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 리 1-Chapter. 1 (1/21)

로터스 리 1

로터스 리

1

파인애플덤플링

목차

Chapter. 1

Chapter. 2

Chapter. 3

Chapter. 4

Chapter. 5

Chapter. 6

Chapter. 1

**이 이야기 속 등장하는 국가, 단체, 인물 등은 허구입니다. 실제와 일치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우연에 불과합니다. **

내 이름은 로터스Lotus 리. 말 그대로 연꽃이란 뜻이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든다. 엄마는 크고 고운 분홍 연꽃이 호수에 떠 있는 꿈을 내 태몽으로 꿨다고, 그래서 내 이름이 이렇다고 자주 말해줬다. 근데 사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고 꾼 꿈이라 수련이나 수국, 또는 비닐봉지일지 모른다고도 말했지만.

엄마는 내 태몽을 꾸고 이건 부처의 계시라며 가장 가까운 절에 찾아 가 공양을 올렸다. 그 덕인지 엄마가 절에 다녀온 딱 삼 일 후에 아빠가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그 일을 얘기하며 엄마는 역시 부처가 아니라 예수를 믿었어야 했다며 내 이름을 크로스나 애플로 지었어야 했다고 분통해했다.

그렇지만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나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깨닫게 했던 애플보다는 연꽃이 더 예쁜 이름이기에 마음에 든다고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역시 자기는 천재라며 박수를 쳤다.

내가 수정되고 얼마 안 되어 죽은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사실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정자 제공자를 일컬을 적절한 명칭이 없어서이다. 그는 관광을 온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원나잇을 한 것뿐이지만 애가 덜컥 들어 생겼고 그래서 손톱 물어뜯으며 초조해하는 남자였을 것이었다.

왜냐면 엄마와 그는 결혼한 적도 없었고 그가 엄마에게 알려준 국적도 나이도 이름도 모두 거짓이었으니까. 본국에 조강지처를 두고 그 짓을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큰맘 먹고 온 관광지에서 꽥 뒈져버렸지.

그 남자가 알려준 성은 나가사키였지만, 그는 일본인이 아니었다. 더욱이 엄마는 짬뽕이 생각난다고 그런 성을 붙일 수 없다며 본인 성을 붙였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리(李) 씨를 물려받았다. 내 부모 복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자두나무가 뜻이라는 그 한자 성이 한국에서 온 것인지 중국에서 온 것인지 엄마도 나도 몰랐다.

엄마는 중국에서 좋은 뉴스가 들리면 내 성이 중국에서 온 성이라 그랬고 한국에서 좋은 뉴스가 들려오면 내 성이 한국에서 온 성이라 그랬으며 둘 다 별로 일 땐, 어디서 오면 어떻겠니, 우리는 어쨌든 홍징인인걸. 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는 홍징(紅鯨) 밖으론 나가 본 적 없는 홍징 사람이다. 홍징은 중국과 필리핀 사이 바다에 있는 섬나라다. 옛날 옛적 이 섬에서 일어난 큰 화재를 목격한 중국인들이 저 멀리 바다 어느 섬에 빨간 고래가 산다고 불렀던 별명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

이 섬에도 옛날 옛적 원주민이 살았지만 그 화재 탓에 대부분 죽어버렸고 화재의 피해에서 섬이 점차 복구되었을 즈음, 중국, 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국제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에 홍징으로 넘어온 중국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그리고 홍징 내, 뜻있는 사람들이 합심해 민주 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옆 나라 필리핀을 지배하던 미국이 홍징까지 손을 뻗어, 홍징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탓에 서양식 생활 풍습과 미국식 영어가 이 나라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나라의 정부를 세운 이들과 거주민 중에 한족 출신이 많았던 탓에 중국식 독음과 한자를 쓴 지명이 많았고 한어와 영어가 이 나라의 표준어가 되었다. 물론 홍징의 한어는 공산당의 한어와 달리 번체를 사용했다.

번체자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표음 문자인 영어를 익히고 가르치는 게 편했기에 문서나 고유어, 전문 용어를 제외하면 보통은 영어를 사용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 덕에 영어와 홍징식 한어, 그리고 중국식 한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엄마는 호텔의 스파에서 관리사로 일했다. 스파의 관리사를 얕잡아 보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단순히 호텔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아 일하기엔 너무 탁월한 사람이었다. 언어 능력이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인 내가 봐도 엄마는 똑똑했고 덕분에 혼자 아들을 길러낼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인이었다.

엄마가 일하던 호텔은 다위(大漁)라는 기업의 것으로, 태국에서 넘어온 닉 미나콤이 세운 회사다. 그는 홍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만족스러운 스파와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훌륭한 고급 호텔 사업을 통해 관광업을 발전시켰는데, 사실 이건 대외적인 것이었고 그 안엔 마약 관광이 더 주요했다.

홍징은 결코 물가가 싼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마약은 그보다 훨씬 비쌌다. 다위가 제공하는 것은 유독 고급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돈 많은 외국인들은 자국에선 빡빡한 마약 규제법과 질 나쁜 마약을 피해 홍징으로 몰려들었고 다위는 그들을 위해 질 좋고 값비싼 마약을 제공했다.

물론 고객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법적 분쟁도 생기지 않게 사후 처리 서비스도 제공했다. 당연하게도 상당수가 불법이었으나 다위는 홍징의 경제 성장에 일조했고 홍징 정부는 다위를 좋아했다. 다위도 물론 그런 정부를 싫어할 리 없었다.

홍징의 주요 관광지인 하이투(海土)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랐다. 엄마가 일하던 호텔도 하이투에 있던 것이다. 하이투엔 온갖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엄마는 훌륭한 관리사였지만, 대개는 스파와 마사지보다 약이 목적이었기에 엄마는 라이벌이 되어 버린 약에게 번번이 졌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엄마는 수완이 좋았기에 나름 고객들을 유치하며 나를 길러냈다.

엄마는 날 길러내는 걸 힘들어하셨다. 싱글 맘인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10살 때였나, 허공을 날아다니는 큰 흰 나비를 보자 나비의 얇고 팔랑거리는 날개가 탐이 났다.

그래서 나비를 잡아 날개를 뜯고 엄마에게 자랑했다. 이거 보라고, 내가 이렇게 예쁜 날개를 구해왔다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잔뜩 충격을 받아 나를 혼내셨다. 그렇게 하면 나비가 아프잖니. 그러면 안 돼! 그렇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비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알지?

그때 한창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대두되던 때였고 엄마는 사이코패스가 유년기에 동물을 학대하고 죽인다는 점을 기억해냈다. 엄마는 이 작은 아들이 훗날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며 잔뜩 희어진 얼굴로 날 병원에 이끌고 갔다.

의사는 잔뜩 굳은 얼굴로 어린 아들을 끌고 온 미인이 “제 아들이 연쇄 살인범이에요!”라고 소리친 것에 놀라 그랬는지 내게 온갖 검사를 실시했다. (물론, 난 연쇄 살인범이 아니었고 내가 그때까지 죽인 거라고는 개미와 쥐며느리, 나비 정도였다. 물론 그 생명들을 죽인 게 별거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의사는 검사 끝에 내가 남들보다 훨씬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에 엄마는 잔뜩 진지한 얼굴로 “그럼 제 아들이 사이코패스란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엄마의 윽박에 의사는, “그럴 수도요……?”라고 애매하게 답해버렸다. 그 답을 받아 든 엄마는 그때부터 나를 가르치던 교육 방식을 바꿨다.

엄마는 내게 형법상, 민법상 죄가 되는 것을 가르쳤다. 모두 피해자가 발생하는 범죄였고 형량을 유독 강조했다. 피해자에게 이러한 피해를 입히면 나는 저 정도의 죄를 받는다. 이걸 반복해 가르치셨다. “그러면 피해자가 아파하잖니!”라는 공감 교육은 내게 잘 통하지 않기에 좋은 방식일지 몰랐다. 그렇지만, 실제 사건 사례는 어린아이가 보기에 잔인한 게 많았기에 폭력에 살짝 무감해진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엄마가 형량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 나이의 나는 감옥을 학교와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래서 엄마는 죄를 저지르면 저렇게 좋지 않은 곳에 간다며 온갖 끔찍한 사례들이 담긴 교도소 영상을 보여주었다.

교도소가 등장하는 온갖 드라마와 영화도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교도소를 가지 않았음에도 교도소에 대해 비(非)재소자 치고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엄마가 의도한 건 그런 게 아니었겠지만.

나는 ‘아, 이렇게 저렇게 하면 걸리지 않고 교도소도 안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엄마는 그런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주 적은 단서만으로도 범인을 추적하고 체포해내는 프로그램들을 전 지구에서 끌어모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눈치를 기르는 훈련을 시켰다. 공감이 안 된다면, 이런 얼굴과 행동은 이런 뜻이니 알아채고 적절한 반응을 하라며. 다행히 눈치는 괜찮아서 나는 엄마의 가르침대로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반응했다. 대개는 들어맞았다. 들어맞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하여튼, 내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누누이 강조하는 “범죄를 짓지 말아라!”를 지키겠다고 엄마에게 맹세했다. 물론 범죄는 아니나 윤리에는 어긋난 일을 행하는 데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신체를 해하거나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히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내 이름을 갖고 놀리던 한 남자애가 있었다. 그 놀림에 상처받지 않았지만, 상당히 귀찮았고 그래서 나는 그 남자애에게 네가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사실 널 좋아한다더라. 하는 거짓말을 했다. 딱 그거뿐이었다. 그래서 그 애는 그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하게 차였고 추하게 울며 뛰쳐나갔지만, 내가 그 애한테 고백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이 그 애의 몸을 다치게 한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내가 그 애 물건을 뺏은 건 아니었으니 나는 결백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이름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가 날 키우는 데 그렇게 힘들었나 조금 억울했지만, 내가 엄마 맘을 어떻게 알겠냐는 맘에 그저 엄마를 안아드렸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 2학년에 진학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암이 발병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좋아했고 엄마가 아픈 것에 내가 일조했다는 것에 엄마에게 미안해했다. 엄마는 내가 그런 감정도 느낄 줄 아냐며 나를 잔뜩 기특해하셨다. 나는 그저 공감 능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이었지 감정을 못 느끼는 깡통 심장이 아니었는데 엄마는 날 그렇게 대하셨다. 그렇지만 난 엄마를 좋아했기에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이미 진행이 될 대로 된 상태가 되어서야 발견했기에, 손쓸 새도 없이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슬펐으나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시에 날 먹여 살려야 해서 마냥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생전에 들어 뒀던 보험금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학교만 다닐 수 없었다.

휴학을 하지 않고 일을 하며 학교에 다녔고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긴 것인지 교수님이 대학 내의 일자리를 소개해준 덕에 나는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교에서 일한 지 1년 3개월 2주가 지난 지금, 나는 쇠창살로 막힌 재소자 수송 차량에 타고 있다. 교정직 공무원이 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재소자였다. 은색 수갑을 손목에 달랑거리는.

교도소까지 오게 된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답답했지만, 그 감정들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다 소진해 지금은 너무 지친 상태였다. 더 이상 화를 낼 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기운 없이 의자에 기대앉았다. 바깥 풍경을 보려고 해도 창문을 막은 쇠창살 때문에 도무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수갑이 거슬려 손목을 벅벅 긁었다. 그 탓에 내 손목은 붉게 까지고 있었다. 쇳독이 오른 것처럼.

앞자리 쪽에 앉았기 때문에 운전석에 있는 뚱뚱한 대머리 남자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빼빼 마른 남자의 대화가 들렸다. 무시하고 싶어도 귀를 막을 수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저 밖에 두고 왔다. 2세대가 나왔다고 해서 큰맘 먹고 산 거였는데. 심지어 샀을 때 충전한 게 다 닳지도 않았다. 내가 나갈 때는 5세대, 6세대가 새로 나올지도 모른다. 새삼 우울해져, 불편한 버스 의자에 등을 축 기대고 대머리가 꼬챙이에게 다시 말을 거는 걸 잠자코 들었다.

“이번엔 꽤 적네.”

삐쩍 마른 남자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 탓에 앞 좌석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쳐, 나는 나름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날 무시하고는 앞으로 고개를 돌려 뚱뚱한 대머리에게 대꾸했다.

“좋은 거 아냐?”

“근데 우리 일이 줄면 어떻게 해?”

“이게 직업적 딜레마구만. 의사들이 사람들이 안 아프면 망하듯이 말이야.”

“이번엔 횡령범이랑 마약범이랑……. 횡령범은 얼마 횡령했대?”

“연봉이 쥐꼬리만 하다고 지 월급 지가 챙겨 먹다가 잡혀 왔다는데, 얼마라더라……. 난 숫자에 약하단 말이야.”

“어릴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아, 공항에서 마약 가방 들고 있다가 탐지견한테 걸린 놈도 있다며? 바보 아냐?”

“지 말로는 누가 부탁해서 잠깐 짐 맡아 준 거라는데.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몰라도 그런 뉴스는 종종 봤어. 사람들 호의 이용해서 짐 부탁하고 짐 맡아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되는 경우.”

“그래서 내가 가족 부탁도 안 들어주잖아. 이 일 하다 보니 너무 그런 일 많아서. 아, 왜 이렇게 속이 부대끼냐, 갑자기.”

“그렇게 처먹으니까 그렇지.”

삐쩍 마른 남자의 시니컬한 말에 뚱뚱한 대머리가 마른 남자의 팔을 쳤다. 둘의 팔 굵기가 두 배는 차이 나서 마른 남자의 팔이 꺾어지진 않을까 싶었다.

차는 점점 외진 곳으로 빠졌다. 교도소를 번화한 곳 근처에 세우는 것도 웃긴 일이겠지만, 외져도 너무 외지지 않았나 싶었다. 우거진 나무들만 보였고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길 몇십 분, 초록색 표지판이 보였다.

↑ 내루 교도소 1km

1km면 얼마나 걸리지? 운전면허가 없어서 모르겠다.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라고, 따라고 거듭 이야기했지만 하이투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곳 중 하나이기에 내 차를 사려면 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따지 않았다. 그냥 딸 걸 그랬나? 한 20분은 걸리나? 생각했지만 난 뚜벅이치고도 거리 감각이 많이 똥이었나보다.

20분은커녕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 멀리 드디어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어울리지 않은 핑크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는데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서 덧칠한 흔적이 보였다. 보수를 한 이의 솜씨가 엉망이라 더 흉해 보였다.

분홍색 철문 옆으로는 길고 높은 담이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뾰족한 철사가 휘감겨 있었다. 버스는 철문 앞에 멈춰 섰고 철문이 버스를 맞이하기 위해 천천히 열렸다. 무거운 철문이 열리길 기다린 버스는 문이 다 열리자 그 안으로 덜컹대며 들어섰다.

분홍색 철문을 지나 들어간 버스는 건물과 연결된 쌍여닫이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재소자들이 사는 곳일 건물은 기껏해야 2층으로, 높지 않아 보였고 대신 너비가 넓었다. 그리고 옆으로 운동장과 다른 자잘한 건물들도 있어서 부지가 제법 쓰였구나 싶었다.

이 근처의 땅값이 얼마인가로 생각이 튀는데 앞에 있는 꼬챙이와 대머리 뚱보가 차에서 내려 끊길 수밖에 없었다. 내린 그 둘을 향해 교도관 둘이 다가왔다. 교도관들은 남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대머리 뚱보와 꼬챙이보다는 어려 보이는 교도관들이 버스에 내린 대머리와 꼬챙이에게 인사를 먼저 건넸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꼬챙이는 키가 땅딸막한 교도관의 인사를 받으며 서류를 건넸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기록이 담겨 있겠지. 나는 누가 내 정보를 아는 게 몹시 싫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싫다고 해서 안 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재소자였으니까. 땅딸막한 교도관은 그 서류를 받아 대강 훑어보았고 뚱뚱한 대머리는 차 문을 열어 우리에게 소리쳤다.

“내릴 준비 해라!”

내릴 준비가 뭐 따로 있을까. 고객님,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니 수갑을 잊지 말고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아, 이미 손목에 달고 계시니 걱정이 없네요! 뭐, 이런 뜻이려나. 앞쪽이었던 내가 먼저 일어났고 뒤로 사람들이 줄 서서 내려왔다. 발걸음과 옷이 스치는 소리, 쇠와 쇠가 부딪히며 나는 수갑 소리가 불협화음으로 귓가를 울렸다.

차에서 내리자 신선한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의 공기는 왠지 찝찝했다. 건물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생각보다 깔끔했지만,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회색 섞인 분홍색 건물이었는데 원래 페인트 색이 그런 것인지, 분홍색 건물이 때가 탄 것인지 분간 가지 않았다. 그리고 곳곳에는 교도소답게 높은 담과 철망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이 안에 들어오다니. 하. 처참한 기분에 고개를 아래로 떨군 나의 사정 따위 알아줄 필요도, 알 리도 없는 대머리 뚱보가 내 손목에 달린 수갑을 풀어주었다.

“다시 오지 마라.”

그럼 잡아넣지 말든가.

드디어 가벼워진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 풀었다. 수갑은 너무 거치적거렸다. 그러니까 수갑인 거겠지만. 손목에 마구 긁어 피부가 거칠게 일어나 생긴 빨간 줄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수갑을 모두 푼 대머리 뚱보와 꼬챙이는 나를 태웠던 차에 올라탔다. 왔을 땐 무거웠지만 돌아갈 때는 가벼운 것이 기꺼웠는지 버스는 기운찬 시동 소리를 냈다. 그리고 땅딸막한 교도관이 철문을 열었다. 녹슨 쇠문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무겁게 움직였다.

그 안엔, 분명 불을 켰음에도 왠지 칙칙하고 어두워 보이는 복도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교도관 둘은 나와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 복도 벽에도 분홍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분홍색이 재소자들의 공격성을 낮추기 때문에 교도소에서 자주 쓰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여기는 그 얘기를 아주 맹신하는 곳인 듯했다. 분홍색을 처발랐다고 이 장소가 딱히 무해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흰색 페인트에 피가 섞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방 하나 앞에 도착하자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땅딸막한 쪽이 가장 맨 앞에 선 나에게 문을 열어주며 거만하게 턱 끝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자, 교도관이 내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손에 든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 두며 의자에 앉았고 나는 그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교도관이 나를 응시하다가 턱을 긁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

“…로터스 리.”

“나이는?”

“스물셋.”

“죄목은, 흠, 그래……. 형량은 2년이 안 되네. 야, 너는 나가도 그래도 창창한 나이겠다. 빨간 줄 그어지긴 했지만.”

“…….”

어쩌라는 건가. 나는 젊지만 재소자고, 지는 늙었지만 교도관이라는 건가. 그리고 그는 계속 물음을 이어 갔다.

“지병 있어? 먹는 약이나.”

“없습니다.”

“신체 건강하고, 현금은 얼마 정도 있냐?”

“동전 몇 개 빼고는 모두 카드입니다.”

“저런. 현금 있으면 그거 다 영치금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래서 내가 현금을 들고 다니지.”

언젠가 잡혀 올 일을 대비해 현금을 들고 다닌다는 건가? 교도관이?

“지금 입은 옷 말고 소지품 있어? 시계 찼냐?”

엄마가 사줬던 시험용 아날로그 시계를 종종 차고 다녔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살펴보더니 일어났다.

“이리 와봐. 키 좀 재 보게.”

순순히 신장 측정기에 올라갔다. 자동식이 아니라 수동이었는데, 교도관이 내 정수리로 쇠막대를 내렸다. 미끄러진 것인지 고의인지 몰라도 쇠막대가 강하게 머리를 후려쳐 좀 아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교도관이 은근슬쩍 내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는 주물렀다. 옆구리를 도려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애써 무시했다.

“키는… 184cm? 이야, 크네. 요즘 젊은 애들은 뭘 먹고 이렇게 크냐? 난 어릴 적부터 우유 먹어도 이 모양인데.”

그가 서류에 내 키를 기록한 후, 그 옆에 있는 체중계를 가리켰고 나는 순순히 체중계에 올랐다. 체중계의 눈금이 움직였다. 고생을 한 탓에 평소보다 3kg 정도가 적었다. 교도관은 또 내 체중을 기록했다. 그리고 서류에 빠진 것이 없나 확인하던 교도관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고 상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옷 벗어서 여기에 담아.”

엄마가 보여줬던 교도소 관련 영상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걸 진짜 해야 하다니.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쉰 후, 입고 온 검은 후드부터 벗어 개어 상자 안에 담았다.

교도관은 옷을 벗는 내 몸에서 눈을 떼어내지 않고 샅샅이 쳐다보았다. 검사 목적이라기에는, 눈엔 음흉함이 너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속옷까지 모두 벗자 교도관이 하얀 라텍스 장갑을 끼고 내 사타구니를 쳐다보는 걸 잊지 않으며 말했다.

“뒤돌고 엉덩이 내밀어.”

나는 뒤를 돌아 엉덩이를 내밀었다. 누가 내 엉덩이를 그렇게 들여다본다는 게 불쾌했지만, 꾹 참았다.

“기침해봐.”

어릴 적 학교가 가기 싫어 엄마한테 거짓 감기를 흉내 냈을 때보다 열심히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그는 내가 항문을 수납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음에도 내 구멍 입구에 굳이 손가락을 슬쩍 대더니 장갑을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변태 새끼. 그리고 내게 속옷과 죄수복을 내밀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았기에 아무런 무늬 없는 흰 속옷을 주워 입었다. 죄수복은 벽과 교도소 입구의 철문처럼 분홍색이었다. 엄마가 꾼 분홍색 연꽃 태몽이 사실 이걸 가리킨 것 아니었을까. 하.

죄수복은 점프 슈트여서 발목부터 목까지 내 몸 전체가 분홍색이 되었다. 바깥에서 파는 점프 슈트보다 더 헐렁거렸고 품이 넉넉했다. 그리고 교도관은 내게 작은 치약과 비누 등이 담긴 투명 파우치와 양말 등 교도소에서 쓸 물품을 건넸다. 그러면서 내 어깨를 꽉 잡았다 푼 후 어깨부터 손목까지 손으로 쓱 훑고는 내 손바닥을 슬쩍 긁었다.

“넌 좀 앞으로 고달플 것 같은데, 그럴 때 나 찾아와도 돼.”

그렇게 말하며 내게 나름 교태 어린 눈웃음을 쳤는데, 내 가슴팍 정도에 오는 못생긴 남자가 그러니까 너무 우습고 짜증 났다. 나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가 난 재소자고 저자는 교도관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같이 웃어주자 교도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내게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씨발 놈. 좆 까라.

가장 먼저 과정을 끝낸 죄로 문 바깥에 서서 다른 사람들도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공간에 유일하게 나만 분홍색 점프 슈트를 입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둘씩 옆으로 분홍색 인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교도관 하나가 연보라색 점프 슈트를 입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기존 재소자처럼 보이는 그는 키가 나보다 반 뼘 정도 작았고 몸엔 살집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얼굴은 퉁퉁했고 대머리였다. 그리고 두피에는 벌 문신이 있었다. 실사 같은 벌 말고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릴 법한 벌 말이다.

“미스터 응우옌. 이번엔 신입들은 하나 빼고 너무 제멋대로 생겼네요. 재미없게.”

연보라 대머리가 교도관에게 말하며 나를 손으로 대강 가리켰다. 그 하나가 나라는 뜻이었다. 교도관 응우옌은 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연보라 대머리는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였고 그 탓에 천장 전등의 밝은 빛이 반질거리는 두피에 반사되었다. 그리고 대머리가 내 눈부터 쭈욱 얼굴을 샅샅이 쳐다봤는데 교도관처럼 음흉함이 담겨 있지는 않아, 아까만큼 불쾌하지는 않았다. 물론, 편한 것도 아니었지만.

“몇 명 남았어요? 나 바쁜데.”

“안에 들어간 하나만 나오면 돼.”

교도관이 문을 가리키자 곧바로 열리며 분홍색 점프 슈트를 입은 사람이 나왔다. 그리고 땅딸막한 변태가 뒤따라 나오며 문을 닫았다. 이제 끝이었다.

“알론소. 새로 온 재소자들 방으로 안내해. 응우옌, 나는 이 서류 처리할 테니까 부탁할게.”

“판! 냉장고에 있는 샌드위치 내 거니까 먹지 마!”

땅딸막한 변태의 이름이 판이었나보다. 응우옌이 등을 돌려 멀어지는 판을 향해 소리쳤고 판은 알았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딱히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다. 응우옌이 멀어져 가는 판을 째려보더니 알론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자. 저 새끼가 먹어 치우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알론소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알론소와 응우옌을 뒤따라 나와 분홍색 옷을 입은 다른 재소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들었다시피 내 이름은 알론소. 여기 5년 있었어. 여기선 재소자 인권 어쩌고저쩌고 때문에 수감 번호 같은 거로는 못 부르고 성으로 불러. 뭐, 교도관 나으리한테는 미스터를 붙여 부르면 되고. 미스나 미세스는 없으니까 걱정 마.”

알론소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끌면서 말했다. 불손한 말투에 응우옌이 경고를 보냈지만, 알론소는 겉으로만 “네네~.” 할 뿐이었다. 알론소는 앞을 보고 있다가 뒤로 고개를 돌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특히 너. 너는 조심 해야겠네. 키 크고 몸이 아무리 좋아도 얼굴이 반반하면 여기선 위험해.”

알론소가 날 응시했다. 나를 아래에서 위로 스캔하며 보더니 “쯧, 힘들겠네.”라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엄마는 유난히 미인이었고 관리사로 일할 때도, 그리고 바깥에서도 남자들이 추근댄다며 소름 끼쳐 했었다. 나는 엄마의 외모를 물려받았지만 어릴 적부터 키가 컸고 남자였던 탓에 그런 시선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엄마가 느꼈던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잔뜩 화가 나 남자들은 모두 강간범이라며, 너도 강간범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아랫도리 단속 안 하고 다니면 잘릴 줄 알라며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 말이 밖에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몰라도 여기는 남자 교도소였다.

최대한 옷의 카라를 세우고 구부정하게 걸었다. 내 목은 유난히 엄마를 닮아 울대도 도드라지지 않은 채 길고 가늘었다. 드러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알론소는 방 하나로 나를 포함한 재소자 넷을 안내했다. 안에는 2층 침대 두 개가 벽을 마주 보며 놓여 있었다.

“여기는 신입용이고, 본 방은 2인 1실로 배정될 거야. 며칠 걸릴 거고. 화장실이랑 샤워실은 밖에 있는데 애도 아니고 굳이 안 알려줘도 되지?”

알론소는 그렇게 말하고 남은 재소자들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1층 침대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몸에 온통 힘이 없었다. 아직 온 지 세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너무 지쳤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이렇게까지 격하게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다행히 나와 같이 방이 배정된 재소자들은 기가 센 편이 아닌지 내가 먼저 침대를 차지했음에도 아무 말 없이 남은 침대로 주섬주섬 가 앉았다.

내 맞은편 1층 침대에 먼저 앉은 사람은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노인이라 치기엔 좀 어렸고 중년이라 치기엔 늙은. 탈모 때문에 머리가 드문드문 비어 두피를 드러냈는데 저럴 거면 차라리 삭발을 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그의 위로는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 남자가 올라갔고 내 침대 위로는 삐쩍 마른,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올라갔다.

교도소에서도 기가 아직 죽지 않은 20대 남자가 침대에 엎드려 눕더니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쪽이 나랑 그나마 동년배인 거 같은데 이름이 뭐야? 뭐로 들어왔어?”

다짜고짜 신상을 캐묻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굳이 같이 지낼 사이에 마찰을 빚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캐내 퍼트릴지 몰랐다.

“로터스 리. 횡령으로 들어왔어.”

“횡령? 아직 어려 보이는데?”

60대 남자가 내 말을 받았다. 나는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워 위층 침대 때문에 가로막힌 천장 대신 침대 밑부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니던 대학 장학금 관련 일을 했는데, 월급은 쥐꼬리만 한데 후배라는 놈들은 턱턱 큰돈 가져가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계좌로 돈을 넣어버렸지 뭐야.”

바보 같은 얘기였다.

“돈 앞에서는 뭐 멀쩡한 사람도 눈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내 위층에 있는 남자가 말을 받았다. 나는 굳이 더 이상 말을 할 기력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고 나머지 셋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난 제임스 자오. 운전하다가 사람 쳐서.”

이건 20대 남자였고

“나는 패트릭 하네다. 나도 횡령. 은행에서 일하다가 나도 어쩌다 보니 슬쩍…….”

이건 내 말에 긍정했던 위층 남자였다.

“나는 약 좀 외국에 팔아 보려다가……. 아니, 그걸 여기서만 하기엔 아깝잖아? 그래서 좀 봉사 정신으로다가 국제 사회에 이로운 일 좀 해보려 하는데! 하여튼, 난 알 온다.”

그리고 이건 마지막으로 60대 남자였다. 홍징에서 마약은 허가된 자들만 판매할 수 있었고 마약을 외국으로 판매, 유통하는 것은 절대 금지였다. 민간인이 소지할 수 있는 마약의 양도 무척 적었기에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양을 소지하면 수감될 수 있었다. 다위는 그런 홍징 내에서 마약에 독점적인 권리를 갖고 있었다.

하여튼, 저들이 지은 죄가 뭐든 이름이 뭐든 알게 뭔가. 나는 그냥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그 누구와 교류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어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자오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중이었다.

“구치소에서 이것저것 들었는데, 여기가 교도소 중에 호텔인 곳이래. 지은 지도 얼마 안 됐고 경비도 삼엄하지 않고. 그래서 문에 쇠창살도 없고 열어 놓고 다니잖아. 운 좋았던 거지!”

“아, 맞아. 나도 들었는데, 여기 게다가 그 사람도 있다며?”

내 위층인 하네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

나와 달리 자오와 온다는 알겠다는 듯 “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구치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말을 터 볼 걸 그랬다. 나 혼자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여기 있는 거지? 위험한 사람인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범죄자?

여기는 경비 등급 낮고 자율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곳이니 아마 사람을 여럿 죽이거나 강간한 강력 범죄자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유명인 범죄자겠지. 탈세나 음주 운전을 한 셀럽 같은 사람 말이다. 그렇지만, 하네다가 저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으니 어느 정도 위험한 자일 것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내가 절대 마주쳐서도 내 존재를 인식시켜서도 안 될 사람인 건 분명했다.

겨우겨우 셋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설핏 잠에 들었을 무렵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 위험을 알리는 날카롭고 시끄러운 경비음은 다행히 아니었고 학교에서 들을 법한, 벨 소리였다.

“아이고, 밥 시간인가 보네. 가세.”

온다의 말에 자오와 하네다가 배가 고팠는지 후다닥 2층에서 내려왔다. 딱히 저 셋과 같이 가고 싶지는 않지만, 연보라 옷 사이에 혼자 있는 분홍색은 눈에 띌 게 분명했다. 저들 사이에 묻혀 있어야 했다.

식당은 내가 있는 무리보다 먼저 온 연보라색들이 가득했다. 배식구 쪽에 스테인리스 식판이 있었고 그 옆에 플라스틱 젓가락과 숟가락이 꽂혀 있었다. 최대한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게 눈을 내리깐 채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내 앞에 서 있던 세 명이 야단이었다.

“그 사람이다.”

“야! 조용해! 들리니까. 쉿, 쉿.”

하네다가 중얼거렸고 온다가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급하게 하네다를 말렸다. 궁금증이 동해 살짝 고개를 들어 뒤로 돌렸다가 소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와 곧바로 눈이 마주쳐 버렸다.

연보라색 점프 슈트의 팔을 걷어 올려붙인 키 큰 남자가 무리 중 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은 모두 덩치가 컸는데도 그 남자의 머리가 가장 높게 솟아 있었다. 나보다 한 뼘 정도는 더 클 듯했다.

점프 슈트의 품이 넉넉해 호리호리해 보였지만 그 안이 어떨지는 몰랐다. 큰 통나무 같은 주변 남자들과 어깨너비가 비슷하거나 더 넓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는 피부가 어두웠고 단단한 얼굴 뼈가 곧고 높게 솟아 있었다. 동북아 계열 피를 짙게 물려받은 나는 그에 비하면 흰 종이 같았다. 정확히는 몰라도 주변 태국,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나 멀리는 중동, 아프리카 대륙의 피를 물려받았을 것 같았다. 모두 다 섞였을 수도 있고.

먹으로 그린 듯 검은 털이 빼곡하게 나 눈썹이 짙었다. 눈썹이 두껍고 분명했음에도 이목구비도 도드라져 눈썹만 동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잘 어울렸다. 그리고 눈은 둥글고 길고 컸다. 마냥 큰 게 아니라 잘생긴 눈이었다. 살짝 아래로 처져 어리고 순해 보였다.

홍채는 어두웠고 눈을 감싼 속눈썹이 유난히 빼곡하고 검었지만, 안구의 흰 부분이 유난히 희어서 눈이 무섭게 빛났다. 그리고 두피를 다 채워 덮는 복슬복슬한 검정 곱슬머리를 갖고 있었다. 여기서 저 정도의 파마를 하기 힘드니 천연 곱슬이겠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술 사이로 흰 치아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해맑아 보이는, 어리고 잘생긴 청년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보다 나이 많고 위험해 보이는 자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저자가 그들의 리더였다. 저자가 홀로 서 있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존재만으로도 남을 압도하는 사람이란 걸.

그는 짙은 홍채로 날 보고 있었다. 광이 나게 닦은 흑단 그랜드 피아노의 표면 같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활처럼 위를 향해 완만하게 굽어 있었는데 날 보며 웃는 것인지 본래의 입 모양 탓인지 분간 가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서 금방 시선을 떼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눈을 다시 내리깔았다. 그의 무리가 다가올 때마다 재소자들은 떠들어 대던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고 그와 그 주변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해 가장 앞에 끼어들었다. 저것이 이곳에서 정해진 마땅한 룰이라는 듯. 거칠고 성격 나쁠 이 남자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무리가 배식을 받고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자 자오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 역시 미나콤이네.”

미나콤? 미나콤이란 성을 모를 리 없었다. 엄마가 일한 호텔이 미나콤의 것이었으니까. 아니, 엄마 때문이 아니어도 홍징, 하물며 하이투에 사는 사람이라면 미나콤을 모를 리 없다. 잠시 생각해본 후에야 그가 누구인지 드디어 생각해낼 수 있었다. 저자는 킹 미나콤이다. 저렇게 젊고 잘생겼을 거라 생각 못 했는데.

그는 내가 나고 자랐던 하이투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닉 미나콤의 딸인 완다 미나콤의 양자로, 다위의 주요 사업지인 하이투를 그가 맡은 것 보면 그는 꽤 신임받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그는 손꼽히는 관광지였던 하이투를 더욱 번성하게 했다.

물론 스파와 마사지, 호텔만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마약을 개발하고 파는 데에 탁월했다고 들었다.

정부는 외국인에게 값비싼 마약을 팔고 막대한 세금을 내는 미나콤을 좋아했지만 국제 사회는 아니었다. 정부는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킹 미나콤을 수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재판받았다면 마약과 그들의 조직 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이런 곳이 아닌 경비 등급이 가장 높은 곳에서 무기 징역이나 몇십 년의 형을 살았겠지만, 그는 탈세로 수감되었다. 다위는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는 기업 중 하나였기에 킹 미나콤으로서는 억울할 일일지 몰랐다.

하여튼, 저 사람은 국가에서 가장 손꼽는 대기업의 중역이자 나라를 주름잡는 마약 카르텔 보스의 양자였기에 위험한 사람이었고 내 인생에 절대 얽히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저자와 얽힌다면 나는 다시 하이투로 돌아가 조용하게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니, 아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고.

다위는 양지에선 호텔, 관광 회사를 운영하고 음지에선 마약을 파는 식의 일을 했고 그렇다고 몰려다니며 폭행을 휘두르는 조직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홍징인들은 그저 다위를 외국에선 법으로 규제되는 마약을 파는 제법 번듯한 곳으로 여겼지, 치안의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마약 판매 조직을 운영하는 마피아였다. 그들은 사람을 해칠 수 있었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을 해쳤을 것이다. 그것이 민간인이 아니었거나 너무 조용해서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

마약의 유통, 판매는 국내로만 한정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다위의 세력이 국외로 뻗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다위의 합법적인 호텔업은 해외로 진출 가능했고 해외 여러 곳에도 다위의 호텔이 존재했다. 다위가 마약 관광이 제일 알아준다고 해서 스파와 마사지 서비스를 겸한 다위의 호텔이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들은 마약을 원치 않는 고객들의 니즈도 확실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하물며 아시아를 주로 오가는 항공사를 만든다는 얘기도 떠돌아 다위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곧 저 사람은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세력이 뻗어 있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사진 한 장 떠돌지 않고, 심지어는 같이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재소자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르지 않았다는 건 엄청난 의미였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이투를 관리하는 킹 미나콤의 이름까진 알아도 그가 저렇게 젊고 잘생겼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저 정도 외모였다면 파파라치가 사진을 나르고, 온갖 가십 잡지에 실려 셀럽으로 취급되었을 게 분명한데. 그렇지만 그는 외부에 노출되는 걸 꺼렸고 온갖 곳에서 유출됐을 자신의 정보를 죄다 막았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었다. 나는 분홍 옷을 입고 있었고 새로 온 사람에 대해 궁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거니까, 별 관심이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 여기는 킹 미나콤의 것이니까. 내가 아녀도 자오, 하네다, 온다를 비롯해 다른 분홍 옷을 지켜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나 때문에 이쪽을 바라봤던 것 같다는 근거 없고 무척 불안한 확신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넷만 제대로 된 신입이었다. 분홍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 교도소를 다녀갔다 다시 들어온 자였거나, 혹은 이미 교도소 내 세력과 연줄이 있는지 연보라색 옷을 입은 자들과 어울려 다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자들이 모두 세력 없는 혼자라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위험한 자들을 끌어올 가능성이 적어졌으니까.

계속 새치기를 당했던 탓에 나를 포함한 넷은 꽤 늦게 배식을 받았다. 거의 부스러기만 남은 음식을 배식받고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구석 자리로 가 앉았다.

음식은 본래는 찰기 있고 윤기 났을 테지만 오래됐는지 지금은 누리끼리하기만 한 흰 쌀밥과 숨이 다 죽어 물컹거리기까지 하는 공심채와 본래 고기였을 부스러기를 볶은 것, 피쉬소스를 섞은 것 같은 국이었다. 훌륭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나쁘진 않았다.

홍징은 동북아와 동남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았기에 쌀 종류와 반찬은 좀 다를지언정 대부분 젓가락과 숟가락을 이용해 밥에 반찬을 먹는 식이었다. 그래서 이런 식사가 주를 이뤘다. 밥은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기엔 찰기가 떨어져 금세 흩어졌기에, 숟가락으로 떠 입 안에 넣었다.

주로 나무 식기나 스테인리스 식기를 썼지 이런 부실한 식기로 식사를 하는 때는 거의 없어 숟가락이 너무 가벼워 어색했다. 맛은 뭐, 보기보다 괜찮았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다행히 입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서 그런 듯했다. 국을 입에 넣은 자오가 윽! 하는 소리를 냈다.

“국 엄청 비려!”

나 역시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떠먹어봤지만 먹을 만해, 불만 없이 묵묵히 음식을 입 안에 넣었다. 영양가가 뭐 그렇게 많겠느냐만은 여기에 살면서 몸이 축나고 싶지는 않았다.

자오도 불평을 쏟아 봤자 반찬 투정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얼굴을 찌푸린 채 음식을 입 안으로 넣었다 체라도 하면 억울할 것 같아 평소보다 꼭꼭 오래 씹었다. 그 탓에 나머지 셋은 모두 식사가 끝나 있었다. 식판을 깨끗하게 비운 건 아니었지만, 수저를 놨으니 끝난 거겠지. 셋은 내 눈치를 보다가 먼저 일어났다.

“그, 리라고 했지? 먼저 가 볼 테니 식사 맛있게 해.”

하네다가 나를 향해 말해 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식당이었다면 일어나 왁자지껄 떠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긴 교도소였고 저 셋은 분홍색 옷을 입은 신입이었기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어나 식판을 가져다 놨다.

퇴식구엔 온몸이 타투에 앞치마를 입은, 덩치 크고 수염이 난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기에 저 셋은 아주 얌전하고 조신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누고 식판에 남아 있던 음식물 쓰레기도 싹싹 긁어 깨끗하게 버렸다.

너무 꼭꼭 씹어 먹었는지 내 식판에는 음식이 아직 남아 있었다. 슬쩍 주변을 훑어보니 나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에 나도 조용히 일어나 퇴식구에 수저와 식판을 갖다 두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데 식당을 지키고 서 있던 교도관, 판이 나를 불렀다.

“거기, 리 재소자. 첫날인데 어때?”

그는 뒷짐 지고 있던 손을 풀고 내게 나름 웃으며 말했다. 교도소 첫날이 얼마나 좆같을지 나 말고 그가 더 잘 알 텐데. 그리고 좆같음을 더 해주는 게 본인이라는 걸 진짜 모른단 말이야? 그렇지만, 저딴 놈 이어도 일단 교도관이었고 나는 저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좋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가련한 척 굴었다.

“역시… 만만치는 않네요…….”

저놈은 가증스럽게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교도관이, 재소자를 상대로 이런 접촉을 해도 가능하단 말이야? 식당에 있는 다른 교도관의 표정을 슬쩍 보니 딱히 가능해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판이 나에게 하는 걸 한심하게 보더니 고개를 젓고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저런 반응을 보면 이 새끼는 상습범인 듯했다.

밖에서 멀쩡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교도소 안에서 자기 권력을 사용해 이러고 있는 꼴이 너무 찌질하고 한심해 보였다. 그러나 저놈은 교도관이고 나는 재소자였다. 저놈한테 잘못 걸렸다가 조용한 수감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었다.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계속 보낼지도 모르지. 나는 최대한, 저놈이 감히 자기를 거절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죄송하지만, 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 여기는, 조금… 힘들어서….”

나는 주변을 슬쩍 바라보는 척했다. 아직 식당에는 재소자들이 많았고 그들의 분위기는 하나같이 험악했다. 판도 식당 안을 둘러보더니 본인이 생각해도 그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봐. 몸조심하고.”

니 새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뒈져버릴 것 같은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