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5/21)

Chapter. 5

각 노동마다 교도관이 지정하지 않아도 정해지는 리더가 있었는데, 내가 이번에 맡은 데이터 노동은 킹이었다. 교도관마저 눈치를 보는 인물이 킹이었으니 재소자들은 킹에게 당연하다는 듯 기었다.

정보 처리실 안으로 들어가니, 학교에서 버린 걸 주워 왔는지 철제봉과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딱딱한 책걸상이 가로로 다섯 줄, 세로로 네 줄로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교탁 같은 곳에 교도관이 앉아 감시를 하고 있었다. 나는 킹에게 어깨를 내어준 채로 정보 처리실로 들어왔다. 킹과 나는 가장 늦었음에도, 킹을 그저 힐끗 본 교도관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다른 재소자들은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내게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교도관을 쳐다봤지만, 교도관은 내 시선을 흘리듯 무시했고 그런 날 보던 킹이 굳이 내 귀에 입을 딱 대고 속삭였는데 그 목소리는 모두에게 들릴 만큼 컸다.

“빈자리 아무 곳이나 앉아서, 컴퓨터랑 프로그램 켜. 나 없다고 울지 말고,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지? 허니.”

그렇게 말한 킹은 내 뺨에 일부러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더니 내 귓불을 주물렀다. 입을 맞추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는데도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니, 그들은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데?”

나는 한 뼘은 더 큰 킹을 올려다보며 매달리듯 속삭였다. 내 목소리는 둘만 들을 만큼 작았다. 킹은 더 설명을 해주지 않고 내 뺨을 큰 손으로 훑었다. 킹의 손바닥은 부드러웠고 스치듯 가벼운 접촉이었다. 다정했으나 내가 원하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킹은 정보 처리실 안에 또 벽으로 나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벽엔 크고 투명한 유리창이 달려 있어 킹이 보였다. 킹은 덜컹거리는 책상 네 개는 합친 듯한 크기의, 큰 책상 근처에 놓인 의자에 가 앉았다. 그 의자는 딱 봐도 푹신해 보였고 심지어 목 받침도 달려 있었다. 분명 비싼 기능성 의자였다. 덜컹거리는 딱딱한 나무 의자들과 달리.

그리고 킹의 노트북은 이쪽을 등지고 있어 내용이 보이진 않았지만, 브랜드는 보였고 그 브랜드는 전자 기기 회사 중에서 가장 값이 비싸고 질 좋은 걸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킹이 쓰는 노트북은 다른 책상에 놓인 싸구려 노트북 다섯 대 값을 합쳐야만 살 수 있는 좋은 것이다. 더욱이 그 크기가 커서 싸구려 노트북 두 대 값을 더 합쳐야 할지 몰랐다. 킹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가 아직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만 움직여 말했다.

‘나 엄청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더니 본인도 웃겼는지 웃었다. 나는 웃기지 않았으나 입꼬리를 올리고 구석진 자리에 있는 빈자리에 가 앉았다. 가장 늦게 온 탓에 내가 앉은 자리의 책걸상은 물론 노트북은 낡았고 수상쩍게 더러웠다. 노트북이 제대로 구동은 할까 염려될 정도였다. 그래도 마이클 미치에게 추행당하며 온몸이 젖게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노트북의 전원을 눌렀다. 그러자 노트북이 팬 돌아가는 소리를 시끄럽게 내더니 천천히 켜졌다. 오랜만에 보는 전자 기기 액정이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반가웠다. 노트북은 인터넷이 연결되었으나 일을 맡긴 IT 기업에서 만든 자체 프로그램만이 깔려 있었다. 그 외에 다른 페이지는 접속이 아예 불가능했다.

일은 간단했다. 그저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 됐다. 프로그램을 켜고 나는 프로그램이 시키는 명령대로 일을 수행했다.

[보이는 단어를 입력하시오.]

오늘 내게 내려진 명령어였다.

나는 본래 맥락이 상실되어 토막 난, 휘갈겨 쓰인 단어를 읽어 입력했고 다른 단어가 뜨면 그걸 또 입력했다. 옆에 있는 남자는 주어진 데이터가 지하철 이야기인지 아니면 샌드위치 가게의 이야기인지 인공지능이 구분하지 못하는 걸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단순한 작업이었다. 도구가 컴퓨터였을 뿐,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고 푸는 것과 같았다. 나는 찰리 채플린이 된 것처럼 눈이 발개지도록 화면을 들여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입소 전, 학교에서 일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엑셀을 눈이 빨개지도록 들여다 봤고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상담 및 항의를 처리했다. 여기서는 성이 나 씩씩대는 목소리로 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돼서 그건 다행이었다.

나는 자세가 점점 틀어져 목이 아파 왔고, 그래서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손바닥 안을 보여줘 아무것도 쥐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고, 팔을 다른 사람 자리로 뻗지 않아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교도관에게 증명한 뒤 말이다.

이 안에 있는 재소자들 대부분은 안경을 끼고 말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 잠시 알바로 일했던 학원 풍경 같았다. 그렇지만 그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에 나가 밝은 미래를 살고 있을 테고, 여기는 범죄자 소굴이었다. 학생 중 몇몇도 왔을지 모르지만.

머리를 굴리지 않고 한 자리에 처박혀 있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았으나 여긴 날 주물러 대고 강간하고 싶다고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던 마이클 미치가 없었고 그것만으로도 청소 일보다 수월했다. 유리창 너머를 슬쩍 바라보니 킹도 집중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킹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저렇게 진지한 표정인 걸까. 단순노동을 한다고 치기엔 과도한 집중력이었다.

킹은 연보라색 점프 슈트 죄수복을 입고서도 엘리트 화이트칼라 노동자처럼 보였다. 킹은 몸 쓰는 일을 맡은 쪽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는데 저렇게 보니, 머리를 쓰는 쪽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킹은 생각보다 더 머리가 좋을지 몰랐다. 나는 더욱 조심하고 현명하게 굴어야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 남자는 미나콤이고 더욱이 킹이니까.

* * *

위이이이이이잉!

식사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다들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으나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교도관마저도 멈춰 있었고 내 옆에 있던 남자는 숨을 들이켜고 내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킹이 문을 열고 나오자 그제야 옆에 있던 남자가 크게 숨을 뱉어 냈다. 노트북이 조금이라도 가벼웠다면 저 멀리 날아갈 만큼 강한 숨이었다.

일어나 킹의 옆에 서자 킹은 내 어깨에 당연하다는 듯 손을 둘렀고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귀엽긴. 가자.”

킹에게 어깨를 맡긴 채로 걷는데 투와 제이제이를 비롯한 몇 명이 옆에 섰다. 투, 제이제이를 비롯한 그 무리는 가구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그들 무리는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차라리 몸을 쓰는 일을 선호했고 나무라도 자르고 썰어 대며 폭력 욕구를 해소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일은 자재를 들여오며 빼돌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위험한 무기들을 가져올 수 있고 땀 흘리며 일하는 가구 작업장 대신, 엉덩이 배기게 가만히 앉아 노트북을 두드려 대는 일을 왜 킹이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웹 서핑 따위를 하며 시간을 죽인다고 보기엔 킹은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는 듯했으니까. 바깥에서 하던 일을 이곳에서 하는지도 몰랐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줄의 맨 앞에 섰다. 킹은 식판과 수저를 집어 먼저 내게 내밀었다. 마치 내가 강아지나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자신에게 맡겨진 존재처럼 굴었다. 나는 말 없이 킹이 건네는 걸 받았다. 그러자 킹이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를 해야지?”

어린아이가 뭘 몰라 빼먹었을 때 지적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나는 부러 과하게 웃었다.

“고마워, 킹.”

킹의 입에도 웃음이 걸려 있었으나 짙고 검은 홍채는 무감했다.

조와 보리가 섞였으나 꽤 질 좋은 쌀을 썼는지 평소보다 윤기가 나는 밥과, 빨리 온 덕에 뭉개지지 않고 제 형체를 유지하는 고구마 소고기 매운 찜, 시금치를 넣고 된장을 푼 국, 숨이 좀 죽긴 했으나 제법 멀쩡한 양상추와 로메인 샐러드가 식사였다. 평소보다 훨씬 나은 것임에도 나는 제대로 식사를 하기 힘들었다. 마이클 미치가 오늘도 죽일 듯이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내가 자신의 조강지처였으나 다른 놈이랑 바람이 난 것처럼 배신감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킹은 순진한 제 처를 꼬신 제비 새끼를 보듯 바라봤고. 물론 모든 건 마이클 미치의 망상이었다.

마이클 미치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킹은 모른 척하며, 아니, 알고 있기에 더 내 볼과 귀를 지분댔다. 킹의 행동은 명백히 마이클 미치의 분노를 돋우는 것이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내가 킹의 아래 있다는 걸 명백히 할수록 내게 접근하려는 자들이 적어질 테니까.

아니, 아예 사라질지 모르지. 마이클 미치도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째려만 볼 뿐, 다른 놈들에게 하듯이 쉽게 킹에게 다가와 성질을 부리지 못하고 있었다.

난 내 식판에 있는 가장 큰 고깃덩이를 집어 킹의 입에 넣어주었다. 킹은 놀라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 고기를 받아먹고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는 킹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손을 내려 킹의 귀를 약하게 주무르며 입을 귀 가까이 대 속삭였다.

“있잖아, 아빠가 어릴 적에 엄마한테 내 사랑이라고 불러서 나는 엄마를 내 사랑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어.”

“응, 그래서?”

시답잖은 얘기였지만 킹은 이 세상 무슨 얘기보다 흥미롭다는 듯 굴었다. 나는 킹의 동그랗게 말린 머리끝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엄마 보고 ‘내 사랑!’이라고 불렀더니, 아빠가 그건 크면 진짜 내 사랑한테 부르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허니의 ‘내 사랑’이라는 거야?”

킹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대는 내 손을 가져다가 입술을 박고 속살거렸다. 나는 그게 못내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싫어?”

“그럴 리가.”

킹은 내 엄지 안쪽에 입술을 맞추더니 어금니로 약하게 물고는 내 손을 놔주었다. 나는 킹이 좋아 죽겠다는 듯 웃는 척하며 마이클 미치의 눈을 쳐다봤다.

여기서 날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얘이고 나한테 박을 수 있는 애도 얘고, 내가 아양 떨 사람도 얘야.

넌 절대 아니지.

그리고 마이클 미치는 오늘도 수저를 부러뜨렸다.

너무 사랑스럽지만, 이미 내 부모님이 썼다는 ‘내 사랑’이라는 애칭보다 다른 게 좋다고 킹은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쪽에서 창의력이 뛰어나지 않았고, 킹은 여러 가지 후보들을 댔다. 일 번은 달링, 이번은 자기, 삼 번은 큐티, 사 번은 베이비였다. 수치 따위 모르는 남자였다.

어쨌든 ‘마이 베이비’는 골초셔서, 나는 식사 후 킹의 흡연 자리에 따라가야만 했다. 킹은 내 어깨에 팔꿈치를 올린 자세로 내 귀를 만지작대면서 반대 손은 제이제이에게 내밀었다. 킹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제이제이는 알아서 킹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 한 개비를 끼워 주었다. 그리고 투가 불을 붙여주려 했지만 킹이 손을 내저었다.

“제이제이.”

투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가 킹의 심기가 상할까 얼른 고개를 숙였고 제이제이는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킹의 옆에선 풍기던 상쾌한 페퍼민트 냄새에 맵고 텁텁한 냄새가 더해졌다.

킹은 불이 붙은 담배를 입술로 물고는 눈으로는 내 얼굴을 훑으며 담배 연기를 가득 들이마셨다. 나는 피하지 않고 킹의 눈빛을 받아쳤다. 그리고 킹은 살짝 턱을 몸 안쪽으로 당겼고 그래서 길게 아래로 뻗은 킹의 속눈썹이 킹의 눈 아래로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손에 잡히지 않을 그 그림자가 무척이나 날카로워 피부를 베어낼 것 같았다.

킹은 턱을 다시 들어 올리며 담배를 입에서 빼냈다. 킹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타들어 가며 길고 하얀 연기를 토해 내는 담배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킹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킹의 갑작스러운 미소에 내 시선이 킹의 얼굴로 다시 향했고 킹은 나와 다시 눈을 마주치자 내 얼굴로 연기를 내뿜었다.

킹의 폐는 어찌나 큰 것인지, 엄청난 양의 연기가 내 얼굴로 쏟아졌다. 급하게 눈을 감았음에도 눈이 매워 눈물이 났고, 이제껏 침입한 적 없던 담배 연기가 코와 입을 통해 나의 폐로 쏟아지자 내 몸은 기침을 호소했다.

“큭! 콜록, 콜록!”

내가 허리를 접자 내 어깨에 놓였던 킹의 팔이 갈 곳을 잃었고 킹은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나는 몸을 숙이고 내 안으로 쏟아졌던 담배 연기를 뱉어내려 애썼지만, 내 몸이 쏟아낸 건 눈물과 침뿐이었다.

“허니, 많이 아파?”

내가 이러고 있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내 귀 뒤를 만지작거리며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개새끼. 그리고 킹은 내 등을 문질러 댔다. 아직 잔기침을 쏟아내고 있던 나는 등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커다랗고 엿 같은 손을 느끼며 콜록댔다.

기침이 멎자 허리를 펴, 자세를 바로 했다. 기침을 어찌나 쏟아냈는지 목이 칼칼하고 아팠다. 킹은 내 얼굴이 제 눈높이에 얼추 비슷해지자 내 눈가를 가볍게 문질렀다. 그리고 내 속눈썹에 맺힌 눈물방울을 터트려 볼로 퍼트렸다.

눈물의 양이 제법 되어 피부가 젖어가는 게 느껴졌고 킹의 눈빛 또한 더럽게 습했다. 기분이 너무 좆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굳이 본심을 내뱉지 않고 아직 내 볼을 쓰다듬는 킹의 손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 킹이 도서관에서 내게 그랬던 것처럼, 킹의 손바닥 옴폭한 부분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손바닥 전체를 축축해지게 핥았다.

페퍼민트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킹의 손이 입과 코를 덮자 내 숨에도 그 냄새가 섞였고 혀에도 그 맛이 느껴졌다. 혀를 뾰족하게 모아 킹의 손바닥, 검지와 중지 사이 뿌리 부분을 뭉근하게 찌르고 문질렀다. 담배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라 담배 냄새가 가장 강했다. 그리고 킹의 손을 내 입에서 떼어냈다. 킹의 손도 내 볼처럼 젖어 있었다. 그러자 킹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고는 웃었다.

“착하네.”

강아지를 칭찬하는 것 같은 음성이었다. 그리고 킹은 내 침으로 흥건한 손을 아직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내 침을 다 삼켜 버리겠다는 듯 혀로 닦아 냈다. 표백된 백지에 까맣게 출력된 검은 동그라미처럼 분명하고 또렷한 눈으로, 아직 물기가 남아 흐리멍덩한 내 눈을 뚫어버릴 듯 응시하면서 한참 제 손바닥을 핥았다.

킹의 손가락에 걸린 담배가 다 타들어 가는 건 킹과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신경 쓰였다.

킹은 내가 반항하지 않고 손바닥을 핥아낸 게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더욱 다정한 척 굴었다. 킹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내 정수리에 입술을 박고, 담배 냄새를 폴폴 풍기며 지나갔음에도 교도관은 킹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교도소 내에선 흡연은 물론 재소자들 간에 긴밀한 접촉, 특히 ‘동성애’적 행위가 금지되었음에도 그들은 못 본 척했다. 킹이 아니었다면, 당장 조사 후에 징계 내지는 독방행 등 여러 처벌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새삼 킹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실감이 되었다.

그런 킹을 신경 쓰는 건 킹의 몸에 남은 담배 연기를 어떻게든 긁어 들이마시려는 재소자들뿐이었다. 추잡한 그 꼴이 신경 쓰여 내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자 킹이 알아채고 내 눈썹을 검지로 눌러 폈다.

“그럼 이쁜 얼굴에 주름 생겨.”

미간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다려지듯 나는 피부를 폈다. 그리고 킹은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 벌레 새끼가 왜 이렇게 많아!”

손을 비비는 대신 코를 킁킁대던 파리들은 킹의 말에 놀라 흩어졌다. 흉한 광경이 사라졌음에도 킹은 내 피부에서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도리어 손을 아래로 미끄러트려 손바닥을 내 뺨에 대고 뼈로 둘러싸인, 아래턱의 말랑한 부분을 엄지로 꾹꾹 눌렀다. 그 힘이 제법 강해 연약한 근육이 그대로 관통되어 킹의 손가락이 내 혀를 만질까 걱정될 정도였다.

차라리 나는 그 엄지를 입 안에 넣어 이미 난 구멍으로 혀를 만질 수 있게 했다. 킹의 손가락이 내 턱 아래를 감싸고 치아에 엄지 뿌리 쪽을 걸친 상태로 킹은 내 혀를 꾹꾹 눌렀다. 킹의 엄지가 더욱 깊게 들어와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 나는 손가락을 바깥으로 빼고 엄지 끝부터 앞니로 살짝 깨물었다.

트인 공간에서 그러고 있자 나와 킹을 보는 눈이 많았다. 개중에는 날 음험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물론 마이클 미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알아채지 못한 척하며 킹의 손가락을 열심히 빨았다. 좆을 빠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빠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 * *

칫솔이 또다시 사라졌다. 칫솔에 발에 달린 것도, 내가 잃어버린 것도 아니니 저번에 그 변태가 다시 훔쳐간 것이겠지. 나는 킹과 한방을 썼고 킹은 내가 ‘자기 것’이라는 티를 내고 다녔는데 변태는 목숨보다 제 욕구가 중했나 보다.

아직 영치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영치금으로 하나를 새로 살 수 있었지만, 또 훔쳐 갈 것 같았고 내 선에서 처리하는 건 많이 귀찮았다. 나는 내 뒤에서 어금니를 닦고 있는 킹을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킹은 입술에 하얀 치약 거품을 묻힌 상태였다. 생김새 자체는 정말 유순한 청년이라, 그러고 있는 킹은 무해해 보였다. 곱슬머리도 그렇고, 생김새 하나는 천사 같았다. 킹은 내가 쳐다보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양칫물을 뱉고 입을 대강 헹군 후 물었다.

“허니, 왜?”

나는 소매를 끌어당겨 킹의 입가에 남은 칫솔 거품을 닦아주며 답했다.

“베이비, 내 칫솔이 또 사라졌어.”

킹과 나의 대화는 겉으로 보기엔 다정하고 닭살 돋았으며 일상적이었으나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은 킹은 눈이 잔뜩 가라앉은 채였다. 킹은 내 볼을 살짝 두 번 토닥였다.

“잠시만 기다려, 허니.”

그리고 킹은 성큼성큼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기다리라고 했지만, 멀찍이 킹을 따라갔다. 킹은 왜소하고 늙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대로 안면을 강타했다.

퍽!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 남자는 나이 때문에 골밀도가 좋지 않고 재생 능력도 떨어질 텐데 죽지 않을까 싶었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윽!”

늙은 남자는 갑작스럽게 날라온 킹의 주먹에 냅다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 있던 재소자들이 신난 듯 환호를 보냈다. 싸움을 더럽게 좋아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여기 왔겠지.

“킹! 무, 무슨 일인데!”

남자가 오리발을 내밀며 손을 내저었다. 저 남자는 내가 킹의 손가락을 빨 때 가장 집요하게 쳐다보던 사람이었다. 저 새끼가 아닐 리 없었다.

“허니의 칫솔이 또 사라졌다고 하네. 내 게 아닐 때는 상관없는데 지금은 내 거니까 조심해야지.”

킹이 주먹을 털어내며 다시 남자에게 다가갔고 남자는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미,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남자의 얼굴엔 공포가 가득했다. 킹의 주먹은 딱 봐도 아파 보이긴 했다. 솜 주먹이라 해도 킹한테 맞는 건 무서울 일이지.

퍽!

빠직!

푹!

근육과 뼈가 망가지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렸다. 교도관들이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는지 얼굴이 걸레짝이 된 남자와 킹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킹이 일어났다. 킹은 핏덩이가 된 남자를 향해 피 묻은 주먹을 털며 말했다.

“알잖아, 내가 내 거 건드는 거 존나 싫어한다는 거.”

킹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웃으며 둘러봤다. 그리고 그 사람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자는 당장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의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남자의 얼굴은 엉망이었기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남자의 자해 사건 내지, 다른 재소자의 폭행 사건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킹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그리고 킹은 방으로 돌아갔다. 독방 말고 나와 쓰는 방 말이다. 공개적으로 저렇게 사람을 반 죽여 놔도 킹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사람을 후려친 건 본인인데 킹은 내게 다가와 다정한 척, 내 머리를 귀에 꽂아 주며 물었다.

“허니, 괜찮아? 험한 꼴 봐서 놀랐으면 어떻게 해.”

무슨 임산부한테나 할 말이었다. 그리고 킹의 걱정에는 딱히 진심이 없었다. 진심을 바라지도 않았고. 나는 귓가 근처에 있는 킹의 손을 내 손으로 감싼 채 답했다.

“자기가 최고야.”

그러자 킹은 어린아이 칭찬하듯 나를 바라봤다. 이게 모두 개 같은 연극인 것은 킹도 나도 알았다. 그저 킹은 내가 재밌어서 끊임없이 장난을 거는 것이었고 나는 그 장난을 거부할 수 없어 장단을 맞추는 거였다. 킹과 내가 주고받는 눈빛 속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아니, 의심, 경계, 흥미. 딱 이정도만 있었다.

***

원래도 킹을 건드는 사람이 없었지만, 요새는 킹이 지나가기만 해도 다들 숨을 죽였다. 킹은 평소와 같은 표정과 태도로 날 끌고 다녔다. 나는 킹과 함께 일어나 킹과 함께 밥을 먹었으며 킹과 함께 일을 갔다가 다시 킹과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

킹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룸 메이트였고, 날 괴롭히거나 몸을 만지긴 했어도 딱 그뿐이었다. 킹은 분명히 내게 발정했다. 그렇지만 섹스, 하다못해 키스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덮칠 듯 굴면서 그러지 않았다.

킹이 ‘신사적’이라 그런다는 건 웃긴 말이었다. 신사적인 사람이 남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그런 식으로 나를 괴롭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섹스를 하는 건 단순했다. 몸이 시키는 대로 쾌락을 좇으면 끝이니까. 그렇지만, 섹스를 하고 싶다는 듯 굴고, 할 수도 있으면서 하지 않는다는 건, 복잡했다. 생각보다 더 교활한 남자일지 몰랐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이 뜨였다. 얼마 자지 않았지만 꿈도 꾸지 않고 푹 잔 덕에 몸이 개운했다. 그래서 더 자고 싶지는 않아 몸을 일으켜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건너편 침대에서 자고 있는 킹이 보였다. 킹은 팔로 눈을 눌러 가린 채 똑바로 누워 자고 있었다. 킹의 팔은 무척 두껍고 컸기에 저 팔만 해도 무게가 엄청날 것 같았다. 눌린 안구가 괴롭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킹은 눈을 짓누르는 무게에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킹은 코를 골지도, 숨소리가 크지도 않아서 언뜻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킹은 분명히 살아있었다. 킹의 몸은 어찌나 큰지, 킹의 침대는 다른 재소자들의 침대보다 컸는데도 침대가 가득 차서 발끝이 철제 프레임 밖으로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킹에게서 눈을 떼어내고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방의 창은 다른 방과 달리 더 컸고 깨끗했다. 그리고 쇠창살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감방에 비한 것이었다. 바깥의 것만큼 쾌적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것이라도 좋았다.

하늘이 파란 게 보였다. 이곳에 온 이후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직접 목격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그런 일은 없으니, 일기예보가 필요치 않기는 했다. 하여튼, 오늘은 날이 좋았다.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하늘에 떠, 흘러가는 작은 구름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기시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옮기니 어느새 깬 킹이 눈을 눌렀던 팔을 이마로 올려 두고 고개만 살짝 내 쪽을 향한 채 날 응시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 허니.”

방금 일어나 잠긴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킹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늘 듣기 좋았다. 잘생기면 구강구조도 잘생겨서 목소리가 좋게 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음성학 같은 건 몰랐고 킹이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나는 입술을 위로 끌어올려 움직였다.

“안녕, 자기.”

킹이 인사를 받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기지개를 크게 켰다. 멀리서 봤던 킹은 호리호리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같이 지내고 나서야 그의 몸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목이나 손목 등 드러난 부분이 감춰진 부분에 비해 가늘 뿐. 킹은 전체적으로 크고 단단한 몸이었다. 그리고 킹은 숨을 크게 들이켜 폐 안으로 담았다. 그러자 킹의 몸통이 크게 부풀었다. 목을 꺾고 팔다리를 돌리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킹은 갈색 병을 집어 손바닥에 펌핑했다. 그건 페퍼민트 오일이었다.

홍징은 열대 기후여서 1년 내내 더웠다. 그리고 킹은 몸에 열이 많다며 페퍼민트 오일을 어깨와 목 뒤 등, 몸 곳곳에 발랐다. 페퍼민트 오일은 바르면 파스를 바른 것처럼 화했다. 눈가에 바르면 눈이 시려 눈을 뜰 수 없었고, 과한 양을 바르면 더운데도 얼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킹에게서 나는 페퍼민트 냄새의 정체는 저것이었다.

내 몸에 바른 것도 아니었는데도 가까이에 있는 킹이 그 큰 몸에 오일을 바르자 콧속이 화했고 눈이 시려 왔다. 킹이 내게 병을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피부에는 너무 자극적이었다.

나는 칫솔을 꺼내 치약을 짜 입에 물었다. 킹이 일어날까 봐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킹도 이제 일어났으니까. 작은 스테인리스 세면대에선 킹이 세수 중이었다. 킹은 큰 양 손바닥에 물을 가득 담고 얼굴을 문질렀다. 나는 킹의 옆에 서서 칫솔을 움직였다. 큰 몸을 숙이고 있던 킹이 갑자기 손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킹의 얼굴에는 물이 흥건했고 킹은 눈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눈에 오일 들어갔어.”

그렇게 말하고 킹은 얼굴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한테 내밀어 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데. 그래도 나는 킹의 눈 아래 뺨에 가볍게 손가락을 댄 다음 물기를 조금 훔쳐주었다. 킹은 가만히 내 손길을 받고 있다가 눈을 떴다.

“농담이었는데 그게 전부야? 섭섭하네.”

킹이 깊게 팼던 미간을 평평하게 펴고, 이번엔 입가에 주름을 만들어 가볍게 웃었다. 무슨 반응을 더 해줬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매를 잡아당겨 킹의 눈 쪽에 맺혀 있는 물방울을 닦아주었다. 킹은 바라던 것은 아니었으나 나쁘지 않았는지 표정이 괜찮았다. 킹은 칫솔과 치약을 가지러 가기 위해 세면대에서 비켜섰고 나는 오랫동안 입 안에 담고 있던 양칫물을 뱉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혀뿌리와 혀 전체를 칫솔로 쓸어낸 후, 입 안을 물로 씻어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물을 받아 킹이 했던 것처럼 물로만 세수를 하고 허리를 폈다. 속눈썹에 물이 가득 맺혀 있어 눈을 뜨지 못했는데 갑자기 얼굴 피부에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천이었는데, 부드러웠고 그래서 나쁘지는 않았다. 킹의 수건이었다. 나는 눈이 가려진 채로 손만 움직여 더듬더듬 내 얼굴을 덮은 천을 만졌다. 천이 아닌 것이 만져졌는데 킹의 손등이었다.

킹은 내 얼굴을 살짝 밀었고 나는 그러면서 세면대에서 비켜 밀려났다. 수건을 얼굴에서 치우자 킹이 양칫물을 뱉고 있었다. 킹은 입을 대강 물로 헹궈내고 내가 들고 있던 수건을 가져가 입에 묻은 치약 거품을 닦아 냈다. 나는 아직 킹을 보고 있었고 킹이 입을 열려고 할 찰나,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고 파란 하늘 탓에 마음속에 조금 피어났던 나른함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 * *

“씨발, 킹 미나콤!”

난 조용한 식사 자리를 원했지만 나와 킹 앞에 서 있는 마이클 미치는 도와주지 않았다. 마이클 미치는 제 무리를 잔뜩 끌고 와 나를 포함한 킹의 무리 앞에 섰다. 평소의 마이클 미치는 킹을 건들지 않는 편이었으나, 지금 상당히 성이 난 상태인 듯했다. 뚱보와 화살코 등 마이클 미치의 무리는 마이클 미치를 옆에서 열심히 말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킹은 마이클 미치의 침이 음식에 튀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욕이 사라졌는지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킹 나름의 경고였고 이건 대부분 통했으나 마이클 미치는 지금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킹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쾅! 소리를 내며 내리쳤다.

“이제껏, 니네 미나콤이 물건값 과하게 올리고 유통도 번거롭게 하는 거 다 참았는데, 씹, 이젠 그것마저 막아?”

“나는 여기 있잖아.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연좌제가 사라진 지 언제인데, 구시대적 인간이구나, 너.”

마이클 미치의 붉은 얼굴이 까매지게, 킹은 마이클 미치의 분노를 돋웠다. 마이클 미치는 뇌가 과부하를 일으킬 것 같이 잔뜩 흥분한 상태였고 킹은 절전 모드였다. 마이클 미치는 테이블을 아예 뒤집어엎을 지경이었고 옆에 있던 뚱보가 겨우 마이클 미치 앞에 서서 마이클 미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참, 마이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잖아. 일단 알아보고 다시 하자, 어?”

마이클 미치는 모르겠다는 태도를 일관하는 킹에 강하게 바닥을 두어 번 구르더니 쿵쿵대며 멀어졌다. 나는 아직 배가 차지 않았으나, 마이클 미치의 체액이 섞였을지 모르는 음식을 먹기 싫어 덩달아 수저를 놓았다.

“허니도 입맛 버렸지? 하여튼, 보기만 해도 역겨워.”

킹이 수저를 놓아 빈손으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리고 킹은 날 자신의 쪽으로 조금 당겼는데 아직 식당을 떠나지 않고 그 꼴을 보고 있던 마이클 미치가 다시 달려오려는 걸 화살코가 열심히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슬쩍 킹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킹은 웃고 있었다. 습관인 미소보다는 진짜로 재미있다는 웃음이었다.

“나 이따가 초콜릿 바 사줘.”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리자 킹은 알겠다고 답했다.

나는 킹이 사준 초콜릿 바를 먹으며 킹의 옆에 딱 붙어 정보 처리실로 향했다. 초콜릿 바는 더운 날씨 때문에 과하게 녹아 끈적거려 치아에 딱 붙었고 손에는 녹은 초콜릿이 묻어 있었다. 남은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우물대는데 킹이 물었다.

“맛있어?”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고 그저 고열량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킹이 사준 것이었기에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킹은 내 손을 가져가 엄지와 검지에 묻어 있던 누가와 초콜릿을 가볍게 빨고는 “음, 나쁘지 않네.”라고 말했다. 손끝이 축축하고 끈적거려서 옷에라도 닦아 내고 싶었지만, 킹이 탐탁지 않아 할 게 분명해 손을 조용히 가져갔다. 그리고 킹은 내 볼을 검지로 콕 눌렀다.

“허니, 너 진짜 어리구나. 아기처럼 단 거 좋아하고.”

킹에게 말한 내 나이는 22살이었고 22살은 결코 아기처럼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기준에 따라 어린 나이이긴 해도 ‘아기’의 기준엔 한참 벗어난 연령이었다. 나는 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킹의 얼굴은 10대 같기도, 30대 같기도 해서 도무지 감이 안 왔다.

“자기는 몇 살인데?”

“몇 살처럼 보여?”

“15살.”

킹이 유치하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거였다. 그러자 킹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5살한테 떡치자고 말한 거야? 횡령 아니고 아동 성범죄였지?”

“나 섹스 안 해봤어.”

킹, 너랑은. 엄연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처음’에 환장한 인간들이 널려 있기에 킹도 그런 부류일 거라 생각해서 던진 도발이었다. 오기로라도 킹과 섹스를 해야겠다 싶었으니까. 킹은 나와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 내게 너무 과한 걸 주고 있었다. 그건 내 앞으로 달린 무형의 빚이었다. 그렇지만 킹에게 통하지 않았나 보다. 킹은 구부러진 검지의 두 번째 마디뼈로 내 코끝을 톡 친 후 말했다.

“가자, 아가야.”

“그래서 몇 살인데?”

나는 평소 같지 않게 집요하게 물었고, 킹은 겨우 유치만 난 강아지가 자기 손을 물었을 때나 지을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너.”

킹은 나보다 살짝 앞서 걸었고 나는 킹을 따라 보폭을 넓혔다.

“서로 나눈 정보는 평등해야지.”

나는 신상 정보에 예민했고 누군가 내 신상을 캐물을 때 답하지 않았다. 또는, 내 신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 같은 것을 물었다. 오고 가는 정보가 평등하게. 전적으로 내 기준에서 평등이었지만. 하여튼, 그때마다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의도가 아닌 그저 버릇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킹의 귀에 들어간 말이었고 그 말을 들은 킹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던 날 보았다. 아니, 옆이긴 해도 내가 뒤였기에 뒤를 돌아본 것이 적절했다.

“우리가 평등한 사이인가?”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결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 안에서도 이 바깥에서도 그런 관계는 될 수 없을 것이다.

“…….”

내가 주제넘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자 킹이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상황에 맞지 않게 개구진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하하, 겁먹기는. 음, 허니보다 몇 살이 많지, 서류상이라면 7살이고 실제로는 6살이 많을 수도 8살이 많을 수도. 나도 내 정확한 나이는 몰라.”

킹은 다위의 창업주인 닉 미나콤의 손자였지만, 닉 미나콤의 딸인 완다 미나콤의 친아들은 아니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화교인 닉 미나콤의 핏줄들은 전형적인 동북아시안 외모여서 킹을 본다면 친자가 아니란 것쯤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킹이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고아였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킹은 어쩌다 그 미나콤 가문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걸로 자기계발서를 쓰면 불티나게 팔릴지 몰랐다.

[<천애 고아에서 미나콤이 되는 법> 저자 - 킹 미나콤]

미나콤은 그냥 미나콤이랑 결혼해도 될 수 있기는 하지 않나, 따위를 생각하다가 스스로의 생각이 웃기지조차 않아 그만두고 나는 킹의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22살에서 최소 6살, 최대 8살을 더하면 킹의 나이는 대강 20대 후반이었다. 킹은 그냥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어려 보이는 외모였고 그래서 많아 봤자 20대 중반일 거라 생각했지만 외모보다는 나이가 조금 많았다. 그래도 킹이 가진 지위와 분위기를 생각하면 저 정도 나이는 어린 것이었다.

킹과 나는 평소보다 빨리 정보 처리실에 도착했다. 방 안엔 재소자들이 아직 몇 없었다. 킹은 선생처럼 방 앞쪽에 삐딱하게 앉아 있는 교도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앤디, 피곤해 보이네. 한 개비 줘?”

앤디라고 불린 교도관은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하얀 백인계 남자 교도관이었다. 얼굴에 온통 주근깨여서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킹의 불손한 인사에도 넘어가 줄 교도관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미나콤 재소자.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우습나?”

“앤디, 삐졌구나. 마이클 미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너무 단순해. 난 여기 있잖아. 그것까진 관여 못 한다니까.”

킹은 마이클 미치에게 그랬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고하다는 뜻을 내보였지만, 교도관 앤디도 마이클 미치처럼 비이성적으로 화를 냈다.

“니가 여기 있어서 못한다고? 맨날 저 노트북으로 뭔 짓을 하는지 내가 아는데!”

교도관이 뚱뚱하고 하얀 손가락으로 저번에 킹이 들어갔던 방을 가리켰다. 그 비싸고 좋은 노트북으로 킹이 다른 짓을 하긴 하는 듯했다. 킹은 교도관을 어르는 건 한 번으로 족한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킹이 들어가는 걸 보며 저번보다 깔끔하고 멀쩡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노트북 전원이 켜지길 기다리며 저 교도관 앤디와 마이클 미치가 무슨 연관인지 생각했다. 마이클 미치는 약 공급이 수월하지 않다며 킹에게 가 따졌고 그 일 때문인지 교도관 앤디는 킹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수많은 교도소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 교도관이 마이클 미치의 밀수품을 들여오는 운반책인 것이다. 나는 교도관 앤디를 슬쩍 바라보았다. 교도관 앤디는 배와 엉덩이가 엄청 나와 있었기에 저기에 뭘 숨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도시락이 과하게 큰 것도 문제 되지 않겠지.

아니면 마이클 미치는 청소 담당이니, 교도관 앤디가 외부에서 들여온 청소 물품을 확인하는 척하며 밀수품을 끼워 놔도 될 걸이다. 교도소에는 필요한 것들이 무척 많았지만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은 역시나 약이었고 꾸준한 공급이 없다면 가장 난리 나는 것도 약이었다.

이곳엔 약에 미쳐 들어온 자들이 넘쳐났고 그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마이클 미치의 다른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그래도 마이클 미치에겐 약이 아닌, 휴대폰, 건전지 등 여러 품목이 아직 남아 있기는 했다.

그리고 킹은 저 노트북으로 대체 뭘 하는 거지? 그냥 웹 서핑 따위나 하는 게 역시 아니었다. 바깥 사업을 여기서 보는 건가? 주식? 뭔지는 몰라도 엄청난 돈이 오가는 일일 것이고 킹의 일이라면 비합법적일 확률이 높았다. 그걸 부패한 교도관이 묵과하고 있는 것도, 교도관에게 준 게 있기 때문이겠지. 한참 생각에 빠진 탓에 교도관에 내게 다가온 걸 알아채지 못했다.

“리 재소자! 지금 뭐 하는 건가!”

킹에게 풀지 못한 악감정을 내게 푸는 건지 교도관 앤디는 내 귀가 찢어질 듯 소리를 쳤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프로그램을 켰다. 프로그램은 저번과 비슷한 명령 문구를 띄웠다.

‘과일 Pear와 기업 Pear을 구분하시오.’

홍징에는 군사 식품을 제조하는 기업 Pear가 있었는데 그 기업은 미군의 군사 식품을 담당하고 있기에 주가에 따라 미국의 안보를 체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만든 IT 기업이 Pear의 정보를 수집하는 듯했다. 모든 기업은 특히 미국 상황을 쉴 새 없이 파악해야 하니까.

나는 프로그램이 시킨 대로 화면에 뜬 텍스트를 읽고 그 내용이 과일에 관련된 내용인지 기업에 관련된 내용인지 분류했다. 그중에는 굳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과일인지 기업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건 대입 시험을 치르는 것같이 애매해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모니터에 뜬 글자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과 목이 아파서 허리를 펴고 눈을 깜빡였다. 오늘은 킹이 있는 방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저번보다 킹의 얼굴이 더욱 잘 보였다. 킹은 생각보다 잘 교육받았는지 허리를 빳빳하게 펴고 바른 자세로 노트북을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우스를 딸깍대다가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킹도 눈이 피곤한지 눈을 감고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문질렀다. 역시 다위에서 큰 실적을 낸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킹은 눈을 천천히 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킹은 날 빤히 바라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나한테 관심 갖고, 좀 부담스럽네?’

관심이 많기는 했다. 나도 슬쩍 웃어준 후 다시 고개를 숙였고 킹은 일어나 방에 달린 큰 창에 커튼을 쳤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도 볼 수 있는 건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짙은 적색 커튼과 피곤해 보이는 내 얼굴뿐이었다.

평생 볼 Pear의 글자를 오늘 다 보았다. 원래 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군사 식품은 나와 연관이 없었기에 평생 Pear란 글자를 피해 다니자고 다짐했다. 눈이 지끈거렸다. 손바닥을 비벼 마찰열을 내고, 그 잔열로 눈을 꾹꾹 눌렀다. 여기서 계속 이 일을 했다가 나가서는 안경을 써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잠시 휴식이자 점심을 먹는 시간이었고 모두 업무를 잠시 멈춘 상태였다. 작업장에서 식사를 할 때는 식당으로 가지 않고, 식당에서 대개 너무 바짝 익어 말라비틀어진, 구운 빵과 멸균 팩 음료를 각 작업장으로 가져다주었다. 어느새 방에서 나온 킹이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옆에 섰다.

“피곤해?”

“응.”

킹은 내 뒷자리 재소자의 의자를 빼앗아 끌고 와 내 옆에 앉았다. 마치 학창시절 친구의 자리에 앉는 것처럼. 킹은 흰 모자를 쓰고 얇아 다 비치는 장갑을 낀 민머리 재소자가 끌고 온, 음식이 든 카트로 향했다. 이내 카트에서 맘대로 빵 두 쪽과 우유 두 팩을 꺼내 든 킹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식빵 한 장과 우유 한 팩을 내밀었다. 바짝 익어 타기 직전인 식빵은 내 입천장을 사포처럼 갈아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빨대를 팩에 꽂고 들이켰다. 딱딱한 식빵이 우유에 흐물흐물해져 겨우 삼켜 넘길 수 있었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는데도 더 먹고 싶은 맘은 없었다. 그냥 식빵 하나를 꾸역꾸역 입에 넣고 우유를 들이켜는데 우유가 부족해 목이 막혀왔다. 켁켁 대자 킹이 자기 우유를 내게 내밀었다.

“빼앗아 먹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입 안 가득 음식이 차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킹의 우유 한 팩을 몽땅 비워 버렸다.

“진짜 애 같아.”

킹의 나이를 듣고 보니 나는 킹에 비하면 어렸으나 애까지는 아니었다. 아니, 내가 태어났을 때 초등학교를 들어갈 나이니 애인가? 나와 방을 같이 썼던 윈도 킹보다 연하였지만 꼬마 소릴 들을 나이 차는 아니었다. 그냥 나이랑 상관없이 킹은 안하무인이었다.

킹이 턱을 괴어 날 바라봤다. 아예 대놓고 보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털며 킹이 볼 때 가장 괜찮을 상태를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빚을 갚아야 했으니까. 내가 자세를 잡자 킹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나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 * *

노동이 끝난 후 저번에 빌려 놓고 반납하지 않았던 책을 돌려주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킹은 할 일이 있는지 따라오지 않았고 나는 혼자 교도소 안을 걷다가 또 길을 잃었다. 그리고 저기를 돌면 진짜 도서관이 나올 것이란 확신으로 코너를 돌려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이클 미치! 선금은 이미 받아 처먹고 약은 어디, 어디 있냐고!”

약쟁이로 유명한 윌의 외침이었다. 재빠르게 뒷걸음질 친 후 가만히 그들이 하는 걸 지켜보았다. 평소 윌은 마이클 미치를 무서워했지만, 오랫동안 약을 하지 못해 겁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마이클 미치는 ‘감히?’란 표정으로 멱살을 잡은 윌의 손을 풀어냈다.

“미나콤이 방해해서 그렇지 금방 들어와. 그리고 그때는, 돈을 더 줘야겠는걸?”

마이클 미치의 말에 윌은 진심으로 화가 났는지 마이클 미치의 얼굴을 향해 강하게 머리를 박았다.

퍽!

“으악!”

근육을 맞은 소리는 아니었다. 분명 딱딱한 뼈와 뼈가 부딪힌 소리였다. 마이클 미치는 끔찍하게 비명을 지르며 코를 붙잡았다. 그리고 마이클 미치의 콧구멍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옆에 있던 화살코가 윌을 끌고 어딘가로 걸어갔고 뚱보는 마이클 미치의 피를 닦아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마이클 미치는 뚱보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코를 틀어막았다.

“씨발, 킹 미나콤!”

마이클 미치는 벌게진 얼굴로 벽을 주먹으로 치며 킹의 이름만 외쳐 댔다. 마이클 미치의 외침이 공간을 울렸고 나는 들키지 않게 뒷걸음질로 그들에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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