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겨울의 행복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라핀과 누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누워서 울기만 할 줄 알던 아이들은 금방 뒤집기를 하더니 기어다니고, 이제는 두 발로 설 수도 있게 됐다. 엉성하지만 걷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평범하지만 특별한 날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식사를 마친 후 다 같이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아가 대뜸 긴밀히 말을 걸었다.
“라핀. 할 얘기가 있는데, 잠시 나와 볼래?”
“네? 음…, 여기서 하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응.”
아이들이랑 도란도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갑자기?
라핀이 꼭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얘기하라고 눈치를 줬지만, 누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눈치였다.
아이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가? 뭐지, 설마 심각한 내용인가? 라핀은 묘한 불안감에 아벨과 이벨에게 둘이 놀고 있으라고 한 후 누아를 따라 집 밖으로 나왔다.
따듯한 집과 달리 바깥은 아직 겨울 끝자락의 한기가 돌았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동굴 밖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라핀은 현관문을 닫자마자 곧장 그에게 물었다.
“할 얘기가 뭔데 그래요?”
“이거 보여주고 싶어서.”
누아는 그렇게 말하며,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무언가를 보여줬다. 커다란 천에 덮어져 있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게 뭐지? 라핀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누아가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커다란 천을 치워냈다.
라핀은 천 아래에 있던 것의 정체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어? 이, 이게 뭐예요?”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몸 괜찮아지면 썰매 타자고.”
누아가 라핀에게 야심차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썰매였다. 나무를 정교하게 깎고 다듬어 만들어진 커다란 썰매.
그러고 보면, 이전에 누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했다. 라핀이 앓아누워 있었을 때, 몸이 다 나으면 썰매를 끌어주겠다고. 그런 대화를 나눈 이후 탈출과 임신을 겪어 라핀의 기억 속에서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누아는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라핀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자, 누아가 마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얘기할까 했는데, 이러다가 겨울 다 끝나게 생겨서.”
“아….”
“음…, 너무 볼품없나?”
“아, 아뇨! 너무 예뻐요! 좋아요!”
라핀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한 거지, 절대로 볼품없거나 실망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라핀은 혹 누아가 실망할까 봐 칭찬을 덧붙였다.
“저, 썰매가 이렇게 생긴 줄도 몰랐는데…. 엄청 예뻐요.”
누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 그래도 라핀이 볼품없다고 실망할까 봐 몇 번이고 다시 만든 썰매였다. 그러다 보니 보여주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라핀에게서 잘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니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라핀은 손으로 썰매를 천천히 쓸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썰매의 크기였다. 바깥에서 이걸 타려면 토끼 모습으로 올라타야 할 건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토끼 대여섯 마리가 앉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저만 타기에는… 너무 크지 않나요? 누아 님이 끌기로 했잖아요.”
“애들도 같이 태울 수 있게 크게 만들었거든.”
“아, 그러면 아벨이랑 이벨을 데리고 나올게요!”
라핀은 누아가 지금 당장 태워주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뜬 기운이 누아에게까지 전해졌다.
***
바깥에서 눈놀이하자는 말에, 아벨과 이벨이 신나게 바깥으로 나왔다. ‘눈놀이’라는 말의 뜻은 모르지만, ‘놀이’라는 말에 재밌는 거로 생각한 눈치였다.
누아는 썰매를 동굴 앞쪽까지 끌어온 다음, 토끼인 아벨을 가볍게 물어 썰매 안쪽에 앉혔다.
“아벨이는 안쪽에 앉자. 라핀이 가운데 앉고. 이벨이는….”
“압빠아. 압빠아!”
라핀이 썰매에 오르려는데, 이벨이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라핀을 덮쳤다.
수인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라핀이 이벨보다 체격이 더 컸지만, 본래의 토끼와 늑대 모습으로 나오니 이벨이 저보다 훨씬 더 커다랬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나올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 익숙하지가 않다. 본능적으로 저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인 걸까….
라핀은 묵직하게 제 몸을 짓누르는 무게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입꼬리는 올린 채였다.
“으응, 이벨.”
이벨이 라핀 몸 위로 거의 달려들 듯했지만, 제 아이라서 그런지 귀엽게만 보였다. 제 뺨을 혀로 할짝대는 건 너무 과하긴 했지만….
라핀이 체격에 밀려 말리지도 못하고 있자, 갑자기 누아가 엄한 표정을 하고 나타났다.
“이벨, 토끼 아빠가 힘들어하잖아. 옆에 제대로 앉아. 그리고 핥지 마.”
안 그래도 누아는 라핀이 이벨을 안아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벨은 늑대라서 아벨보다 훨씬 성장 속도가 빨랐고 무겁고 커다랬다. 그래서 라핀이 안아주기에는 무리가 간다고 생각했고, 라핀에게 안기는 게 습관이 될까 봐 걱정했다.
그것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모습은…. 아주 라핀을 깔고 뭉개고 있었다. 누아가 이벨의 뒷덜미를 가볍게 물고 자리에 앉히자, 이벨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고분고분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소심하게 사과했다.
“톡끼 압바…. 제송해요….”
“아니야. 이제 제대로 앉았으면 됐지. 아빠 하나도 안 힘들었어.”
재밌게 놀자고 나왔는데, 어쩌다가 혼내는 분위기가 된 거지?
라핀이 다급하게 위로해주며 분위기를 띄우려 진땀을 빼는데, 고분고분 앉아있던 아벨이 라핀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응?
“나, 나는요? 아까부터 앉아 이써는데….”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아벨이 울먹이고 있었다. 아까부터 저는 말도 잘 듣고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왜 저한테는 아무 관심 없냐는 모습이었다.
아벨은 이벨보다 눈물도 없고 점잖은 성격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이벨에게 관심이 쏠리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일을 당한 것처럼 눈물을 펑펑 흘리곤 했다.
이번에도 대성통곡을 할 것 같은 모습에, 라핀은 다급히 아벨을 달랬다.
“으응? 아…! 아벨이는 너무 착하지!”
라핀은 와락 아벨을 껴안으며, 썰매 옆에 서 있는 누아를 쏘아봤다. 그러게 애한테 왜 화를 내서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말 대신 원망을 가득 담은 시선이었다.
갑자기 불똥이 튀자 누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뭘 어쨌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라핀의 눈치가 보이는지, 그는 아벨과 이벨이 썰매 위에 제대로 앉도록 손을 봐주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벨, 이벨. 위험하니까 손잡이 꽉 잡고. 절대로 움직이거나 도중에 내리면 안 된다?”
“네!”
아벨과 이벨이 한목소리처럼 낭랑하게 대답했다. 하여간, 대답은 잘하지.
누아는 라핀이 아이들에 하는 것에 비하면 무심해 보이고, 애정표현이 메마른 것처럼 보였지만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를 씻기거나 놀아주거나 힘이 들어가는 일은 그가 했기에 아이들이 잘 따랐다. 다행인 일이었다.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한 누아는 늑대 모습으로 변해 썰매를 끌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아주 천천히 하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썰매 타기 딱 좋은 날씨다. 누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꽉 잡아.”
누아는 그렇게 말하며, 썰매에 달린 끈을 몸에 달고 총총총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을 따라 썰매 역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핀은 솔직히 아무리 누아라지만 저와 아이들이 탄 커다란 썰매를 끌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는데, 걱정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눈 위를 부드럽게 달렸다.
“우와아!”
감탄은 비단 아이들에게서만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라핀에게서도 터져 나왔다.
분명 저는 썰매 위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 세상이 휙휙 움직였다. 멀리 보이는 침엽수가 빠르게 움직이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을뿐더러, 다 같이 이러고 있는 게 정말로 가족처럼 느껴져서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벨과 이벨, 라핀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연신 감탄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겨울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벨이 옆에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압빠, 웃는다!”
“응?”
압빠? 지금은 누아의 뒤통수밖에 안 보이는데?
라핀이 의아하다고 생각하며 이벨을 보자, 이벨이 신기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다.
“톡끼 압빠 잘 안 웃자나. 재밌나 봐!”
이벨의 말에 아벨이 맞다며 맞장구를 치며 꺄르르 웃었다.
내가 잘 안 웃었다고? 아이들 앞에서는 나름 잘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라핀은 머쓱하게 “그랬나…?” 하고 말끝을 흐리며 허허 웃음을 흘렸다.
누아는 라핀이 웃는다는 말에 곧장 뒤를 돌아봤다가, 라핀이 웃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사실 누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끌 수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있으니 자제하고 있었다. 다치지 않도록,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딱 놀이 수준의 속도로 천천히.
그래서 내심 라핀이 시시해할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는데, 얼굴을 보아하니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라핀은 지난 여느 때보다도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라핀이 저렇게 밝게 웃는 건 귀했다. 아무리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모든 걸 다 해주려고 해도 보기 힘든 귀한 웃음.
누아는 그런 라핀의 웃음이 멈추지 않도록, 더 힘차게 눈밭을 달렸다.
***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온도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썰매를 철수했다.
한창 재미있다고 좋아하던 아벨과 이벨은 더 놀자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막상 누아가 뽀득뽀득 씻겨주니 노곤함과 피곤함이 단번에 밀려왔는지 곤히 잠들었다.
누아는 아이들을 아가 방 침대에 눕히고 안방으로 돌아오며, 뻐근한 어깨를 통통 두드렸다.
“어우, 더 끌어줬다간 내가 먼저 기절하겠어.”
아무리 힘센 누아라지만, 눈발을 해치며 썰매를 끌어주랴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겨주랴 진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아주 너덜너덜했다.
하긴, 아무리 아벨과 이벨이 천사처럼 예쁘고 귀엽다지만 놀아주는 데 필요한 건 강인한 체력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다. 미리 침대에서 쉬던 라핀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그를 반겼다.
“어서 쉬어요.”
“그래야지.”
누아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해서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려던 참이다.
몸이 매트리스 속으로 푸욱 빠져들듯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누아의 허리로 무언가가 스르륵 감겨드는 게 느껴졌다.
“…음? 갑자기 왜 그래?”
라핀이 잠결에 제게 달라붙었나 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라핀은 제 허리를 감아 안은 채 새카맣고 맑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아는 무서운 것을 봤을 때보다 심장이 더 가쁘게 뛰는 걸 느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그러자 라핀이 누아의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고마워요.”
“…….”
아아. 갑자기 왜 안기나 했더니, 썰매를 탔던 게 엄청 좋았던 모양이다.
누아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간 썰매를 완벽하게 만든다고 꽤 고생 좀 했는데, 단번에 피로가 풀렸다. 라핀의 이런 반응을 위해서 제가 노력했던 것이니까.
누아는 커다란 손으로 라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살랑살랑 넘기며 대답했다.
“다음에도 또 타자. 솔직히 오늘은 애들 때문에 천천히 달린 거거든?”
“네? 그게 천천히 달린 거였어요? 어, 엄청 빠르던데요…?”
“아벨이랑 이벨이 무서워할까 봐 천천히 한 거야. 그 정도야 뭐, 빠르게 걸은 수준이지.”
“말도 안 돼….”
“애들이 더 자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거야. 그땐 더 재미있을걸.”
누아는 빠를수록 재미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라핀은 토끼니까, 토끼가 경험하지 못할 속도로 달리면 분명 오늘보다 더 재미있어하리라.
누아가 당당하게 말하자 라핀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오늘도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그러면 더 재밌을 거라고? 라핀은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매년 썰매를 타고 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라핀은 미래에 펼쳐질 행복한 나날들을 상상하다 팔에 힘을 주어 더 바싹 누아에게 달라붙었다.
“저, 누아 님, 있잖아요….”
라핀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더니, 갑자기 누아의 가슴팍에 얼굴을 푹 묻어버렸다.
라핀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행동에 누아는 평온하던 아랫도리에 금방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답지 않게 먼저 와서 안기더니, 대담하게 가슴에 얼굴을 묻고…. 유혹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흥이 돋았다.
누아는 라핀의 요구대로 당장 그의 몸 위로 올라타고 싶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잠이 전부 다 깰 만큼 좋은 것과 별개로 라핀은 워낙 애정 표현이 적었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어색한 탓에 부끄럽다는 듯이 표정 위로 드러내는 게 전부인 토끼인데….
혹시 발정기가 온 게 아닌지 슬슬 걱정됐다. 라핀이 달려드는 경우는 그런 때밖에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발정기가 그렇게 이르게 오나? 발정기 지난 지 별로 안 지났는데.
누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라핀에게서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
“…고마워요.”
“음? 방금도 고맙다고 말했잖아.”
발정기가 온 게 아닌가 싶어 비장해졌는데, 고맙다는 말이었다니. 그것도 방금 말했었던.
누아는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라핀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썰매 말고도요.”
라핀은 누아와 사귀고 아이를 낳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인지, 이 마음이 과연 오래 이어질 것인지…. 누아와 가정을 꾸리는 것은 불확실한 도박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후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충만해지고, 제 감정이 이렇게 다채로웠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풍부해졌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라핀의 수면 시간은 크게 줄었다. 라핀은 인간에게 붙잡힌 이후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수면 시간이 길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았다. 오랜 시간 깨어 있어도 많이 졸리지 않았고, 활기찬 얼굴로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라핀은 그런 저의 긍정적인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어쩌면 제게 필요했던 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게는 가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감사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전의 날과 이어질 행복할 날에 대한 것이었다.
라핀이 이것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는데, 누아가 팔을 뻗어 라핀의 몸을 완전히 끌어안았다.
어느새 라핀은 누아의 몸 위에 마주 보고 누운 상태가 됐다. 누아는 그런 라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더.”
누아는 라핀이 무슨 의도로 제게 고맙다고 했든,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저 라핀이 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제게 먼저 안기는 날이 온 것만으로도.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늑대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두 눈이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춘 둘은 밤이 깊도록 행복을 나눴다. 달콤한 밤이었다.