않은지 상담원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친절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네, 고객님. 무슨 일이신가요?”

나는 상담원을 따라 친절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아, 제가 카드를 오랫동안 안 써서요. 그래서 혹시 정지됐나 해서요.”

“얼마나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7, 8개월쯤이요.”

“네, 고객님. 현재 카드 사용 가능하시구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상담원 미나 잉이었습니다.”

다행히 사용이 가능하구나. 은행에 가서 돈을 당장 다 출금해야겠다. 엄마의 보험금까지 싹 다.

그리고 난 콜택시 번호를 검색한 후(교도관이 엄청 눈치를 줬다.) 그 번호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걸걸한 남자 목소리였다.

“네, 내루 콜택시입니다.”

“네, 여기 내루 교도소인데요. 콜택시 하나 부를 수 있을까요?”

남자는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 잠시 말을 하지 않더니,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 근방에 차가 하나 있네요. 한 10분에서 15분 내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일이 수월하게 되어 가고 있었다. 출소 날부터 예감이 좋은걸. 나는 휴대폰을 옷에 문질러 닦아 교도관에게 건네줬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음에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교도관이 문을 열어줬고 내게 말했다.

“다신 들어오지 마라.”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 * *

내 이름은 로터스 리. 말 그대로 연꽃이란 뜻이다. 엄마가 맑은 호수에 분홍 연꽃이 떠 있는 태몽을 꿔서 내게 준 이름이다. 그리고 23살, 아 며칠 전에 24살이 됐다. 킹에게 22살로 말하긴 했지만 22살은 지난 지 오래다. 내 고향은 하이투. 자란 곳도 하이투고 내가 다닌 대학도, 일하던 곳도 하이투에 있다. 그래서 칭잉엔 잠깐 들른 적 외에 살아본 적은 없다.

형도 아빠도 없고, 엄마는 있었으나 돌아가셨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내가 졸업한 학과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이 좋아 일이지, 교수 따까리 노릇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작년 초, 여느 날처럼 출장 가는 교수의 따까리 노릇을 하려고 공항에 간 나는 노인의 가방을 잠깐 들어줬고 그래서 감옥에 왔다. 그 가방 안에 마약이 들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난 역겨운 교도소에 왔고 그러나 지금은 출소했지.

난 거짓말을 잘한다. 그렇지만 허언증이나 리플리 증후군은 아니다. 난 내가 하는 게 거짓말임을 아는걸. 나는 내 거짓을 믿지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누군가 나에 대해 아는 게 싫다. 그냥 의심도 많고 신상 정보에 예민하다. 뭐, 죄지은 거라도 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 그 적은 신상 정보만으로 내 전체를 알아내는 건 몹시 쉽다. 나는 날 잘 모르는 이가 나에 대해 아는 게 싫다.

더욱이 범죄자가 넘쳐나는 교도소에서 어떻게 진실된 내 얘기를 하겠는가? 이름은 숨길 수 없어서 아쉬웠지. 더욱이 그런 거짓말은 사기가 아니다. 내가 물론 내 신분을 숨겨 돈이라도 뜯어먹었으면 몰라, 나는 그냥 내 신상을 알려주지 않은 것뿐인걸.

나는 죄를 짓고 살지 말라는 엄마의 말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운명은 날 감옥으로 이끌었다. 감옥 안에서 조금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일들은 모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날 지키기 위한 일인걸. 엄마도 이해해줄걸?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앰뷸런스가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 킹이 타고 있겠지. 킹이라 찔린 정도로 외부 병원을 가나 보다. 그냥 교도소 안에서 치료받다가 감염으로 죽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저렇게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며 실어 나르는 거겠지? 진짜 좆됐다. 이대로 킹의 머리가 멍청해지면 좋을 텐데 그럴 확률은 적었다. 교도소의 거대한 핑크색 철문 바깥으로 나오니 그제야 공포가 제대로 느껴졌다. 불안이 엄습했다.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 내가 부른 콜택시가 보였다. 초록색이었다.불안과 공포를 잠시 밀어 지워 냈다. 그리고 콜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택시는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차에 오르며 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 하이투 시내로 가주세요.”

기사는 천천히 차를 움직였고 나를 힐끗대더니 물었다. 특히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젊은 양반이 웬 교도소여?”

“아, 제가 저기서 일하는데 손을 다쳐서 잠깐 쉬고 있거든요. 저기 내루 교도소요. 근데 인수인계할 일이 있어서 잠깐 왔다가 차가 고장이 났네요. 참.”

그러자 택시 기사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우스웠다.

“에이구, 그거 다 액땜한 거여. 이제 자알 될 거야. 아, 근데 저기 사는 범죄자 놈들은 어때? 막 무시무시한가?”

택시 기사가 뒤를 힐끗대며 몸을 떨었다. 크리스마스 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나 보다. 나는 해탈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죄짓고 사는 놈들이 다 그렇죠, 뭐.”

아아, 오랜만에 보는 이 풍경. 입소할 때 보던 풍경을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되다니. 그때는 우울했지만 지금은 그저 바깥 풍경이라고 보기 좋았다. 룸미러로 날 힐끗대던 기사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자네 정말 잘생겼네. 결혼했어?”

“아, 네. 했어요. 아이가 둘인걸요.”

“어려 보이는데?”

“제가 좀 어려 보이는 데다가 쌍둥이라 그래요. 그래서 힘들죠. 뭐.”

나는 택시 기사의 시답잖은 질문을 친절하게 맞받아 주었다. 또한 웃어주기까지 했다. 룸미러로 내가 웃는 모습을 비춰 본 택시 기사가 나를 따라 마주 웃었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귀찮았고 피곤했지만, 또한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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