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샤워는 오늘 패스한다 쳐도 이는 닦아야 했기에 교도관이 주었던 투명 파우치를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나뉘어 있었고 공용 화장실의 구조와 비슷해 다행히 칸막이가 있었다. 샤워실은 만석이라 세면대만 쓰려고 했지만, 분홍 옷을 입은 탓인지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새로 와서 뭘 모르는가 본데, 여길 쓰려면 자릿세를 내야 한단 말이야. 어?”
개소리. 그렇지만 나는 고분고분하게 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제가 영치금이 아예 없어서…….”
“너 식당 가서 밥 처먹고 돈이 없어서 못 내겠네요. 이럴 거야? 이거, 이거 도둑놈 새끼네, 이거! 돈 없으면 화장실이나 가든가!”
그 새끼가 나를 샤워실 밖으로 밀어 화장실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도 쓰려는 사람으로 꽉 차 있을 줄 알았는데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니 안에 아무도 없었다. 세면대를 쓰는 사람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칫솔과 치약을 꺼냈다. 칫솔은 딱 보기에도 거칠어 보였지만 이런 거로라도 이를 닦아야만 했다. 치약은 그저 하얗기만 했고 개운하기보다 텁텁할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칫솔을 입 안에 넣으며 들어섰는데.
씨발.
샤워실의 그 새끼가 왜 날 이 조용한 화장실로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좆돼 보라는 거였다. 그놈 의도대로 난 좆됐고. 가려져 있어 몰랐는데 화장실엔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킹 미나콤과 킹 미나콤의 부하일 남자 둘이.
어떤 간 큰 놈이 감히 화장실에 들어왔나 궁금했는지 킹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담배를 문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킹은 날 발견하고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식당에서 눈이 마주친 걸 떠올린 것일까. 두려웠다.
킹은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담배를 깊게 빨아 마시더니 연기를 후 내뱉었다. 폐에 담배 연기를 어찌나 많이 담고 있었는지 뿜는 양이 엄청났다. 킹 주변으로 먹구름이 가득 낀 것 같았다.
킹은 벽에 기대 다리를 접은 자세였는데도 옆에 있던 두 사람보다 키가 컸다. 이대로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게 더 찍히기 좋았다. 혹여라도 불손해 보일까 봐 입에 문 칫솔을 조용히 빼니, 킹의 옆에 있던 남자가 내 앞으로 와서 섰다. 그 남자는 키가 나보다 두 마디 정도 작았고 송곳니가 유난히 뾰족했다.
“새로 온 놈이네? 새로 왔으면 조용히 기어야지. 간도 커.”
내 앞에 선 남자가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 치아 건강 지키기가 뭐 이렇게 힘들지?
“미안해. 여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네…….”
최대한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놈에겐 아니었나 보다. 나보다 키가 작아 올려다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후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남자가 오른손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데 뒤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제이. 내가 너보고 움직이라고 한 적 있어?”
말투는 다정하고 순했지만,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제이제이라고 불린 내 앞의 남자가 그 목소리에 얼굴을 구겼다. 짜증 났다는 표정이 아닌 실수했다! 의 뜻으로 보였다. 제이제이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짓더니 등을 돌렸다.
“킹! 내가 또 한발 앞섰네. 하하!”
제이제이는 나에게 낸 위협적인 목소리와 다르게 킹을 향해 온순한 목소리를 냈다. 제이제이가 자세를 바꾸자 그가 가리고 있던 킹의 얼굴이 다시금 드러났다. 킹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의 의미가 뭐든, 큰일 난 거였다. 킹은 제이제이에게 말없이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제이제이는 후다닥 킹의 옆으로 갔다. 킹은 달리다시피 온 제이제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 역시 제이제이 네가 내 팔 높이에 딱 맞는다니까.”
킹은 편하다는 듯 제이제이의 몸에 체중을 실었고 제이제이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는 킹을 향해 비굴하게 웃었다. 그리고 킹은 아직 새끼손가락 정도 남은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반대편에 서 있는 남자에게 내밀었다.
“투. 입이 좀 텁텁하네.”
투는 킹이 건넨 담배를 감격스럽다는 듯 받아 들고 폈다. 투는 내뱉는 연기마저 아까워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고 싶다는 듯 니코틴 연기를 몸 안 가득 담아 넣었다. 그리고 킹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 거기 핑크. 여기로 와 볼래?”
조심스럽게 킹을 향해 걸어갔다. 1m 정도 앞에 서자 킹이 피식 웃었다.
“더 가까이.”
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갔지만 킹에겐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킹은 제이제이의 어깨에 둘렀던 팔을 풀고 내 앞으로 왔고 바로 지척에 섰다. 킹의 몸에선 당연하게 담배 냄새도 났지만 상쾌한 페퍼민트 냄새도 났다. 치약 냄새라고 하기엔 강했다. 향수인가 싶었다.
향수라기에는 페퍼민트 날 것의 냄새가 났다.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맡기 괜찮았다. 나는 페퍼민트 냄새를 좋아했기에. 킹은 한 뼘을 올라가도 더 높은 곳에서 날 내려다보았다. 킹의 빼곡하고 긴 아래 속눈썹과 단단하고 잘생긴 코끝, 푹 꺼져 어두운 눈이 시야에 가득 차 눈을 감고 싶었다.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이대로 잡아 먹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로 들어왔어?”
“횡령…….”
“어려 보이는데? 뭐, 집이 회사를 운영하나? 아빠 돈 훔쳤다가 잡혀 왔어?”
킹이 낄낄대며 말했다. 돈 많은 아빠가 있으면 살기 편하긴 했을 텐데 아빠도 없었다.
“…대학교에서 장학금 관련 일 하다가.”
“돈 만지는 일이 이래서 위험하단 말이야. 괜한 맘을 먹게 하거든.”
킹이 제이제이와 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네는 괜한 맘 먹었다가 죽을 줄 알라는 일종의 경고 같았다. 제이제이와 투는 군기가 바짝 든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제이제이와 투를 만족스럽게 본 킹이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름은 뭐야?”
“로터스 리…….”
“로터스? 연꽃? 아니면, 옛날 그리스 신들이 먹었다던 과일? 예전에 책에서 봤는데, 그거, 먹고 싶더라고. 근데 뭐, 나는 약은 팔아도 약은 안 하니까.”
“…….”
나는 말 없이 킹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 마약을 팔기만 하고 안 한다니 그거 정말 좋은 얘기구나! 이럴 수도 없으니까. 킹은 제멋대로 말을 이어 갔다.
“아, 혹시 불교 쪽이라 막, 서양 신들은 불쾌하고 그런가? 내가 또 배려가 없었네, 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킹이 양손을 앞으로 모아 합장해 절을 올리듯 허리를 살짝 숙였다. 킹의 입가에는 여유 있는 미소가 가득 했다. 그리고 킹이 제이제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이제이, 하나 줘봐. 내가 또 그러면 공양을 올려야지?”
제이제이는 엥? 하는 표정을 짓다가 킹의 시선까지 자신한테로 오자 아! 하는 표정을 짓더니 옷을 뒤져 하얗고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어 킹에게 내밀었다. 킹은 제이제이에게서 담배를 가져오더니 그걸 내 앞주머니에 담배를 꽂아 넣었다.
“자, 공양 겸 입소 선물이야.”
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했다가는 킹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고 담배에 미친 인간들과 물건을 맞바꾸거나 그들의 마음을 살 수도 있었다. 킹은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리더니 내 앞으로 걸어갔다.
“편하게 화장실 써.”
나가려는 킹을 따라 투와 제이제이가 따라 걸어가기에, 둘에게 거슬리지 않게 옆으로 비켜 벽에 붙어 섰다. 그런데 킹이 갑자기 등을 돌려 둘은 급작스레 멈췄다. 킹이 투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탓에 투는 바짝 긴장했고 제이제이와 나는 안도했다.
“근데, 투. 내가 언제 내가 버린 걸 피우라고 그랬어? 내가 버리라고 시킨 걸 그렇게 낼름, 받아 처먹으면 어떻게 해? 너, 씨발, 그리고 변태 새끼야? 내 침 묻은 걸 그렇게, 지 입에 쏙 처 물고, 어? 나중엔 내 좆도 물려고 그러겠다?”
투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투는 혹여 자신이 내뱉는 모든 말이 킹의 기분을 거스를까 싶은지 입을 꼭 다물고 덜덜 떨었다. 킹이 웃을 때는 그저 순수한 청년 같았지만 저렇게 표정을 굳히니 불에 담겨 뜨거운 동시에 온통 거칠어 피부에 닿으면 투박하고 흉측한 상처를 내는 날붙이 같았다.
킹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중력의 힘이라도 받은 듯 아래로 향해 있었고 미간은 깊게 팬 상태였다. 킹은 투가 덜덜 떨고 있는 걸 그런 얼굴로 잠자코 보다가 다시 표정을 풀고 웃었다. 입꼬리가 평소처럼 중력을 거슬렀다. 그렇다고 공간에 맴도는 긴장이 완화되지는 않았다. 킹은 웃음기 담은 목소리로 투에게 말했다.
“투. 나는 널 믿고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우리가 동료로서 같이 지내기 힘들잖아. 앞으로 조심해.”
그리고 킹은 이번엔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불을 안 빌려줬네. 불이 필요하면 나중에 찾아와. 로터스.”
킹은 내 이름은 유난히 또박또박 발음하고 웃었다. 킹의 치아가 드러났다. 킹은 그저 서글서글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겁이 났다. 킹 무리가 나가고 한참 있고 나서야 칫솔을 다시 입에 물었다. 그렇지만 그사이에 치약이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 치약을 짠 후에야 이를 닦을 수 있었다
킹 때문인지 내가 있는 동안 화장실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그 덕분에 조용히 이를 닦고 세수를 할 수 있었다. 지저분한 세면대 거울에 비친 얼굴은 무척이나 더러워 보였다. 비누로 깨끗하게 씻은 얼굴이건만, 나는 이 볼품없는 모습이 본래의 내 것인 듯 느껴졌다. 이를 열심히 닦고 얼굴을 열심히 씻었지만 기분은 처참했다.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왔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하고 졸렸다. 그렇지만 이대로 잠자리에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교도소를 돌아다니는 교도관에게 점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넷은 모두 방에서 나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서류를 든 응우옌이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와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제임스 자오.”
“…….”
“대답 안 해?”
넋을 놓고 있는 자오를 향해 응우옌이 윽박질렀다. 그러자 자오가 잔뜩 긴장해 소리쳤다.
“ㄴ, 네!”
자오의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응우옌이 다시 서류를 보고 이름을 불렀다.
“패트릭 하네다.”
“네.”
“알 온다.”
“예.”
“로터스 리.”
“…네.”
“네 명 맞고, 교도소 첫날인데 괜히 딴생각하다 잠 안 자지 말고 잘 자라. 내일부터 고생할 테니까. 그러면, 자라.”
웅우옌 교도관은 방 안을 슬쩍 둘러보더니, 불을 끄고 문을 닫은 채 나갔다. 교도소의 첫날 밤, 분명 너무 피곤해 당장이라도 잠이 올 것 같았음에도 잠이 더럽게 오지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이기도 했고 하네다가 어찌나 몸부림을 치는지 위층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던 탓도 있었으며 자오의 코 고는 소리 역시 엄청 컸다. 나 빼고는 다 잠든 것인지 숨소리가 들렸다.
계속 울룩불룩 움직이는 하네다의 침대 매트리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 와서 이딴 데서 자고 있어야 하지. 풍족하게 자란 건 아녀도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생활 환경 속에서 자랐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은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돌아가신 덕에 젊은 아들 옥바라지는 안 시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왔다는 걸 엄마가 아신다면, 또 돌아가실지 몰랐다. 엄마, 미안해. 엄마 말대로 죄 안 짓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세상이 안 도와주네. 눈물이 날 뻔하다가 야차같이 화가 난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자 잠이 달아나 버렸다. 잠을 안 자면 더 힘들 텐데. 큰일 났다. 잡생각을 지우고 잠을 자려 노력했다.
* * *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아, 씨발…….”
언제 잠들었는지 시끄러운 기상 사이렌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지 못했다. 누구인지 모르겠는 일어나란 외침에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
더 자고 싶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1년 넘게 여기 갇혀 있어야 했다. 점호를 하러 온 교도관이 내 현실감각을 깨웠다. 오늘은 판도 응우옌도 아니었다. 백인계인 듯 피부가 허여멀겋고 머리가 벗겨진 교도관이 윽박질렀다.
“재소자! 정신 차려!”
비척비척 일어섰지만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았다. 2층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선 하네다 덕에 몸을 가릴 수 있어, 눈을 반쯤 감아도 걸리지 않았다. 교도관은 넷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더니 네 명인 걸 확인하고 곧바로 나갔고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투명 파우치를 들고 욕실로 향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점호 중인지 샤워실에 사람이 가득 하지는 않았다. 찬물을 틀어 양손에 가득 받은 후에 얼굴에 끼얹었다. 눈곱을 떼어냈고 얼굴을 찬물로 흥건히 적시며 씻겨내니,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칫솔에 치약을 짜 입에 물어 이를 닦았다. 거울에 비친 나는 눈이 퉁퉁 부어 이를 닦는 범죄자였다. 여기 딱 하루 있었으나 꼴이 초췌했다. 거품을 세면대에 뱉고 입 안을 헹궈내려는데, 누가 내 뒤통수를 잡아 눌렀다.
“윽!”
물을 틀지 않은 자기 재질 세면대에 쿵!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누군가 물을 틀어, 코 안으로 물이 들어와 따끔했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크, 큭!”
안구로도 물이 흘러들어 따가운 눈을 얼른 감았으나 닫을 수 없는 코는 이미 물이 가득 들어왔고 다물리지 못한 입 안 역시 찬물이 가득 채워왔다. 숨이 막혔다. 켁켁거렸지만 매정한 손은 날 놓아주지 않았고 머리를 감은 듯, 머리칼이 축축이 젖어갔다. 그리고 멍멍한 귀로 가래 낀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잠깐만, 잠깐만.”
뒤통수를 누르던 힘이 점차 약해지더니, 내 옷 칼라를 쥐어 내 몸을 들어 올렸다. 젖은 머리와 얼굴에서 뚝, 뚝 물이 흘러 떨어졌다. 뚱뚱한 손이 내 어깨에 걸친 수건을 잡아 내 얼굴을 거칠게 닦아냈다. 따가웠다. 그리고 내 턱을 붙잡더니, 자신을 향해 당겼다. 물에 젖은 시야로 손처럼 뚱뚱한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오, 좀 생겼네.”
가래 낀 목소리가 큰 얼굴에 맞지 않게 작고 가느다란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날 누르던 놈도 내 볼을 한 손으로 잡더니 날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번엔 눈이 작고 화살 코인 남자였다.
“좀 부족한데?”
“니가 물에 불리고 그렇게 잡으니까 그렇지. 잘 봐 봐.”
뚱뚱한 남자가 말했고 화살코가 내 볼을 강하게 잡던 힘을 풀더니 날 다시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네. 키랑 덩치가 좀 크긴 한데, 얼굴이 딱 마이클이 좋아할 얼굴이야.”
“박을 땐 누워서 박는데 키가 무슨 상관이야? 눕혀 놓으면 다 키 똑같아.”
뚱뚱한 남자가 음습하게 낄낄댔다. 불쾌했다.
“그건 그렇지. 야 너 이름이 뭐냐?”
“큭, 하아, 하아. 로터스, 하아, 리.”
알려주기 싫었지만, 어차피 이름은 알아내려면 쉽게 알아낼 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반항을 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코에 찬 물 때문에 숨을 몇 번 고른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화살 코가 내 뺨을 가볍게 때렸다.
“얼굴 덕에 사는 줄 알아라. 얼굴 보전 잘 하고.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말한 화살 코는 뚱뚱한 남자와 함께 멀어졌다. 겨우 이틀째였는데 너무 험난했다. 거울을 보니 입술이 치아에 박아 피가 나 있었다. 입술에 묻은 피를 물로 씻고 물로 입 안을 헹구니 피 맛이 느껴졌다. 기분이 더러워 한 다섯 번은 헹궈야 헹군 느낌이 났다. 씨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세면대를 다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감정을 다스린 나는 입술이 터진 채로 화장실을 나갔다. 여기서 입술 터진 것 정도는 상처도 아닌지 다들 날 무감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화장실 입구에 등을 지고 서 있는 교도관, 판이 나를 불렀다. 뚱뚱한 남자와 화살코가 날 처박을 때 분명 소란을 들었을 텐데 저놈은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저놈이 싫고 짜증 나, 놈의 눈을 끌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걸었지만 키가 쓸데없이 커서 판의 눈에 띄어 버렸다.
“리 재소자. 얼굴 꼬라지가 엉망이네.”
네가 일을 똑바로 안 해서요. 마주 웃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네…….” 하며 웅얼거렸다. 그놈은 내 입술을 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벌써 누가 선수 쳤나?”
그렇지만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뭐래, 개새끼가.
면전에다 내뱉어 주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멀어지자 저놈도 더 이상 나를 잡지 않았다.
* * *
나는 이번에도 온다, 하네다, 자오 무리에 끼어 배식 줄에 섰다. 내가 서 있는 앞으로 또 무수한 인간들이 새치기를 했고 그중에는 킹도 있었다. 킹은 투, 제이제이 그리고 그 외 몇 명과 함께 식당 안으로 무리 지어 들어왔다. 화장실에서 투와 제이제이만 들어왔던 것 보면 그 둘이 킹의 오른팔인 듯했다. 킹은 덩치 큰 남자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키가 제일 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가 솟아나 있었다.
킹은 당연하다는 듯 줄 사이에 끼어들었는데 그러면서 몰래 자신을 관찰하고 있던 나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웃는 낯으로 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눈이 마주치자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왠지 킹의 웃는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제대로 찍힌 듯했다. 내게 품는 흥미가 어느 쪽이든, 나에게 이로운 방향은 아니었다.
오늘 식사는 채소볶음에 다 부서진 흰살생선, 뭐가 들어갔는지 노란 국과 콩이 조금 섞인 밥이었다.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밥부터 떠 입에 넣는데, 또 무리 하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슬쩍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 아침에 처박았던 뚱뚱한 놈과 화살 코였다. 그리고 들창코에 키가 크고 몸집이 스모 선수 같은 남자가 그들과 몇 놈들을 이끌었다. 백인계였는지 피부는 창백하고 투명했고 주근깨가 가득했다. 피부가 어찌나 얇은지 멀리서 봐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보였다. 그놈 바로 옆에는 키가 170cm가 안 되는 마르고 나름 귀엽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무리를 슬쩍 쳐다본 자오가 몸을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사람이 그 마이클 미치야.”
자오를 따라 몸을 숙인 하네다가 물었다.
“그게 누구인데?”
그러자 자오는 주변 눈치를 보더니 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여기서 약 유통하는 놈. 약 말고 다른 것도 팔고.”
자오가 손으로 통화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핸드폰도 들여온다는 말이었다.
“그걸 어떻게 들여오는데?”
온다가 작게 물었고 자오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네다는 방법 따위 자기는 상관없다는 듯, 잔뜩 반가운 얼굴로 급하게 물었다.
“그럼, 담배도 들여와?”
그렇지만 자오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유일하게 딱, 미치가 안 들여오는 게 담배야.”
담배를 안 들여온다고? 분명 킹은 담배를 피웠고 담배의 양이 제법 되는지 처음 보는 나에게 한 개비를 꽂아 주기도 했다.
“약도 들여오는 놈이 담배를 안 들여와?”
하네다가 담배가 많이 급했는지 목소리가 좀 높아질 뻔하다가 겨우 낮춰 물었다. 자오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담배가 없는 건 아니고. 담배는 킹이.”
“왜? 밖에서 약 파는 건 미나콤인데, 왜 여기서 담배만?”
온다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자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용히 살고 싶은가 보지.”
그런 자오에게 하네다가 반박했다.
“그럼 담배는?”
자오는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조금만 머리 굴려도 나오는데 뭘 그렇게 묻냐는 뜻이었다.
“지가 피우고 싶나 보지! 담배 따위로 미나콤이 아쉽게 굴면 좀 그렇잖아.”
자오의 얘기를 종합하자면, 미치는 킹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었다. 미치가 킹의 눈치를 안 봤다면 진작 담배도 들여와 유통시켰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미치는 그러지 않았고 담배만 쏙 빼고 온갖 것들을 다 들여왔다. 킹은 들여올 능력이 되지만 그냥 귀찮아서 담배만 들여오는 것이었고. 다른 것도 분명 들여올 테지만 그건 자기만 쓰고 팔지 않는 모양이었다.
약을 팔기만 하고 안 한다더니, 그래서 약은 안 들여오는 듯했다. 약은 킹 본인에게 아쉬운 게 아녔고 약은 밖에서 돈 많은 외국인 상대로도 충분히 팔릴 테니 교도소 안 거렁뱅이들에게까지 팔 필요는 없겠지. 킹이 귀찮은 일을 싫어한다면, 나에게 가진 흥미도 금방 꺼지지 않을까? 솔직히 사람을 꾀어내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그리고 안팎으로 사업을 하다 보면, 나 같은 건 금방 머릿속에서 지울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추잡하게 생긴 마이클 미치를 떠올렸다. 아침 샤워실에서 화살 코와 뚱뚱한 남자 얘기한 마이클이 바로 저놈이겠지. 저놈을 피해 다녀야 했다. 내가 저놈 취향이 아니면 좋겠지만, 화살코와 뚱뚱한 남자의 얘기 대로라면 나는 저놈 취향이었고, 저놈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 둘은 날 묶어서라도 갖다 바칠 기세였다. 남자 교도소에 강간이 일상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내 얘기가 되었다.
들어오기 전에 성형이라도 하든가 살을 찌울 걸 그랬다. 피곤함에 얼굴 상태는 바깥보다 별로였는데 살이 좀 빠져 얼굴선이 더 잘 드러났다. 이제라도 찌우고 싶어도 내게 허락된 음식은 영양이 부실한 식사뿐이었고 살찌울 음식을 살 영치금도 없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밥을 입 안에 꾸역꾸역 욱여넣는 것뿐이었다.
밥을 먹고 얼른 이를 닦은 후에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은 운동장이 개방되어 있는 시간이었다. 바깥에 나가서 햇볕이라도 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바깥에 나가도 분홍색 옷을 입은 나는 눈길을 끌었기에 최대한 구석지고 햇볕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 구겨 앉았다. 다행히 하늘이 맑았다. 여기 들어온 지 겨우 이틀이었다. 이틀. 그렇지만 너무 지친 기분이었다. 적응이 되면 좀 나으려나. 그렇지만 딱히 적응되고 싶지도 않았다.
습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게 기분이 퍽 좋아 나는 눈을 감았다. 공을 차는 소리, 달리는 발걸음, 걷는 발걸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근처에서 들리던 잔디 밟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담배 냄새가 섞인 페퍼민트 향이 코끝을 스쳤다. 텁텁한 동시에 청량해, 코를 자극하는 냄새. 눈을 뜨지 않아도 그가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따라다니던 놈들도 두고 왜 여기 혼자 온 거지. 그의 그림자는 거대해 내 몸 전체를 가릴 정도였다. 눈꺼풀로 쏟아지던 빛이 가려져 눈앞이 어둑했다. 햇빛을 쫓아 여기 온 것인데, 불만이 샘솟으려 했지만, 꾹 참고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잠이 든 거였고 난 저 사람이 여기 온 걸 몰랐다. 나는 그렇다. 그런 거다. 저 사람이 얼른 날 재미없어하며 떠나 주길 빌었다. 근데 저 사람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많나 보다. 저 사람이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예 간헐적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아래로 처박으며 자는 척을 했다. 그렇지만 옆에서 불쑥 걸어오는 말 때문에, 엉망인 연기를 잠시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재밌어?”
“…….”
이대로 눈을 뜰지, 아니면 계속 감고 있을지 고민하다가 연기를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눈을 슬며시 뜰 수밖에 없었다.
“너 나온 지 얼마 안 된 거 다 봤어.”
씨발. 왜 날 지켜보고 있단 말인가. 그래도 갑자기 자는 척을 멈추기엔 민망해서 작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탓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 하품이 옮았는지 옆에 있던 킹도 하품을 했다.
“하아암. 피곤하네.”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될 텐데.
“불은 아직 안 필요해?”
킹이 계속 날 바라보고 있어 하는 수 없이 그의 쪽으로 몸을 살짝 돌렸다.
“…나 담배 안 피워.”
“그래 놓고 받았구나?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어져.”
킹은 숱 많은 자기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었다 풀었다. 나도 머리숱은 못지않게 많았다. 아빠 쪽이 어떤지 몰라서 좀 불확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탈모 유전자는 없을 거였다. …아닌가?
“어려 보이는데, 몇 살?”
저런 질문을 하는 본인이 더 어려 보인다는 걸 모를까. 나는 어린 게 맞긴 했지만.
“…스물둘.”
“진짜 어리네.”
도대체 몇 살 이길래 저렇게 늙은이 같은 말을 할까. 알고 보니 한 쉰은 되고 그러려나. 그렇지만 저 얼굴로 쉰이면 NASA에 끌려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름이 뭐더라. 로즈인가, 데이지인가. 아! 포피였나?”
웃음기가 그득한 낯으로 지껄여왔기에 저게 장난이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내가 말없이 있자 킹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 안 해줄 거야? 그러면, 타바코라 불러도 돼?”
될 리가. 이름으로 놀림을 제법 당한 기억이 있어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모르핀이라 부르지그래?”
“사람을 모르핀으로 부르는 건 실례지, 로터스.”
사람을 양귀비, 담배 따위로 불러 놓고 모르핀은 실례란다. 정말 예의에 밝은 사람이다. 그러는, 자기 이름은 킹이면서. 킹이 킹이 아니었다면 프린세스나 프린스로 돌려줬을지도 몰랐지만, 저 사람은 킹 미나콤이었다. 킹은 내게 계속 질문을 했고 나는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출신이야?”
“칭잉.”
“하이투랑 가깝네. 몇 년 받았어?”
“삼 년 하고 이 개월.”
“입술은 어떤 새끼가 그랬어?”
킹이 내 입술을 눈으로 가리켰다. 날 처박은 놈의 얼굴은 알았지만 이름은 몰라서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킹이 작게 나를 달래듯 말했다.
“고자질하는 거 같아서 그래? 고자질 아니야. 다 말해도 돼.”
왜 저렇게 유치원생과 대화하는 선생님처럼 얘기하지. 그리고 내가 말하든 안 말하든 자기랑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날 향해 손을 뻗어 와, 당황한 나는 피하지 못한 채 그의 접촉을 허용해야만 했다.
“담배 갖고 나왔어?”
접촉은 가벼웠다. 킹이 내 앞주머니에 손을 잠시 넣은 것이다.
“없네? 안 피운다며.”
텅텅 빈 주머니에 킹은 아무 소득 없이 손을 빼냈다. 킹 때문에 구겨진 주머니를 눌러 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바보도 아니고 내가 왜 거기다 둬.”
“아, 안 들고 나와서 좀 빌리려고 했는데. 멍청한 짓 해서 들어왔길래 멍청한가 보다 했지. 생각보다 머리는 좀 쓰나 봐?”
킹은 내가 담배가 없자 이제 별 볼 일 없다는 듯 손을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제이와 투 등이 서 있는 자기 무리로 돌아갔다. 정말 담배를 두고 나와서 나한테 다가온 것일까? 그래야만 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는 음성이 이어졌다. 몇이 크게 욕을 내뱉으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다수의 사람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한참을 그 인파에 갇혀 있다 겨우 빠져나와 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교도관들도 재소자들도 모두 분주했다. 특히 재소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교도관 하나가 막아섰다.
“불시 검문이야. 재소자, 바깥에 가만히 서 있어.”
슬며시 곁눈질로 안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 교도관들이 물건을 이리저리 던지며 뒤지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야?”
자오가 짜증스럽다는 듯 크게 말하니 방 안을 뒤지던 교도관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오를 바라봤다. ‘감히.’란 표정이었다. 이렇게 사생활 없이, 갑작스럽게 내 물건이 뒤져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기는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이미 범죄자였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물론 기분은 나빴다. 하네다와 온다는 그저 방문 앞에 서서 이 상황이 짜증 나긴 하지만 걸릴 게 없다는 표정으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니었다.
씨발. 담배.
침대를 슬쩍 바라봤다. 침대의 철제 구조물 아래에 담배를 붙여 뒀기 때문이다. 나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교도소 인간들은 물건을 숨기는 데에 천재였고 교도관들은 그걸 찾아내는데 이골이 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담배를 소지하고 있다는 걸 걸리면 나는 좆될 게 분명했다. 독방에 가려나? 엄마가 보여준 영상 속 독방을 떠올렸다. 좁고 빛이 들지 않고 지나는 시간도 가늠 안 되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미쳐 갔고 나는 그 안에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킹이 날 좆되게 하려고 담배를 준 건 아닌가 싶었다.
베개와 이불까지 탈탈 털어 뒤진 교도관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 걸렸다가 죽을 줄 알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의 눈빛을 보내며 방 밖으로 나갔다. 다행이었다.
또 이런 불안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담배를 팔기로 결정했다. 교도관들이 헤집고 간 방을 정리하며 불안하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이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중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듯 미간을 깊게 찌푸린 이를 유독 집중해서 말이다. 하네다. 지금 내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구매자는 하네다였다. 하네다는 니코틴에 안달 나 손까지 떨 정도인 데다가 불안함에 더욱 담배가 당길 게 분명했다.
“하네다.”
나직한 목소리로 그를 호명하자 하네다는 화들짝 놀라 날 바라보았다.
“말할 줄 알았네? 난 말 하는 법 잊은 줄 알았지.”
개소리. 그런 하네다의 허튼소리를 받아줄 심적 여유가 없어, 그저 말없이 하네다를 손짓해 불렀다. 하네다는 자기보다 어린 내가 그렇게 부른다는 것에 불쾌해했지만 어차피 하네다는 나와 같은 2층 침대를 쓰기에 침대로 오는 것 말고 갈 데가 딱히 없었다. 방에는 하네다와 나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한 개비. 얼마에 살래?”
“담배 있어?”
하네다가 놀라 큰 소리를 내, 나는 급하게 하네다의 입을 막았다.
“있으려다 없어지려 하니까 조용히 해.”
하네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손을 떼어냈다. 침이 묻어 찝찝해 하네다의 옷에 손을 닦아냈지만 그래도 피부는 여전히 불쾌하게 미지근했다.
“그래서 얼마에 살래?”
“글쎄…? 10완…?”
어이가 없어 눈썹을 찌푸리고 장난하냐는 표정으로 하네다를 바라보았다. 홍징의 화폐 단위는 ‘완’이다.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의 1달러와 홍징의 1완이 얼추 비슷했다. 그리고 홍징에서 담배 한 갑은 대강 6완이 좀 안 되었다.
“그럼 15?”
“50.”
하네다가 별 날강도를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거 한 개비에?”
50완이면 담배 몇 갑을 사는데! 따위의 표정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저기 매점 가서 15완 주고 담배 사면 되겠다. 그치?”
아쉽지 않은 척하며 등을 돌렸다. 어차피 담배를 가진 건 나였고 흡연자는 하네다였다. 하네다는 니코틴이 너무 급했는지 그런 나의 팔을 잡아 애원했다.
“아, 미안해. 내가 멍청했어.”
다시 몸을 돌려 하네다를 바라보자 하네다는 용서해달라는 듯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얼굴에 그렸다. 나는 하네다가 더 쫄리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민 끝에 너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듯 말했다.
“집에 전화 걸어서 내 영치금 계좌로 200 보내라고 해. 그거 확인한 다음에 줄게.”
“아까는 50이라며! 이젠 또 왜 200이야?”
하네다가 소리를 질렀다.
“그 몇 초 사이 담뱃잎 파동이 일어났네? 이런, 어째.”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화를 더 돋우기 위해서였고, 하네다는 약이 오른 표정으로 씩씩대며 내 의도대로 행동했다. 그런 하네다를 신경 쓰지 않으며 손을 펴 그를 향해 내밀었다.
“또 뭔데!”
“우표 있지? 수수료 줘.”
교도소 내에선 우표가 유가 증권이었다. 우표를 모아 외부로 보내면 일종의 심부름 업체에서 대강 30%의 수수료를 떼고 70% 정도의 현금을 영치금 계좌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모든 걸 알게 된 건 엄마의 교도소 조기 교육 덕분이었다.
엄마는 교도소는 엄청 열악한 곳이니 저런 곳에 가지 말아라! 라는 의도로 보여주었지만 나는 덕분에 교도소의 생리를 익힐 수 있었다. 감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별 기대 없이 해본 말이었지만 하네다는 생각보다 수완이 좋았는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우표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렇지만 딱 한 장이었다.
“겨우?”
내가 우표 한 장을 손끝으로 팔랑거리자 하네다가 씩씩거렸다.
“담배 한 개비로 200을 뜯어 가면서!”
저렇게 감정적이면서 고객들은 어떻게 상대한 거야. 그리고 하네다가 손을 내밀어 외쳤다.
“담배!”
“횡령한 은행원을 어떻게 믿어? 입금 확인되면 줄게.”
내 말에 하네다는 얼굴이 시퍼레져서 쿵쾅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십 분 후 돌아온 하네다가 소리쳤다.
“오늘내일 중으로 보낸다고 하니까, 삼 일 후에 확인해 봐!”
“그럼 사흘 동안 너도, 나도 기다리면 되겠다.”
아무것도 아쉬운 나는 여유 있게 말했고 니코틴의 노예인 하네다는 잔뜩 초조해했다.
“아! 최대한 빨리 보내라 했으니까 내일! 내일 확인해 봐.”
어찌나 니코틴을 갈구하는지 손까지 벌벌 떠는 정도였다. 내가 저래서 술은커녕 담배도 안 피우는 거였다. 그딴 거에 매여 저따위로 구차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
위이이이잉!
오늘도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알람이 울렸다. 조금은 적응했는지 첫날보다는 훨씬 잠을 잘 자 수월하게 일어났다. 오늘은 피부가 까만 교도관이 점호를 하러 왔다. 교도관은 첫날처럼 인원을 체크하고 이름과 얼굴을 확인한 후 금방 방 밖으로 나갔다. 점호가 끝나자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여기 온 후로 세수는 해도 목욕은 하지 못했기에 너무 찝찝했다. 씻고 싶어도 사람이 너무 많았고 옷을 입어도 추행하는 놈들이 천지였는데 옷을 벗은 채로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 몸의 청결을 포기하기엔 나는 너무 문명인이었다. 사람이 몰리는 아침이나 저녁을 피하면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샤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일단 목이랑 팔 등 세면대에서 씻어낼 수 있는 부분은 물을 묻혀 씻어냈다. 그 탓에 옷이 젖어 축축하긴 했지만, 그것도 씻은 거라고 나름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가니 하네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날 보자마자 내게 바짝 붙었다.
“들어올 거니까, 나 담배 미리 주면 안 돼? 아, 진짜 니코틴 못 빠니까 머리가 핑핑 돌아!”
내 귀 바로 옆에서 지껄이는 하네다의 얼굴을 밀어냈다. 이도 닦지 않고 나만 기다렸는지 입 냄새가 끔찍했다.
“명현 현상이니까 걱정 마.”
하네다는 내 기분은 거스르고 싶지 않으면서도 성이 났는지 발로 바닥을 쿵쾅 쳤다.
“뭐가 들어가야 명현 현상을 내든지 말든지 하지!”
하네다가 그러든 말든 수건으로 젖은 옷을 눌러 물기를 제거하려 했다.
“그럼 해독 현상인가 보지.”
하네다 얼굴이 빨갛게 터지려고 하길래 수건을 침대에 걸고 일어나 하네다의 어깨를 두드렸다.
“밥 먹고 확인해 볼 테니까 기다려봐. 식후땡이 더 좋잖아?”
하네다도 아무리 니코틴이 급해도 빈속에 집어넣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는 웃으며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줬다.
담배 한 개비가 이렇게 쏠쏠하게 팔리는데 킹은 대체 얼마나 팔아먹는 걸까. 그렇지만 궁금해하면 다칠 게 분명했기에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오늘은 통조림 토마토소스에 병아리콩을 넣고 향신료를 상당히 과하게 넣은 카레 비슷한 것과 길쭉하고 찰기 없는 베트남 쌀, 시들시들한 이파리들이 가득한 생채소(샐러드라고 하기에 민망해 보였다.)가 아침 식사로 나왔다. 제법 일찍 와 평소보다 일찍 배식받아 구석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얼른 먹으면 사람이 거의 없을 때 샤워를 할 수 있겠다 싶어 밥을 대충 씹어 넘겼다.
밥을 반 즈음 먹었을 때 킹이 제이제이와 투, 그리고 몇 명을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감은 건지 머리가 살짝 젖어 킹의 까만 곱슬머리가 축축했다. 나도 머리 감고 싶다. 샴푸 거품을 엄청 낸 다음에 손으로 꾹꾹 눌러 지압하며 싶었다.
엄마는 스파 관리사였기 때문에 사람을 기분 좋게 만져주는 걸 잘했다. 그래서 내 머리를 감겨 줄 때도 두피 마사지를 해주며 머리를 감겨 줬다. 내가 좀 큰 후로는 엄마가 힘들다고 감겨 주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배운 게 있어서 나는 스스로 내 머리를 잘 감았다. 엄마가 여차하면 미용 학원을 보내준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머리를 감겨 주는 것만 미용사가 할 일은 아니었기에 가진 못했다.
생각하느라 킹 쪽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데 그 탓인지 킹이 나를 쳐다보았다. 킹의 시선이 내게 마주치자 나는 그제야 멍하게 놓고 있던 정신을 차렸다. 킹이 입 모양으로 뭐라 말했다. 멀어도 짧은 단어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안녕, 로터스.’
킹은 내가 알아들은 걸 알아채고 입 안을 드러내며 웃었다. 다른 이보다 조금 커 눈에 띄는 앞니와 붉고 검은 입 안이 보였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 어찌나 강하게 웃던지 옆에 있던 제이제이의 팔을 마구 때렸다. 제이제이는 아픈데 억지로 참으며 웃는 게 여기서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킹도 그걸 알았겠지만, 신경 쓰지 않고 제이제이를 때렸다.
투는 킹이 자신이 아닌 제이제이에게만 붙어있자 불안했는지 킹을 따라 웃으며 말을 걸었다.
“킹,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킹은 투가 자신을 따라 웃으며 말을 걸자 갑자기 웃음을 싹 지웠다.
“투. 이제 내가 웃는 것도 다 간섭하고 그러고 싶나 봐?”
“어, 어? 미안해…….”
내가 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물론 안쓰럽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식판으로 내리고 남은 음식을 열심히 입 안에 넣고 일어났다. 퇴식구로 식판을 들고 가자 그곳을 지켜 선 수염 난 덩치가 나를 째려봤다. 평소보다 음식을 많이 남긴 탓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식욕보다 씻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했다. 나는 아픈 척 굴며 깨끗하게 음식을 음식물 쓰레기 통에 모은 후 착착 분류해 정리했고 그 덕인지 덩치는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방에 가 얼른 비누와 작은 샴푸가 담긴 파우치를 챙겼다. 교도관이 준 건 두어 번 쓰면 동이 날 사이즈에 불과했다. 이따가 영치금을 확인하고 제대로 들어왔다면 샴푸를 새로 하나 구입해야 할 것 같았다. 평소에 붐비던 샤워실은 다행히 사람이 없어 보였다. 나는 신난 마음으로 샤워실에 들어갔는데 끝쪽에 있는 닫힌 한 칸에서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야, 아, 씹. ㅆ, 씨발! 이거밖에 못 해? 씨발, 하아, 조이라고!”
상스럽고 역겨운 숨소리였다. 누군가 좆을 휘두르고 있다는 뜻이겠지. 키가 큰 사람인지 칸막이 위로 솟아난 정수리가 보였다. 정수리가 허전한 게 탈모가 있는 듯했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괴로웠다. 이따 올까 싶었는데 이따 왔을 때도 이렇게 사람이 적을까 싶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가장 먼 칸에 들어가 옷을 벗어 물을 틀었다. 그러자 숨소리가 잠깐 멈추는 게 들렸지만, 그 침묵은 짧았고 다시 소란이 샤워실을 시끄럽게 채웠다.
“씹, 하아. 씨발, 걸레 새끼야! 씹, 하아, 하아. 내 좆이 어떤 좆인데, 내 자지를, 씨발, 어? 물려 줬으면, 흐윽, 감사한 줄! 학! 알아야지! 감히, 씨발. 하아.”
경박한 신음을 내면서 느끼기는 존나 느끼는 것 같은데 저 자지의 주인은 자신의 좆을 담고 있는 사람을 무척이나 깎아내렸다. 깎아내리든 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내 귀가 썩을 것 같았다.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머리부터 물을 맞으니 시원했다. 나는 머리를 충분히 물에 적시며 손에 샴푸를 짜 비볐다. 샴푸를 머리에 짜내 비비는 것보다 손에서 비벼 문지르는 게 거품이 더 잘 난다고 엄마가 알려준 것이었다. 그렇지만 머리를 오랜만에 감는 탓에 두피 기름기가 지나쳐 거품이 잘 나지 않아 머리를 한 번 대강 감아내고 다시 샴푸를 짜 비빈 후에야 충분히 거품이 났다.
엄마가 해줬던 것처럼 손끝으로 두피를 꾹꾹 누르며 머리를 감았다. 린스나 트린트먼트를 바른 것도 아닌데 샴푸 거품만으로 오래 머리를 문지르고 감은 후에 씻어냈다. 꽤 많은 양의 샴푸를 머리에 쏟아부은 탓에 풍성한 거품이 두피부터 흘러내리는데 젖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숨소리가 이제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발걸음은 점차 나에게로 가까워졌고 내가 있던 샤워 부스의 문이 쾅!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야, 씨발. 문 열어!”
쾅!
쾅!
쾅!
문이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그냥 이따 올 걸 그랬나. 나는 샤워기로 대강 샴푸 거품을 씻어내고 수건을 대충 밑에 두른 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가슴에 민망할 정도로 적은 털이 듬성듬성 있는 허여멀건 가슴팍이 보였다. 그건 마이클 미치의 것이었다.
뚱보와 화살코가 얘기했던 그 마이클 미치. 내 얼굴을 좋아해서 눕혀 놓고 박을 거라는 그 마이클 미치. 미치는 하반신마저 가리지 않은 채 나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미치의 덩치와 성기 크기는 반비례했다. 대단한 자지라더니. 저런 걸 드러낼 자신감은 대체 누가 키워준 것일까. 지나친 자신감은 유해했다.
미치의 몸은 말라 있었지만 성기 부분만 축축했다. 왜 그랬는지 알겠지만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볼품없는 마이클 미치의 좆에서 시선을 떼어냈지만 마이클 미치의 몸뚱어리 그 어디에도 볼만한 곳은 없어서 나는 마이클 미치의 뒤를 바라보았다. 마이클 미치가 나를 발끝부터 쭉 훑듯이 올려다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아. 폴이 말한 애구나?”
뚱뚱한 남자가 폴인지 화살코가 폴인지 궁금하진 않았지만 둘 중 하나가 폴인 듯했다. 마이클 미치는 나를 물건을 품평하듯 바라봤다. 그냥 물건 말고 섹스토이 보듯. 아니, 섹스토이도 저렇게까지 핥아내듯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 좆같아. 마이클 미치는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어찌나 말을 늘어놓던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네. 예쁜아. 너도 박히고 싶어서 온 거지? 걸레 새끼.”
저런…. 짧고 못생긴 그런 거에 박히고 싶은 사람도 있나? 사람 취향은 다양한 거니까 존중은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아냐, 존중이 안 됐다. 제발 저 다리에 달린 거랑 유두에 삐져나온 털 좀 가려 줬으면 좋겠다. 아니, 제발 얼굴도, 아니, 그냥 꺼져줬으면…….
“미안한데, 내가 못 씻은 지 일주일은 돼서. 여기 쓸 거 아니면…….”
면상 치워 줄래?를 이어 말할 수 없어 말을 흐렸다. 사실 못 씻은 지 2, 3일밖에 안 됐지만 과장하면 더러워서 좀 피하지 않을까 싶었다. 놈은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어울리지도 않게 매너 있는 척을 했다.
“뭐, 한 번 정도 튕기는 건 봐줄 수 있지. 그럼, 깨끗하게 씻어. 몸 곳곳.”
마이클 미치는 유난히 내 하반신을 응시했다가 멀어졌다. 깨끗하게 씻으러 와서 기분이 존나 더러워졌다. 나는 비누를 들어, 비누 채로 몸을 마구 문질렀다. 으, 더러워!
***
비누로 몸 곳곳을 씻어내니 짜증도 조금 씻겨 내려갔다. 칸막이 문을 열고 나와 세면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오랜만에 씻어 보송보송해진 얼굴은 상당히 괜찮았다. 딱히 자랑이 아니었고 나는 정말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엄마를 닮았기 때문에.
내가 한참 어렸을 때의 엄마는 머리가 길고 예뻤다. 엄마는 추근대는 사람들이 짜증 나 머리를 바짝 짧게 잘랐고 그런 후엔 잘생기고 이쁘다는 얘기를 들었다. 촌스러워 보이는 빠글거리는 파마를 해도 세련되고 예뻤다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는 연예인 제의를 숱하게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고 그걸 가끔 후회한다고 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연예계에 딱히 뜻이 없어 보였다.
엄마는 자기 얼굴을 빼닮은 내가 남자아이인 데다가 키도 몸도 커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 자기처럼 짜증 나게 살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그렇지만 엄마에겐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남자 교도소에 들어와 버렸고 나는 엄마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짜증 나는 일을 계속 겪는 중이었다.
다시금 기분이 나빠져 나는 격하게 머리를 털며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 하네다가 마른 다리를 움직여 빠르게 내게 달려왔다.
“확인했어?”
내가 젖은 수건을 침대에 거는 그 시간조차 그는 견디지 못했다. 하, 중독자들은 이래서 안 돼.
“지금 가려고 그랬어.”
재촉하는 하네다가 귀찮아서 하네다에게서 시선을 피해 곧바로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도 바깥의 것과 달랐다. 작은 구멍만 있어서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에 물건을 건네주는 구조였다. 투명한 아크릴로 한 번 막히고 철창으로 또 한 번 막혀 있는, 좁고 가로막힌 작은 공간 안엔 체구가 작은 남자가 있었다.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아 보였다. 안이 좁아 체구가 크면 안 받아주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영치금 확인 좀 하려고 하는데.”
“이름.”
남자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 있으면서도 저렇게 사무적인 태도라는 게 왠지 웃겼다.
“로터스 리.”
남자가 나를 보지 않고 파일 클립만 쭉 훑어보더니 말했다.
“201.5완”
내가 들어올 때 갖고 있던 동전들과 하네다가 보낸 값을 생각하면 저 수치가 맞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살 잘 찌는 게 뭐야?”
“마가린.”
남자가 날 슬쩍 쳐다보더니 답했다. 마가린은 그대로 퍼먹기엔 너무 역했다.
“샴푸 한 통이랑, 초콜릿 바 5개. 아, 마요네즈 있어?”
남자가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그럼 마요네즈랑 감자칩도.”
남자는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벽에 기대 잠시 기다렸고 남자가 마요네즈와 초콜릿 바, 감자칩과 샴푸를 들고 왔다. 그리고 아크릴 벽에 난 구멍 사이로 하나씩 물건을 넘겼다. 교도소에서 파는 물품들은 면세 항목이라 값이 밖보다 저렴했다. 대신 질이 나쁘고 선택지가 좁다는 게 문제였지만.
초콜릿 바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손에 들어 챙겼다. 바지가 불룩했다. 그걸 들고 방에 돌아오자 또 하네다가 내게 달려왔다.
“들어왔지? 그치?”
내가 물건을 한 아름 들고 있으니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더 이상 하네다를 상대하는 것도 너무 귀찮아 고개를 끄덕거리고 물건들을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침대 아래로 손을 뻗어 담배를 끄집어내 하네다에게 건넸다.
하네다는 담배를 보더니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라이터는?”
“내가 그것도 줘야 해? 부싯돌이라도 구해서 피우든가.”
나는 감자칩을 까 그 위에 마요네즈를 짜 올려 입 안에 넣으며 답했다. 아니, 담배만 팔아 주면 됐지. 물에 빠진 거 구해 놨더니 자기 짐 어디 있냐며 따질 놈이었다. 하네다는 당장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생각에 표정을 마구 구겼다가 그래도 담배를 구했는데 불을 못 구할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불을 구하고 담배를 피울 곳이 마땅히 있을까 싶었지마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마요네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마요네즈를 잔뜩 짜 올린 감자칩은 속이 느글거렸지만, 마가린보단 나았다. 정사각형이 될 정도로 살을 찌우면 강간범들이 관심을 끊고 괜찮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꾸역꾸역 입 안으로 마요네즈와 감자칩을 집어넣었다. 근데 또 취향이 이상한 변태들 눈에 들면 어쩌지. 진짜 이곳은 너무 역겨웠다.
감자칩에 마요네즈를 한 움큼 담아 먹다 보니 감자 칩 한 봉을 먹는 데 마요네즈 한 통을 다 먹어 치웠다. 살이 찌기 전에 혈관이 막혀 죽을 것 같았고 하루 종일 속이 느글거렸다. 그래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침대에 앉아 있는데 교도관, 응우옌이 들어왔다. 그는 품 안에 개어진 보라색 천을 안고 있었는데, 기존 재소자들이 입던 옷과 같은 것이었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 재소자들. 입어.”
응우옌은 보라색 옷을 던지다시피 건넸다. 이제 분홍색 옷 대신 보라색 옷을 입고 다수에 묻힐 수 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보라색 옷을 집어 입었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옷을 입고 벗는 것 정도는 꺼리지 않을 정도였다. 방 안에 있던 넷이 다 옷을 갈아입자 응우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짐 싸라.”
나는 짐이라고 할 게 얼마 없기 때문에 대강 물건 몇 개를 집어 품에 안았고 교도관은 따라오라고 고갯짓했다. 다른 신입 재소자들이 있는 방까지 들른 후 신입 재소자들이 쭉 응우옌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복도 끝엔 단단해 보이는 두 겹의 철문이 있었다. 응우옌이 안에 있는 다른 교도관과 인사하며 철문을 열었고 분홍 옷을 입은 사람들은 기존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판옵티콘과 비슷한 구조였다. 둥그렇게 건물 벽을 둘러싼 방들이 총 2층으로 있었고 가운데에는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감시하는 같은 높이의 탑 같은 곳이 있었다.
응우옌은 1층 방 하나 앞에 섰다. 그 안엔 덩치가 크고 머리와 수염이 기다란 남자가 서 있었다.
“제임스 자오.”
응우옌이 자오를 부른 후 방 안을 고갯짓하자, 자오는 머뭇거리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있는 방은 이제 찼는지 응우옌은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2층 계단을 올랐다. 점차 불안해졌다. 누가 됐든 시끄러운 셋과 방을 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룸메이트가 강간범일 수도 있었다. 그럼 나는 이곳에서 잠이라고는 절대 자지 못하겠지. 이곳에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마음이 잔뜩 가라앉아 있는데 응우옌이 2층 구석에 있는 방 하나에 멈췄다. 그리고 이번엔 내 이름을 불렀다.
“로터스 리. 안에 들어가.”
잠자코 방 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매점 안에서 봤던 남자가 있었다. 저 남자는 말수가 적었고 내 몸에 관심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1층 침대가 벽에 붙어 마주 보고 있었고 작은 책걸상도 마찬가지로 침대 옆에 있었다. 그리고 작은 창문이 나 있었는데 당연히 쇠창살이 달려 있었고 볕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본래는 투명했을 유리가 잔뜩 더러워져 빛도 겨우 투과해내고 있었다.
짐을 일단 침대 위에 두고 하나씩 꺼내 벽에 붙어있는 선반 위에 올려 뒀다. 시끄러운 사람들과 쓰던 4인실보다는 천장 없는 침대와 조용하고 강간범 아닌 룸메이트가 있는 이 방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