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12월이 되었지만 홍징은 눈이 내리기는커녕 춥지도 않았다. 홍징은 열대 기후인 나라이니까. 그렇지만 크리스마스가 없는 건 아니었다. 미국 놈들이 어찌나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심고 갔는지, 나라는 크리스마스로 들썩였다.
이 시기 즈음 백화점과 온갖 가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꾸며 놓았고. 더운 나라라 어글리 스웨터 대신 어글리 티셔츠를 팔았으며 산타 모자를 쓴 불상 같은 이상한 혼종도 만들어 내놓았다.
엄마는 예수를 믿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 다하는 걸 우리라고 못 하면 안 된다며 크리스마스 때마다 무언가 사 오셨다. 엄마는 전통을 만들고 싶어 했으나 해마다 기이하게도 엄마가 먹고 싶던 음식이 바뀌었다. 어느 해는 평범하게 생크림 케이크를 사 왔고, 어느 해는 망고가 올라간 빙수를, 어느 해는 빨간 양념의 한국식 닭고기 볶음을, 어느 해는 중국식 돼지고기 튀김을 사 왔다. 그래서 그날 전통은 그냥 먹고 싶은 것 먹기가 되었고, 먹기 전에 캐럴을 불러 겨우 구색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해본 적이 없었다. 출소하면 뭐라도 사다 캐럴을 불러야겠다 싶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바깥만 요란한 것은 아니었다. 흥밋거리가 적은 교도소 안은 더 했다. 불교 파들은 가뜩이나 자신들의 공간을 빼앗아 간 기독교들이 짜증 나는데, 크리스마스라 의기양양한 기독교파를 꼴사나워했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였다. 참으로 부처가 울고 갈 반불교적 인사들이 아닐 수 없다.
개신교와 천주교 등 성경을 믿는 무리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예수의 자식들이라 불렀는데, 그 예수의 자식들은 교도소 안에서 행해지던 종교 전쟁을 멈추고 크리스마스 아래서 하나로 모였다. (사실 그들 중 성경을 제대로 읽은 자들은 몇 없었고 그들에게 종교란 그저 싸움의 빌미, 스포츠였고 놀 구실이었다.)
그들은 교도소를 휴지나 종이 등을 붙여 나름 꾸며댔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폐허 같아졌다.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훌륭한 솜씨였고. 동방박사도 말들도 여기가 마구간인 줄 알고 찾아올 지경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킹에게도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든, 종교든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내게 12월은 그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있는 달이었고, 킹에게 이번 12월은 휴 사토가 내루 교도소로 입소하는 달이었다.
킹의 예언은 참으로 놀랍게 들어맞아 구속에 불과하던 휴 사토는 징역형을 받았고 킹과 내가 있는 내루 교도소로 온다는 뉴스 또한 업데이트되었다. 평소 죄를 지으면서 셀럽을 하겠다고 나대다 보니, 교도소에 가는 것도 저렇게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개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이 주 전, 산타보다 이르게 휴 사토가 교도소로 찾아왔다. 휴 사토는 키가 나와 엇비슷하고 나이는 30대인가 40대인 남자로, 눈이 부리부리하게 크고 코도 컸으며 입술도 두꺼웠다. 나는 그자가 정말 잘생겼는지, 왜 인기가 있는지 항상 의아했고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보면 휴 사토가 그렇게 잘난 외모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마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휴 사토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 돈이 많고 명품을 입고 다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남자들이 대충 옷만 멀쩡히 입고 다녀도 멋지다고 칭송해주는 게 이 사회였으니까. 하여튼 이 세상은 글러 먹어서 휴 사토는 이곳저곳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을 점차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휴 사토가 입소한다는 날, 킹은 기분이 유독 안 좋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킹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킹의 걸 아침부터 물고 있어야만 했다. 턱이 아파 밥을 잘 먹을 수나 있을지 걱정하며 식당에 들어서는데, 식당 안이 요란했다. 재소자들 여럿이 무리를 이뤄, 한 테이블로 모여 있었다.
또 뭔 짓을 벌이나 싶어 바라보는데 덩치 큰 놈이 비켜서는 덕에 알 수 있었다. 휴 사토가 그 무리 가운데에 있었다. 휴 사토는 신입 재소자임을 알리는 분홍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오늘 입소한 주제에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허세인지 진짜 믿는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휴 사토는 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변 재소자들의 얼굴에 흥미가 가득했다. 아마 휴 사토가 만난 여자들에 대한 추잡한 얘기겠지. 이곳은 포르노가 금지되어 있어서 추잡하고 저열한 얘기를 좋아했고 그 얘기가 실제이든 아니든 가장 꼴리고 실감 나게 할수록 인기가 많았다.
휴 사토도 그런 데에 재능이 탁월한 듯싶었다. 휴 사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TV나 잡지로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더욱이 교도소에서) 조금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자 킹이 내 얼굴을 강하게 잡고 제 쪽으로 돌렸다.
“지금, 어딜 봐?”
킹이 말을 씹으며 내뱉었다. 나는 킹에게 얼굴을 잡힌 채 눈을 굴렸다. 요새 킹은 휴 사토 때문인지 상당히 예민했다. 그래서 말을 잘 해야 했다. 내가 답을 생각하느라 말이 없자 킹이 내 볼을 강하게 눌렀다. 입술이 동그랗게 모여 말이 웅얼대듯 내뱉어질 게 분명했다. 근데 킹이 내 볼과 볼을 하나로 합칠 기세라 그렇게라도 킹이 원하는 답을 해줘야 했다.
“신기하게 생겨서 봤어, 신기해서.”
내 볼을 누르는 힘이 조금 약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킹에게 얼굴이 붙들린 상태였다.
“신기해서?”
“응. 사람이 저렇게 눈도 크고, 코도 크고, 입도 크고, 머리도 크고, 조화 없이 생길 수 있나 싶어서, 저렇게도 사람이 태어나나 싶어서 봤어. 자기는 눈도 크고, 코도 높고, 입술도 도톰해도 참 조화로운데, 그치?”
나는 손을 들어 슬쩍 킹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비굴한 답이었다. 그러나 킹은 대놓고 자신에게 아양을 떠는 내 대답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지 아직 볼이 붙들려 앞으로 튀어나온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킹이 저 멀리 있는 휴 사토를 노려보는 게 보였고 슬쩍 휴 사토를 바라보니 휴 사토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킹이 내게 입을 맞춘 것도 보았겠지. 귀찮게 굴려나? 근데 휴 사토가 남자를 만났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듣고 싶지 않아도 본인이 직접 기사를 푸는지, 온갖 가십거리들을 매일 접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혹시 모른다. 여기는 남자만 있는 교도소이니까.
그냥 조용히 밥을 먹고 들어가고 싶은데, 휴 사토가 식사를 끝냈는지 탁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배식구로 가든가 쓸데없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냥 지나치길 바랐지만 휴 사토는 킹에게 다가와 섰다.
“미나콤, 오랜만이네? 교도소 물이 나쁘지 않나 봐. 여기 생활 그렇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휴 사토는 나와 키가 비슷해서 킹과 한 뼘 정도는 차이가 났다. 휴 사토는 더러운 식판을 든 채 킹을 올려 봤고 킹은 무표정했다. 올라간 입꼬리 때문에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킹은 휴 사토를 말없이 내려다보다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끌어올려 웃으며 말했다.
“사토, 너는 바깥 생활이 영 힘들었나 봐. 얼굴이 다 썩었네. 오죽하면 우리 허니가 니 얼굴이 너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 뭐 사람이 그렇게 생겼냐고.”
씨발. 킹은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나를 갑자기 끌어들였다. 나는 무해한 척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 사토는 내 얼굴을 뜯어보고 날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지 엄마 닮아서, 남자랑 놀아난다는 얘기는 좀 들었는데 여기서도 여전한가 보네. 이 쓰레기장에서 그래도 용케 먹을 만한 거는 구했네? 수완이 좋긴 해.”
휴 사토가 내 얼굴을 핥듯이 훑어보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휴 사토랑 눈이 마주쳤는데 휴 사토는 못 먹을 만해 보였다. 저자랑 잔 사람들은 참 비위가 좋았다. 킹은 표정을 다시 굳히고 내 얼굴을 큰 손으로 가렸다. 시야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킹이 으르렁대는 소리는 들렸다.
“뭘 봐, 더러운 새끼야. 니가 여자한테 뒷구멍 박혀서 앙앙댄다는 거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여기서 좀 취향을 넓혀가는 건 어때? 뭐, 너 정도면 박아줄 놈들은 제법 있을 거야. 이곳 애들이 아량이 좀 넓어.”
킹의 손가락 사이를 조금 벌려 시야를 확보했다. 킹은 휴 사토의 사타구니를 대놓고 응시하고 있었다. 휴 사토가 진짜 여자한테 박히며 앙앙대는 취미가 있나? 그러면 어떻게 박히지? 뭐, 인간은 도구를 쓰는 동물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내가 알 게 뭔가.
킹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재소자들이 휴 사토를 바라보는 게 나에게도 느껴졌다. 휴 사토는 조금 여유를 잃은 표정이었다.
“누가 그딴 헛소리를 해?”
휴 사토가 기가 찬다는 듯 웃었지만 반응이 조금 늦었다. 킹은 턱을 조금 치켜들고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아, 그래? 니가 선호하는 딜도 크기가 뭐인지 색은 어떻게 되는지, 니 돈 뜯어내려는 애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진 정보인 거 모르나 봐? 걔네들 입장에서, 너랑 섹스하기는 역겹지만 딜도로 쑤셔 주는 건 약이나 술 좀 먹고 하면 그래도 좀 할 만하다더라. 그래서 너 노리는 애들 많아. 인기 많아서 좋겠어. 근데, 아무리 그래도 가짜는 좀 그렇지? 진짜 살덩이가 낫지 않겠어? 여기 많은데 하나 골라봐. 여기서도 인기 많을 거야. 왜, 소개해줘?”
킹이 휴 사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휴 사토의 몸을 돌려 전체 재소자들을 바라보게 했다. 몇 재소자들이 휴 사토와 눈이 마주치고 음흉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으. 휴 사토도 이제 입소 때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될까? 근데 킹은 휴 사토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거였으니 휴 사토는 어서 빨리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휴 사토는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며 “하!” 하고 웃었다.
“미나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니 옆에 있는 그놈이나 어떻게 잘 지켜.”
“우리 허니야. 내 옆에 떨어지기 싫어서 찰싹 붙어 다니는걸. 내가 항상 잘 보살펴주지.”
킹이 내 귀 뒤를 문지르며 말했다. 보살펴준다는 정의가 박아 댄다는 의미인지는 이제 알았다. 킹과 지내며, 마냥 좋은 뜻인 줄 알았던 단어들이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 오염되어간다는 걸 알게 된다.
휴 사토와 킹은 작별 인사할 사이가 아니어서 휴 사토는 그냥 말없이 몸을 팩 돌려 성큼성큼 걸어 멀어졌다. 이대로 방에 가서 베개에 얼굴 박고 울음이라도 터트리나 싶었는데, 킹한테 한바탕 당해 놓고 기가 죽지 않은 휴 사토가 어떤 교도관과 식당을 나가는 게 보였다. 이대로 킹에게 지나 싶었는데 역시 죄지으며 사업하는 인간들은 머리가 참 잘 돌아갔다. 빠르네. 역시 사업가라 수완이 좋았다. 돈도 많아서 그런 거겠지. 난 무자본 서민인데, 서럽다. 휴 사토가 식당 밖을 나가자 킹은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저 새끼만 보면 밥맛이 떨어져. 그래서 내가 뉴스도 실눈 뜨고 봐.”
킹과 관련된 뉴스가 뜨면 킹의 사진은 없이, 검정 남자 실루엣 그림만 떠 있지만 휴 사토는 불법 사업가 주제 찍은 화보나 파파라치 컷 따위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돈이 있으면 그냥 진짜 연예인을 하지. 돈을 아무리 처발라도 남자 주인공 역을 따낼 외모는 아니었기에 조금 이해해주기로 했다.
킹은 내게 식판과 식기를 내밀었고 나는 킹보다 앞에 서서 음식을 받았다. 오늘의 밥은 아주 괴이했는데, 크리스마스가 2주 남았음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겠다고 만든 식사였다. 물론 칠면조 구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밥을 이상한 식용색소에 염색했는데, 잘 나눠 놓든가. 초록 밥과 빨간 밥이 뒤섞여 잿빛이 된 밥과 트리라고 만들어 놓은, 꿰매 엮은 나물이었다. 저렇게 나물을 엮는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참으로 창의력이 좋았다.
스크램블드에그라도 살려 두든가, 여기에는 빨강과 초록 색소를 아예 섞어 풀었는지 색이 말 그대로 똥이었다. 밥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는데 진짜 오늘은 영 아니었다. 킹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다시 일어나 말했다.
“허니, 가자. 이런 거 먹으면 입 버려.”
“응.”
생파인애플을 추억하기 위해 파인애플 통조림이라도 까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킹의 넓은 등을 따라갔다.
* * *
휴 사토는 들어오기 전부터 교도관에게 작업을 해두었는지, 하루 만에 교도관과 쿵짝을 맞췄고 이틀째엔 자기 세력을 만들었다. 예수가 부활하는 데에도 삼 일이 필요했는데 사토가 입소한 그날과 그다음 날 일어난 일이었다.
휴 사토가 벌이는 일은, 마이클 미치가 했던 사업과 비슷했다. 그러나 휴 사토는 마이클 미치보다 더 현명하고 수완이 좋았다. 마이클 미치가 겨우 들여오던 약보다 더 질이 낫고 많은 양을 입소한 날 바로 들여오더니 곧바로 팔기 시작했다. 그동안 약에 고파 하던 중독자들은 비싼 값을 치러 약을 샀고, 많은 자들이 빠르게 휴 사토의 곁으로 붙었다. 기민한 손 덕분에 휴 사토는 본인 취향을 살짝 바꿔줄 자와 굳이 붙어먹을 필요가 없었다.
예수의 자식들은 그동안 캐럴을 연습했는데, 전혀 신성하지 않은 온갖 미국 캐럴 팝만 골라 불러 댔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섹스와 폭력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골라와 교도소 측 심기를 거스르더니, 끔찍한 노래 실력 때문에 캐럴 부르기를 금지당했다. 돼지와 오리를 데려다가 노래를 부르게 해도 그것보다는 듣기 좋았을 것이라 마땅한 처사였다.
그 틈을 타 예수의 자식들에게 세력이 밀렸던 불교파들이 자신들이 캐럴을 불러 예수의 탄생을 축하함으로써 종교의 대화합을 교정국에 보여주겠다고 제안했고 교도소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쪽의 노래 실력이 더 낫기도 했다. (낫다는 것이지 잘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자식들 쪽은 마치 사탄을 소환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으니까.)
하여튼, 캐럴을 부르는 행사에 교정국 중요인사들도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에 교도소는 불교파들을 엄격하게 교육했고 교도소 내 환경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휴 사토의 약국은 문전성시였고 킹은 그것을 못마땅해했다.
불시 검문과 몸수색을 수시로 하는 교도관들 때문에 재소자들은 모두 죽는소리를 했는데 나는 킹의 곁에 딱 붙어있는 덕에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킹은 오늘도 내 허벅지 안을 음흉하게 주무르며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는 중이었고. 킹이 손을 허벅지 안쪽으로 깊이 더 파고들려고 할 때마다 몸을 비틀어 피하다가 지쳐, 그대로 내버려 둔 후에 말이다.
“허니, 살 빠졌어? 허벅지가 좀 가늘어진 것 같은데.”
킹은 내 사타구니를 만지면서 용케 허벅지 굵기를 알아냈다. 살이 빠졌나. 잘 모르겠지만 여기 음식은 워낙 부실하니 빠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확실하지는 않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받았던 옷도 원래 워낙 헐렁해서 옷 사이즈로 가늠하는 것도 힘들었다. 킹은 내 허리로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밖에 나가면 뭐 이것저것 많이 먹여야겠어.”
밖에서까지 날 데리고 있을 셈인가? 나는 흠칫 놀랐지만 다행히 킹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느라 킹에게 들키지 않았다. 책상에 바르게 앉아 있던 자세를 바꿔, 책을 노트북 뒤로 덮어 놓고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킹이 내 몸을 훑어보는 게 보였다. 나는 킹의 구불거리는 머리칼로 손을 뻗었다.
“자기는 언제 출소지?”
킹의 머리칼은 이제껏 염색도 파마도 한 적 없는지 참으로 검고 건강했다. 이리저리 말린 킹의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펴며 갖고 노는데 킹이 짧게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대강 2년 남았지. 허니보다 조금 빠를 거야.”
킹에게 말한 내 출소일은 한참 멀었지만 내 진짜 출소일은 내년이었다. 18개월 형이었고 여기서 대략 6개월을 보냈으니 딱 1년 정도가 남은 것이지. 여기서 3분의 1을 살았으니 가석방 신청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석방으로 출소하면 남은 형기 동안 보호 감찰을 받아야 했고 내 집은 하이투에 있었다. 하이투는 킹의 것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고, 여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나는 킹의 모근 가까이로 손을 깊이 넣으며 아쉽고 불안하다는 듯 연기했다.
“자기가 나가면 난 어떻게 해? 자기 없으면 여기서 누가 날 돌봐 줘?”
킹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날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허니를 여기 두고 가? 같이 데려가지.”
“그게 가능해?”
킹이 내 좆의 윤곽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몇 개월 줄이는 것 정도는 별로 힘도 안 들어.”
나는 킹의 손목을 잡고 내 사타구니에 더욱 가까이 붙였다. 커다란 킹의 손이 주는 온기가 내 성기를 데웠다.
“아아.”
하여튼, 홍징은 참으로 썩은 곳이었다.
* * *
“아흑! 윽! 흐, 하!”
내 좆을 만지던 손을 그대로 올려 내 옷을 홀딱 벗긴 킹은 날 책상에 뒤집어 눕혔다. 그리고 제 손가락을 내게 물려 빨게 하더니 그걸로 내 뒷구멍을 몇 번 쑤신 후, 곧바로 자신의 좆을 내 몸 안으로 넣었다. 반년 정도 킹의 좆을 담아왔던 내 구멍은 빠듯하지만 수월하게 킹의 걸 집어삼켰고 킹은 내 엉덩이 뒤에서 허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짐승처럼 박아 댔다.
“하아, 하아, 씹, 나 나가면 이 구멍을 누구 걸로 채우려고, 응? 다른 새끼들 좆 흔들어주며 귀엽게 굴려고?”
킹은 내 등을 커다란 제 손바닥으로 훑으며 말했다. 물론 허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걸 잊지 않으면서. 또 왜 심통인지 모를 킹의 기분을 달래 주려고 나는 킹이 좋아하는 대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하윽! 자기가, 있잖아. 흐윽!”
“하여튼, 아양은.”
킹은 비꼬듯 말하면서도 만족스러웠는지 부드럽게 내 허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허리를 양손으로 잡더니 자기의 좆으로 내가 느끼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분명하게 쑤셔 박았다. 그 탓에 나는 나무 책상에 볼을 대고 거친 숨과 함께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흐윽, 자기, 하아! 너무, 빨라!”
“뭐가, 아, 빨라, 어? 구멍은 좋다고 아우성인데.”
나는 너무 흥분한 킹을 달래려 말했지만, 킹은 오히려 속도를 올렸다. 하여튼 제멋대로였다. 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엇박으로 속도를 맞추다 킹에게 팔이 붙들렸다. 킹은 내 팔을 잡고 내 몸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망치질하듯 내 몸 안으로 쿵쿵 박아 댔다.
“아흑! 윽! 흐, 아아…….”
“하아, 아, 흐아.”
킹의 둥그런 귀두가 내 쾌감의 극점을 찌르고 문지르며 빠른 속도로 괴롭혔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쾌감에 힘들었다. 뒤집혀 있는 탓에 뒤가 보이지 않았고 겨우 팔을 꺾어 킹의 손에 깍지를 꼈다.
“제, 윽! 제발. 좀만 천천히, 응? 자기, 나 죽을 것 같아……. 하윽! 나 죽는 거 싫잖아, 응? 자기는 나 지켜주기로 했잖아, 응?”
“우리 허니, 왜 오늘따라 이렇게 엄살이야, 응?”
“아윽, 진짜, 나, 흐윽! 죽을 것 같아, 자기, 자기 좆이 너무 커!”
내가 애원하며 아양을 떨자, 내가 안쓰럽기는 했는지 킹은 그제야 속도를 줄였다. 그렇지만 좆을 내 안에서 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킹이 만족 못 하고 다시 속도를 올릴까 봐 내가 직접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엉덩이를 움직여야 했다.
킹은 내 엉덩이를 제 큰 손으로 쥐고는 강하게 주물렀다. 말랑한 공처럼 내 엉덩이가 킹의 손에서 갖고 놀아졌다.
“살 좀 빠진 줄 알았는데 여기는 여전하네? 오히려 좀 찐 것 같아. 여기도 젖살이야?”
킹이 내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리더니, 저따위로 지껄였다. 엉덩이까지 젖살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도로 찌는 젖살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킹의 말을 무시하고, 팔로 책상을 짚어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였다. 팔을 펴자 상체가 책상에서 떨어져 나와 들렸고, 킹은 양팔을 내 몸 앞쪽으로 돌리더니 내 젖꼭지를 잡았다.
검지로 튀어나온 작은 살덩이를 괴롭히더니 그곳을 꼬집었고, 급기야는 손바닥을 내 가슴 전체에 갖다 댔다. 가슴 근육을 손으로 모으고 주무르던 킹은 또 헛소리를 했다.
“여기도 찐 것 같아. 어떻게, 엉덩이랑 젖만 딱 그렇게 살이 쪄?”
킹은 참으로 언어 습관이 고상하여 나 같은 건 따라갈 수도 없었다. 나는 듣기 싫어 고개를 꺾어 킹의 입술로 갖다 댔고 킹은 거부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킹의 입 안으로 혀를 넣었고 킹은 제 입 안으로 들어온 혀에 자신의 혀를 비볐다. 최대한 몸을 돌리긴 했지만 내가 뒤집힌 상태로 키스와 섹스를 하기엔 수월하지 않았는지, 킹은 내 몸을 책상 위에 뒤집어 눕혔다. 너무 갑작스럽게 눈에 들어온 천장에,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킹은 다시 제 좆을 내 몸 안으로 박아 넣었다.
“윽!”
킹은 내 오른발을 제 어깨에 올려 기대게 하고는 내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몸을 뒤로 빼더니 허리를 움직였다.
“하윽! 윽! 으으, 윽!”
나는 잡을 곳이 없어 허공을 배회하는 팔을 허우적대며 신음을 흘렸다. 킹은 내가 느끼는 곳을 쉬지 않고 강하게 박아 올라왔다. 그 쾌감이 어찌나 강한지 눈가가 뜨거웠다. 눈물이 흐를지도 몰랐다. 나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고 올려 둘 곳을 찾은 손은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킹이 곧바로 내 손을 얼굴에서 치웠다.
“얼굴, 하아, 가리지 마.”
“흐윽, 흑. 이젠, 하윽!”
이젠 내가 내 얼굴에 내 손도 못 올리나. 과하게 몰아붙인 탓에, 평소보다 감정이 북받쳐 나는 서러워 눈물을 조금 흘렸다. 많이는 아니었고 한 줄기가 또르르 흐르고 그친 정도였다. 킹은 내 눈을 엄지로 훑어 눈물을 훔치더니 제 엄지 끝을 혀로 핥았다.
“짜네. 하아, 허니라 눈물도 꿀 같을 줄 알았지.”
“내가, 흐윽, 무슨 벌집이야?”
“꿀벌처럼 귀엽기는 해.”
벌한테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둘 곳이 없는 내 팔을 결국 킹이 채 갔고, 킹은 내 양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입소할 때 찬 수갑처럼 킹에게 손목이 붙들렸다. 나는 사지가 다 킹에게 붙잡힌 채 무력하게 킹에게 박혔다.
“흐윽! 윽!”
나는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힘든데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답답해 양 종아리를 교차로 조여 킹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다리를 내 몸으로 당겼고 킹의 얼굴은 수월하게 내 쪽으로 끌려왔다. 킹은 조금 놀라 당황했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크게 뜬 킹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 하아, 그냥, 빨리 끝내자.”
킹은 대답 대신 내게 가볍게 키스했다. 입술에 미지근한 체온이 붙었다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킹은 내 허리 아래로 손을 넣더니 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놀라 얼른 킹의 목으로 팔을 감아 뒤로 끌어당겼지만 킹은 이미 일어서 내 몸을 들어 올린 상태였다. 일어선 킹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린 자세가 된 나는 무서워 킹의 목만 끌어안았다. 나를 붙잡는 것도,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도 킹이 유일했다. 그리고 체중이 실려 삽입이 더욱 깊어졌다.
“아윽! 미쳤어? 흑!”
“허니가, 하아, 빨리 가고 싶다며.”
“누가 이런 식이, 윽! 아윽! 윽!”
킹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움직였다. 나는 내 엉덩이를 안아 든 킹의 팔에만 의지한 채 킹에게 몸이 흔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반년간 온갖 자세로 섹스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자세는 처음이었다. 나는 정말 말 그대로 공중에서 킹의 좆으로 꿰뚫리는 중이었고 이 자세에서 킹의 좆이 가장 깊게 닿았다. 그전까지 뚫린 적 없던 곳에 킹의 좆이 파고들자 나는 마치 처음 섹스한 것처럼 반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 응! 으윽! 하윽! 으으, 싫어, 흐윽!”
나는 아까보다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며 킹의 목을 팔로 붙든 채 킹의 어깨로 파고들었다. 떨어질까 불안해 이제껏 안았던 것보다 강하게 킹을 끌어안았고 킹의 어깨는 내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것으로 젖어 들어갔다. 킹은 욕과 거친 숨만 내뱉으며 내 구멍 안에 좆을 박아 대는 것에 집중했다.
“하아, 하아, 하아.”
밑에서 올라오는 감각이 지나쳐 나는 울면서 도리질을 했다. 그래서 킹이 내 볼에 키스하려는 걸 의도치 않게 피해버렸고 킹이 내게 속삭였다.
“허니, 잠깐만, 윽, 가만히 있어.”
“자기나, 흐윽! 그러고 말해…….”
킹의 허릿짓은 끊기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킹이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날 떨어뜨릴까 무서워서 겨우 고개를 멈췄고 킹은 내 볼을 혀로 길게 핥았다. 눈물이 말라 겨우 건조해진 곳이 다시 젖어 들어갔다.
“짜. 하아, 너무 울보인 거 아냐?”
“누구 때문인데! 흐윽!”
“맞아. 내가 너무 울렸네. 미안해. 그만 울어, 응?”
눈물이 멈춰 말라붙은 게 언제인데 킹은 내가 아직까지 울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킹은 내 좆을 잡았다.
“앞으론 여기로만 울릴게.”
“흐윽, 헛소리……!”
킹은 손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킹이 계속 허리를 움직이고 있던 탓에 내 몸이 계속 흔들려 킹의 손에 내 좆이 비벼졌다. 그래서 나는 참지 못하고 사정해 킹의 배를 정액으로 적셔버렸고, 킹은 힘이 빠진 나를 도로 책상에 눕혔다.
킹이 허리를 다시 움직였다. 방금 사정해 잔뜩 예민해져 있는 내 내벽을 킹이 찔러 대자 나는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킹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흔들리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흐흑, 으아, 윽.”
그리고 킹은 이내 내 구멍 안에 제 좆을 꽂아 넣은 채 사정했다. 구멍이 미지근한 액체로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구하려면 콘돔을 구할 수 있으면서도, 킹은 맨날 저따위였다.
“귀엽긴.”
킹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헤집자 시야를 방해하던 앞머리 몇 가닥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킹이 날 만지는 걸 두고 보았다. 킹은 이마가 완전히 보이게 내 머리를 다 넘겼다. 그리고 아직 구멍에서 좆을 빼지 않은 채 천천히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 다시 할 모양인 듯했다.
그러나 좀 전의 체위가 나에게 너무나 부담이었고 그래서 나는 킹의 등을 발로 때렸다. 킹은 그제야 좆을 뽑아냈다. 킹의 정액이 구멍 밖으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하. 공용 샤워실에서 저딴 걸 처리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킹은 몰랐다. 그리고 킹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내 입술 근처로 입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킹의 입술에 습관적으로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킹은 노트북을 꺼 옆으로 내려 두더니 날 책상에 눕혔다. 책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내 키보다는 작아 무릎부터는 둘 곳이 없어 꺾여 바닥을 향했다. 책상이 딱딱해 머리가 불편했다.
“여기 너무 딱딱해.”
투정 부리듯 말하자 킹이 제 허벅지를 툭툭 쳤다.
“그럼 말랑한 내 허벅지로 올래?”
킹의 허벅지는 두껍고 근육으로 차 있었다. 절대 더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허벅지도 딱딱해.”
그러자 킹은 내 머리를 자기 손바닥으로 감싸 받쳐주었다. 막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상보다는 푹신했다. 킹은 손을 뻗어 내 이마를 더듬었다.
“허니는 이마가 볼록해서 귀여워.”
킹은 내 이마를 검지로 올렸다 내리며 쓸었다. 이마가 엄마처럼 볼록한 편이기는 했다. 나는 주로 가리고 다니는 편이었다. 딱히 이마를 드러내는 게 꺼려지는 건 아니었고 제품을 써서 머리를 매만지는 게 귀찮았다.
킹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마를 간질이던 머리칼이 정리되어 나았지만, 나는 이마보다는 엉덩이가 신경 쓰였다. 엉덩이 사이로 흘러나온 액체를 닦아 낸다고 닦아 냈지만, 역부족이었고 아직 찝찝했다. 그저 씻으러 가고 싶었다. 나는 내 이마를 더듬는 킹의 손가락에 손을 마주 끼며 말했다.
“나 씻으러 가면 안 돼?”
“나랑 섹스한 게 더러워?”
뭔 말을 저따위로 해.
“자기가, 안에 쌌잖아. 계속 나와.”
정말로 계속 나왔다. 옷이 젖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런데 킹에게는 유혹으로 들렸는지 몸을 일으키더니 내 엉덩이를 쥐었다. 하. 한참 뒤에나 씻을 수 있겠다.
* * *
나는 킹에게 한참 괴롭힘을 당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안에 있는 액체를 빼고 싶다고 했는데 그 양을 더한 킹 때문에 휴지를 돌돌 감아 속옷에 받쳐 둬야만 했다. 샤워 도구를 가져오지 않아 샤워실 대신 화장실로 향했는데 화장실 안이 소란했다.
테이프로 부러진 안경테를 붙여 쓴 남자가 교도관을 향해 성이 난 채로 말하고 있었다.
“아, 저거는 고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참 전부터 저랬다고요!”
남자는 화장실 한 칸의 안을 가리키는 중이었는데 남자의 옷이 젖어 있는 것 보니 볼일을 보다 봉변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교도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력 부족해서 안 돼.”
칸 안을 슬쩍 바라보니 변기 하나에서 물이 새고 있었고 벽에도 달랑달랑하게 달려 있었다. 저기 앉았다가는 변기가 내려앉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교도관이 손을 내젓자 안경을 쓴 남자는 울컥한 표정을 짓더니 외쳤다.
“아니, 교도관들 말고 수리할 사람 바깥에서 불러오면 되지!”
그건 그렇지. 교도관이 저걸 수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자 교도관도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교도관 더 뽑을 돈도 없는데 그럴 돈이 있냐? 어차피 저거 아녀도 변기 많잖아!”
공용 화장실이니 변기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많은 재소자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했고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니, 변기가 충분한 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뭐라도 좀 해줘요.”
안경 쓴 남자도 지쳤는지 목소리를 낮춰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교도관 아주 짧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일단 고장 났다고 문에라도 붙여 둘게.”
미봉책도 못 되는 그저 방관이었다. 안경 쓴 남자는 다시 한번 소리치려다 교도관이 이제 봐줄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자 항복이라는 듯 두 팔을 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교도관도 한숨을 쉬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는데, 교도관이 나가고 30초 정도 후 벽에 붙어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던 재소자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교도관 셋이 없어졌지?”
머리 가운데가 벗어진 남자가 말했다. 내가 들어오고 나서 판과 앤디가 사라졌고 응우옌은 마이클 미치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이 더 구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교도관 일이 공무원이기는 해도 급여가 안정적이라는 점 말고는 모두 단점뿐이다. 밤에도 근무를 해야 했고 끊임없는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의 연속이며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꺼릴 만한 일이었다.
킹은 교도소 윗사람들에게 뒷돈을 찔러주었다. 킹이 가진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킹이 그렇게 교도소 안에서 망나니처럼 군림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돈이 그 비법이었다. 킹은 본인 취미에 이용하는 암호 화폐를 통해 뇌물을 주었기 때문에 추적이 힘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걱정 없이 많은 돈을 맘껏 즐겼다. 그렇지만 일개 교도관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고 부패한 윗선들은 교도관들에게 자신들이 누리는 많은 급여나 복지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나 같아도 여기 같은 곳에 근무를 하지 않았을 거다.
“저기 식당 한 곳 전기 나간 곳도 수리 해주는 데 2주나 걸렸잖아. 변기 수리 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지.”
키가 작은 남자가 반 대머리인 남자의 말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교도소 예산 상황은 별로 좋지 않은데도 교도소장은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며 받은 뒷돈을 쓰는 데에 몰두했다. 교도관은 다시 들어와 이면지의 깨끗한 면에 ‘고장’이라고 휘갈긴 종이를 화장실 칸에 붙였다.
‘고장’
정말 이 교도소는 제대로 고장 났다. 그렇지만, 내가 알 게 뭔가?
* * *
방에서 샤워 도구를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섰지만 거기 서 있는 남자들이 계속 내게 양보해 나는 금방 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들이 이타적이거나 양보심이 많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킹과 자기 때문이었다.
물을 틀자, 아직 뜨거운 물이 많이 남아 있는지 물이 따뜻했다. 킹 때문에 뻐근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익숙하게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뒤처리를 했다. 그렇지만 점도 높은 액체가 허벅지로 흘러내리는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씻고 머리의 물을 털며 나오는데, 대머리 여럿이 모여 서 있었다. 이곳에 대머리는 무척 많았고 대머리의 종류도 다양했지만 저 대머리들은 불교파들이었다. 저들은 스님이 아니었고 스님일 리도 없지만, 부처를 믿는 맘이 독실하다며 모두 머리를 깎았다. 그래 놓고 살생과 폭력을 행하거나 고기는 먹었다. 그냥 보스가 부처인, 몰려다니는 대머리 갱이나 다름없었다.
저들은 곧 다가오는 교도소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캐럴을 부르기로 되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 방으로 가려면 저들을 지나야 했기에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저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불쑥 나오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킹과 자는 사이였기에 내게 저렇게 구는 사람은 없어 놀라 작게 소리를 질렀다.
“악! 뭐야?”
그 사람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남자였다. 그는 최근 불교파에 들어가 머리를 빡빡 깎았는데 그래서 더 볼품없어 보였다. 그는 뜬금없는 말을 건넸다.
“너, 피아노 칠 줄 알아?”
“왜?”
나는 남자의 손가락에 닿지 않게 몸을 뒤로 물리며 물었다. 남자가 여전히 팔을 뻗고 있자 주변에 있는 자들이 그의 팔을 치우며 다급하게 말했다.
“야, 얘 킹 마누라잖아. 잘못 건드리면 캐럴이고 나발이고 그냥 우리가 끝난다고!”
마누라래. 웃겼다. 평생 들을 일 없을 단어라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듣네. 다른 남자의 말에 정신 차린 도서관 남자가 다급하게 팔을 도로 가져가더니 다시 물었다.
“아, 맞다. 그래서, 피아노 칠 줄 알아?”
“그러니까, 왜?”
나는 인내심 있게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 질문에 답해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말했다.
“쟤가 칠 줄 알아도, 쟤랑 무대 오를 수 있어? 킹이 지랄하면 어떻게 해?”
“쟤가 무대에 있으면, 킹이 무대에 지랄 못 하겠지.”
“아, 그것도 그렇겠네.”
나름 속닥대는 것 같았으나 무슨 말인지 다 들렸다. 캐럴 무대를 위해 피아노를 칠 사람이 필요한 듯했다. 그렇지만 전혀 흥미 없었고 나는 그냥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일하는 남자가 다급하게 나를 다시 불렀다.
“6, 6권! 너 그거 찾고 있지?”
6권? 내가 찾고 있는 6권은 저번부터 읽고 있는 서양 판타지 소설의 책이었다. 1권에서 모든 드래곤이 기후 변화로 죽고, 3권에서 그린 드래곤이 나무로 환생해 환경 전쟁을 벌이더니 5권에선 블랙 드래곤이 벌목꾼으로 환생해 난장판이 되어가는 소설이었지만 은근히 다음 내용이 궁금했다. 하지만 6권이 한참 동안 반납되지 않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던 책이었다.
“너 있어?”
“있지! 그거 빌려줄 테니까, 피아노 좀 쳐 줘.”
피아노를 칠 줄은 알았다. 집에 낡은 전자 피아노가 있었고 잘 치는 것은 아녀도 악보를 보며 뚱땅거릴 줄은 알았다. 그렇지만, 무대에 올라가야 하고 저들이 연습할 때마다 끌려가는 건 너무 귀찮았다. 차라리 킹에게 책을 구해달라고 할까? 그렇지만, 그딴 책을 구해달라고 하기엔 너무 쪽팔렸고 킹이 또 어떤 걸 요구할지 몰랐다. 그냥 1, 2주 동안만 귀찮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담배 냄새가 섞인 짙은 페퍼민트 냄새가 났다. 킹이었다. 킹은 언제 왔는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날 내려다보며 물었다.
“허니, 대체 이 대머리들이랑 무슨 일이야? 얘네들이 괴롭혔어?”
킹이 웃고 있지만 섬뜩한 눈으로 대머리들을 바라봤다. 대머리들이 몸을 움찔거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거 안 했어! 그냥, 피아노 쳐 달라고 부탁만 했을 뿐이야!”
피아노라는 말에 킹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니. 피아노 칠 줄 알아?”
“조금.”
“아아, 그러고 보니 내 몸 위에서 손가락으로 재롱부리는 게 뭔가 했더니 피아노를 치는 거구나?”
“근데 귀찮을 것 같고 자기가 싫어할 것 같아서 안 하려고.”
그런 책 6권 정도야, 눈물을 머금고 출소 후에 찾아보면 된다. 그렇지만 킹은 웬일인지 선뜻 허락했다.
“아냐, 해도 돼. 나 요즘 바쁠 것 같아서. 우리 허니 혼자 놀면 심심하잖아.”
“아냐, 안 해도 된다니까.”
“아냐, 거절하지 않아도 돼.”
“아니, 진짜 나 하기 싫은데!”
나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크긴 했지만 조금 고민하고 있기는 했다. 6권 내용이 궁금하긴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킹이 허락하니 청개구리 심보처럼 피아노를 치기 싫어졌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러나 킹은 내 볼을 약하게 꼬집으며 말했다.
“아냐, 허니가 재롱 잔치처럼 무대에서 피아노 치는 거 보고 싶어. 진짜 귀엽겠어. 영상으로 찍어두라고 그럴까? 그래서, 옷은 뭐 입는데?”
킹이 대머리들을 향해 물었고 대머리들이 다급하게 답했다.
“그냥 법복 입을 거야.”
교도소 측에서 그들을 무대에 세운 건 종교의 대화합이라는 이유에서였고 그들이 법복을 입고 캐럴을 부르는 건 꽤 좋은 보여주기였다. 그렇지만 킹은 고개를 내저었다.
“음, 아냐. 요정 옷 입어.”
크리스마스 요정 옷은 둥글게 부푼 호박 같은 반바지에다가 줄무늬 롱 스타킹이었고 심각하게 깜찍했다. 저 대머리들이 입기엔 끔찍했다. 킹이 그딴 걸 원할 리 없었다. 나는 고개를 올려 킹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자 킹은 날 바라보면서 답했다. 킹이 내 귓바퀴를 따라 꾹꾹 엄지로 눌렀다.
“허니가 입은 거 보고 싶거든. 꼬까옷 입고 피아노 치면 진짜 깜찍하겠어. 진짜 요정인 줄 알면 어떻게 하지?”
킹이 실실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씨. 그럴 속셈이었구나. 깜찍하긴 개뿔, 그냥 날 놀려 먹고 싶은 거였다.
“그렇지만 나는 노래는 안 부르고 피아노만 치는걸. 나는 상관없지.”
나는 얼른 반박했다. 그런 ‘꼬까옷’을 입으면 출소할 때까지 놀림을 받아야 할 게 분명했다. 내 나이가 여섯일 때도 그런 옷은 입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킹은 단호했다.
“음, 아냐. 허니도 무대를 꾸미는 일원인데 입어야지.”
“아니, 나는….”
나는 다시 킹에게 그딴 짓 좀 하지 말라는 의사를 에둘러 잘 표현하려고 했지만 대머리 하나가 내 말을 끊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우리는 법복 입고 저, 리는 요정 옷을 입힐게!”
나는 대머리를 킹 몰래 째려봤지만 대머리는 날 무시했다. 저들이 날 건들지 않는 것은 단지 킹이 내 뒤에 있기 때문이었지, 나 자신 때문은 아니었기에.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했다. 죽으려면 같이 죽어야지, 왜 나만 그딴 옷을 입어야 하냐는 말이야. 게다가 나는 노래도 부르지 않고 그저 뒤에서 피아노만 치면 됐는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보다 피아노 반주를 치는 사람이 더 튀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렇지만 킹은 내가 요정 옷을 입고 있으면 상관없는지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끌고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씨발. 피아노 치는 것도 귀찮은데 어린애처럼 입고 무대에 오르게 생겼다. 피아노라 무대 한가운데 설 필요는 없지만, 그딴 옷을 입은 나는 노래 부르고 있는 저놈들보다 더 튈 게 분명했다. 킹, 개자식.
킹은 정말 개자식이었고 나는 그런 킹을 상대할 수 없는 멀쩡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냥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요정 옷을 입고 피아노 치는 거? 뭐, 여기서 고생한 거에 치면 껌이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냥 책도 좀 빨리 읽으니 좋은 거지, 뭐…….
그렇지만 킹이 괘씸한 건 어쩔 수 없어서 날 끌고 가는 킹의 몸에 잔뜩 체중을 실었다. 유치하긴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딴 거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킹은 무겁지도 않은지 날 반쯤 안고도 멀쩡히 걸었다. 킹은 오히려 귀엽다는 듯 날 쓰다듬으며 더 안정적으로 안았다.
“허니, 왜 그래?”
하. 얄미워.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나에게 박아 댔던 행위에 대해 투정을 쏟았다.
“자기가 고생시켰잖아.”
“말로는 그래 놓고 좋다고 조여 댔잖아.”
원래 좁았던 걸 엄청 큰 좆을 넣어서 억지로 벌려 놓으니까! 그렇지만 섹스 관련해서 킹과 계속 얘기해 봤자 더욱 변태 같은 곳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내가 불만이 있다 해도 들어먹을 인간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주제를 바꿨다.
“근데 바쁠 거라는 건 무슨 말이야?”
“왜, 섭섭해?”
킹이 내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킹은 곧바로 대답해주지 않고 꼭 이런 식으로 굴었다. 나는 습관처럼 킹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자기 없으면 안 되니까……. 역시 피아노 그만두는 게 좋겠지? 자기 옆에 딱 붙어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킹이 날 귀찮게 구는 건 이미 익숙하니까, 대머리들 사이에서 피아노 뚱땅대며 고생하다가 요정 옷 입고 무대 오르는 것보다 그쪽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킹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냐. 힘들다며. 조금 쉬어. 일 끝나면 평생 떨어질 일 없게 해줄게.”
검은색 요정 옷도 있을까? 크리스마스 요정 옷이니 온통 빨강과 초록이겠지. 하. 내 사이즈가 없었음 좋겠지만 킹은 맞춤 제작이라도 해서 입힐 놈이었다. 그냥, 포기하자.
체중을 더 실으니 킹이 날 업고 다닐 기세라 그냥 똑바로 서 걸었다. 킹과 함께 복도를 걷고 있는데, 검지 정도 벌려진 문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곳은 세탁실이었는데 약을 하는 놈들이 종종 있었다. 휴 사토가 판 약 말이다. 듣기론 마이클 미치가 팔았던 약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던데 내 눈엔 세제랑 다를 것 없는 흰 가루였다.
저렇게 세탁실에서 약을 하다가는 가루 세제 대신 약을 세탁기에 넣고 가루 세제 대신 약을 흡입할지도 몰랐다. 마른 옷을 털어내면 약이 나오려나. 교도관에게 들키지 않고 공개적으로 약을 할 수 있긴 하겠다.
킹이 세탁실 문을 발로 쾅! 찼다. 안이 빈 철제문이어서 복도를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났고 세탁실 안에 있던 놈들이 와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
“씨발! 어떤 새끼가…….”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벌컥 열어, 빨갛고 땀에 젖은 얼굴을 내민 남자가 킹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세탁실 문을 도로 닫았다. 놀랍도록 조용해졌다. 킹은 다시 강하게 발로 문을 연달아 차며 소리쳤다.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문을 차는 소리보다 목소리가 더 컸다.
“아, 씨발, 빨래하는 곳에서 왜 이렇게 역겨운 냄새가 나지? 허니, 나만 느껴? 너무 역겨워서 저딴 곳에서 내 옷이 나올 거 생각하니, 씨발, 너무 빡쳐서 길 가는 놈 하나 잡아서 패고 싶은 심정이야. 아, 이게 쥐 냄새인가? 쥐덫이랑 쥐약을 잔뜩 놔야겠어. 이렇게 지랄 맞아서야!”
하여튼 성질은. 아까 거칠게 욕을 하던 놈은 어디 갔는지 안에서는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소음 하나 나지 않았다. 킹은 마지막으로 강하게 문을 쾅! 차더니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려 뒤로 넘겼다. 그 모습이 참 잘생겼다. 정말 잘생기기는 했는데 속이 영 못 써먹을 거였다.
킹은 분을 이기지 못해 큰 몸통을 잔뜩 부풀렸다 가라앉히며 날 바라봤다. 저 성질을 맞장구쳐줄까 했지만, 그러면 계속 화가 나 있는 킹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게 더 귀찮고 힘들어 나는 모른 척 미소 지었다.
“나는 자기 냄새 말고 다른 건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어.”
킹의 팔을 끌어당겨 그의 손목 안쪽에 코를 갖다 댔다. 거의 날아가긴 했지만 희미한 페퍼민트 냄새가 남아 있었다. 킹은 내게 손이 붙들린 채로 말없이 있다가 살짝 굽혀져 있던 손가락을 펴더니 그대로 내 얼굴을 문질렀다. 나를 만나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온 것인지 손에서 어렴풋한 담배 냄새가 났다. 그래도 전보다 양이 줄긴 해서 전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이제 자기 바쁘다며. 그런데, 쥐나 신경 쓸 거야? 응?”
고개를 살짝 틀어 킹의 손바닥 옴폭한 부분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킹이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튼 이쁘게 구는 거 참 잘해.”
분이 풀렸나 보다. 킹은 휴 사토를 어찌나 싫어하는지, 휴 사토 얘기만 나오면 씨근댔다. 그때마다 이렇게 아양 떠는 것도 참 고생스러웠다. 휴 사토를 이감시키든지 날 내보내 주든지. 킹은 날 지켜줘야 하니까 내가 여기 있을 때까진 함께 있어야 했다. 내가 다시 한번 킹의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대자 킹이 엄지로 내 코끝을 문질렀다. 코가 간지러웠다.
“오늘 더 고생해야겠는데, 허니?”
하. 누가 얘 밥에 비아그라 탔어. 잔뜩 축축해 찝찝하던 뒤를 씻어낸 게 방금이다. 아직 머리도 다 마르지 않았는데.
“나 죽이려고?”
새끼손가락과 이어진, 킹의 손바닥의 볼록한 부분을 제법 강하게 문 후 말했다. 킹의 손바닥에 막힌 숨이 내 입술로 다시 돌아와, 입술에 미지근한 바람이 스쳤다. 킹의 손바닥에 치아 자국이 꽤 짙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킹에게 그딴 건 애교나 다름없었는지 아파하는 기색은커녕 킹은 도리어 웃었다. 그리고 킹의 손바닥이 내 귀를 가볍게 스쳐 지나더니, 킹이 팔로 내 목을 감싸 끌어안았다.
“알았어. 이리 와.”
나는 팔을 뻗어 킹의 허리를 안았고 킹도 손을 내려 내 허리를 안았다. 킹의 몸통은 두껍고 커서 마치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무처럼 표면이 거칠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아무 짓 안 하는 나무가 같이 지내기는 훨씬 편했지만. 심지어 유해한 담배 냄새나 내뱉는 누구랑 달리 공기도 깨끗하게 만들지. 나는 분명 힘들다고 말했고 킹은 알겠다고 말했지만 킹은 빨간 문으로 날 끌고 왔다.
“나 힘들다니까.”
그렇지만 도리어 킹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날 바라봤다.
“허니는 머리에 섹스 생각밖에 없어?”
“그럼 뭐 하려고 왔어?”
“입술은 멀쩡해 보여서.”
그거나 이거나. 그렇지만 내가 킹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잠자코 킹을 따라 안에 들어갔고 킹은 정말 말을 지킬 건지 내 옷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지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입술을 내 얼굴에 붙였다.
킹은 제법 신사적인 태도로, 제 입술을 천천히 내 입술에 갖다 댔다. 말랑한 킹의 입술이 민감한 부위에 닿자 미지근한 킹의 체온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킹은, 얼굴에 바르는 보습제나 몸에 바르는 페퍼민트 오일 말고 별다른 걸 바르지 않았지만 입술이 부드러웠다.
잘생기고 어려 보이는 외모나 부드러운 피부, 윤기 나는 곱슬머리까지. 킹은 보이는 부분에서는 여러모로 탁월한 이였다. 킹만큼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꽤나 외모를 밝혔다.
킹이 만약 킹이 아니고 마이클 미치의 외모였다면, 입술이 닿기도 전에 토악질을 할지도 몰랐다. 킹이 킹이었음에도 내가 그나마 아양 떠는 척할 수 있던 것도 오로지 킹의 외모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외모와 성품은 비례하지 않다는 걸 덕분에 더 잘 알았다.
섹스가 없이 키스만 하는 킹은 낯설었다. 그러나 꽤 나쁘지 않았다. 입 아프게 말하지만, 어쨌든 킹은 잘생기긴 했으니까. 나는 양팔을 킹의 어깨에 올려 목에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었지만 킹은 도리어 입술을 살짝 떼어냈다. 뭐 하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킹이 입술을 둥글게 모으더니 내 입술에 후 하고 숨을 불어넣었다.
부드럽고 약한 바람이 입술과 인중에 닿아 간지러웠다. 살짝 웃자, 웃느라 주름진 코에 킹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킹은 입술을 내 코 주변에 둔 후 입을 열었다. 코에도 킹의 약한 숨이 닿았다.
“웃는 게 딱 다섯 살이야.”
다섯 살에는 이렇게 안 웃었는데. 다섯 살의 나는 꽤나 순수했다. 지금 같지 않았다. 지금 같이 웃을 리 없었다. 웃음이 멈춰 올라갔던 광대가 제자리로 내려가자 킹은 내 광대에도 입을 맞췄다.
“다시 웃어 봐.”
가벼운 미소면 모를까, 진짜로 웃는 것같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내 맘대로 지을 수 있다면 내가 배우를 했지. 뭣 하러 여기에 있겠어. 그렇지만 하라면 해야지. 나는 입술을 부자연스럽게 올렸다.
“이렇게?”
“아니, 아까처럼.”
나름 킹이 원하는 대로 웃어봤지만 킹은 만족스럽지 않았나 보다. 킹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나는 최대한 아까의 감각을 떠올리며 광대와 입술을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맞았는지 킹이 평평한 미간으로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전에는 몰랐는데 여기가 살짝 패었네.”
킹이 광대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그랬나?”
킹의 말에 내 얼굴을 떠올려 봤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웃었을 때 굳이 거울을 볼 일이 없었다. 거울을 볼 때는 늘 무표정했다. 킹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자기 얼굴인데 그것도 몰라?”
킹은 내 얼굴에 패었다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계속 만지고 있었는데, 그래 봤자 내 얼굴이 패여 있는지 내가 느껴질 리 없었다
“몰라. 내가 웃을 때 사진 찍힌 거 봐도 아무것도 없던데.”
증명사진용으로 찍었던 사진을 떠올렸다. 제법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거기에도 킹이 말하는 패인 부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보정되느라 사라졌나?
킹은 광대가 내려가 이미 사라졌을 요철을 손가락으로 발굴해 내겠다는 듯, 여전히 광대를 문지르며 말했다.
“활짝, 광대가 올라올 정도로 웃어야만 나타나는 건가 봐.”
활짝. 활짝 웃은 채 사진에 찍힌 적이 있던가. 아기였을 때 활짝 웃은 채 찍힌 사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 사진은 살이 너무 포동포동해 그런 팬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고 점차 젖살이 빠질 때부터는 그렇게 사진을 찍힐 일이 없었다. 굳이 내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그런 부분을 지적할 이도 없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엄마도 몰랐을지도. 나는 엄마보다 골격이 더 크고 두드러질 뿐, 엄마와 나는 상당히 닮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나와 흡사한 얼굴인, 엄마의 얼굴을 내 거울상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얼굴에 없는 건 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엄마랑 내가 닮았다 해도 우리는 다른 인간이었고 나는 종종 엄마와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엄마는 죽을 때까지 쌍꺼풀이 없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얇은 쌍꺼풀이 내 눈에 생겼던 것처럼.
광대에 있다는 그 패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엄마의 활짝 웃는 얼굴을 종종 본 적 있었지만 엄마의 얼굴엔 그런 게 없었다. 내 기억에 얼굴에 상처가 났던 적은 없었고, 그렇다면 이런 것도 보조개인가? 보조개가 광대에도 있던가? 킹은 반대쪽 광대로 손을 옮겨 문지르는 중이었다. 광대가 간질거렸다.
“반대는 없고 한쪽에만 있어.”
내 얼굴을 직접 볼 일이 없으니까, 나는 내 얼굴을 생각보다 잘 알지 못하나 보다. 내 얼굴이 내 게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킹이 내 속눈썹을 검지로 간질였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는데 동시에 따뜻했다. 킹이 내 눈두덩에 손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피부가 연약해.”
킹이 내뱉는 말과 숨이 내 코끝에 느껴졌다.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눈꺼풀이니까.”
킹이 내 눈꺼풀에서 손을 떼어 눈을 떴지만 킹이 내 미간을 갑작스럽게 톡 쳤다. 그래서 나는 놀라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킹이 이번에는 눈썹을 결 따라 쓸어 만지길래 조심스럽게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움직이는 킹의 손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킹의 손금 때문에 눈이 어지러웠다. 손바닥을 가르는 생명선이 보였다. 끊긴 곳 없이 쓸데없이 명확하고 길었다.
킹은 손가락을 올려 내 이마를 쓱 훑고 볼로 내려오더니 쇄골 근처를 문질렀다. 쇄골이 몸에서 가장 약한 뼈라는, 어디서 들은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킹은 해맑게 웃으며 얼굴과 어울리지 않은 말을 지껄였다.
“허니는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워서 잉크를 박아 넣으면 이쁠 거야.”
킹의 손가락이 바로 내 피부를 찌르고 잉크를 주입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놀라 킹의 손을 내 몸에서 떼어냈다.
“잉크?”
“응.”
킹은 왜 그렇게 난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난리가 안 나겠어? 나는 아픈 게 싫어서 피어싱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타투를?”
“응.”
감옥에서 타투를 하는 미친놈들이 많기는 했지만 감옥에서 엄격히 금지되는 행위였다. 에이즈 같은 병을 옮기기에 십상이었으니까.
“감옥에서 바늘로 내 피부를 쑤셔지라고? 무슨 병이 걸릴지 어떻게 알아?”
“괜찮아. 잘 소독할 거야. 설마 내가 허니를 아프게 하겠어?”
지금 그러겠다고 말하고 있잖아. 이 미친놈이 이미 다 계획해 뒀나 보다. 쓸데없이 실행력 좋은 놈. 쓸데없이 실천이 앞서는 놈. 나는 킹의 팔꿈치 안쪽을 살짝 눌러 양손으로 잡고, 연약하고 부드러운 그 부분을 엄지로 문지르며 애절하게 말했다.
“자기, 나는 병 걸리는 거 아녀도 찔리고 그런, 아픈 거 정말 싫어…….”
킹의 손바닥을 내 얼굴에 갖다 대고 고개를 옆으로 꺾은 후 킹을 올려 봤다. 나름 필사적으로 애교를 부리며 애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통했는지 킹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역시 킹은 개새끼였다.
“허니는 이렇게 여려서 어떻게 해.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지.”
나는 울 것 같이 애달프게 킹을 바라봤다.
“자기, 할 거야? 나 지켜준다고 했잖아…….”
킹은 내 얼굴을 똑바로 세워 내 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나를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내가 해 줬음 좋겠어?”
그럴 리가. 뭔 소리야. 나는 그동안 킹에게 쓰지 않았던 단호한 말투로 답했다.
“아니. 누구든 싫어.”
킹은 내 목 뒤를 검지와 중지로 더듬으며 날 달래는 투로 말했다.
“여기에 내 거라고 새기고 싶어.”
개새끼. 이럴 거면 미리 알려 줬어야지. ‘내 것’이 된다는 의미가 몸에 낙인까지 새겨야 한다는 의미인지. 그렇지만 알았다고 해서, 내가 킹 말고 찾아갈 이가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킹에게 부릴 수 있는 재롱은 다 떨었다.
“난 이미 자기 거인데?”
나는 내 목을 만지는 킹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말한 후, 킹의 손 곳곳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킹은 다른 손으로 내 양손을 덮더니 단호히 말했다.
“더 확실하게.”
하. 다가올 고통에 손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연약한 목소리를 겨우 입 밖으로 뱉었다.
“그러면, 나만 해?”
킹이 엄지로 내 손등 뼈를 스치듯 문지르는 게 느껴졌다. 그곳은 성감대여서 때맞지 않게 약한 쾌감이 올라오는 게 짜증 났다.
킹은 내 손등에 천천히 글자를 적었다.
‘K’
‘I’
‘N’
‘G’
그리고 킹은 웃으며 쓰레기 같은 말을 지껄였다.
“허니는 학교 다닐 때 허니 물건에다가 이름을 써 놓지, 허니 몸에다가 연필, 노트 이렇게 다 적어 둬?”
재활용도 안 될, 정말 태우거나 묻는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나는 킹의 말에 과하게 트집을 잡으며(책잡힐 말은 맞았다.) 화난 표정을 지었다.
“자기한테는 내가 연필이나 노트 따위야? 겨우?”
그러나 킹은 여전히 내 손등을 문지르고는, 내친김에 손등에 입까지 맞춘 후 너그러운 척 말했다.
“그건 아니지. 허니가 어떻게 연필이랑 노트 따위야. 노트랑 연필한테는 이렇게 뽀뽀도 해주고 박아주지도 못하는걸. 허니가 정 그렇게 무섭다면 나도 할게. 내 몸에 허니 이름 새기면 이쁘겠어. 허니가 원하면 이마에 새겨줄까? 딴 새끼들이 감히 넘보지도 못하게? 연꽃 그림도 새길까? 허니도 이마에 박으면 이쁘겠다. 어때?”
“…….”
니 몸에 내 이름이 박히는 것도, 내 몸에 니 이름이 박히는 것도 모두 끔찍하게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